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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Lou Reed - Perfect Day

 

Lou Reed - Perfect Day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가수 겸 작곡가이자 사진 작가인 '루 리드(본명: Lewis Allan Reed)'는 무엇을 알고 있던 그 이상의 위치를 록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탁월한 음악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 리드는 십대 시절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자신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록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되고자 했던 루 리드는 고교 시절에 몇몇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쉐이즈(The Shades)'라는 이름의 '두왑(doo wop: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의 코러스 중 하나)' 밴드에서 활동할 때는 싱글 음반 녹음에 참여하여 생애 첫 음반 녹음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루 리드의 이런 밴드 활동을 못마땅해 했던 루 리드의 부모는 아들의 동성애 성향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기 충격 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을 받게 만들었는데 이때의 충격적인 경험은 후일 루 리드로 하여금 'Kill Your Sons(1974년)'라는 노래를 만들게 하였다.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 입학한 루 리드는 신문학(Journalism)과 영화학(Film Director)을 전공하면서 틈나는 대로 음악 활동을 계속 하게 된다. 이미 같은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기타 연주자로 대접받고 있던 루 리드는 지역의 심야 라디오 방송에 고정 출연하여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63년에 뉴욕의 '피크위크 레코드(Pickwick Records)'의 작곡가로 취업하게 된 루 리드는 대학을 졸업한 1964년에 싱글 'The Ostrich'를 만들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음반사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성이 강했던 이 싱글은 루 리드가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음악이었다. 이에 루 리드는 '프리미티브(The Primitives)' 라는 이름의 전위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프리미티브에는 전위 음악에 심취해 있던 웨일즈 출신의 음악인 '존 케일(John Cale, 비올라, 오르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미티브의 활동을 통해 서로의 음악적 취향이 비슷함을 발견한 루 리드와 존 케일은 뉴욕의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함께 거주하며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게 된다. 루 리드는 대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기타)'과 '모린 터커(Maureen Tucker, 드럼)'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밴드에 합류시켜 4인조의 새로운 밴드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그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이다.

밴드의 이름인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존 케일의 친구인 비디오 아티스트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멤버들에게 보여준 성인 잡지에서 그 단어를 발견하고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여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루 리드를 비롯하여 멤버 모두가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많이 모여들던 뉴욕의 나이트 클럽 '맥스 캔사스 시티(Max's Kansas City)'에 고정 출연하게 되면서 주목 받게 되는데 당시 클럽을 자주 찾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연주에 감탄하여 그들의 매니저를 자칭하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루 리드에게는 스승과 같았던 앤디 워홀의 도움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되는데 앤디 워홀은 독일의 모델이자 배우였던 '니코(Nico)'를 밴드에 합류시켜 밴드의 일원으로 음반을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음반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1967년에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노란 바나나를 표지에 그려 넣고 세상에 공개 되었다.

루 리드는 데뷔 음반 발표 이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일원으로 'Sweet Jane'이 수록된 1970년 음반 'Loaded'까지 네장의 정규 음반에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1970년 8월에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탈퇴하였다. 'RCA 음반사(RCA Records)'와 계약한 루 리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스티브 하우(Steve Howe, 기타)'와 '릭 웨이크먼(Rick Wakeman, 피아노, 키보드)'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을 초빙하여 1971년 12월 부터 1972년 1월 까지 솔로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루 리드는 많은 기대를 안고 1972년 6월에 자신의 데뷔 음반을 공개하였지만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9위에 머무르며 부진을 거듭하다 차트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실패로 끝난 데뷔 음반을 만회하기 위해 루 리드는 1972년 8월에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믹 론슨(Mick Ronson)'의 지휘 아래 새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1972년 12월 8일에 발표된 루 리드의 두번째 음반 'Transformer'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6위 까지 진출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0위 까지 진출했던 히트 싱글 'Walk on the Wild Side'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앨범 차트에서 29위 까지 진출하며 루 리드에게 성공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 음반은 미국에서의 성공에 이어 이듬해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도 13위 까지 진출하였다.

강력한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글램 록을 들려 주는 루 리드의 초기 명반 'Transformer'에는 히트 곡 'Walk on the Wild Side' 외에도 완벽했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한 피아노 연주를 배경삼아 읊조리듯 노래하는 명곡 'Perfect Da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1996년에 개봉되었던 '이완 멕그리거(Ewan McGregor)' 주연의 영국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루 리드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루 리드 (Lou Reed) : 1942년 3월 2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앨범 록(Album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loureed.com/
Perfect Day 감상하기 : http://youtu.be/2uK9L2DaWa8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David Bowie - Lady Grinning Soul

David Bowie - Lady Grinning Soul

영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데이빗 보위(본명: David Robert Jones)'는 우리나라에서도 'Space Oddity'나 'Let's Dance' 같은 곡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글램 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의 브릭스톤(Brixton)에서 태어난 데이빗 보위는 아버지가 듣기 위해서 한두장씩 모아 두었던 음반들을 통해 음악과 가까이 하게 된다. 특히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의 1955년 발표 곡인 'Tutti Frutti'를 듣고나서는 충격을 받을 정도의 전율감을 느끼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악기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여 열세살때 부터 색소폰을 배우게 된다.

'브럼리 기술 고등학교(Bromley Technical High School)'에 재학 중일때는 데이빗 보위의 유명한 일화중 하나인 왼쪽 눈을 다치는 사고를 겪기도 하는데 왼쪽 눈을 거의 실명할 정도의 사고를 제공한 원인은 한 소녀였다. 한 소녀를 사이에 두고 친구인 '조지 언더우드(George Underwood)'와 말다툼을 벌인 끝에 주먹 싸움으로 번진 결과였다. 싸움 도중 조지 언더우드의 손가락에 데이빗 보위의 왼쪽 눈이 찔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실명 위기가 찾아 왔던 것이다. 이때의 영향으로 데이빗 보위의 양쪽 눈 색깔은 서로 다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데이빗 보위는 광고 회사에 취직하여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어 '모드 밴드(Mod Band : 파격적이고 세련된 의상 착용 등을 통해 음악 외적인 요소를 중시한 그룹)'인 '킹 비스(King Bees)'와 '매니쉬 보이스(Manish Boys)' 등의 밴드에서 시간제로 세션 연주를 하며 싱글 음반에도 참가하였다. 데이빗 보위가 처음으로 음반 녹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곡은 1964년에 발표된 킹 비스의 싱글 곡인 'Liza Jane'이었으며 데이빗 보위는 이 음반에 '데이비 존스(Davie Jones)'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였다.

이 이름은 이후 '데이비 존스(Davy Jones)'로 바뀌었다가 1966년에 이르러 당시 '몽키스(The Monkees)'에서 활동하던 '데이비 존스(Davy Jones)'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데이빗 보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파이 음반사(Pye Records)를 통하여 데뷔 싱글을 발표하면서 팝계에 데뷔였다. 파이 음반사에서 두장의 싱글을 더 발표한 후 데이빗 보위는 1967년에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 산하의 데람(Deram) 레이블로 옮겨가 데람을 통해 싱글 'The Laughing Gnome'을 발표하게 된다.

싱글 'The Laughing Gnome'이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자 데람에서는 데뷔 음반 작업을 서둘러 1967년 6월에 팝과 사이키델릭 음악을 위주로 수록한 데뷔 음반 'David Bowie'를 발표하게 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데이빗 보위는 음반 활동 보다는 단편 영화 출연과 연극 무대에 오르는 등의 음악외적인 활동으로 분주하게 지내다 판토마임 극단인 페더스(Feathers)를 1968년에 출범시키기도 하였다.

페더스가 1969년에 해체되자 데이빗 보위는 음악과 연극의 결합을 시도한 실험적인 단체인 '베켄햄 아츠 랩(Beckenham Arts Lab)'을 설립하고 단체의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해 '머큐리 음반사(Mercury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게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음반이 'Space Oddity'였다. 이 음반은 1969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미국에서는 'Man of Words, Man of Music'이라는 제목을 달고 발매되었다.

미국의 달 착륙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인 1969년에 데이빗 보위가 발표한 두번째 음반 'Space Oddity'에서 음반의 타이틀 곡이 영국을 시작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성공을 거두었고 데이빗 보위는 단숨에 새로운 스타의 위치에 올라 서게 된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데이빗 보위는 팝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이후 여러가지 다양한 인상을 무대에서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탄생한 음반이 바로 1972년 6월 6일에 발표된 음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였다.

지구의 종말을 5년 남기고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화성에서 날아온 록커 '지기(Ziggy)'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SF 음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는 당시 영국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특히 오렌지 색으로 물들인 머리와 화장한 모습의 지기를 연출하며 무대에 선 데이빗 보위의 모습에 젊은이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글램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는 음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를 통해 글램 록의 우상이 된 데이빗 보위는 순회 공연 일정을 마무리 하고 미국 순회 공연 도중에 구상한 노래들로 음반 작업을 진행하여 1973년 4월 13일에 새 음반 'Aladdin Sane'을 발표하였다. 새 음반의 제목인 'Aladdin Sane'은 <A Lad Insane>이라는 말을 재미있게 변형하여 만든 말로 처음에는 'Love Aladdin Vein'이라는 제목을 생각했으나 마약을 암시하는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최종적으로 'Aladdin Sane'이라는 제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기 음반에서 화성에서 온 지기를 연출하였던 데이빗 보위는 스스로가 밝혔듯이 '지기 미국에 가다(Ziggy goes to America)'라는 의미를 담은 음반 'Aladdin Sane'을 통해 데이빗 보위가 아닌 지기가 되어 글램 록의 마지막 명반을 탄생시켰으며 음반의 표지에 등장한 모호한 양성인의 모습을 음반의 수록 곡들에도 그대로 수용하였다.

 

싱글로 발매되어 히트를 기록했던 'The Jean Genie'와 'Drive-in Saturday'를 포함하여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1967년 곡을 커버한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와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 'The Prettiest Star'등이 포함된 이 음반에는 앞서 언급한 곡들 외에도 너무도 매력적인 곡이 마지막 트랙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곡은 바로 'Lady Grinning Soul'이다.

글램 록의 마지막 명곡 'Lady Grinning Soul'은 제임스 본드를 그린 007 영화의 주제 음악 형식을 채용하여 '마이크 가슨(Mike Garson)'의 강렬한 피아노 연주로 긴박감을 조성하며 시작하는 곡으로 데이빗 보위의 애잔한 목소리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숨겨두었던 또다른 내면의 존재인 여성의 외출 모습을 슬프게 그리고 있는 곡이다.

글램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음반들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와 'Aladdin Sane' 으로 이어지며 파란을 일으켰던 지기는 1973년 7월 3일의 영국 공연을 끝으로 조용히 봉인되면서 글램 록의 시대를 마감했고 데이빗 보위는 새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 1947년 1월 8일 영국 런던 브릭스턴 출생

갈래 : 글램 록(Glam Rock), 앨범 록(Album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davidbowie.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6fHoMw8tCzo

2010년 7월 30일 금요일

Queen - We Are The Champions

 

Queen - We Are The Champions

1974년 11월에 발표했던 세번째 음반 'Sheer Heart Attack'에서 발매된 싱글 'Killer Queen'을 처음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올려 놓은 퀸은 1975년 초에 미국을 시작으로 한 퀸의 첫번째 세계 순회 공연에 들어가게 된다. 캐나다를 거쳐 4월에는 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서 진행된 일본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계 순회 공연을 마무리 하였다. 세계 순회 공연을 마친 퀸은 영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매니저 계약을 모두 청산하고 엘튼 존(Elton John)의 매니저인 '존 레이드(John Reid)'와 새로운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된다.

새로운 매니저와 새 출발 하게 된 퀸은 세계 순회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 전인 8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새 음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1월 까지 진행된 녹음을 마치고 퀸은 1975년 11월 21일에 'A Night at the Opera'라는 제목의 새 음반을 발표하였고 이 음반에 수록된 'Bohemian Rhapsody'를 히트시키면서 최정상급 밴드의 위치에 올라 서게 된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200)'에서는 4위를 기록한 'A Night at the Opera' 음반에 이어 퀸은 1976년 12월에 다섯번째 음반 'A Day at the Races'를 발표하여 'Somebody To Love'를 히트시키면서 영국 앨범 차트에서 또 다시 정상을 차지 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에 올랐다.

한편 퀸은 'A Day at the Races' 음반이 발표되기 전인 9월에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15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무료 공연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77년 10월 28일에 세상에 공개된 퀸의 새 음반 'News of the World'는 커다란 로봇이 표지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 로봇은 1953년 10월호 '아날로그 사이언스 픽션 앤 팩트 매거진(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의 표지에 등장하였던 로봇이었다.

이 로봇이 음반 커버에 등장하게 된 것은 로저 테일러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에 머물다가 우연히 대기실에 있던 아날로그 사이언스 픽션 앤 팩트 매거진을 보게 되었고 표지의 로봇이 마음에 들어 음반 커버에 싣자고 멤버들에게 제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퀸은 이 로봇을 음반 커버에 등장시키기 위해 로봇 그림의 원작자인 공상 과학(Sci-fi) 작가 '프랭크 켈리 프리어스(Frank Kelly Freas)'에게 로봇 그림 사용에 대한 문의를 하여 허락을 받아냈는데 그에 더해 프랭크 켈리 프리어스는 원작과는 다르게 로봇의 손에 들려 있는 시신의 모습을 퀸 멤버들의 모습으로 바꾸어 그려주기 까지 하였다.

'News of the World' 음반에는 첫번째 트랙으로 'We Will Rock You'가 실려있고 바로 다음 곡으로 'We Are The Champions'이 수록되어 있는데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한 'We Will Rock You'는 경기장에서 응원가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곡 'We Are The Champions'은 프레디 머큐리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두 곡은 곡의 배치로 인한 상승 작용으로 인해 두 곡 모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스포츠가 전해주는 진한 감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We Are The Champions'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에 올랐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4위에 그쳤지만 노래가 가진 파급력은 차트 순위와는 상관없는 엄청난 힘을 지닌채 스포츠 경기의 감동을 팝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또한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두 곡 이후 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밴드 1위 자리를 굳건히 다지게 된다.

퀸 (Queen) :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보컬) : 1946년 9월 5일 탄자니아 출생, 1991년 11월 24일 사망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기타) : 1947년 7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존 디콘 (John Deacon, 베이스) : 1951년 8월 19일 영국 레스터셔 출생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드럼) : 1960년 4월 26일 영국 더싱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queenonline.com/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Queen - Bohemian Rhapsody

 

Queen - Bohemian Rhapsody

영국 런던에서 1971년에 결성된 록 밴드 '퀸'은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로 부터 시작되었다. 영국 런던시 남서쪽 템스 강 부근의 햄프턴(Hampton)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메이는 '햄프턴 그래머 고교(Hampton Grammar School)' 재학 시절에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학교 친구인 '팀 스타펠(Tim Staffell, 베이스, 보컬)'과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나인틴 에이티 포(Nineteen Eighty-Four)'로 지었는데, 이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인 '1984'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브라이언 메이가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은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대학교(Imperial College)에 같이 입학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가끔씩 함께 연주를 하며 잠시 눌러 놓았던 음악을 향한 열정을 표출하기도 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사람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학교 게시판에 밴드를 함께 할 드러머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게 되는데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바로 '로저 테일러'였다.

노퍽(Norfolk)주 더싱햄(Dersingham)에서 태어난 로저 테일러와 함께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은 1968년에 트리오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스마일(Smile)'로 정하게 된다. 스마일이 결성될 당시 팀 스타펠의 친구로 런던의 '일링 예술 대학(Ealing Art College)'에 다니고 있던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는 친구인 팀 스타펠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해 주었으며 밴드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963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탄자니아(United Republic of Tanzania)'의 항구 도시 잔지바르(Zanzibar) 스톤타운(Stone Town)에서 태어난 파로크 불사라는 스마일의 멤버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이때 부터 자신의 이름을 영어식인 '프레디(Freddie)'로 바꾸게 된다. 스마일이 결성되고 2년이 흐른 1970년에 팀 스타펠이 막 결성한 밴드인 '험피 봉(Humpy Bong)'으로 옮겨가게 되자 스마일의 두 멤버들은 자연스레 프레디를 밴드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밴드의 이름도 프레디가 제안한 퀸으로 바꾸게 된다.

프레디가 밴드의 이름을 퀸으로 정한 이유는 퀸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보편적이고 발음하기도 쉬워서라고 밝혔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이 게이(Gay)라는 성적 취향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여간 새출발 하게 된 퀸은 밴드의 새로운 베이스 주자를 찾아야 했는데 몇명의 베이스 연주자를 거쳐 1971년 2월에 레스터셔(Leicestershire) 출신의 '존 디콘'을 맞아 들여 4인 체제의 밴드 구성을 마무리 짓게 된다.

퀸은 음반 데뷔를 위해 '드 레인 레아 녹음실(De Lane Lea Studios)'에서 'Liar', 'Keep Yourself Alive', 'The Night Comes Down', 'Jesus'의 네곡을 녹음하여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였다. 또한 프레디는 음반사에 보낼 신상명세서의 이름을 적는 칸에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라고 적어 넣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탄생하게 된다.

머큐리라는 성은 프레디 머큐리가 'My Fairy King'이라는 노래를 만들다가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 'Mother Mercury, look what they've done to me'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되었던 것으로 이 곡은 퀸의 데뷔 음반에 수록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가 고안한 퀸의 로고를 새겨 넣은 데뷔 음반 'Queen'은 'EMI'를 통해서 1973년 7월 13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은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을 받은 하드 록 성향의 음반으로 차트 진출 곡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영국의 음반 차트에서 24위에 그리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83위에 오르며 데뷔 음반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성과로 마무리 되었다. 1974년 3월에 두번째 음반 'Queen II'를 발표한 퀸은 같은 해 11월에 세번째 음반 'Sheer Heart Attack'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Killer Queen'이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2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게 된다.

첫번째 대형 히트 곡을 만들어 낸 퀸은 1975년 11월에 네번째 음반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너무도 유명한 곡 'Bohemian Rhapso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싱글로 발표될 당시에는 곡이 너무 길어 성공에 대한 장담을 할 수 없었으나 곡이 발표되자 상황은 바뀌어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다.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Bohemian Rhapsody'는 캐나다와 뉴질랜드,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에서는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라이센스 음반에서는 삭제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음반의 'Love of My Life'가 'Bohemian Rhapsody' 대신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는데 해적판을 통해 'Bohemian Rhapsody'가 알려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을 받게 된다. 또한 'Bohemian Rhapsody'는 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곡이기도 하다.

퀸 (Queen) :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보컬) : 1946년 9월 5일 탄자니아 출생, 1991년 11월 24일 사망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기타) : 1947년 7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존 디콘 (John Deacon, 베이스) : 1951년 8월 19일 영국 레스터셔 출생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드럼) : 1960년 4월 26일 영국 더싱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queenonline.com/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T. Rex - Bang A Gong (Get It On)

 

T. Rex - Bang A Gong (Get It On)

티렉스 (T. Rex) :
마크 볼란 (Marc Bolan, 보컬, 기타) : 1947년 9월 30일 영국 런던 출생, 1977년 9월 16일 사망
미키 핀 (Mickey Finn, 콩가 드럼, 봉고) : 1947년 6월 3일 영국 서리(Surrey) 출생, 2003년 1월 11일 사망
스티브 커리 (Steve Currie, 베이스) : 1947년 5월 19일 영국 링컨셔 출생, 1981년 4월 28일 사망
빌 레전드 (Bill Legend, 드럼) : 1944년 5월 8일 영국 에식스(Essex) 바킹(Barking) 출생,
하워드 카이란 (Howard Kaylan, 백보컬) : 1947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출생
마크 발만 (Mark Volman, 백보컬) : 1947년 4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생
릭 웨이크먼 (Rick Wakeman, 키보드 Get It On) : 1949년 5월 18일 영국 런던 출생
이언 맥도날드 (Ian McDonald, 색소폰) : 1946년 6월 25일 영국 미들섹스(Middlesex) 출생
버트 콜린스 (Burt Collins, 플뢰겐호른) :

 

분류 : 글램 록(Glam Rock), 하드 록(Hard Rock), 포크 록(Folk Rock), 팝록(Pop/Rock)


거대한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한 영국의 글램 록 그룹 '티렉스'는 '마크 볼란(본명: Mark Feld)'에 의해서 창조되고 완성되었던 그룹이었다. 화물 자동차를 운전하던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크 볼란은 어릴때 부터 로큰롤에 빠져들어 '진 빈센트(Gene Vincent)', '척 베리(Chuck Berry)', '에디 코크란(Eddie Cochran)' 같은 가수들의 음반을 들으며 로큰롤 스타로의 성공을 꿈꾸게 된다.

 

아홉살때 부모를 졸라 선물 받은 기타를 처음으로 만지게 되었고 '스키플 밴드(Skiffle Band: 1950년대 후반에 유행한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학교 생활보다는 밴드 활동에서 더욱 큰 매력을 느끼며 방황하던 마크 볼란은 결국 부모의 동의를 얻어 열다섯살때 적응이 힘들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당시 유행하던 '모드(Mod: 전위적인 유행 복장)' 잡지의 모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마크 볼란은 모델 활동을 하면서 부터 사용하던 이름인 '마크 보우랜드(Mark Bowland)'를 '마크 볼란(Marc Bolan)'으로 바꾸고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와 싱글 음반 계약을 체결한 후, 데뷔 싱글 'The Wizard'를 발표 하면서 본격적인 가수로써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데뷔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이에 매니저인 '사이먼 내피어 벨(Simon Napier Bell)'은 1967년 초에 마크 볼란을 '모드 밴드(Mod Band: 파격적이고 세련된 의상 착용등을 통해 음악 외적인 요소를 중시한 그룹)'인 '존스 칠드런(John's Children)'에 가입시키게 된다. 마크 볼란은 존스 칠드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작곡한 곡인 'Desdemona'를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하였지만 이 곡은 'lift up your skirt and fly' 라는 가사가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BBC로 부터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싱글의 실패와 더불어 밴드 멤버들과의 호흡 불일치는 결국 마크 볼란으로 하여금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만들었다. 마크 볼란은 존스 칠드런에서의 짧은 활동을 마무리 하고 '스티브 페러그린 툭(Steve Peregrin Took, 드럼, 베이스)'과 함께 사이키델릭 포크 그룹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1967년에 결성하여 새출발 하게 된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듀오 형태로 1968년 4월에 발표한 데뷔 싱글 'Debora'를 시작으로 총 네장의 싱글들과 네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하며 1970년까지 활동을 이어가게 되는데, 1970년에는 스티브 페러그린 툭 대신에 '미키 핀(본명: Michael Norman Finn)'이 새로운 파트너로 가입하여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 즈음 프로듀서인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는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에게 전기 기타를 사용한 록 사운드 도입을 권유하였고 이를 수락한 마크 볼란은 밴드 이름을 '티렉스'로 짧게 바꾼 후에 '터틀즈(The Turtles)'의 두 멤버인 하워드 카이란과 마크 발만을 백보컬로 밴드에 합류시키고 프로듀서인 토니 비스콘티에게 건반을 담당하게 하여 티렉스의 데뷔 음반 'T. Rex'를 1970년에 발표하였다.

 

1970년 10월 티렉스는 '스티브 커리'와 '빌 레전드(본명: William Fifield)'를 새롭게 멤버로 충원하고 싱글 'Ride a White Swan'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영국의 Top 40 차트에 11주간 머물며 2위 까지 진출하였고 티렉스 최초의 히트 곡이 되었다. 글램 록 그룹 티렉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곡 'Ride a White Swan'에 이어 'Hot Love'가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1971년 9월 마침내 글램 록의 명반 'Electric Warrior'가 세상에 공개 되었는데 특히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Get It On'에서는 릭 웨이크먼이 건반을 담당하여 사운드를 빛내 주었다. 영국에서 정상을 차지한 'Get It On'은 미국에서 'Bang A Gong (Get It On)'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발매가 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하였고 한국에서도 티렉스의 대표 곡으로 애청되고 있다.

 

마크 볼란은 1977년 9월 16일 가수이자 동거녀인 '글로리아 존스(Gloria Jones)'가 몰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급커브 길에서 도로를 이탈 하면서 일어난 나무를 들이 받는 교통 사고로 사망하였다.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David Bowie - Space Oddity

 

David Bowie - Space Oddity

데이빗 보위 (본명 David Robert Hayward Jones) : 1947년 1월 8일 영국 런던 브릭스턴 출생


발매 음반들을 통해 양성인, 초월자, 퇴폐주의자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늘 파격의 중심에 있었던 글램 록의 전설 데이빗 보위는 아홉살 때 아버지의 수집품인 팻츠 도미노(Fats Domino), 척 베리(Chuck Berry),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등의 음반을 통해 처음으로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특히 리틀 리차드의 Tutti Frutti 를 듣고나서는 대단히 큰 감명을 받게 된다. 자연히 음악과 더욱 가까이 하게된 데이빗 보위는 직접 악기 연주를 해보고 싶어 열세살때 부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십대 시절 브릭스턴에서 브럼리로 이사하게 되어 브럼리 기술 고교(Bromley Technical High School)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 하게 된다. 브럼리 기술 고교 재학 중이던 열다섯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한 소녀를 가운데 두고 친구인 조지 언더우드(George Underwood)와 말다툼 끝에 주먹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싸움 도중 조지 언더우드의 손가락에 데이빗 보위의 완쪽 눈이 찔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실명 위기가 찾아 오게 된다. 이때의 영향으로 데이빗 보위의 양쪽 눈 색깔이 달라지게 된다.

 

고교 졸업 후에는 모드 밴드(Mod Band : 파격적이고 세련된 의상 착용등을 통해 음악 외적인 요소를 중시한 그룹)인 King Bees 와 Manish Boys 등의 그룹에서 세션을 하며 싱글 음반에도 참가하였다. 데이빗 보위가 처음으로 음반 녹음에 참여한 곡은 1964년에 발표된 King Bees 의 싱글 곡인 Liza Jane 이었으며 Davie Jones 라는 이름으로 음반에 참여하였다. 이후 무대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Davie Jones 를 짧게 줄인 Davy Jones 를 사용하다가 1966년에 이르러 당시 The Monkees에서 활동하던 Davy Jones 와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David Bowie 로 바꾸고 Pye Records 를 통하여 세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였다.

 

1967년, 데이빗 보위는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 산하의 데람(Deram) 레이블을 통해 싱글 음반 The Laughing Gnome 을 발표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어서 팝과 사이키델릭 음악을 위주로 수록한 데뷔 음반 David Bowie 를 발표하였다. 1969년 미국의 달 착륙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 데이빗 보위는 두번째 음반 Man of Words, Man of Music 을 발표하였는데 달 착륙과 맞물려 수록 곡인 Space Oddity 가 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데이빗 보위를 스타의 위치에 올려 놓게 된다.

 

Space Oddity 는 이후 많은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며 데이빗 보위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곡으로 사랑받게 된다. 아름다운 멜로트론 음향과 함께 톰 소령이 사라진 우주 공간이 눈 앞으로 다가오는 듯한 명곡 Space Oddity 는 한국의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