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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일 월요일

Nana Mouskouri - Over And Over

 

Nana Mouskouri - Over And Over

전세계적으로 약 3억장 정도의 음반 판매 기록을 갖고 있는 그리스 출신의 가수 '나나 무스꾸리(본명: Ioanna Mouschouri)'는 그리스의 크리티(Crete: 크레타)섬에 있는 하니아(Chania) 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콘스탄틴(Constantine)'은 하비아 지역의 한 극장에서 영사 기사로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엘리스(Alice)'는 같은 극장의 안내원으로 일을 하다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나나 무스꾸리가 세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인 콘스탄틴은 가족을 이끌고 아테네(Athens)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 결정은 자신의 아이들이 좀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틴은 어릴때 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자신의 큰 딸인 '제니(Jenny)'와 나나 무스꾸리를 음악 학교에 보내 교육 시키기로 결정하였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좀더 재능이 좋은 아이만을 음악 학교에 보내기로 하고 가정 교사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 당시 나나 무스꾸리 보다는 그녀의 언니인 제니가 좀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섯살때 부터 노래를 부르는데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열두살때 부터 가정 교사에게 노래 부르는 법을 배우고 있던 나나 무스꾸리의 표현력이 언니인 제니 보다 상대적으로 더 좋았기에 나나 무스꾸리가 가정 교사의 조언에 따라 음악 학교에 들어 가게 된다.

1950년에 '아테네 음악학교(Athens Conservatoire)'에 입학한 나나 무스꾸리는 오페라 발성법을 배우며 클래식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대단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던 나나 무스꾸리는 학교에서 음악적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하였다. 음악 학교에 다닌지 8년째인 어느 날, 나나 무스꾸리는 그녀의 친구가 몸담고 있는 재즈 밴드가 출연하던 나이트 클럽에서 친구의 밴드와 함께 우연히 노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불렀던 노래가 어릴때 자주 들었던 재즈 가수 '엘라 핏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노래였었다.

클래식 교육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 지망생이 재즈 음악을 불렀다는 사실이 당시로써는 쉽게 용납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나나 무스꾸리가 클럽에서 재즈를 노래했다는 사실은 담당 교수를 격분시켰고 결국 이 일로 인해 나나 무스꾸리는 학교를 떠날수 밖에 없었다. 무너진 오페라 가수의 꿈을 나나 무스꾸리는 재즈 음악으로 대신 채워 나가게 되는데 어릴때 즐겨 들었던 '엘라 핏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의 음악들이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게 된다.

1957년,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난 나나 무스꾸리는 아테네의 '자키(Zaki)'라는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녀가 부르는 곡은 대부분 엘라 핏츠제럴드의 노래였었다. 이듬해인 1958년 까지 자키 클럽에서 노래를 하던 나나 무스꾸리는 우연히 클럽을 방문한 그리스의 유명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를 만나게 된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그리스의 시인이자 작사가인 '니코스 가토스(Nikos Gatsos)'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Kapou Iparchi I Agapi Mou'라는 노래를 만들어 나나 무스꾸리에게 주고 1959년의 '그리스 음악 축제(Greek Song Festival)'에 출전시키게 된다.

음악 축제에서 1959년과 1960년에 걸쳐 2년 연속으로 우승한 나나 무스꾸리는 1961년에 그리스의 이야기를 담은 독일 제작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사운드트랙 음반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 불렀던 노래가 'White Roses from Athens'였다. 나나 무스꾸리의 'White Roses from Athens'가 담긴 사운드 트랙 음반은 'White Roses from Athens'의 히트와 함께 독일내에서만 백만장이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62년, 미국 뉴욕으로 온 나나 무스꾸리는 '퀸시 존스(Quincy Jones)'를 만나 재즈 음반 'The Girl From Greece Sings'를 발표하였다. 영국에서는 'My Colouring Book'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음반으로 미국과 영국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나나 무스꾸리는 1963년 부터 모국인 그리스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여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 1963)'의 참여를 시작으로 프랑스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나나 무스꾸리는 1964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쉘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 주제가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캐럴 곡인 'L'Enfant au Tambour(Carol of the Drum)'를 발표하여 연속으로 히트시켰으며 이때 부터 프랑스의 인기 가수로 서서히 부각하게 된다. 1965년에는 미국의 칼립소(Calypso) 가수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와 함께 공연 무대에 올랐으며 두 사람의 합동 무대는 1966년 까지 이어지게 된다.

1967년에 프랑스어로 된 음반 'Le Jour Ou la Colombe'를 발표하여 프랑스 최고의 가수가 된 나나 무스꾸리는 1968년에 영국 'BBC TV'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인 'Presenting Nana Mouskouri'에 출연 후 영어 가사로 된 음반 'Over and Over'를 발표하였다. 1969년에 발표된 음반 'Over And Over'는 음반의 타이틀 곡인 'Over And Over'의 히트와 함께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거의 2년간 머무르며 꾸준히 팔려나가는 강세를 유지하게 된다.

나나 무스꾸리는 우리나라에서도 'Over And Over'를 비롯하여 'Plaisir d'Amour', 'Try to Remember', 'Amazing Grace'등 수많은 히트 곡을 통해서 들려준 천상의 목소리로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이다. 또한 나나 무스꾸리는 1993년 10월에 '유니세프(UNICEF: 국제 연합 국제 아동 긴급 기금)'의 친선 대사(Goodwill Ambassador)로 임명되었으며 1994년 부터 1999년 까지는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현재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나나 무스꾸리 (Nana Mouskouri) : 1934년 10월 13일 그리스 그레데(Crete) 출생

갈래 : 팝 소울(Pop), 보컬 팝(Vocal Pop), 프렌치 팝(French Pop), 재즈(Jazz)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nanamouskouri-50.com/site_uk/
Over And Over 감상하기 : http://youtu.be/wzta6hjsYDc

2011년 1월 1일 토요일

The Foundations - Build Me Up Buttercup

 

The Foundations - Build Me Up Buttercup

서인도 제도 출신의 흑인들과 영국 출신의 백인들이 모여 1967년에 출범한 영국 소울 밴드 '파운데이션스'는 1998년에 개봉했었던 로맨틱 코메디 영화 '매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There's Something About Mary)'에 밴드의 최대 히트 곡인 'Build Me Up Buttercup'가 삽입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파운데이션스는 1967년 1월에 런던의 한 커피 하우스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는데 당시 멤버로는 두명의 보컬리스트 '클렘 커티스(Clem Curtis)'와 '아서 브라운(Arthur Brown)'을 포함해서 '마이크 엘리엇(Mike Elliott, 색소폰)', '에릭 알렌데일', '알란 워너', '피터 맥베스', '토니 고메즈', '팻 버크', '팀 해리스'의 9인조로 구성된 대형 밴드였었다.

이 가운데 아서 브라운은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인물로 1971년에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킹덤 컴(Kingdom Come)'을 결성하게 되는 인물이다. 파운데이션스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인 1965년에 결성된 밴드는 '라몽 사운드(The Ramong Sound)'등의 이름으로 몇차례 밴드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하다 1967년에 '파이 음반사(Pye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 무렵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아서 브라운이 밴드를 떠나게 된다.

아서 브라운은 파운데이션스에서 탈퇴 후 '크레이지 월드 오브 아서 브라운(The Crazy World of Arthur Brown)'이라는 이름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를 결성하여 싱글 'Fire'를 히트시켰으며 무대에서 불 붙은 모자를 쓰고 나오는 등의 행동을 통해 록계의 이단아이자 쇼크 로커(Shock Rocker)로 사이키델릭 팬들과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을 사로잡게 된다. 파이 음반사를 통해 1967년에 데뷔 싱글 'Baby, Now That I've Found You'를 발표한 파운데이션스는 처음에는 기대 이하의 반응에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뜻하지 않게 BBC 방송국에서 새로 설립한 라디오 방송국인 'BBC Radio 1'을 통해서 소개가 되면서 영국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안게 된다.

당시 'BBC Radio 1'은 난립하던 해적 방송에서 소개되던 음악들을 피해서 새로운 음악을 찾던 중 우연히 파운데이션스의 음악을 찾게 되었고 방송을 통해 소개를 하면서 파운데이션스를 유명 밴드로 만들어 주게 되었던 것이다. 데뷔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후 바다 건너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이듬해인 1968년에는 싱글 'Back On My Feet Again'과 'Any Old Time (You're Lonely And Sad'을 영국에서 히트시켰다. 하지만 이 싱글을 끝으로 클렘 커티스와 마이크 엘리엇이 탈퇴하면서 밴드는 축소되었고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콜린 영이 가입하면서 파운데이션스는 7인조 밴드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콜린 영과 함께 파운데이션스는 1968년에 새 싱글 'Build Me Up Buttercup'을 발표하였는데 이 싱글이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위에 오르는 대형 히트를 하게 된다. 이후 이 곡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매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 삽입되면서 다시 알려졌고 우리나라 팝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애청곡이 된다.

파운데이션스 (The Foundations) :
에릭 알렌데일 (Eric Allendale, 트럼본) : 1936년 3월 4일 도미니카(Dominica) 공화국 출생
콜린 영 (Colin Young, 보컬) : 1944년 9월 12일 바베이도스(Barbados) 출생
알란 워너 (Alan Warner, 기타) : 1947년 4월 21일 영국 런던 출생
피터 맥베스 (Peter MacBeth) : 베이스
토니 고메즈 (Tony Gomez) : 오르간
팻 버크 (Pat Burke) : 색소폰, 플루트
팀 해리스 (Tim Harris) : 드럼

갈래 : 소울(Soul), 팝 소울(Pop-Soul),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lemcurtis.com/
Can't Take My Eyes Off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TZ-yI2mCBAY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Frankie Valli - Can't Take My Eyes Off You

 

Frankie Valli - Can't Take My Eyes Off You

1960년에 결성되어 영국의 비틀즈(The Beatles)와 함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미국의 팝록 밴드인 '포 시즌스(The Four Seasons)'의 리더인 '프랭키 발리(본명: Francis Stephen Castelluccio)'는 밴드 활동 뿐 아니라 솔로로써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가수였다.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이탈리아계 부모로 부터 태어난 프랭키 발리는 일곱살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뉴욕에서 열린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의 공연을 본 후 깊은 감명을 받고 이때 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이발사였던 아버지에게 이발 기술을 배우며 일을 하면서도 프랭키 발리는 틈틈이 곡을 만들며 노래 부르는 작업을 계속했는데 이 당시 프랭키 발리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인물이 텍사스 출신의 가수인 '진 발리(Jean Valley)'였다. 이런 인연으로 프랭키 발리는 후일 자신의 예명을 진 발리와 같은 발음인 발리(Valli)로 정하게 된다. 1951년에 프랭키 발리는 '버라이어티 트리오(The Variety Trio)'라는 이름의 보컬 밴드와 함께 프로 가수로써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버라이어티 트리오가 해체되는 1952년 까지 트리오와 함께 공연 활동을 하게 된다.

1953년, 프랭키 발리라는 이름으로 첫번째 싱글인 'My Mother's Eyes'를 발표한 프랭키 발리는 이전 버라이어티 트리오에서 함께 활동했던 '토미 드비토(Tommy DeVito)'와 함께 '바리톤스(The Varitones)'라는 보컬 밴드를 1956년에 결성하게 된다. 밴드는 'RCA 빅터(RCA Victor)'와 계약을 앞두고 음반사 측의 요청으로 '포 러브스(The Four Lovers)'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1956년에 발표한 싱글 'You're the Apple of My Eye'가 소폭의 히트를 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포 러브스는 1960년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바로 그 유명한 '포 시즌스'라는 이름을 이때 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포 시즌스는 1962년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 'Sherry'를 시작으로 1968년 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정상의 밴드로 활동을 하게 된다. 프랭키 발리는 1967년에 밴드 활동을 겸해서 솔로로도 싱글을 발표했는데 바로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사랑 받고 있는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까지 진출하며 대형 히트를 했었는데 이후 1997년에 영화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에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 된다.

프랭키 발리 (Frankie Valli) : 1934년 5월 3일 미국 뉴저지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두왑(Doo W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rankievallifourseasons.com/
Can't Take My Eyes Off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NGFToiLtXro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Don Gibson - I Can't Stop Loving You

Don Gibson - I Can't Stop Loving You

2001년에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Country Music Hall of Fame)'에 입성한 미국의 컨트르 가수 겸 작곡가인 '돈 깁슨(본명: Donald Eugene Gibson)'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 셸비(Shelby)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 환경 탓에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돈 깁슨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1948년에 첫번째 싱글 음반을 발표했던 밴드 '선스 오브 더 소일(Sons of the Soil)'이었다.

하지만 선스 오브 더 소일은 기억에 남을만한 히트 곡을 남기지 못하고 해산하였고 돈 깁슨은 솔로 활동을 위해 내슈빌로 오게 되는데 이때가 1956년이었다. 1956년 내슈빌에서 돈 깁슨은 컨트리 발라드 곡인 'Sweet Dreams'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이 곡은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돈 깁슨이 컨트리 가수로 성공한 이후인 1963년에 재발매되면서 히트를 하게 된다.

돈 깁슨은 1958년에 두번째 싱글 'Oh Lonesome Me'를 'RCA-빅터(RCA-Victor) 음반사를 통해 발표하여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의 정상에 올려 놓게 되는데 이로써 무명이었던 돈 깁슨은 단숨에 수퍼 스타로 성장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된다. 한편 이 싱글의 뒷 부분인 B면에는 'I Can't Stop Loving You'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곡은 1962년에 재발매되어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7위에 올랐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81위에 오르며 돈 깁슨의 고전이 되었다.

돈 깁슨하면 떠올리게 되는 곡인 'Sea Of Heartbreak'와 함께 'I Can't Stop Loving You'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곡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곡이다.

돈 깁슨 (Don Gibson) : 1928년 4월 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생, 2003년 11월 17일 사망

갈래 : 컨트리(Country), 컨트리 팝(Country-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I Can't Stop Loving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6v_L-GbNXx8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The Zombies - Time of the Season

The Zombies - Time of the Season

영국의 록 밴드 좀비스는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주 세인트 알반즈(St Albans)에서 콜린 블런스톤과 로드 아젠트의 주도 하에 1961년에 출범하였다. 좀비스는 밴드 결성 후 유서 깊은 세인트 알반즈의 '올드 베룰레미언스 럭비 클럽(Old Verulamians Rugby Club)'에서의 공연 활동을 통해 작지만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멤버 중 로드 아젠트와 폴 아킨슨, 그리고 휴 그런디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세인트 알반즈 학교(St Albans School)' 동창이었으며 로드 아젠트는 '세인트 알반즈 대성당(St Albans Cathedral Choir)'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지만 조금씩 자신들의 팬을 늘려 나가던 좀비스는 '런던 이브닝 뉴스(London Evening News)'가 후원하는 비트 그룹(beat-group) 경진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두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음반 계약도 성사시키게 된다. 음반 계약 후 좀비스는 1964년 7월 24일에 데카를 통해서 싱글 'She's Not Ther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되는데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12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0위권에 진입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많은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밴드 중 하나로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싱글의 성공 이후 좀비스는 다른 영국 밴드들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의 '폭스 대극장(Fox Theatre)'에서 열린 1964년 12월의 크리스마스 기념 공연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공연 참가 후 좀비스는 데뷔 음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65년 4월에 발표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Begin Here'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The Zombie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1967년 좀비스는 'CBS 음반사(CBS Records)'와 새롭게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두번째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좀비스의 두번째 음반 'Odessey and Oracle'은 영국에서는 1968년 4월 19일에 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두달후인 6월에 발매되었는데 이 음반이 데뷔 음반과 다른 점이라면 좀비스의 건반 주자인 로드 아젠트가 멜로트론 연주를 첨가하여 데뷔 음반 보다 더욱 아름다운 좀비스만의 사이키델릭 팝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 까지 진출한 히트 곡 'Time of the Season'은 좀비스가 남긴 명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간히 텔레비전 드라마나 광고 음악 등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화제를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한편 좀비스는 이 음반을 끝으로 해산하게 되는데 이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에 전념하다 1991년에 다시 재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좀비스 최고의 작품이자 사이키델릭 시대가 낳은 좀비스의 명반 'Odessey and Oracle'은 '록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말로 평가되고 있는데 음반을 들어본다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이런 음악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몹시 아쉬운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좀비스 (The Zombies) :
콜린 블런스톤 (Colin Blunstone, 보컬) : 1945년 6월 24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폴 아킨슨 (Paul Atkinson, 기타) : 1946년 3월 19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2004년 4월 1일 사망
크리스 화이트 (Chris White, 베이스) : 1943년 3월 7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로드 아젠트 (Rod Argent, 키보드) : 1945년 6월 14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휴 그런디 (Hugh Grundy, 드럼) :

갈래 : 사이키델릭 팝(Psychedelic Pop), 바로크 팝(Baroque Pop),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zombies.net/
Time of the Season 감상하기 : http://youtu.be/hfwFpRnOeGg

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Journey - Faithfully

 

Journey - Faithfully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1973년에 출범한 록 밴드 '저니(Journey)'는 '산타나(Santana)'의 매니저였던 '월터 허버트(Walter 'Herbie' Herbert)'가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면서 탄생한 밴드이다. 월터 허버트는 산타나 밴드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던 '닐 숀(Neal Schon, 기타)'을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우선 낙점하고 '로스 발로리'를 포함하여 '그레그 롤리(Gregg Rolie, 키보드)', '프레어리 프린스(Prairie Prince, 드럼)', '조지 티크너(George Tickner, 리듬 기타, 리드 보컬)를 합류시켜 5인조 밴드인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m Section)'을 탄생시켰다.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밴드 결성후 지역 클럽등의 무대를 통해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인 'KSAN-FM'에 출연하여 새로운 밴드 이르인 저니를 얻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방송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밴드 이름을 공모하게 되었는데 '저니(Journey)'라는 이름이 많은 지지를 받게 되자 저니를 새로운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새출발을 하게 된다.

저니는 1975년에 재즈 록을 중심으로 한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 위주의 진보적인(Progressive) 음악을 구사한 데뷔 음반 'Journey'를 발표하였고 1976년에는 데뷔 음반과 비슷한 시도를 택한 두번째 음반 'Look Into the Future'를 발표하였다. 1977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Next'까지 초기 석장의 음반들은 모두 연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니의 이러한 시도는 상업적인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결국 저니의 매니저는 밴드의 음악에 새로운 변화를 줄 시기가 되었음을 느끼고 저니의 새로운 프론트맨이자 보컬리스트로 활약하게 되는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게 되고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드럼)를 가입시켜 드럼을 맡기게 된다. 저니는 새 멤버로 승선한 스티브 페리, 스티브 스미스와 함께 새 음반을 제작하여 1978년에 'Infinity'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이전 음반들에 비해 상업성을 고려한 세련된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Infinity'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한 'Wheel in the Sky'의 성공에 힘입어 음반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상업적 성과로 이어져 저니의 새로운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명실공히 정상의 밴드로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 저니는 이후 좀더 강력한 음악을 음반에 채워 넣게 되는데 1979년 음반 'Evolution'과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 강력해진 저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979년 음반인 'Evolution'에서는 싱글 'Lovin', Touchin', Squeezin'을 빌보드 싱글 차트 16위 까지 진출시키며 히트를 시켰고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는 싱글 'Any Way You Want It'을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 까지 진출시켰는데 이로 인해 앨범 차트에서도 각각 20위와 8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하였다. 하지만 저니가 성공가도를 달려가고 있을 이 즈음에 계속되는 순회 공연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레그 롤리가 저니를 탈퇴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새로운 키보드 주자로 '조나단 케인'이 합류하게 된다.

저니의 새로운 키보드 주자인 조나단 케인의 연주가 첫선을 보인 저니의 새 음반 'Escape'는 1981년 7월 31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진출했던 히트곡 'Open Arm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저니의 명곡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이 음반은 900만장 이상의 팔려나가는 대형 히트를 하는 동시에 앨범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며 저니의 시대를 열게 된다.

저니는 'Escape' 음반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잠시의 휴식기를 가진 후 1983년 2월 22일에 새 음반 'Frontier'를 들고 하드 록 팬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위 까지 진출했던 세계적인 히트 곡 'Separate Ways (Worlds Apart)'를 비롯하여 싱글 차트 12위 진출 곡인 'Faithfully'와 싱글 차트 23위 진출 곡인 'After the Fall' 그리고 역시 싱글 차트에서 23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한 'Send Her My Love'까지 총 네 곡의 Top 40 진출 곡을 낳으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가운데 'Faithfully'는 우리나라의 록 발라드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히트 곡이 되었고 오랜기간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저니 (Journey) :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보컬) : 1949년 1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닐 숀 (Neal Schon, 기타) : 1954년 2월 27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로스 발로리 (Ross Valory, 베이스) : 1949년 2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조나단 케인 (Jonathan Cain, 키보드) : 1950년 2월 26일 미국 시카고 출생
스티브 스미스 (Steve Smith, 드럼) : 1954년 8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록(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ourneymusic.com/
Faithfully 감상하기 : http://youtu.be/d4xllzKfs4Y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1977년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 2월 14일)에 월리 팔머, 마이크 스킬, 리치 콜(Rich Cole,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의 4인 구성으로 출범한 디트로이트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1983년에 발표한 음반 'In Heat'의 수록 곡인 'Talking In Your Sleep'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영국 출신의 다른 뉴웨이브 밴드들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밴드이다.

밸런타인데이에 결성되어 밴드 이름을 로맨틱스로 정한 밴드는 팝 음악 지향의 펑크(Punk)음악을 구사하며 디트로이트 지역과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이런 강렬한 파워 팝은 당시 막 시작된 뉴웨이브 음악의 흐름에 자연스레 편성되었으며 사람들에게 뉴웨이브 밴드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스파이더 음반사(Spider Records)'를 통해 1977년에 데뷔 싱글 'Little White Lies/I Can't Tell You Anything'를 발표한 로맨틱스는 이듬해인 1978년에 두번째 싱글 'Tell It To Carrie/First In Line'을 '밤 음반사(Bomp  Records)'를 통해 공개하였으나 두장의 싱글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2년여의 시간을 무명 밴드로 활동했던 로맨틱스는 마침내 1979년 8월에 '냄퍼러 음반사(Nemperor Records)'와 정식 음반 계약에 성공하고 9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하드 록 밴드인 '팔라딘(Paladin)'에서 멋진 해먼드 오르간 연주를 들려 주었던 '피터 솔리(Peter Soley)'가 프로듀서로 음반의 제작을 총지휘 하게 된다.

로맨틱스는 데뷔 음반 발표 전인 1979년에 데뷔 음반에 수록될 예정인 곡 'What I Like About You'를 싱글로 먼저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8위 까지 진출시켰으며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12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바다 건너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 까지 진출시키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멤버들이 화려한 붉은 색의 의상을 입고 표지에 등장한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 'The Romantics'는 1980년 1월 4일에 발표되어 싱글로 발표되었던 'What I Like About You'의 성공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6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What I Like About You'를 히트시킨 로맨틱스는 1980년 한해를 광고 출연등의 일정으로 바쁘게 보내다 12월에 두번째 음반 'National Breakout'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의 성공에 고무되어 잔뜩 기대를 안고 두번째 음반을 발표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두번째 음반에서는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였고 음반도 앨범 차트에서 176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게 된다.

로맨틱스는 두번째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1981년 9월에 녹음실로 돌아가 그해 10월에 심혈을 기울인 세번째 음반 'Strictly Perso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전작보다는 더한 참패로 끝나버리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2위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은 결국 밴드의 균열을 가져왔고 밴드 결성때 부터 함께 해왔던 마이크 스킬과 리치 콜이 로맨틱스를 탈퇴하여 로맨틱스는 해산의 위기를 겪게 된다.

멤버 두 사람의 탈퇴로 어쩔 수 없이 잠정 활동 정지에 들어간 로맨틱스의 남은 두 멤버는 새로운 멤버인 코즈 캔러를 받아들여 그에게 밴드의 리드 기타를 맡김으로써 밴드를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고 떠났던 마이크 스킬이 1982년에 다시 로맨틱스에 합류하면서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이전 까지 로맨틱스의 리드 기타를 담당했었던 마이크 스킬은 로맨틱스에 다시 합류하면서 부터 베이스를 담당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와 함께 1983년 5월에 녹음실로 들어간 로맨틱스는 6월 까지 새 음반을 녹음하여 그해 가을에 네번째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에서 제작 총지휘를 했던 피터 솔리가 객원 키보드 주자로 참여하여 사운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준 로맨틱스의 네번째 음반은 'In Heat'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첫번째 싱글로 'Talking in Your Sleep'을 발매하게 된다.

싱글로 발표된 'Talking in Your Sleep'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더니 1984년 2월에 3위 까지 진출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댄스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던 'Talking in Your Sleep'은 영국의 싱글 차트에도 올라 15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Talking in Your Sleep'은 우리나라에서도 댄스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곡이며 로맨틱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현재까지도 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 곡이다.

로맨틱스 (The Romantics) :
월리 팔머 (Wally Palmar)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코즈 캔러 (Coz Canler) : 기타
마이크 스킬 (Mike Skill) :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 (Jimmy Marinos) : 드럼

갈래 : 파워 팝(Power Pop), 뉴 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manticsdetroit.com/
Talking In Your Sleep 감상하기 : http://youtu.be/m6f_ANMxjUQ

2010년 11월 24일 수요일

Skeeter Davis - The End Of The World

 

Skeeter Davis - The End Of The World

1950년대 초에 컨트리 듀오인 '데이비스 시스터즈(The Davis Sisters)'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미국의 컨트리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본명: Mary Frances Penick)'는 켄터키(Kentucky)주 드라이릿지(Dry Ridge)에서 1931년에 태어났다. 일곱 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난 스키터 데이비스는 매우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를 않았다고 한다. 활력 넘치는 어린 그녀에게 그녀의 할아버지는 떼어내도 떨어지지 않는 모기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모기를 가르키는 속어인 '스키터(Skeeter)'를 별명으로 지어 주었다.

'메리 프랜시스 페닉(Mary Frances Penick)'의 가족은 1947년에 켄터키주 에를랭어(Erlanger)로 이사하였으며 메리 프랜시스 페닉은 딕시 하이츠 고등학교(Dixie Heights High School)에 진학하게 된다. 딕시 하이츠 고교에서 메리 프랜시스 페닉은 '베티 잭 데이비스(Betty Jack Davis)'라는 소녀를 만나 친구가 되는데 둘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생기 발랄한 십대 소녀들이었다. 메리 프랜시스 페닉은 이때 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때 본명 대신 스키터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함께 호흡을 맞춰 가며 노래를 부르던 두 소녀는 마침내 '데이비스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컨트리 듀오를 결성하게 되었으며 디트로이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인 'WJR'의 음악 프로그램인 '반야드 프롤릭스(Barnyard Frolics)'에도 출연하는 기회를 잡게 되면서 지명도를 늘려 나가게 된다. 데이비스 시스터즈의 매력적인 화음이 방송을 타고 알려지게 되자 'RCA 음반사(RCA Records)'에서는 서둘러 데이비스 시스터즈에게 음반 계약을 제의하였으며 이에 동의한 듀오는 RCA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된다.

1953년에 RCA 음반사와 계약한 데이비스 시스터즈는 싱글 'Jealous Love'를 발표하면서 컨트리 음악계에 데뷔하였으나 듀오의 데뷔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그러나 심기일전하여 1953년에 발표한 데이비스 시스터즈의 두번째 싱글인 'I Forgot More Than You'll Ever Know'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며 데이비스 시스터즈의 앞길을 밝혀주게 된다. 1953년 5월에 발표된 이 싱글은 컨트리 차트에 진입하더니 곧바로 수직 상승하여 1위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8주간 1위 자리를 지키는 대형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8위 까지 진출한 이 곡으로 탄탄한 성공의 길로 막 들어서고 있던 데이비스 시스터즈의 장밋빛 미래는 1953년 8월 1일에 발생한 자동차 사고로 산산히 흩어지게 된다. 이날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베티 잭 데이비스가 사망하였고 스키터 데이비스는 중상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사고 이후 부상에서 회복한 스키터 데이비스는 데이비스 시스터즈를 해산하지 않고 사망한 베티 잭 데이비스의 여동생인 '조지아 데이비스(Georgia Davis)'와 함께 1956년 까지 데이비스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계속 활동하게 된다.

1956년 말에 데이비스 시스터즈를 해산하고 솔로 활동을 선언한 스키터 데이비스는 1957년에 솔로 데뷔 싱글 'He Left His Heart for Me'를 발표한 후 RCA 음반사와 솔로 계약을 맺게 된다. RCA 소속이 된 스키터 데이비스는 기타 주자이자 음반 제작자이기도 한 '쳇 앳킨스(Chet Atkins)'의 지휘로 RCA 데뷔작인 싱글 'Lost to a Geisha Girl'을 1958년에 발표하여 컨트리 싱글 차트 15위에 진출시키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스키터 데이비스는 이후 1959년에 'Set Him Free(5위)'과 'Homebreaker(15위)'를 히트시켰으며 1960년에는 'Am I That Easy to Forget(11위)', '(I Can't Help You) I'm Falling Too(2위)', 'My Last Date (With You)(5위)'의 세곡을 히트시키며 인기 컨트리 가수로 자리 잡게 된다.

1961년에 'The Hand You're Holding Now(11위)'와 'Optimistic(10위)' 두곡의 히트 싱글을 발표한 스키터 데이비스는 이듬해인 1962년에 'Where I Ought to Be(9위)'와 'The Little Music Box(22위)'를 발표하여 컨트리 차트에서 히트시킨 후 그녀 생애 최대의 히트 곡인 'The End of the World'를 그해 연말인 12월에 발표하게 된다.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기록한 'The End of the World'는 1963년 3월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초대형 히트 곡이 되면서 스키터 데이비스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팝팬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The End of the World'는 팝과 컨트리 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여 성공한 작품으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컨트리 음악의 매력과 팝 음악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곡이다. 한편 스키터 데이비스는 테네시(Tennessee)주 내슈빌(Nashville)의 요양원에서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2004년 9월 19일에 사망하였다.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대한민국 해병대 장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스키터 데이비스 (Skeeter Davis) : 1931년 12월 30일 미국 켄터키주 출생, 2004년 9월 19일 사망

갈래 : 컨트리(Country),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팝(Pop)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ronstadt-linda.com/skeeterdavis/
The End Of The World 감상하기 : http://youtu.be/Qgcy-V6YIuI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Terry Jacks - Seasons In The Sun

 

Terry Jacks - Seasons In The Sun

캐나다의 가수 겸 작곡가 '테리 잭스'는 매니토바(Manitoba)주 위니펙(Winnipeg)에서 태어나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 밴쿠버(Vancouver)에서 성장하였으며 어릴때 부터 음악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테리 잭스가 십대가 되었을 무렵에는 스스로 곡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부터 가수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밴쿠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밴드인 '체스맨(The Chessmen)'에 보컬 겸 기타 주자로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밴쿠버 지역의 클럽들을 무대로 활동했던 체스맨은 캐나다의 CBC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음악 프로그램인 'Music Hop'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1964년 부터 1966년 사이에 네곡의 캐나다 싱글 차트 탑텐 진출 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체스맨이 'Music Hop'에 출연할 당시인 1965년에 테리 잭스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당시 열일곱살이던 여자 가수 '수잔 페스클레비츠(Susan Pesklevits)'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Evergreen'의 주인공으로 1967년에 테리 잭스와 결혼하여 '수잔 잭스(Susan Jacks)' 라는 이름으로 팝팬들에게 알려진 가수이다.

1966년에 체스맨에서 탈퇴한 테리 잭스는 'Music Hop' 출연을 계기로 친밀한 사이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한 수잔 페스클레비츠와 함께 듀오를 결성하여 클럽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다. 이들 듀오는 테리 잭스가 기타 반주를 담당했고 수잔 페스클레비츠가 보컬을 담당했었다. 고된 클럽 생활을 통해 사랑이 깊어진 두 사람은 1967년에 결혼하여 부부 듀오가 되었지만 듀오로 계속 활동하기에는 사운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에 두 사람은 멤버를 보강하기로 하고 '크레이그 맥코우(Craig McCaw, 기타)'와 '사트원트 싱(Satwant Singh, 드럼)'를 합류시켜 '파워라인(Powerline)'이라는 이름의 4인조 밴드로 재편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파워라인은 '윈킨 블린킨 앤 놉(Winkin' Blinkin' & Nob)'이라는 이름을 거쳐 최종적으로 '파피 패밀리(The Poppy Family)'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69년에 데뷔 음반 'Which Way You Goin' Billy?'를 발표하였고 1971년에 음반 'Poppy Seeds'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장을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파피 패밀리는 밴드의 주축인 수잔과 테리 부부가 1973년에 이혼한 후 서로 솔로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해산의 길을 걷게 된다. 수잔 잭스와 이혼 하기 바로 직전인 1973년에 테리 잭스는 아내인 수잔 잭스의 데뷔 음반 'I Thought Of You Again'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 'Seasons In The Sun'을 제작하여 '벨 음반사(Bell Records)'를 통해 1973년 12월에 음반의 타이틀 곡인 'Seasons In The Sun'을 싱글로 먼저 발표하였다.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가수 겸 작곡자인 '자크 브렐(Jacques Brel)'이 1961년에 'Le Moribond'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었던 곡을 영어로 번안한 곡인 'Seasons In The Su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후 1974년 3월 2일에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이후 3주간 1위 자리를 지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죽음을 앞둔 이가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내용의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Seasons In The Sun'은 테리 잭스 이전에 미국의 포크 트리오인 '킹스톤 트리오(The Kingston Trio)'와 영국의 비트 밴드인 '포춘스(The Fortunes)'가 먼저 싱글로 발표하였으나 테리 잭스의 곡 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한편 'Seasons In The Sun'은 1999년에 아일랜드의 팝 밴드인 '웨스트라이프(Westlife)'가 새롭게 편곡한 후 발표하여 다시 한번 주목 받기도 하였다.

테리 잭스 (Terry Jacks) : 1944년 3월 29일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 출생
 
갈래 :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Seasons In The Sun 감상하기 : http://youtu.be/iA6BqS9FlQ0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Fleetwood Mac - Dreams

 

Fleetwood Mac - Dreams

1977년에 발표한 음반 'Rumours'로 1천 9백만장이 넘는 사상 초유의 기록적인 음반 판매를 기록했던 영국 밴드 '플리트우드 맥'은 블루스 록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영국 블루스 록 밴드인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에서 시작되었다. 1966년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을 대신하여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 기타 주자로 가입했었던 '피터 그린(Peter Green)'은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이듬해인 1967년에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탈퇴할 당시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는 존 맥비와 믹 플리트우드가 피터 그린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피터 그린은 1967년의 어느 날 밴드 탈퇴를 결심하고 두 사람에게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의 결성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런던에서 1967년에 결성된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는 피터 그린의 제안에 따라 믹 플리트우드와 존 맥비의 이름을 따서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결성 이후 밴드의 활동 상황을 살펴 보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의 플리트우드 맥 멤버들은 밴드의 완성을 위해 나머지 멤버를 찾게 되는데 먼저 합류한 인물이 미국의 블루스 기타 주자인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광팬이었던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였으며 마지막으로 베이스 주자인 '밥 브러닝(Bob Brunning)'이 임시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밴드의 체제를 완성한 플리트우드 맥은 1967년 8월 13일에 '윈저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The Windsor Jazz and Blues Festival)'에 참가하여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된다.

음악 축제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한 플리트우드 맥은 영국의 신생 블루스 음악 레이블인 '블루 호라이즌(Blue Horizon)'과 어렵지 않게 음반 계약을 맺을수 있게 되었다. 1967년 11월,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간 다섯명의 플리트우드 맥은 1968년 2월 14일에 음반 'Fleetwood Mac'을 발표하면서 음반 데뷔를 하였다. 피터 그린이 주도하는 블루스 음악으로 채워진 플리트우드 맥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앨범 차트에 37주 동안 머무르며 최종 4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플리트우드 맥은 싱글 'Black Magic Woman'과 'Need Your Love So Bad'를 발표하여 히트 시킨 후 두번째 음반 'Mr. Wonderful'을 1968년 8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 부터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 1968년에 존 맥비와 결혼 후 크리스틴 맥비로 알려짐)'가 보조 연주자로 참여하여 건반 악기를 담당하게 된다. 두번째 음반 발표 후 플리트우드 맥은 리듬 파트 보강을 위해 당시 열여덟살이었던 기타 주자 '대니 커완(Danny Kirwan)'을 발탁하여 플리트우드 맥의 일원으로 합류시켰다.

플리트우드 맥은 대니 커완과 함께 1969년 1월에 싱글 'Albatross'를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싱글 'Albatross'를 히트 시킨 플리트우드 맥은 1969년 9월에 세번째 음반 'Then Play On'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을 끝으로 피터 그린이 플리트우드 맥에서 완전히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떠난 플리트우드 맥은 이때 부터 블루스 지향의 음악에서 소프트 록 쪽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첫번째 변화가 제레미 스펜서와 대니 커완의 기타를 주축으로 하여 1970년 9월에 발표한 네번째 음반 'Kiln House'였다.

하지만 이 음반 발표 후 제레미 스펜서 마저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에서 탈퇴해 버리자 플리트우드 맥은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던 크리스틴 맥비와 '밥 웰치(Bob Welch)'를 새로운 멤버로 받아 들이면서 팝 취향이 강한 음악들을 선보이게 된다. 밥 웰치는 1971년 음반 'Future Games' 부터 1974년 음반 'Heroes Are Hard to Find'까지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을 탈퇴하였다. 이에 플리트우드 맥은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을 새로운 멤버로 맞아 들이면서 밴드 역사상 최강의 진용으로 밴드를 정비하였다.

플리트우드 맥은 새로운 멤버들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열번째 음반 'Fleetwood Mac'을 1975년 7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Over My Head', 'Rhiannon', 'Say You Love Me'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0위 권에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고 음반도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3위에 그쳤지만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때 까지 밴드가 발표한 음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음반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밴드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플리트우드 맥이었지만 밴드 내부적으로는 이 시기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바로 존 맥비와 크리스틴 맥비 부부가 파경을 앞두고 있었고 연인 사이였던 스티브 닉스와 린지 버킹햄이 결별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76년에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플리트우드 맥에 조성되었으나 플리트우드 맥은 새 음반 'Rumours'의 녹음을 위해 마이애미와 할리우드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조성된 멤버들간의 긴장감이 오히려 음반 녹음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플리트우드 맥이 1977년 2월에 발표한 새음반 'Rumours'는 'Dreams', 'Don't Stop', 'You Make Loving Fun', 'Go Your Own Way'까지 네곡의 싱글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에서 동시에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 했던 히트 곡 'Dreams(영국 24위)'와 3위를 차지했던 곡 'Don't Stop(영국 32위)', 그리고 9위 까지 진출했던 곡 'You Make Loving Fun(영국 45위)'과 10위를 기록했던 'Go Your Own Way(영국 38위)'를 앞세운 음반 'Rumours'는 음반 판매에 있어서도 1천 9백만장을 훌쩍 넘기며 록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음반 'Rumours'는 우리나라에서도 앞서 언급 했던 히트 곡들 외에 'Songbird', 'The Chain'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이 되었으며 음반은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명반으로 사랑받고 있다.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 :
스티브 닉스 (Stevie Nicks, 보컬) : 1948년 5월 26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린지 버킹햄 (Lindsey Buckingham, 기타) : 1949년 10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크리스틴 맥비 (Christine McVie, 키보드) : 1943년 7월 12일 영국 컴브리아(Cumbria) 출생
존 맥비 (John McVie, 베이스) : 1945년 11월 26일 영국 런던 출생
믹 플리트우드 (Mick Fleetwood, 드럼) : 1947년 6월 24일 영국 콘월(Cornwall)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leetwoodmac.com/
Dreams 감상하기 : http://youtu.be/bDthfYFsWH0
Don't Stop 감상하기 : http://youtu.be/a8arvEzHsA8

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Louise Tucker - Midnight Blue

 

Louise Tucker - Midnight Blue

영국의 메조소프라노 가수 '루이스 터커'는 1982년에 발표한 음반 'Midnight Blue'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를 히트시키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 뚜렷한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면서 팝계에서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오페라 가수이다. 런던의 '길드홀 스쿨 오브 뮤직 앤드 드라마(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에서 오페라 가수 교육을 받은 루이스 터커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로버트 카슨(Robert Carson)' 감독이 연출을 담당한 이탈리아 오페라 '라 칼리스토(La Calisto)'로 데뷔하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 이후 루이스 터커는 신스 팝과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이든 프로젝트(Eden Project)'를 구상하고 있던 음반 제작자 '팀 스미트(Tim Smit)'와 '찰리 스카벡(Charlie Skarbek)'의 권유로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팝 음악의 세계로 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이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루이스 터커는 팀 스미트의 지도 아래 '베토벤(Beethoven)'의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알려져 있는 제8번 '비창(Sonata Pathetique)'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데모 곡 'Midnight Blue'를 시험삼아 녹음하게 된다.

루이스 터커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에 만족한 팀 스미트는 자신의 친구이자 음반 제작자인 찰리 스카벡에게 루이스 터커의 음반 제작을 맡기게 된다. 찰리 스카벡은 루이스 터커의 음반 제작을 총지휘하는 한편으로 음반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에 직접 참가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2년 11월, 이든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루이스 터커의 데뷔 음반이 세상에 공개되고 싱글 'Midnight Blue'가 발매되자 싱글 음반은 예상 외의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반응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네덜란드(13위)와 프랑스(3위)의 싱글 차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며 히트하기 시작한 싱글 'Midnight Blue'는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상위권에 진출하였고 캐나다(7위)와 미국(46위)을 거쳐 본국인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1983년 4월에 59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다. 싱글 'Midnight Blue'는 이후 스웨덴(6위), 덴마크(1위), 독일(51위), 호주(27위)를 거쳐 아시아권으로 옮겨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히트 곡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27위에 그쳤지만 음반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의 히트로 전세계적으로 5백만장이 넘게 팔려 나간 루이스 터커의 데뷔 음반 'Midnight Blue'에는 히트 곡인 'Midnight Blue'외에도 영국의 라이트뮤직(Light Music) 작곡가인 '로널드 빈지(Ronald Binge)'의 작품인 'Elizabethan Serenad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인 'Only For You'가 우리나라 팝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루이스 터커는 데뷔 음반 발표 이후 텔레비전 출연 등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1983년에 두번째 음반 'After The Storm'을 발표하였으며 이 음반에서 'Dancing by Moonlight'을 히트시킨후 오페라 무대로 복귀하였다. 오페라로 돌아간 루이스 터커는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시(Pergolesi: 1710-1736)의 작품인 '스타바트마테르(Stabat Mater, 성모애상)'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Verdi)의 레퀴엠(Requiem), 그리고 현대 음악 작곡가인'존 루터(John Rutter)'의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오페라 경력을 쌓아 나갔으며 현재는 젊은 성악가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루이스 터커 (Louise Tucker) : 1956년 영국 브리스틀 출생

갈래 : 신스 팝(Synthpop), 클래시컬(Classical),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louisetucker.co.uk/
Midnight Blue 감상하기 : http://youtu.be/9Szjt3-2F5U
Only For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Rthj1nqfzgI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아르헨티나 산타페(Santa Fe)주 베나도뚜에르또(Venado Tuerto)에서 영국군 대령으로 복무하고 있던 아버지와 영국 왕 '헨리 3세(1216-1272 재위)'의 대법관인 '휴버트 디 버그(Hubert de Burgh)'의 후손으로 영국 외교관의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가수 '크리스 디 버그(본명: Christopher John Davison)'는 우리나라 팝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곡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이 노래는 해마다 4월이면 꾸준히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팝팬들의 애청곡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크리스 디 버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남동부 렌스터(Leinster)주 웩스퍼드(Wexford)에 있는 12세기에 지어진 휴버트 디 버그의 '바르지 성(Bargy Castle)'을 구입하여 호텔로 개조하고 정착하게 된다. 어릴때 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크리스 디 버그는 호텔의 공연장 무대에서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 보고는 했는데 이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된다. 결국 크리스 디 버그는 틈날때 마다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경력을 쌓아 나가게 된다.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의 영문과에 진학한 크리스 디 버그는 학업과 병행하여 틈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크리스 디 버그는 가족 소유의 호텔로 돌아와 호텔내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랐으며 이때 부터 어머니의 처녀 때 성인 '디 버그(De Burgh)'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 호텔내 공연장에 모습을 보이던 크리스 디 버그는 1972년 10월의 어느 날 저녁에 단골 손님을 위한 파티에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 공연을 지켜보던 '에그 음반사(Egg Records)' 관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생애 처음으로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에그에서 발표한 소량의 싱글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져 갔으며 음반 계약 역시 흐지부지 파기되고 말았다.

에그 음반사와의 계약이 실패로 마무리 된 후 때를 기다리던 크리스 디 버그는 마침내 1974년에 대형 음반사인 'A&M 음반사(A&M Records)'와 정식으로 음반 계약을 하고 음반사의 후원으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수퍼트램프(Supertramp)'의 'Crime of the Century' 순회 공연에 보조 출연자로 참가하여 팬들과 대형 무대에서 만날 기회를 잡게 된다. 수퍼트램프와의 공연을 마감한 후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2월에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를 발표하였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음악에 영향받아 제작된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은 영국 차트 진입을 기대하며 발표한 음반이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팬들에게 외면 받았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싱글 차트 진입에 실패하며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의외의 나라에서 히트 곡을 만들게 되는데 바로 바다 건너 브라질에서 였다.

크리스 디 버그의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Turning Round'가 17주 동안 브라질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머무르는 히트를 하였던 것이다. 이로인해 크리스 디 버그는 브라질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데뷔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후속 음반 작업을 서둘러 마친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두번째 음반 'Spanish Train and Other Stories'을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발매한 크리스마스 싱글 'A Spaceman Came Travelling'이 마침내 기다리던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였고 40위권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예수님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만든 곡인 'A Spaceman Came Travelling'은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과의 조우, 그리고 외계인이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음악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1977년에 세번째 음반 'At the End of a Perfect Day'를 발표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이때 부터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1979년 크리스 디 버그는 네번째 음반 'Crusader'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와 여러 차례 음반 작업을 했던 '앤드루 파웰(Andrew Powell)'이 제작을 담당하여 오케스트라 편곡과 합창단을 음반에 포함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창조해내었다.

네번째 음반의 수록 곡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곡인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외에도 앤드루 파웰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 주고 있는 음반의 타이틀 곡 'Crusader'를 비롯하여 역시 앤드루 파웰의 피아노가 삽입된 곡들인 'Just In Time', 'Old-Fashioned People', 'You And Me'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 디 버그 (Chris De Burgh) : 1948년 10월 15일 아르헨티나 베나도 뚜에르또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deb.com/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감상하기 : http://youtu.be/FRp_KGtdQpU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Lou Reed - Perfect Day

 

Lou Reed - Perfect Day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가수 겸 작곡가이자 사진 작가인 '루 리드(본명: Lewis Allan Reed)'는 무엇을 알고 있던 그 이상의 위치를 록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탁월한 음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 리드는 십대 시절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자신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록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되고자 했던 루 리드는 고교 시절에 몇몇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쉐이즈(The Shades)'라는 이름의 '두왑(doo wop: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의 코러스 중 하나)' 밴드에서 활동할 때는 싱글 음반 녹음에 참여하여 생애 첫 음반 녹음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루 리드의 이런 밴드 활동을 못마땅해 했던 루 리드의 부모는 아들의 동성애 성향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기 충격 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을 받게 만들었는데 이때의 충격적인 경험은 후일 루 리드로 하여금 'Kill Your Sons(1974년)'라는 노래를 만들게 하였다.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 입학한 루 리드는 신문학(Journalism)과 영화학(Film Director)을 전공하면서 틈나는 대로 음악 활동을 계속 하게 된다. 이미 같은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기타 연주자로 대접받고 있던 루 리드는 지역의 심야 라디오 방송에 고정 출연하여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63년에 뉴욕의 '피크위크 레코드(Pickwick Records)'의 작곡가로 취업하게 된 루 리드는 대학을 졸업한 1964년에 싱글 'The Ostrich'를 만들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음반사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성이 강했던 이 싱글은 루 리드가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음악이었다. 이에 루 리드는 '프리미티브(The Primitives)' 라는 이름의 전위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프리미티브에는 전위 음악에 심취해 있던 웨일즈 출신의 음악인 '존 케일(John Cale, 비올라, 오르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미티브의 활동을 통해 서로의 음악적 취향이 비슷함을 발견한 루 리드와 존 케일은 뉴욕의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함께 거주하며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게 된다. 루 리드는 대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기타)'과 '모린 터커(Maureen Tucker, 드럼)'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밴드에 합류시켜 4인조의 새로운 밴드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그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이다.

밴드의 이름인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존 케일의 친구인 비디오 아티스트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멤버들에게 보여준 성인 잡지에서 그 단어를 발견하고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여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루 리드를 비롯하여 멤버 모두가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많이 모여들던 뉴욕의 나이트 클럽 '맥스 캔사스 시티(Max's Kansas City)'에 고정 출연하게 되면서 주목 받게 되는데 당시 클럽을 자주 찾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연주에 감탄하여 그들의 매니저를 자칭하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루 리드에게는 스승과 같았던 앤디 워홀의 도움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되는데 앤디 워홀은 독일의 모델이자 배우였던 '니코(Nico)'를 밴드에 합류시켜 밴드의 일원으로 음반을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음반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1967년에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노란 바나나를 표지에 그려 넣고 세상에 공개 되었다.

루 리드는 데뷔 음반 발표 이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일원으로 'Sweet Jane'이 수록된 1970년 음반 'Loaded'까지 네장의 정규 음반에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1970년 8월에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탈퇴하였다. 'RCA 음반사(RCA Records)'와 계약한 루 리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스티브 하우(Steve Howe, 기타)'와 '릭 웨이크먼(Rick Wakeman, 피아노, 키보드)'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을 초빙하여 1971년 12월 부터 1972년 1월 까지 솔로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루 리드는 많은 기대를 안고 1972년 6월에 자신의 데뷔 음반을 공개하였지만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9위에 머무르며 부진을 거듭하다 차트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실패로 끝난 데뷔 음반을 만회하기 위해 루 리드는 1972년 8월에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믹 론슨(Mick Ronson)'의 지휘 아래 새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1972년 12월 8일에 발표된 루 리드의 두번째 음반 'Transformer'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6위 까지 진출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0위 까지 진출했던 히트 싱글 'Walk on the Wild Side'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앨범 차트에서 29위 까지 진출하며 루 리드에게 성공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 음반은 미국에서의 성공에 이어 이듬해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도 13위 까지 진출하였다.

강력한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글램 록을 들려 주는 루 리드의 초기 명반 'Transformer'에는 히트 곡 'Walk on the Wild Side' 외에도 완벽했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한 피아노 연주를 배경삼아 읊조리듯 노래하는 명곡 'Perfect Da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1996년에 개봉되었던 '이완 멕그리거(Ewan McGregor)' 주연의 영국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루 리드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루 리드 (Lou Reed) : 1942년 3월 2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앨범 록(Album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loureed.com/
Perfect Day 감상하기 : http://youtu.be/2uK9L2DaWa8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1977년 12월에 회교도로 개종하면서 '유서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는 유서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다중 악기 연주자인 '캣 스티븐스(본명: Steven Demetre Georgiou)'는 런던의 샤프츠베리 애버뉴(Shaftesbury Avenue)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그리스 키프로스 섬 출신의 아버지와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새째 아들로 태어났다. 캣 스티븐스가 여덟살때 그의 부모는 이혼을 하였지만 식당은 부부 공동 명의로 계속 운영되어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고 성장하였다.

그리스 정교도였던 아버지와 스웨덴의 루터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캣 스티븐스는 카톨릭 학교인 세인트 조셉 로만 카톨릭 초등 학교(St. Joseph Roman Catholic Primary School)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즈음 부터 피아노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열다섯살 무렵인 1963년에는 영국의 팝계에 혜성 같이 등장하여 영국 팝계를 정복하기 시작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기타를 손에 들게 된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얻어 8파운드를 주고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기타로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들던 캣 스티븐스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거리 악사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자주 인근의 거리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때 부터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지역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만화 그리기에도 흥미를 느껴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Hammersmith School of Art)'에서 1년 과정으로 만화 그리기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캣 스티븐스는 자신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에서 직접 표지를 그리게 된다.

또한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에 다니던 1965년에 캣 스티븐스는 '스티브 아담스(Steve Adams)'라는 예명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음악 출판사와 계약하고 자신이 만든 노래인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를 출판사를 통해 공개하기도 하였다. 악보 출판 이후 캣 스티븐스는 밴드의 일원으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 등의 무대를 통해 계속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나 이내 자신과 밴드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티브 아담스라는 이름 대신 캣 스티븐스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캣 스티븐스의 눈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하는 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열여덟살이 되던 1966년에 캣 스티븐스는 매니저이자 음반 제작자인 '마이크 허스트(Mike Hurst)'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레이블인 '데람 음반사(Deram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한 캣 스티븐스는 1966년에 데람을 통해서 데뷔 싱글 'I Love My Dog'을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에서 28위에 올려 놓은 캣 스티븐스는 1966년 12월에 두번째 싱글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시키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1967년 3월에는 두곡의 히트 곡이 포함된 데뷔 음반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였으며 세번째 싱글로 'I'm Gonna Get Me a Gun'을 발표하여 싱글 차트에서 6위 까지 진출 시켰다. 캣 스티븐스는 성공적인 데뷔 음반 발표 이후 1967년 12월에 두번째 음반 'New Masters'를 발표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2년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한 캣 스티븐스는 1970년 7월에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을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네번째 음반인 'Tea for the Tillerman'은 1970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곡 'Wild Worl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데뷔 싱글인 'I Love My Dog(118위)'과 'Matthew and Son(115위)'에 이어 세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곡이 20위권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싱글의 성공으로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였고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는 20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71년 10월 캣 스티븐스는 다섯번째 음반인 'Teaser and the Firecat'를 발표하여 세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히트 곡 'Moonshadow(30위)', 'Peace Train(7위)', 'Morning Has Broken(6위)'을 탄생시켰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한 이 음반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캣 스티븐스는 1972년 9월에 발표한 후속 음반 'Catch Bull at Four'로 마침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Morning Has Broken'은 19세기에 만들어진 찬송가로 193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던 곡으로 캣 스티븐스에 의해 아름다운 포크 음악으로 재탄생하여 팝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캣 스티븐스 (Cat Stevens) : 1948년 7월 21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소프트 록(Soft Rock), 포크 록(Folk-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yusufislam.org.uk/
Morning Has Broken 감상하기 : http://youtu.be/U5sSEkZ86ts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Linda Ronstadt - It's So Easy

 

Linda Ronstadt - It's So Easy

미국 애리조나 주 남쪽의 휴양 도시인 투손(Tucson)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린다 론스태드(본명: Linda Maria Ronstadt)'는 컨트리 팝을 비롯하여 포크,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오페레타 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발표하며 활동하였고 1970년대 중반 부터 1980년 초 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다. 그녀가 1970년에 발표했던 곡인 'Long, Long Time'과 1977년 발표 곡인 'It's So Easy'는 팝팬들의 오랜 애청곡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9년에 발표했던 소울 가수 '아론 네빌(Aaron Neville)'과의 듀엣 곡 'Don't Know Much'는 새로운 팬들을 만들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린다 론스태드는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던 어머니와 기계 부품 사업을 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명의 남자 형제와 여동생을 둔 린다 론스태드는 10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목장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들 가족은 1953년에 발행된 미국의 여성지인 '패밀리 서클(Family Circle)'에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부족한 것이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린다 론스태드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기타 주자인 '밥 키멀(Bob Kimmel)'을 만나면서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생 항로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린다 론스태드가 대학에 다니고 있던 1960년대 중반의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포크 록과 컨트리 록의 부흥 운동으로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밥 키멀과 만난 린다 론스태드는 그와 듀오로 포크 음악들을 노래하며 새로운 흐름에 일조하게 된다. 밥 키멀과의 활동이 만족스러웠던 린다 론스태드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와 함께 로스 앤젤레스로 옮겨 가서 새로운 음악 동지인 '케니 에드워즈(Kenny Edwards)'를 만나 포크 트리오인 '스톤 포니스(The Stone Poneys)'를 1965년에 결성하였다.

린다 론스태드는 스톤 포니스의 일원으로 1967년 1월 30일에 발표한 데뷔 음반 'The Stone Poneys'를 시작으로 6월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Evergreen, Volume 2'와 1968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이자 트리오의 마지막 음반인 'Linda Ronstadt, Stone Poneys and Friends, Vol. III' 까지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트리오에서 탈퇴하게 된다. 스톤 포니스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 'Hand Sown ... Home Grown'을 1969년 3월에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한 린다 론스태드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 곡인'Long, Long Time'이 수록되어 있는 두번째 음반 'Silk Purse'를 1970년 3월에 발표하였다.

컨트리 음악을 시도한 두번째 음반 'Silk Purse'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3위를 기록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시기에 '도어스(The Doors)'나 닐 영(Neil Young), 그리고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같은 유명 가수들과 함께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 포크 록을 시도한 음반 'Linda Ronstadt(163위)'를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1973년에 네번째 음반 'Don't Cry Now(45위)'를 발표하여 그룹 '이글스(The Eagles)'의 '돈 헨리(Don Henley)'와 '글렌 프레이(Glenn Frey)'가 만든 곡인 'Desperado'를 시작으로 'Love Has No Pride'와 'Silver Threads and Golden Needles'를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시키면서 히트를 시켰다.

1974년 11월에 린다 론스태드는 자신의 출세작인 다섯번째 음반 'Heart Like a Wheel'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You're Not Good'이 발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형 히트를 하였고 이어진 두번째 싱글 'When Will I Be Loved'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였다. 세번째 싱글 'It Doesn't Matter Anymor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7위 그쳤으나 두 곡의 대형 히트 곡으로 린다 론스태드의 음반 'Heart Like a Wheel'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51주간이나 앨범 차트에 머무르게 된다.

이 음반으로 대형 인기 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후 여자 가수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5년 9월에 발표한 음반 'Prisoner in Disguise'는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였고 1976년 8월에 발표한 음반 'Hasten Down the Wind'는 앨범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히트 곡 'It's So Easy'가 수록된 음반 'Simple Dreams'를 1977년 9월에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음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또 다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1978년 9월에 발표한 음반 'Living in the USA'에서는 'Back in the U.S.A.'와 'Ooh Baby Baby'를 히트시키면서 2연속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즈음 부터 린다 론스태드에게는 '록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of Rock)'나 '록의 여왕(Queen of Rock)'이라는 호칭이 따라 다니게 된다. 그래미 상을 10회나 수상하며 음악성을 인정 받았던 린다 론스태드는 1976년의 그래미 상에서 'Heart Like a Wheel' 음반에 수록되었던 곡인 'I Can't Help It (If I'm Still In Love With You)'로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Best Country Vocal Performance Female)'을 수상하면서 생애 첫 그래미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었다.

린다 론스태드 (Linda Ronstadt) : 1946년 7월 15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ronstadt-linda.com/
It's So Easy 감상하기 : http://youtu.be/_AtnfDo4PE8
Long, Long Time 감상하기 : http://youtu.be/gG4lsjSY_vk
Don't Know Much 감상하기 : http://youtu.be/soO0CMnU9Bo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Sade - Smooth Operator

 

Sade - Smooth Operator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Pride)'에서 출발한 소피스티 팝 밴드 '샤데이'는 밴드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샤데이 아두(본명 : Helen Folasade Adu)'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 밴드이다. 어린 시절 소울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자란 샤데이 아두는 10대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밤마다 실컷 들을 수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샤데이 아두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열열한 환호를 보내는 바를 찾은 관객들의 반응에 이끌려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에서 노래 부를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경제학 교수로 흑인이었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영국 출신의 간호사였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샤데이 아두는 나이지리아의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바단(Ibadan)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샤데이 아두가 네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샤데이 아두는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와 에섹스(Essex)주의 해변 마을인 홀랜드온시(Holland-on-Sea)에서 성장하게 된다.

평화로운 해변 마을에서 성장한 샤데이 아두는 열여덟살이 되자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입학하게 된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에 막 입학한 샤데이 아두는 뜻하지 않게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일의 시작은 그녀의 오랜 친구 두명이 밴드를 결성하여 그녀에게 보컬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부터 였다. 하지만 당시 친구들의 요청을 수락하여 밴드의 보컬을 맡게 된 샤데이 아두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대 공포증을 겪기도 했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단련시켜 나갔던 샤데이 아두는 마침내 무대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대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샤데이 아두는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의 백보컬로 가입하여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샤데이 아두를 포함하여 8인조였던 프라이드는 장기간의 영국 순회 공연 활동을 소화하면서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재즈적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샤데이 아두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드와 샤데이 아두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샤데이 아두가 직접 만든 곡인 'Smooth Operator'였다. 'Smooth Operator'의 히트는 음반사의 관심을 끌게 되어 마침내 1983년에 샤데이 아두는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솔로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솔로 음반 계약에는 샤데이 아두가 제시한 특이한 옵션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그것은 프라이드의 멤버들인 스튜어드 매튜맨, 폴 스펜서 덴만, 앤드류 헤일과 함께 계약한다는 조항이었다.

샤데이 아두와 프라이드의 세 멤버는 새로운 밴드의 이름으로 샤데이 아두의 이름을 따서 샤데이로 짓고 데뷔 음반 녹음 작업에 들어가 1984년 2월 25일 첫번째 싱글인 'Your Love Is King'을 발표하였고 7월 28일에는 데뷔 음반 'Diamond Life'를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올려 놓은 샤데이는 두번째 싱글로 'When Am I Going to Make a Living'을 발매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였다.

차트 진입에 실패한 세번째 싱글 'Hang on to Your Love'에 이어 발표한 네번째 싱글이자 음반의 마지막 싱글인 'Smooth Operator'를 1984년 9월 15일에 발표한 샤데이는 이 곡으로 마침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에 그친 이 곡은 1985년 3월에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5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고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20위권에 진출하는 히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즈적인 분위기와 소울의 요소가 녹아 들어간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히트 곡 'Smooth Operator'의 성공으로 앨범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들였다.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 까지 진출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샤데이의 멤버들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누군가 샤데이의 음악을 '커피 향이 나는 음악'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샤데이의 데뷔 음반에서는 오늘도 진한 커피 향이 스며나오며 지난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샤데이 (Sade) :
샤데이 아두 (Sade Adu) : 보컬
스튜어드 매튜맨 (Stuart Matthewman) : 기타, 색소폰
폴 스펜서 덴만 (Paul Spencer Denman) : 베이스
앤드류 헤일 (Andrew Hale) : 키보드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피스티 팝(Sophisti-Pop), 소울(Sou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ade.com/kr/home/
Smooth Operator 감상하기 : http://youtu.be/sOI8ae3Lub8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본명이 '베리 알란 핀커스(Barry Alan Pincus)'인 미국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반 제작자로 유명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의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다 팝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가수이다. 유대인인 배리 매닐로우는 아버지가 두살때 가족을 버리고 떠나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인 '에드너 매닐로우(Edna Manilow)'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도 어머니의 처녀적 성인 매닐로우를 물려 받아 사용하게 된다.

일곱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시 브루클린(Brooklyn)에 있었던 '이스턴 디스트릭트 고등학교(Eastern District High School, 1995년 폐교)'를 졸업한 1961년 부터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배리 메닐로우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CBS 방송국(Columbia Broadcasting System)'에서 아르바이트를 자리를 구해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해야 했다.

그러던 1964년에 배리 매닐로우는 방송국에서 뮤지컬 감독 '브로 헤로드(Bro Herrod)'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새로운 음악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평소 범상치 않았던 배리 매닐로우의 작곡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브로 헤로드는 자신이 무대에 올릴 예정인 뮤지컬 'The Drunkard'에 사용될 음악들을 그동안 늘 염두에 두고 있던 배리 매닐로우에게 다듬어 줄 것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는 브로 헤로드의 부탁을 받아들여 뮤지컬에 사용될 모든 곡을 새롭게 만들어서 건네주게 된다.

이렇게해서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브로드웨이 바깥에 있는 전문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The Drunkard'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며 8년간 장기 공연되었다. 이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음악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뮤지컬 작업으로 자신감을 얻은 배리 매닐로우는 본격적으로 팝 음악에 뛰어들어 피아노 연주자와 음반 제작자, 편곡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0년 부터는 광고 음악에도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당시 막 데뷔를 준비중이던 신인 가수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를 만나 그녀의 1972년 데뷔 음반 'The Divine Miss M'과 1973년에 발표했던 두번째 음반 'Bette Midler'에서 피아노 연주와 프로듀서로 음반 작업에 참가하여 베트 미들러를 인기 가수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한편 베트 미들러의 'The Divine Miss M'의 순회 공연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던 배리 매닐로우는 그후에도 그녀와 함께 공연 활동을 했으며 둘의 이러한 관계는 1975년 까지 이어지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는 베트 미들러와의 음악 작업과는 별개로 자신의 음반 데뷔를 준비하여 1973년 7월 7일에 데뷔 음반 'Barry Manilow I'을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배리 매닐로우는 자신의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 28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74년 10월에 두번째 음반 'Barry Manilow II'를 발표하였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9위에 올랐던 두번째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배리 매닐로우에게 성공 시대를 열어주었던 곡 'Man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미국 가수인 '스코트 잉글리시(Scott English)'가 1971년에 발표하여 히트 시켰던 곡 'Brandy'를 편곡하여 제목을 살짝 바꾸어 수록한 곡이었다.

싱글 'Mandy'의 성공 이후 배리 매닐로우는 두번째 싱글인 'It's a Miracle'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에 올려 놓으며 인기 행진을 이어 갔다. 1975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Tryin' to Get the Feeling'에서는 'Mandy'에 이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인 'I Write the Songs'을 배출하였으며 두번째 싱글인 'Tryin' to Get the Feeling Ag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진출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 음반 'This One's for You'에서도 두 곡의 히트 싱글 'Looks Like We Made It(1위)'과 'Weekend in New England(10위)'를 배출했던 배리 매닐로우는 이 음반에 수록된 'Daybreak'의 라이브 버전을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에 올려 놓았다. 배리 매닐로우는 1978년에 음반 'Even Now'를 발표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Can't Smile Without You(3위)'를 시작으로 'Copacabana(8위)'와 'Somewhere in the Night(9위)'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3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게 된다.

1979년에 발표한 음반 'One Voice'에서는 'I Don't Want to Walk Without You(36위)'와 'When I Wanted You(20위)'를 히트시켰으며 1980년 음반 'Barry'에서는 'I Made It Through the Rain(10위)'과 'Lonely Together(45위)'를 히트시켰다. 이어진 1981년 음반 'If I Should Love Again'을 통해 'The Old Songs(15위)', 'Let's Hang On(32위)', 'Somewhere Down the Road(21위)'등 세곡을 히트시킨 배리 매닐로우는 1982년에 음반 'Here Comes the Night'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에서는 'Memory(39위)'만이 차트에 진입하면서 부진에 빠져들게 된다.

비록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Here Comes the Night' 음반에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경쾌한 리듬의 곡 'Some Kind Of Friend'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그 경쾌함으로 인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배리 매닐로우가 2005년에 발표했었던 음반 'The Essential Barry Manilow'에는 앞서 언급한 곡들 외에도 배리 매닐로우가 차트에 진출시켰던 모든 곡들이 두장의 시디에 포함되어 있어 그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더듬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른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 (Barry Manilow) : 1946년 6월 17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 Rock),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anilow.com/
Some Kind Of Friend 감상하기 : http://youtu.be/3c-35YPi6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