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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Journey - Faithfully

 

Journey - Faithfully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1973년에 출범한 록 밴드 '저니(Journey)'는 '산타나(Santana)'의 매니저였던 '월터 허버트(Walter 'Herbie' Herbert)'가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면서 탄생한 밴드이다. 월터 허버트는 산타나 밴드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던 '닐 숀(Neal Schon, 기타)'을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우선 낙점하고 '로스 발로리'를 포함하여 '그레그 롤리(Gregg Rolie, 키보드)', '프레어리 프린스(Prairie Prince, 드럼)', '조지 티크너(George Tickner, 리듬 기타, 리드 보컬)를 합류시켜 5인조 밴드인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m Section)'을 탄생시켰다.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밴드 결성후 지역 클럽등의 무대를 통해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인 'KSAN-FM'에 출연하여 새로운 밴드 이르인 저니를 얻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방송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밴드 이름을 공모하게 되었는데 '저니(Journey)'라는 이름이 많은 지지를 받게 되자 저니를 새로운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새출발을 하게 된다.

저니는 1975년에 재즈 록을 중심으로 한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 위주의 진보적인(Progressive) 음악을 구사한 데뷔 음반 'Journey'를 발표하였고 1976년에는 데뷔 음반과 비슷한 시도를 택한 두번째 음반 'Look Into the Future'를 발표하였다. 1977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Next'까지 초기 석장의 음반들은 모두 연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니의 이러한 시도는 상업적인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결국 저니의 매니저는 밴드의 음악에 새로운 변화를 줄 시기가 되었음을 느끼고 저니의 새로운 프론트맨이자 보컬리스트로 활약하게 되는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게 되고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드럼)를 가입시켜 드럼을 맡기게 된다. 저니는 새 멤버로 승선한 스티브 페리, 스티브 스미스와 함께 새 음반을 제작하여 1978년에 'Infinity'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이전 음반들에 비해 상업성을 고려한 세련된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Infinity'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한 'Wheel in the Sky'의 성공에 힘입어 음반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상업적 성과로 이어져 저니의 새로운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명실공히 정상의 밴드로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 저니는 이후 좀더 강력한 음악을 음반에 채워 넣게 되는데 1979년 음반 'Evolution'과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 강력해진 저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979년 음반인 'Evolution'에서는 싱글 'Lovin', Touchin', Squeezin'을 빌보드 싱글 차트 16위 까지 진출시키며 히트를 시켰고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는 싱글 'Any Way You Want It'을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 까지 진출시켰는데 이로 인해 앨범 차트에서도 각각 20위와 8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하였다. 하지만 저니가 성공가도를 달려가고 있을 이 즈음에 계속되는 순회 공연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레그 롤리가 저니를 탈퇴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새로운 키보드 주자로 '조나단 케인'이 합류하게 된다.

저니의 새로운 키보드 주자인 조나단 케인의 연주가 첫선을 보인 저니의 새 음반 'Escape'는 1981년 7월 31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진출했던 히트곡 'Open Arm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저니의 명곡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이 음반은 900만장 이상의 팔려나가는 대형 히트를 하는 동시에 앨범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며 저니의 시대를 열게 된다.

저니는 'Escape' 음반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잠시의 휴식기를 가진 후 1983년 2월 22일에 새 음반 'Frontier'를 들고 하드 록 팬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위 까지 진출했던 세계적인 히트 곡 'Separate Ways (Worlds Apart)'를 비롯하여 싱글 차트 12위 진출 곡인 'Faithfully'와 싱글 차트 23위 진출 곡인 'After the Fall' 그리고 역시 싱글 차트에서 23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한 'Send Her My Love'까지 총 네 곡의 Top 40 진출 곡을 낳으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가운데 'Faithfully'는 우리나라의 록 발라드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히트 곡이 되었고 오랜기간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저니 (Journey) :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보컬) : 1949년 1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닐 숀 (Neal Schon, 기타) : 1954년 2월 27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로스 발로리 (Ross Valory, 베이스) : 1949년 2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조나단 케인 (Jonathan Cain, 키보드) : 1950년 2월 26일 미국 시카고 출생
스티브 스미스 (Steve Smith, 드럼) : 1954년 8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록(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ourneymusic.com/
Faithfully 감상하기 : http://youtu.be/d4xllzKfs4Y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Paladin - Charge!

 

Paladin - Charge!

팔라딘 (Paladin) :
루 스톤브리지 (Lou Stonebridge) : 보컬, 피아노, 하모니카
데렉 폴리 (Derek Foley) : 기타, 슬라이드 기타, 보컬
피터 베켓 (Peter Beckett) : 베이스, 보컬
피터 솔리 (Peter Soley) : 해먼드 오르간, 그랜드 피아노, 바이올린
키스 웹 (Keith Webb) : 드럼, 퍼커션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peterbeckett-player.com/
Mix Your Mind with the Moonbeams 감상하기 : http://youtu.be/vPsZy-FjSoI
Watching the World Pass By 감상하기 : http://youtu.be/cowq6M8JIb8

 

Paladin - Charge! (1972)
1. Give Me Your Hand (6:41) : http://youtu.be/3nqWHFfduZY
2. Well We Might (5:02) : http://youtu.be/2hC_12lpubc
3. Get On Together (2:35) : http://youtu.be/H0USvvKcGug
4. Anyway (4:14) : http://youtu.be/IPbcsmwx6dE
5. Good Lord (6:44) : http://youtu.be/6wmGZeinUsQ
6. Mix Your Mind with the Moonbeams (6:01) : http://youtu.be/vPsZy-FjSoI
7. Watching the World Pass By (9:25) : http://youtu.be/cowq6M8JIb8

 

밴드의 건반 주자인 피터 솔리가 펼치는 해먼드 오르간의 강력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영국의 하드 록 밴드 '팔라딘'은 1970년에 영국의 글로셔터셔(Gloucestershire)주에서 다섯명의 젊은 음악인에 의해 결성되었다. 영국 록 밴드인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미국 순회 공연에서 '테리 리드 밴드(Terry Reid Band)'와 함께 공연의 첫 무대를 담당하는 보조 연주자로 참가했던 재즈 드러머 '키스 웹'과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던 피아니스트 '피터 솔리'는 롤링 스톤스의 미국 공연이 한참 진행중이던 어느 날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다가 보조 출연자가 아닌 자신들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수 있는 정식 밴드를 결성해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게 된다.

롤링 스톤스의 공연이 마무리되자 영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즉시 자신들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멤버들을 모집하게 된다. '그리스비 다이크(Grisby Dyke)'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루 스톤브리지'와 '데렉 폴리'가 먼저 합류하였고 뒤를 이어 '윈스턴 지 앤 더 위키드(Winston G and The Wicked)'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는 '피터 베켓'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5인조의 팔라딘이 1970년에 탄생하였다.

밴드 결성 후 연습에 들어간 다섯명의 팔라딘은 록 음악에 재즈와 소울 그리고 블루스 음악 까지 혼합시켜 보다 강력하고 역동적인 하드 록을 탄생시켰으며 이런 자신들의 음악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된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팔라딘은 자신들의 연습 장소인 글로셔터셔의 한 농가에 음반 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자신들의 공연 모습을 공개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음반 계약에 한걸음 다가서게 된다.

1970년대 말, 런던으로 진출한 팔라딘은 몇 차례의 공연을 펼친 후 어렵지 않게 '브론즈 음반사(Bronze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었으며 1971년 1월 8일 부터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팔라딘의 데뷔 음반은 약간의 '다중 녹음(Overdub)' 형식을 취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은 라이브 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팔라딘이 그만큼 자신들의 연주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였다.

피터 솔리의 해먼드 오르간이 작렬하는 곡 'Bad Times'를 시작으로 일곱 곡이 수록된 데뷔 음반을 1971년에 발표한 팔라딘은 곧이어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지역으로 순회 공연을 떠나 성공적인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게 된다. 하지만 공연 활동 도중 보컬리스트인 루 스톤브리지가 무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루 스톤브리지의 부상을 제외하면 성공적이었던 순회 공연을 마무리 한 팔라딘은 당시 런던에서 가장 유명했던 '애플 스튜디오(Apple Studios)'로 들어가 두번째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1972년 초에 발표된 팔라딘의 두번째 음반 'Charge!'는 음반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한 '로저 딘(Roger Dean)'의 멋진 그림을 표지에 담고 있는데 외계 행성의 말을 탄 기수를 등장시킨 이 그림은 로저 딘이 그때 까지 작업한 표지 가운데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밝혔던 만큼 대단히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오르간과 기타를 배경으로 강력한 보컬이 터져 나오는 첫 곡 'Give Me Your Hand'에서 사이키델릭과 블루스적인 요소를 담아낸 팔라딘은 이 곡을 시작으로 강력한 하드 록의 향연을 음반 'Charge!'를 통해 펼치고 있다.

특히 환상적인 오르간 연주와 기타 연주로 시작하여 서정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는 음반의 최고 작인 여섯번째 곡 'Mix Your Mind with the Moonbeams'와 마지막 곡인 'Watching the World Pass By'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진행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하지만 밴드의 최고 작인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후 팔라딘은 갑작스럽게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970년 4월에 루 스톤브리지와 데렉 폴리가 밴드에서 탈퇴하면서 팔라딘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밴드의 보컬리스트와 기타 주자의 탈퇴로 흔들리던 팔라딘은 새로운 멤버를 가입시켜 영국과 유럽 지역으로 순회 공연을 떠나 1973년 까지 활동하였으나 결국 밴드의 주요 멤버가 탈퇴해 버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산의 길을 걷게 된다.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Frijid Pink - House Of The Rising Sun

 

Frijid Pink - House Of The Rising Sun

프리지드 핑크 (Frijid Pink) :
켈리 그린 (Kelly Green) : 보컬
게리 레이 톰슨 (Gary Ray Thompson) : 기타
톰 해리스 (Tom Harris) : 베이스
리처드 스티버스 (Richard Stevers) : 드럼

갈래 :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frijidpinknow
House Of The Rising Sun 감상하기 : http://youtu.be/t40INnb6DnY

 

Frijid Pink - Frijid Pink (1970년)
1. God Gave Me You (3:35)
2. Crying Shame (3:11) : http://youtu.be/v-XmPr5oNlw
3. I'm On My Way (4:34)
4. Drivin' Blues (3:14) : http://youtu.be/wkqLbg7ZdEw
5. Tell Me Why (2:50) : http://youtu.be/3NluPO_4lHQ
6. End of the Line (4:07)
7. House of the Rising Sun (4:44) : http://youtu.be/t40INnb6DnY
8. I Want to Be Your Lover (7:30) : http://youtu.be/FpiX5eiu2FE
9. Boozin' Blues (6:01) : http://youtu.be/Hfp0s1vTSsU
Bonus Track
10. Heartbreak Hotel (2:49)
11. Music for the People (2:54)

 

미국 미시간(Michigan) 주의 자동차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1967년에 결성된 하드 록 밴드 프리지드 핑크는 미국 민요인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강력한 사이키델릭 록으로 편곡한 명곡 'House Of The Rising Sun'을 1969년에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7위에 올려 놓으며 히트를 시켰다. 미국 민요인 'House Of The Rising Sun'은 1960년에 미국의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자신의 데뷔 음반에 수록 한 이후 1964년에 영국의 록 밴드 '애니멀스(The Animals)'가 록 버전으로 편곡하여 히트를 시켰으며 프리지드 핑크가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하여 또 다시 히트를 기록하였다.

프리지드 핑크의 곡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싱글 차트에도 올라 4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캐나다 싱글 차트에서는 3위에 올랐고 독일의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사이키델릭 록 히트 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알고 지내던 톰 해리스와 리처드 스티버스는 1967년의 어느 날 사이키델릭 록을 구사하는 밴드를 결성해서 함께 활동하자는 의견을 주고 받게 된다. 바로 프리지드 핑크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강렬한 사이키델릭 록에 적합한 기타 주자를 찾게 되는데 게리 레이 톰슨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마지막으로 밴드의 보컬을 담당할 '켈리 그린(본명: Tom Beaudry)'이 이들과 합류하면서 4인조 밴드 프리지드 핑크는 탄생하였고 곧 바로 밴드는 디트로이트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프리지드 핑크가 구사하는 강렬한 사운드는 서서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여 1969년에 '패럿 음반사(Parrot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패럿 음반사와 계약에 성공한 프리지드 핑크는 1969년에 데뷔 싱글인 'Tell Me Why/Cryin' Shame'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음반 데뷔를 하였고 같은 해에 두번째 싱글 'Drivin' Blues/God Gave Me You'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두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판매 실적도 신통치 않았다.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밴드가 1969년에 세번째 싱글인 'House of the Rising Sun/Drivin' Blues'을 발표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이었던 'House of the Rising Sun'이 좀더 강력한 사이키델릭 록으로 돌아오자 삽시간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프리지드 핑크가 1970년 1월에 발표한 데뷔 음반 'Frijid Pink'는 'House of the Rising Sun'의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1위 까지 진출하였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밴드는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그해 6월에 서둘러 두번째 음반 'Defrosted'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데뷔 음반의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하고 앨범 차트에서 149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이게 된다. 음반의 실패는 밴드의 균열로 이어져 게리 레이 톰슨과 켈리 그린이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톰 해리스와 리처드 스티버스는 탈퇴한 두 사람 대신 '존 웨어링(Jon Wearing, 보컬)'과 '크레이그 웹(Craig Webb, 기타)'을 가입시켜 1972년에 세번째 음반 'Earth Omen'을 발표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밴드의 인기를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음반을 끝으로 톰 해리스 마저 밴드를 탈퇴하면서 원년 멤버는 드러머인 리처드 스티버스만 남게 되었다. 리처드 스티버스는 새로운 멤버들로 구성된 프리지드 핑크를 이끌고 1975년에 네번째 음반 'All Pink Inside'를 발표하였다. 이후 밴드는 더 이상 새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잠정 해산 상태에 있다가 1981년에 공식 해산하게 된다.

해산하여 팬들에게 잊혀져 가던 프리지드 핑크는 2001년에 완전히 새로운 멤버들로 재구성되어 돌아와 2002년에 새 음반 'Inner Heat'를 발표하였으나 새로운 프리지드 핑크는 음반의 실패로 활동을 마무리 해야 했다. 2005년에는 원년 멤버들인 톰 해리스, 리처드 스티버스, 켈리 그린이 다시 모여 새로운 프리지드 핑크를 출범 시켰으나 이 또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원년 멤버의 재결성이 실패로 끝난 후 프리지드 핑크는 드러머인 리처드 스티버스가 새로운 멤버들을 모아 밴드를 지속시켜 나가고 있으며 클럽 무대를 통한 활동을 현재까지 계속 이어 오고 있다.

참고로 'House Of The Rising Sun'은 미국 국회 도서관의 직원으로 민속학자였던 '앨런 로맥스(Alan Lomax)'가 1937년에 켄터키(Kentucky) 주 미들즈버러(Middlesborough)의 탄광촌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오며 불려지고 있던 노래를 채집하여 그 지역 광부의 딸인 당시 열여섯살의 십대 소녀였던 '조지아 터너(Georgia Turner)'에게 부르게 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조지아 터너가 녹음하여 1937년 9월에 싱글로 발표되었던 당시 곡의 제목은 'The Risin' Sun Blues'였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John Cougar - Hurts So Good

 

John Cougar - Hurts So Good

존 멜렌켐프(John Mellencamp)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 미국 가수 존 쿠거는 데뷔 당시 강인한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조니 쿠거(Johnny Cougar)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존 쿠거(John Cougar)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가 존 쿠거 멜렌켐프(John Cougar Mellencamp)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는 자신의 본명인 존 멜렌켐프를 사용하고 있는 다소 특이한 가수이다.

인디애나(Indiana)주 잭슨 카운티(Jackson County)의 시모어(Seymour) 시의 독일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존 멜렌켐프는 '이분 척추증(Spina bifida: 척추 파열증)'으로 태어나자 마자 장시간 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후 심각한 후유증 없이 성장한 존 멜렌켐프는 열네살때 처음으로 트래시(Trash)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열여덟살 때에는 임신한 여자 친구와 함께 가출을 하였으며 열아홉살이 되던 1970년 12월에 아버지가 되었다.

1972년에 인디애나주의 빈세네스(Vincennes) 시에 있는 2년제 대학인 빈세네스 대학교(Vincennes University)에 진학한 존 멜렌켐프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밴드 생활을 병행했는데 이때부터 술과 마약에 빠져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학업을 위해 술과 마약을 차츰 멀리 하기 시작하여 1974년에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존 멜렌켐프는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뉴욕행을 결심하게 된다.

뉴욕에 온 존 멜렌켐프는 1975년에 토니 디프라이스(Tony DeFries)와 매니저 계약을 맺고 그의 지도로 음반을 녹음하여 1976년 10월에 'Chestnut Street Incident'라는 제목으로 'MCA 음반사(MCA Records)'를 통해 데뷔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녹음 작업 당시 매니저인 토니 디프라이스는 존 멜렌켐프라는 본명 대신 사람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기를 요구하였다. 매니저의 요구를 받아들인 존 멜렌켐프는 이렇게 하여 데뷔 당시 조니 쿠거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니 쿠거의 데뷔 음반은 일만 이천장이라는 판매 실적에 만족해야 했다. 1977년 조니 쿠거는 두번째 음반으로 'The Kid Inside'를 녹음하여 발매 준비를 마쳤으나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매니저인 토니 디프라이스의 반대로 발매가 취소 되었다. 결국 이 음반은 1983년에 가서야 정식 음반으로 공개되었다. 토니 디프라이스는 조니 쿠거에게 '리바 음반사(Riv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음반 녹음 작업과 음반 홍보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조니 쿠거를 데리고 가게 된다.

런던에서 녹음된 후속 음반은 'A Biography'라는 제목을 달고 1978년 3월에 공개 되었다. 미국에서는 발매가 되지 않았던 이 음반 역시 데뷔 음반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하였으나 다만 수록곡인 'I Need a Lover'가 호주에서 약간의 히트를 하였다. 연이은 음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니 쿠거는 1979년 6월에 존 쿠거라는 새 이름으로 새 음반 'John Cougar'를 미국에서 발표하게 된다. 이 음반에는 이전 음반에 수록되어 호주에서 히트를 했었던 곡인 'I Need a Lover'가 수록되었는데 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진입하여 28위 까지 진출하며 존 쿠거에게 최초의 성공을 안겨주었다.

1980년 9월에는 음반 'Nothin' Matters and What If It Did'를 발표하여 두 곡의 싱글 'Ain't Even Done with the Night(17위)'과 'This Time(27위)'을 히트시킨 존 쿠거는 1982년 4월에 여섯번째 음반인 'American Fool'을 통해 대형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이 음반에서는 두 곡의 대형 히트 곡이 탄생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존 쿠거라는 이름을 알렸던 곡인 'Hurts So Good(2위)'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곡인 'Jack and Diane'이 수록되어 있다.

존 멜렌켐프(John Mellencamp) : 1951년 10월 7일 미국 인디애나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루츠 록(Roots Rock), 팝 록(Pop/Rock), 포크(Fol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ellencamp.com/
Hurts So Good 감상하기 : http://youtu.be/4dOsbsuhYGQ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Edgar Winter Group - Autumn

 

Edgar Winter Group - Autumn

미국의 다중악기 연주자 '에드거 윈터'는 텍사스(Texas)주 보먼트(Beaumont)에서 태어났다. 에드거 윈터의 아버지인 '존 윈터(John Winter)'는 동네 남자들이 매일 같이 모여들어 사교 활동과 음악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발소를 무대로 활동했던 '이발소 4중주단(Barbershop Quartet)'과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였으며 재즈 밴드 멤버로 색소폰(Saxophone)을 연주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성공한 음악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존 윈터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신의 큰 아들인 '자니 윈터(Johnny Winter)'와 둘째 아들인 에드거 윈터가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소년이 어릴때 부터 악기 연주를 가르치며 음악 활동을 권장하였다.

이런 아버지의 기대대로 형제는 거부감 없이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에드거 윈터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는 형 자니 윈터와 함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니 윈터가 연주하는 '유클렐리(ukelele)'를 반주로 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텔레비전 출연 후 형제는 뉴욕으로 가서 몇 군데의 음반사를 방문하여 실력을 검증받은 후 '다트 음반사(Dart Records)'를 통해 싱글 음반 'School Day Blues/You Know I Love You'를 발표하면서 어린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윈터 형제는 1962년에 '자니 앤 더 재머스(Johnny and the Jamm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였는데 이 밴드에서 자니 윈터는 기타를 연주하였으며 에드거 윈터는 피아노를 연주하였었다. 에드거 윈터는 고교 시절에 '캐논볼 애덜리(Julian Edwin "Cannonball" Adderley)'의 알토색소폰(Alto Saxophone)를 듣고는 그 음색에 반해 이때 부터 알토색소폰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댓가로 에드거 윈터는 대학 시절에 이미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등의 다양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다중악기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에드거 윈터는 1970년에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데뷔 음반 'Entrance'를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의 1960년 곡을 커버한 곡으로 에드거 윈터의 이름을 알린 곡인 'Tobacco Road'로 유명한 이 음반은 에드거 윈터와 자니 윈터가 공동으로 만든 곡들로 수록 곡 대부분을 채웠으며 자니 윈터는 이 음반에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해주기도 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에드거 윈터는 다음 음반 제작을 위해 자니 윈터를 비롯하여 '릭 데린저(Rick Derringer, 기타)'등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 밴드는 '에드거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Edgar Winter's White Trash)'라는 이름으로 1972년에 음반 'Edgar Winter's White Trash'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에드거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는 17분 짜리 대곡 'Tobacco Road'가 수록된 두장짜리 실황 음반 'Roadwork'를 1972년에 발표하고 짧은 활동 기간을 정리하게 된다.

에드거 윈터는 밴드를 해산시킨 후 로니 몬트로스, 댄 하트먼, 척 러프를 구성원으로 하는 새 밴드 에드거 윈터 그룹을 1972년에 결성하고 그해 11월에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인 음반 'They Only Come Out at Night'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에드거 윈터가 이전의 음반들에서 들려주었던 리듬 앤 블루스(R&B) 형식의 음악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시도를 선택한 음반으로 서든 록과 재즈, 그리고 블루스와 프로그레시브 록 까지 수용하여 실험적인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다.

수록 곡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형식의 연주 곡 'Frankenstein'을 비롯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했던 로니 몬트로스의 멋진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히트 곡 'Free Ride'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두 곡외에도 블루스 록 형식의 'When It Comes', 서든 록 형식의 'Round & Round'등을 수록하여 에드거 윈터가 이 음반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음반에는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발라드 'Autumn'이 수록되어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뜨거웠던 여름과 사랑했던 사람을 함께 떠나보내야 했던 이의 슬픈 심정을 노래한 'Autumn'을 들으며 어느 사이엔가 조용히 사라져 버린 매미의 울음 소리를 대신하여 갑자기 성큼 다가와 버린 가을 바람을 느껴보자.

에드거 윈터 그룹 (Edgar Winter Group) :
에드거 윈터 (Edgar Winter, 키보드, 보컬) : 1947년 12월 28일 미국 텍사스 출생
로니 몬트로스 (Ronnie Montrose, 기타) : 1947년 11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댄 하트먼 (Dan Hartman, 베이스) : 1950년 12월 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생, 1994년 2월 22일 사망
척 러프 (Chuck Ruff, 드럼) : 1951년 5월 25일 미국 네바다(Nevada)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dgarwinter.com/
Autumn 감상하기 : http://youtu.be/Y8nAb_NlTsg
Frankenstein 감상하기 : http://youtu.be/x1mV_5-bRPo

2010년 9월 17일 금요일

Janis Joplin - Move Over

 

Janis Joplin - Move Over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인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대 중후반의 팝계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 블루스 가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고 사라져간 가수였다. 텍사스주 포트아서(Port Arthur)의 한 대학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어머니와 기술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재니스 조플린은 반항아적인 기질을 곧잘 드러내며 성장하였다고 한다. 뚱뚱한 체격과 못생긴 외모로 인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십대를 맞으면서 재니스 조플린은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의 블루스 가수들인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나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의 노래를 즐겨 들었으며 이런 음악들을 통해 블루스 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들게 되었다. 포크 음악과 블루스 음악 외에도 재니스 조플린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시와 그림으로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음악과 시, 그리고 그림에 매료되며 십대를 맞이 하였고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몇명의 친구들과 함께 포크와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며 고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해서도 그녀의 못생긴 외모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놀림감 신세가 되었던 것은 변함없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라마 주립 공과 대학(Lamar State College of Technology)'에 입학하였지만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주변의 비웃음에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1962년 여름 학기까지 마친 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그해 12월에 재니스 조플린은 친구 집에서 자비로 녹음하여 만든 자신의 첫번째 싱글인 'What Good Can Drinkin' Do'를 테이프로 소량 발매하였으며 1963년 초에 텍사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럽이나 바의 무대를 통해 노래를 부르며 본격적인 프로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클럽 가수로 활동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멀지않은 미래에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기타리스트가 될 '조르마 카우커넌(Jorma Kaukonen)'을 1964년에 만나 그와 함께 몇곡의 블루스 곡들을 협연하여 녹음하게 된다. 이 당시 재니스 조플린과 조르마 카우커넌이 협연했던 곡들은 'Typewriter Talk', 'Trouble In Mind', 'Kansas City Blues', 'Hesitation Blues',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Daddy, Daddy, Daddy', 'Long Black Train Blues'로 이 곡들은 'The Typewriter Tape'이라는 제목의 해적판에 수록되어 출시된 적이 있다.

이 즈음 재니스 조플린은 클럽 가수 생활에서 오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복용량이 늘어나면서 위험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재니스 조플린은 1965년 5월에 친구가 끊어준 포트아서행 버스 표를 손에 들고 고향행 버스에 오르게 된다. 친구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 재니스 조플린은 어렵게 마약을 끊는 한편으로 중단했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학교에 복학하여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이 재활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가 결성되어 활동을 준비하며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의 매니저는 자신이 이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재니스 조플린에게 연락하여 밴드의 합류를 권하였고 재니스 조플린은 196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에 가입하게 된다.

'메인스트림 음반사(Mainstream Records)'와 계약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데뷔 음반 발매전인 1967년 6월에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에 출연하여 'Combination of the Two'와 'Ball and Chain'을 연주하여 관중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7년 9월에 메인스트림 음반사에서 데뷔 음반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를 발표하였으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밴드의 모습을 지켜 보았던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에서 음반 재계약을 제의하여 데뷔 음반이 컬럼비아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8년에 두번째 음반 'Cheap Thrills'를 발표하여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히트시켰다. 이 음반에는 히트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오페라를 편곡한 'Summertime'과 빅 마마 손튼의 곡인 'Ball and Chain'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음반의 성공과 함께 재니스 조플린의 명성도 높아져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라는 밴드 이름보다 개인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재니스 조플린은 1968년 12월 까지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와 함께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자신의 백밴드인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주력하였다. 공연 활동과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1969년 9월에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인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를 발표했다.

1969년 12월 20일 뉴욕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코즈믹 블루스 밴드를 해산시킨 재니스 조플린은 1970년 2월에 브라질로 여행을 떠났다가 미국으로 돌아 왔는데 여행을 다녀온 후 부터 재니스 조플린은 또 다시 마약과 술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예전처럼 서서히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갔다. 헤로인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재니스 조플린은 새로운 밴드인 '풀 틸트 부기 밴드(Full Tilt Boogie Band)'를 결성하고 1970년 5월 부터 순회 공연에 들어갔으며 그해 9월 5일에 새 음반 작업을 위해 밴드와 함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새 음반 'Pearl'을 녹음하면서 부터 재니스 조플린의 상태가 좋아지는 듯 했으나 10월 1일의 마지막 녹음을 끝으로 그녀는 사흘 후인 10월 4일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의 사후인 1971년 2월에 발표된 음반 'Pearl'에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재니스 조플린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터져 나오는 곡인 'Move Over'를 비롯하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의 곡으로 싱글로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곡인 'Me and Bobby McGee'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음반에는 'Buried Alive in the Blues'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에는 재니스 조플린의 보컬이 빠져 있어 그녀가 미처 녹음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알려주고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Move Over' 한 곡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음반 'Pearl'은 음반의 제목인 진주처럼 영롱함으로 반짝이는 음반이기도 하다.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 1943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 출생, 1970년 10월 4일 사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하드 록(Hard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anisjoplin.net/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YYWdiG1Bf0c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Scorpions - Still Loving You

 

Scorpions - Still Loving You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언스는 유럽과 일본에서 독일산 헤비메탈 밴드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록 발라드 곡인 'Always Somewhere'와 'Holiday'로 인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그에 반해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미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스콜피언스가 1982년 3월 29일에 'Blackout' 음반을 미국의 '머큐리 음반사(Mercury Records)'를 통해 발표하고 싱글 'No One Like You'를 발매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싱글 'No One Like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64위 까지 상승하며 히트를 하였고 음반 판매도 순항을 거듭하여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게 된다. 'Blackout' 음반의 표지 디자인은 자신의 작품에 학대 받은 아이와 붕대를 자주 등장시키기로 유명한 화가이자 사진 작가인 오스트리아계 아일랜드인 고트프리드 헬른바인(Gottfried Helnwein)이 맡았는데, 그는 자신의 자화상 시리즈 가운데 하나를 음반 커버로 사용하여 헤비메탈 음반에 어울리는 강인하고 기묘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Blackout' 음반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도 성공한 스콜피언스는 1983년 현충일 주간(Memorial Day: 전몰 장병 추도 기념일로 5월의 마지막 월요일)의 금요일에 캘리포니아주 산버나디노(San Bernadino)에서 개최된 'US Festival'의 둘째날에 무대에 올라 삼십 칠만 오천명의 관중 앞에서 열띤 공연을 펼치게 된다. 이 공연은 MTV로도 중계되어 미국 전역의 안방으로 스콜피언스의 놀랍고도 광폭한 무대가 전달되면서 많은 팬을 만들게 된다.

성공적으로 미국 진출에 성공한 스콜피언스는 1984년 3월 27일에 발표한 음반 'Love at First Sting'으로 최고의 시기를 맞게 된다. 'Love at First Sting' 음반이 처음 미국에서 발매될 당시에는 관능적인 사진 작품으로 유명한 독일의 사진 작가 '헬뮤트 뉴튼(Helmut Newton)'의 작품으로 반나체의 여인을 껴안고 그녀의 허벅지에 문신을 새겨 넣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인 원래의 표지 그대로였으나 미국의 '월마트(Wal-Mart)'측에서 너무 선정적이다는 이유로 음반 표지의 교체를 요청하여 결국 멤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 클린(Clean) 표지로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선정적인 커버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Rock You Like a Hurricane'과 'Still Loving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순조롭게 진입하여 25위와 64위 까지 진출하였다. 싱글의 히트에 힘입어 음반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최종적으로 6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음반 판매에서도 'Blackout' 음반을 뛰어 넘어 2백만장 이상을 팔아치웠다. 스콜피언스는 'Love at First Sting'으로 밴드 결성 후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음반에 수록된 'Still Loving You'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뒤이어 'Rock You Like a Hurricane'과 'Big City Nights'까지 히트를 하였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티아스 얍스 (Matthias Jabs, 리드 기타) : 1956년 10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프랜시스 부흐홀츠 (Francis Buchholz, 베이스) : 1954년 2월 19일 독일 하노버 출생
헤만 라레벨 (Herman Rarebell, 드럼) : 1949년 11월 18일 독일 슈멜쯔(Schmelz)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8월 19일 목요일

Scorpions -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Scorpions -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1972년 2월에 데뷔 음반 'Lonesome Crow'를 발표한 스콜피언스는 음반 판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영국 하드 록 밴드 'UFO'의 순회 공연에 보조 밴드로 합류하여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게 된다. 이 순회 공연을 계기로 'UFO' 멤버들을 사로잡은 마이클 쉥커는 1973년 6월에 스콜피언스를 떠나 'UFO'로 옮겨가게 되고 '로타 하임베르크(Lothar Heimberg, 베이스)'와 '볼프강 지오니 (Wolfgang Dziony, 드럼)'도 데뷔 음반의 실패로 인한 밴드 앞날의 불투명함에 스콜피언스를 떠나게 된다.

세명의 멤버가 떠나면서 위태롭던 스콜피언스를 루돌프 쉥커는 멤버의 빠른 보강으로 헤쳐나가게 된다. 먼저 마이클 쉥커의 빈자리를 자신의 친구인 '울리히 로스(Ulrich Roth, 기타)'에게 맡기고 '프랜시스 부흐홀츠(Francis Buchholz, 베이스)'와 '율겐 로젠탈(Jurgen Rosenthal, 드럼)'을 가입시켜 리듬 파트를 정비한 후 새로운 멤버들로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키보드 주자인 '아힘 커슈닝(Achim Kirschning)'을 초빙하여 사운드를 보강한 스콜피언스는 1974년 11월에 음반 'Fly to the Rainbow'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콜피언스의 팬들에 의해 초기 명반으로 분류되는 'Fly to the Rainbow'에서 처음 세상에 공개된 울리히 로스의 기타 연주는 첫번째 트랙인 'Speedy's Coming'에서 부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2기 스콜피언스가 앞으로 펼쳐나갈 음악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던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울리히 로스의 가세로 밴드의 음악 방향을 확립한 스콜피언스는 유럽 지역에서 점차 지명도를 넓혀 나가게 되지만 다시 한번 멤버 교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율겐 로젠탈에게 입대 영장이 발부되었기 때문이다. 율겐 로젠탈은 군 복무후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엘로이(Eloy)'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율겐 로젠탈의 후임으로 벨기에 출신의 드러머 '루디 레너스(Rudy Lenners)'를 가입시킨 스콜피언스는 1975년 9월에 세번째 음반 'In Trance'를 발표하였고, 1976년에는 깨어진 유리 너머로 보이는 나체 소녀의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음반 'Virgin Killer'를 발표하여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권 까지 스콜피언스라는 밴드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음반 커버에 사용하면서 논쟁에 휘말린 어린 소녀의 나체 사진도 한 몫을 담당했다.

한편 이 즈음 드러머인 루디 레너스는 건강 상태의 악화로 더 이상 밴드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자 스콜피언스를 탈퇴하게 된다. 새로운 드러머로 헤만 라레벨을 발탁한 스콜피언스는 1978년 1월에 새 음반 'Taken by Force'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1978년 4월 24일 부터 27일 까지 펼쳐진 당시의 실황은 음반으로 만들어져 'Tokyo Tapes'라는 제목으로 1978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은 팬들에 의해 스콜피언스의 실황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을 끝으로 밴드의 음악이 점점 상업성에 치우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울리히 로스가 밴드 탈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밴드인 '일렉트릭 선(Electric Sun)'을 결성하여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스콜피언스의 멤버들은 울리히 로스를 대신할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공개 모집을 통해 뽑기로 하고 지원자를 불러 모았는데 무려 140명의 지원자가 공개 모집에 참가하였다. 이들 140명의 기타 주자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마티아스 얍스가 합류하게 되면서 스콜피언스의 사운드에도 변화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이전 보다 좀더 팝 취향의 헤비메탈 음악을 구사하는 쪽으로 밴드의 음악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1979년 2월에 발표된 음반 'Lovedrive'에서 이러한 변화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Loving You Sunday Morning'이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록 발라드 'Always Somewhere'와 'Holiday'에서 그러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전보다 좀더 대중 지향작인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주는 이 음반에는 'UFO'의 마이클 쉥커가 합류하여 기타 연주를 해주고 있기도 하다. 1980년 3월의 마지막 날에 'The Zoo'가 수록되어 있는 일곱번째 음반인 'Animal Magnetism'을 발표한 스콜피언스는 1982년 3월 29일에 'Blackout'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도 등장하게 된다.

스콜피언스의 여덟번째 음반인 'Blackout'은 우여곡절 끝에 발매가 이루어졌는데 이 음반의 녹음이 진행되던 당시에 보컬리스트인 클라우스 마이네가 성대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콜피언스는 미국 출신의 가수 '돈 도켄(Don Dokken)'을 발탁하여 음반의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클라우스 마이네의 수술 경과를 지켜보게 된다. 다행히 클라우스 마이네의 성대는 이상없이 완치가 되어 돈 도켄이 사전에 녹음했던 곡들을 폐기하고 클라우스 마이네가 새로 부른 곡들로 음반을 만들게 된다.

'Blackout'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64위에 오른 히트 곡 'No One Like You'를 포함하여 타이틀 곡인 'Blackout'과 'Dynamite'를 연속해서 히트시키며 빌보드 앨범 차트(The Billboard 200)에서 10위에 올랐고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여 스콜피언스 최초의 공식 플래티넘(Platinum)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헤만 라레벨의 힘찬 드러밍으로 시작하는 강렬하고 너무도 멋진 메탈 곡 'China White'가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발라드 'When the Smoke Is Going Down'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으로 자리하고 있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티아스 얍스 (Matthias Jabs, 리드 기타) : 1956년 10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프랜시스 부흐홀츠 (Francis Buchholz, 베이스) : 1954년 2월 19일 독일 하노버 출생
헤만 라레벨 (Herman Rarebell, 드럼) : 1949년 11월 18일 독일 슈멜쯔(Schmelz)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Scorpions -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

 

Scorpions -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

1979년 2월에 발표했었던 음반 'Lovedrive'에 수록된 록 발라드 'Always Somewhere'와 'Holiday'가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순식간에 팝팬들을 사로잡았던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언스는 1965년에 루돌프 쉥커에 의해서 출발하게 된다. 독일의 힐데스하임(Hildesheim)시 사슈테트(Sarstedt)에서 태어난 루돌프 쉥커는 어릴때 부터 기타 연주에 많은 관심이 기울이다 '팬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기타로 처음 기타 연주를 시작하였다.

열다섯살 때인 1963년에는 동생인 마이클 쉥커가 집으로 가지고 온 '깁슨 플라잉 브이(Gibson Flying V)' 기타를 처음으로 연주해보고는 깁슨 플라잉 브이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기타 연주를 하며 밴드 활동을 꿈꾸던 루돌프 쉥커는 결국 1965년에 스콜피언스를 결성하고 자신이 직접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으나 그리 주목받을만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컬 능력의 부족함을 인식한 루돌프 쉥커는 밴드의 보컬을 맡을 인물을 찾다가 1969년에 '하노버(Hannover)' 출신인 클라우스 마이네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며 스콜피언스의 기본 토대가 마련되었다. 루돌프 쉥커의 동생인 마이클 쉥커도 형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기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처음 기타 연주를 시작한 것이 여덟살 때였다. 열한살 때인 1966년 부터는 형이 결성한 밴드인 스콜피언스의 일원으로 함께 연주를 하였는데 형보다 기타 실력이 더 좋아 리드 기타를 맡게 된다.

지역의 나이트 클럽에서 첫 무대를 가진 스콜피언스는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지만 뛰어난 보컬리스트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어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게 되었고 그때 만난 인물이 '클라우스 마이네'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스콜피언스의 리더인 루돌프 쉥커는 밴드의 음악에 '야드버즈(The Yardbirds)', '프레티 씽스(The Pretty Things)', '스푸키 투스(Spooky Tooth)' 같은 영국 밴드들의 기타 리프를 차용하기 시작하며 체계적인 록 밴드의 기틀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루돌프 쉥커와 클라우스 마이네는 새로운 곡을 만들며 음반 데뷔의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1972년 2월에 5인조의 스콜피언스는 데뷔 음반인 'Lonesome Crow'를 발표하게 된다. 스콜피언스가 데뷔 음반을 발표하던 당시 독일에서는 사이키델릭 음악의 영향을 받은 '크라우트 록(Kraut Rock)'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하드 록에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접목을 시도한 음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당시 너무 많은 밴드들이 비슷한 음악을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음반 활동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서 스콜피언스의 음악이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예전 음반들을 찾아 듣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이 즈음을 기하여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도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3분 30초 짜리 대곡이자 음반의 타이틀 곡인 'Lonesome Crow'와 클라우스 마이네가 탁월한 보컬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과 하드 록 팬들을 사로잡게 된다. 이로인해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은 알려지지 않은 명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고 1989년 12월에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되기에 이른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이클 쉥커 (Michael Schenker, 리드 기타) : 1955년 1월 10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로타 하임베르크 (Lothar Heimberg, 베이스) : 독일 출생
볼프강 지오니 (Wolfgang Dziony, 드럼) : 1949년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7월 30일 금요일

Queen - We Are The Champions

 

Queen - We Are The Champions

1974년 11월에 발표했던 세번째 음반 'Sheer Heart Attack'에서 발매된 싱글 'Killer Queen'을 처음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올려 놓은 퀸은 1975년 초에 미국을 시작으로 한 퀸의 첫번째 세계 순회 공연에 들어가게 된다. 캐나다를 거쳐 4월에는 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서 진행된 일본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계 순회 공연을 마무리 하였다. 세계 순회 공연을 마친 퀸은 영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매니저 계약을 모두 청산하고 엘튼 존(Elton John)의 매니저인 '존 레이드(John Reid)'와 새로운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된다.

새로운 매니저와 새 출발 하게 된 퀸은 세계 순회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 전인 8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새 음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1월 까지 진행된 녹음을 마치고 퀸은 1975년 11월 21일에 'A Night at the Opera'라는 제목의 새 음반을 발표하였고 이 음반에 수록된 'Bohemian Rhapsody'를 히트시키면서 최정상급 밴드의 위치에 올라 서게 된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200)'에서는 4위를 기록한 'A Night at the Opera' 음반에 이어 퀸은 1976년 12월에 다섯번째 음반 'A Day at the Races'를 발표하여 'Somebody To Love'를 히트시키면서 영국 앨범 차트에서 또 다시 정상을 차지 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에 올랐다.

한편 퀸은 'A Day at the Races' 음반이 발표되기 전인 9월에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15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무료 공연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77년 10월 28일에 세상에 공개된 퀸의 새 음반 'News of the World'는 커다란 로봇이 표지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 로봇은 1953년 10월호 '아날로그 사이언스 픽션 앤 팩트 매거진(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의 표지에 등장하였던 로봇이었다.

이 로봇이 음반 커버에 등장하게 된 것은 로저 테일러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에 머물다가 우연히 대기실에 있던 아날로그 사이언스 픽션 앤 팩트 매거진을 보게 되었고 표지의 로봇이 마음에 들어 음반 커버에 싣자고 멤버들에게 제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퀸은 이 로봇을 음반 커버에 등장시키기 위해 로봇 그림의 원작자인 공상 과학(Sci-fi) 작가 '프랭크 켈리 프리어스(Frank Kelly Freas)'에게 로봇 그림 사용에 대한 문의를 하여 허락을 받아냈는데 그에 더해 프랭크 켈리 프리어스는 원작과는 다르게 로봇의 손에 들려 있는 시신의 모습을 퀸 멤버들의 모습으로 바꾸어 그려주기 까지 하였다.

'News of the World' 음반에는 첫번째 트랙으로 'We Will Rock You'가 실려있고 바로 다음 곡으로 'We Are The Champions'이 수록되어 있는데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한 'We Will Rock You'는 경기장에서 응원가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곡 'We Are The Champions'은 프레디 머큐리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두 곡은 곡의 배치로 인한 상승 작용으로 인해 두 곡 모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스포츠가 전해주는 진한 감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We Are The Champions'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에 올랐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4위에 그쳤지만 노래가 가진 파급력은 차트 순위와는 상관없는 엄청난 힘을 지닌채 스포츠 경기의 감동을 팝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또한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두 곡 이후 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밴드 1위 자리를 굳건히 다지게 된다.

퀸 (Queen) :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보컬) : 1946년 9월 5일 탄자니아 출생, 1991년 11월 24일 사망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기타) : 1947년 7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존 디콘 (John Deacon, 베이스) : 1951년 8월 19일 영국 레스터셔 출생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드럼) : 1960년 4월 26일 영국 더싱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queenonline.com/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Queen - Bohemian Rhapsody

 

Queen - Bohemian Rhapsody

영국 런던에서 1971년에 결성된 록 밴드 '퀸'은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로 부터 시작되었다. 영국 런던시 남서쪽 템스 강 부근의 햄프턴(Hampton)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메이는 '햄프턴 그래머 고교(Hampton Grammar School)' 재학 시절에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학교 친구인 '팀 스타펠(Tim Staffell, 베이스, 보컬)'과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나인틴 에이티 포(Nineteen Eighty-Four)'로 지었는데, 이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인 '1984'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브라이언 메이가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은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대학교(Imperial College)에 같이 입학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가끔씩 함께 연주를 하며 잠시 눌러 놓았던 음악을 향한 열정을 표출하기도 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사람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학교 게시판에 밴드를 함께 할 드러머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게 되는데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바로 '로저 테일러'였다.

노퍽(Norfolk)주 더싱햄(Dersingham)에서 태어난 로저 테일러와 함께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은 1968년에 트리오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스마일(Smile)'로 정하게 된다. 스마일이 결성될 당시 팀 스타펠의 친구로 런던의 '일링 예술 대학(Ealing Art College)'에 다니고 있던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는 친구인 팀 스타펠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해 주었으며 밴드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963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탄자니아(United Republic of Tanzania)'의 항구 도시 잔지바르(Zanzibar) 스톤타운(Stone Town)에서 태어난 파로크 불사라는 스마일의 멤버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이때 부터 자신의 이름을 영어식인 '프레디(Freddie)'로 바꾸게 된다. 스마일이 결성되고 2년이 흐른 1970년에 팀 스타펠이 막 결성한 밴드인 '험피 봉(Humpy Bong)'으로 옮겨가게 되자 스마일의 두 멤버들은 자연스레 프레디를 밴드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밴드의 이름도 프레디가 제안한 퀸으로 바꾸게 된다.

프레디가 밴드의 이름을 퀸으로 정한 이유는 퀸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보편적이고 발음하기도 쉬워서라고 밝혔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이 게이(Gay)라는 성적 취향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여간 새출발 하게 된 퀸은 밴드의 새로운 베이스 주자를 찾아야 했는데 몇명의 베이스 연주자를 거쳐 1971년 2월에 레스터셔(Leicestershire) 출신의 '존 디콘'을 맞아 들여 4인 체제의 밴드 구성을 마무리 짓게 된다.

퀸은 음반 데뷔를 위해 '드 레인 레아 녹음실(De Lane Lea Studios)'에서 'Liar', 'Keep Yourself Alive', 'The Night Comes Down', 'Jesus'의 네곡을 녹음하여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였다. 또한 프레디는 음반사에 보낼 신상명세서의 이름을 적는 칸에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라고 적어 넣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탄생하게 된다.

머큐리라는 성은 프레디 머큐리가 'My Fairy King'이라는 노래를 만들다가 노래에 등장하는 가사 'Mother Mercury, look what they've done to me'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되었던 것으로 이 곡은 퀸의 데뷔 음반에 수록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가 고안한 퀸의 로고를 새겨 넣은 데뷔 음반 'Queen'은 'EMI'를 통해서 1973년 7월 13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은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을 받은 하드 록 성향의 음반으로 차트 진출 곡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영국의 음반 차트에서 24위에 그리고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83위에 오르며 데뷔 음반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성과로 마무리 되었다. 1974년 3월에 두번째 음반 'Queen II'를 발표한 퀸은 같은 해 11월에 세번째 음반 'Sheer Heart Attack'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Killer Queen'이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2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게 된다.

첫번째 대형 히트 곡을 만들어 낸 퀸은 1975년 11월에 네번째 음반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너무도 유명한 곡 'Bohemian Rhapso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싱글로 발표될 당시에는 곡이 너무 길어 성공에 대한 장담을 할 수 없었으나 곡이 발표되자 상황은 바뀌어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다.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Bohemian Rhapsody'는 캐나다와 뉴질랜드,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에서는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라이센스 음반에서는 삭제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음반의 'Love of My Life'가 'Bohemian Rhapsody' 대신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는데 해적판을 통해 'Bohemian Rhapsody'가 알려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을 받게 된다. 또한 'Bohemian Rhapsody'는 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곡이기도 하다.

퀸 (Queen) :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보컬) : 1946년 9월 5일 탄자니아 출생, 1991년 11월 24일 사망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기타) : 1947년 7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존 디콘 (John Deacon, 베이스) : 1951년 8월 19일 영국 레스터셔 출생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드럼) : 1960년 4월 26일 영국 더싱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글램 록(Glam Rock),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queenonline.com/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비틀즈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영국의 위대한 밴드 롤링 스톤스는 1962년에 결성되었다. 1950년대에 영국 켄트(Kent)주 다트포드(Dartford)의 웬트워스 초등학교(Wentworth Primary School)에는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이후 두사람은 성장하면서 각자가 정한 진로에 따라 키스 리처드는 '시드컵 예술 대학(Sidcup Art College)'에 입학하여 런던으로 떠났고 믹 재거도 '런던 정경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입학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다.

두사람은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며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고향의 다트포드 기차역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 항로에 들어서게 된다. 기타 연주를 좋아했던 키스 리처드는 자신의 공책에 '척 베리(Chuck Berry)'나 블루스 명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같은 연주자들의 노래 악보를 적어 가지고 다녔는데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만난 고향 친구인 믹 재거에게 이 공책을 보여주게 되었다.

당시 믹 재거는 런던 정경 대학에서 친구인 '딕 테일러(Dick Taylor)'와 함께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Little Boy Blue and the Blue Boy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키스 리처드의 공책을 통해 악보들을 보는 순간 믹 재거는 어떤 영감을 느끼게 되어 키스 리처드에게 자신의 밴드에 합류하여 블루스 지향의 음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라는 이름 아래 뭉치게 된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블루스 연주자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가 결성한 밴드인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의 공연을 구경 갔다가 알렉시스 코너의 친구인 브라이언 존스를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존스는 친구인 알렉시스 코너의 밴드에서 보조 연주자로 기타 연주를 해주고 있었는데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를 만나게 되면서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에 합류하게 된다.

또한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에는 장래에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 되는 이언 스튜어트(Ian Stewart)와 찰리 왓츠가 멤버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였다. 1962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브라이언 존스, 이언 스튜어트, 딕 테일러, 토니 채프먼(Tony Chapman, 드럼)을 멤버로 한 밴드를 출범시키게 되는데, 밴드의 이름은 브라이언 존스가 머디 워터스의 음반에서 얼핏 보았던 수록 곡 'Rollin' Stone'에서 가져온 '롤링 스톤스(The Rollin' Stones)'로 정하게 된다.

1962년 7월 12일, 런던의 유명한 음악 클럽인 '마키 클럽(Marquee Club)'에서 데뷔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에 '앤드루 루그 올덤(Andrew Loog Oldham)'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앤드루 루그 올덤의 노력으로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계약하게 된 롤링 스톤스는 앤드루 루그 올덤의 의견에 따라 밴드 이름의 철자를 고쳐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로 바꾸고 1963년 6월 7일에 척 베리의 곡 'Come On'을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21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 11월에 두번째 싱글로 발표한 '존 레논(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곡 'I Wanna Be Your Man'을 싱글 차트에서 12위 까지 진출시키며 단숨에 인기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1964년 2월에 발표한 세번째 싱글은 '버디 홀리(Buddy Holly)'의 곡인 'Not Fade Away'였는데 이 곡은 싱글 차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높아가는 롤링 스톤스의 인기를 뒷받침 하였다.

1964년 4월 16일, 데뷔 음반 'The Rolling Stones'를 발표한 밴드는 데뷔 음반을 앨범 차트 정상에 올려 놓게 된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Tell Me'를 제외하면 음반의 모든 곡이 다른 사람들의 곡으로 채워진 데뷔 음반 이후 롤링 스톤스는 꾸준히 다른 사람들의 곡을 음반에 수록하게 되는데 1966년 4월에 영국에서 발표한 음반 'Aftermath'에 이르르서 음반의 모든 곡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곡으로 채워 넣게 된다. 이 음반을 계기로 밴드의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여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에게 점차 밴드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한편 영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롤링 스톤스가 5월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히트 곡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6월 20일에 미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첫번째 트랙으로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으며 싱글로도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Paint It Black'은 1987년 9월에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하였던 베트남전을 그린 드라마 '머나먼 정글(Tour of Duty)'에 주제 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
믹 재거 (Mick Jagger, 보컬) : 1943년 7월 26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시타르) : 1942년 2월 28일 영국 글로셔터스 출생, 1969년 7월 3일 사망
키스 리처드 (Keith Richards, 기타) : 1943년 12월 18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빌 와이먼 (Bill Wyman, 베이스, 해먼드 오르간) : 1936년 10월 24일 영국 런던 출생
찰리 왓츠 (Charlie Watts, 드럼) : 1941년 6월 2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llingstones.com/

 

2010년 7월 14일 수요일

Cheap Trick - Don't Be Cruel

 

Cheap Trick - Don't Be Cruel

 

미국 일리노이주 록퍼드(Rockford)에서 1974년에 결성된 파워 팝 밴드 '칩 트릭'의 역사는 록퍼드 출신의 릭 닐슨과 톰 피터슨이 1967년에 결성한 록퍼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던 밴드인 '퓨즈(Fuse)'로 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부터 록퍼드 지역에서 기타 주자로 활동하며 '그림 리퍼스(The Grim Reapers)', '보이즈(The Boyz)' 같은 밴드를 거친 릭 닐슨은 1967년에 톰 피터슨을 비롯하여 조 샌드버그(Joe Sundberg, 보컬), 크레이그 마이어스(Craig Myers, 기타), 칩 그린맨(Chip Greenman, 드럼)과 함께 록 밴드 퓨즈를 결성하였다.

퓨즈는 1968년에 '스맥 음반사(Smack Records)'를 통해 하드 록 성향의 싱글 'Hound Dog/Crusin for Burgers'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싱글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고 1969년에 데뷔 음반 'Fuse'를 발표하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받은 하드 록 성향인 퓨즈의 데뷔 음반은 음반 발매 전에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시장에 음반이 풀리자 판매에 난항을 겪으면서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이에 조 샌드버그와 칩 그린맨이 1970년에 밴드를 탈퇴하자 퓨즈의 멤버들은 사이키델릭 록 밴드 '나즈(Nazz)'에서 활동하다 퓨즈 가입을 위해 나즈를 탈퇴한 '톰 무니(Thom Mooney, 드럼)'와 '로버트 안토니(Robert "Stewkey" Antoni, 보컬, 키보드)'를 받아들이고 밴드를 정비하였다.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퓨즈는 미국 중서부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을 계속해 나가게 되지만 공연 활동에 지친 톰 무니가 또 다시 밴드를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떠나간 톰 무니 대신 '번 이 카를로스'를 받아들인 퓨즈는 1971년에 필라델피아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밴드 이름도 '식 맨 오브 유럽(Sick Man of Europe)'으로 바꾸게 된다. 식 맨 오브 유럽은 1972년 부터 1973년 까지 장기 유럽 순회 공연을 펼치며 밴드의 활로를 모색하게 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밴드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된다.

공연에 지친 몸을 이끌고 1973년에 고향인 록퍼드로 돌아간 릭 닐슨과 톰 피터슨, 번 이 카를로스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새출발하기로 의견을 모은 후 '랜디 호건(Randy Hogan)'을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기용하고 밴드 이름을 칩 트릭으로 정하게 된다. 칩 트릭은 공연 활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출발을 앞두게 되지만 보컬리스트인 랜디 호건이 칩 트릭을 탈퇴해 버려 밴드의 출발과 함께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칩 트릭은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다가 번 이 카를로스의 추천으로 '로빈 잰더'를 가입시키게 되는데, 로빈 잰더는 세살때 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신동으로 불렸고 열두살때 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던 인물로 '위스콘신(Wisconsin)'에서 활동하며 음반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가 번 이 카를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칩 트릭에 가입하게 된다.

칩 트릭은 1975년에 볼링장의 창고를 빌려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몇군데의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다. 마침내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의 승인을 거쳐 칩 트릭은 에픽과 1976년에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77년 2월 에픽사를 통해 공개된 데뷔 음반 'Cheap Trick'을 시작으로 칩 트릭은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하여 같은 해 9월에 두번째 음반 'In Color'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는 1979년에 빌보드 싱글 차트 7위 까지 오르는 히트 곡 'I Want You to Want Me'가 수록 되어있었는데, 음반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칩 트릭이 일본 순회 공연을 다녀온 후 1979년 2월에 발표한 실황 음반 'Cheap Trick at Budokan'에서 싱글로 발매하자 빌보드 싱글 차트 7위 까지 오르게 된다. 칩 트릭은 본국인 미국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유독 인기가 많았는데 1978년 10월에 일본 동경의 무도칸(Budokan) 경기장에서 행해졌던 이 공연 음반에서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Cheap Trick at Budokan' 음반 이후 칩 트릭의 곡 'I Want You to Want Me'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인기는 미약한 편이었다. 칩 트릭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All Shook Up' 이후 톰 피터슨이 칩 트릭을 탈퇴하여 '존 브랜트(Jon Brant, 베이스)'를 대신 가입 시켜 활동을 계속해 나가지만  1980년대의 주무대에서 칩 트릭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무대 바깥으로 서서히 밀려나게 된다.

1988년 4월 12일, 떠났던 톰 피터슨이 다시 돌아온 칩 트릭은 새 음반 'Lap of Luxury'에서 싱글로 발표되었던 파워 발라드 'The Flame'을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1위에 올려 놓으며 화려하게 주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The Flame'에 이어서 발매된 싱글 'Don't Be Cruel'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1956년에 발표하여 히트시켰던 곡을 커버한 것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하며 'The Flame'의 뒤를 이었다.

두곡의 탑텐 히트 곡 외에도 'Ghost Town'과 'Never Had A Lot To Lose'를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3위와 75위에 진출시킨 'Lap of Luxury' 음반은 음반 판매량에서도 백만장을 넘기며 플래티넘 레코드가 되었다.

칩 트릭 (Cheap Trick) :
로빈 잰더 (Robin Zander, 보컬, 기타) : 1953년 1월 23일 미국 위스콘신 출생
릭 닐슨 (Rick Nielsen, 기타) : 1946년 12월 22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톰 피터슨 (Tom Petersson, 베이스) : 1950년 5월 9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번 이 카를로스 (Bun E. Carlos, 드럼) : 1951년 6월 12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갈래 : 파워 팝(Power Pop), 팝 록(Pop/Rock), 뉴웨이브(New Wave),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heaptrick.com/

 

2010년 7월 6일 화요일

Styx - Mr. Roboto

 

Styx - Mr. Roboto

 

1979년에 음반 'Cornerstone'를 발표한 스틱스는 싱글 'Babe'와 'Boat on the River'의 연이은 히트와 함께 1980년 초에 진행된 22회 그래미상에서 최고의 록 보컬 부문(Best Rock Vocal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후보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팬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피플스 초이스 상(People's Choice Awards)에서는 최고의 신곡(Best New Song) 부문에서 수상자로 결정되는 영광을 안으며 밴드 최고의 해를 보내게 된다.

 

1980년 말, 외부 활동을 마무리한 스틱스는 펌프킨 녹음실(Pumpkin Studios)로 들어가 다음 음반인 'Paradise Theater'를 녹음하여 1981년 1월 19일에 스틱스의 열번째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시카고에 실제 존재하고 있는 파라다이스 극장(Paradise Theater)을 배경으로 하여 가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컨셉트 음반(Concept Album: 같은 주제의 음악들을 모아 만든 음반)이었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스틱스의 유일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음반 'Paradise Theater'에서는 싱글 'The Best of Times'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였고 두번째 싱글인 'Too Much Time on My Hands'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9위 까지 오르며 연속 히트를 기록하였다. 또한 음반 'Paradise Theater'는 3백만장을 가볍게 넘어서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The Grand Illusion' 음반 부터 시작된 트리플 플래티넘 음반(Triple Platinum Album) 행진을 4연속으로 이어 가게 되었다.

넉장의 음반을 연속해서 3백만장 이상씩 팔아 치우며 십대들에게 사랑 받는 록 밴드 중 하나가 된 스틱스는 데니스 드영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 다음 음반 'Kilroy Was Here'를 1982년에 제작하게 된다. 1983년 2월 28일에 발표된 이 음반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들이 주둔하고 지나간 지역에서 자주 뱔견되던 미군 병사들이 남긴 낙서에 등장하던 말인 'Kilroy Was Here'를 음반의 제목으로 정한 SF 록 오페라 음반이었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Mr. Roboto'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두번째 싱글인 'Don't Let It End'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6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였다. 두곡 모두 우리나라에서도 동반 히트를 하였지만 'Mr. Roboto'의 '도모 아리가또 미스타 로보또'로 시작하는 일본어 가사가 문제가 되어 한참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던 어느날 부터 갑작스레 금지곡으로 분류되어 우리나라 방송에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Mr. Roboto'에 등장하는 '도모 아리가또 미스타 로보또'로 시작하는 일본어 가사는 다음 구절에 'Thank You Very Much, Mr. Roboto'를 배치하여 가사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스틱스 (Styx) :
데니스 드영 (Dennise DeYoung보컬, 키보드) : 1947년 2월 18일 미국 시카고 출생
토미 쇼 (Tommy Shaw, 기타) : 1953년 9월 11일 미국 앨라배마 출생
제임스 영 (James Young, 기타) : 1949년 11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척 파노조 (Chuck Panozzo, 베이스)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존 파노조 (John Panozzo, 드럼)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1996년 7월 16일 사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tyxworld.com/

 

2010년 7월 5일 월요일

Styx - Babe

Styx - Babe

 

미국 일리노이(Illinois)주 시카고 출신의 밴드 스틱스는 1977년에 발표한 음반 'The Grand Illusion'과 싱글 'Come Sail Away'의 성공으로 시카고를 대표하는 록 그룹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 지향의 음악으로 시작한 스틱스는 토미 쇼의 가입과 함께 팝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는데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어져 스틱스는 1977년 부터 밴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싱글 'Come Sail Away'와 'The Grand Illusion'의 성공을 지켜본 스틱스의 전 소속 음반사인 '우든 니켈(Wooden Nickel Records)'에서는 스틱스의 성공에 때 맞춰 스틱스의 초기 음반들에서 히트 싱글들을 간추린 베스트 음반을 기획하여 1977년에 'Best of Styx'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스틱스의 첫번째 베스트 음반인 이 음반은 미국에서만 50만장을 넘게 팔아 치우며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여 스틱스의 시대임을 증명하였다.

 

1978년 9월 1일에 발표된 스틱스의 여덟번째 음반 'Pieces of Eight'은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사이에서 멋진 음반 표지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가 음반 표지의 제작을 담당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Blue Collar Man (Long Nights)'과 'Renegade'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각각 21위와 16위를 기록하며 히트를 하였고 음반은 앨범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며 일곱번째 음반 'The Grand Illusion'의 성공을 이어가게 된다.

 

또한 여덟번째 음반 'Pieces of Eight'은 전작인'The Grand Illusion'과 마찬가지로 3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여 연속으로 트리플 플래티넘 음반(Triple Platinum Album)이 되었지만 스틱스의 흐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틱스는 시카고의 파라곤 녹음실(Paragon Recording Studios)을 떠나 시카고 인근의 오크 론(Oak Lawn)에 위치해 있는 펌프킨 녹음실(Pumpkin Studios)에서 녹음 제작된 아홉번째 음반인 'Cornerstone'을 1979년 10월 19일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Bab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밴드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으며 싱글로는 처음으로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6위를 차지하는 히트 곡이 되었다. 또한 Cornerstone' 음반은 'The Grand Illusion' 음반 부터 연속하여 3백만장을 넘게 판매하는 3연속 트리플 플래티넘 음반으로 기록되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밴드의 명성을 이어가게 되었다.

 

히트 곡 'Babe'는 같은 음반에 수록된 'Boat on the River'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기간 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 곡으로 한때 스틱스의 대표곡 처럼 여겨지던 곡이기도 하다.

스틱스 (Styx) :
데니스 드영 (Dennise DeYoung보컬, 키보드) : 1947년 2월 18일 미국 시카고 출생
토미 쇼 (Tommy Shaw, 기타) : 1953년 9월 11일 미국 앨라배마 출생
제임스 영 (James Young, 기타) : 1949년 11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척 파노조 (Chuck Panozzo, 베이스)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존 파노조 (John Panozzo, 드럼)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1996년 7월 16일 사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tyxworld.com/

 

2010년 7월 2일 금요일

Styx - Come Sail Away

Styx - Come Sail Away

 

1975년 12월에 음반 'Equinox'를 발표한 스틱스는 곧바로 전국 순회 공연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존 큐얼리스키가 밴드를 탈퇴해 버리자 혼란에 빠진 스틱스는 순회 공연 일정에 맞추기 위해 부랴 부랴 새로운 기타 주자를 찾아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기타 주자를 찾아야 하는 숨가쁜 과정을 거쳐 앨라배마(Alabama)주의 몽고메리(Montgomery) 출신인 토미 쇼가 발탁되어 스틱스의 새로운 기타 주자로 순회 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토미 쇼와 함께 'Equinox' 음반의 순회 공연을 무사히 마친 스틱스는 녹음실로 돌아가 다음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1976년 10월 1일에 발표된 음반 'Crystal Ball'은 토미 쇼의 가세로 이전보다 좀더 팝 취향의 사운드가 강세를 이루고 있는 음반이었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데니스 드영과 토미 쇼의 공동 작품인 'Mademoisell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6위에 오르며 스틱스의 세번째 Top 40 진출 곡이 되었다.

 

토미 쇼와 함께 한 첫번째 음반 'Crystal Ball'에서 보여준 스틱스의 변화는 다음 음반인 'The Grand Illusion'부터 직접적인 성과로 드러나게 된다. 1977년 7월 7일에 발표된 스틱스의 일곱번째 음반 'The Grand Illusion'은 의도적으로 행운의 숫자 7이 반복되는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발표 날짜를 조정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그러한 의도는 싱글 'Come Sail Away'의 Top 10 진출로 성공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The Grand Illusion' 음반의 표지 그림은 켈리 앤 마우스(Kelly and Mouse: Alton Kelley & Stanley Mouse)가 공동으로 작업한 것으로 음반 제목에 어울리는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팬들을 사로 잡았다. 또한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Come Sail Away'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의 8위에 올랐고 뒤이은 싱글 'Fooling Yourself'는 싱글 차트에서 29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게 된다.

 

싱글의 성공은 음반 판매와 빌보드 앨범 차트(Billboard 200)에도 영향을 끼쳐 스틱스는 처음으로 3백만장이 넘는 판매량과 앨범 차트 6위라는 밴드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남기게 된다. 한편 히트 곡 'Come Sail Away'는 우리나라의 록 밴드 들국화가 공연 무대에서 단골로 커버하여 들려주었고 실황 음반에도 수록하여 팝팬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스틱스 (Styx) :
데니스 드영 (Dennise DeYoung보컬, 키보드) : 1947년 2월 18일 미국 시카고 출생
토미 쇼 (Tommy Shaw, 기타) : 1953년 9월 11일 미국 앨라배마 출생
제임스 영 (James Young, 기타) : 1949년 11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척 파노조 (Chuck Panozzo, 베이스)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존 파노조 (John Panozzo, 드럼)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1996년 7월 16일 사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tyxworld.com/

 

 

2010년 7월 1일 목요일

Styx - Suite Madame Blue

 

Styx - Suite Madame Blue

 

스틱스는 1973년 7월에 발표했던 두번째 음반 'Styx II' 이후 그해 후반기에 데뷔 음반과 두번째 음반을 녹음했던 시카고의 파라곤 녹음실(Paragon Recording Studios)로 들어가 세번째 음반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74년 2월에 발표된 스틱스의 세번째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92위에 머무르며 실패로 마감되었다. 후일 데니스 드영은 인터뷰에서 '이상하게도 세번째 음반 제작 당시에 녹음 환경 등을 포함한 음반 제작 여건이 최악의 상태였다'고 밝혔다.

 

세번째 음반의 실패 이후 스틱스는 일리노이주 타즈웰 카운티(Tazewell County)의 사우스피킨(South Pekin)에 위치 하고 있는 골든 보이스 녹음실(Golden Voice Studios)로 옮겨가 네번째 음반의 작업을 서두르게 된다. 새로운 녹음실에서 제작된 새 음반은 세번째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1974년 11월 8일에 서둘러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음반의 초판본에는 데뷔 음반에 수록되어 소폭의 히트를 기록했던 'Best Thing'이 여섯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가 재발매가 되면서 'Lies'로 곡이 바뀌었는데 이로인해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54위에 머무르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음반이 되고 말았다.

네번째 음반 발표 후 스틱스는 시카고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대형 음반사와 접촉을 시도하던 중 두번째 음반에 수록되었던 싱글 Lady'의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급물살을 타게 되어 마침내 A&M 음반사(A&M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시카고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우든 니켈 음반사(Wooden Nickel Records)를 떠난 스틱스는 A&M에서의 첫번째 음반인 'Equinox'를 1975년 12월 1일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Lorelei'는 1976년 초에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27위 까지 올라 'Lady'에 이어 두번째로 Top 40 진출곡이 되면서 스틱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스틱스가 이때 까지 발표한 곡 가운데 최고 작인 'Suite Madame Blue'가 수록되어 있어 진보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을 사로잡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스틱스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곡이기도 했다. 한편 이 음반을 끝으로 존 큐얼리스키가 탈퇴하고 '토미 쇼(Tommy Shaw)'가 가입하면서 스틱스는 밴드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스틱스 (Styx) :
데니스 드영 (Dennise DeYoung보컬, 키보드) : 1947년 2월 18일 미국 시카고 출생
존 큐얼리스키 (John Curulewski, 기타) : 1950년 10월 3일 미국 시카고 출생
제임스 영 (James Young, 기타) : 1949년 11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척 파노조 (Chuck Panozzo, 베이스)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존 파노조 (John Panozzo, 드럼) : 1948년 9월 20일 미국 시카고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tyx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