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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2일 목요일

Percy Sledge - When A Man Loves A Woman

Percy Sledge - When A Man Loves A Woman

미국의 앨라배마주 레이튼(Leighton)에서 태어난 R&B 가수 퍼시 슬레지는 1966년에 발표하여 히트시킨 곡 'When A Man Loves A Woman'으로 유명해졌다. 앨라배마주 콜버트카운티(Colbert County)의 세필드(Sheffield)의 한 병원에서 잡역부(Blue-collar)로 일하던 퍼시 슬레지는 어릴적 소망이었던 성공한 가수로써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에스콰이어 콤보(The Esquires Combo)'라는 이름의 소울 보컬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가 1960년 경이었는데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순회 공연을 다니는 두가지 일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1965년의 어느 날, 퍼시 슬레지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 입원하여 있던 환자 한명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환자가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퍼시 슬레지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친구를 퍼시 슬레지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 환자의 친구가 바로 테네시(Tennessee)주 멤피스(Memphis)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던 라디오 방송국 'WMPS'에서 DJ 를 하던 '퀸 아이비(Quin Ivy)'라는 사람이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을 틀어주던 퀸 아이비는 자신이 직접 음반 제작 사업에 뛰어 들기 위해 1964년 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드디어 1965년에 자신의 녹음실인 '퀸비 녹음실(Quinvy Recording Studio)'을 열게 되었고 음반 제작을 위한 가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친구에게 퍼시 슬레지를 소개받은 퀸 아이비는 오디션을 거쳐 그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되었으며 퍼시 슬레지는 1966년 4월 16일에 싱글 'When a Man Loves a Woman'을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스푸너 올덤(Spooner Oldham, 오르간)', '말린 그린(Marlin Greene, 기타)', '앨버트 로우(Albert "Junior" Lowe, 베이스)', '로저 호킨스(Roger Hawkins, 드럼)'가 연주자(Sideman)로 참여한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와 R&B 차트(Billboard Hot R&B)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퍼시 슬레지의 이름을 미국 전역에 알리게 된다.

'When a Man Loves a Woman'은 1965년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퍼시 슬레지가 만든 곡인데 싱글로 발표하면서 곡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캘빈 루이스(Calvin Lewis)'와 '앤드루 라이트(Andrew Wright)'를 곡의 작곡자로 표기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롤링 스톤지(Rolling Stone magazine)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 선정되기도 하였던 'When a Man Loves a Woman'은 1991년에 미국 가수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에 의해 커버되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당시 마이클 볼튼이 거의 완벽하게 퍼시 슬레지의 곡을 커버하여 히트시키자 퍼시 슬레지의 부인이 마이클 볼튼에게 남편의 노래를 잘 불러주어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 한때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던 'When a Man Loves a Woman'은  우리나라에서도 광고와 드라마의 배경 음악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퍼시 슬레지 (Percy Sledge) : 1940년 11월 25일 미국 앨라배마주 출생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 소울(Soul)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psledge.com/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Prince - Purple Rain

 

Prince - Purple Rain

프린스 (Prince Rogers Nelson) : 1958년 6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생

갈래 :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R&B),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discogs.com/artist/Princ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프린스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깨트리는 실험적인 음악과 선정성을 결합하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93년에 접어 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자신의 이름인 프린스 대신에 '예전에 프린스로 불렸던 아티스트(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줄여서 'TAFKAP'라고 표기하였던 이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표시하는 기호를 조합해 만든 상징으로 표시하여 '심볼(Symbol)'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The Artist'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행동을 곧잘 보여주는 프린스는 자신의 음악에도 이런 점들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이자 섹스 심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존 루이스 넬슨(John Lewis Nelson)'과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 '마티 쇼(Mattie Shaw)' 사이에서 태어난 프린스는 열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되자 어린 프린스는 이웃의 앤더슨(Anderson)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아들인 안드레 앤더슨(Andre Anderson)이 프린스 자신 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안드레 앤더슨은 '안드레 사이먼(Andre Cymone)'으로 알려진 미국의 베이스 주자이자 음반 제작자로 어린 시절 프린스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린스와 안드레 앤더슨은 '미니애폴리스 샌트럴 고등 학교(Minneapolis Central High School)' 재학 시절 프린스의 사촌인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와 함께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 그랜드 센트럴은 프린스가 피아노와 기타를 담당했으며 안드레 앤더슨이 베이스를 그리고 찰스 스미스는 드럼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프린스의 어머니로 부터 연주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였고 파티 행사와 클럽들을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랜드 센트럴은 후일 '샴페인(Champagne)'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게 되는데 당시 밴드가 추구하던 음악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등의 연주자들에게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1976년 프린스는 음반 제작자인 '크리스 문(Chris Moon)'의 미니애폴리스 녹음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음반 계약을 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을 느낀 크리스 문이 데모 테이프를 '오웬 허즈니(Owen Husney)'에게 판매하고 오웬 허즈니의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도와 주었다. 열여덟살의 나이로 전속 계약을 한 프린스는 곧장 녹음실로 들어가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지(David Z)'의 지휘 아래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를 비롯하여 A&M 과 컬럼비아(Columbia Records)에 보내져 음반 계약을 추진하였고 최종적으로 워너 브라더스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여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오웬 허즈니와 프린스는 데뷔 음반 녹음을 위해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한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Record Plant Studios)'로 가서 1977년 10월 부터 12월 까지 음반 녹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1978년 4월 7일 발표된 프린스의 데뷔 음반 'For You'는 빌보드 앨범 차트 163위에 오르는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미국내에서 43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첫번째 싱글 'Soft and Wet'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2주간 머물며 92위 까지 올랐다. 1979년 1월 프린스는 안드레 사이먼과 함께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The Revolution)'을 결성하여 순회 공연을 했으며 10월에는 두번째 음반 'Prince'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소울 차트(Hot Soul Singles)에서는 1위를 차지하자 음반 역시 순항을 거듭하여 앨범 차트에서 22위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음반 판매고 역시 백만장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이며 프린스를 새로운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1984년 프린스는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과 함께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Prince and The Revolution)'의 이름으로 프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Purple Rai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 'Purple Rain'마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반 'Purple Rain'은 'Let's Go Crazy'와 'When Doves Cry'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았고, 음반 타이틀 트랙인 명곡 'Purple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까지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다.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Purple Rain'의 히트로 말미암아 프린스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팬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실버 컨벤션 (Silver Convention) :
린다 톰슨 (Linda Thompson, 보컬) :
라모나 울프 (Ramona Wolf, 보컬) :
페니 맥클레인 (Penny McLean, 보컬) :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B), 디스코(Disco), 소울(Soul)
관련 웹 사이트 : http://surf.to/ramonawulf


독일에서 결성된 걸 그룹 '실버 컨벤션'은 1975년에 발표한 싱글 'Fly Robin Fly'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디스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음악 팬들에게 인식시킨 스튜디오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체코의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나 독일 뮌휀에서 성장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헝가리 출신으로 유고슬리비아에서 미국의 팝 음악을 즐겨 들으며 성장한 '실베스터 리베이(Sylvester Levay)'는 독일에서 음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다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며 걸 그룹을 만들기 위한 기획에 들어가게 된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세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세 사람을 선발하여 트리오 걸 그룹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하고 실베스터 리베이의 이름을 따서 '실버 컨벤션'을 출범시킨다.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리베이의 지도로 데뷔 준비를 마친 실버 컨벤션은 1974년에 싱글 'Always Another Girl'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소폭의 히트에 그친 데뷔 싱글의 뒤를 이어 발매한 두번째 싱글은 1975년에 발표한 'Fly Robin Fly'였다.

 

'Fly, Robin, Up, To, The, Sky'라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여섯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가사의 'Fly Robin Fly'는 1975년 11월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주간 1위에 머물며 앞으로 몰려올 유럽 디스코 음악의 거센 물결을 예고하게 된다. 기발한 가사로 만들어진 초기 디스코 음악의 대표 곡인 'Fly Robin Fly'는 처음에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다가 녹음하기 직전에 'Fly Robin Fly'으로 바뀐 곡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에서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면 아마도 걸 그룹의 팬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Billy Paul - Me And Mrs. Jones

 

Billy Paul - Me And Mrs. Jones

빌리 폴 (Paul Williams) : 1934년 12월 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출생

분류 : 소울(Soul), 리듬 앤 블루스(R&B)


미국의 소울 가수 빌리 폴은 특유의 낮고 메마른 음성으로 부른 감동적인 싱글 'Me And Mrs. Jones'로 세계적인 소울 가수로써의 명성과 함께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빌리 폴은 어릴때 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재즈, 팝, R&B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며 음악적 재능을 키워 나가다 열두살때 부터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를 정도로 타고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템플대학교(Temple University)'에 입학한 빌리 폴은 학업과 병행하여 '그라노프 음악학교(Granoff School of Music)'에서 소울과 팝 보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가수로써의 성공을 향한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클럽과 교내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실력을 가다듬던 빌리 폴은 군 입대를 앞두고 트리오를 결성하여 '주빌리 레코드(Jubilee Records)' 에서 싱글 'Why Am I'를 발표하며 데뷔하게 된다.

 

군복무를 마친 후, 빌리 폴은 '뉴 돈(New Dawn)'과 계약하고 1970년에 데뷔 음반 'Ebony Woman'을 발표하였다. 1971년에는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레코드(Philadelphia International Records)'로 이적하여 '필리 소울(Philly Soul)', 혹은 '필라델피아 사운드(Philadelphia Sound), '스위트 필리(Sweet Philly)'등으로 불려지게 되는 음악을 주류로 편입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케네스 갬블(Kenneth Gamble)'과 '레온 허프(Leon A. Huff)'를 만나게 되고 두사람이 만든 곡인 'Love Buddies'를 수록한 두번째 음반 'Going East'를 발표하였다.

 

1972년 빌리 폴은 케네스 갬블과 레온 허프의 지휘 아래 세번째 음반 '360 Degrees Of Billy Paul'을 발표하였으며 싱글로 발표된 'Me And Mrs. Jones'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빌리 폴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주었다. 명곡 'Me And Mrs. Jones'는 빌리 폴의 최대의 히트 곡인 동시에 '나와 존스 부인'의 불륜을 애절한 분위기로 노래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Quincy Jones - Ai No Corrida

 

Quincy Jones - Ai No Corrida

퀸시 존스 (Quincy Delight Jones Jr.) : 1933년 3월 14일 미국 일리노이(Illinois)주 시카고 출생

 

분류 : 재즈 팝(Jazz-Pop), 리듬 앤 블루스(R&B), 크로스오버 재즈(Crossover Jazz), 팝록(Pop/Rock)

 

음반 제작자(Record Producer)이자 작곡가이며 편곡자인 동시에 재즈 연주자인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기념비적인 음반 'Thriller' 에서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공동으로 음반 제작을 담당하여 마이클 잭슨에게 '킹 오브 팝(King of Pop)'이라는 영광스러운 예명이 따라다니는데 일조했던 인물이었으며, 1985년 3월 7일에 공개되었던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 밥 딜런, 폴 사이먼, 빌리 조엘 등이 참여한 아프리카 난민 구제를 위한 프로젝트 싱글인 'We Are The World'의 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목수이자 세미-프로 야구 선수인 '퀸시 딜라이트 존스(Quincy Delight Jones Sr.)'의 아들로 시카고에서 태어난 퀸시 존스는 어린 시절 부터 트럼펫(Trumpet)에 관심을 기울였다. 열살이 되던 해에 가족이 워싱턴 주의 브레머턴(Bremerton)으로 이사하였으며 가필드 고교(Garfield High School)를 졸업하였다.

 

1951년에 보스턴의 실링거 하우스(Schillinger House: 현 버클리 음대)에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기회를 잡았지만 스윙의 거장 라이오넬 햄프턴(Lionel Leo Hampton)이 자신의 공연에 트럼펫 주자로 참여할 것을 제의하자 학업을 포기하고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라이오넬 햄프튼과의 활동을 통해 작곡가 겸 편곡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프리랜스(Freelance) 편곡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당시 퀸시 존스는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사라 본(Sarah Vaughan),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레이 찰스(Ray Charles)등 많은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을 하였다.

 

1956년에 접어들자 퀸시 존스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밴드에 참여하여 중동과 남미를 거치는 공연에 참여하였으며,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ABC-Paramount Records 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의 첫 리더작을 녹음하였다. 음반 녹음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퀸시 존스는 클래식 음악의 작곡 기법을 배우는 한편 '존스 보이스(The Jones Boys)'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유럽을 무대로 공연 활동에 주력하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퀸시 존스는 영화 음악에 관심을 쏟는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재즈와 소울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1978년에는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로 알려진 뮤지컬 '위즈(The Wiz)'의 음악을 맡게 되면서 허수아비(Scarecrow)역으로 출연한 마이클 잭슨을 만나게 된다.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발견한 퀸시 존스는 그의 솔로 음반인 'Off the Wall'에 참여하여 마이클 잭슨과 공동으로 음반 제작을 하면서 마이클 잭슨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1981년 퀸시 존스는 소울 가수인 '제임스 잉그램(James Ingram)'과 재즈 가수인 '패티 오스틴(Patti Austin)'을 초대하여 음반 'The Dude'를 녹음하여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제임스 잉그램이 노래한 'Just Once' 와 'One Hundred Ways'가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17위와 14위에 진출하며 히트를 하였다. 또한 이 곡들은 제임스 잉그램이 최초로 히트시킨 곡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Just Once' 와 'One Hundred Ways'가 히트한 반면 한국에서는 음반의 첫번째 곡인 'Ai No Corrida' 가 디스코텍을 중심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사랑받기 시작하였고 라디오 팝 프로그램에서는 신청곡의 상위를 차지하는 댄스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Ai No Corrida'의 보컬은 "Dune" & Charles May 라는 인물들이 담당했다.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Kool & The Gang - Celebration

 

Kool & The Gang - Celebration

쿨 앤 더 갱 (Kool & The Gang) :

로버트 벨 (Robert "Kool" Bell, 베이스) : 1950년 10월 8일 미국 오하이오(Ohio) 영즈타운 출생
로널드 벨 (Ronald Bell, 색소폰) : 1951년 11월 1일 미국 오하이오 영즈타운(Youngstown) 출생
제임스 JT 테일러 (James "J.T." Taylor, 보컬) :  1953년 8월 16일 미국 뉴저지 모리스타운 출생
찰스 스미스 (Claydes Charles Smith) : 1948년 9월 6일 미국 뉴저지 출생, 2006년 6월 20일 사망
조지 브라운 (George Brown, 드럼) :
클리포드 아담스 (Clifford Adams, 키보드) :
릭 웨스트필드 (Rick Westfield, 키보드) :
로버트 미킨스 (Robert Mickens, 트럼펫) :
데니스 토마스 (Dennis Thomas, 색소폰) :

분류 :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 소울(Soul), 디스코(Disco), 재즈(Jazz)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관악기를 전면에 등장시킨 펑키(Funky: 리듬앤블루스, 재즈 등의 장르에 영향을 받아 1960년대에 성립된 흑인적인 감각이 풍부한 댄스 음악)한 팝 취향의 히트 곡들을 많이 만들어내었던 미국의 R&B, 펑크 그룹 '쿨 앤 더 갱'은 1964년에 7인조 재즈 그룹으로 음악계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룹의 주축인 로버트 벨과 동생인 로널드 벨은 재즈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재즈 음악과 친숙하게 지냈으며 자연스럽게 재즈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성장하였다. 벨 형제의 아버지는 재즈의 개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와 친구 사이였고 프로 복서로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벨 형제는 듀오를 결성하여 이웃들과 친구들 앞에서 재즈 연주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로버트는 베이스를 로널드는 색소폰을 연주하였는데 이 듀오가 발전하여 그룹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벨 형제는 고교 시절 친구 다섯명과 함께 재지악스(The Jazziacs)라는 재즈 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밴드 이름을 소울 타운 밴드(Soul Town Band)로 바꾸었다가 '쿨 앤 더 플래임스(Kool & the Flames)'를 거쳐 1968년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쿨 앤 더 갱'으로 밴드 이름을 확정하게 된다.

 

그때까지 재즈를 고수하던 밴드는 '쿨 앤 더 갱'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면서 펑크와 R&B 형태의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1969년 신생 레이블인 레드코치 레코드(Redcoach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데뷔 음반 'Kool & The Gang' 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타이틀 트랙이자 그룹 송인 Kool & The Gang 을 팝 차트와 R&B 차트에 올려 놓는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힘있는 관악기 연주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보컬 파트는 쿨 앤 더 갱을 단숨에 주목받는 밴드로 만들어 주었고 1970년대에 접어들며 최정상의 펑크 그룹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79년, '쿨 앤 더 갱'은 제임스 JT 테일러를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가입시키는 멤버 보강을 통해 새롭게 비상하게 되는데 플래티넘을 기록한 음반 Ladies' Night 에 이어서 1980년에 발표한 음반 Celebrate! 에서는 싱글 'Celebration'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 곡은 1980년 당시 이란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들이 풀려나와 미국 공항에 내릴때 울려퍼졌던 송가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