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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1977년 12월에 회교도로 개종하면서 '유서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는 유서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다중 악기 연주자인 '캣 스티븐스(본명: Steven Demetre Georgiou)'는 런던의 샤프츠베리 애버뉴(Shaftesbury Avenue)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그리스 키프로스 섬 출신의 아버지와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새째 아들로 태어났다. 캣 스티븐스가 여덟살때 그의 부모는 이혼을 하였지만 식당은 부부 공동 명의로 계속 운영되어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고 성장하였다.

그리스 정교도였던 아버지와 스웨덴의 루터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캣 스티븐스는 카톨릭 학교인 세인트 조셉 로만 카톨릭 초등 학교(St. Joseph Roman Catholic Primary School)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즈음 부터 피아노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열다섯살 무렵인 1963년에는 영국의 팝계에 혜성 같이 등장하여 영국 팝계를 정복하기 시작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기타를 손에 들게 된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얻어 8파운드를 주고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기타로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들던 캣 스티븐스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거리 악사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자주 인근의 거리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때 부터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지역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만화 그리기에도 흥미를 느껴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Hammersmith School of Art)'에서 1년 과정으로 만화 그리기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캣 스티븐스는 자신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에서 직접 표지를 그리게 된다.

또한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에 다니던 1965년에 캣 스티븐스는 '스티브 아담스(Steve Adams)'라는 예명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음악 출판사와 계약하고 자신이 만든 노래인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를 출판사를 통해 공개하기도 하였다. 악보 출판 이후 캣 스티븐스는 밴드의 일원으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 등의 무대를 통해 계속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나 이내 자신과 밴드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티브 아담스라는 이름 대신 캣 스티븐스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캣 스티븐스의 눈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하는 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열여덟살이 되던 1966년에 캣 스티븐스는 매니저이자 음반 제작자인 '마이크 허스트(Mike Hurst)'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레이블인 '데람 음반사(Deram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한 캣 스티븐스는 1966년에 데람을 통해서 데뷔 싱글 'I Love My Dog'을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에서 28위에 올려 놓은 캣 스티븐스는 1966년 12월에 두번째 싱글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시키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1967년 3월에는 두곡의 히트 곡이 포함된 데뷔 음반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였으며 세번째 싱글로 'I'm Gonna Get Me a Gun'을 발표하여 싱글 차트에서 6위 까지 진출 시켰다. 캣 스티븐스는 성공적인 데뷔 음반 발표 이후 1967년 12월에 두번째 음반 'New Masters'를 발표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2년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한 캣 스티븐스는 1970년 7월에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을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네번째 음반인 'Tea for the Tillerman'은 1970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곡 'Wild Worl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데뷔 싱글인 'I Love My Dog(118위)'과 'Matthew and Son(115위)'에 이어 세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곡이 20위권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싱글의 성공으로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였고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는 20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71년 10월 캣 스티븐스는 다섯번째 음반인 'Teaser and the Firecat'를 발표하여 세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히트 곡 'Moonshadow(30위)', 'Peace Train(7위)', 'Morning Has Broken(6위)'을 탄생시켰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한 이 음반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캣 스티븐스는 1972년 9월에 발표한 후속 음반 'Catch Bull at Four'로 마침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Morning Has Broken'은 19세기에 만들어진 찬송가로 193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던 곡으로 캣 스티븐스에 의해 아름다운 포크 음악으로 재탄생하여 팝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캣 스티븐스 (Cat Stevens) : 1948년 7월 21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소프트 록(Soft Rock), 포크 록(Folk-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yusufislam.org.uk/
Morning Has Broken 감상하기 : http://youtu.be/U5sSEkZ86ts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김민기 - 아침 이슬

 

김민기 - 아침 이슬

1971년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김민기는 한장의 포크 음반을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김민기는 자신의 음반 한장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짐작이나 했을까? 김민기의 음반은 발표되고 나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따라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시위 현장에서 아침 이슬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 '우리 가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음반'의 위치로까지 김민기의 음반을 끌어 올리게 된다.

김민기는 1951년 3월 31일에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시에서 의사였던 아버지와 임산부와 신생아를 돕는 조산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김민기가 태어나기 이전에 북한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한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김민기는 중학교에 입학한 1963년 부터 미술과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 당시에 김민기는 우쿨렐레(Ukulele: 기타와 비슷한 현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방과후에는 미술실을 차지하고 앉아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었다고 한다.

1966년에 경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김민기는 미술과 음악을 늘 가까이 했으며 고교 시절에 독학으로 기타 연주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1969년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 회화과에 입학한 김민기는 입학 동기인 김영세와 도비두(도깨비 두마리라는 뜻)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학 3학년이던 1971년에 김민기는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유일한 음반으로 기록될 데뷔 음반을 발표하고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통상 1집으로 표현하는 김민기의 데뷔 음반에는 '아하 누가 그렇게...', '친구', '아침 이슬', '그날'등의 수려한 포크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서 아침 이슬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대학가의 히트 곡이 되었다. 따라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가사로 만들어진 이 곡은 곧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대학생들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으며 어느 사이엔가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이자 운동권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데뷔 음반 A면의 마지막에는 '꽃피우는 아이'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곡을 음반 발매 다음 해인 1972년에 서울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초대 가수로 참여한 김민기가 부르면서 그에게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이른바 반정부곡으로 분류된 꽃피우는 아이가 무대에서 공연되었다는 이유로 김민기는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의 음반들은 압수 폐기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김민기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음반의 압수 조치로 음반을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해적판 음반을 불법으로 구해서 들으면서 삽시간에 국민 가요 수준으로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김민기의 데뷔 음반에서 대표 곡 처럼 인식되었으며 발표 당시 건전 가요에 선정되기도 했던 아침 이슬이 1975년에 아무런 사유없이 금지 곡 처분을 받으며 가요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게 된다.

늘 당국의 감시 아래에 있던 김민기는 1978년에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만들었으며 1983년에는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의 극본과 연출을 통해 대중들 곁에서 음악으로 소통하게 된다. 1987년 6월 26일 마침내 오랜 기간 동안 금지 곡으로 묶여 있던 아침 이슬이 해금되고 그의 음반도 해금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김민기의 노래가 해금되자 현대 음반에서는 1987년 9월 5일에 김민기의 데뷔 음반을 초판과는 다른 보랏빛의 커버로 재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재발매 음반에는 A면의 마지막 곡에 꽃피우는 아이 대신에 건전 가요라는 이름으로 '아! 대한민국'을 수록하고 있으며 B면의 마지막 곡인 연주곡 '눈길'이 누락되어 있다.

십여년전 김민기는 라디오에 출연하여 이렇게 이야기 했다. "왜 아침 이슬이 데모 곡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민기 : 1951년 3월 31일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시 출생

갈래 : 포크(Folk), 포크 록(Folk-Rock)
관련 웹 사이트 : -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wTc2w_A2Gmo

2010년 10월 6일 수요일

Simon & Garfunkel - Bridge Over Troubled Water

 

Simon & Garfunkel -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90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이름이 올랐던 너무도 유명한 미국의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은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태어난 폴 사이먼과 뉴욕의 포레스트힐스(Forest Hills)에서 태어난 아서 가펑클에 의해서 결성된 포크 듀오 '톰 앤 제리(Tom & Jerry)'에서 출발하였다. 뉴욕 퀸스(Queens)구의 주거 지역인 포레스트힐스에서 살고 있던 폴 사이먼과 아서 가펑클은 1953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만났으며 친구로 함께 성장하게 된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에 학예회 수준의 연극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Alice in Wonderland)'에서 각각 흰 토끼역(폴 사이먼)과 체셔 고양이역(아서 가펑클)을 맡으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후 두사람은 나란히 같은 중,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둘은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5년 부터 듀오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포레스트힐스 고등학교(Forest Hills High School)에 진학한 폴 사이먼과 아서 가펑클은 1957년에 톰 앤 제리라는 이름으로 첫번째 싱글 음반 'Hey, Schoolgirl'을 발표하면서 장식 가수로 데뷔하였다.

톰 앤 제리의 데뷔 싱글은 가벼운 로큰롤 형식의 곡으로 십만장이 넘게 팔려 나가며 빌보드 차트에서 49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하게 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의 히트 후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면서 두 사람은 톰 앤 제리의 활동 대신에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전념하게 된다. 이로써 이들 듀오의 활동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폴 사이먼은 '퀸스 대학교(Queens College)'에 진학하였으며 아서 가펑클은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 진학하면서 톰 앤 제리는 자연히 해산하게 된다.

듀오는 해산했지만 각자의 관심사였던 음악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두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학업과 병행하여 틈틈히 곡을 만들던 폴 사이먼은 대학을 졸업한 1963년 부터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포크 음악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재개하는 한편으로 아서 가펑클에게 함께 포크 듀오로 활동하자고 제의하게 된다. 톰 앤 제리가 아닌 사이먼 앤 가펑클로 1964년에 다시 뭉친 두 사람은 곧 이어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그해 3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데뷔 음반은 1964년 10월 19일에 'Wednesday Morning, 3 A.M.'이라는 제목을 달고 공개되었다. 하지만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야심찬 데뷔 음반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채 실패로 마감되었고 폴 사이먼은 솔로 활동을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폴 사이먼이 1965년 8월에 런던에서 솔로 음반 'The Paul Simon Songbook'을 발표할 즈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데뷔 음반에 수록되었던 'The Sounds of Silence'의 새로운 편곡 버전이 라디오를 시작으로 주목을 끌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히트 곡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The Sounds of Silence'의 새로운 버전은 음반 제작자였던 '톰 윌슨(Tom Wilson)'이 '버즈(The Byrds)'와 '밥 딜런(Bob Dylan)'의 전기 기타 음향에서 영감을 얻어 다중 녹음(Overdubbing) 방식으로 전기 기타를 비롯한 악기들을 삽입하여 1965년 9월에 싱글로 발매하였던 곡으로 1966년 새해 첫날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전기 장치 악기들을 이용하여 새롭게 편곡된 'The Sounds of Silence'의 성공은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 포크 록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하여 주었으며 향후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The Sounds of Silence'의 히트를 계기로 영국에서 돌아온 폴 사이먼은 아서 가펑클과 재결합하여 사이먼 앤 가펑클로 새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포크 록으로 재무장한 사이먼 앤 가펑클은 1966년 1월 17일에 두번째 음반 'Sounds of Silence'를 발표하여 음반의 타이틀 트랙과 폴 사이먼의 솔로 음반 'The Paul Simon Songbook'에 첫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었었던 곡을 새롭게 편곡한 'I Am a Rock'을 히트시키며 성공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1위에 올랐던 음반 'Sounds of Silence' 다음에 발표된 음반은 히트 곡 'Scarborough Fair'가 수록된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으로 1966년 10월에 발표되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하게 된다. 1968년 4월에 'Mrs. Robinson'이 수록된 음반 'Bookends'로 마침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된 사이먼 앤 가펑클은 1970년 1월 16일에 위대한 명반으로 표현되는 음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발표하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다섯번째 음반이자 마지막 음반이기도 한 이 음반은 타이틀 곡을 포함하여 'El Condor Pasa (If I Could)', 'Cecilia', 'The Boxer'등을 히트시키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자리에 10주간이나 머무르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듀오의 역작이자 명반인 이 음반을 끝으로 그동안 조금씩 균열을 보이던 사이먼 앤 가펑클은 정식으로 해산하고 각자 솔로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해체 후에도 가끔씩 한자리에 모여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을 팬들에게 선사하고는 했는데 그중 백미가 바로 그 유명한 1981년의 자선 공연이었다. 1981년 9월 19일에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에서 열린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자선 공연에는 5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사이먼 앤 가펑클이 남긴 역대 최고의 무대가 되었으며 이 날의 공연 실황은 음반으로 발매되어 인기 상품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 Garfunkel) :
폴 사이먼 (Paul Simon) : 1941년 10월 13일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출생
아서 가펑클 (Arthur Garfunkel) : 1941년 11월 5일 미국 뉴욕 포레스트힐즈 출생

갈래 : 포크 록(Folk-Rock), 소프트 록(Soft Rock),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imonandgarfunkel.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GYKJuDxYr3I

2010년 9월 8일 수요일

Janis Ian - At Seventeen

 

Janis Ian - At Seventeen

1975년에 발표했었던 싱글 'At Seventeen'을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3위에 올려 놓으며 히트시켰고 이 곡으로 1976년 그래미 상에서 '최우수 여자 가수상(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을 수상했던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제니스 이안(본명: Janis Eddy Fink)'은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뉴저지(New Jersey)에서 성장하였다.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 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자랐던 그녀는 처음에 뉴저지의 '이스트 오렌지 캠퍼스 고등학교(East Orange Campus High School)'에 입학하였으나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시 예술 고등학교(New York City High School of Music & Art)'로 전학하여 작곡 공부를 시작하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니스 이안의 부모는 좌익 성향을 가졌던 인물들로 뉴욕 인근에서 여름 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냉전시대였던 탓에 늘 정부의 감시를 받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이런 상황은 제니스 이안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2000년에 발표한 'God and the FBI'에서 노래로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정부의 행태를 고발하기도 하였다. '오데타 홈즈(Odetta Holmes)'나 '조안 바에즈(Joan Baez)' 같은 포크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포크 가수의 꿈을 키우던 제니스 이안은 열두살때 자신이 만든 노래 'Hair of Spun Gold'의 악보를 포크 음악 전문지인 '브로드사이드(Broadside)'에 투고하여 이 음악지에 악보가 실리게 되면서 소원하던 가수 데뷔의 꿈을 이루게 된다.

브로드사이드지는 포크 음악 경연 대회에 제니스 이안을 초청하였으며 이 대회의 참여를 계기로 음반사와 계약을 맺을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니스 이안의 첫번째 음반 계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음반사와 제니스 이안의 의견이 상충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니스 이안은 자신이 만든 곡으로 음반 제작을 하고 싶어했고 음반사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서 음반 제작을 추진하려 했었기에 결국 이 계약은 파기되었고 제니스 이안은 '버브 음반사(Verve Records)'로 옮겨가게 된다.

음반 데뷔를 준비하면서 제니스 이안은 자신의 본명인 제니스 에디 핑크 대신 제니스 이안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안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오빠인 에릭의 중간 이름이었다. 제니스 이안은 흑백 인종간의 사랑을 노래한 'Society's Child (Baby I've Been Thinking)'를 1965년에 만들어 1966년에 데뷔 싱글로 발표하면서 포크 가수로 데뷔하였다. 그렇지만 야심찬 그녀의 데뷔 곡은 타 인종 간의 사랑을 다룬 가사로 인해 여러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금지 곡 처분을 받으며 노래가 알려질 기회 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던 이 노래는 제니스 이안이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 'Inside Pop: The Rock Revolution'에 출연하여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과 함께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고 이에 싱글로 재발매 되기에 이른다. 재발매 된 'Society's Child (Baby I've Been Thinking)'은 1967년 여름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애호가 편지 대신에 살해 협박과 증오에 가득찬 욕설을 담은 편지가 제니스 이안에게 배달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데뷔 싱글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공하게 되자 제니스 이안은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967년에 데뷔 음반 'Janis Ian'을 발표하였다. 앨범 차트에서 29위를 기록하며 선전한 이 음반 이후로 'For All the Seasons of Your Mind(1967년)'와 'The Secret Life of J. Eddy Fink(1968년)', 'Who Really Cares(1969년)'를 계속 발표하였지만 이들 음반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버브에서의 마지막 음반 'Who Really Cares'를 끝으로 버브와의 계약을 마무리 지은 제니스 이안은 칩거에 들어가게 된다.

제니스 이안은 2년간의 칩거를 깨고 1971년에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를 통해 새 음반 'Present Company'를 발표하면서 팝계로 복귀하였으나 이 음반은 앨범 차트 진입에 실패하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실망한 제니스 이안은 다시 캘리포니아로 옮겨가 작곡에 전념하게 된다. 제니스 이안은 1974년에 오랜 침묵을 깨고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 소속으로 복귀 음반 'Stars'를 발표하였다. 1975년에 조안 바에즈가 자신의 음반 'Diamonds & Rust'에 커버하여 수록하였던 곡 'Jesse'가 수록된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3위를 기록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복귀를 제니스 이안에게 안겨주게 된다.

한편 'Jesse'는 제니스 이안이 1973년에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에게 주어 그녀의 음반 'Killing Me Softly'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0위를 기록했었던 곡이었다. 음반 'Stars'로 성공적인 복귀를 한 제니스 이안은 1975년에 그녀의 최고 작인 음반 'Between the Lines'를 발표하여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명곡 'At Seventeen'가 수록된 이 음반은 1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기록하여 플래티넘(Platinum) 레코드가 되었으며 1976년 초에 거행된 그래미 상에서 제니스 이안이 최우수 여자 가수 상을 받게 만들어 주었다.

2004년에 제니스 이안은 1972년에서 1981년 사이에 자신이 발표하여 히트를 거두었던 곡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베스트 음반 'Souvenirs: Best of Janis Ian 1972-1981'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앞서 언급했던 예쁜 소녀들에게만 관심을 주는 사람들로 인해 열일곱살의 소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에 대한 좌절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At Seventeen'를 포함하여 'Jesse'와 'Stars', 그리고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싱글 'Love Is Blind'등을 수록하여 제니스 이안을 좋아하는 팝 팬들에게 그녀의 전성기 시절을 느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제니스 이안 (Janis Ian) : 1951년 4월 7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포크(Folk), 포크 록(Folk-Rock), 컨템퍼러리 포크(Contemporary Fol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anisian.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KCp-ymJpRP4

2010년 8월 14일 토요일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본명이 '로버타 존 앤더슨(Roberta Joan Anderson)'인 조니 미첼은 캐나다 남부의 앨버타(Alberta)주 남쪽 작은 마을인 포트맥클라우드(Fort Macleod)에서 공군 장교인 아버지와 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이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시기에 태어난 조니 미첼은 공군 기지가 있는 캐나다 서부의 서스캐처원(Saskatchewan)주 새스커툰(Saskatoon)시에 있는 공군 기지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가수 겸 작곡가인 동시에 화가이기도 한 조니 미첼은 아홉살때 소아마비에 걸리기도 했으나 완치되었으며 십대에 접어 들면서 부터 '우쿨렐레(Ukulele: 기타와 비슷한 작은 현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소아마비로 투병 중이던 아홉살 때 고통을 잊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조니 미첼은 가수로 성공한 이후의 인터뷰에서 그런 사실을 부인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우쿨렐레에서 시작하여 '피터 시거(Pete Seeger)' 같은 포크 가수들의 음악을 듣고 악보를 보며 기타 연주 방법을 습득한 조니 미첼은 또래들의 모닥불 파티 등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나중에는 커피하우스 같은 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새스커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니 미첼은 앨버타주 남부의 캘거리(Calgary)시에 있는 '앨버타 예술 대학교(Albert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원인 포크 가수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고는 어머니에게 토론토(Toronto)로 가서 포크 가수가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와 토론토로 떠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짧은 대학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되는데 이때가 1964년 6월이었다. 토론토로 온 조니 미첼은 낮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길거리 가수로 생활하고 밤에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생활을 하면서 지내게 되는데 이 당시 포크 가수 '척 미첼(Chuck Mitchell)'을 만나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1965년 2월에 조니 미첼은 딸을 출산하였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척 미첼이 아니라 예전 대학 시절의 남자 친구였었다. 딸의 출산 몇주 후 조니 미첼은 사귀던 척 미첼과 결혼을 하였고 이때부터 미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965년 여름 조니와 척은 미국의 '디트로이트(Detroit)'로 건너가 대학가 주변의 바와 커피하우스에서 듀오로 가수 생활을 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캐나다의 'CBC'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포크 가수 '오스카 브랜드(Oscar Brand)'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Let's Sing Out'에 조니 미첼을 출연시키게 된다. 첫 방송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조니 미첼은 1966년 까지 몇차례 더 출연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갔다.

1967년 척 미첼과 이혼한 조니 미첼은 음반 데뷔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가 포크 클럽과 커피하우스를 무대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부터 조니 미첼은 독창적인 작곡 실력과 혁신적인 기타 연주법으로 많은 주목을 끌게 되면서 가수들에게 곡을 만들어 주게 되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포크 가수 '쥬디 콜린스(Judy Collins)'에게 주었던 'Both Sides Now'였다.

'Both Sides Now'는 쥬디 콜린스가 1967년 10월에 발표했던 음반 'Wildflowers'에 수록되었으며 싱글로도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1968년 '리프라이즈 음반사(Reprise Records)'와 계약한 조니 미첼은 3월에 데뷔 음반 'Song to a Seagull'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그토록 소원하던 조니 미첼의 데뷔 음반에는 포크 가수 '데이비드 크로스비(David Crosby)'가 음반 제작자로 참가하였는데 그는 음반에 수록된 곡 'The Dawntreader'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1969년 5월, 조니 미첼은 자신이 직접 그린 새스커툰 지역을 배경으로 꽃을 들고 있는 자화상을 음반 커버로 사용한 두번째 음반 'Clouds'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는 쥬디 콜린스에게 주었던 곡 'Both Sides Now'가 수록되어 있는데 새롭게 재해석하여 수록한 'Both Sides Now'는 조니 미첼이 자신만의 보컬 형식을 완전히 정립했다는 평을 받게 만드는 동시에 조니 미첼의 팬들을 사로 잡았던 곡으로 초창기 그녀를 대표하는 곡이다.

조니 미첼 (Joni Mitchell) : 1943년 11월 7일 캐나다 앨버타 출생

갈래 : 포크 록(Folk-Rock), 재즈(Jazz), 포크 재즈(Folk Jazz)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onimitchell.com/

 

2010년 6월 2일 수요일

영국 포크 록 그룹 Dulcimer 의 Time in My Life

 

Dulcimer - Time in My Life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포크 록 그룹 덜시머는 영국에서 '포크 음악의 재조명(British Folk Revival)' 운동이 활발히 번져가고 있던 시기인 1967년에 등장하여 포크 팬들과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밴드이다. 영국 남서부의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주 코츠월드(Cotswold) 에서 태어난 피터 호지는 1960년대 중반 부터 일기 시작한 영국 포크 음악의 재조명 운동에 고무되어 데이브 이브스와 함께 1967년에 포크 듀오 '켈피(Kelpie)'를 결성하여 포크계에 데뷔하였다.

포크 듀오 켈피는 코츠월드 지역의 포크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하였으나 활동 폭이 커짐에 따라 베이스 연주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듀오는 베이스 주자를 찾던 중 피터 호지의 사촌인 젬 노스를 발견하고 그를 영입하면서 트리오 체제를 갖추고 이름도 포크 음악에 어울리는 '덜시머'로 바꾸게 된다.

 

지역 포크 클럽에서 활동하던 덜시머는 우연한 기회를 맞아 런던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배우 '리차드 토드(Richard Todd)'가 코츠월드의 포크 클럽에 방문했다가 덜시머의 연주를 들은 후 덜시머의 음악에 반해 덜시머의 조언자를 자처하며 런던으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이다.

1970년에 런던으로 온 덜시머는 음반 제작자 겸 매니저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에게 발탁되어 래리 페이지가 소유하고 있던 소규모 레이블인 '네펜사 음반사(Nepenth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된다.

 

네펜사 레이블은 프로그레시브 음악 전문 레이블로 출범하여 1971년에 '피터 델로 앤 프렌즈(Pete Dello And Friends)'의 음반 'Into Your Ears'를 레이블의 첫번째 작품으로 발표하게 된다. 음반 번호 '6437001'을 달고 출시된 음반의 주인공인 피터 델로는 사이키델릭 팝 그룹 '허니버스(Honeybus)' 출신으로 허니버스를 탈퇴하고 솔로로 네펜사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여 레이블의 첫번째 번호를 달게 되었다.

 

한편 네펜사와 계약한 덜시머는 '린다 글로버(Linda Glover)'가 그린 아름다운 표지의 데뷔 음반 'And I Turned As I Had Turned As A Boy'를 1971년에 레이블의 세번째 작품으로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음반 번호 '6437003' 에서 알수 있듯이 네펜사에서 세번째로 발매된 음반으로 수준 높은 포크 록으로 영면을 채운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LP시절 희귀 음반으로 존재하다가 CD 재발매를 통해 많은 포크 팬들에게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도입부의 바람 소리가 인상적인 트랙 'Mormans Casket'이 포크 음악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며 사랑 받게 되었다. 하지만 데뷔 음반의 최고 작으로 여겨지는 곡은 'Time in My Life'로 포크 음악 고유의 분위기를 가진 경쾌하고 멋진 곡이다.

마지막으로 네펜사 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은 총 다섯장이 전부로 음반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Pete Dello - Into Your Ears (1971), 음반 번호 : 6437001
Robin Lent - Scarecrow's Journey (1970), 음반 번호 : 6437002
Dulcimer - And I Turned as I Had Turned as a Boy (1971), 음반 번호 : 6437003
Earth & Fire - Earth & Fire (1971), 음반 번호 : 6437004
Zior - Zior (1971), 음반 번호 : 6437005

덜시머 (Dulcimer) :
피터 호지 (Pete Hodge, 보컬, 기타, 하모니카, 만돌린, 덜시머) : 영국 출생
데이브 이브스 (Dave Eaves, 리드 보컬, 기타, 하모니카, 리코더) : 영국 출생
젬 노스 (Jem North, 베이스, 글로켄슈필, 퍼커션, 보컬) : 영국 출생

갈래 : 포크 록(Folk Rock), 애시드 포크(Acid Fol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The Turtles - Happy Together

 

The Turtles - Happy Together

터틀즈 (The Turtles) :
하워드 케일런 (Howard Kaylan, 보컬) : 1947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출생
마크 볼만 (Mark Volman, 기타) : 1947년 4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생
알 니콜 (Al Nichol, 기타) :
짐 터커 (Jim Tucker, 기타) :
칩 더글라스 (Chip Douglas, 베이스) :
존 바바타 (John Barbata, 드럼) : 1945년 4월 1일 미국 뉴저지(New Jersey)주 퍼세이익(Passaic) 출생

 

갈래 : 팝 록, 포크 록(Folk-Rock), 선샤인 팝(Sunshine Pop),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turtles.com/


미국의 록 그룹 '터틀즈'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웨스트체스터(Westchester)' 지역에 있는 '웨스트체스터 고등 학교(Westchester High School)' 동창생인 하워드 케일런과 마크 볼만에 의해서 탄생한 그룹이다.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어릴때 부터 발휘하던  밴드의 리더인 하워드 케일런은 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 보컬 교육을 받았으며 '클라리넷(Clarinet)' 교습을 통해 음악적 소양을 길러 나갔다.

 

웨스트체스터 고교에 진학한 하워드 케일런은 학교의 '아카펠라 합창단(Westchester High A Cappella Choir)'에 들어가 마크 볼만을 만나게 된다. 당시 합창단에서 하워드 케일런은 세컨드 테너(Second Tenor)를 맡았으며 마크 볼만은 퍼스트 테너(First Tenor)를 맡았었다. 합창단에서 함께 활동하며 마음이 통한 두사람은 밴드 결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는데, 결국 하워드 케일런은 아카펠라 합창단원들 중에서 밴드의 멤버를 모집하여 '서프 록(Surf Rock)' 그룹인 '나이트라이더스(The Nightriders)'를 결성하게 된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은 하워드 케일런을 비롯하여 알 니콜과 돈 머리(Don Murray, 드럼), 척 포르츠(Chuck Portz, 베이스)로 구성된 나이트라이더스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63년에 밴드 이름을 '크로스파이어스(The Crossfires)'로 바꾸면서 마크 볼만을 추가로 가입시켰다. 크로스파이어스는 멤버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해산하지 않고 리듬 기타를 담당할 짐 터커를 추가로 영입하여 사운드를 보강한 후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긴 장발 머리를 휘날리며 캘리포니아의 사우스베이(South Bay) 지역에서 순회 공연을 하던 크로스파이어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지역의 클럽 소유자이며 DJ 이기도 한 '렙 포스터(Reb Foster)'였다. 서프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의 무대 모습을 지켜본 렙 포스터는 1965년에 크로스파이어스를 '화이트 웨일 음반사(White Whale Records)'에 소개시켜 주어 음반 계약이 이루어지게 도움을 주었다.

 

음반 계약과 함께 크로스파이어스는 포크 록 그룹으로 밴드의 음악적 성격을 바꾸고 밴드 이름도 당시 유행하던 '버즈(The Byrds)'나 '비틀즈(The Beatles)' 처럼 틀린 철자를 사용한 이름인 '터틀즈(The Tyrtles)'를 밴드 이름으로 채용하고 데뷔 싱글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이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밥 딜런(Bob Dylan)의 곡을 커버한 데뷔 싱글 'It Ain't Me Babe'를 발표하면서 밴드 이름이 '터틀즈(The Turtles)'로 다시 바뀌게 된다.

 

터틀즈는 1965년 여름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8위 까지 오른 데뷔 싱글의 히트 이후 후속 곡들인 'Let Me Be'와 'You Baby'를 연속해서 'Top 40'에 진출시키며 성공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영국 그룹들의 미국 침공을 가리키는 말인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 시작된 이후 미국 그룹들의 자존심을 세우며 인기를 누리던 터틀즈는 1967년이 시작되면서 멤버 변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드러머인 돈 머리와 베이스 주자인 척 포르츠가 밴드를 떠나고 그들을 대신하여 존 바바타와 칩 더글라스를 가입시켜 밴드를 정비한 터틀즈는 1967년 2월에 싱글 'Happy Together'를 발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비틀즈의 싱글 'Penny Lane'과 함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인 끝에 결국 'Penny Lane'을 끌어내리고 3주간 1위 자리를 차지한 'Happy Together'는 영국 싱글 차트(UK Singles Chart)에서도 12위를 기록하며 히트를 하였다.

 

'Happy Together'는 발표 이후 많은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었고 광고나 영화의 배경 음악에 자주 사용되며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에서도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에 자주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친숙한 노래이다.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Pentangle - Cruel Sister

 

Pentangle - Cruel Sister

펜탱글 (Pentangle) : 1970년 발표 음반 'Cruel Sister' 구성원
버트 잰쉬 (Bert Jansch, 어쿠스틱 기타, 덜시머) : 1943년 11월 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존 렌본 (John Renbourn, 기타, 시타르) : 1944년 8월 8일 영국 런던 메릴본(Marylebone) 출생
자퀴 맥쉬 (Jacqui McShee, 보컬) : 1943년 12월 25일 영국 런던 캣포드(Catford) 출생
대니 톰슨 (Danny Thompson, 더블 베이스) : 1939년 4월 4일 영국 데번주 틴머스(Teignmouth) 출생
테리 콕스 (Terry Cox, 드럼, 퍼커션) : 1937년 3월 13일 영국 버킹엄셔주 하이위컴(High Wycombe) 출생

 

분류 : 포크 록(Folk Rock), 브리티시 포크(British Fol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acquimcshee.co.uk/


영국의 포크 록 그룹 펜탱글은 1966년 9월에 영국 포크 록계에서 솔로로 활동하던 버트 잰쉬와 존 렌본이 듀오를 결성하고 음반 'Bert And John'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버트 잰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묘목상에서 일을 하다 1960년 8월부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포크 클럽에서 세션으로 기타 연주를 하며 생활하다 1963년 부터 1965년 까지 무전 여행으로 유럽 지역을 여행하며 바와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기타를 치기도 하였다.

 

여행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온 버트 잰쉬는 런던으로 가서 음악 활동을 모색하다 프로듀서인 빌 리더(Bill Leader)를 만나게 된다. 빌 리더는 '릴 테이프 녹음기(Reel-to-reel tape recorder)'를 이용하여 자주 제작 형식으로 버트 잰쉬의 테이프를 만들고 이를 포크 록의 명가인 트랜스애틀란틱 레코드(Transatlantic Records)에 100파운드 라는 가격으로 판매하였다. 이 테이프는 1965년 4월 16일에 'Bert Jansch'라는 제목의 음반으로 발매되어 15만장의 판매 기록을 남기게 된다.

 

버트 잰쉬의 데뷔 음반에는 '저항 노래(Protest Song)'인 'Do You Hear Me Now'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도노반(Donovan)이 1965년에 발표한 자신의 미니 음반(EP)인 'Universal Soldier'에 수록하여 싱글 차트에서 27위 까지 진출시켰고 'Universal Soldier' 음반은 EP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였다.

 

버트 잰쉬는 두번째 음반 'It Don't Bother Me'에 이어서 1966년에 세번째 음반 'Jack Orio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Blackwaterside' 라는 전통 음악이 수록되어 있는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Black Mountain Side'라는 제목의 연주 곡으로 편곡하여 레드 제플린이 1969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에 수록하기도 하였다.

 

세번째 음반 발표 후 버트 잰쉬는 존 렌본을 만나 그와 함께 듀오로 음반 'Bert And John'을 발표하였다. 런던의 '킹스턴 예술학교(Kingston College of Art)'에서 클래식 기타 교육을 받았던 존 렌본은 '스키플 음악(Skiffle: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의 매력에 빠져 들었고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음악을 접하면서 팝 음악으로 전향하여 당시 포크 클럽들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하던 영국 포크 부흥 붐에 합류하게 된다.

 

1960년대 초 런던의 그리스인 거리에 있는 음악 클럽인 '커즌스(Les Cousins)'에 출연하던 존 렌본은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하던 여성 포크 가수 '도리스 헨더슨(Dorris Henderson)'의 음반에서 기타 연주를 해주기도 하였다. 커즌스 클럽에서 버트 잰쉬를 만난 존 렌본은 함께 듀오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되고 음반 발매 까지 하게 된다.

 

런던의 포크 클럽에서 플로어 가수(Floor Singer)로 활동하던 자퀴 맥쉬는 존 렌본을 만나면서 그의 주선으로 커즌스 클럽 무대에서 데뷔하게 된다. 자퀴 맥쉬의 데뷔 무대는 존 렌본과 버트 잰쉬가 백업 연주를 해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좀더 발전적인 포크 록 그룹 결성이 논의되어 펜탱글 결성이 시작되게 된다. 세사람은 대니 톰슨과 테리 콕스를 추가로 가입시키고 다섯 사람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펜탱글(Pentangle)'을 밴드 이름으로 채택한 후 데뷔 무대 준비를 하게 된다.

 

펜탱글은 1967년 5월 27일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덴마크로 짧은 순회 공연을 다녀와서 영국에서의 공연 활동을 재개하였다. 펜탱글의 영국 공연은 트랜스애틀란틱 레코드의 관계자에게 관심을 끌게 하였고 결국 펜탱글은 트랜스애틀란틱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펜탱글은 1968년 5월에 어쿠스틱 연주로 만들어진 데뷔 음반 'The Pentangle'을 발표하였다. 펜탱글의 데뷔 음반은 포크와 재즈, 블루스 음악의 영향이 스며들어 진보적인 성향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자리하게 된다. 1970년, 펜탱글은 네번째 음반 'Cruel Sister'를 발표하였다. 음반의 타이틀 곡인 'Cruel Sister'는 전통 음악을 편곡하여 수록한 것으로 흔히 말하는 비장미 넘치는 분위기가 포크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을 전해주는 곡으로 포크 음악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또한 이 곡은 노르웨이의 포크 록 그룹 '폴케(Folque)'가 1974년에 발표한 자신들의 데뷔 음반에 좀더 빠른 분위기로 편곡하고 수록하여 강렬한 인상을 포크 음악 팬들에게 심어주었다.

 

 

2010년 4월 9일 금요일

Spriguns - Time Will Pass

 

Spriguns - Time Will Pass

스프리건스 (Spriguns) : 1977년 발표 음반 'Time Will Pass' 구성원
맨디 모튼 (Mandy Morton, 리드 보컬, 어쿠스틱 기타) :
웨인 모리슨 (Wayne Morrison, 리드 기타, 어쿠스틱 기타, 만돌린, 보컬) :
딕 파월 (Dick Powell, 일렉트릭 기타, 키보드, 보컬) :
마이크 모튼 (Mike Morton, 베이스, 보컬) :
데니스 던스턴 (Dennis Dunstan, 드럼, 퍼커션) :
톰 링 (Tom Ling, 일렉트릭 바이올린) :
 
분류 : 포크 록(Folk Rock), 브리티시 포크(British Folk), 포크(Fol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mandymortonampspriguns


영국의 포크 록 그룹 스프리건스의 역사는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 지역에 있던 포크 클럽의 소유자인 맨디 모튼과 마이크 모튼 부부가 1972년 부터 듀오로 자신들의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부부는 듀오의 이름으로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Spriguns of Tolgus)'를 사용하였는데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콘월(Cornwall, Cornwall and Isles of Scilly)주'에서 전승되고 있는 몸집이 작은 요정의 이름인 스프리건스와 콘월의 주석 광산 지대인 톨거스를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969년에 결성된 영국의 포크 밴드 '스틸리 스팬(Steeleye Span)'과 유사한 형태로 영국의 전통 음악들을 주로 노래하던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는 '릭 토마스(Rick Thomas, 피들)'와 '크리스 러슨(Chris Russon, 일렉트릭 기타)'을 추가로 영입하여 포크 록 그룹으로 밴드의 규모를 늘렸고 1974년에 자주 제작으로 데뷔 카세트 테이프 'Rowdy, Dowdy Day'를 발표하였다.
 
소량으로 만들어진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의 데뷔 테이프는 스틸리 스팬의 리더인 '팀 하트(Tim Hart)'의 주목을 끌게 되어 그의 프로듀서로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는 데뷔 음반 'Jack with a Feather'를 1975년에 발표하게 된다.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의 데뷔 음반은 포크 록 팬들에게는 명반으로 분류되며 사랑받고 있지만 음반의 대부분을 영국의 전통 음악으로 채워 넣으면서 영국 색채가 강해져 일반 팝팬들에게 사랑받기에는 어려운 음반이기도 하다.

 

1976년,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한 스프리건스 오브 톨거스는 밴드 이름을 스프리건스로 짧게 줄이면서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를 하게 된다. 맨디 모튼과 마이크 모튼은 톰 링과 딕 파월, 그리고 '크리스 우드콕(Chris Woodcock, 드럼)'을 가입시켜 5인조로 밴드를 정비하고 새 앨범 'Revel, Weird & Wild'를 1976년에 발표하였다.

 

스프리건스는 세번째 음반 발표 후 크리스 우드콕을 내보내고 호주 출신의 웨인 모리슨과 데니스 던스턴을 받아들여 밴드를 보강하고 1977년에 네번째 음반 'Time Will Pass'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이전까지의 전통 포크 음악 중심에서 벗어나 관혁악 사운드를 첨가하면서 한층 사운드를 보강한 포크 음악으로 바뀐 스프리건스를 만나볼수 있다.


심포닉 포크 록으로 분류되는 이 음반의 사운드는 스프리건스가 발표한 음반들 중에서 가장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팝팬들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된 음반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절의 진실한 사랑을 그리워 하는 음반의 타이틀 곡은 마치 SF 영화의 효과음 같은 강렬한 키보드 연주로 시작하는 곡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2010년 4월 5일 월요일

Peter, P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Peter, P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피터, 폴 앤 메리 (Peter, Paul & Mary) :
피터 야로우 (Peter Yarrow) : 1938년 5월 31일 미국 뉴욕 출생
노엘 폴 스투키 (Noel Paul Stookey) : 1937년 12월 30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Baltimore) 출생
메리 트래버스 (Mary Travers) : 1936년 11월 9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출생, 2009년 6월 16일 사망

 

분류 : 포크(Folk), 포크 록(Folk-Rock), 포크 팝(Folk-Pop),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peterpaulandmary.com/


1960년대의 미국 포크계를 대표하는 포크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는 서정적인 노래들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미국의 포크 음악 대중화를 주도했던 밴드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피터 야로우는 '뉴욕시 예술 고교(New York City's High School of Music and Art, 현재: Fiorello H. LaGuardia High School of Music & Art and Performing Arts)'를 졸업하고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심리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1959년 이후 부터 피터 야로우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를 무대로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61년, 그리니치 빌리지의 커피 하우스를 무대로 활동하던 피터 야로우는 매니저인 피터 '알버트 그로스맨(Albert Grossman)'을 만나면서 좀더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고 '위버스(The Weavers)'나 '피터 시거(Pete Seeger)' 같은 포크 음악인들에게 영향 받은 밴드를 구상하게 된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을 중심으로 오디션을 통해 함께 밴드를 구성할 멤버들을 찾던 알버트 그로스맨과 피터 야로우는 노엘 폴 스투키와 메리 트래버스를 낙점하여 포크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를 1961년에 결성하게 된다.

 

1962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Warner Bros. Records)'를 통해 데뷔 음반 'Peter, Paul & Mary'를 발표한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는 데뷔 음반에서 'If I Had a Hammer', 'Lemmon Tree', '500 Miles'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켰고, 빌보드 팝 앨범 차트의 정상에 데뷔 음반을 올려 놓았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피터, 폴 앤 메리는 미국 포크계의 선두 주자로 급부상하며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텔레비전 출연 등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피터, 폴 앤 메리는 차기 작을 빠르게 준비하여 1963년에 두번째 음반 'Moving'을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Puff (The Magic Drago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였고, 빌보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데뷔 음반의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 피터, 폴 앤 메리의 명곡이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Puff (The Magic Dragon)'은 피터 야로우가 코넬 대학교 재학 시절에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같은 학교 친구 '레너드 립톤(Leonard Lipton)'이 쓴 시를 기반으로 작사하고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의 주인공은 바닷가에 살던 마법의 용 퍼프, 그리고 퍼프와 함께 뛰어 놀던 어린 소년 재키 페이퍼로 용과 소년은 함께 뛰어 놀며 친구로 지내다 재키 페이퍼가 성장함에 따라 예전의 순수함을 잃고 더 이상 퍼프와 놀아주지 않자 이에 실망한 퍼프가 자신의 보금자리인 동굴로 돌아가버렸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내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곡이 히트를 하자 신화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들이 사람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었고 결국 마약을 주제로 만들어졌다는 터무니 없는 오해를 받기도 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금지 곡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2010년 4월 2일 금요일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g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g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

존 필립스 (John Phillips) : 1935년 8월 30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생, 2001년 3월 18일 사망
미쉘 필립스 (Michelle Phillips) : 1944년 6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Long Beach) 출생
데니 도허티 (Denny Doherty) : 1940년 11월 29일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생, 2007년 1월 19일 사망
캐스 엘리엇 (Cass Elliot) : 1941년 9월 19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출생, 1974년 7월 29일 사망

 

분류 : 사이키델릭(Psychedelic), 포크 록(Folk-Rock), 선샤인 팝(Sunshine Pop), AM 팝(AM Pop)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dennydoherty.com/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혹은 길거리의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너무도 유명한 곡 'California Dreaming'의 주인공인 마마스 앤 파파스는 '저니맨(The Journeymen)'과 '머그웜프(The Mugwumps)'라는 포크 록 그룹이 합쳐져서 탄생한 그룹이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리더인 존 필립스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버지니아주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성장하였다.

 

십대에 두왑(doo-wop: 흑인 음악 리듬 앤드 블루스의 코러스 중 하나) 그룹을 결성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조지 워싱턴 고교(George Washington High School)' 재학 시절에는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195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해군 사관학교(U.S. Naval Academy)'에 입학하였으나 1년만에 사관학교에서 나와 '햄던 시드니 대학(Hampden-Sydney College)'에 진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존 필립스는 1960년대 초에 음반 계약이 좀더 수월하고 가수로 활동하기 좋은 뉴욕으로 가게 된다. 뉴욕에서 '스콧 메켄지(Scott Mckenzie)'와 '딕 웨이스먼(Dick Weissman)'을 만난 존 필립스는 두 사람과 함께 포크 트리오 저니맨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저니맨은 결성 후 총 석장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아메리칸 포크 뮤직 리바이벌(American Folk Music Revival)'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존 필립스는 저니맨의 캘리포니아 순회 공연에서 당시 십대였던 '미쉘 필립스(Michelle Gilliam)'를 만나 1962년에 결혼하고 저니맨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였다. 이 즈음 존 필립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일원이 되는 머그웜프의 두 멤버 데니 도허티와 캐스 엘리엇을 만나 교류하게 된다.

 

석장의 음반을 남기고 저니맨이 해산하자 존 필립스는 아내인 미쉘 필립스와 함께 데니 도허티와 캐스 엘리엇을 만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였고 그룹 이름을 '뉴 저니맨(The New Journeymen)'으로 부르게 된다. 1965년에 뉴 저니맨은 음반 계약을 체결하면서 밴드 이름을 마마스 앤 파파스로 밴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66년 3월에 'California Dreaming'이 포함된 데뷔 음반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를 발표하였다.

 

데니 도허티는 1956년에 친구들과 함께 '헵스터스(The Hepsters)'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고향인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헬리팩스(Halifax) 지역에 있는 클럽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한 헵스터스는 약 2년간 활동하다 해산하였다. 데니 도허티는 1960년에 헬리팩스 지역에서 활동하던 '콜로니얼스(The Colonials)'라는 포크 그룹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콜로니얼스는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면서 밴드 이름을 '헬리팩스 쓰리(The Halifax Three)'로 바꾸고 두장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소폭의 히트를 얻는데 그치면서 1963년에 밴드를 해산하였다. 헬리팩스 쓰리가 해산하자 데니 도허티는 1963년에 캐스 엘리엇을 만나 '빅 쓰리(The Big Three)'를 결성하여 새로운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즈음 데니 도허티와 캐스 엘리엇은 존 필립스와 미쉘 필립스를 만나 서로 음악적인 교류를 가지게 된다. 이후 빅 쓰리는 머그웜프로 밴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다 데니 도허티와 캐스 엘리엇이 존 필립스, 미쉘 필립스와 함께 새로운 밴드인 뉴 저니맨을 결성하게 되면서 해산하게 된다.

 

뉴 저니맨은 밴드 이름 교체를 두고 고심하다 '매직 서클(The Magic Circle)'이라는 이름으로 바꿀려고 하였으나 1965년 9월에 '던힐 레코드(Dunhill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면서 부르기 쉽고 친근한 이름인 마마스 앤 파파스로 바꾸었다. 마마스 앤 파파스가 이듬해에 발표한 데뷔 음반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데뷔 음반에 수록된 곡 'California Dreaming'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89위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 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Strawbs - Autumn

 

Strawbs - Autumn

스트롭스 (Strawbs) : 1974년 음반 'Hero and Heroine' 구성원
데이브 커즌스 (Dave Cousins, 보컬, 기타) : 1945년 1월 7일 영국 미들섹스 하운즐로(Hounslow) 출생
데이브 램버트 (Dave Lambert, 보컬, 기타) : 1949년 3월 8일 영국 미들섹스(Middlesex) 하운즐로 출생
존 호켄 (John Hawken, 키보드, 멜로트론) : 1940년 5월 9일 영국 도싯 본머스(Bournemouth) 출생
채스 크론크 (Chas Cronk, 베이스) : 1940년대 중반 영국 출생
로드 쿰비스 (Rod Coombes, 드럼) : 1946년 5월 15일 영국 런던(London) 노팅힐(Notting Hill) 출생

 

분류 :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트 록(Art Rock), 포크 록(Folk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trawbsweb.co.uk/

 

블루그래스 음악(Bluegrass: 미국 남부의 백인 민속 음악에서 비롯된 컨트리 음악)으로 시작하여 포크 음악과 심포닉 록을 거쳐 팝록 까지 다양한 음악 색깔을 보여 주었던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스트롭스는 런던의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데이브 커즌스와 '토니 후퍼(Tony Hooper)'가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스키플(Skiffle: 1950년대 후반에 유행한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 음악에 영향받은 '저그 밴드(Jug Band: 1930년대에 미국 남부의 흑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술병, 항아리 등을 악기로 사용하는 재즈 악단)'인 '진 보틀 포(Gin Bottle Four)'를 결성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진 보틀 포는 이후 블루그래스와 블루스, 그리고 포크 음악으로 서서히 음악적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당시 데이브 커즌스는 생애 처음으로 '벤조(Banjo)'를 구입하여 무대에서 벤조 연주를 선보이게 되는데 이후 영국에서 가장 빠르고 뛰어난 벤조 연주자 중 하나라는 평을 듣게 된다. '레스터 대학교(Leicester University)'의 통계학과에 진학한 데이브 커즌스는 토니 후퍼와 함께 포크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지내다 1963년에 '만돌린(Mandolin)' 연주자 '아서 필립스(Arthur Phillips)'를 만나 1964년에 포크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밴드는 포크 클럽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밴드의 이름은 당시 이들이 처음 리허설을 했던 지역인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의 이름을  따서 즉흥적으로 만든 이름인 '스트로베리 힐 보이즈(Strawberry Hill Boys)'를 밴드 이름으로 채택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런던 지역의 포크 클럽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스트로베리 힐 보이즈는 갑작스럽게 아서 필립스가 밴드를 탈퇴하자 그의 후임으로 더블 베이스 연주자인 '존 베리(John Berry)'를 가입시켜 활동을 하게 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존 베리마저 밴드를 탈퇴하자 데이브 커즌스와 토니 후퍼는 듀오로 활동을 하게 된다.

 

1965년에 처음으로 열린 '케임브리지 포크 페스티벌(Cambridge Folk Festival)'에 참가한 듀오는 페스티벌 이후에 불어닥친 포크 붐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클럽인 '화이트 베어(White Bear)'를 하운즐로(Hounslow) 지역에서 1966년에 열게 된다. 데이브 커즌스의 집 부근에 자리한 클럽 화이트 베어에서 자주 무대에 서며 자신들의 포크 음악을 알려가던 듀오는 '햄스테드(Hampstead)' 포크 클럽에서 만난 더블 베이스 주자 '론 체스터맨(Ron Chesterman)'을 합류시켜 트리오를 결성하였다.

 

1967년에 결성된 이 트리오는 스트롭스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확정하고 포크 가수 샌디 대니(Sandy Denny)를 가입시켜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덴마크 코펜하겐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데뷔 음반 녹음 작업은 장비의 열악함으로 순탄하지 않았고, 녹음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밤이면 클럽의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어렵게 녹음한 데뷔 음반은 음질 저하로 인해 발매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하여 샌디 데니가 포크 밴드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으로 옮겨가 버리자 스트롭스는 시작부터 암초를 만난 셈이 되어 버렸다. 샌디 데니의 후임으로 '쏘냐 크리스티나(Sonja Kristina)'를 영입하였지만 그녀 역시도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커브드 에어(Curved Air)'로 떠나 버리자 스트롭스는 트리오로 데뷔 싱글 'Oh How She Changed'를 1968년 6월 21일에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데뷔 싱글 발표 후 스트롭스는 1969년에 데뷔 음반 'Strawbs'를 발표하였고 1970년에 두번째 음반 'Dragonfly'를 발표하였다. 'Dragonfly'에서 게스트로 참가하였던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이 정식 멤버로 가입하여 1971년에 음반 'From the Witchwood'를 발표하였으나 릭 웨이크먼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예스(Yes)'로 옮겨가고 그를 대신하여 '블루 위버(Blue Weaver)'가 가입하였다.

 

1972년 2월에 스트롭스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네번째 음반 'Grave New World' 발표 후 창단 멤버였던 토니 후퍼가 스트롭스를 떠났고 그를 대신하여 데이브 램버트가 가입하였다. 1973년에 음반 'Bursting at the Seams'를 발표한 스트롭스는 1974년에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트롭스의 음반 'Hero and Heroine'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의 첫번째 수록 곡인 3부작 구성의 8분짜리 대곡 'Autumn'은 스트롭스가 발표한 최고의 명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애청곡이다. 한편 음반 커버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물체는 음반의 타이틀 곡인 'Hero and Heroine'의 마지막 가사 구절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가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While storm clouds gathered high above
The Heroine he grew to love
Turned slowly to a snow white dove
And spread her wings to fly
Crushed and broken in the end
Hero watched his soul ascend
Knowing that he was condemned
To sail all alone to die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Leonard Cohen - I'm Your Man

 

Leonard Cohen - I'm Your Man

레너드 코헨 (Leonard Norman Cohen) : 1934년 9월 21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Montreal) 출생

 

분류 : 팝록(Pop/Rock), 포크 록(Folk Rock),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leonardcohen.com/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다 가수로 데뷔한 캐나다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레너드 코헨'은 매력적인 저음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가수이다. 중산층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레너드 코헨은 '허즐리아 고교(Herzliah High School)'에서 유대계 캐나다 시인인 '어빙 레이턴(Irving Layton)'의 시를 공부하면서 미래의 시인으로 활동하기 위한 기틀을 다지게 되며 '벅스킨 보이즈(Buckskin Boys)'라는 이름의 컨트리 포크 록 그룹에서 기타리스트로 할동하기도 하였다.

 

레너드 코헨이 아홉살때 옷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 '네이선 코헨(Nathan Cohen)'이 사망하였지만 어릴때 부터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던 아들의 장래를 위해 마련해둔 신탁으로 레너드 코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1951년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의 영문학과에 진학한 레너드 코헨은 동아리 활동으로 '맥길 토론 클럽(McGill Debating Union)'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후일 이 클럽의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도 레너드 코헨은 시인인 '어빙 레이턴'과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그리고 수필가이자 시인인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섭렵하며 공부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 1956년에 마침내 첫번째 시집 'Let Us Compare Mythologies'를 발표하였다. 당시 레너드 코헨은 미국 뉴욕의'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2년 과정의 '로스쿨(Law School)'을 수강하고 있었다.

 

로스쿨을 수료한 1957년 레너드 코헨은 시낭송 활동을 하면서 시낭송 음반을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했고 계속해서 집필에 들어가 1963년에 소설 'The Favourite Game'을 발표하였고, 1964년에는 시집 'Flowers for Hitler'를 1966년에는 소설 'Beautiful Losers'와 시집 'Parasites of Heaven'을 각각 발표하였다. 1967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레너드 코헨은 이때 부터 포크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가 맨처음 한 작업은 자신의 시집인 'Parasites of Heaven'에 수록된 시들을 노래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레너드 코헨의 초기 대표 곡인 'Suzanne'은 미국의 포크 가수 '쥬디 콜린스(Judy Collins)'가 자신의 1966년 음반 'In My Life'에 수록하여 히트를 하기도 하였다. 레너드 코헨은 곡을 만드는 것 외에도 몇차레에 결쳐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의 주목을 끌게 된다. 결국 컬럼비아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체결한 레너드 코헨은 1967년에 음반 'Songs of Leonard Cohen'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 음반은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이루진 못했으나 수록 곡인 'Suzanne'과 'So Long, Marianne'등의 영향으로 포크 팬들에게 음유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게 된다. 1969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Songs from a Room'에서는 싱글 'Bird on the Wire'가 빌보드 싱글 차트 63위에 올랐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2위에 오르며 포크 가수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나가게 된다.

 

'Famous Blue Raincoat'가 수록된 세번째 음반 'Songs of Love and Hate'는 1971년에 발표되었으며, 1974년에는 네번째 음반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를 발표하였다. 네번째 음반 발표후 휴식에 들어간 레너드 코헨은 그리스의 어느 섬으로 들어가 집필 활동에 전념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1977년, 레너드 코헨은 '밥 딜런(Bob Dylan)'이 백보컬을 담당하고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제작한 음반 'Death of a Ladies' Man'을 발표하며 팝계로 돌아왔다. 1979년에는 'Recent Songs'를 발표하였고 1984년에는 'Various Positions'를 발표하며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린 레너드 코헨은 1988년에 발표한 음반 'I'm Your Man'으로 다시 팝계의 주인공으로 복귀하게 된다.

 

1988년 2월에 발표된 음반 'I'm Your Man'은 미국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히트를 하였고 타이틀 곡인 'I'm Your Man'은 노르웨이의 싱글 차트에서 16주간이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한국에서도 'I'm Your Man'은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며, 이 곡의 영향으로 음반의 'Ain't No Cure for Love'와 'Everybody Knows'도 연이어 히트를 하며 사랑받았다.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T. Rex - Bang A Gong (Get It On)

 

T. Rex - Bang A Gong (Get It On)

티렉스 (T. Rex) :
마크 볼란 (Marc Bolan, 보컬, 기타) : 1947년 9월 30일 영국 런던 출생, 1977년 9월 16일 사망
미키 핀 (Mickey Finn, 콩가 드럼, 봉고) : 1947년 6월 3일 영국 서리(Surrey) 출생, 2003년 1월 11일 사망
스티브 커리 (Steve Currie, 베이스) : 1947년 5월 19일 영국 링컨셔 출생, 1981년 4월 28일 사망
빌 레전드 (Bill Legend, 드럼) : 1944년 5월 8일 영국 에식스(Essex) 바킹(Barking) 출생,
하워드 카이란 (Howard Kaylan, 백보컬) : 1947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출생
마크 발만 (Mark Volman, 백보컬) : 1947년 4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생
릭 웨이크먼 (Rick Wakeman, 키보드 Get It On) : 1949년 5월 18일 영국 런던 출생
이언 맥도날드 (Ian McDonald, 색소폰) : 1946년 6월 25일 영국 미들섹스(Middlesex) 출생
버트 콜린스 (Burt Collins, 플뢰겐호른) :

 

분류 : 글램 록(Glam Rock), 하드 록(Hard Rock), 포크 록(Folk Rock), 팝록(Pop/Rock)


거대한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한 영국의 글램 록 그룹 '티렉스'는 '마크 볼란(본명: Mark Feld)'에 의해서 창조되고 완성되었던 그룹이었다. 화물 자동차를 운전하던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크 볼란은 어릴때 부터 로큰롤에 빠져들어 '진 빈센트(Gene Vincent)', '척 베리(Chuck Berry)', '에디 코크란(Eddie Cochran)' 같은 가수들의 음반을 들으며 로큰롤 스타로의 성공을 꿈꾸게 된다.

 

아홉살때 부모를 졸라 선물 받은 기타를 처음으로 만지게 되었고 '스키플 밴드(Skiffle Band: 1950년대 후반에 유행한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학교 생활보다는 밴드 활동에서 더욱 큰 매력을 느끼며 방황하던 마크 볼란은 결국 부모의 동의를 얻어 열다섯살때 적응이 힘들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당시 유행하던 '모드(Mod: 전위적인 유행 복장)' 잡지의 모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마크 볼란은 모델 활동을 하면서 부터 사용하던 이름인 '마크 보우랜드(Mark Bowland)'를 '마크 볼란(Marc Bolan)'으로 바꾸고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와 싱글 음반 계약을 체결한 후, 데뷔 싱글 'The Wizard'를 발표 하면서 본격적인 가수로써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데뷔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이에 매니저인 '사이먼 내피어 벨(Simon Napier Bell)'은 1967년 초에 마크 볼란을 '모드 밴드(Mod Band: 파격적이고 세련된 의상 착용등을 통해 음악 외적인 요소를 중시한 그룹)'인 '존스 칠드런(John's Children)'에 가입시키게 된다. 마크 볼란은 존스 칠드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작곡한 곡인 'Desdemona'를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하였지만 이 곡은 'lift up your skirt and fly' 라는 가사가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BBC로 부터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싱글의 실패와 더불어 밴드 멤버들과의 호흡 불일치는 결국 마크 볼란으로 하여금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만들었다. 마크 볼란은 존스 칠드런에서의 짧은 활동을 마무리 하고 '스티브 페러그린 툭(Steve Peregrin Took, 드럼, 베이스)'과 함께 사이키델릭 포크 그룹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1967년에 결성하여 새출발 하게 된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듀오 형태로 1968년 4월에 발표한 데뷔 싱글 'Debora'를 시작으로 총 네장의 싱글들과 네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하며 1970년까지 활동을 이어가게 되는데, 1970년에는 스티브 페러그린 툭 대신에 '미키 핀(본명: Michael Norman Finn)'이 새로운 파트너로 가입하여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 즈음 프로듀서인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는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에게 전기 기타를 사용한 록 사운드 도입을 권유하였고 이를 수락한 마크 볼란은 밴드 이름을 '티렉스'로 짧게 바꾼 후에 '터틀즈(The Turtles)'의 두 멤버인 하워드 카이란과 마크 발만을 백보컬로 밴드에 합류시키고 프로듀서인 토니 비스콘티에게 건반을 담당하게 하여 티렉스의 데뷔 음반 'T. Rex'를 1970년에 발표하였다.

 

1970년 10월 티렉스는 '스티브 커리'와 '빌 레전드(본명: William Fifield)'를 새롭게 멤버로 충원하고 싱글 'Ride a White Swan'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영국의 Top 40 차트에 11주간 머물며 2위 까지 진출하였고 티렉스 최초의 히트 곡이 되었다. 글램 록 그룹 티렉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곡 'Ride a White Swan'에 이어 'Hot Love'가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1971년 9월 마침내 글램 록의 명반 'Electric Warrior'가 세상에 공개 되었는데 특히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Get It On'에서는 릭 웨이크먼이 건반을 담당하여 사운드를 빛내 주었다. 영국에서 정상을 차지한 'Get It On'은 미국에서 'Bang A Gong (Get It On)'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발매가 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하였고 한국에서도 티렉스의 대표 곡으로 애청되고 있다.

 

마크 볼란은 1977년 9월 16일 가수이자 동거녀인 '글로리아 존스(Gloria Jones)'가 몰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급커브 길에서 도로를 이탈 하면서 일어난 나무를 들이 받는 교통 사고로 사망하였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The Youngbloods - Get Together

 

The Youngbloods - Get Together

영블러즈 (Youngbloods) :
제시 콜린 영 (Jesse Colin Young, 보컬, 베이스) : 1941년 11월 11일 미국 뉴욕시 퀸스(Queens) 출생
제리 코빗 (Jerry Corbitt, 리드 기타) : 미국 조지아(Georgia)주 티프톤(Tifton) 출생
로웰 레빙거 (Lowell Levinger, 리듬 기타) : 194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Cambridge) 출생
조 바우어 (Joe Bauer, 드럼) : 1941년 9월 26일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 멤피스(Memphis) 출생

 

분류 : 포크 록(Folk Rock), 사이키델릭(Psychedelic), 팝록(Pop/Rock)


포크 록 그룹 영블러즈(Youngbloods)는 밴드의 리더인 제시 콜린 영(본명: Perry Miller)이 1965년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보스턴(Boston)에서 제리 코빗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싱어 송라이터인 제시 콜린 영은 밴드를 결성하기 이전에 이미 솔로로써 두장의 비교적 성공적인 포크 음반을 발표하였었는데 1964년 4월에 발표한 음반이 'Soul of a City Boy' 였으며 1965년 3월에 발표한 음반이 'Young Blood'였다.

 

제시 콜린 영은 1965년 1월에 케임브리지(Cambridge) 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리 코빗을 만나 함께 연주하며 서로간의 음악적 공통점을 맞춰나가다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이에 제리 코빗은 'Banana' 라는 예명으로 트롤스(The Trolls)라는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로웰 레빙거를 소개시켜주어 밴드에 합류시키게 하였으며, 지역의 댄스 밴드에서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던 조 바우어를 추가로 밴드에 합류시켜 밴드의 구성원을 마무리 짓게 된다.

 

밴드는 제시 콜린 영이 발표한 두번째 음반의 타이틀을 가져와 영블러즈(The Youngbloods)라는 이름으로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위치한 저즈 포크 시티(Gerde's Folk City)라는 커피하우스에서 행한 첫번째 공연을 시작으로 클럽가를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그리니치빌리지의 나이트 클럽인 Cafe Au Go Go 에 고정으로 출연하다 RCA Records 와 음반 계약을 맺고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영블러즈는 1967년에 싱글 Grizzly Bear 를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52위에 올려 놓으며 데뷔 하였고, 이어서 데뷔 음반 The Youngbloods 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두번째로 발매된 싱글 'Get Together'는 차트 62위에 머무르며 소폭의 히트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2년후 미국의 '기독교 유태인 협의회(Christian-Jewish Reconciliation )'의 테마 송으로 사용되며 주목을 끌었고 WABC-AM 라디오를 통해 알려지며 차트에 다시 등장하여 Top 10에 오르는 히트를 하게 된다.

 

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영블러즈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자리한 Get Together 는 미국의 사이키델릭 밴드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Quicksilver Messenger Service)'의 디노 발렌티(Dino Valente)가 작곡한 곡으로 1966년 8월에 발표된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데뷔 음반 'Jefferson Airplane Takes Off' 에 먼저 수록 되었던 곡이며 영블러즈에 의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곡이다. 사이키델릭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명곡 Get Together 는 세월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Ian Matthews - Shake It

 

Ian Matthews - Shake It

이안 매튜 (Ian Matthews) : 1946년 6월 16일 영국 링컨셔(Lincolnshire)주 스컨소프(Scunthorpe) 출생
분류 : 싱어 송라이터(Singer/Songwriter), 포크 록(Folk Rock), 컨트리 포크(Country-Folk)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과 포크 록 팬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포크 록 그룹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의 창단 멤버인 이안 매튜 맥도널드(Iain Matthew McDonald)는 스컨소프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다. 1966년에 가수로 성공하기 위한 청운의 꿈을 안고 런던으로 가서 카너비 거리(Carnaby Street: 런던의 쇼핑가로 1960년대 젊은이들의 패션 중심지)의 한 구두 전문점에 취직하여 일을 하면서 야간에는 여러 무명 그룹들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는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된다.

 

여러 그룹들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갈망이 쌓여가던 차에 3인조 서프 뮤직(Surf Music: 196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시작된 대중음악 형식) 그룹 '피라미드(The Pyramid)를 결성하여 1967년 1월 데람 레코드(Deram Records)를 통해 싱글 음반 'Summer Of Last Year/Summer Evening'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피라미드가 데뷔 싱글을 발표할 즈음 애슐리 허칭스(Ashley Hutchings, 베이스)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 중이었다. 새로운 밴드에서 여성 보컬 쥬디 디블(Judy Dyble)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남자 가수를 찾던 애슐리 허칭스는 우연히 피라미드의 이안 매튜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 밴드에 합류할 것을 제의하여 페어포트 컨벤션의 창단 멤버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 당시 까지 이안 매튜는 이안 맥도널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페어포트 컨벤션에서 활동하며 석장의 음반에 참가한 후, 이안 매튜는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그룹인 '매튜스 서던 컴포트(Matthews' Southern Comfort)'를 결성하기 위해 1969년에 페어포트 컨벤션을 탈퇴하였다. 당시 킹 크림슨(King Crimson)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안 맥도널드(Ian MacDonald)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중간 이름을 사용한 이안 매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 부터였다.

 

매튜스 서던 컴포트는 1970년에 음반 Matthews' Southern Comfort 를 발표하였으며,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곡인 Woodstock 을 커버한 싱글을 11월에 발표하여 영국에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고 미국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하지만 과도기의 매튜스 서던 컴포트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이안 매튜는 또 다른 밴드인 '플레인송(Plainsong)'을 결성하여 1972년에 음반 In Search of Amelia Earhart 를 발표하였다.

 

이후 솔로 활동에 주력한 이안 매튜는 1978년에 음반 Stealin' Home 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 Shake It 을 빌보드 싱글 차트 13위에 올려 놓으며 솔로로서는 처음으로 빌보드 Top 40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히트 곡 Shake It 으로 인하여 이안 매튜는 팝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Steve Forbert - I'm In Love With You

 

Steve Forbert - I'm In Love With You

스티브 포버트 (Steve Forbert) : 1955년 12월 13일 미국 미시시피 주, 메리디안(Meridian) 출생


미국의 포크 록 싱어 송라이터인 스티브 포버트는 데뷔 음반을 발표하고 나서 스티브 포버트의 음색이 밥 딜런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The New Bob Dylan 이라는 평을 평론가들로 부터 받았다. 열한살때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고교 시절에는 몇군데의 지역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고교 졸업후에는 트럭 운전사로 일을 하다 스물 한살이 되던 해에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뉴욕에 정착한 스티브 포버트는 뉴욕의 명소인 그랜드 센트럴역(Grand Central Station) 인근의 맨해튼(Manhattan) 클럽가에서 다른 가수들의 출연 펑크를 대신 메우는 보조 가수로 노래를 하며 본격적인 프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클럽가를 전전하며 실력을 갈고 닦던 스티브 포버트는 1977년 마침내 넴페로(Nemperor) 레코드사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테네시(Tennessee)주 내슈빌(Nashville)의 스튜디오로 옮겨간 스티브 포버트는 부드러운 포크 록 스타일을 살린 시적인 가사의 자작곡들을 수록한 데뷔 음반 Alive on Arrival 을 만들어 1978년에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평론가들의 긍정적인 평과 함께 가능성을 인정받은 스티브 포버트는 1979년에 음반 커버를 흑백톤으로 처리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 두번째 음반 Jackrabbit Slim 을 발표하였고 음반에 실린 Romeo's Tun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Romeo's Tune 는 1976년 2월 22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흑인 여성 보컬 그룹 슈프림스(The Supremes)의 플로렌스 발라드(Florence Ballard)를 추모하며 그녀에게 헌정한 곡으로 스티브 포버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빌보드 차트 20위권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겨주었던 곡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두번째 음반의 I'm In Love With You 가 음악 다방과 음악 감상실을 중심으로 먼저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들어 라디오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엄청난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I'm In Love With You 는 포코(Poco)의 Sea Of Heart Break 와 함께 한국인이 사랑하는 발라드에서 빼놓을수 없는 곡이기도 하다. 한편 스티브 포버트는 1983년 여름에 발표된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뮤직 비디오인 Girls Just Wanna Have Fun 에 카메오(Cameo)로 출연하였는데 신디 로퍼의 남자 친구 역이었다. (이 글은 2009년 5월 16일 14시 03분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하여 다시 올리는 글입니다. 이전 글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