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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3일 금요일

Village People - Y.M.C.A.

 

Village People - Y.M.C.A.

각자 개성있는 캐릭터를 연출하며 흥겨운 디스코 음악을 들려 주었던 '빌리지 피플'은 프랑스 출신의 음반 제작자 '자크 모랄리(Jacques Morali)'에 의해서 1977년에 탄생하였다. 빌리지 피플에서 미국 원주민 역할을 맡았던 '펠립 로즈'는 무용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여 열여섯살 때에는 장학금을 받고 발레 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있는 예비 무용수였다. 학교 졸업 후에는 '링컨 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발레단에 입단하여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지로 부터 호평을 이끌어내는 준수한 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정된 규율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펠립 로즈는 좀더 자유롭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발레단에서 퇴단한 후 나이트클럽의 무대에서 무용수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미국 원주민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펠립 로즈는 무대에 설때 원주민 복장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어느날 뉴욕의 게이(Gay) 클럽에서 춤을 추던 펠립 로즈의 모습을 발견한 자크 모랄리에게 발탁되어 빌리지 피플의 일원이 된다.

빌리지 피플에서 경찰역을 맡았던 '빅터 윌리스'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수업과 춤을 배우기도 하였다. '니그로 앙상블 컴퍼니(Negro Ensemble Company)' 극단에 입단한 빅터 윌리스는 여러 뮤지컬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나가다 1970년대 중반 부터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만든 데모 테이프를 들고 음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여러군데의 음반사를 찾아 다니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크 모랄리의 눈에 띄어 빌리지 피플 가입 권유를 받고 빌리지 피플의 일원이 되었다.

카우보이역을 맡았던 '랜디 존스'는 엔로 고등학교(Enloe High School)를 1970년에 졸업하였는데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엔로스 드라마 클럽(Enloe's Drama Club)'을 만들어 몇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던 경력이 있었던 인물로 디스코 밴드 빌리지 피플의 멤버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공개 모집에 참가하여 빌리지 피플의 일원이 되었다. 폭주족역의 '글렌 휴스'는 평소 오토바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로 맨해튼 대학교를 졸업하고 '브루클린-배터리 터널(Brooklyn?Battery Tunnel)'에서 통행료를 받는 수금원으로 일하다 빌리지 피플 멤버 모집 광고를 보고 공개 모집에 응하여 강한 남성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찾던 자크 모랄리에게 발탁이 되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역인 '데이비드 호도'는 '새크라멘토 주립대학교(Sacramento State College)'를 졸업한 후 뉴욕으로 와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빌리지 피플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군인역의 '알렉산더 브릴리'는 빅터 윌리스 처럼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며 음악적 기량을 다졌던 인물이었다. 공개 석상에서 자신이 게이(Gay)라는 것을 밝히기도 했던 알렉산더 브릴리는 '하트포드 대학교(University of Hartford)'를 졸업하고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 빌리지 피플에 가입하였다.

1977년 자크 모랄리는 녹음실에서 빅터 윌리스에게 노래 지도를 하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로 구성된 디스코 밴드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는 빅터 윌리스에게 새롭게 만들어질 디스코 밴드에서 리더를 맡아줄 것을 제안하게 된다. 빅터 윌리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빌리지 피플이 탄생하게 되는데 공개 모집과 발탁을 통해 완성된 빌리지 피플의 구성원은 위에서 언급한 여섯명이었다. 1977년에 음반 'Village People'을 발표하면서 데뷔한 빌리지 피플은 첫번째 싱글 'San Francisco (You've Got Me)'를 영국에서 먼저 공개하였다.

영국에서 발매된 빌리지 피플의 첫번째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45위 까지 진출하며 새로운 디스코 밴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1978년 2월에는 두번째 음반 'Macho Man'을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음반의 타이틀 곡인 'Macho Man'을 싱글로 공개하여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싱글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5위 까지 진출하며 빌리지 피플의 이름을 미국에 알린 첫번째 곡이 되었다. 'Macho Man'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빌리지 피플은 그해 9월에 세번째 음반 Cruisin'을 서둘러 발매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Y.M.C.A.'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상승을 거듭하여 급기야 차트 2위 까지 치고 올라가며 대형 히트를 하였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정상에 오르며 전세계적으로 'Y.M.C.A.'의 바람을 몰고 오게 된다. 알파벳 'Y, M, C, A'를 흉내낸 춤동작 까지 등장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게이 찬가인 'Y.M.C.A.'는 빅터 윌리스와 자크 모랄리가 공동으로 만든 곡으로 '기독교 청년회(YMCA)'의 농구장과 수영장 등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흑인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졌으나 가사가 암시하고 있는 것은 게이 문화에 대한 찬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Y.M.C.A.'는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 한때 각종 스포츠 경기장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자주 응원가로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곡이기도 하다. 한편 빌리지 피플은 1979년에 'In the Navy'를 1980년에는 'Can't Stop the Music'을 발표하여 히트 곡 행진을 이어 갔다. 

빌리지 피플 (Village People) :
펠립 로즈 (Felipe Rose, 보컬) : 1954년 1월 12일 미국 뉴욕 출생
빅터 윌리스 (Victor Willis, 보컬) : 1951년 7월 1일 미국 텍사스 출생
알렉산더 브릴리 (Alexander Briley, 보컬) : 1947년 4월 12일 미국 뉴욕 출생
랜디 존스 (Randy Jones, 보컬) : 1952년 9월 1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데이비드 호도 (David Hodo, 보컬) : 1947년 7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글렌 휴스 (Glen Hughes, 보컬) : 1950년 7월 18일 미국 뉴욕 출생, 2001년 3월 4일 사망

갈래 : 디스코(Disco), 댄스 팝(Dance-Pop),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officialvillagepeople.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CS9OO0S5w2k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Grace Jones -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

 

Grace Jones -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

카리브 해에 위치한 섬나라인 자메이카의 스패니시타운(Spanish Town)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레이스 존스는 1965년에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성장하게 된다. 뉴욕의 '오논다가 커뮤니티 대학(Onondaga Community College)'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졸업한 그레이스 존스는 뉴욕에서 모델로 데뷔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모델 활동과 병행하여 그레이스 존스는 1973년에 개봉한 영화 '고든스 워(Gordon's War)'에 '메리(Mary)'역으로 출연하여 영화 배우로도 데뷔하였지만 정작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모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에서 발행된 패션 잡지의 표지 인물로도 여러차례 등장하였던 그레이스 존스는 1975년에 프랑스에서 싱글 'I Need A Man/Again And Again'을 발표하면서 어릴때 부터의 꿈이었던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그레이스 존스는 프랑스에서 데뷔 싱글을 발표한 후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의 댄스 클럽들에서 자신의 싱글인 'I Need A Man'을 부르며 댄스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뉴욕의 댄스 클럽들에서 그레이스 존스의 이름이 널리 퍼질때 쯤인 1977년에 '아일랜드 음반사(Island Records)'에서 그녀에게 음반 계약을 제의하여 마침내 그레이스 존스는 미국에서 꿈에도 그리던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미 댄스 클럽을 통해 널리 알려진 곡인 'I Need A Man'을 포함하여 총 일곱 곡의 디스코 음악이 수록된 데뷔 음반 'Portfolio'를 1977년에 발표하면서 그레이스 존스는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8년 음반 'Fame'과 1979년 음반 'Muse'까지 석장의 디스코 음반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들인 그레이스 존스는 1980년에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1980년에 발표된 그녀의 네번째 음반 'Warm Leatherette'였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록시 뮤직(Roxy Music)'의 곡인 'Love is the Drug'을 커버하여 수록한 것을 비롯하여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의 'Private Life'와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의 'Breakdown'등을 커버한 곡들을 수록하여 이전보다 좀더 록적인 접근을 시도한 이 음반으로 인해 그레이스 존스는 그동안 디스코 팬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자신의 이름을 록팬들에게 까지 알리게 된다.

1981년, 그레이스 존스는 다섯번째 음반 'Nightclubbing'을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된다. 영국 록 그룹 '폴리스(The Police)'의 리더인 '스팅(Sting)'이 만들어준 곡 'Demolition Man'과 가수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만들어준 'Nightclubbing'등이 수록된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Pull Up to the Bumper'는 '빌보드 R&B 차트(Billboard Hot R&B, Black Singles Chart)'에서 5위를 차지하며 그레이스 존스 최고의 히트 곡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인 '아스트로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탱고 곡인 'Libertango'를 레게 음악으로 편곡하고 새로운 가사를 붙여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라는 제목으로 수록하고 있는데 이 곡은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독일의 싱글 차트에서는 16위를 차지하며 히트 곡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I've Seen That Face Before (Libertango)'가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되며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영화와 드라마, 광고 음악 등에 널리 사용되며 유명해졌고 그로인해 이 곡이 그레이스 존스의 대표 곡이 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동안 1948년 생인지 1952년 생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그레이스 존스는 깍아 놓은 듯한 완벽한 각선미를 무기로 1984년 부터는 영화에 전념하고 있다.

그레이스 존스 (Grace Jones) : 1948년 5월 19일 자메이카 스패니시타운 출생

갈래 : 댄스 팝(Dance-Pop), 팝 록(Pop/Rock), 신스팝(Synthpop), 디스코(Disco)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filmreference.com/film/38/Grace-Jones.html

 

2010년 5월 4일 화요일

Hot Chocolate - Emma

 

Hot Chocolate - Emma

핫 초콜릿 (Hot Chocolate) :
에롤 브라운 (Errol Brown, 보컬) : 1948년 11월 12일 자메이카(Jamaica) 킹스턴(Kingston) 출생
래리 퍼거슨 (Larry Ferguson, 키보드) : 1948년 4월 14일 바하마(Bahamas) 나소(Nassau) 출생
토니 코너 (Tony Connor, 드럼) : 1947년 4월 6일 영국 런던 롬포드(Romford) 출생
하비 힌슬리 (Harvey Hinsley, 기타) : 1948년 1월 19일 영국 노샘프턴(Northampton) 출생
토니 윌슨 (Tony Wilson, 베이스) : 1947년 10월 8일 트리니다드토바고(Trinidad and Tobago) 출생
패트릭 올리브 (Patrick Olive, 퍼커션) : 1947년 3월 22일 그레나다(Grenada) 출생

 

갈래 : 펑크(Funk), 팝 록(Pop/Rock), 디스코(Disco)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hot-chocolate.co.uk/

 

영국의 펑크(Funk: 흑인 소울 음악과 R&B, 소울 재즈 등을 결합하여 만든 흥겨운 리듬의 음악) 밴드인 핫 초콜릿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영국에서 거주하던 에롤 브라운이 1969년에 결성한 밴드로 처음에는 '핫 초콜릿 밴드(The Hot Chocolate Band)'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밴드는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음반사(Apple Records)'와 계약을 하고 존 레논(John Lennon)의 곡인 'Give Peace A Chance'를 레게(Reggae) 버전으로 편곡한 데뷔 싱글을 1969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에롤 브라운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자메이카에 떼어 놓고 돈을 벌기 위해 영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무작정 가출한 어린 십대의 에롤 브라운은 우여 곡절을 겪으며 영국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고 파란만장한 영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릴적 부터 남다른 가창 실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에롤 브라운은 영국에서 어머니를 찾는 한편 여러가지 직업을 거치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카리브해 지역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래리 퍼거슨과 패트릭 올리브와 친하게 지내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가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밴드 활동을 모색하게 되었고 핫 초콜릿 밴드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에롤 브라운을 비롯하여 카리브해 연안 국가 출신의 네 사람과 영국 출신의 토니 코너로 구성된 핫 초콜릿 밴드는 밴드 결성 후 클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때마침 신인 발굴을 위해 클럽을 드나들던 애플 음반사 관계자의 시선을 끌어 1969년에 애플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인 'Give Peace A Chance'는 존 레논의 기대와는 달리 실패로 돌아갔고 핫 초콜릿과 애플과의 계약도 종료되어 핫 초콜릿은 새로운 음반사를 찾아야 했는데 이때 밴드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음반 프로듀서이자 'RAK 음반사(RAK Records)'의 설립자인 '미키 모스트(Mickie Most)'였다. 미키 모스트는 밴드의 사운드 보강을 위해 스튜디오 세션 기타리스트인 하비 힌슬리를 추가로 밴드에 합류시키고 밴드 이름도 핫 초콜릿으로 짧게 고쳐 부르게 하였다.

 

RAK 음반사에서의 첫 싱글인 'Love is Life'가 1970년에 공개되었는데,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6위 까지 진출하며 핫 초콜릿의 첫번째 탑텐 진출 곡이 되었다. 'Love is Life'의 성공 이후 핫 초콜릿은 계속해서 히트 곡을 만들어내며 영국의 인기 그룹으로 성장하였고 1974년 3월에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인 'Emma'를 발표하여 싱글 차트 3위에 올려 놓았다.

 

한국의 음악 감상실을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핫 초콜릿의 'Emma'는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핫 초콜릿 최고의 히트 곡으로 한국의 팝 팬에게 사랑받고 있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실버 컨벤션 (Silver Convention) :
린다 톰슨 (Linda Thompson, 보컬) :
라모나 울프 (Ramona Wolf, 보컬) :
페니 맥클레인 (Penny McLean, 보컬) :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B), 디스코(Disco), 소울(Soul)
관련 웹 사이트 : http://surf.to/ramonawulf


독일에서 결성된 걸 그룹 '실버 컨벤션'은 1975년에 발표한 싱글 'Fly Robin Fly'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디스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음악 팬들에게 인식시킨 스튜디오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체코의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나 독일 뮌휀에서 성장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헝가리 출신으로 유고슬리비아에서 미국의 팝 음악을 즐겨 들으며 성장한 '실베스터 리베이(Sylvester Levay)'는 독일에서 음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다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며 걸 그룹을 만들기 위한 기획에 들어가게 된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세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세 사람을 선발하여 트리오 걸 그룹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하고 실베스터 리베이의 이름을 따서 '실버 컨벤션'을 출범시킨다.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리베이의 지도로 데뷔 준비를 마친 실버 컨벤션은 1974년에 싱글 'Always Another Girl'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소폭의 히트에 그친 데뷔 싱글의 뒤를 이어 발매한 두번째 싱글은 1975년에 발표한 'Fly Robin Fly'였다.

 

'Fly, Robin, Up, To, The, Sky'라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여섯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가사의 'Fly Robin Fly'는 1975년 11월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주간 1위에 머물며 앞으로 몰려올 유럽 디스코 음악의 거센 물결을 예고하게 된다. 기발한 가사로 만들어진 초기 디스코 음악의 대표 곡인 'Fly Robin Fly'는 처음에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다가 녹음하기 직전에 'Fly Robin Fly'으로 바뀐 곡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에서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면 아마도 걸 그룹의 팬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Carl Douglas - Kung Fu Fighting

 

Carl Douglas - Kung Fu Fighting

칼 더글러스 (Carl Douglas) : 1942년 5월 10일 자메이카 킹스턴(Kingston) 출생

 

분류 : 디스코(Disco),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arl-douglas.com/

 

한 곡만 히트시키고 사라져간 반짝 가수(One-hit wonder)의 대표격인 칼 더글러스는 카리브해 북부의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이후 고향인 자메이카를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였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음향 공학을 공부하였다. 칼 더글러스가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데뷔한 것은 1964년의 일로 당시 그는 '빅 스탬피드(The Big Stampede)'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영국에서 싱글 음반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칼 더글러스의 주장에 의하면 1965년에는 당시 영국에서 활동 중이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만나 런던의 한 클럽에서 빅 스탬피드의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잼 세션을 펼치는 행운을 갖기도 하였다고 한다. 1966년 칼 더글라스는 새로운 밴드인 '익스플로전스(The Explosions)'를 결성하고 스페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1970년 까지 활동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밴드는 해산하였다.

 

1971년 영국으로 돌아온 칼 더글러스는 '곤잘레스(Gonzales)'라는 이름의 4인조 밴드를 결성하고 영국 활동을 재개하였다. 1972년에는 인도 출신의 프로듀서인 '바이두(Biddu)'와 함께 싱글 'Marble And Iron'을 발표하여 생애 처음으로 미국의 빌보드 R&B 차트에 진입시키기도 하였다. 2년후 바이두는 '래리 와이즈(Larry Weiss)'의 싱글 'I Want to Give You My Everything'을 제작하면서 B면에 수록할 곡을 찾던 중 칼 더글러스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바이두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칼 더글라스는 B면에 그가 만들어 놓은 곡 'Kung Fu Fighting'을 수록할 것을 제의하였다. 바이두와 의견을 모은 후 녹음에 들어간 칼 더글러스는 단 10분만에 'Kung Fu Fighting'의 녹음 작업을 완성하였으며 녹음을 마친 마스터 테이프는 음반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우연히 녹음하게 된 'Kung Fu Fighting'은 음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호평과 함께 '파이 음반사(Pye Records)'의 결정으로 A면에 수록되어 발매되었고 예상대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칼 더글러스를 반짝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Kung Fu Fighting'의 히트는 당시 이소룡의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TV 시리즈로 제작된 'Kung Fu' 까지 성공하면서 중국 전통 무술인 쿵후에 대한 미국인들의 높아진 관심이 음악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결과였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영국에서도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동양 무술에 대한 관심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영국 런던에서 쿵후 동작을 하며 놀던 두 꼬마를 보고 만들었다는 'Kung Fu Fighting'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추억의 노래이다.

 

 

2010년 4월 8일 목요일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산타 에스메랄다 (Santa Esmeralda) : 1977년 발표 싱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구성원
리로이 고메즈 (Leroy Gomez, 리드 보컬)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어햄(Wareham) 출생
장 끌로드 페티 (Jean Claude Petit, 건반) :
슬림 페진 (Slim Pezin, 기타) :
호세 소크 (Jose Souc, 스패니시 기타) :
크리스찬 파도반 (Christian Padovan, 베이스) :
 
분류 : 디스코(Disco), 라틴 팝(Latin pop), 유로 댄스(Euro-Dance), 클럽 댄스(Club/Dance)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santaesmeraldamusic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인 '카보베르데(Cape Verde)' 혈통인 리로이 고메즈는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웨어햄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리로이 고메즈는 악기에도 관심을 가져 '색소폰(Saxophone)' 연주를 배우게 된다. 열네살때 자신의 첫번째 밴드를 결성하였고, 카보베르데 출신의 타바레스 형제들에 의해 결성된 디스코 그룹 '타바레스(Tavares)'와 함께 북미와 유럽을 순회하는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순회 공연 도중 프랑스 파리에서는 '엘튼 존(Elton John)'의 새음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에 수록될 곡인 'Social Disease'에 색소폰 연주를 해줄 것을 요청 받고 녹음에 참여하였다. 녹음이 끝난 후 리로이 고메즈는 계속 파리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타바레스와 결별한 후 세션 연주를 하면서 파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세션 연주 생활을 하면서 리로이 고메즈는 두 사람의 음반 제작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스튜디오 밴드 '산타 에스메랄다'를 기획한 '니콜라스 스콜스키(Nicolas Skorsky)'와 '장 마누엘 드 스카라노(Jean-Manuel de Scarano)'였다.

 

리로이 고메즈와 두 사람의 프로듀서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하다 리로이 고메즈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따라 영국의 록 그룹 '애니멀스(The Animals)'가 '니나 시몬(Nina Simone)'이 1964년에 발표했던 재즈 곡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편곡하여 1965년에 록 버전으로 발표했던 곡을 디스코 리듬으로 재편곡하여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세 사람은 스튜디오 연주자들을 모아 '산타 에스메랄다'를 결성하고 1977년 여름에 음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발표하였다. 8분 짜리 디스코 음악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발표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영화와 CF 등에 사용되는 등 오랜 기간 사랑받는 디스코의 고전으로 애청되고 있다.

 

2003년에는 영화 '킬 빌(Kill Bill)'에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사용되면서 산타 에스메랄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2010년 3월 30일 화요일

Donna Summer -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Donna Summer - She Works Hard For The Money

도나 서머 (Donna Summer) : 1948년 12월 3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Boston) 출생

 

분류 : 디스코(Disco), 일렉트로닉(Electronic), 댄스 팝(Dance-Pop),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donnasummer.com/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 도나 서머는 디스코의 시대에 팝계에 등장하여 디스코와 댄스 음악, 팝 음악 등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로인해 '디스코의 여왕(Queen of Disco)'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이다. 본명이 '라도나 애드리안 게인스(LaDonna Adrian Gaines)'인 도나 서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일곱 자녀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부모의 영향과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도나 서머는 어릴때 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십대 시절에는 사이키델릭 록 그룹 '크로우(The Crow)'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당시 밴드 멤버들 중에서 도나 서머가 유일한 흑인이었던 이유로 인해 밴드 이름을 크로우로 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여덟살때 뉴욕으로 간 도나 서머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준비 중이던 뮤지컬 '헤어(Hair)'의 독일 공연을 앞두고 실시한 오디션에 응모하여 합격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8년 부터 1969년 까지 2년 동안 독일의 뮌헨(Munich)에서 뮤지컬에 전념한 도나 서머는 이후 계속해서 유럽에 머물면서 오스트리아의 '빈 민속 오페라단(Viennese Folk Opera)' 소속으로 활동하다 독일로 돌아가 팝 밴드 '뮌헨 머신(Munich Machine)'의 멤버로 활동 하였다. 영화 배우인 '헬무트 소머(Helmut Sommer)'와 결혼한 도다 서머는 이때 부터 이름에 남편의 성인 'Sommer'를 영어식으로 바꾼 '서머(Summer)'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독일에서 뮤지컬 배우로 녹음 스튜디오의 세션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하던 도나 서머는 1971년 싱글 'Sally Go 'Round The Roses'를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팝계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데뷔 싱글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도나 서머의 성공은 훗날로 미루어져야 했다. 1974년, 도나 서머는 스튜디오에서 세션 일을 하다 제작자이자 작곡가인 '조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 와 '피트 벨로트(Pete Bellotte)'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두사람의 도움으로 네덜란드의 '그루비 레코드(Groovy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피트 벨로트가 음반의 프로듀서로 참가한 데뷔 음반 'Lady of the Night'를 1974년에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도나 서머는 음반의 수록 곡인 'The Hostage'를 유럽에서 히트시키며 디스코의 여왕을 향한 대관식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싱글 'The Hostage'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팝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네덜란드의 팝 싱글 차트에서는 2위를 차지하였다.

 

1975년 여름, 도나 서머는 조지오 모로더와 피트 벨로트와 함께 공동으로 만든 관능적 분위기의 17분 짜리 대곡 'Love to Love You Baby'가 수록된 두번째 음반 'Love to Love You Baby'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인기 스타로 주목 받게 된다. 1976년에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까지 오르게 되는 타이틀 곡은 미국에서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른 도나 서머의 곡인 동시에 디스코의 시대를 선도할 도나 서머의 전성기를 여는 첫번째 곡이었다.

 

두번째 음반 발표 이후 많은 히트 곡을 만들어 내며 디스코의 여왕으로 등극한 도나 서머는 1983년 새 음반 'She Works Hard for the Money'를 발표하여 타이틀 곡을 히트시키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히트 곡 'She Works Hard for the Money'는 도나 서머가 우연히 화장실의 변기 위에 앉아서 잠든 청소 담당 여직원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 곡이다.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Goombay Dance Band - Eldorado

 

Goombay Dance Band - Eldorado

굼베이 댄스 밴드 (Goombay Dance Band) :
올리버 벤트 (Oliver Bendt, 보컬) : 1946년 10월 29일 독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 포츠담 출생
마이클 필립스 (Michael Philips) :
웬디 워커 (Wendy Walker) : 
비버리 왈라스 (Beverlee Walas) :

 

분류 : 레게 팝(Reggae-Pop), 디스코(Disco), 댄스 팝(Dance-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oombaydanceband.net/goombay.php


독일 출신의 레게 팝 그룹 굼베이 댄스 밴드는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Sun Of Jamaica', 'Eldorado', 'Rain'등을 연속해서 히트시키며 유럽 최고의 댄스 그룹으로 각광받았었다. 밴드의 리더인 '올리버 벤트(본명: Jorg Knoch)'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배우면서 뮌휀에서 성장하였고 영화 배우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역 배우로 몇편의 독일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살펴보면 1955년에 개봉한 영화 'Konigswalzer'과 1956년에 개봉한 'Weil du arm bist, musst du fruher sterben'등이 있다.

 

'레겐스부르크 성당의 성가대(Regensburg Cathedral Choir)'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식으로 보컬 훈련을 받기 시작했으며 뮌헨의 음악 대학인 'Hochschule fur Musik und Theater Hamburg' 에 진학하여 학업을 마치게 된다. 올리버 벤트가 정식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 부터 였는데 '요르그(Jorg)'라는 이름으로 1968년 까지 총 넉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였다. 솔로로 활동하던 올리버 벤트는 카리브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3년 정도의 시간을 '세인트루시아(St. Lucia)' 섬에 머물며 아내인 '알리시아(Alicia Bendt)'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올리버 벤트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지역의 '소카(Soka: 소올과 칼립소가 융합된 음악의 일종)'와 서양의 팝 음악을 접목하여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만들 결심을 굳히게 된다.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St. Lucia)' 섬에 있는 작은 만의 이름인 'Goombay'를 딴 '굼베이 댄스 밴드'는 이렇게 하여 1979년에 탄생하게 되었다.

 

'보니 엠(Boney M)'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는 굼베이 댄스 밴드는 독일로 돌아온 올리버 벤트가 1979년에 '마이클 필립스',와 '웬디 워커', 그리고 '비버리 왈라스'를 규합하여 결성한 보컬 밴드로 데뷔 첫해인 1979년에 발표한 싱글인 'Sun of Jamaica'가 1980년에 '남아공(South Africa)'과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히트를 하였고, 이에 유럽 각국의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점령하며 레게 팝의 열풍을 몰고 오게 된다.

 

이어서 발표한 'Ring Ting Ting', 'Aloha-Oe'. 'Eldorado'등의 싱글을 계속해서 히트시킨 굼베이 댄스 밴드는 1980년에 데뷔 음반 'Land Of Gold'를 발표하여 인기를 재확인 하였다.

 

데뷔 음반은 'Moonlight Flower'라는 곡과 프로젝트 그룹 '이니그마(Enigma)'로 유명한 '마이클 크레투(Michael Cretu)'가 키보드 연주를 담당해 주었으며 나머지 파트도 밴드의 멤버들이 아닌 스튜디오 세션 뮤지션들이 담당하였다.

 

한국에서도 굼베이 댄스 밴드는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Sun Of Jamaica'를 비롯하여 'Rain', 'Seven Tears'등이 히트를 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Eldorado'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굼베이 댄스 밴드를 대표하는 곡인 동시에 디스코텍과 롤러 스케이트장의 스피커를 점령했었던 곡이었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

1970년대 중반 도나 섬머(Donna Summmer)와 함께 디스코의 여왕 자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글로리아 게이너(본명 : Gloria Fowles)는 1949년 9월 7일, 미국 뉴저지 주(New Jersey) 뉴어크(Newark)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글로리아는 사라 본(Sarah Vaughan)이나 냇 킹 콜(Nat King Cole)등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고교 졸업 후 경리직원으로 취직하여 일을 하다가 캐나다로 훌쩍 날아가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뉴저지로 돌아온 글로리아는 어느 날 밤 Soul Satisfiers 라는 이름의 재즈 팝 밴드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된다.

 

이때의 인연으로 글로리아와 밴드는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함께 공연을 하며 호흡을 맞추게 된다. 글로리아가 열아홉이 되던 해인 1968년에는 처음으로 음반 계약을 맺고 싱글 음반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Soul Satisfiers 와 헤어진 글로리아는 뉴욕으로 옮겨와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클럽 무대를 순회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되고 1973년에는 MGM Records 와 계약하여 메이저 데뷔 싱글 음반 Honey Bee 를 발표하여 디스코 클럽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된다. 1975년에는 음반 Never Can Say Goodbye 를 발표하여 디스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데,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디스코 클럽의 DJ 들의 단체인 'DJ 연합'이 자체 심사하여 선정한 디스코의 여왕에 선정되는 영예를 함께 누리게 된다.

 

이 음반의 타이틀 곡인 Never Can Say Goodbye 는 잭슨 파이브(Jackson 5)가 불렀던 곡을 디스코 풍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빌보드 차트에 새롭게 신설된 'Disco Action Charts'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싱글 차트에서는 4위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에는 앨범 Love Tracks 를 발매하여 수록 곡인 I Will Survive 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처음으로 올려 놓게 되며 1980년에 열린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에서 최우수 디스코 레코딩(Best Disco Recording) 부분 수상을 하게 된다. I Will Survive 는 한국에서 '진주'라는 가수에 의해 난 괜찮아 라는 곡으로 번안되어 불려지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2009년 7월 16일 목요일

KC & The Sunshine Band - (Shake, Shake, Shake) Shake Your Booty


KC & The Sunshine Band - (Shake, Shake, Shake) Shake Your Booty

디스코 음악의 제왕 Bee Gees 로 부터 1970년대 중반에 권좌를 물려받은 마이애미 사운드(Miami Sound : 펑키 리듬의 댄스 음악)의 대표주자인 KC & The Sunshine Band 는 밴드 이름보다 '쉑쉑쉑'이라는 유행어로 더 많이 알려진 그룹이다.

그룹의 결성은 1972년에 음반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며 파트 타임으로 마이애미 인근의 TK Records 에서 일하던 Harry Wayne Casey (KC, 해리 웨인 케이시) 가 TK Records 에서 세션 일을 하고 있던 베이스 주자 리차드 핀치(Richard Finch)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TK Records 소속의 기타리스트인 제롬 스미스(Jerome Smith)와 드러머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을 영입하여 1973년에 KC & The Sunshine Band 를 출범시킨다.

1973년 9월 Blow Your Whistle을 데뷔 싱글로 발표하여 R&B 차트 27위에 랭크시키며 팝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은 이듬해인 1974년에 발표한 싱글 Sound Your Funky Horn을 R&B 차트 21위에 랭크시키며 데뷔 싱글에 이어서 소폭의 히트를 이어나가게 된다.

두장의 싱글이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자 그룹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로 하고 1974년에 데뷔 앨범 Do It Good 을 발표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발췌된 싱글 Queen of Clubs 가 영국에서 탑텐에 진입하며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고, 이에 그룹은 유럽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1974년 중반에는 KC 와 리차드 핀치가 작곡하고 프로듀서 하여 조지 맥크래(George McCrae)에게 준 Rock Your Baby 라는 곡이 미국에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것과 동시에 전유럽에서 히트 행진을 이어가며 1천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975년에 두번째 앨범 KC & The Sunshine Band 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Get Down Tonight 이 4월에 R&B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8월에는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에 오르게 된다. 11월에는 That's the Way (I Like It)을 차트 정상에 올려 놓으며 KC & The Sunshine Band 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에 발표한 음반 Part 3 는 KC & The Sunshine Band 인기를 최고 정점으로 끌어 올리게 되는데 차트 정상을 차지 했던 두곡 (Shake, Shake, Shake) Shake Your Booty 와 I'm Your Boogie Man 을 비롯하여 Keep It Comin' Love 를 싱글 차트 2위에 올려 놓으며 명실공히 디스코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Shake, Shake, Shake) Shake Your Booty 는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어모았던 곡으로 고고장과 디스코텍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대표적인 곡으로 자리했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