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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8일 화요일

Baltimora - Tarzan Boy

Baltimora - Tarzan Boy

1995년 3월 29일에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으로 사망한 영국 북아일랜드 런던데리(Londonderry) 출신의 '지미 맥쉐인'과 이탈리아 출신의 연주자들이 모여 결성된 신스 팝 밴드 '발티모라'의 출발은 1984년에 이탈리아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키보드 주자인 '마우리찌오 바씨'는 뉴웨이브를 추구하는 새로운 팝 밴드를 구상하고 연주자들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우연히 영국의 게이 단체에서 '루비(Ruby)'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아일랜드 적십자의 응급 구조 대원인 지미 맥쉐인에 대해서 전해 듣게 된다.

지미 맥쉐인은 탁월한 노래 실력과 춤 실력으로 이미 게이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물이었던 것인데 이를 전해 들은 마우리찌오 바씨가 그에게 연락하여 밴드의 보컬로 합류시키게 된다. 붉은 색의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화려하게 물들인 머리 카락을 휘날리며 밴드에 합류한 지미 맥쉐인의 모습을 본 마우리찌오 바씨는 바로 자신이 찾던 인물임을 확신하였으며 곧 바로 연주자들을 모아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탈리아 출신의 신스 팝 밴드 발티모라의 화려한 출발이었다.

발티모라는 데뷔 음반을 위해 'Tarzan Boy'를 비롯하여 경쾌한 뉴웨이브 음악으로 만들어진 여섯 곡의 노래를 만들어 녹음을 마친 후 1985년 4월에 데뷔 싱글로 'Tarzan Boy'를 먼저 선보이게 된다. 발티모라의 데뷔 싱글은 발표 이후 빠른 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하며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는데 3위 까지 진출 하였던 영국 싱글 차트를 시작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싱글 차트에서 각각 3위와 5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발티모라의 싱글 'Tarzan Boy'는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 빠른 속도로 상승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 나가게 되는데 스위스와 노르웨이의 싱글 차트에서는 4위 까지 진출했으며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아일랜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정상을 차지하며 전 유럽을 'Tarzan Boy'의 열풍으로 몰아넣게 된다.

유럽에서의 성공은 바다 건너 북미 지역으로도 이어지게 되는데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 진입한 'Tarzan Boy'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3위 까지 진출하여 유럽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발티모라의 인기가 바다를 건너오면서도 여전히 식지 않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싱글 'Tarzan Boy'가 성공하자 발티모라는 1985년 중반에 유럽 지역에서 먼저 데뷔 음반 'Living in the Background'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인 1986년에는 미국에서도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발티모라의 인기는 후속 싱글인 'Living in the Background'의 불발로 빠른 속도로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7위에 그친 'Living in the Background' 이후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걷던 발티모라는 1987년에 영국, 이탈리아, 독일, 멕시코, 일본에서만 발매된 두번째 음반 'Survivor in Love'에서도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발티모라의 데뷔 음반의 표지는 영국반과 미국반, 그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매된 세가지가 존재하는데 아래의 음반 표지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매된 음반의 표지이다.


발티모라 (Baltimora) :
지미 맥쉐인 (Jimmy McShane, 보컬) : 1957년 5월 23일 영국 런던데리(Londonderry)출생
조르지오 쿠치로보 (Giorgio Cocilovo) : 리드 기타
클라우디오 밧자리 (Claudio Bazzari) : 리듬 기타
삐에르 미켈라띠 (Pier Michelatti) : 베이스
마우리찌오 바씨 (Maurizio Bassi) : 키보드, 피아노
가브리엘레 멜로띠 (Gabriele Melotti) : 드럼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 팝(Synth Pop), 댄스(Danc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Tarzan Boy 감상하기 : http://youtu.be/_r0n9Dv6XnY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Frankie Valli - Can't Take My Eyes Off You

 

Frankie Valli - Can't Take My Eyes Off You

1960년에 결성되어 영국의 비틀즈(The Beatles)와 함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미국의 팝록 밴드인 '포 시즌스(The Four Seasons)'의 리더인 '프랭키 발리(본명: Francis Stephen Castelluccio)'는 밴드 활동 뿐 아니라 솔로로써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가수였다.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이탈리아계 부모로 부터 태어난 프랭키 발리는 일곱살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뉴욕에서 열린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의 공연을 본 후 깊은 감명을 받고 이때 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이발사였던 아버지에게 이발 기술을 배우며 일을 하면서도 프랭키 발리는 틈틈이 곡을 만들며 노래 부르는 작업을 계속했는데 이 당시 프랭키 발리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인물이 텍사스 출신의 가수인 '진 발리(Jean Valley)'였다. 이런 인연으로 프랭키 발리는 후일 자신의 예명을 진 발리와 같은 발음인 발리(Valli)로 정하게 된다. 1951년에 프랭키 발리는 '버라이어티 트리오(The Variety Trio)'라는 이름의 보컬 밴드와 함께 프로 가수로써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버라이어티 트리오가 해체되는 1952년 까지 트리오와 함께 공연 활동을 하게 된다.

1953년, 프랭키 발리라는 이름으로 첫번째 싱글인 'My Mother's Eyes'를 발표한 프랭키 발리는 이전 버라이어티 트리오에서 함께 활동했던 '토미 드비토(Tommy DeVito)'와 함께 '바리톤스(The Varitones)'라는 보컬 밴드를 1956년에 결성하게 된다. 밴드는 'RCA 빅터(RCA Victor)'와 계약을 앞두고 음반사 측의 요청으로 '포 러브스(The Four Lovers)'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1956년에 발표한 싱글 'You're the Apple of My Eye'가 소폭의 히트를 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포 러브스는 1960년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바로 그 유명한 '포 시즌스'라는 이름을 이때 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포 시즌스는 1962년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 'Sherry'를 시작으로 1968년 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정상의 밴드로 활동을 하게 된다. 프랭키 발리는 1967년에 밴드 활동을 겸해서 솔로로도 싱글을 발표했는데 바로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사랑 받고 있는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까지 진출하며 대형 히트를 했었는데 이후 1997년에 영화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에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 된다.

프랭키 발리 (Frankie Valli) : 1934년 5월 3일 미국 뉴저지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두왑(Doo W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rankievallifourseasons.com/
Can't Take My Eyes Off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NGFToiLtXro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The Zombies - Time of the Season

The Zombies - Time of the Season

영국의 록 밴드 좀비스는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주 세인트 알반즈(St Albans)에서 콜린 블런스톤과 로드 아젠트의 주도 하에 1961년에 출범하였다. 좀비스는 밴드 결성 후 유서 깊은 세인트 알반즈의 '올드 베룰레미언스 럭비 클럽(Old Verulamians Rugby Club)'에서의 공연 활동을 통해 작지만 명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하였는데 멤버 중 로드 아젠트와 폴 아킨슨, 그리고 휴 그런디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세인트 알반즈 학교(St Albans School)' 동창이었으며 로드 아젠트는 '세인트 알반즈 대성당(St Albans Cathedral Choir)'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지만 조금씩 자신들의 팬을 늘려 나가던 좀비스는 '런던 이브닝 뉴스(London Evening News)'가 후원하는 비트 그룹(beat-group) 경진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두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음반 계약도 성사시키게 된다. 음반 계약 후 좀비스는 1964년 7월 24일에 데카를 통해서 싱글 'She's Not Ther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되는데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12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0위권에 진입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많은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밴드 중 하나로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싱글의 성공 이후 좀비스는 다른 영국 밴드들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의 '폭스 대극장(Fox Theatre)'에서 열린 1964년 12월의 크리스마스 기념 공연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공연 참가 후 좀비스는 데뷔 음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65년 4월에 발표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Begin Here'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The Zombie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1967년 좀비스는 'CBS 음반사(CBS Records)'와 새롭게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두번째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좀비스의 두번째 음반 'Odessey and Oracle'은 영국에서는 1968년 4월 19일에 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두달후인 6월에 발매되었는데 이 음반이 데뷔 음반과 다른 점이라면 좀비스의 건반 주자인 로드 아젠트가 멜로트론 연주를 첨가하여 데뷔 음반 보다 더욱 아름다운 좀비스만의 사이키델릭 팝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 까지 진출한 히트 곡 'Time of the Season'은 좀비스가 남긴 명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간히 텔레비전 드라마나 광고 음악 등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화제를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한편 좀비스는 이 음반을 끝으로 해산하게 되는데 이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에 전념하다 1991년에 다시 재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좀비스 최고의 작품이자 사이키델릭 시대가 낳은 좀비스의 명반 'Odessey and Oracle'은 '록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말로 평가되고 있는데 음반을 들어본다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이런 음악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몹시 아쉬운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좀비스 (The Zombies) :
콜린 블런스톤 (Colin Blunstone, 보컬) : 1945년 6월 24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폴 아킨슨 (Paul Atkinson, 기타) : 1946년 3월 19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2004년 4월 1일 사망
크리스 화이트 (Chris White, 베이스) : 1943년 3월 7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로드 아젠트 (Rod Argent, 키보드) : 1945년 6월 14일 영국 하트퍼드셔 출생
휴 그런디 (Hugh Grundy, 드럼) :

갈래 : 사이키델릭 팝(Psychedelic Pop), 바로크 팝(Baroque Pop),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zombies.net/
Time of the Season 감상하기 : http://youtu.be/hfwFpRnOeGg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1977년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 2월 14일)에 월리 팔머, 마이크 스킬, 리치 콜(Rich Cole,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의 4인 구성으로 출범한 디트로이트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1983년에 발표한 음반 'In Heat'의 수록 곡인 'Talking In Your Sleep'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영국 출신의 다른 뉴웨이브 밴드들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밴드이다.

밸런타인데이에 결성되어 밴드 이름을 로맨틱스로 정한 밴드는 팝 음악 지향의 펑크(Punk)음악을 구사하며 디트로이트 지역과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이런 강렬한 파워 팝은 당시 막 시작된 뉴웨이브 음악의 흐름에 자연스레 편성되었으며 사람들에게 뉴웨이브 밴드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스파이더 음반사(Spider Records)'를 통해 1977년에 데뷔 싱글 'Little White Lies/I Can't Tell You Anything'를 발표한 로맨틱스는 이듬해인 1978년에 두번째 싱글 'Tell It To Carrie/First In Line'을 '밤 음반사(Bomp  Records)'를 통해 공개하였으나 두장의 싱글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2년여의 시간을 무명 밴드로 활동했던 로맨틱스는 마침내 1979년 8월에 '냄퍼러 음반사(Nemperor Records)'와 정식 음반 계약에 성공하고 9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하드 록 밴드인 '팔라딘(Paladin)'에서 멋진 해먼드 오르간 연주를 들려 주었던 '피터 솔리(Peter Soley)'가 프로듀서로 음반의 제작을 총지휘 하게 된다.

로맨틱스는 데뷔 음반 발표 전인 1979년에 데뷔 음반에 수록될 예정인 곡 'What I Like About You'를 싱글로 먼저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8위 까지 진출시켰으며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12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바다 건너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 까지 진출시키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멤버들이 화려한 붉은 색의 의상을 입고 표지에 등장한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 'The Romantics'는 1980년 1월 4일에 발표되어 싱글로 발표되었던 'What I Like About You'의 성공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6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What I Like About You'를 히트시킨 로맨틱스는 1980년 한해를 광고 출연등의 일정으로 바쁘게 보내다 12월에 두번째 음반 'National Breakout'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의 성공에 고무되어 잔뜩 기대를 안고 두번째 음반을 발표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두번째 음반에서는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였고 음반도 앨범 차트에서 176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게 된다.

로맨틱스는 두번째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1981년 9월에 녹음실로 돌아가 그해 10월에 심혈을 기울인 세번째 음반 'Strictly Perso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전작보다는 더한 참패로 끝나버리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2위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은 결국 밴드의 균열을 가져왔고 밴드 결성때 부터 함께 해왔던 마이크 스킬과 리치 콜이 로맨틱스를 탈퇴하여 로맨틱스는 해산의 위기를 겪게 된다.

멤버 두 사람의 탈퇴로 어쩔 수 없이 잠정 활동 정지에 들어간 로맨틱스의 남은 두 멤버는 새로운 멤버인 코즈 캔러를 받아들여 그에게 밴드의 리드 기타를 맡김으로써 밴드를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고 떠났던 마이크 스킬이 1982년에 다시 로맨틱스에 합류하면서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이전 까지 로맨틱스의 리드 기타를 담당했었던 마이크 스킬은 로맨틱스에 다시 합류하면서 부터 베이스를 담당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와 함께 1983년 5월에 녹음실로 들어간 로맨틱스는 6월 까지 새 음반을 녹음하여 그해 가을에 네번째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에서 제작 총지휘를 했던 피터 솔리가 객원 키보드 주자로 참여하여 사운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준 로맨틱스의 네번째 음반은 'In Heat'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첫번째 싱글로 'Talking in Your Sleep'을 발매하게 된다.

싱글로 발표된 'Talking in Your Sleep'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더니 1984년 2월에 3위 까지 진출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댄스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던 'Talking in Your Sleep'은 영국의 싱글 차트에도 올라 15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Talking in Your Sleep'은 우리나라에서도 댄스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곡이며 로맨틱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현재까지도 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 곡이다.

로맨틱스 (The Romantics) :
월리 팔머 (Wally Palmar)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코즈 캔러 (Coz Canler) : 기타
마이크 스킬 (Mike Skill) :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 (Jimmy Marinos) : 드럼

갈래 : 파워 팝(Power Pop), 뉴 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manticsdetroit.com/
Talking In Your Sleep 감상하기 : http://youtu.be/m6f_ANMxjUQ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Terry Jacks - Seasons In The Sun

 

Terry Jacks - Seasons In The Sun

캐나다의 가수 겸 작곡가 '테리 잭스'는 매니토바(Manitoba)주 위니펙(Winnipeg)에서 태어나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 밴쿠버(Vancouver)에서 성장하였으며 어릴때 부터 음악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테리 잭스가 십대가 되었을 무렵에는 스스로 곡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부터 가수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밴쿠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밴드인 '체스맨(The Chessmen)'에 보컬 겸 기타 주자로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밴쿠버 지역의 클럽들을 무대로 활동했던 체스맨은 캐나다의 CBC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음악 프로그램인 'Music Hop'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1964년 부터 1966년 사이에 네곡의 캐나다 싱글 차트 탑텐 진출 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체스맨이 'Music Hop'에 출연할 당시인 1965년에 테리 잭스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당시 열일곱살이던 여자 가수 '수잔 페스클레비츠(Susan Pesklevits)'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Evergreen'의 주인공으로 1967년에 테리 잭스와 결혼하여 '수잔 잭스(Susan Jacks)' 라는 이름으로 팝팬들에게 알려진 가수이다.

1966년에 체스맨에서 탈퇴한 테리 잭스는 'Music Hop' 출연을 계기로 친밀한 사이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한 수잔 페스클레비츠와 함께 듀오를 결성하여 클럽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다. 이들 듀오는 테리 잭스가 기타 반주를 담당했고 수잔 페스클레비츠가 보컬을 담당했었다. 고된 클럽 생활을 통해 사랑이 깊어진 두 사람은 1967년에 결혼하여 부부 듀오가 되었지만 듀오로 계속 활동하기에는 사운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에 두 사람은 멤버를 보강하기로 하고 '크레이그 맥코우(Craig McCaw, 기타)'와 '사트원트 싱(Satwant Singh, 드럼)'를 합류시켜 '파워라인(Powerline)'이라는 이름의 4인조 밴드로 재편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파워라인은 '윈킨 블린킨 앤 놉(Winkin' Blinkin' & Nob)'이라는 이름을 거쳐 최종적으로 '파피 패밀리(The Poppy Family)'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69년에 데뷔 음반 'Which Way You Goin' Billy?'를 발표하였고 1971년에 음반 'Poppy Seeds'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장을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파피 패밀리는 밴드의 주축인 수잔과 테리 부부가 1973년에 이혼한 후 서로 솔로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해산의 길을 걷게 된다. 수잔 잭스와 이혼 하기 바로 직전인 1973년에 테리 잭스는 아내인 수잔 잭스의 데뷔 음반 'I Thought Of You Again'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 'Seasons In The Sun'을 제작하여 '벨 음반사(Bell Records)'를 통해 1973년 12월에 음반의 타이틀 곡인 'Seasons In The Sun'을 싱글로 먼저 발표하였다.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가수 겸 작곡자인 '자크 브렐(Jacques Brel)'이 1961년에 'Le Moribond'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었던 곡을 영어로 번안한 곡인 'Seasons In The Su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후 1974년 3월 2일에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이후 3주간 1위 자리를 지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죽음을 앞둔 이가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내용의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Seasons In The Sun'은 테리 잭스 이전에 미국의 포크 트리오인 '킹스톤 트리오(The Kingston Trio)'와 영국의 비트 밴드인 '포춘스(The Fortunes)'가 먼저 싱글로 발표하였으나 테리 잭스의 곡 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한편 'Seasons In The Sun'은 1999년에 아일랜드의 팝 밴드인 '웨스트라이프(Westlife)'가 새롭게 편곡한 후 발표하여 다시 한번 주목 받기도 하였다.

테리 잭스 (Terry Jacks) : 1944년 3월 29일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 출생
 
갈래 :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Seasons In The Sun 감상하기 : http://youtu.be/iA6BqS9FlQ0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Fleetwood Mac - Dreams

 

Fleetwood Mac - Dreams

1977년에 발표한 음반 'Rumours'로 1천 9백만장이 넘는 사상 초유의 기록적인 음반 판매를 기록했던 영국 밴드 '플리트우드 맥'은 블루스 록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영국 블루스 록 밴드인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에서 시작되었다. 1966년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을 대신하여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 기타 주자로 가입했었던 '피터 그린(Peter Green)'은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이듬해인 1967년에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탈퇴할 당시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는 존 맥비와 믹 플리트우드가 피터 그린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피터 그린은 1967년의 어느 날 밴드 탈퇴를 결심하고 두 사람에게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의 결성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런던에서 1967년에 결성된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는 피터 그린의 제안에 따라 믹 플리트우드와 존 맥비의 이름을 따서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결성 이후 밴드의 활동 상황을 살펴 보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의 플리트우드 맥 멤버들은 밴드의 완성을 위해 나머지 멤버를 찾게 되는데 먼저 합류한 인물이 미국의 블루스 기타 주자인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광팬이었던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였으며 마지막으로 베이스 주자인 '밥 브러닝(Bob Brunning)'이 임시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밴드의 체제를 완성한 플리트우드 맥은 1967년 8월 13일에 '윈저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The Windsor Jazz and Blues Festival)'에 참가하여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된다.

음악 축제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한 플리트우드 맥은 영국의 신생 블루스 음악 레이블인 '블루 호라이즌(Blue Horizon)'과 어렵지 않게 음반 계약을 맺을수 있게 되었다. 1967년 11월,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간 다섯명의 플리트우드 맥은 1968년 2월 14일에 음반 'Fleetwood Mac'을 발표하면서 음반 데뷔를 하였다. 피터 그린이 주도하는 블루스 음악으로 채워진 플리트우드 맥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앨범 차트에 37주 동안 머무르며 최종 4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플리트우드 맥은 싱글 'Black Magic Woman'과 'Need Your Love So Bad'를 발표하여 히트 시킨 후 두번째 음반 'Mr. Wonderful'을 1968년 8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 부터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 1968년에 존 맥비와 결혼 후 크리스틴 맥비로 알려짐)'가 보조 연주자로 참여하여 건반 악기를 담당하게 된다. 두번째 음반 발표 후 플리트우드 맥은 리듬 파트 보강을 위해 당시 열여덟살이었던 기타 주자 '대니 커완(Danny Kirwan)'을 발탁하여 플리트우드 맥의 일원으로 합류시켰다.

플리트우드 맥은 대니 커완과 함께 1969년 1월에 싱글 'Albatross'를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싱글 'Albatross'를 히트 시킨 플리트우드 맥은 1969년 9월에 세번째 음반 'Then Play On'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을 끝으로 피터 그린이 플리트우드 맥에서 완전히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떠난 플리트우드 맥은 이때 부터 블루스 지향의 음악에서 소프트 록 쪽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첫번째 변화가 제레미 스펜서와 대니 커완의 기타를 주축으로 하여 1970년 9월에 발표한 네번째 음반 'Kiln House'였다.

하지만 이 음반 발표 후 제레미 스펜서 마저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에서 탈퇴해 버리자 플리트우드 맥은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던 크리스틴 맥비와 '밥 웰치(Bob Welch)'를 새로운 멤버로 받아 들이면서 팝 취향이 강한 음악들을 선보이게 된다. 밥 웰치는 1971년 음반 'Future Games' 부터 1974년 음반 'Heroes Are Hard to Find'까지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을 탈퇴하였다. 이에 플리트우드 맥은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을 새로운 멤버로 맞아 들이면서 밴드 역사상 최강의 진용으로 밴드를 정비하였다.

플리트우드 맥은 새로운 멤버들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열번째 음반 'Fleetwood Mac'을 1975년 7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Over My Head', 'Rhiannon', 'Say You Love Me'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0위 권에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고 음반도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3위에 그쳤지만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때 까지 밴드가 발표한 음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음반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밴드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플리트우드 맥이었지만 밴드 내부적으로는 이 시기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바로 존 맥비와 크리스틴 맥비 부부가 파경을 앞두고 있었고 연인 사이였던 스티브 닉스와 린지 버킹햄이 결별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76년에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플리트우드 맥에 조성되었으나 플리트우드 맥은 새 음반 'Rumours'의 녹음을 위해 마이애미와 할리우드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조성된 멤버들간의 긴장감이 오히려 음반 녹음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플리트우드 맥이 1977년 2월에 발표한 새음반 'Rumours'는 'Dreams', 'Don't Stop', 'You Make Loving Fun', 'Go Your Own Way'까지 네곡의 싱글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에서 동시에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 했던 히트 곡 'Dreams(영국 24위)'와 3위를 차지했던 곡 'Don't Stop(영국 32위)', 그리고 9위 까지 진출했던 곡 'You Make Loving Fun(영국 45위)'과 10위를 기록했던 'Go Your Own Way(영국 38위)'를 앞세운 음반 'Rumours'는 음반 판매에 있어서도 1천 9백만장을 훌쩍 넘기며 록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음반 'Rumours'는 우리나라에서도 앞서 언급 했던 히트 곡들 외에 'Songbird', 'The Chain'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이 되었으며 음반은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명반으로 사랑받고 있다.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 :
스티브 닉스 (Stevie Nicks, 보컬) : 1948년 5월 26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린지 버킹햄 (Lindsey Buckingham, 기타) : 1949년 10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크리스틴 맥비 (Christine McVie, 키보드) : 1943년 7월 12일 영국 컴브리아(Cumbria) 출생
존 맥비 (John McVie, 베이스) : 1945년 11월 26일 영국 런던 출생
믹 플리트우드 (Mick Fleetwood, 드럼) : 1947년 6월 24일 영국 콘월(Cornwall)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leetwoodmac.com/
Dreams 감상하기 : http://youtu.be/bDthfYFsWH0
Don't Stop 감상하기 : http://youtu.be/a8arvEzHsA8

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Louise Tucker - Midnight Blue

 

Louise Tucker - Midnight Blue

영국의 메조소프라노 가수 '루이스 터커'는 1982년에 발표한 음반 'Midnight Blue'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를 히트시키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 뚜렷한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면서 팝계에서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오페라 가수이다. 런던의 '길드홀 스쿨 오브 뮤직 앤드 드라마(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에서 오페라 가수 교육을 받은 루이스 터커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로버트 카슨(Robert Carson)' 감독이 연출을 담당한 이탈리아 오페라 '라 칼리스토(La Calisto)'로 데뷔하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 이후 루이스 터커는 신스 팝과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이든 프로젝트(Eden Project)'를 구상하고 있던 음반 제작자 '팀 스미트(Tim Smit)'와 '찰리 스카벡(Charlie Skarbek)'의 권유로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팝 음악의 세계로 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이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루이스 터커는 팀 스미트의 지도 아래 '베토벤(Beethoven)'의 3대 피아노 소나타라고 알려져 있는 제8번 '비창(Sonata Pathetique)'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데모 곡 'Midnight Blue'를 시험삼아 녹음하게 된다.

루이스 터커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에 만족한 팀 스미트는 자신의 친구이자 음반 제작자인 찰리 스카벡에게 루이스 터커의 음반 제작을 맡기게 된다. 찰리 스카벡은 루이스 터커의 음반 제작을 총지휘하는 한편으로 음반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에 직접 참가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2년 11월, 이든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루이스 터커의 데뷔 음반이 세상에 공개되고 싱글 'Midnight Blue'가 발매되자 싱글 음반은 예상 외의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반응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네덜란드(13위)와 프랑스(3위)의 싱글 차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며 히트하기 시작한 싱글 'Midnight Blue'는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상위권에 진출하였고 캐나다(7위)와 미국(46위)을 거쳐 본국인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1983년 4월에 59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다. 싱글 'Midnight Blue'는 이후 스웨덴(6위), 덴마크(1위), 독일(51위), 호주(27위)를 거쳐 아시아권으로 옮겨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히트 곡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27위에 그쳤지만 음반의 타이틀 곡인 'Midnight Blue'의 히트로 전세계적으로 5백만장이 넘게 팔려 나간 루이스 터커의 데뷔 음반 'Midnight Blue'에는 히트 곡인 'Midnight Blue'외에도 영국의 라이트뮤직(Light Music) 작곡가인 '로널드 빈지(Ronald Binge)'의 작품인 'Elizabethan Serenad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인 'Only For You'가 우리나라 팝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루이스 터커는 데뷔 음반 발표 이후 텔레비전 출연 등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1983년에 두번째 음반 'After The Storm'을 발표하였으며 이 음반에서 'Dancing by Moonlight'을 히트시킨후 오페라 무대로 복귀하였다. 오페라로 돌아간 루이스 터커는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시(Pergolesi: 1710-1736)의 작품인 '스타바트마테르(Stabat Mater, 성모애상)'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Verdi)의 레퀴엠(Requiem), 그리고 현대 음악 작곡가인'존 루터(John Rutter)'의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오페라 경력을 쌓아 나갔으며 현재는 젊은 성악가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루이스 터커 (Louise Tucker) : 1956년 영국 브리스틀 출생

갈래 : 신스 팝(Synthpop), 클래시컬(Classical),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louisetucker.co.uk/
Midnight Blue 감상하기 : http://youtu.be/9Szjt3-2F5U
Only For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Rthj1nqfzgI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아르헨티나 산타페(Santa Fe)주 베나도뚜에르또(Venado Tuerto)에서 영국군 대령으로 복무하고 있던 아버지와 영국 왕 '헨리 3세(1216-1272 재위)'의 대법관인 '휴버트 디 버그(Hubert de Burgh)'의 후손으로 영국 외교관의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가수 '크리스 디 버그(본명: Christopher John Davison)'는 우리나라 팝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곡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이 노래는 해마다 4월이면 꾸준히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팝팬들의 애청곡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크리스 디 버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남동부 렌스터(Leinster)주 웩스퍼드(Wexford)에 있는 12세기에 지어진 휴버트 디 버그의 '바르지 성(Bargy Castle)'을 구입하여 호텔로 개조하고 정착하게 된다. 어릴때 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크리스 디 버그는 호텔의 공연장 무대에서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 보고는 했는데 이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된다. 결국 크리스 디 버그는 틈날때 마다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경력을 쌓아 나가게 된다.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의 영문과에 진학한 크리스 디 버그는 학업과 병행하여 틈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크리스 디 버그는 가족 소유의 호텔로 돌아와 호텔내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랐으며 이때 부터 어머니의 처녀 때 성인 '디 버그(De Burgh)'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 호텔내 공연장에 모습을 보이던 크리스 디 버그는 1972년 10월의 어느 날 저녁에 단골 손님을 위한 파티에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 공연을 지켜보던 '에그 음반사(Egg Records)' 관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생애 처음으로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에그에서 발표한 소량의 싱글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져 갔으며 음반 계약 역시 흐지부지 파기되고 말았다.

에그 음반사와의 계약이 실패로 마무리 된 후 때를 기다리던 크리스 디 버그는 마침내 1974년에 대형 음반사인 'A&M 음반사(A&M Records)'와 정식으로 음반 계약을 하고 음반사의 후원으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수퍼트램프(Supertramp)'의 'Crime of the Century' 순회 공연에 보조 출연자로 참가하여 팬들과 대형 무대에서 만날 기회를 잡게 된다. 수퍼트램프와의 공연을 마감한 후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2월에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를 발표하였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음악에 영향받아 제작된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은 영국 차트 진입을 기대하며 발표한 음반이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팬들에게 외면 받았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싱글 차트 진입에 실패하며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의외의 나라에서 히트 곡을 만들게 되는데 바로 바다 건너 브라질에서 였다.

크리스 디 버그의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Turning Round'가 17주 동안 브라질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머무르는 히트를 하였던 것이다. 이로인해 크리스 디 버그는 브라질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데뷔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후속 음반 작업을 서둘러 마친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두번째 음반 'Spanish Train and Other Stories'을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발매한 크리스마스 싱글 'A Spaceman Came Travelling'이 마침내 기다리던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였고 40위권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예수님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만든 곡인 'A Spaceman Came Travelling'은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과의 조우, 그리고 외계인이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음악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1977년에 세번째 음반 'At the End of a Perfect Day'를 발표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이때 부터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1979년 크리스 디 버그는 네번째 음반 'Crusader'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와 여러 차례 음반 작업을 했던 '앤드루 파웰(Andrew Powell)'이 제작을 담당하여 오케스트라 편곡과 합창단을 음반에 포함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창조해내었다.

네번째 음반의 수록 곡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곡인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외에도 앤드루 파웰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 주고 있는 음반의 타이틀 곡 'Crusader'를 비롯하여 역시 앤드루 파웰의 피아노가 삽입된 곡들인 'Just In Time', 'Old-Fashioned People', 'You And Me'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 디 버그 (Chris De Burgh) : 1948년 10월 15일 아르헨티나 베나도 뚜에르또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deb.com/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감상하기 : http://youtu.be/FRp_KGtdQpU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Lou Reed - Perfect Day

 

Lou Reed - Perfect Day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가수 겸 작곡가이자 사진 작가인 '루 리드(본명: Lewis Allan Reed)'는 무엇을 알고 있던 그 이상의 위치를 록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탁월한 음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 리드는 십대 시절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자신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록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되고자 했던 루 리드는 고교 시절에 몇몇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쉐이즈(The Shades)'라는 이름의 '두왑(doo wop: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의 코러스 중 하나)' 밴드에서 활동할 때는 싱글 음반 녹음에 참여하여 생애 첫 음반 녹음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루 리드의 이런 밴드 활동을 못마땅해 했던 루 리드의 부모는 아들의 동성애 성향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기 충격 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을 받게 만들었는데 이때의 충격적인 경험은 후일 루 리드로 하여금 'Kill Your Sons(1974년)'라는 노래를 만들게 하였다.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 입학한 루 리드는 신문학(Journalism)과 영화학(Film Director)을 전공하면서 틈나는 대로 음악 활동을 계속 하게 된다. 이미 같은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기타 연주자로 대접받고 있던 루 리드는 지역의 심야 라디오 방송에 고정 출연하여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63년에 뉴욕의 '피크위크 레코드(Pickwick Records)'의 작곡가로 취업하게 된 루 리드는 대학을 졸업한 1964년에 싱글 'The Ostrich'를 만들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음반사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성이 강했던 이 싱글은 루 리드가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음악이었다. 이에 루 리드는 '프리미티브(The Primitives)' 라는 이름의 전위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프리미티브에는 전위 음악에 심취해 있던 웨일즈 출신의 음악인 '존 케일(John Cale, 비올라, 오르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미티브의 활동을 통해 서로의 음악적 취향이 비슷함을 발견한 루 리드와 존 케일은 뉴욕의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함께 거주하며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게 된다. 루 리드는 대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기타)'과 '모린 터커(Maureen Tucker, 드럼)'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밴드에 합류시켜 4인조의 새로운 밴드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그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이다.

밴드의 이름인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존 케일의 친구인 비디오 아티스트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멤버들에게 보여준 성인 잡지에서 그 단어를 발견하고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여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루 리드를 비롯하여 멤버 모두가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많이 모여들던 뉴욕의 나이트 클럽 '맥스 캔사스 시티(Max's Kansas City)'에 고정 출연하게 되면서 주목 받게 되는데 당시 클럽을 자주 찾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연주에 감탄하여 그들의 매니저를 자칭하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루 리드에게는 스승과 같았던 앤디 워홀의 도움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되는데 앤디 워홀은 독일의 모델이자 배우였던 '니코(Nico)'를 밴드에 합류시켜 밴드의 일원으로 음반을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음반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1967년에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노란 바나나를 표지에 그려 넣고 세상에 공개 되었다.

루 리드는 데뷔 음반 발표 이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일원으로 'Sweet Jane'이 수록된 1970년 음반 'Loaded'까지 네장의 정규 음반에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1970년 8월에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탈퇴하였다. 'RCA 음반사(RCA Records)'와 계약한 루 리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스티브 하우(Steve Howe, 기타)'와 '릭 웨이크먼(Rick Wakeman, 피아노, 키보드)'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을 초빙하여 1971년 12월 부터 1972년 1월 까지 솔로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루 리드는 많은 기대를 안고 1972년 6월에 자신의 데뷔 음반을 공개하였지만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9위에 머무르며 부진을 거듭하다 차트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실패로 끝난 데뷔 음반을 만회하기 위해 루 리드는 1972년 8월에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믹 론슨(Mick Ronson)'의 지휘 아래 새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1972년 12월 8일에 발표된 루 리드의 두번째 음반 'Transformer'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6위 까지 진출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0위 까지 진출했던 히트 싱글 'Walk on the Wild Side'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앨범 차트에서 29위 까지 진출하며 루 리드에게 성공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 음반은 미국에서의 성공에 이어 이듬해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도 13위 까지 진출하였다.

강력한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글램 록을 들려 주는 루 리드의 초기 명반 'Transformer'에는 히트 곡 'Walk on the Wild Side' 외에도 완벽했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한 피아노 연주를 배경삼아 읊조리듯 노래하는 명곡 'Perfect Da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1996년에 개봉되었던 '이완 멕그리거(Ewan McGregor)' 주연의 영국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루 리드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루 리드 (Lou Reed) : 1942년 3월 2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앨범 록(Album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loureed.com/
Perfect Day 감상하기 : http://youtu.be/2uK9L2DaWa8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Cat Stevens - Morning Has Broken

1977년 12월에 회교도로 개종하면서 '유서프 이슬람(Yusuf Islam)'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는 유서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다중 악기 연주자인 '캣 스티븐스(본명: Steven Demetre Georgiou)'는 런던의 샤프츠베리 애버뉴(Shaftesbury Avenue)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그리스 키프로스 섬 출신의 아버지와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새째 아들로 태어났다. 캣 스티븐스가 여덟살때 그의 부모는 이혼을 하였지만 식당은 부부 공동 명의로 계속 운영되어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고 성장하였다.

그리스 정교도였던 아버지와 스웨덴의 루터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캣 스티븐스는 카톨릭 학교인 세인트 조셉 로만 카톨릭 초등 학교(St. Joseph Roman Catholic Primary School)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즈음 부터 피아노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열다섯살 무렵인 1963년에는 영국의 팝계에 혜성 같이 등장하여 영국 팝계를 정복하기 시작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기타를 손에 들게 된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얻어 8파운드를 주고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기타로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들던 캣 스티븐스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거리 악사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자주 인근의 거리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때 부터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지역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만화 그리기에도 흥미를 느껴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Hammersmith School of Art)'에서 1년 과정으로 만화 그리기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캣 스티븐스는 자신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에서 직접 표지를 그리게 된다.

또한 해머스미스 예술 학교에 다니던 1965년에 캣 스티븐스는 '스티브 아담스(Steve Adams)'라는 예명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음악 출판사와 계약하고 자신이 만든 노래인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를 출판사를 통해 공개하기도 하였다. 악보 출판 이후 캣 스티븐스는 밴드의 일원으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 등의 무대를 통해 계속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나 이내 자신과 밴드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티브 아담스라는 이름 대신 캣 스티븐스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캣 스티븐스의 눈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하는 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열여덟살이 되던 1966년에 캣 스티븐스는 매니저이자 음반 제작자인 '마이크 허스트(Mike Hurst)'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레이블인 '데람 음반사(Deram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한 캣 스티븐스는 1966년에 데람을 통해서 데뷔 싱글 'I Love My Dog'을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에서 28위에 올려 놓은 캣 스티븐스는 1966년 12월에 두번째 싱글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시키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1967년 3월에는 두곡의 히트 곡이 포함된 데뷔 음반 'Matthew and Son'을 발표하였으며 세번째 싱글로 'I'm Gonna Get Me a Gun'을 발표하여 싱글 차트에서 6위 까지 진출 시켰다. 캣 스티븐스는 성공적인 데뷔 음반 발표 이후 1967년 12월에 두번째 음반 'New Masters'를 발표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2년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한 캣 스티븐스는 1970년 7월에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던 세번째 음반 'Mona Bone Jakon'을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네번째 음반인 'Tea for the Tillerman'은 1970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곡 'Wild Worl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데뷔 싱글인 'I Love My Dog(118위)'과 'Matthew and Son(115위)'에 이어 세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곡이 20위권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싱글의 성공으로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였고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는 20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71년 10월 캣 스티븐스는 다섯번째 음반인 'Teaser and the Firecat'를 발표하여 세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히트 곡 'Moonshadow(30위)', 'Peace Train(7위)', 'Morning Has Broken(6위)'을 탄생시켰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한 이 음반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캣 스티븐스는 1972년 9월에 발표한 후속 음반 'Catch Bull at Four'로 마침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Morning Has Broken'은 19세기에 만들어진 찬송가로 193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던 곡으로 캣 스티븐스에 의해 아름다운 포크 음악으로 재탄생하여 팝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캣 스티븐스 (Cat Stevens) : 1948년 7월 21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소프트 록(Soft Rock), 포크 록(Folk-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yusufislam.org.uk/
Morning Has Broken 감상하기 : http://youtu.be/U5sSEkZ86ts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Linda Ronstadt - It's So Easy

 

Linda Ronstadt - It's So Easy

미국 애리조나 주 남쪽의 휴양 도시인 투손(Tucson)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린다 론스태드(본명: Linda Maria Ronstadt)'는 컨트리 팝을 비롯하여 포크,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오페레타 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발표하며 활동하였고 1970년대 중반 부터 1980년 초 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다. 그녀가 1970년에 발표했던 곡인 'Long, Long Time'과 1977년 발표 곡인 'It's So Easy'는 팝팬들의 오랜 애청곡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9년에 발표했던 소울 가수 '아론 네빌(Aaron Neville)'과의 듀엣 곡 'Don't Know Much'는 새로운 팬들을 만들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린다 론스태드는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던 어머니와 기계 부품 사업을 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명의 남자 형제와 여동생을 둔 린다 론스태드는 10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목장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들 가족은 1953년에 발행된 미국의 여성지인 '패밀리 서클(Family Circle)'에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부족한 것이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린다 론스태드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기타 주자인 '밥 키멀(Bob Kimmel)'을 만나면서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생 항로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린다 론스태드가 대학에 다니고 있던 1960년대 중반의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포크 록과 컨트리 록의 부흥 운동으로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밥 키멀과 만난 린다 론스태드는 그와 듀오로 포크 음악들을 노래하며 새로운 흐름에 일조하게 된다. 밥 키멀과의 활동이 만족스러웠던 린다 론스태드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와 함께 로스 앤젤레스로 옮겨 가서 새로운 음악 동지인 '케니 에드워즈(Kenny Edwards)'를 만나 포크 트리오인 '스톤 포니스(The Stone Poneys)'를 1965년에 결성하였다.

린다 론스태드는 스톤 포니스의 일원으로 1967년 1월 30일에 발표한 데뷔 음반 'The Stone Poneys'를 시작으로 6월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Evergreen, Volume 2'와 1968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이자 트리오의 마지막 음반인 'Linda Ronstadt, Stone Poneys and Friends, Vol. III' 까지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트리오에서 탈퇴하게 된다. 스톤 포니스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 'Hand Sown ... Home Grown'을 1969년 3월에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한 린다 론스태드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 곡인'Long, Long Time'이 수록되어 있는 두번째 음반 'Silk Purse'를 1970년 3월에 발표하였다.

컨트리 음악을 시도한 두번째 음반 'Silk Purse'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3위를 기록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시기에 '도어스(The Doors)'나 닐 영(Neil Young), 그리고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같은 유명 가수들과 함께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 포크 록을 시도한 음반 'Linda Ronstadt(163위)'를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1973년에 네번째 음반 'Don't Cry Now(45위)'를 발표하여 그룹 '이글스(The Eagles)'의 '돈 헨리(Don Henley)'와 '글렌 프레이(Glenn Frey)'가 만든 곡인 'Desperado'를 시작으로 'Love Has No Pride'와 'Silver Threads and Golden Needles'를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시키면서 히트를 시켰다.

1974년 11월에 린다 론스태드는 자신의 출세작인 다섯번째 음반 'Heart Like a Wheel'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You're Not Good'이 발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형 히트를 하였고 이어진 두번째 싱글 'When Will I Be Loved'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였다. 세번째 싱글 'It Doesn't Matter Anymor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7위 그쳤으나 두 곡의 대형 히트 곡으로 린다 론스태드의 음반 'Heart Like a Wheel'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51주간이나 앨범 차트에 머무르게 된다.

이 음반으로 대형 인기 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후 여자 가수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5년 9월에 발표한 음반 'Prisoner in Disguise'는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였고 1976년 8월에 발표한 음반 'Hasten Down the Wind'는 앨범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히트 곡 'It's So Easy'가 수록된 음반 'Simple Dreams'를 1977년 9월에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음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또 다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1978년 9월에 발표한 음반 'Living in the USA'에서는 'Back in the U.S.A.'와 'Ooh Baby Baby'를 히트시키면서 2연속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즈음 부터 린다 론스태드에게는 '록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of Rock)'나 '록의 여왕(Queen of Rock)'이라는 호칭이 따라 다니게 된다. 그래미 상을 10회나 수상하며 음악성을 인정 받았던 린다 론스태드는 1976년의 그래미 상에서 'Heart Like a Wheel' 음반에 수록되었던 곡인 'I Can't Help It (If I'm Still In Love With You)'로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Best Country Vocal Performance Female)'을 수상하면서 생애 첫 그래미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었다.

린다 론스태드 (Linda Ronstadt) : 1946년 7월 15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ronstadt-linda.com/
It's So Easy 감상하기 : http://youtu.be/_AtnfDo4PE8
Long, Long Time 감상하기 : http://youtu.be/gG4lsjSY_vk
Don't Know Much 감상하기 : http://youtu.be/soO0CMnU9Bo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본명이 '베리 알란 핀커스(Barry Alan Pincus)'인 미국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반 제작자로 유명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의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다 팝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가수이다. 유대인인 배리 매닐로우는 아버지가 두살때 가족을 버리고 떠나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인 '에드너 매닐로우(Edna Manilow)'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도 어머니의 처녀적 성인 매닐로우를 물려 받아 사용하게 된다.

일곱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시 브루클린(Brooklyn)에 있었던 '이스턴 디스트릭트 고등학교(Eastern District High School, 1995년 폐교)'를 졸업한 1961년 부터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배리 메닐로우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CBS 방송국(Columbia Broadcasting System)'에서 아르바이트를 자리를 구해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해야 했다.

그러던 1964년에 배리 매닐로우는 방송국에서 뮤지컬 감독 '브로 헤로드(Bro Herrod)'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새로운 음악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평소 범상치 않았던 배리 매닐로우의 작곡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브로 헤로드는 자신이 무대에 올릴 예정인 뮤지컬 'The Drunkard'에 사용될 음악들을 그동안 늘 염두에 두고 있던 배리 매닐로우에게 다듬어 줄 것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는 브로 헤로드의 부탁을 받아들여 뮤지컬에 사용될 모든 곡을 새롭게 만들어서 건네주게 된다.

이렇게해서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브로드웨이 바깥에 있는 전문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The Drunkard'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며 8년간 장기 공연되었다. 이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음악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뮤지컬 작업으로 자신감을 얻은 배리 매닐로우는 본격적으로 팝 음악에 뛰어들어 피아노 연주자와 음반 제작자, 편곡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0년 부터는 광고 음악에도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당시 막 데뷔를 준비중이던 신인 가수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를 만나 그녀의 1972년 데뷔 음반 'The Divine Miss M'과 1973년에 발표했던 두번째 음반 'Bette Midler'에서 피아노 연주와 프로듀서로 음반 작업에 참가하여 베트 미들러를 인기 가수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한편 베트 미들러의 'The Divine Miss M'의 순회 공연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던 배리 매닐로우는 그후에도 그녀와 함께 공연 활동을 했으며 둘의 이러한 관계는 1975년 까지 이어지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는 베트 미들러와의 음악 작업과는 별개로 자신의 음반 데뷔를 준비하여 1973년 7월 7일에 데뷔 음반 'Barry Manilow I'을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배리 매닐로우는 자신의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 28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74년 10월에 두번째 음반 'Barry Manilow II'를 발표하였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9위에 올랐던 두번째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배리 매닐로우에게 성공 시대를 열어주었던 곡 'Man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미국 가수인 '스코트 잉글리시(Scott English)'가 1971년에 발표하여 히트 시켰던 곡 'Brandy'를 편곡하여 제목을 살짝 바꾸어 수록한 곡이었다.

싱글 'Mandy'의 성공 이후 배리 매닐로우는 두번째 싱글인 'It's a Miracle'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에 올려 놓으며 인기 행진을 이어 갔다. 1975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Tryin' to Get the Feeling'에서는 'Mandy'에 이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인 'I Write the Songs'을 배출하였으며 두번째 싱글인 'Tryin' to Get the Feeling Ag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진출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 음반 'This One's for You'에서도 두 곡의 히트 싱글 'Looks Like We Made It(1위)'과 'Weekend in New England(10위)'를 배출했던 배리 매닐로우는 이 음반에 수록된 'Daybreak'의 라이브 버전을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에 올려 놓았다. 배리 매닐로우는 1978년에 음반 'Even Now'를 발표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Can't Smile Without You(3위)'를 시작으로 'Copacabana(8위)'와 'Somewhere in the Night(9위)'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3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게 된다.

1979년에 발표한 음반 'One Voice'에서는 'I Don't Want to Walk Without You(36위)'와 'When I Wanted You(20위)'를 히트시켰으며 1980년 음반 'Barry'에서는 'I Made It Through the Rain(10위)'과 'Lonely Together(45위)'를 히트시켰다. 이어진 1981년 음반 'If I Should Love Again'을 통해 'The Old Songs(15위)', 'Let's Hang On(32위)', 'Somewhere Down the Road(21위)'등 세곡을 히트시킨 배리 매닐로우는 1982년에 음반 'Here Comes the Night'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에서는 'Memory(39위)'만이 차트에 진입하면서 부진에 빠져들게 된다.

비록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Here Comes the Night' 음반에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경쾌한 리듬의 곡 'Some Kind Of Friend'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그 경쾌함으로 인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배리 매닐로우가 2005년에 발표했었던 음반 'The Essential Barry Manilow'에는 앞서 언급한 곡들 외에도 배리 매닐로우가 차트에 진출시켰던 모든 곡들이 두장의 시디에 포함되어 있어 그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더듬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른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 (Barry Manilow) : 1946년 6월 17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 Rock),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anilow.com/
Some Kind Of Friend 감상하기 : http://youtu.be/3c-35YPi6hM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Lulu - To Sir With Love

 

Lulu - To Sir With Love

영국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항구 도시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룰루는 '마리 맥도널드 맥라플린 로리(Marie McDonald McLaughlin Lawrie)'라는 긴 이름을 본명으로 가지고 있는 가수 겸 작곡가이며 1967년에 개봉했던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의 출연으로 유명해진 영화 배우이기도 하다.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룰루는 아홉살때 처음으로 글래스고의 클럽 무대를 통해 아역 가수로 팝계에 데뷔하였다. 데뷔 무대를 가진 이후 룰루는 글래스고 출신 밴드의 보조를 받으며 꾸준히 클럽에 출연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름을 알려나가게 된다.

열두살이 되던 해 부터는 정식으로 매니저를 고용하여 좀더 전문적인 관리를 받게 되는데 이 즈음 그녀의 매니저는 밴드의 보컬을 맡아줄 가수를 찾고 있던 '벨록스(The Bellrocks)'라는 이름의 밴드에 룰루를 가입시켜 매주 토요일 밤의 클럽 무대를 뜨겁게 달구기도 하였다. 클럽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 인기를 얻어 가던 룰루는 열여섯살이 되던 해인 1964년에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싱글 음반 계약을 맺고 흑인 소울 밴드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가 1959년에 발표했던 곡인 'Shout'를 커버하여 데뷔 싱글로 발표하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하며 룰루에게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주었던 데뷔 싱글은 '룰루 앤 루버스(Lulu & The Luvvers)'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었는데 룰루의 백밴드로 참가하고 있는 루버스는 스코틀랜드 출신 록 밴드로써 히트 곡 'Shout'가 밴드의 이름으로 거둔 최고의 성적이기도 했다. 룰루는 1965년에 히트 곡 'Shout'가 수록된 데뷔 음반 'Something to Shout About'를 발표한 후 이듬해에 영국 록 밴드인 '홀리스(The Hollies)'와 함께 폴란드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당시로써는 공산권 국가에 순회 공연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영국 출신의 여자 가수로써는 최초의 시도였다.

폴란드 공연을 마친 후 영국으로 돌아온 룰루는 데카를 떠나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1967년에 싱글 'The Boat That I Row'를 발표하여 다시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시켰다. 싱글이 성공하면서 룰루의 인기가 높아지자 컬럼비아 영화사에서는 룰루에게 영화 출연을 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가 주연을 맡은 1967년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에 출연하게 된 룰루는 연기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더불어 영화 주제가인 'To Sir With Love'의 히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에 올랐던 곡 'To Sir With Love'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애청 곡이자 팝의 고전으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한편 룰루는 'To Sir With Love'를 히트시킨 후 가수 활동과 함께 꾸준히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게 되지만 더이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룰루 (Lulu) : 1948년 11월 3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luluofficial.com/
To Sir With Love 감상하기 : http://youtu.be/FbLs80cuots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I Pooh - Un Po' Del Nostro Tempo Migliore

 

I Pooh - Un Po' Del Nostro Tempo Migliore

이 뿌 (I Pooh) :
로비 파끼니띠 (Roby Facchinetti) : 보컬, 피아노, 키보드
도디 바딸리아 (Dodi Battaglia) : 기타, 보컬
레드 칸치안 (Red Canzian) : 베이스
스테파노 도라지오 (Stefano D'Orazio) : 드럼

갈래 : 팝 록(Pop/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이탈리안 팝(Italian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pooh.it/
Fantasia 감상하기 : http://youtu.be/XTLYs1pAJRc

I Pooh - Un Po' Del Nostro Tempo Migliore (1975)
1. Preludio (3:50) : http://youtu.be/u7prneeUPeI
2. Credo (4:25)
3. Una Storia Che Fa Ridere (4:20)
4. Oceano (4:20)
5. Fantasia (3:15) : http://youtu.be/XTLYs1pAJRc
6. Mediterraneo (5:45)
7. Eleonora Mia Madre (6:20)
8. 1966 (5:00)
9. Orient Express (4:20)
10. Il Tempo Una Donna La Città (10:45) : http://youtu.be/HnbYOCRUQG4

 

1966년 여름에 키보드 주자인 로비 파끼니띠에 의해 결성된 이탈리아의 장수 밴드 이 뿌는 2010년에 새 음반 'Dove comincia il sole'를 발표하면서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는 밴드이다. 밴드의 역사 초기에 잠시 몇차례 멤버 변동이 있기는 했으나 로비 파끼니띠를 주축으로 도디 바딸리아와 레드 칸치안, 그리고 스테파노 도라지오로 구성된 이 뿌는 2009년에 드러머인 스테파노 도라지오가 교체될 때 까지 변함없는 멤버로 일관된 음악 활동을 추구하였던 밴드였다.

영국과 미국의 유행 음악을 커버하여 부르던 비트 시대에 결성되어 비트 음악으로 팬들을 사로잡은 이 뿌는 프로그레시브 록이 이탈리아의 팝계를 지배할 무렵인 1970년대에는 프로그레시브 록 지향의 음반을 발표하여 팬들의 기대에 부흥하였다.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이 쇠퇴기로 들어서게 되자 이 뿌는 팝 록에 기반한 사운드로 전환하여 변함없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장수 밴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뿌가 1975년에 발표한 음반 'Un Po' Del Nostro Tempo Migliore'는 바로 이런 시기에 발표되었던 음반으로 전체적인 음악 구성이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팝 록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 음반의 수록 곡인 'Fantasia'는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곡인 동시에 이 뿌의 대표 곡으로 사랑받았던 곡으로 팝팬들과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곡이었다.

이 뿌의 음반 가운데 최고 작으로 평가 받기도 하는 이 음반은 앞서 이야기 했던 히트 곡 'Fantasia' 외에도 들어가는 곡 'Preludio'에서 부터 10분 짜리 대곡이자 마지막 곡인 ' Il Tempo Una Donna La Città' 까지 음반의 모든 수록 곡이 이 뿌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John Cougar - Hurts So Good

 

John Cougar - Hurts So Good

존 멜렌켐프(John Mellencamp)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 미국 가수 존 쿠거는 데뷔 당시 강인한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조니 쿠거(Johnny Cougar)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존 쿠거(John Cougar)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가 존 쿠거 멜렌켐프(John Cougar Mellencamp)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는 자신의 본명인 존 멜렌켐프를 사용하고 있는 다소 특이한 가수이다.

인디애나(Indiana)주 잭슨 카운티(Jackson County)의 시모어(Seymour) 시의 독일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존 멜렌켐프는 '이분 척추증(Spina bifida: 척추 파열증)'으로 태어나자 마자 장시간 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후 심각한 후유증 없이 성장한 존 멜렌켐프는 열네살때 처음으로 트래시(Trash)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열여덟살 때에는 임신한 여자 친구와 함께 가출을 하였으며 열아홉살이 되던 1970년 12월에 아버지가 되었다.

1972년에 인디애나주의 빈세네스(Vincennes) 시에 있는 2년제 대학인 빈세네스 대학교(Vincennes University)에 진학한 존 멜렌켐프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밴드 생활을 병행했는데 이때부터 술과 마약에 빠져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학업을 위해 술과 마약을 차츰 멀리 하기 시작하여 1974년에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존 멜렌켐프는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뉴욕행을 결심하게 된다.

뉴욕에 온 존 멜렌켐프는 1975년에 토니 디프라이스(Tony DeFries)와 매니저 계약을 맺고 그의 지도로 음반을 녹음하여 1976년 10월에 'Chestnut Street Incident'라는 제목으로 'MCA 음반사(MCA Records)'를 통해 데뷔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녹음 작업 당시 매니저인 토니 디프라이스는 존 멜렌켐프라는 본명 대신 사람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기를 요구하였다. 매니저의 요구를 받아들인 존 멜렌켐프는 이렇게 하여 데뷔 당시 조니 쿠거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니 쿠거의 데뷔 음반은 일만 이천장이라는 판매 실적에 만족해야 했다. 1977년 조니 쿠거는 두번째 음반으로 'The Kid Inside'를 녹음하여 발매 준비를 마쳤으나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매니저인 토니 디프라이스의 반대로 발매가 취소 되었다. 결국 이 음반은 1983년에 가서야 정식 음반으로 공개되었다. 토니 디프라이스는 조니 쿠거에게 '리바 음반사(Riv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음반 녹음 작업과 음반 홍보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조니 쿠거를 데리고 가게 된다.

런던에서 녹음된 후속 음반은 'A Biography'라는 제목을 달고 1978년 3월에 공개 되었다. 미국에서는 발매가 되지 않았던 이 음반 역시 데뷔 음반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하였으나 다만 수록곡인 'I Need a Lover'가 호주에서 약간의 히트를 하였다. 연이은 음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니 쿠거는 1979년 6월에 존 쿠거라는 새 이름으로 새 음반 'John Cougar'를 미국에서 발표하게 된다. 이 음반에는 이전 음반에 수록되어 호주에서 히트를 했었던 곡인 'I Need a Lover'가 수록되었는데 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진입하여 28위 까지 진출하며 존 쿠거에게 최초의 성공을 안겨주었다.

1980년 9월에는 음반 'Nothin' Matters and What If It Did'를 발표하여 두 곡의 싱글 'Ain't Even Done with the Night(17위)'과 'This Time(27위)'을 히트시킨 존 쿠거는 1982년 4월에 여섯번째 음반인 'American Fool'을 통해 대형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이 음반에서는 두 곡의 대형 히트 곡이 탄생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존 쿠거라는 이름을 알렸던 곡인 'Hurts So Good(2위)'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곡인 'Jack and Diane'이 수록되어 있다.

존 멜렌켐프(John Mellencamp) : 1951년 10월 7일 미국 인디애나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루츠 록(Roots Rock), 팝 록(Pop/Rock), 포크(Fol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ellencamp.com/
Hurts So Good 감상하기 : http://youtu.be/4dOsbsuhYGQ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John Lennon - Imagine

 

John Lennon - Imagine

70년전 오늘, 바다 건너 영국 리버풀(Liverpool)의 노동자 집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20년후 로큰롤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며 수많은 팬을 가지게 되는 밴드인 비틀즈(The Beatles)를 결성하게 되는 존 레논이었다. 존 레논은 부모의 이혼으로 두살때 부터 이모에 의해서 키워졌으며 고교 시절에 첫번째 밴드인 쿼리맨(The Quarrymen)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밴드의 이름인 쿼리맨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인 쿼리 뱅크 고등학교(Quarry Bank High School)에서 따온 것이었다.

스키플(Skiffle: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 밴드였던 쿼리맨의 활동을 통해 존 레논은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를 만나게 되는데 쿼리맨의 두번째 공연장에서 였다. 이때가 1957년으로 이 만남 이후 폴 맥카트니가 쿼리맨에 가입하게 되고 이 밴드는 후일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발전하여 전세계의 팝팬들을 사로잡게 된다. 한편 존 레논은 폴 맥카트니를 만난 이듬해에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어야 했다.

1960년에 결성되어 전세계를 비틀즈 열풍으로 몰아 넣었던 영국 록 밴드 비틀즈는 1970년에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식 해산하게 된다. 비틀즈의 해산 이전 부터 솔로 활동을 준비했던 존 레논은 비틀즈가 막 해산할 무렵에 아내인 '오노 요코(Yoko Ono)'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와 함께 솔로 음반 'John Lennon/Plastic Ono Band'를 발표하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처음 만난 것은 1966년 런던의 한 화랑에서 였다. 전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전시회를 존 레논이 찾으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존 레논은 이후 오노 요코의 전시회를 후원하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1968년 5월의 어느 날 밤 만들어진 테이프로 만들어진 음반이 바로 두사람이 누드로 표지에 등장하는 'Two Virgins'였다. 1968년 11월에 발표되었던 이 음반의 표지에 등장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전신 누드 사진은 존 레논의 자동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Two Virgins' 음반이 발표될 즈음 존 레논은 아내였던 신시아 레논(nthia Lennon)과 이혼하였으며 1969년 3월 20일에 오노 요코와 재혼하였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의 결혼 이후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 존 레논의 두번째 솔로 음반 'Imagine'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오노 요코가 제작을 담당한 음반 'Imagine'은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기록적인 면 외에도 오랜 기간 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타이틀 곡 'Imagine'으로 더욱 유명하다.

1971년 9월 9일에 발표된 음반 'Imagine'에는 무정부주의적인 발상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곡 'Imagine'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존 레논이 뉴욕 힐튼 호텔에 머무른 뒤 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 갑자기 머리 속으로 파고 든 생각을 급히 메모지에 옮겨 적어 두었다가 만들어진 곡으로 존 레논의 사상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Imagine'외에도 존 레논의 사후에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이 커버하여 히트시켰던 곡 'Jealous Guy'와 반전 곡인 'I Don't Wanna Be A Soldier Mama', 서정적인 곡 'Oh My Love'등을 수록하여 평화를 외치는 존 레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존 레논 (John Lennon) : 1940년 10월 9일 영국 리버풀 출생, 1980년 12월 8일 사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앨범 록(Album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ohnlennon.com/
Imagine 감상하기 : http://youtu.be/okd3hLlvvLw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1983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She's So Unusual'이 오백만장이 넘게 팔려 나가며 뉴 웨이브 음악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신디 로퍼(본명: Cynthia Ann Stephanie Lauper)'는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영화에 진출하여 배우로도 활동하였던 가수였다. 브루클린(Brooklyn)에서 태어나 퀸스(Queens)에서 성장한 신디 로퍼는 어린 시절에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놀았고 열두살때 부터는 언니에게서 물려 받은 기타를 이용하여 기타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한 신디 로퍼는 어린 나이이지만 음악과 미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머리를 염색하는가 하면 남들은 절대 입지 않을 현란한 색상의 옷을 입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런 생각은 공립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진보적인 사상의 소녀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열일곱살때 미술 공부를 겸한 여행을 위해 집을 나온 신디 로퍼는 캐나다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 신디 로퍼는 캐나다를 떠나 미국의 버몬트(Vermont)주에 정착하여 존슨 주립 대학교(Johnson State College)의 미술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부터 신디 로퍼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른 가수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는 커버 밴드(Cover Band)들에 가입하여 가수로써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비록 다른 가수들의 노래였지만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도 좋았던 신디 로퍼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무리를 한 나머지 성대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다. 이때가 1977년이었다. 이에 신디 로퍼는 보컬 코치를 고용하여 천천히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시켜 나갔고 이듬해에는 완전히 회복하여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성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그해에 색소폰 주자 '존 투리(John Turi)'를 매니저를 통해 만난 신디 로퍼는 그와 함께 밴드 '블루 앤젤(Blue Angel)'을 결성하고 음반 데뷔를 위해 데모 테이프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데모 테이프에서 신디 로퍼의 목소리를 마음에 들었던 '폴리돌 음반사(Polydor Records)'와 음반 계약이 이루어진 블루 앤젤은 1980년에 데뷔 음반 'Blue Angel'을 발표하게된다. 하지만 이 음반은 판매 부진과 매니저와의 법적 분쟁만을 남긴채 실패로 마감되었고 밴드는 해산하여야 했다.

밴드의 해산 후 신디 로퍼는 낮에는 중고 물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밤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던 신디 로퍼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1981년이었다. 뉴욕의 한 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신디 로퍼를 록 밴드 '아크 앤젤(Arc Angel)'의 매니저인 '데이빗 울프(David Wolff)'가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와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데이빗 울프는 곧 신디 로퍼를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의 자회사인 '포트레이트 음반사(Portrait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게 도와주게 된다.

포트레이트 음반사와 계약한 신디 로퍼는 훈련 과정을 거쳐 목소리를 다듬은 후 1983년 초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의 녹음을 시작하게 된다. 1983년 10월 14일, 신디 로퍼는 'She's So Unusual'이라는 제목의 데뷔 음반을 발표하였다. 신디 로퍼가 생기 발랄 혹은 엽기 발랄의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한 이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2위에 오른 곡'Girls Just Want to Have Fun'을 시작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른 'She Bop'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Time After Time'을 연속으로 배출해내면서 1983년의 후반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1983년 7월 27일에 데뷔 음반 'Madonna'를 발표하며 데뷔했던 '마돈나(Madonna)'는 'Holiday'를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었지만 신디 로퍼의 음반 ''She's So Unusual'에 가려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신디 로퍼 (Cyndi Lauper) : 1953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cyndilauper.com/
Girls Just Want to Have Fun 감상하기 : http://youtu.be/0tUfCz99Dpk
Time After Time 감상하기 : http://youtu.be/l9LBKh3SzhM
She Bop 감상하기 : http://youtu.be/NRyI3pZxON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