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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8일 화요일

Ben E. King - Stand By Me

 

Ben E. King - Stand By Me

칠십이년전 오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 핸더슨(Henderson)에서 태어나 뉴욕시 맨해튼(Manhattan) 섬의 북동쪽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흑인 거주 구역인 할렘(Harlem)에서 성장한 '벤 이 킹(본명: Benjamin Earl Nelson)'은 낭만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소울 가수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밴 이 킹이 1961년 5월 8일에 발표했던 싱글 'Stand By Me'는 우리나라에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오래되었지만 좋은 것)' 애청 곡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현재까지 식지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벤 이 킹은 교회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던 어린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학교 친구들과 '비스(The Four B's)'라는 이름의 밴드를 처음으로 결성하였다. 고교 시절의 밴드 활동이 그에게 프로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게 했는데 벤 이 킹은 고교 졸업 후인 1958년에 '파이브 크라운스(The Five Crowns)'라는 이름의 두왑(Doo-wop: 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 형식의 합창) 밴드에 가입하면서 부터 본격적인 프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파이브 크라운스는 1952년의 데뷔 싱글 'A Star/You're My Inspiration'을 시작으로 벤 이 킹이 가입할 무렵 까지 열장 정도의 싱글을 발표했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던 무명의 밴드였다. 하지만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두왑 밴드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매니저가 벤 이 킹을 포함한 파이브 크라운스의 멤버 전원을 새로 고용하고 기존의 드리퍼트스 멤버들을 해고하면서 새로운 드리프터스가 탄생하게 된다.

새로운 드리프터스의 첫 싱글은 'There Goes My Baby'로 1959년 5월에 발표되었다. 벤 이 킹이 만든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는 히트를 하였는데 이로인해 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던 벤 이 킹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데뷔 싱글의 성공 이후 'Dance with Me'와 'This Magic Moment'등의 곡을 연속으로 히트시킨 드리퍼터스는 1960년에 싱글 'Save the Last Dance for Me'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싱글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히트를 하게 된다. 이때 부터 드리퍼터스의 명성은 세계 무대로 퍼져나가게 된다.

밴드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벤 이 킹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는데 이에 벤 이킹은 밴드 활동외에 솔로 활동을 준비하여 1961년에 음반 'Spanish Harlem'을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도 데뷔하였다. 데뷔 음반의 타이틀 곡인 'Spanish Harlem'은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였고 10위 까지 진출하면서 벤 이 킹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솔로로 'Spanish Harlem'을 히트시킨 벤 이 킹은 1961년 5월 8일에 새로운 싱글 'Stand By Me'를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시키면서 솔로 가수로써도 확실한 명성을 누리게 된다. 벤 이 킹이라는 가수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히트 곡 'Stand By Me'는 아무리 힘든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당신이 내곁에 있다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내용의 곡으로 벤 이 킹이 1962년에 발표했던 세번째 음반 'Don't Play That Song'에 수록되었다.

벤 이 킹 (Ben E. King) :1938년 9월 2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갈래 : 소울(Soul), 리듬앤드블루스(Rhythm and Blues, R&B),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beneking.info/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A-zYd5_xrj8


2010년 9월 13일 월요일

Bill Withers - Lean On Me

 

Bill Withers - Lean On M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빌 위더스'는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주의 작은 석탄 광산 마을인 슬랩포크(Slab Fork)에서 여섯명의 자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빌 워더스가 열세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탈출구로 택한 것이 군입대였다. 열일곱살에 미해군에 입대한 빌 워더스는 9년간의 군 복무를 하게 되는데 군 복무 당시에 쉬는 시간이면 전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가 시간을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가 시간을 즐기던 빌 위더스는 점점 더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음악 경력의 첫번째 걸음을 내딛게 된다.

1965년 군에서 제대한 빌 위더스는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에 도전해보기 위해 1967년에 로스앤젤레스로 가게 된다. 로스앤젤레스로 온 빌 위더스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을 시작하는 한편으로 출연료로 받은 돈을 모아 자비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된다. 데모 테이프 제작 당시 나이트클럽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와츠 원헌드레드서드 스트리트 리듬 밴드(The Watts 103rd Street Rhythm Band)'의 멤버인 트럼본 주자 '레이 잭슨(Ray Jackson)'이 키보드와 편곡을 담당해주었다.

레이 잭슨은 데모 테이프가 완성되자 '서섹스 음반사(Sussex Records)' 설립자인 클레런스 아반트(Clarence Avant)와 인연이 있던 포레스트 해밀턴(Forrest Hamilton)에게 데모 테이프를 건네주어 들어볼 것을 권유하였고 데모 테이프는 포레스트 해밀턴의 손을 거쳐 클레런스 아반트에게 전달이 되면서 1970년에 음반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다. 클레런스 아반트는 빌 위더스의 데뷔 음반 제작을 작곡가 겸 다중 악기 주자인 '부커 티 존스(Booker T. Jones)'에게 배정하여 음반 녹음 작업을 시작하게 하였다.

하지만 빌 위더스의 데뷔 음반 녹음은 중도에 음반사의 자금 압박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육개월만에 완성되어 1971년에 'Just as I Am'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시(Crosby, Stills & Nash)'의 '스티븐 스틸스(Stephen Stills)'가 기타를 담당한 이 음반에서 첫 싱글로 발표된 곡은 'Ain't No Sunshine'으로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위 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데뷔 싱글이 히트를 하게 되자 빌 위더스는 와츠 원헌드레드서드 스트리트 리듬 밴드를 대동하고 순회 공연 길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알 그린(Al Green)'을 비롯해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커버되며 사랑받게 되는 'Ain't No Sunshine'으로 빌 위더스는 1972년 3월 14일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리듬앤드블루스 곡(Best Rhythm and Blues Song)'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데뷔 음반으로 그래미의 영예를 안은 빌 위더스는 두번째 음반 녹음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1972년 5월에 두번째 음반 'Still Bill'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 35위에 진출시켰던 빌 위더스는 두번째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시키는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음반에는 2007년에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유명한 곡 'Lean On Me'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곡인 'Lean On Me'는 당신이 힘들때 내가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내용의 곡으로 싱글로도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와 빌보드 R&B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히트하였고 뒤 이어서 발매된 싱글 'Use Me'는 빌보드 싱글 차트와 빌보드 R&B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그렇지만 'Use Me' 이후에 발표한 싱글들은 탑텐에 진출하지 못하였고 발표 음반들도 두번째 음반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빌 위더스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팬들을 만족시켜 나갔으며 1981년에는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의 곡 'Just the Two of Us'에서 보컬을 담당하여 다시 한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했던 'Just the Two of Us'는 우리나라에서도 '스무드 재즈(Smooth Jazz: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재즈)' 곡 중의 하나로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곡이기도 하다.

빌 위더스 (Bill Withers) : 1938년 7월 4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출생

갈래 : 소울(Soul), 리듬앤드블루스(Rhythm and Blues, R&B)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billwithersmusic.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2Wpof8s5ZTg

2010년 9월 9일 목요일

Timi Yuro - Hurt

 

Timi Yuro - Hurt

1960년대 미국 최고의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 1960년대에 탄생한 백인 가수들이 연주하는 흑인 소울 음악으로 화이트 소울, 팝 소울이라고도 함) 가수로 사랑받았던 '티미 유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본명이 '로즈메리 티모시 유로(Rosemary Timothy Yuro)'인 그녀는 어릴때 부터 타고난 재질을 발휘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이는 그녀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이었다.

어린 티미 유로의 재능을 발견한 그녀의 할머니는 어린 티미 유로가 장래에 유명한 성악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프라노 발성 훈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티미 유로의 조부모와 부모는 미국으로 건너와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가수들을 무대에 출연시키고 있었는데 어린 티미 유로를 보살펴 주던 유모도 그런 가수 중의 하나로 그녀는 레스토랑 지하에서 그녀의 남편과 함께 기거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티미 유로는 어느날 그런 유모의 손을 잡고 흑인 블루스 클럽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재즈 가수인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과 '밀드레드 베일리(Mildred Bailey)'의 노래를 듣고 엄청난 감동을 받게 된다. 이날 밤의 일은 티미 유로의 오페라 음악을 향한 관심이 가스펠과 재즈 음악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티미 유로의 가족은 1952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여 새롭게 식당을 열었으며 티미 유로는 로스앤젤레스의 '페어팩스 고등학교(Fairfax High School)'에 진학하게 된다.

고교 재학 당시 친구들은 그녀의 중간 이름 티모시(Timothy)로 그녀를 부르고는 했는데 어느날 부터 티미라는 줄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티미 유로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티미 유로는 학교의 합창단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그녀와 함께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인물 중에는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포함되어 있었다. 티미 유로는 열여섯살때 학교를 그만두고 이탈리아인 남자 친구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 도피 행각은 육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 티미 유로는 피자 가게에서 일을 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이때 부터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품게 된다. 부모 몰래 나이트 클럽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던 티미 유로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59년이었다. 신인 가수 발굴을 위해 '리버티 음반사(Liberty Records)'에서 파견한 가수 발탁 담당자가 나이트 클럽을 다니며 새 얼굴을 찾던 중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티미 유로를 발견하고 음반사에 그녀를 추천하였던 것이다.

리버티와 계약한 티미 유로는 미국 가수 '로이 해밀턴(Roy Hamilton)'이 1954년에 발표하여 R&B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며 히트시켰던 곡 'Hurt'를 커버하여 1961년에 데뷔 싱글로 발표하였다. 티미 유로의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보컬이 너무도 호소력있게 다가드는 곡인 'Hurt'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며 새로운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의 탄생을 전 미국에 알리게 된다.

다이나 워싱턴에게 영향 받은 재즈 보컬 형식을 추구하는 티미 유로는 데뷔 싱글 발표 이후 'I Apologize(1961년, 72위)', 'Smile(1961년, 42위)', 'She Really Loves You(1961년, 93위)', 'Let Me Call You Sweetheart(1962년, 66위)', 'What's a Matter Baby (Is It Hurting You)(1962년, 12위)', 'The Love of a Boy(1962년, 44위)', 'Insult to Injury(1963년, 81위)', 'Make the World Go Away(1963년, 24위)' 등을 연속해서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2년에 발표된 티미 유로의 베스트 음반 'Hurt: The Best of Timi Yuro'는 앞서 언급한 히트 곡외에도 그녀의 전성기 시절에 발표되었던 싱글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2004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를 추억하기에 적당한 음반이기도 하다. 호소력이라는 말이 음악과 어떻게 결부되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티미 유로가 부르는 노래 한 곡을 들어 보기를 권한다.

티미 유로 (Timi Yuro) : 1940년 8월 4일 미국 시카고 출생, 2004년 3월 30일 사망

갈래 : 소울(Soul),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imi-yuro.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5CoPNSIogbg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Percy Sledge - When A Man Loves A Woman

Percy Sledge - When A Man Loves A Woman

미국의 앨라배마주 레이튼(Leighton)에서 태어난 R&B 가수 퍼시 슬레지는 1966년에 발표하여 히트시킨 곡 'When A Man Loves A Woman'으로 유명해졌다. 앨라배마주 콜버트카운티(Colbert County)의 세필드(Sheffield)의 한 병원에서 잡역부(Blue-collar)로 일하던 퍼시 슬레지는 어릴적 소망이었던 성공한 가수로써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에스콰이어 콤보(The Esquires Combo)'라는 이름의 소울 보컬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가 1960년 경이었는데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순회 공연을 다니는 두가지 일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1965년의 어느 날, 퍼시 슬레지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 입원하여 있던 환자 한명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환자가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퍼시 슬레지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친구를 퍼시 슬레지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 환자의 친구가 바로 테네시(Tennessee)주 멤피스(Memphis)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던 라디오 방송국 'WMPS'에서 DJ 를 하던 '퀸 아이비(Quin Ivy)'라는 사람이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을 틀어주던 퀸 아이비는 자신이 직접 음반 제작 사업에 뛰어 들기 위해 1964년 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드디어 1965년에 자신의 녹음실인 '퀸비 녹음실(Quinvy Recording Studio)'을 열게 되었고 음반 제작을 위한 가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친구에게 퍼시 슬레지를 소개받은 퀸 아이비는 오디션을 거쳐 그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되었으며 퍼시 슬레지는 1966년 4월 16일에 싱글 'When a Man Loves a Woman'을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스푸너 올덤(Spooner Oldham, 오르간)', '말린 그린(Marlin Greene, 기타)', '앨버트 로우(Albert "Junior" Lowe, 베이스)', '로저 호킨스(Roger Hawkins, 드럼)'가 연주자(Sideman)로 참여한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와 R&B 차트(Billboard Hot R&B)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퍼시 슬레지의 이름을 미국 전역에 알리게 된다.

'When a Man Loves a Woman'은 1965년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퍼시 슬레지가 만든 곡인데 싱글로 발표하면서 곡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캘빈 루이스(Calvin Lewis)'와 '앤드루 라이트(Andrew Wright)'를 곡의 작곡자로 표기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롤링 스톤지(Rolling Stone magazine)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 선정되기도 하였던 'When a Man Loves a Woman'은 1991년에 미국 가수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에 의해 커버되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당시 마이클 볼튼이 거의 완벽하게 퍼시 슬레지의 곡을 커버하여 히트시키자 퍼시 슬레지의 부인이 마이클 볼튼에게 남편의 노래를 잘 불러주어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 한때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던 'When a Man Loves a Woman'은  우리나라에서도 광고와 드라마의 배경 음악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퍼시 슬레지 (Percy Sledge) : 1940년 11월 25일 미국 앨라배마주 출생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 소울(Soul)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psledge.com/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Prince - Purple Rain

 

Prince - Purple Rain

프린스 (Prince Rogers Nelson) : 1958년 6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생

갈래 :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R&B),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discogs.com/artist/Princ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프린스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깨트리는 실험적인 음악과 선정성을 결합하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93년에 접어 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자신의 이름인 프린스 대신에 '예전에 프린스로 불렸던 아티스트(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줄여서 'TAFKAP'라고 표기하였던 이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표시하는 기호를 조합해 만든 상징으로 표시하여 '심볼(Symbol)'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The Artist'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행동을 곧잘 보여주는 프린스는 자신의 음악에도 이런 점들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이자 섹스 심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존 루이스 넬슨(John Lewis Nelson)'과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 '마티 쇼(Mattie Shaw)' 사이에서 태어난 프린스는 열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되자 어린 프린스는 이웃의 앤더슨(Anderson)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아들인 안드레 앤더슨(Andre Anderson)이 프린스 자신 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안드레 앤더슨은 '안드레 사이먼(Andre Cymone)'으로 알려진 미국의 베이스 주자이자 음반 제작자로 어린 시절 프린스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린스와 안드레 앤더슨은 '미니애폴리스 샌트럴 고등 학교(Minneapolis Central High School)' 재학 시절 프린스의 사촌인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와 함께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 그랜드 센트럴은 프린스가 피아노와 기타를 담당했으며 안드레 앤더슨이 베이스를 그리고 찰스 스미스는 드럼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프린스의 어머니로 부터 연주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였고 파티 행사와 클럽들을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랜드 센트럴은 후일 '샴페인(Champagne)'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게 되는데 당시 밴드가 추구하던 음악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등의 연주자들에게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1976년 프린스는 음반 제작자인 '크리스 문(Chris Moon)'의 미니애폴리스 녹음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음반 계약을 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을 느낀 크리스 문이 데모 테이프를 '오웬 허즈니(Owen Husney)'에게 판매하고 오웬 허즈니의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도와 주었다. 열여덟살의 나이로 전속 계약을 한 프린스는 곧장 녹음실로 들어가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지(David Z)'의 지휘 아래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를 비롯하여 A&M 과 컬럼비아(Columbia Records)에 보내져 음반 계약을 추진하였고 최종적으로 워너 브라더스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여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오웬 허즈니와 프린스는 데뷔 음반 녹음을 위해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한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Record Plant Studios)'로 가서 1977년 10월 부터 12월 까지 음반 녹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1978년 4월 7일 발표된 프린스의 데뷔 음반 'For You'는 빌보드 앨범 차트 163위에 오르는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미국내에서 43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첫번째 싱글 'Soft and Wet'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2주간 머물며 92위 까지 올랐다. 1979년 1월 프린스는 안드레 사이먼과 함께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The Revolution)'을 결성하여 순회 공연을 했으며 10월에는 두번째 음반 'Prince'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소울 차트(Hot Soul Singles)에서는 1위를 차지하자 음반 역시 순항을 거듭하여 앨범 차트에서 22위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음반 판매고 역시 백만장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이며 프린스를 새로운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1984년 프린스는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과 함께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Prince and The Revolution)'의 이름으로 프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Purple Rai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 'Purple Rain'마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반 'Purple Rain'은 'Let's Go Crazy'와 'When Doves Cry'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았고, 음반 타이틀 트랙인 명곡 'Purple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까지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다.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Purple Rain'의 히트로 말미암아 프린스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팬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Chubby Checker - Let's Twist Again

 

Chubby Checker - Let's Twist Again

처비 체커 (Chubby Checker) : 1941년 10월 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프링걸리 출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리듬 앤 블루스(R&B)
공식 웹 사이트 : http://chubbychecker.com/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인 처비 체커는 1960년대 초반 '트위스트(Twist)'의 열풍을 전세계로 전파한 주인공이다. 본명이 '어니스트 에반스(Ernest Evans)'인 처비 체커는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주의 스프링걸리(Spring Gulley) 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주 사우스필라델피아(South Philadelphia)에서 성장하였다. 처비 체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당시 흑인 꼬마 피아노 신동으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던 '슈거 칠리 로빈슨(Sugar Chile Robinson)'의 공연과 텍사스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컨트리 가수 '어니스트 텁(Ernest Tubb)'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이 당시 공연을 보고 받은 감동은 어린 처비 체커에게 인생 행로를 결정짓게 하는 작은 불씨로 남아 그의 가슴 속에서 조금씩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으며 열한살이 되던 무렵에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보컬 그룹에 합류하여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다. 고등학교(South Philadelphia High School)에 진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처비 체커는 학교 친구들과 노래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가다듬었고 방과후에는 농산물 시장 인근의 양계장에서 일을 하는 등의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처비 체커는 양계장에서 일을 하면서 자주 노래와 우스갯 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돋우고는 하였는데, 이 모습을 지켜 본 양계장 주인인 '헨리 콜트(Henry Colt)'가 그에게 '처비(Chubby)'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카메오 파크웨이 음반사(Cameo-Parkway Records)'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던 자신의 친구인 '칼 만(Karl Mann)'에게 추천하여 음반 계약을 성사시켜 주었다.

 

데뷔 싱글 발표 이전 미국 ABC 방송국의 음악 쇼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밴드스탠드(American Bandstand)'에 출연한 처비 체커의 모습을 지켜 본 방송 진행자 '딕 클라크(Dick Clark)'는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처비 체커가 가진 잠재력을 간파하고 카메오 파크웨이 음반사에 처비 체커의 음반 발매를 서둘러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당시 무대에서 본명을 사용했던 처비 체커는 딕 클라크의 아내가 처비라는 예명과 본명인 에반스 대신 만든 체커라는 이름을 조합하여 만들어준 이름인 처비 체커라는 이름으로 데뷔 싱글을 준비하게 된다.

 

1959년 초, 데뷔 싱글 'The Class'를 발표하여 싱글 차트 38위를 기록한 처비 체커는 1960년 7월 두번째 싱글 'The Twist'를 발표하면서 부터 트위스트 열풍을 주도하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정상을 차지한 'The Twist'는 미국 가수 '행크 발라드(Hank Ballard)'가 1959년에 발표했던 싱글을 커버한 것으로 처비 체커에 의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다.

 

트위스트의 열풍으로 시작된 처비 체커의 인기는 해가 바뀌면서도 식지 않았고 1961년 1월에 발표한 싱글 'Pony Time'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여전한 인기를 증명하였다. 또한 이 노래의 히트는 '포니(Pony)'라는 이름의 새로운 춤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1961년 6월, 처비 체커는 또 다른 트위스트 곡인 'Let's Twist Again'을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올려놓게 된다.

 

이 곡은 1960년에 이어 1962년에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빌보드 역사상 진귀한 기록을 남긴 'The Twist'에 비해 미국에서의 인기도는 낮았지만 한국에서는 처비 체커의 대표 곡으로 여겨지며 오랜 기간 동안 변함 없이 사랑받는 애청 곡으로 남게 된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Silver Convention - Fly Robin Fly

실버 컨벤션 (Silver Convention) :
린다 톰슨 (Linda Thompson, 보컬) :
라모나 울프 (Ramona Wolf, 보컬) :
페니 맥클레인 (Penny McLean, 보컬) :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B), 디스코(Disco), 소울(Soul)
관련 웹 사이트 : http://surf.to/ramonawulf


독일에서 결성된 걸 그룹 '실버 컨벤션'은 1975년에 발표한 싱글 'Fly Robin Fly'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디스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음악 팬들에게 인식시킨 스튜디오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체코의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나 독일 뮌휀에서 성장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헝가리 출신으로 유고슬리비아에서 미국의 팝 음악을 즐겨 들으며 성장한 '실베스터 리베이(Sylvester Levay)'는 독일에서 음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다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며 걸 그룹을 만들기 위한 기획에 들어가게 된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세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세 사람을 선발하여 트리오 걸 그룹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하고 실베스터 리베이의 이름을 따서 '실버 컨벤션'을 출범시킨다.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리베이의 지도로 데뷔 준비를 마친 실버 컨벤션은 1974년에 싱글 'Always Another Girl'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소폭의 히트에 그친 데뷔 싱글의 뒤를 이어 발매한 두번째 싱글은 1975년에 발표한 'Fly Robin Fly'였다.

 

'Fly, Robin, Up, To, The, Sky'라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여섯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가사의 'Fly Robin Fly'는 1975년 11월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주간 1위에 머물며 앞으로 몰려올 유럽 디스코 음악의 거센 물결을 예고하게 된다. 기발한 가사로 만들어진 초기 디스코 음악의 대표 곡인 'Fly Robin Fly'는 처음에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다가 녹음하기 직전에 'Fly Robin Fly'으로 바뀐 곡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Run Rabbit Run'이라는 제목에서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면 아마도 걸 그룹의 팬임이 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