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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7일 화요일

Elvis Costello - She

 

Elvis Costello - She

본명이 '데클랜 패트릭 맥매누스(Declan Patrick MacManus)'인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 엘비스 코스텔로는 1954년 8월 25일에 런던 서부 주택 지역인 패딩턴(Paddington)의 세인트 메리 병원(St. Mary's Hospital)에서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인 '로스 맥매누스(Ross MacManus)'의 아들로 태어났다. 로스 맥매누스는 1955년 3월 부터 빅 밴드인 '조 로스 오케스트라(The Joe Loss Orchestra)'의 단원으로 가입하여 보컬을 담당했으며 BBC 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인 'Come Dancing'과 BBC 라디오의 쇼 프로그램인 'The Joe Loss Pop Show'에 출연하기도 하였던 인물이었다.

어릴때 부터 아버지의 음악 활동을 보면서 자란 엘비스 코스텔로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런 엘비스 코스텔로가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한 것은 1971년의 일로 '앨런 메이스(Allan Mayes)'와 함께 결성한 '러스티(Rusty)'라는 이름의 포크 듀오였다. 솔로와 듀오로 나이크 클럽과 포크 클럽의 무대를 중심으로 1973년 까지 활동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4년에 '플립 시티(Flip City)'라는 이름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였다.

이때 부터 엘비스 코스텔로는 무대에서 본명을 짧게 줄여 'D.P. Costello'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엘비스 코스텔로의 아버지인 로스 맥매누스는 음료수 회사인 '알 화이트 레모네이드(R. White's Lemonade)'사의 광고에 사용될 노래인 'I'm a Secret Lemonade Drinker'를 만들고 엘비스 코스텔로에게 녹음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생애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공개될 노래의 녹음에 참여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 보컬을 맡았다. 한편 부자가 참여한 이 곡은 1974년에 '국제 광고제(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 출품되어 은상을 수상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6년에 자신의 집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되는데 당시 녹음했던 곡들이 'Wave A White Flag', 'Poison Moon', 'Jump Up', 'Mystery Dance'였다. 이렇게 제작된 데모 테이프는 BBC 라디오의 쇼 프로그램인 'Honky Tonk'를 맡고 있던 DJ '찰리 질레트(Charlie Gillett)'에게 배달되어 방송 전파를 타게 되었다. 당시 런던에서 막 출범한 '스티프 음반사(Stiff Records)'는 신인 발굴을 위해 데모 테이프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배달된 엘비스 코스텔로의 데모 테이프가 음반 제작자인 '닉 로우(Nick Lowe)'의 손을 거치면서 음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스티프 음반사와 계약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D.P. Costello'라는 이름 대신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 시키는 이름인 엘비스 코스텔로로 바꾸었다. 1977년 3월 25일에 싱글 'Less Than Zero'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엘비스 코스텔로는 7월 22일에 데뷔 음반 'My Aim Is True'를 발표하였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데뷔 음반은 1970년대 중반 부터 시작된 영국의 음악 운동인 '퍼브 록(Pub Rock: 컨트리와 리듬 앤드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기치를 내건 음악 운동)'에 동참한 음반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하였다.

1978년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This Year's Model' 역시 로큰롤에 충실한 음반으로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로커의 출현을 알리게 된다. 영국과 미국, 양국에서 사랑받으며 1970년대 말 부터 시작된 엘비스 코스텔로의 전성기는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까지 이어졌으며 1999년에는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와 '휴 그랜트( Hugh Grant)' 주연의 영화 '노팅 힐(Notting Hill)'에 삽입된 'She'를 발표하여 다시 한번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프랑스 가수 '찰스 아즈네버(Charles Aznavour)'가 1974년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던 노래인 'She'는 엘비스 코스텔에 의해 커버되어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 곡은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과 드라마 등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엘비스 코스텔로 (Elvis Costello) : 1954년 8월 25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퍼브 록(Pub Rock), 펑크(Punk), 뉴웨이브(New Wave),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lviscostello.com/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Prince - Purple Rain

 

Prince - Purple Rain

프린스 (Prince Rogers Nelson) : 1958년 6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생

갈래 :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R&B),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discogs.com/artist/Princ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프린스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깨트리는 실험적인 음악과 선정성을 결합하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93년에 접어 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자신의 이름인 프린스 대신에 '예전에 프린스로 불렸던 아티스트(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줄여서 'TAFKAP'라고 표기하였던 이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표시하는 기호를 조합해 만든 상징으로 표시하여 '심볼(Symbol)'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The Artist'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행동을 곧잘 보여주는 프린스는 자신의 음악에도 이런 점들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이자 섹스 심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존 루이스 넬슨(John Lewis Nelson)'과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 '마티 쇼(Mattie Shaw)' 사이에서 태어난 프린스는 열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되자 어린 프린스는 이웃의 앤더슨(Anderson)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아들인 안드레 앤더슨(Andre Anderson)이 프린스 자신 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안드레 앤더슨은 '안드레 사이먼(Andre Cymone)'으로 알려진 미국의 베이스 주자이자 음반 제작자로 어린 시절 프린스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린스와 안드레 앤더슨은 '미니애폴리스 샌트럴 고등 학교(Minneapolis Central High School)' 재학 시절 프린스의 사촌인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와 함께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 그랜드 센트럴은 프린스가 피아노와 기타를 담당했으며 안드레 앤더슨이 베이스를 그리고 찰스 스미스는 드럼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프린스의 어머니로 부터 연주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였고 파티 행사와 클럽들을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랜드 센트럴은 후일 '샴페인(Champagne)'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게 되는데 당시 밴드가 추구하던 음악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등의 연주자들에게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1976년 프린스는 음반 제작자인 '크리스 문(Chris Moon)'의 미니애폴리스 녹음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음반 계약을 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을 느낀 크리스 문이 데모 테이프를 '오웬 허즈니(Owen Husney)'에게 판매하고 오웬 허즈니의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도와 주었다. 열여덟살의 나이로 전속 계약을 한 프린스는 곧장 녹음실로 들어가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지(David Z)'의 지휘 아래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를 비롯하여 A&M 과 컬럼비아(Columbia Records)에 보내져 음반 계약을 추진하였고 최종적으로 워너 브라더스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여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오웬 허즈니와 프린스는 데뷔 음반 녹음을 위해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한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Record Plant Studios)'로 가서 1977년 10월 부터 12월 까지 음반 녹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1978년 4월 7일 발표된 프린스의 데뷔 음반 'For You'는 빌보드 앨범 차트 163위에 오르는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미국내에서 43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첫번째 싱글 'Soft and Wet'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2주간 머물며 92위 까지 올랐다. 1979년 1월 프린스는 안드레 사이먼과 함께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The Revolution)'을 결성하여 순회 공연을 했으며 10월에는 두번째 음반 'Prince'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소울 차트(Hot Soul Singles)에서는 1위를 차지하자 음반 역시 순항을 거듭하여 앨범 차트에서 22위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음반 판매고 역시 백만장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이며 프린스를 새로운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1984년 프린스는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과 함께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Prince and The Revolution)'의 이름으로 프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Purple Rai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 'Purple Rain'마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반 'Purple Rain'은 'Let's Go Crazy'와 'When Doves Cry'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았고, 음반 타이틀 트랙인 명곡 'Purple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까지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다.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Purple Rain'의 히트로 말미암아 프린스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팬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5월 4일 화요일

Hot Chocolate - Emma

 

Hot Chocolate - Emma

핫 초콜릿 (Hot Chocolate) :
에롤 브라운 (Errol Brown, 보컬) : 1948년 11월 12일 자메이카(Jamaica) 킹스턴(Kingston) 출생
래리 퍼거슨 (Larry Ferguson, 키보드) : 1948년 4월 14일 바하마(Bahamas) 나소(Nassau) 출생
토니 코너 (Tony Connor, 드럼) : 1947년 4월 6일 영국 런던 롬포드(Romford) 출생
하비 힌슬리 (Harvey Hinsley, 기타) : 1948년 1월 19일 영국 노샘프턴(Northampton) 출생
토니 윌슨 (Tony Wilson, 베이스) : 1947년 10월 8일 트리니다드토바고(Trinidad and Tobago) 출생
패트릭 올리브 (Patrick Olive, 퍼커션) : 1947년 3월 22일 그레나다(Grenada) 출생

 

갈래 : 펑크(Funk), 팝 록(Pop/Rock), 디스코(Disco)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hot-chocolate.co.uk/

 

영국의 펑크(Funk: 흑인 소울 음악과 R&B, 소울 재즈 등을 결합하여 만든 흥겨운 리듬의 음악) 밴드인 핫 초콜릿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영국에서 거주하던 에롤 브라운이 1969년에 결성한 밴드로 처음에는 '핫 초콜릿 밴드(The Hot Chocolate Band)'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밴드는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음반사(Apple Records)'와 계약을 하고 존 레논(John Lennon)의 곡인 'Give Peace A Chance'를 레게(Reggae) 버전으로 편곡한 데뷔 싱글을 1969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에롤 브라운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자메이카에 떼어 놓고 돈을 벌기 위해 영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무작정 가출한 어린 십대의 에롤 브라운은 우여 곡절을 겪으며 영국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고 파란만장한 영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릴적 부터 남다른 가창 실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에롤 브라운은 영국에서 어머니를 찾는 한편 여러가지 직업을 거치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카리브해 지역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래리 퍼거슨과 패트릭 올리브와 친하게 지내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가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밴드 활동을 모색하게 되었고 핫 초콜릿 밴드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에롤 브라운을 비롯하여 카리브해 연안 국가 출신의 네 사람과 영국 출신의 토니 코너로 구성된 핫 초콜릿 밴드는 밴드 결성 후 클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때마침 신인 발굴을 위해 클럽을 드나들던 애플 음반사 관계자의 시선을 끌어 1969년에 애플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인 'Give Peace A Chance'는 존 레논의 기대와는 달리 실패로 돌아갔고 핫 초콜릿과 애플과의 계약도 종료되어 핫 초콜릿은 새로운 음반사를 찾아야 했는데 이때 밴드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음반 프로듀서이자 'RAK 음반사(RAK Records)'의 설립자인 '미키 모스트(Mickie Most)'였다. 미키 모스트는 밴드의 사운드 보강을 위해 스튜디오 세션 기타리스트인 하비 힌슬리를 추가로 밴드에 합류시키고 밴드 이름도 핫 초콜릿으로 짧게 고쳐 부르게 하였다.

 

RAK 음반사에서의 첫 싱글인 'Love is Life'가 1970년에 공개되었는데,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6위 까지 진출하며 핫 초콜릿의 첫번째 탑텐 진출 곡이 되었다. 'Love is Life'의 성공 이후 핫 초콜릿은 계속해서 히트 곡을 만들어내며 영국의 인기 그룹으로 성장하였고 1974년 3월에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인 'Emma'를 발표하여 싱글 차트 3위에 올려 놓았다.

 

한국의 음악 감상실을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핫 초콜릿의 'Emma'는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핫 초콜릿 최고의 히트 곡으로 한국의 팝 팬에게 사랑받고 있다.

 

 

2010년 3월 4일 목요일

Ray Parker Jr. - Ghostbusters

Ray Parker Jr. - Ghostbusters

레이 파커 주니어 (Ray Parker Jr.) : 1954년 5월 1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Detroit) 출생

 

분류 : 팝 록(Pop/Rock), 펑크(Fun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ayparkerjr.com/


가수이면서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레이 파커 주니어는 1984년 6월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고스트버스트즈(Ghostbusters)'의 주제가를 불러 히트를 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디트로이트의 '노스웨스턴 고교(Northwestern High School)'를 졸업한 레이 파커 주니어는 보컬 트리오인 '홀랜드-도지어-홀랜드(Holland-Dozier-Holland)'의 '에디 홀랜드(Eddie Holland)'가 디트로이트시의 흑인 음반 회사인 '모타운(Motown)'에서 독립하여 1968년에 설립한 '인빅터스 레코드(Invictus Records)'와 '핫 왁스 레코드(Hot Wax Records)' 소속 가수들의 음반에 기타 세션을 해주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빅터스 레코드와 핫 왁스 레코드에서 실력을 다져가던 레이 파커 주니어는 '모타운(Motown)' 소속 가수들의 음반에도 기타 세션을 하며 입지를 넓혀 나가게 된다. 1970년대 초에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 '스피너스(The Spinners)', '글래디스 나이트 앤드 더 핍스(Gladys Knight & the Pips)' 같은 모타운 소속 가수들이 출연하던 전설적인 나이트 클럽인 '트웬티 그랜드 클럽(Twenty Grand Club)'의 전속 밴드 멤버로 가담하여 연주를 하면서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2년에는 스티비 원더가 그동안 관심을 두고 있던 레이 파커 주니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음반에 기타 연주를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이를 수락한 레이 파커 주니어는 스티비 원더의 1972년 음반 'Talking Book'과 1973년 음반 'Innervisions'에서 기타 연주를 담당하였다. 스티비 원더와의 작업을 끝낸 레이 파커 주니어는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가 소울 가수인 '레온 헤이우드(Leon Haywood)'와 '베리 화이트(Barry White)'의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게 된다.

 

1977년 레이 파커 주니어는 보컬리스트인 '아넬 카마이클(Arnell Carmichael)'과  베이스 주자인 '제리 나이트(Jerry Knigh)'등과 함께 R&B 보컬 그룹인 '레이디오(Raydio)'를 결성하였다. 레이디오는 1978년에 음반 'Raydio'를 발표하며 데뷔 하였으며, 음반에서 발췌된 싱글 'Jack and Jill'이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다.

 

데뷔 음반이 뜻밖에 대성공을 거두자 이로인한 멤버들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후폭풍이 뒤따랐고 레이디오는 레이 파커 주니어와 아넬 카마이클, 두 사람을 주축으로 듀오 형태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1981년에 발표한 네번째 음반에서 'A Woman Needs Love (Just Like You Do)'와 'That Old Song'을 마지막으로 히트시킨 레이디오는 결국 정해진 해체의 길을 걸었고 레이 파커 주니어는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82년 솔로 데뷔 음반 'The Other Woman'을 발표하여 타이틀 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진입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한 레이 파커 주니어는 1984년에 개봉한 영화 '고스트버스트즈'의 주제가를 불러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어진 주제가의 히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화 '고스트버스트즈'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성공을 거두었으며 영화에 등장하는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유령 '먹깨비(Slimer)'와 '찐빵 귀신(마쉬멜로우맨, Stay Puft)'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먹깨비와 찐빵 귀신을 떠올리게 하는 신나는 곡 'Ghostbusters'도 함께 사랑을 받았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Funkadelic - Maggot Brain

 

Funkadelic - Maggot Brain

펑카델릭 (Funkadelic) :
조지 클린턴 (George Clinton, 보컬) : 1941년 7월 22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카나폴리스 출생
에디 헤이즐 (Eddie Hazel, 리드 기타) : 1950년 4월 10일 미국 브루클린 출생, 1992년 12월 23일 사망
타울 로스 (Tawl Ross, 리듬 기타) : 1948년 10월 5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와그램(Wagram) 출생
버니 워렐 (Bernie Worrell, 키보드) : 1944년 4월 19일 미국 뉴저지 주, 롱브랜치(Long Branch) 출생
빌리 넬슨 (Billy Bass Nelson, 베이스) : 1951년 1월 28일 미국 뉴저지 주, 플레인필드(Plainfield) 출생
티키 풀우드 (Tiki Fulwood, 드럼) : : 1944년 5월 23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생

 

분류 : 펑크(Funk), 소울(Soul), 사이키델릭 소울(Psychedelic Soul), 하드 록(Hard Rock)


미국의 사이키델릭 소울 그룹 펑카델릭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슬라이 스톤(Sly Stone)'을 잇는 블랙 록의 계승자로써 사이키델릭과 블루스를 접목한 매력있는 소울과 펑크를 들려주는 밴드이다. 펑카델릭의 리더인 싱어 송라이터 '조지 클린턴'은 뉴저지의 플레인필드에서 두왑(Doo Wop: 흑인들의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 형식의 합창) 밴드인 '팔러멘츠(The Parliaments)'를 1950년대 후반에 결성하여 플레인필드 지역의 이발소를 돌아다니며 머리 손질을 위해 대기하던 손님들을 대상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다.

 

오랜 무명의 생활 끝에 '레빌롯 레코드(Revilot Records)'를 통해 1967년에 발표한 싱글 '(I Wanna) Testify'가 히트를 하면서 마침내 빛을 보게 된 팔러멘츠의 조지 클린턴은 이발소에서 일하고 있던 십대의 빌리 넬슨과 그의 친구인 에디 헤이즐을 공연을 위한 백밴드 멤버로 기용하고 여기에 타울 로스, 버니 워렐, 미키 앳킨스(Mickey Atkins, 오르간)를 추가로 합류시켜 1968년에 펑카델릭을 결성하게 된다. 공연에 나선 팔러멘츠와 펑카델릭은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이에 사람들은 두 그룹을 합쳐 'P-Funk(Parliament-Funkadelic)'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팔러멘츠는 1970년 7월에 데뷔 음반 'Osmium'을 발표하였고 '웨스트바운드 레코드(Westbound Records)와 계약한 펑카델릭은 팔러멘츠의 데뷔 음반이 발표된 비슷한 시기에 데뷔 음반 'Funkadelic'을 발표하였다. 음반 녹음 당시 버니 워렐이 키보드 세션을 하였으나 데뷔 음반의 연주자 이름에는 누락되었고 두번째 음반 부터 미키 앳킨스 대신 정식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1970년 7월에 두번째 음반 'Free Your Mind...And Your Ass Will Follow'을 발표한 펑카델릭은 긴 시간의 작업 끝에 1971년 7월 세번째 음반 'Maggot Brain'을 발표하여 사이키델릭 소울의 진수를 팬들에게 선사하였다.

 

특히 10분이 넘는 대곡이자 타이틀 곡인 'Maggot Brain'에서 에디 헤이즐이 연주하는 기타 소리는 애잔한 슬픔으로 듣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아 버리는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한편 음반 Maggot Brain 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500대 앨범'에서 486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에디 헤이즐의 장례식에서 진혼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던 곡인 'Maggot Brain'은 미국에서 방영중인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의 6시즌 11화인 'The Down Low' 편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슴 아픈 장면에 삽입되어 극의 분위기를 더욱 애잔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에디 헤이즐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곡인 'Maggot Brain'은 록 사상 가장 슬픈 기타 연주가 아닐까?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Commodores - Three Times A Lady

 

Commodores - Three Times A Lady

코모도스(Commodores)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 보컬, 색소폰, 1949년 6월 20일 알라바마 터스키기(Tuskegee) 출생
토마스 맥클래리(Thomas McClary) : 기타, 1949년 10월 6일 플로리다 유스티스(Eustis) 출생
밀란 윌리엄스(Milan Williams} : 키보드, 1948년 3월 28일 미시시피 오콜로나(Okolona) 출생
윌리엄 킹(William King) : 트럼펫, 1949년 1월 30일 알라바마(Alabama) 출생
로날드 라프레드(Ronald La Pread) : 베이스, 1946년 9월 4일 알라바마(Alabama) 출생
월터 오렌지(Walter "Clyde" Orange) : 드럼, 1946년 12월 10일 플로리다(Florida) 출생


미국의 흑인 소울 펑크 밴드 코모도스(Commodores)는 알라바마의 터스키기 대학(Tuskegee Institute, 현 Tuskegee University)의 신입생 동기들로 구성된 그룹으로 The Mystics 와 The Jays, 라는 두 그룹의 구성원들이 The Jays 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여 조직된 밴드이다.

 

그룹의 구성원 중에는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은 이가 드러머인 월터 오렌지 밖에 없었기에 초기의 그룹은 월터 오렌지가 리더하며 연주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The Jays 라는 이름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둘수 없었던 이들은 그룹 이름을 바꾸기로 하고 사전을 뒤적여 Commodores 라는 이름을 찾아내서 그룹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룹 이름을 바꾼 코모도스는 1969년 일자리와 성공을 향해서 뉴욕으로 가게 되고 클럽 Small's Paradise 에서 공연 활동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연예 기획자(Talent Agent) 베니 애쉬번(Benny Ashburn)을 만나서 코모도스의 매니저 일을 맡기게 되었으며, 1970년에 애틀란틱 레코드(Altantic Records)와 싱글 음반 계약을 맺고 한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싱글 음반은 차트에 오르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1971년 코모도스는 디트로이트 시의 흑인 레코드 회사 모타운(Motown)과 계약을 하고 Jackson 5 의 투어에 참여하여 2년동안 오프닝 무대를 담당하게 된다. 모타운 사운드로 대변되는 음악 색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던 코모도스는 2년간의 투어를 마친 후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가서 마침내 1974년에 데뷔 음반 Machine Gun을 발표하게 된다.

 

코모도스의 데뷔 음반은 '헤비메탈에 대한 흑인 음악의 대답' 이라는 평을 이끌어내며 호평 받았고 음반 타이틀 곡인 Machine Gun 을 빌보드 싱글 차트 22위에 진출시키며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데뷔 음반 발표 후 코모도스는 I Feel Sanctified, Slippery When Wet, Just to Be Close to You, Easy 같은 곡들을 연속하여 히트시키며 정상의 그룹으로 인기를 이어가다 1978년에 발표한 음반 Natural High 에서 싱글 음반으로 발매된 Three Times A Lady 가 영,미 양국의 차트 정상을 석권하여 명실상부한 흑인 음악의 대표 주자로 우뚝서게 된다.

 

Three Times A Lady 는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 곡을 불렀던 라이오넬 리치가 1981년에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영화 Endless Love 의 주제가를 불러 유명해지자 Three Times A Lady 의 인기도 동반 상승하며 사랑받게 된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Blondie - Call Me

 

Blondie - Call Me


블론디(Blondie)는 아름다운 금발의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 보컬, 1945년 7월 1일 마이애미 출생)가 리드 싱어로 활동한 미국의 뉴웨이브, 펑크 록 그룹으로 세장의 플래티넘 음반을 획득한 성과와 아울러 데보라 해리의 국제적인 명성이 맞물리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펑크 그룹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출생한 데보라 해리는 생후 3개월만에 미국 뉴저지 주(New Jersey) 호손(Hawthorne)에서 선물 가게를 운영하던 리차드 해리(Richard Smith Harry)의 딸로 입양되어 성장하게 된다. 1963년 호손 고등학교(Hawthorne High School)를 졸업한 데보라 해리는 뉴욕으로 가서 BBC 라디오의 뉴욕 사무실에서 비서로 1년간 근무하게 된다.

 

이후 나이트 클럽의 웨이트리스, 플레이 보이 클럽의 댄서, 던킨 도너츠의 점원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포크 록 그룹 The Wind in the Willows 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한동안 The Wind in the Willows 의 멤버로 활동하던 데보라 해리는 1970년에 여성 트리오인 The Stilettos 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The Stilettos 의 백밴드에는 데보라 해리의 애인인 크리스 스타인(Chris Stein, 기타, 1950년 1월 5일 브루클린 출생)이 기타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두사람은 1973년 새로운 그룹을 만들기로 하고 구상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하여 1974년에 Angel And The Snake 라는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듬해인 1975년에 드러머 클레멘트 버크(Clement Burke, 드럼, 1955년 11월 24일 뉴욕 출생)와 키보드 주자 지미 디스트리(Jimmy Destri, 키보드, 1954년 4월 13일 생), 그리고 베이스 주자 게리 발렌타인(Gary Valentine)이 그룹에 합세하여 5인조의 그룹이 완성되는데 이즈음 그룹 이름을 Blondie 로 바꾸게 된다.

 

블론디는 그룹 결성 후 펑크 그룹들이 많이 출연하던 클럽인 CBGB(Country, Blue Grass, and Blues)에 고정 멤버로 출연하며 인기를 쌓아가게 되는데, 1976년에는 Private Stock Records 와 음반 계약에도 성공하여 데뷔 앨범을 준비하게 된다. 데뷔 싱글 X-Offender 에 이어 1976년 12월 대망의 데뷔 앨범 Blondie를 발표하여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몰이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1977년 7월 베이스를 담당했던 게리 발렌타인이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기 위해 블론디를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여 베이스를 프랭크 인판테(Frank Infante)에게 넘기게 된다. 또한 이즈음 소속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Private Stock Records 와 결별한 블론디는 10월에 크리살리스(Chrysalis Records)와 계약하게 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크리살리스와 계약을 하고 유명 프로듀서 마이크 채프만(Mike Chapman)이 제작한 앨범 Parallel Lines 를 1978년에 발표한 블론디는 이 음반에서 싱글 커트한 Heart of Glass 를 영,미 양국의 차트 정상에 올려 놓으며 정상의 그룹으로 질주를 시작하게 된다.

 

또한 1980년에는 리차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출연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에 참가하여 삽입 곡 Call Me를 영화의 성공과 함께 히트 시키게 되는데 블론디의 노래 Call Me가 한국의 라디오를 점령했던 것도 이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