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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8일 화요일

Baltimora - Tarzan Boy

Baltimora - Tarzan Boy

1995년 3월 29일에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으로 사망한 영국 북아일랜드 런던데리(Londonderry) 출신의 '지미 맥쉐인'과 이탈리아 출신의 연주자들이 모여 결성된 신스 팝 밴드 '발티모라'의 출발은 1984년에 이탈리아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키보드 주자인 '마우리찌오 바씨'는 뉴웨이브를 추구하는 새로운 팝 밴드를 구상하고 연주자들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우연히 영국의 게이 단체에서 '루비(Ruby)'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아일랜드 적십자의 응급 구조 대원인 지미 맥쉐인에 대해서 전해 듣게 된다.

지미 맥쉐인은 탁월한 노래 실력과 춤 실력으로 이미 게이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물이었던 것인데 이를 전해 들은 마우리찌오 바씨가 그에게 연락하여 밴드의 보컬로 합류시키게 된다. 붉은 색의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화려하게 물들인 머리 카락을 휘날리며 밴드에 합류한 지미 맥쉐인의 모습을 본 마우리찌오 바씨는 바로 자신이 찾던 인물임을 확신하였으며 곧 바로 연주자들을 모아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탈리아 출신의 신스 팝 밴드 발티모라의 화려한 출발이었다.

발티모라는 데뷔 음반을 위해 'Tarzan Boy'를 비롯하여 경쾌한 뉴웨이브 음악으로 만들어진 여섯 곡의 노래를 만들어 녹음을 마친 후 1985년 4월에 데뷔 싱글로 'Tarzan Boy'를 먼저 선보이게 된다. 발티모라의 데뷔 싱글은 발표 이후 빠른 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하며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는데 3위 까지 진출 하였던 영국 싱글 차트를 시작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싱글 차트에서 각각 3위와 5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발티모라의 싱글 'Tarzan Boy'는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 빠른 속도로 상승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 나가게 되는데 스위스와 노르웨이의 싱글 차트에서는 4위 까지 진출했으며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아일랜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정상을 차지하며 전 유럽을 'Tarzan Boy'의 열풍으로 몰아넣게 된다.

유럽에서의 성공은 바다 건너 북미 지역으로도 이어지게 되는데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 진입한 'Tarzan Boy'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3위 까지 진출하여 유럽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발티모라의 인기가 바다를 건너오면서도 여전히 식지 않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싱글 'Tarzan Boy'가 성공하자 발티모라는 1985년 중반에 유럽 지역에서 먼저 데뷔 음반 'Living in the Background'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인 1986년에는 미국에서도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발티모라의 인기는 후속 싱글인 'Living in the Background'의 불발로 빠른 속도로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7위에 그친 'Living in the Background' 이후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걷던 발티모라는 1987년에 영국, 이탈리아, 독일, 멕시코, 일본에서만 발매된 두번째 음반 'Survivor in Love'에서도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발티모라의 데뷔 음반의 표지는 영국반과 미국반, 그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매된 세가지가 존재하는데 아래의 음반 표지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매된 음반의 표지이다.


발티모라 (Baltimora) :
지미 맥쉐인 (Jimmy McShane, 보컬) : 1957년 5월 23일 영국 런던데리(Londonderry)출생
조르지오 쿠치로보 (Giorgio Cocilovo) : 리드 기타
클라우디오 밧자리 (Claudio Bazzari) : 리듬 기타
삐에르 미켈라띠 (Pier Michelatti) : 베이스
마우리찌오 바씨 (Maurizio Bassi) : 키보드, 피아노
가브리엘레 멜로띠 (Gabriele Melotti) : 드럼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 팝(Synth Pop), 댄스(Danc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Tarzan Boy 감상하기 : http://youtu.be/_r0n9Dv6XnY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The Romantics - Talking In Your Sleep

1977년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 2월 14일)에 월리 팔머, 마이크 스킬, 리치 콜(Rich Cole,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의 4인 구성으로 출범한 디트로이트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1983년에 발표한 음반 'In Heat'의 수록 곡인 'Talking In Your Sleep'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영국 출신의 다른 뉴웨이브 밴드들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밴드이다.

밸런타인데이에 결성되어 밴드 이름을 로맨틱스로 정한 밴드는 팝 음악 지향의 펑크(Punk)음악을 구사하며 디트로이트 지역과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이런 강렬한 파워 팝은 당시 막 시작된 뉴웨이브 음악의 흐름에 자연스레 편성되었으며 사람들에게 뉴웨이브 밴드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스파이더 음반사(Spider Records)'를 통해 1977년에 데뷔 싱글 'Little White Lies/I Can't Tell You Anything'를 발표한 로맨틱스는 이듬해인 1978년에 두번째 싱글 'Tell It To Carrie/First In Line'을 '밤 음반사(Bomp  Records)'를 통해 공개하였으나 두장의 싱글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2년여의 시간을 무명 밴드로 활동했던 로맨틱스는 마침내 1979년 8월에 '냄퍼러 음반사(Nemperor Records)'와 정식 음반 계약에 성공하고 9월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하드 록 밴드인 '팔라딘(Paladin)'에서 멋진 해먼드 오르간 연주를 들려 주었던 '피터 솔리(Peter Soley)'가 프로듀서로 음반의 제작을 총지휘 하게 된다.

로맨틱스는 데뷔 음반 발표 전인 1979년에 데뷔 음반에 수록될 예정인 곡 'What I Like About You'를 싱글로 먼저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8위 까지 진출시켰으며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는 12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바다 건너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 까지 진출시키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멤버들이 화려한 붉은 색의 의상을 입고 표지에 등장한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 'The Romantics'는 1980년 1월 4일에 발표되어 싱글로 발표되었던 'What I Like About You'의 성공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61위 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What I Like About You'를 히트시킨 로맨틱스는 1980년 한해를 광고 출연등의 일정으로 바쁘게 보내다 12월에 두번째 음반 'National Breakout'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의 성공에 고무되어 잔뜩 기대를 안고 두번째 음반을 발표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두번째 음반에서는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였고 음반도 앨범 차트에서 176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게 된다.

로맨틱스는 두번째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1981년 9월에 녹음실로 돌아가 그해 10월에 심혈을 기울인 세번째 음반 'Strictly Personal'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전작보다는 더한 참패로 끝나버리게 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82위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은 결국 밴드의 균열을 가져왔고 밴드 결성때 부터 함께 해왔던 마이크 스킬과 리치 콜이 로맨틱스를 탈퇴하여 로맨틱스는 해산의 위기를 겪게 된다.

멤버 두 사람의 탈퇴로 어쩔 수 없이 잠정 활동 정지에 들어간 로맨틱스의 남은 두 멤버는 새로운 멤버인 코즈 캔러를 받아들여 그에게 밴드의 리드 기타를 맡김으로써 밴드를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고 떠났던 마이크 스킬이 1982년에 다시 로맨틱스에 합류하면서 뉴웨이브 밴드 로맨틱스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이전 까지 로맨틱스의 리드 기타를 담당했었던 마이크 스킬은 로맨틱스에 다시 합류하면서 부터 베이스를 담당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와 함께 1983년 5월에 녹음실로 들어간 로맨틱스는 6월 까지 새 음반을 녹음하여 그해 가을에 네번째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로맨틱스의 데뷔 음반에서 제작 총지휘를 했던 피터 솔리가 객원 키보드 주자로 참여하여 사운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준 로맨틱스의 네번째 음반은 'In Heat'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첫번째 싱글로 'Talking in Your Sleep'을 발매하게 된다.

싱글로 발표된 'Talking in Your Sleep'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더니 1984년 2월에 3위 까지 진출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댄스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던 'Talking in Your Sleep'은 영국의 싱글 차트에도 올라 15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Talking in Your Sleep'은 우리나라에서도 댄스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곡이며 로맨틱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현재까지도 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 곡이다.

로맨틱스 (The Romantics) :
월리 팔머 (Wally Palmar)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코즈 캔러 (Coz Canler) : 기타
마이크 스킬 (Mike Skill) : 베이스
지미 마리노스 (Jimmy Marinos) : 드럼

갈래 : 파워 팝(Power Pop), 뉴 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manticsdetroit.com/
Talking In Your Sleep 감상하기 : http://youtu.be/m6f_ANMxjUQ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1983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She's So Unusual'이 오백만장이 넘게 팔려 나가며 뉴 웨이브 음악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신디 로퍼(본명: Cynthia Ann Stephanie Lauper)'는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영화에 진출하여 배우로도 활동하였던 가수였다. 브루클린(Brooklyn)에서 태어나 퀸스(Queens)에서 성장한 신디 로퍼는 어린 시절에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놀았고 열두살때 부터는 언니에게서 물려 받은 기타를 이용하여 기타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배우면서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한 신디 로퍼는 어린 나이이지만 음악과 미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머리를 염색하는가 하면 남들은 절대 입지 않을 현란한 색상의 옷을 입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런 생각은 공립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진보적인 사상의 소녀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열일곱살때 미술 공부를 겸한 여행을 위해 집을 나온 신디 로퍼는 캐나다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 신디 로퍼는 캐나다를 떠나 미국의 버몬트(Vermont)주에 정착하여 존슨 주립 대학교(Johnson State College)의 미술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부터 신디 로퍼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른 가수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는 커버 밴드(Cover Band)들에 가입하여 가수로써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비록 다른 가수들의 노래였지만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도 좋았던 신디 로퍼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무리를 한 나머지 성대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다. 이때가 1977년이었다. 이에 신디 로퍼는 보컬 코치를 고용하여 천천히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시켜 나갔고 이듬해에는 완전히 회복하여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성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그해에 색소폰 주자 '존 투리(John Turi)'를 매니저를 통해 만난 신디 로퍼는 그와 함께 밴드 '블루 앤젤(Blue Angel)'을 결성하고 음반 데뷔를 위해 데모 테이프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데모 테이프에서 신디 로퍼의 목소리를 마음에 들었던 '폴리돌 음반사(Polydor Records)'와 음반 계약이 이루어진 블루 앤젤은 1980년에 데뷔 음반 'Blue Angel'을 발표하게된다. 하지만 이 음반은 판매 부진과 매니저와의 법적 분쟁만을 남긴채 실패로 마감되었고 밴드는 해산하여야 했다.

밴드의 해산 후 신디 로퍼는 낮에는 중고 물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밤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던 신디 로퍼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1981년이었다. 뉴욕의 한 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신디 로퍼를 록 밴드 '아크 앤젤(Arc Angel)'의 매니저인 '데이빗 울프(David Wolff)'가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와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데이빗 울프는 곧 신디 로퍼를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의 자회사인 '포트레이트 음반사(Portrait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게 도와주게 된다.

포트레이트 음반사와 계약한 신디 로퍼는 훈련 과정을 거쳐 목소리를 다듬은 후 1983년 초에 녹음실로 들어가 데뷔 음반의 녹음을 시작하게 된다. 1983년 10월 14일, 신디 로퍼는 'She's So Unusual'이라는 제목의 데뷔 음반을 발표하였다. 신디 로퍼가 생기 발랄 혹은 엽기 발랄의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한 이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2위에 오른 곡'Girls Just Want to Have Fun'을 시작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른 'She Bop'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Time After Time'을 연속으로 배출해내면서 1983년의 후반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1983년 7월 27일에 데뷔 음반 'Madonna'를 발표하며 데뷔했던 '마돈나(Madonna)'는 'Holiday'를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었지만 신디 로퍼의 음반 ''She's So Unusual'에 가려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신디 로퍼 (Cyndi Lauper) : 1953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cyndilauper.com/
Girls Just Want to Have Fun 감상하기 : http://youtu.be/0tUfCz99Dpk
Time After Time 감상하기 : http://youtu.be/l9LBKh3SzhM
She Bop 감상하기 : http://youtu.be/NRyI3pZxON8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Elvis Costello - She

 

Elvis Costello - She

본명이 '데클랜 패트릭 맥매누스(Declan Patrick MacManus)'인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 엘비스 코스텔로는 1954년 8월 25일에 런던 서부 주택 지역인 패딩턴(Paddington)의 세인트 메리 병원(St. Mary's Hospital)에서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인 '로스 맥매누스(Ross MacManus)'의 아들로 태어났다. 로스 맥매누스는 1955년 3월 부터 빅 밴드인 '조 로스 오케스트라(The Joe Loss Orchestra)'의 단원으로 가입하여 보컬을 담당했으며 BBC 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인 'Come Dancing'과 BBC 라디오의 쇼 프로그램인 'The Joe Loss Pop Show'에 출연하기도 하였던 인물이었다.

어릴때 부터 아버지의 음악 활동을 보면서 자란 엘비스 코스텔로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런 엘비스 코스텔로가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한 것은 1971년의 일로 '앨런 메이스(Allan Mayes)'와 함께 결성한 '러스티(Rusty)'라는 이름의 포크 듀오였다. 솔로와 듀오로 나이크 클럽과 포크 클럽의 무대를 중심으로 1973년 까지 활동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4년에 '플립 시티(Flip City)'라는 이름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였다.

이때 부터 엘비스 코스텔로는 무대에서 본명을 짧게 줄여 'D.P. Costello'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엘비스 코스텔로의 아버지인 로스 맥매누스는 음료수 회사인 '알 화이트 레모네이드(R. White's Lemonade)'사의 광고에 사용될 노래인 'I'm a Secret Lemonade Drinker'를 만들고 엘비스 코스텔로에게 녹음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생애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공개될 노래의 녹음에 참여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 보컬을 맡았다. 한편 부자가 참여한 이 곡은 1974년에 '국제 광고제(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 출품되어 은상을 수상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6년에 자신의 집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되는데 당시 녹음했던 곡들이 'Wave A White Flag', 'Poison Moon', 'Jump Up', 'Mystery Dance'였다. 이렇게 제작된 데모 테이프는 BBC 라디오의 쇼 프로그램인 'Honky Tonk'를 맡고 있던 DJ '찰리 질레트(Charlie Gillett)'에게 배달되어 방송 전파를 타게 되었다. 당시 런던에서 막 출범한 '스티프 음반사(Stiff Records)'는 신인 발굴을 위해 데모 테이프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배달된 엘비스 코스텔로의 데모 테이프가 음반 제작자인 '닉 로우(Nick Lowe)'의 손을 거치면서 음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스티프 음반사와 계약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D.P. Costello'라는 이름 대신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 시키는 이름인 엘비스 코스텔로로 바꾸었다. 1977년 3월 25일에 싱글 'Less Than Zero'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7월 22일에 데뷔 음반 'My Aim Is True'를 발표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데뷔 음반은 1970년대 중반 부터 시작된 영국의 음악 운동인 '퍼브 록(Pub Rock: 컨트리와 리듬 앤드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기치를 내건 음악 운동)'에 동참한 음반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하였다.

1978년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This Year's Model' 역시 로큰롤에 충실한 음반으로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로커의 출현을 알리게 된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사랑받으며 1970년대 말 부터 시작된 엘비스 코스텔로의 전성기는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까지 이어졌으며 1999년에는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와 '휴 그랜트( Hugh Grant)' 주연의 영화 '노팅 힐(Notting Hill)'에 삽입된 'She'를 발표하여 다시 한번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프랑스 가수 '찰스 아즈네버(Charles Aznavour)'가 1974년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던 노래인 'She'는 엘비스 코스텔에 의해 커버되어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 곡은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과 드라마 등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엘비스 코스텔로 (Elvis Costello) : 1954년 8월 25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퍼브 록(Pub Rock), 펑크(Punk), 뉴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lviscostello.com/

 

2010년 7월 14일 수요일

Cheap Trick - Don't Be Cruel

 

Cheap Trick - Don't Be Cruel

 

미국 일리노이주 록퍼드(Rockford)에서 1974년에 결성된 파워 팝 밴드 '칩 트릭'의 역사는 록퍼드 출신의 릭 닐슨과 톰 피터슨이 1967년에 결성한 록퍼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던 밴드인 '퓨즈(Fuse)'로 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부터 록퍼드 지역에서 기타 주자로 활동하며 '그림 리퍼스(The Grim Reapers)', '보이즈(The Boyz)' 같은 밴드를 거친 릭 닐슨은 1967년에 톰 피터슨을 비롯하여 조 샌드버그(Joe Sundberg, 보컬), 크레이그 마이어스(Craig Myers, 기타), 칩 그린맨(Chip Greenman, 드럼)과 함께 록 밴드 퓨즈를 결성하였다.

퓨즈는 1968년에 '스맥 음반사(Smack Records)'를 통해 하드 록 성향의 싱글 'Hound Dog/Crusin for Burgers'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싱글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고 1969년에 데뷔 음반 'Fuse'를 발표하게 된다.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받은 하드 록 성향인 퓨즈의 데뷔 음반은 음반 발매 전에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시장에 음반이 풀리자 판매에 난항을 겪으면서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이에 조 샌드버그와 칩 그린맨이 1970년에 밴드를 탈퇴하자 퓨즈의 멤버들은 사이키델릭 록 밴드 '나즈(Nazz)'에서 활동하다 퓨즈 가입을 위해 나즈를 탈퇴한 '톰 무니(Thom Mooney, 드럼)'와 '로버트 안토니(Robert "Stewkey" Antoni, 보컬, 키보드)'를 받아들이고 밴드를 정비하였다.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퓨즈는 미국 중서부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을 계속해 나가게 되지만 공연 활동에 지친 톰 무니가 또 다시 밴드를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떠나간 톰 무니 대신 '번 이 카를로스'를 받아들인 퓨즈는 1971년에 필라델피아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밴드 이름도 '식 맨 오브 유럽(Sick Man of Europe)'으로 바꾸게 된다. 식 맨 오브 유럽은 1972년 부터 1973년 까지 장기 유럽 순회 공연을 펼치며 밴드의 활로를 모색하게 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밴드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된다.

공연에 지친 몸을 이끌고 1973년에 고향인 록퍼드로 돌아간 릭 닐슨과 톰 피터슨, 번 이 카를로스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새출발하기로 의견을 모은 후 '랜디 호건(Randy Hogan)'을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기용하고 밴드 이름을 칩 트릭으로 정하게 된다. 칩 트릭은 공연 활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출발을 앞두게 되지만 보컬리스트인 랜디 호건이 칩 트릭을 탈퇴해 버려 밴드의 출발과 함께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칩 트릭은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다가 번 이 카를로스의 추천으로 '로빈 잰더'를 가입시키게 되는데, 로빈 잰더는 세살때 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신동으로 불렸고 열두살때 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던 인물로 '위스콘신(Wisconsin)'에서 활동하며 음반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가 번 이 카를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칩 트릭에 가입하게 된다.

칩 트릭은 1975년에 볼링장의 창고를 빌려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몇군데의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다. 마침내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의 승인을 거쳐 칩 트릭은 에픽과 1976년에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77년 2월 에픽사를 통해 공개된 데뷔 음반 'Cheap Trick'을 시작으로 칩 트릭은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하여 같은 해 9월에 두번째 음반 'In Color'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는 1979년에 빌보드 싱글 차트 7위 까지 오르는 히트 곡 'I Want You to Want Me'가 수록 되어있었는데, 음반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칩 트릭이 일본 순회 공연을 다녀온 후 1979년 2월에 발표한 실황 음반 'Cheap Trick at Budokan'에서 싱글로 발매하자 빌보드 싱글 차트 7위 까지 오르게 된다. 칩 트릭은 본국인 미국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유독 인기가 많았는데 1978년 10월에 일본 동경의 무도칸(Budokan) 경기장에서 행해졌던 이 공연 음반에서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Cheap Trick at Budokan' 음반 이후 칩 트릭의 곡 'I Want You to Want Me'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인기는 미약한 편이었다. 칩 트릭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All Shook Up' 이후 톰 피터슨이 칩 트릭을 탈퇴하여 '존 브랜트(Jon Brant, 베이스)'를 대신 가입 시켜 활동을 계속해 나가지만  1980년대의 주무대에서 칩 트릭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무대 바깥으로 서서히 밀려나게 된다.

1988년 4월 12일, 떠났던 톰 피터슨이 다시 돌아온 칩 트릭은 새 음반 'Lap of Luxury'에서 싱글로 발표되었던 파워 발라드 'The Flame'을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1위에 올려 놓으며 화려하게 주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The Flame'에 이어서 발매된 싱글 'Don't Be Cruel'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1956년에 발표하여 히트시켰던 곡을 커버한 것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하며 'The Flame'의 뒤를 이었다.

두곡의 탑텐 히트 곡 외에도 'Ghost Town'과 'Never Had A Lot To Lose'를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3위와 75위에 진출시킨 'Lap of Luxury' 음반은 음반 판매량에서도 백만장을 넘기며 플래티넘 레코드가 되었다.

칩 트릭 (Cheap Trick) :
로빈 잰더 (Robin Zander, 보컬, 기타) : 1953년 1월 23일 미국 위스콘신 출생
릭 닐슨 (Rick Nielsen, 기타) : 1946년 12월 22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톰 피터슨 (Tom Petersson, 베이스) : 1950년 5월 9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번 이 카를로스 (Bun E. Carlos, 드럼) : 1951년 6월 12일 미국 일리노이 출생

갈래 : 파워 팝(Power Pop), 팝 록(Pop/Rock), 뉴웨이브(New Wave),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heaptrick.com/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Greg Kihn Band - The Breakup Song (They Don't Write 'Em)

 

Greg Kihn Band - The Breakup Song (They Don't Write 'Em)

 

파워 팝이라는 단어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름인 그렉 킨 밴드의 리더인 그렉 킨은 미국 메릴랜드(Maryland)주 볼티모어 태생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전해지는 바가 없는 인물이다. 고향인 볼티모어에서 노래와 작곡 실력을 가다듬다가 1974년에 록의 본고장인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로 와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로 온 그렉 킨은 1973년에 캘리포니아주 '버클리(Berkeley)'에서 문을 연 파워 팝 전문 독립 레이블 '비저클리 음반사(Beserkley Records)'와 계약을 하고 비저클리 소속의 연주자들인 조나단 리치맨(Jonathan Richman)과 1971년에 결성된 파워 팝 밴드 '어스 퀘이크(Earth Quake)', 그리고 1973년에 결성된 파워 팝 밴드 '루비누스(The Rubinoos)'등과 교류를 하며 노래을 만들고 노래 연습을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데뷔 준비를 하게 된다.

당시 비저클리에 소속 되어 있던 파워 팝 밴드 어스 퀘이크에는 후일 그렉 킨 밴드의 일원으로 그렉 킨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로니 던바(Ronnie Dunbar)'가 기타 주자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였다. 그렉 킨은 1975년에 조나단 리치맨과 어스 퀘이크, 그리고 루비누스가 함께 참여한 옴니버스 음반 'Beserkley Chartbusters Volume 1'에 'All The Right Reasons'과 'Mood Mood Number' 두곡을 수록하며 데뷔하게 된다.

옴니버스 음반에 참여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렉 킨은 스티브 라이트와 래리 린치 그리고 어스 퀘이크의 로니 던바를 끌어 들여 자신의 밴드인 그렉 킨 밴드를 결성하고 1976년에 데뷔 음반 'Greg Kihn Band'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비저클리 레이블을 대표하는 파워 팝 사운드가 담겨진 이 음반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음반 판매에서 실패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상업적인 면에서 실패로 끝난 데뷔 음반이긴 하지만 팬들의 주목을 이끌어내는데는 성공하여 그렉 킨 밴드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지지층을 마련하게 된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데뷔 음반 보다 좀 더 무거워진 사운드를 담은 음반 'Greg Kihn Again'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해마다 한장씩의 음반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1981년, 그렉 킨 밴드는 키보드 주자 게리 필립스를 가입시켜 사운드를 보강하고 새 음반 'Rockihnroll'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The Breakup Song'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15위 까지 진출하면서 그렉 킨 밴드의 첫번째 차트 진출 곡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그렉 킨 밴드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한번 들으면 그 멜로디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곡 'The Breakup Song'은 발표된지 28년이 지난 2009년 10월 30일 미국에서 개봉되었던 공포 영화 '하우스 오브 더 데블(The House Of The Devil)'에 삽입되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또다른 반가움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영화 하우스 오브 더 데블은 2010년 7월 15일 부터 25일 까지 부천에서 개최되는 '제14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된 저예산 독립 영화로 영화의 배경과 이야기 방식, 소품등 영화의 모든 것이 1980년대를 그대로 재현한 영화이다. 잘 만들어진 한편의 공포 영화는 무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인 듯 싶은데 줄거리를 살펴보면 결벽증이 있는 여주인공 대학생 사만다는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동료의 지저분한 행태에 질려 새로운 집을 구하기로 한다.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발견한 사만다는 집주인과 계약금 없이 월 3백 달러에 집을 사용하기로 집주인과 구두 계약을 맺고 월세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서게 된다. 우연히 학교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보모(베이비시터)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거는데....

그렉 킨 밴드 (Greg Kihn Band) :
그렉 킨 (Greg Kihn, 보컬, 기타) : 1949년 7월 10일 미국 볼티모어 출생
데이브 카펜더 (Dave Carpender, 기타) : 1950년 1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2007년 9월 26일 사망
스티브 라이트 (Steve Wright, 베이스) :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게리 필립스 (Gary Phillips, 키보드) : 1947년 2월 7일 미국 출생, 2007년 1월 17일 사망
래리 린치 (Larry Lynch, 드럼) : 1950년 미국 출생

갈래 : 파워 팝(Power Pop), 팝 록(Pop/Rock), 뉴웨이브(New Wave)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regkihn.com/

 

2010년 7월 8일 목요일

Taco - Puttin' On The Ritz

 

Taco - Puttin' On The Ritz

 

네덜란드계 부모를 둔 네덜란드의 팝 가수 타코(본명: Taco Ockerse)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Jakarta)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미국, 독일, 룩셈부르크, 벨기에, 싱가포르 등의 세계 여러나라를 거치며 세계인으로 성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자세한 이력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는 타코 부모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듯 한데 아마도 타코의 부모는 외교관이거나 무역업에 종사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타코는 1973년에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는 '외국인 학교(International Schools Of America)'를 졸업하면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독일 함부르크(Hamburg)의 디자인 학교에 진학하여 실내 장식을 공부하면서 음악 활동을 병행하였고 이때 부터 독일에서 계속 생활하게 된다. 당시 타코는 대학생 출연진들로 이루어진 뮤지컬 무대에 단골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려가다가 1975년에 프로 뮤지컬 배우로 함부르크의 뮤지컬 악단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타코는 '스위트 채러티(Sweet Charity)', '시카고(Chicago)', '삼총사(Three Musketeers)'등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직접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였고, 1979년에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나이트차일드(Nightchild)'에서는 안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에 뮤지컬 '치노(Chino)'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에서 연주를 담당했던 타코는 그해 말에 '타코스 비즈(Taco's Bizz)'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밴드를 처음으로 결성하기도 하였다.

 

1981년 타코는 '폴리돌 음반사(Polydor Records)'와 두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로 계약을 체결하면서 데뷔를 앞두게 되었으나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차일 피일 미뤄지게 된다. 결국 타코의 데뷔 음반은 'RCA 음반사(RCA Records)'를 통해 1982년 9월에 'After Eight'이라는 제목을 달고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Puttin' On The Ritz'는 1930년 3월 1일에 개봉되었던 뮤지컬 영화 'Puttin' on the Ritz'에서 '해리 리치맨(Harry Richman)'이 불러 유명해졌던 영화의 주제 곡을 신스팝(Synthpop) 형태로 편곡하여 커버한 것이었다.

 

'Puttin' On The Ritz'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4위 까지 진출하며 복고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어 타코 신드롬을 몰고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히트 곡이 되었다 .

타코 (Taco) : 1955년 7월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팝(Synth Pop),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members.chello.at/mindkey/Taco.html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Visage - Fade To Grey

 

Visage - Fade To Grey

비지취 (Visage) :
스티브 스트레인지 (Steve Strange, 보컬) : 1959년 5월 28일 영국 웨일스 뉴브리지(Newbridge) 출생
미지 우어 (Midge Ure, 백보컬) : 1953년 10월 10일 영국 스코틀랜드 라낙셔(Lanarkshire) 출생
빌리 커리 (Billy Currie, 신시사이저, 전기 바이올린) : 1950년 4월 1일 영국 허더즈필드(Huddersfield) 출생
러스티 이건 (Rusty Egan, 드럼, 백보컬) : 1957년 9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크리스토퍼 페인 (Christopher Payne, 신시사이저, 비올라) :
브리짓 에런스 (Brigitte Arens, 프랑스어 보컬) :
세드릭 샤플리 (Cedric Sharpley, 드럼, 전자 드럼) :

갈래 : 신스 팝(Synthpop), 뉴 웨이브(New Wave), 일렉트로닉(Electronic)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visageofficial

 

1978년에 결성된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비지취'는 1980년대로 접어 들면서 젊은층에게서 시작된 '뉴 로맨티시즘(New Romanticism: 화려한 의상과 전자 악기로 전개하는 New Wave 계통의 록 음악)'의 유행을 주도하며 뉴로맨틱을 대표하는 밴드로 사랑받았다. 영국의 웨일스(Wales) 뉴브리지에서 태어나 올더쇼트(Aldershot)에서 성장한 비지취의 리더 '스티브 스트레인지(본명: Steven John Harrington)'는 어릴적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올더쇼트를 떠나 고향인 뉴브리지에서 정착하게 된다.

학교에서 예술 과목 외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겉돌던 스티브 스트레인지의 일상은 1976년의 어느 날 '뉴포트 (Newport)'의 '스토우웨이 클럽(Stowaway Club)'에서 열린 펑크(Punk)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공연을 관람한 후 바뀌기 시작하였다. 공연이 끝난 후 밴드의 대기실로 찾아간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스 주자인 '글렌 매틀록(Glen Matlock)'과 급속하게 친해져 우정을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뉴포트 공연 이후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자신의 고향 마을인 뉴브리지에 순회 공연차 방문한 록 밴드 '스트랭글러스(The Stranglers)'의 베이스 주자인 '장 자크스 버넬(Jean-Jacques Burnel)'과도 친분을 나누면서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게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였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은 이런 스티브 스트레인지를 런던으로 데려가 밴드를 결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1977년에 펑크(Punk) 밴드 '무어스 머더러스(The Moors Murderers)'를 결성하여 런던의 펑크 경연장에 뛰어든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밴드의 일원으로 1978년에 싱글 'Free Hindley'를 발표하면서 데뷔 하였다. 하지만 밴드의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는 결국 밴드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무어스 머더러스의 해체 이후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뉴웨이브 밴드인 '포톤스(The Photons)'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때가 1978년 후반이었는데 이때부터 본명인 스티븐 존 해링턴 대신에 애칭인 스티브 스트레인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포톤스에 가입한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밴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틸퇴를 하였고 자신의 주도하에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 위한 구상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뉴웨이브 밴드인 '리치 키즈(The Rich Kids)' 출신의 러스티 이건과 미지 우어에게 함께 밴드를 결성할 것을 제의하여 비지취가 탄생하게 된다.

 

비지취는 소규모 음반사인 '레이더(Radar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1979년에 싱글 'Tar'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하지만 데뷔 싱글이 차트 진입에 실패하면서 비지취의 앞날이 순탄치 않은듯 보였으나 스티브 스트레인지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으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스티브 스트레인지가 출연한 데이빗 보위의 뮤직 비디오는 데이빗 보위가 1980년 8월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히트 곡 'Ashes to Ashes'였으며 이 뮤직 비디오를 통해 스티브 스트레인지는 뉴로맨틱의 유행이 시작되었음을 화려한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스티브 스트레인지의 뮤직 비디오 출연 후 비지취는 대형 음반사인 포리돌(Polydor)과 새로운 음반 계약을 하고 두번째 싱글 'Fade to Grey'를 발표하였다. 1980년 11월 10일 발표된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8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독일과 스위스의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싱글의 성공은 같은 날 발매된 데뷔 음반 'Visage'의 성공으로 이어져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3위 까지 오르며 사랑받게 된다.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Cutting Crew - (I Just) Died In Your Arms

 

Cutting Crew - (I Just) Died In Your Arms

커팅 크루 (Cutting Crew) :
닉 반 이드 (Nick Van Eede, 보컬, 키보드) : 1958년 6월 14일 영국 웨스트서식스(West Sussex) 출생
케빈 맥마이클 (Kevin Scott MacMichael, 기타, 백보컬) :
                                                1951년 11월 7일 캐나다 뉴브론즈윅 출생, 2002년 12월 31일 사망
콜린 팔리 (Colin Farley, 베이스, 피아노, 백보컬) : 1959년 2월 24일 영국 출생
마틴 비들 (Martin Beadle, 드럼, 퍼커션, 백보컬) : 1961년 9월 18일 영국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뉴웨이브(New Wave)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tgilmore.com/cc/index.html

 

광고 음악에 사용되면서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친숙한 곡인 '(I Just) Died In Your Arms'는 영국의 팝록 밴드인 '커팅 크루'가 1986년에 싱글로 발표하였던 곡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를 비롯하여 캐나다, 노르웨이, 핀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는 4위에 오르며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던 곡이다.

 

밴드의 보컬 겸 작곡자인 닉 반 이드는 열네살때 학교의 영문학 교사로 부터 작곡하는 법을 배워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친구들 앞에서 기타 연주를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대 중반에는 병원에서 잡역부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자주 '커주 피리(Kazoo)'를 불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커주 피리를 불던 닉 반 이드의 모습을 어느 날 우연히 영국의 록 그룹 '애니멀스(The Animals)'의 베이스 주자인 '브라이언 채스 챈들러(Bryan 'Chas' Chandler)'가 발견하고 그에게 프로 연주자로써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브라이언 채스 챈들러의 소개로 영국 록 그룹 '슬레이드(Slade)'의 폴란드 순회 공연에 보조 연주자로 참가한 닉 반 이드는 오프닝 공연에서 커주 피리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무대에 등장하여 생애 처음으로 대관중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슬레이드의 유럽 공연이 끝난 후 닉 반 이드는 애니멀스의 키보드 주자인 '알란 프라이스(Alan Price)'와 영국의 펑크(Funk) 밴드인 '핫 초콜릿(Hot Chocolate)'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보조하며 음악 경력을 계속 쌓아나가게 된다. 1978년에는 솔로로 첫 싱글인 'Rock 'n' Roll Fool'을 발표하였으며 1979년 까지 두장의 싱글 음반을 더 발표하였으나 차트 진입에는 실패하였다.

 

1980년 닉 반 이드는 친구인 '맥 노먼(Mac Norman)', '스티브 부어러(Steve Boorer)'와 함께 '드라이버스(The Driv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캐나다의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하였다. 드라이버스는 싱글 'Tears On Your Anorak'과 'Talk All Night'을 히트시키며 데뷔 음반 발매의 기회를 잡아 1983년에 데뷔 음반 'Short Cuts'를 발표하였으며 케빈 맥마이클이 활동하고 있던 밴드인 '패스트 포워드(Fast Forward)'와 함께 순회 공연에 나서게 된다.
 
캐나다 뉴브론즈윅(New Brunswick)에서 태어난 케빈 맥마이클은 '칼리스(Chalice)'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78년에는 '스파이스(Spice)'라는 밴드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에는 캐나다의 항구 도시 '핼리팩스(Halifax)'에서 결성된 밴드인 패스트 포워드에 가담하였다.

1983년 패스트 포워드는 닉 반 이드가 활동하고 있던 밴드인 드라이버스와 함께 순회 공연 길에 올랐으나 갑작스런 교통 사고로 케빈 맥마이클과 닉 반 이드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순회 공연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순회 공연이 취소된 뒤 케빈 맥마이클과 닉 반 이드는 함께 영국으로 와서 음반 계약을 완수하기 위해 듀오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듀오로 활동하던 두 사람은 밴드 생활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로 하고 드러머인 마틴 비들과 나이트 클럽에서 활동하던 밴드인 'QE2' 출신의 콜린 팔리를 가입시켜 1985년에 커팅 크루를 결성하였다. 커팅 크루는 음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음반사의 녹음실을 찾아 다니며 벌이는 쇼케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곧바로 결실을 맺게 되어 많은 음반사 가운데 관심을 보인 '버진 음반사(Virgin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고 1986년 8월 15일에 데뷔 싱글 '(I Just) Died in Your Arms'를 영국에서 발표하였다. 이 싱글은 발매와 동시에 인기가 상승하더니 마침내 영국 싱글 차트에서 4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히트는 미국에서 1987년 1월 4일에 싱글 발매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발매된 '(I Just) Died in Your Arms'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초강세를 보였고 인근 국가를 거쳐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면서 커팅 크루를 인기 그룹으로 만들어 주었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Kim Wilde - Kids In America

 

Kim Wilde - Kids In America

킴 와일드 (Kim Wilde) : 1960년 11월 18일 영국 런던 쉬직(Chiswick) 출생

 

분류 : 신스 팝(Synthpop), 뉴 웨이브(New Wave), 댄스 팝(Dance-Pop),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kimwilde.com/


뉴웨이브 음악의 고전인 'Kids In America'의 주인공 '킴 와일드(본명: Kim Smith)'는 1957년에 'Honeycomb'이라는 싱글로 영국 팝계에 데뷔했던 록 가수 '마티 와일드(Marty Wilde)'와 1958년에 결성된 팝 댄스 그룹 '버논스 걸스(The Vernons Girls)'의 멤버인 '조이스 베이커(Joyce Baker)'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런던의 덜리치(Dulwich)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인 '오크필드 고등학교(Oakfield Preparatory School)'를 졸업한 킴 와일드는 '세인트 알반스 예술 대학(St. Albans College of Art & Design)'에 진학하여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예술적 끼를 다듬게 된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에 킴 와일드는 아버지인 마티 와일드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여 백보컬을 맡아 노래를 부르게 된다. 우연히 이 세션 모습을 지켜본 'RAK 음반사(RAK Records)'의 설립자이자 음반 제작자인 '미키 모스트(Mickie Most)'는 킴 와일드의 노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곧 그녀에게 정식 음반 계약을 제의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킴 와일드는 RAK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프로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며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1981년 1월 26일 발표된 데뷔 싱글 'Kids In America'는 그해 봄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였고 이어서 발매된 두번째 싱글 'Chequered Love'도 영국 싱글 차트에서 4위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된다. 싱글들의 연이은 히트는 유럽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힘입어 킴 와일드는 1981년에 데뷔 음반 'Kim Wilde'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 수록된 히트 곡 'Kids In America'는 1982년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등장하여 25위 까지 오르게 된다. 빌보드 차트의 히트 곡이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소개되며 사랑 받던 이 당시 'Kids In America'는 한국에 불어닥친 뉴웨이브 음악의 흐름을 타고 인기 곡의 대열에 합류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는 애청 곡이 된다.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The Police - Every Breath You Take

 

The Police - Every Breath You Take

폴리스 (The Police) : 1983년 발표 음반 'Synchronicity' 구성원
스팅 (Sting, 베이스, 보컬) : 1951년 10월 2일 영국 월젠드(Wallsend) 출생
앤디 서머스 (Andy Summers, 기타) : 1942년 12월 31일 영국 랭커셔주, 플톤 르 필드 출생
스튜어트 코프랜드 (Stewart Copeland, 드럼) : 1952년 7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출생

 

분류 : 팝 록(Pop/Rock), 뉴웨이브(New Wave), 레게(Reggae), 포스트 펑크(Post-Pun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thepolice.com/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 'Every Breath You Take'의 주인공인 트리오 밴드 폴리스는 영국 런던에서 1977년에 결성되었다. 미국 '버지나아(Virginia)주'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태어난 '스튜어트 코프랜드(본명: Stewart Armstrong Copeland)'는 '미국 중앙 정보국(CIA)'에서 근무하던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고고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스튜어트 코프랜드가 태어난지 몇달 지나지 않아 가족 모두는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였고 스튜어트 코프랜드는 중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다섯살 때 '레바논(Lebanon)'의 '베이루트(Beirut)'로 가족이 옮겨가게 되자 스튜어트 코프랜드는 베이루트의 '미국인 학교(American Community School)'에 입학하였으며, 열두살때 부터 드럼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여 열세살때에는 학교의 댄스 파티에서 드럼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1967년 부터 1969년 까지는 영국에서 학교 생활을 했으며,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알리언트 국제 대학교(Alliant International University)'와 '버클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를 거치며 학업을 마쳤다. 1974년 학업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스튜어트 코프랜드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커브드 에어(Curved Air)'의 재결합 공연에서 '로드 매니저(Road Manager)'로 활동하면서 커브드 에어와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1975년 부터는 커브드 에어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1975년에 발표한 커브드 에어의 음반 'Midnight Wire'와 1976년 음반 'Airborne'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커브드 에어는 이 음반을 끝으로 다시 해산하게 되었고 스튜어트 코프랜드는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다 스팅을 만나 그룹 폴리스를 결성하게 된다.

 

스팅은 영국의 월젠드에서 미용사인 어머니와 기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새벽에 하던 우유 배달을 도우며 성장하던 스팅에게 삼촌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면서 남겨준 오래된 '스패니시 기타(Spanish Guitar)'는 각별한 친구가 되어 주었고 '세인트 쿠스베르트 고교(St. Cuthbert's High School)'에 진학하여서는 나이트 클럽인 'Club-A-Go-Go'를 남몰래 출입하며 영국의 하드 록 그룹 '크림(Cream)'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같은 연주자들의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1974년 '노던 카운티 교육 대학교(Northern Counties College of Education)'를 졸업하고 '세인트 폴 중학교(St. Paul's Middle School)'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스팅은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무대에 서는 공연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던 재즈 밴드인 '피닉스 재즈맨(Phoenix Jazzmen)'과 함께 연주하던 스팅은 무대 의상으로 검은 색과 노란 색이 조합된 스웨터를 입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피닉스 재즈맨의 리더인 '고든 솔로몬(Gordon Solomon)'이 그에게 'Sting'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된다.

 

1977년 1월,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온 스팅은 스튜어트 코프랜드와 기타리스트인 '헨리 파도바니(Henry Padovani)'를 만나게 되었고 세사람은 폴리스를 결성하게 된다. 'I.R.S. Records'와 계약한 폴리스는 1977년 5월 I.R.S. 음반사 산하의 '일리걸 레코드(Illegal Records)'에서 싱글 음반인 'Fall Out/Nothing Achieving'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데뷔 싱글 발표 후 1977년 7월 폴리스는 영국의 록 그룹 '더 애니멀스(The Animals)' 출신의 앤디 서머스를 받아들여 4인 체제의 밴드로 정비하였으나 8월에 헨리 파도바니가 밴드를 탈퇴하여 트리오 밴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1978년의 데뷔 음반 'Outlandos d'Amour'를 시작으로 화려한 역사를 시작한 폴리스는 'Roxanne', 'De Do Do Do, De Da Da Da' 같은 히트 곡을 만들어 내다가 1983년에 발표한 다섯번째 음반 'Synchronicity'로 세계적인 밴드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1983년 6월 1일에 발표된 이 음반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폴리스에게는 명성을, 록의 역사에서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기록된 'Every Breath You Take'를 비롯하여 'King of Pain', 'Synchronicity II', 'Wrapped Around Your Finger'를 연속으로 히트시키게 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 'Every Breath You Take'는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재조합 되거나 다시 불려지기도 하면서 변함 없는 인기를 누려오고 있으며 오래된 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청 곡으로 자리하게 된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Art Of Noise - Moments In Love

 

Art Of Noise - Moments In Love

아트 오브 노이즈 (Art of Noise) :
앤 더들리 (Anne Dudley, 키보드) : 1956년 5월 7일 영국 켄트(Kent)주, 채텀(Chatham) 출생
제이 제이 젝젤릭 (J.J. Jeczalik, 리믹스) : 1955년 5월 11일 영국 출생
게리 랭건 (Gary Langan, 리믹스) : 1956년 4월 19일 영국 출생
폴 몰리 (Paul Morley, 리믹스) : 1957년 3월 26일 영국 체셔(Cheshire)주, 스톡포트(Stockport) 출생
트레버 혼 (Trevor Horn, 베이스) : 1949년 7월 15일 영국 더럼(Durham) 출생

 

분류 : 신스팝(Synthpop), 뉴 웨이브(New Wave), 아방가르드(Avant-garde), 앰비언트(Ambient)
관련 웹 사이트 : http://homepage.ntlworld.com/sean.cranham/aon/aonband.htm


영국의 아방가르드 신스 팝 그룹 '아트 오브 노이즈'는 뉴 웨이브 그룹인 '버글스(The Buggles)'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예스(Yes)'를 거치면서 유명해진 트레버 혼을 주축으로 1983년에 결성 되었다. 아트 오브 노이즈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트레버 혼을 비롯하여 음악 평론가인 폴 몰리와 스튜디오 세션 맨들인 앤 더들리, 제이 제이 젝젤릭, 게리 랭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음악잡지 'NME(The New Musical Express)'에서 1977년 부터 1983년 까지 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던 폴 몰리는 트레버 혼과 함께 'ZTT Records'를 설립하여 영국의 댄스 팝 그룹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를 키워냄으로써 유명해졌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고 팝 음악가로 전향한 앤 더들리는 영국의 뉴 웨이브 팝 그룹 'ABC'의 1982년 음반 'The Lexicon of Love'에서 키보드 연주와 관현악 편곡(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하면서 유명해졌으며 이후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같은 밴드들의 음반에서 편곡 작업을 하게 된다.

 

'ABC'의 'The Lexicon of Love'에는 앤 더들리외에도 훗날 아트 오브 노이즈의 멤버가 되는 제이 제이 젝젤릭이 디지털 오디오 장비 업체인 '페어라이트(Fairlight)사'의 '디지털 샘플링 신시사이저(Fairlight CMI)'를 들고 음반의 프로그래머로 앤 더들리와 함께 음반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트레버 혼이 프로듀서로 게리 랭건이 엔지니어로 참여하였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들은 트레버 혼과 폴 몰리가 설립한 'ZTT Records'로 옮겨가게 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예스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Drama'에서 보컬과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었던 트레버 혼은 예스를 탈퇴하고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예스의 1983년 음반 '90125'에 프로듀서로 참여함으로써 다시 한번 예스와 인연을 맺게 된다. 1983년 초의 어느 날 밤 트레버 혼과 제이 제이 젝젤릭, 게리 랭건은 예스의 '90125' 음반에 사용된 드럼 연주를 이용하여 '디지털 샘플링 신시사이저(Fairlight CMI)'를 비롯한 전자 장비들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 전자 음악에 바탕을 둔 실험적인 음악을 해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아트 오브 노이즈를 결성하게 된다.

 

앤 더들리와 폴 몰리 까지 가세시켜 아트 오브 노이즈라는 이름으로 1983년에 발표한 '미니 앨범(EP)' 'Into Battle with the Art of Noise'를 시작으로 '디지털 샘플링 신시사이저(Fairlight CMI)'를 앞세운 아트 오브 노이즈의 음악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끌게 된다.

 

1984년에는 데뷔 음반 'Who's Afraid of the Art of Noise?'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10분 짜리 대곡 'Moments in Love'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이 곡은 한국 라디오 방송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며 많이 알려졌고 그 영향으로 음반의 다른 곡들도 사랑받았다.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Nena - 99 Luftballons

 

Nena - 99 Luftballons

네나 (Nena) :
네나 (Nena, 보컬) : 1960년 3월 24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하겐(Hagen) 출생
까를로 카그스 (Carlo Karges, 기타) : 1951년 7월 31일 독일 함부르크 출생, 2002년 1월 30일 사망
우 파흐렌크로그 피터슨 (Uwe Fahrenkrog-Petersen, 키보드) : 1960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 출생
위르겐 데흐멀 (Jurgen Dehmel, 베이스) : 1958년 8월 12일 독일 베를린 출생
롤프 브렌델 (Rolf Brendel, 드럼) :

 

분류 : 뉴 웨이브(New Wave), 신스 팝(Synthpop), 댄스 팝(Dance-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nena.de/

 

독일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네나(본명: Gabriele Susanne Kerner)'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그룹 네나는 그룹의 리더이며 보컬리스트인 네나의 애칭을 그대로 그룹 이름으로 사용하여 발표한 싱글 '99 Luftballons'로 국제적인 스타의 반열에오른 그룹이다. 애칭이자 이름이 된 네나는 '가브리엘 수잰 케르너'가 세살때 부모를 따라 떠났던 스페인 여행에서 얻게 되었는데, 이 여행에서 그녀의 부모는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를 부르는 스페인 말이 'Nena(니나)'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녀에게 붙여준 애칭이었다.

 

어린 시절 부터 예술적 기질을 발휘했던 네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7년 부터 3년간 금세공사 일을 배우는 도중에도 늘 음악을 향한 열정을 간직하고 가수로써 성공하기 위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1979년 여름 네나에게 기회가 찾아 왔는데 '레이너 키츠만(Rainer Kitzmann)' 이라는 기타리스트가 자신의 밴드인 '스트라이프스(The Stripes)'에서 보컬을 맡아 줄것을 제의하였고 네나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스트라이프스에 가입하면서 시작하였다.

 

스트라이프스는 'Ecstasy'라는 곡을 발표하여 약간의 히트를 하였으나 끝내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해산의 길을 걷게 된다. 1981년, 네나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 위해서 남자 친구인 롤프 브렌델과 함께 베를린으로 가게 되었고 1980년에 'Odessa' 라는 음반을 발표한 후 지지부진한 상태로 머물고 있던 독일 그룹 '오데사(Odessa)'에서 키보드를 담당했던 '우 파흐렌크로그 피터슨'과 베이스를 담당했던 '위르겐 데흐멀', 그리고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노발리스(Novalis)'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까를로 카그스'등을 규합하여 새로운 밴드 '네나(Nena)'를 출범 시키게 된다.

 

네나는 1982년에 데뷔 싱글 'Nur getraumt(Only dreamt)'를 발표하여 히트를 하였고 독일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인 '뮤직라덴(Musikladen)'에도 출연하게 된다.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의 출연으로 인한 영향력은 상당히 커서 네나의 데뷔 싱글은 독일 차트에서 2위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며 당시 하루에 4만장 이상의 싱글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고 알려져 있다.

 

1983년 네나는 데뷔 음반 'Nena'를 발표하였으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99 Luftballons'가 독일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며 네나의 시대를 열어 나가게 된다. 이후 이 곡은 유럽 각국의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아흔 아홉개의 풍선 붐을 일으켰으며 이례적으로 1984년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독일어 버전이 2위 까지 올라가며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99 Luftballons'가 미국에서 성공하자 영어 버전인 '99 Red Balloons'가 새롭게 녹음되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 영어버전은 영국 싱글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였다. 당시 한국에서도 네나의 독일어 싱글 음반이 해적판으로 출현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먼저 소개된 독일어 버전이 영어 버전 보다 더 많은 사랑을 현재까지 받고 있다.

 


 

2010년 2월 9일 화요일

OMD - Joan Of Arc

 

OMD - Joan Of Arc

오케스트럴 머뉴버스 인 더 다크 (OMD: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
앤디 맥클러스키 (Andy McCluskey, 신시사이저, 기타, 보컬) : 1959년 6월 24일 영국 위럴, 헤즈월 출생
폴 험프리스 (Paul Humphreys, 신시사이저, 멜로트론, 보컬) : 1960년 2월 27일 영국 런던 출생
말콤 홈스 (Malcolm Holmes, 드럼) : 1960년 7월 28일 영국 버컨헤드(Birkenhead) 출생
마틴 쿠퍼 (Martin Cooper, 색소폰) : 1958년 10월 1일 영국 리버풀(Liverpool) 출생
마이클 더글러스 (Michael Douglas, 신시사이저, 피아노, 오르간) :

 

분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팝(Synthpop), 포스트 펑크(Post-pun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omd.uk.com/

 

진보적인 음악 성향을 내포한 신스팝 그룹 OMD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의 소녀 영웅이자 성녀인 잔다르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곡 'Joan Of Arc'로 꽤나 알려진 그룹이다. 밴드의 주축인 '앤디 맥클러스키'와 '폴 험프리스'는 위럴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만났다.

 

1970년대 중반, 두사람은 서로 다른 그룹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앤디 맥클러스키는 '에퀴녹스(Equinox)'라는 그룹에서 보컬리스트 겸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였다. 당시 에퀴녹스에는 앤디 맥클러스키의 학교 친구인 말콤 홈스가 드러머로 함께 참여 하였고 초등학교 시절 친구인 폴 험프리스가 밴드의 매니저를 맡게 된다.

 

에퀴녹스 시절 앤디 맥클러스키와 폴 험프리스는 독일의 전자 음악 그룹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고 좀더 새로운 전자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발전하여 후일 OMD 를 결성하게 된다. 에퀴녹스가 해산하게 되자 앤디 맥클러스키는 '페가수스(Pegasus)'를 거쳐 '히틀러즈 언더팬츠(Hitlerz Underpantz)'에서 잠시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 폴 험프리스도 함께 하였다.

 

히틀러즈 언더팬츠에서의 짧은 활동을 마무리한 두사람은 1977년 9월, 위럴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뉴웨이브 신스팝 그룹 '이드(The Id)'에 말콤 홈스와 함께 합류하게 되는데, 앤디 맥클러스키의 여자 친구인 '줄리아 닐(Julia Kneale)'이 함께 가입하여 이드의 보컬을 담당하게 된다.

 

한편 앤디 맥클러스키와 폴 험프리스는 이드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프로젝트 그룹 'VCL XI'을 결성하여 이드와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두 사람의 프로젝트 그룹명인 'VCL XI'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음반 'Radio-Activity'의 뒷면 커버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진공관에 적혀있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지만 원래 크라프트베르크 음반의 진공관 그림에 적혀있는 글자는 'VCL XI' 이 아닌 'VCL 11' 이었다. 즉 로마자가 아닌 아라비아 숫자가 적혀있는데 진공관 모델의 이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1978년 8월 이드가 해산하자 앤디 맥클러스키는 '달렉 아이 러브 유(Dalek I Love You)'라는 신스팝 그룹으로 옮겨 가지만 9월이 오기도 전에 달렉 아이 러브 유를 탈퇴하고 'VCL XI'으로 돌아오게 된다. 1978년 9월 앤디 맥클러스키와 폴 험프리스는 'VCL XI'의 이름을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이라는 긴 이름으로 바꾸고 듀오 형태의 그룹으로써 1978년 10월 리버풀의 음악 클럽인 '에릭스 클럽(Eric's Club)'의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며 공식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9년 5월, '맨체스트(Manchester)'에 있는 독립 레이블인 '팩토리 레코드(Factory Records)'를 통해 싱글 음반 'Electricity'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OMD' 는 영국 전자 음악의 개척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가수 '게리 누만(Gary Numan)'의 영국 순회 공연에 오프닝을 맡게 되면서 처음으로 영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 참가하게 된다.

 

1980년 2월 듀오를 중심으로 말콤 홈스와 마틴 쿠퍼등을 초빙하여 제작한 데뷔 음반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을 발표하여 수록 곡인 'Messages'를 히트시킨 'OMD' 는 1980년 10월 두번째 음반 'Organisation'을 발표하여 'Enola Gay'를 히트시키며 지명도를 넓혀 나갔다.

 

1981년 11월 'OMD' 는 밴드의 최고작인 'Architecture & Morality'를 발표하였는데 신스팝 사운드에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이 자주 사용하는 멜로트론 사운드를 첨가한 이 음반은 영국과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며 'OMD'에게 전성기를 맞이하게 하였다. 특히 명곡 'Joan Of Arc'는 크라프트베르크의 고향 독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Murray Head - One Night In Bangkok

 

Murray Head - One Night In Bangkok

머레이 헤드 (Murray Seafield Saint-George Head) : 1946년 3월 5일 영국 런던 출생

 

분류 : 뉴웨이브(New Wave), 팝록(Pop/Rock), AM 팝(AM Pop)

 

영국의 영화 배우이자 가수인 머레이 헤드는 1984년에 발표된 뮤지컬 '체스'의 사운드 트랙 음반에 수록된 'One Night In Bangkok' 단 한곡으로 스타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다큐 작가인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머레이 헤드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십대 시절인 1960년 중반 무렵부터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곡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어머니로 부터 물려 받은 배우적 기질을 발휘하여 1966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인 'The Family Way'에 출연하면서 영화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71년에 개봉한 영화 '사랑의 여로(Sunday Bloody Sunday)'에 출연한 머레이 헤드는 같은 해에 초연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와 '팀 라이스(Tim Rice)'의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 '유다(Judas Iscariot)'역으로 출연하여 'Superstar' 라는 곡을 히트시켰고 뮤지컬 배우로써도 성공하게 된다.

 

'Superstar'는 1969년에 이미 싱글로 발표되었던 곡으로 머레이 헤드가 다시 불러 1971년에 싱글로 발표하였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다. 뮤지컬의 성공에 고무된 머레이 헤드는 1972년 여름에 많은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녹음한 데뷔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1973년에는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였고 1979년에는 TV 액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였지만 그리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1984년, 뮤지컬 '체스(Chess)'에 '미국인(The American)'으로 출연하여 부른 'One Night In Bangkok'이 히트를 하면서 머레이 헤드는 다시 한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세계적인 가수로써 명성을 누리게 된다. 'One Night In Bangkok'은 '아바(ABBA)'의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과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가 작사가 '팀 라이스(Tim Rice)'와 함께 뮤지컬 체스를 위해 만든 곡으로 뉴웨이브 명곡 중에 하나이며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의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머레이 헤드에게 상업적인 성공도 함께 안겨주었다.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Falco - Jeanny

 

Falco - Jeanny

팔코 (Falco) : 1957년 2월 19일 오스트리아 비엔나(Vienna) 출생, 1998년 2월 6일 사망

 

분류 : 뉴웨이브(New Wave), 댄스팝(Dance-Pop), 팝록(Pop/Rock)

 

싱글 'Rock Me Amadeus'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세계적인 팝 가수로 인기를 얻었던 팔코(본명: Johann (Hans) Holzel)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유일한 독일어권 가수로써 오스트리아의 '빈(Wien: Vienna)'에서 태어났다. 아장거리며 걸어다니던 어린 시절 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박자를 맞추며 타고난 음악적 기질을 발산하였던 팔코는 네살이 되던해에 그랜드 피아노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피아노와 함께 선물로 받은 오디오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 '비틀즈(The Beatles)'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듣던 팔코는 다섯살때 '빈 뮤직 아카데미(Vienna Music Academy)'에서 오디션을 볼 정도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1963년에 카톨릭 계열의 사립 학교에 입학한 팔코는 열여섯살때인 1973년 학교를 그만두고 오스트리아 군에 입대하여 열일곱살때 까지 복무하였다. 1977년, 다시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빈 음악원(Vienna Music Conservatory)'에 입학한 팔코는 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대중 음악을 하기 위해 한학기 만에 음악원을 그만두게 된다. 음악원을 그만 둔 팔코는 서독 서베를린 지역의 클럽에서 활동하던 재즈 록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8년,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돌아온 팔코는 '스테판 웨버(Stefan Weber)'가 이끌던 '드라디바벨(Drahdiwaberl)'이라는 이름의 오스트리아 '하드 펑크 록(Hard Rock/Punk Rock)' 밴드에 베이스 주자로 가입하였다. 팔코는 이때부터 동독의 스키 점프 선수인 '팔코 바이스플로크(Falko Weißpflog)'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예명을 팔코로 부르며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드라디바벨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석장의 솔로 음반을 내기로 계약한 팔코는 자신이 만들고 드라디바벨이 히트 시킨 곡 'Ganz Wien'을 포함하여 열곡을 수록한 솔로 음반을 1982년에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하였다. 솔로 데뷔 음반에서 후일 팔코를 독일어 랩 버전의 개척자로 평가받게 하는 곡인 'Der Kommissar'를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이고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1985년, 팔코는 세번째 음반 'Falco 3'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서 1984년에 개봉하여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영감을 얻은 곡인 'Rock Me Amadeus'를 싱글로 발표하여 본국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영국과 미국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가수로 명성을 누리게 된다.

 

또한 이 음반에서는 작가이자 연쇄 살인범인 '잭 운터베거(Jack Unterweger)'에게 영감을 얻어서 만든 곡인 발라드 'Jeanny'가 'Rock Me Amadeus'에 이어 히트를 하였는데 미국 드라마 '크리미날 마인드(Criminal Minds)'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뮤직 비디와 함께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Jeanny'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서독의 라디오와 TV에서 금지 곡으로 분류되었으나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맹위를 떨쳤었던 곡이기도 하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Buggles - Video Killed The Radio Star

 

Buggles -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버글스 (Buggles) :
트레버 혼 (Trevor Horn, 보컬, 베이스) : 1949년 7월 15일 영국 더럼(Durham) 출생
제프 다운스 (Geoff Downes, 키보드, 드럼) : 1952년 8월 25일 영국 스톡포트(Stockport) 출생
브루스 울리 (Bruce Woolley, 기타) : 1953년 11월 11일 영국 러프버러(Loughborough) 출생
리처드 제임스 버지스 (Richard James Burgess, 드럼) :
데비 도스 (Debi Doss, 백보컬) : 미국 출생, 사진 작가 겸 가수

 

분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팝(Synth Pop), 펑크(Punk)


1981년 MTV가 개국하면서 최초로 전파를 탄 뮤직 비디오는 버글스가 1979년 9월에 발표한 싱글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뮤직 비디오였다. 신스팝의 명곡인 이 곡은 버글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동시에 다가올 비디오 시대를 예견한 싱글로써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버글스는 더럼 지역의 댄스 클럽에서 활동했던 밴드인 '조 클라크 밴드(Joe Clarke Band)'의 더블 베이스 주자 '존 혼(John Horn)'의 아들로 태어난 트레버 혼과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프 다운스의 주도하에 1977년에 결성된 그룹이다.

 

클럽 밴드의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던 트레버 혼과 광고 음악에서 세션 연주를 하던 제프 다운스는 1976년에 영국의 팝 가수 '티나 찰스(Tina Charles)'의 백밴드 멤버로 만나게 된다. 이후 두사람은 함께 작업을 하면서 버글스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여기에는 서른 살이 되던 생일날, 친구인 '한스 짐머 (Hans Florian Zimmer)'가 만든 TV 광고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간 트레버 혼이 지역 밴드와 함께 녹음하는 과정에서 만난 '브루스 울리'도 가세하게 된다.

 

세사람은 '신시사이저(Synthesizer)'에 기반한 전자 음악을 지향하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로 하고 'The Beatles'에서 파생된 말장난 형식의 이름인 'The Buggles'를 밴드 이름으로 확정 짓고 1979년 여름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데모 곡을 만들어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에 보내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1979년 9월 7일 발매된 데뷔 싱글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는 영국,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였고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며 버글스는 단숨에 수퍼스타로 각광받게 된다. 데뷔 싱글의 성공에 힘입어 발표한 데뷔 음반 'The Age of Plastic'은 1980년에 발표되었으며 수록곡 가운데 'Living in the Plastic Age', 'Clean Clean', 'Elstree'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신스팝의 대중화를 선도하게 된다.

 

데뷔 음반 발표 후 트레버 혼과 제프 다운스는 두번째 음반 준비를 하던 중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Yes'의 가입 권유를 받았고 이를 받아들여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Yes'에 합류하여 1980년 8월에 발표된 'Yes'의 음반 'Drama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