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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9일 토요일

John Lennon - Imagine

 

John Lennon - Imagine

70년전 오늘, 바다 건너 영국 리버풀(Liverpool)의 노동자 집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20년후 로큰롤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며 수많은 팬을 가지게 되는 밴드인 비틀즈(The Beatles)를 결성하게 되는 존 레논이었다. 존 레논은 부모의 이혼으로 두살때 부터 이모에 의해서 키워졌으며 고교 시절에 첫번째 밴드인 쿼리맨(The Quarrymen)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밴드의 이름인 쿼리맨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인 쿼리 뱅크 고등학교(Quarry Bank High School)에서 따온 것이었다.

스키플(Skiffle: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 밴드였던 쿼리맨의 활동을 통해 존 레논은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를 만나게 되는데 쿼리맨의 두번째 공연장에서 였다. 이때가 1957년으로 이 만남 이후 폴 맥카트니가 쿼리맨에 가입하게 되고 이 밴드는 후일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발전하여 전세계의 팝팬들을 사로잡게 된다. 한편 존 레논은 폴 맥카트니를 만난 이듬해에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어야 했다.

1960년에 결성되어 전세계를 비틀즈 열풍으로 몰아 넣었던 영국 록 밴드 비틀즈는 1970년에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식 해산하게 된다. 비틀즈의 해산 이전 부터 솔로 활동을 준비했던 존 레논은 비틀즈가 막 해산할 무렵에 아내인 '오노 요코(Yoko Ono)'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와 함께 솔로 음반 'John Lennon/Plastic Ono Band'를 발표하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처음 만난 것은 1966년 런던의 한 화랑에서 였다. 전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전시회를 존 레논이 찾으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존 레논은 이후 오노 요코의 전시회를 후원하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1968년 5월의 어느 날 밤 만들어진 테이프로 만들어진 음반이 바로 두사람이 누드로 표지에 등장하는 'Two Virgins'였다. 1968년 11월에 발표되었던 이 음반의 표지에 등장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전신 누드 사진은 존 레논의 자동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Two Virgins' 음반이 발표될 즈음 존 레논은 아내였던 신시아 레논(nthia Lennon)과 이혼하였으며 1969년 3월 20일에 오노 요코와 재혼하였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의 결혼 이후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 존 레논의 두번째 솔로 음반 'Imagine'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오노 요코가 제작을 담당한 음반 'Imagine'은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기록적인 면 외에도 오랜 기간 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타이틀 곡 'Imagine'으로 더욱 유명하다.

1971년 9월 9일에 발표된 음반 'Imagine'에는 무정부주의적인 발상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곡 'Imagine'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존 레논이 뉴욕 힐튼 호텔에 머무른 뒤 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 갑자기 머리 속으로 파고 든 생각을 급히 메모지에 옮겨 적어 두었다가 만들어진 곡으로 존 레논의 사상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Imagine'외에도 존 레논의 사후에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이 커버하여 히트시켰던 곡 'Jealous Guy'와 반전 곡인 'I Don't Wanna Be A Soldier Mama', 서정적인 곡 'Oh My Love'등을 수록하여 평화를 외치는 존 레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존 레논 (John Lennon) : 1940년 10월 9일 영국 리버풀 출생, 1980년 12월 8일 사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앨범 록(Album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ohnlennon.com/
Imagine 감상하기 : http://youtu.be/okd3hLlvvLw

2010년 8월 16일 월요일

Elvis Presley - Heartbreak Hotel

 

Elvis Presley - Heartbreak Hotel

자동차 판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신혼부부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뜻 선물했던 사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두말 없이 선뜻 입대하여 2년간의 보병 근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사람,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금을 기부하여 불우한 이웃을 도와 주었던 사람, 이러한 모든 일화의 주인공이 33년전 오늘 팬들의 과도한 기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에 빠져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던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 and Roll)'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줄여서 '제왕(The King)'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리는 엘비스프레슬리는 일명 숏건 하우스(Shotgun House)로 불리는 방 두개 짜리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주택에서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 보다 35분 먼저 태어났던 그의 형은 태어나자 마자 바로 숨을 거두어 엘비스 프레슬리는 외아들로 성장하게 된다. 수표 위조로 감옥에 갔다 온 아버지와 정부에서 배급하는 식량으로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를 둔 가난한 백인 부부의 아들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부모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 성가대의 합창을 들으며 음악적 영감을 키워 나가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던 것은 열살때인 1945년 10월 3일에 유제품 회사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던 장기 자랑 대회였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는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가수 '레드 폴리(Red Foley)'의 컨트리 곡 'Old Shep'을 불렀었는데 키가 작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게 하기 위해 의자 위에 서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는데 늘 그와 함께 하는 것은 어머니가 사준 기타와 '힐빌리 음악(Hillbilly Music: 컨트리 음악의 원형으로 남부 산악 지대의 향토색이 풍부한 민요조의 음악)'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부모는 1948년 11월 좀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엘비스를 데리고 테네시주 멤피스로 이사를 하게 되지만 빈민가로 이사한 그들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흄스 고등학교(Humes High School)'에 진학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스펠과 블루스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었고 1953년 6월 고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에는 장래에 반드시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담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럭 운전사로 일을 하고 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3년 8월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 음반사(Sun Records)'를 방문하였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가 선 음반사를 방문해 자비로 음반 제작을 하게 되었던 명목상의 이유는 어머니의 생신 선물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음반사에서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 음반사에서 만난 여직원이 엘비스에게 질문했던 '어떤 가수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세요?' 라는 말에 엘비스가 '나는 어떤 가수와도 비슷하지 않은 나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라는 말로 대답했다는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이 당시에 엘비스는 'My Happiness'와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을 녹음하여 한장의 음반에 담아 집으로 들고 갔었다.

1954년 1월에 두번째로 선 음반사에서 'I'll Never Stand In Your Way'와 'It Wouldn't Be the Same Without You'를 불러 음반으로 만든 엘비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 음반사의 사장인 '샘 필립스(Sam Phillps)'에 의해 발탁되어 1954년 7월 5일에 첫번째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음반 제작을 위한 사전 연습을 겸한 세션이 진행된 이날, 밤 늦게 까지 진행된 연습 과정에서 '아서 크러덥(Arthur Crudup)'이라는 흑인 블루스 가수의 곡 'That's All Right'을 엘비스가 기타를 연주하며 불렀는데 이 모습을 본 샘 필립스가 이 곡을 녹음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음반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른바 제왕의 탄생 순간이었다.

음반 제작이 끝난 3일 후 멤피스 지역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한 'That's All Right'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팬을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으게 된다. 신청 곡 엽서가 쇄도하였던 것이다. 'That's All Right'의 성공으로 엘비스는 공연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새롭게 출현한 아이돌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십대들로 공연장은 연일 가득차게 된다. 엘비스에게 열광하는 십대들의 모습과 엘비스의 상품 가치를 파악한 'RCA 음반사'에서는 선 음반사에 거액을 주고 엘비스를 스카웃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955년 8월에 만난 매니저 '톰 파커(Tom Parker)'가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내슈빌(Nashville)'의 RCA 녹음실에서 1956년 1월 10일에 첫번째 싱글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날 만든 싱글이 바로 'Heartbreak Hotel/I Was the One'이었다. 'Heartbreak Hotel'은 1월 27일에 싱글로 발매되어 1956년 3월 3일 빌보드 싱글 차트에 68위로 진입하였고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는 9위로 진입하였다. 차트에 진입한지 두달 후 'Heartbreak Hotel'은 빌보드 싱글 차트와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하여 제왕의 신화가 시작됨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
본명 :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 (Elvis Aron Presley)
출생 :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Mississippi)주 투펄로(Tupelo)
사망 : 1977년 8월 16일 미국 테네시(Tennessee)주 멤피스(Memphis)

갈래 : 로커빌리(Rockabilly),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lvis.com/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비틀즈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영국의 위대한 밴드 롤링 스톤스는 1962년에 결성되었다. 1950년대에 영국 켄트(Kent)주 다트포드(Dartford)의 웬트워스 초등학교(Wentworth Primary School)에는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이후 두사람은 성장하면서 각자가 정한 진로에 따라 키스 리처드는 '시드컵 예술 대학(Sidcup Art College)'에 입학하여 런던으로 떠났고 믹 재거도 '런던 정경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입학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다.

두사람은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며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고향의 다트포드 기차역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 항로에 들어서게 된다. 기타 연주를 좋아했던 키스 리처드는 자신의 공책에 '척 베리(Chuck Berry)'나 블루스 명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같은 연주자들의 노래 악보를 적어 가지고 다녔는데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만난 고향 친구인 믹 재거에게 이 공책을 보여주게 되었다.

당시 믹 재거는 런던 정경 대학에서 친구인 '딕 테일러(Dick Taylor)'와 함께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Little Boy Blue and the Blue Boy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키스 리처드의 공책을 통해 악보들을 보는 순간 믹 재거는 어떤 영감을 느끼게 되어 키스 리처드에게 자신의 밴드에 합류하여 블루스 지향의 음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라는 이름 아래 뭉치게 된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블루스 연주자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가 결성한 밴드인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의 공연을 구경 갔다가 알렉시스 코너의 친구인 브라이언 존스를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존스는 친구인 알렉시스 코너의 밴드에서 보조 연주자로 기타 연주를 해주고 있었는데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를 만나게 되면서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에 합류하게 된다.

또한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에는 장래에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 되는 이언 스튜어트(Ian Stewart)와 찰리 왓츠가 멤버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였다. 1962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브라이언 존스, 이언 스튜어트, 딕 테일러, 토니 채프먼(Tony Chapman, 드럼)을 멤버로 한 밴드를 출범시키게 되는데, 밴드의 이름은 브라이언 존스가 머디 워터스의 음반에서 얼핏 보았던 수록 곡 'Rollin' Stone'에서 가져온 '롤링 스톤스(The Rollin' Stones)'로 정하게 된다.

1962년 7월 12일, 런던의 유명한 음악 클럽인 '마키 클럽(Marquee Club)'에서 데뷔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에 '앤드루 루그 올덤(Andrew Loog Oldham)'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앤드루 루그 올덤의 노력으로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계약하게 된 롤링 스톤스는 앤드루 루그 올덤의 의견에 따라 밴드 이름의 철자를 고쳐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로 바꾸고 1963년 6월 7일에 척 베리의 곡 'Come On'을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21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 11월에 두번째 싱글로 발표한 '존 레논(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곡 'I Wanna Be Your Man'을 싱글 차트에서 12위 까지 진출시키며 단숨에 인기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1964년 2월에 발표한 세번째 싱글은 '버디 홀리(Buddy Holly)'의 곡인 'Not Fade Away'였는데 이 곡은 싱글 차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높아가는 롤링 스톤스의 인기를 뒷받침 하였다.

1964년 4월 16일, 데뷔 음반 'The Rolling Stones'를 발표한 밴드는 데뷔 음반을 앨범 차트 정상에 올려 놓게 된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Tell Me'를 제외하면 음반의 모든 곡이 다른 사람들의 곡으로 채워진 데뷔 음반 이후 롤링 스톤스는 꾸준히 다른 사람들의 곡을 음반에 수록하게 되는데 1966년 4월에 영국에서 발표한 음반 'Aftermath'에 이르르서 음반의 모든 곡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곡으로 채워 넣게 된다. 이 음반을 계기로 밴드의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여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에게 점차 밴드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한편 영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롤링 스톤스가 5월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히트 곡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6월 20일에 미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첫번째 트랙으로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으며 싱글로도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Paint It Black'은 1987년 9월에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하였던 베트남전을 그린 드라마 '머나먼 정글(Tour of Duty)'에 주제 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
믹 재거 (Mick Jagger, 보컬) : 1943년 7월 26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시타르) : 1942년 2월 28일 영국 글로셔터스 출생, 1969년 7월 3일 사망
키스 리처드 (Keith Richards, 기타) : 1943년 12월 18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빌 와이먼 (Bill Wyman, 베이스, 해먼드 오르간) : 1936년 10월 24일 영국 런던 출생
찰리 왓츠 (Charlie Watts, 드럼) : 1941년 6월 2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llingstones.com/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Roy Orbison - Oh Pretty Woman

 

Roy Orbison - Oh Pretty Woman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와 리차드 기어(Richard Gere) 주연의 1990년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 삽입되었던 영화의 주제곡 'Oh Pretty Woman'은 1964년에 텍사스 출신의 로커빌리 가수 '로이 오비슨(본명: Roy Kelton Orbison)'이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곡으로 영화의 성공과 함께 다시 한번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며 로이 오비슨 열풍을 몰고 왔었다.

1936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기에 텍사스주 버논(Vernon)에서 태어난 로이 오비슨은 어릴때 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 두꺼운 렌즈의 시력 교정용 안경을 껴야 했었다. 여섯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로 부터 기타를 생일 선물로 받으면서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는데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나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 같은 컨트리 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성장하였다.

로이 오비슨은 1949년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윙크 웨스터너스(The Wink Western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윙크 웨스터너스는 텍사스 지역을 무대로 공연 활동을 펼치며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했고 1951년에는 텍사스주 커밋(Kermit)의 라디오 방송국인 'KERB'에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1953년에는 지역 사업가의 후원으로 'KERB'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게 되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1954년 텍사스의 오데사 주니어 대학(Odessa Junior College) 지질학과에 입학한 로이 오비슨은 1955년 가을에 영어와 역사학(History and English)으로 전공을 바꾸는 동시에 함께 오데사로 왔던 윙크 웨스터너스 멤버들과 함께 멤버를 보강하여 '텐 킹스(The Ten Kings)'라는 새로운 이름의 밴드를 출범시키게 된다. 1956년 텐 킹스는 '선 음반사(Sun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로이 오비슨의 대학 친구들인 '웨이드 리 무어(Wade Lee Moore)'와 '딕 페너(Dick Penner)'가 만들어 준 곡 'Ooby Dooby'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 이후 매년 싱글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활동하였지만 차트 진출 곡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로이 오비슨은 1960년에 'Only the Lonely (Know the Way I Feel)'를 발표하면서 일약 수퍼 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로이 오비슨과 '조 넬슨(Joe Melson)'이 만든 이 곡은 원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에게 주어 녹음을 권유하였으나 둘 모두에게 거절당하자 로이 오비슨 자신이 직접 녹음하여 발표한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오페라틱 록 발라드 명곡 'Only the Lonely (Know the Way I Feel)'을 히트시킨 후 로이 오비슨은 많은 히트 곡을 만들어내며 인기 가수 행진을 거듭하다가 1964년에 'Oh Pretty Woman'을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와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며 절정의 시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1966년 6월에 찾아온 불행을 시작으로 로이 오비슨은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1957년에 결혼했던 아내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어야 했고 2년후에는 자녀들 마저 화재로 먼저 떠나 보내야 했던 것이다.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은 후 칩거에 들어갔던 로이 오비슨은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 듀엣으로 'That Lovin' You Feelin' Again'을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하게 되지만 1988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한편 로이 오비슨을 대변하는 검은 선글라스는 1963년 경 순회 공연을 위한 비행기 여행 당시 자신의 안경을 비행기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공연 무대에 서면서 안경 대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게 되었는데 팬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그 후로 쭉 선글라스를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이 오비슨 (Roy Orbison) : 1936년 4월 23일 미국 텍사스 출생, 1988년 12월 6일 사망

갈래 : 로커빌리(Rockabilly),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yorbison.com/

 

2010년 7월 7일 수요일

Starship - Nothing's Gonna Stop Us Now

 

Starship - Nothing's Gonna Stop Us Now

 

1965년에 결성된 사이키델릭 록 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은 1974년 9월에 비행선의 이름을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으로 바꾸고 데뷔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 가게 된다. 1978년 2월 6일에 발표하였던 음반 'Earth'를 끝으로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미국과 유럽 순회 공연 이후 제퍼슨 스타쉽을 탈퇴하여 잠시 위기를 겪는듯 하였으나 1979년에 히트 싱글들을 모아 놓은 편집 음반 'Gold'와 정규 음반 'Freedom at Point Zero'를 발표하면서 비행선의 건재함을 팬들에게 알렸다.

 

1981년 초에는 제퍼슨 스타쉽을 떠났던 그레이스 슬릭이 다시 가입하여 음반 'Modern Times'의 녹음에 참여 하게 된다. 그레이스 슬릭의 재가입으로 안정을 찾아 가는 듯 하던 제퍼슨 스타쉽은 1984년 5월 30일에 발표한 음반 'Nuclear Furniture'를 끝으로 결국 불시착하게 되고 1985년 9월 10일에 스타쉽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날아 오르게 된다.

스타쉽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번째 음반 'Knee Deep in the Hoopla'에서 싱글로 발표된 'We Built This City'와 'Sara'가 연속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스타쉽은 이전 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신세계를 향해 화려한 비행을 시작하게 된다.

 

밴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스타쉽은 1987년 2월에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마네킨(Mannequin)'에 주제가인 'Nothing's Gonna Stop Us Now'를 삽입하여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게 된다. 1987년 1월에 영화의 개봉에 앞서 싱글로 먼저 발표된 'Nothing's Gonna Stop Us Now'는 영화 개봉 후인 1987년 4월 4일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영국에서도 싱글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싱글 'Nothing's Gonna Stop Us Now'는 영미 양국에서 각각 50만장 이상을 판매하여 골드 레코드가 되었고 캐나다와 아일랜드의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곡을 올려 놓으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스타쉽은 1987년 7월에 밴드의 두번째 음반인 'No Protection'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인 'Nothing's Gonna Stop Us Now'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이 음반은 스타쉽의 데뷔 음반에 참여 하였던 피터 시어스(Pete Sears, 베이스)가 밴드를 탈퇴하여 4인조로 녹음된 음반인 동시에 그레이스 슬릭이 마지막으로 스타쉽의 이름 아래 함께 했던 음반이기도 하다. 그레이스 슬릭은 1988년에 스타쉽을 떠나 1989년에 재결성 음반 'Jefferson Airplane'을 발표한 제퍼슨 에어플레인에 합류하게 된다.

스타쉽 (Starship) :
그레이스 슬릭 (Grace Slick, 보컬) : 1939년 10월 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출생
미키 토머스 (Mickey Thomas, 보컬) : 1949년 12월 3일 미국 조지아주, 카이로 출생
크레그 차퀴고 (Craig Chaquico, 기타) : 1954년 9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출생
도니 볼드윈 (Donny Baldwin, 드럼)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팝 록(Pop/Rock)
관련 글 : http://artrock.textcube.com/369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effersonstarshipsf.com/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Cliff Richard - The Young Ones

 

Cliff Richard - The Young Ones

 

그 유명했던 이대 강당 공연의 주인공인 '클리프 리차드(본명: Harry Rodger Webb)'는 1940년에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 '러크나우(Lucknow)'의 '킹 조지 병원(King George Hospital)'에서 태어났다. 1948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게 되자 클리프 리차드의 가족은 영국 본토로 이주하게 되었고 클리프 리차드는 영국의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에서 성장하게 된다.

클리프 리차드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레스토랑과 군부대 클럽에 출연하는 밴드에서 활동했었는데 이런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클리프 리차드는 열여섯살때 아버지로 부터 선물 받은 기타를 들고 1957년에 보컬 그룹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클리프 리차드는 '딕 티그 스키플 그룹(Dick Teague Skiffle Group)'을 거쳐 1958년에는 로큰롤 밴드인 '드리프터즈(The Drifters)'로 옮겨가 리드 보컬을 맡게 된다.

'드리프터즈'는 이후 '클리프 리차드 앤 드리프터즈(Cliff Richard and the Drifters)'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EMI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하게 된다. 클리프 리차드 앤 드리프터즈는 프로듀서인 '노리 패러머(Norrie Paramor)' 앞에서 첫번째 세션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연주했던 곡이 미국 팝 가수 '바비 헬름스(Bobby Helms)'의 곡을 커버한 'Schoolboy Crush'와 드리프터즈의 리듬 기타를 맡고 있는 '이안 샘웰(Ian Samwell)'이 작곡한 'Move It'이었다.

 

원래 예정에는 'Schoolboy Crush'를 A면에 'Move It'을 B면에 수록하여 싱글로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밴드의 연주 모습을 지켜본 노리 패러머는 'Move It'을 A면에 수록하기로 결정하고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958년 8월 29일 데뷔 싱글 'Move It/Schoolboy Crush'을 영국에서 공개한 클리프 리차드는 영국의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인 'Oh Boy!'에 출연하여 데뷔 싱글 'Move It'을 불러 십대 소녀들로 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게 된다.

텔레비전 쇼 출연의 성공은 싱글 차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빠른 속도로 순위가 상승하더니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오르며 데뷔 싱글을 성공시키게 된다. 데뷔 싱글의 성공으로 클리프 리차드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비교되며 영국의 로큰롤 팬들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십대 소녀들에게는 영국의 로큰롤을 지배하는 왕자로 사랑받게 된다.

클리프 리차드 앤 드리프터즈는 1959년에 싱글 'Living Doll'을 발표한 후 밴드의 이름을 '쉐도우스(The Shadows)'로 바꾸었다. 밴드의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Living Doll'이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들이면서 미국 시장 진출을 대비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드리프터즈'라는 이름의 밴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쉐도우스'는 클리프 리차드의 백밴드로써의 소임만을 담당하게 된다.
 
클리프 리차드의 인기는 1960년대로 접어 들면서도 전혀 식지 않았는데 1961년 까지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두곡을 비롯하여, 싱글 차트 2위 곡 두곡, 그리고 싱글 차트 3위 곡 네곡을 발표하면서 정상을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인기는 클리프 리차드에게 십대 젊은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에도 진출하게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1961년 12월 영국에서 개봉한 'The Young Ones'였다.

클리프 리차드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음과 동시에 주제가인 'The Young Ones'를 불러 1962년 1월에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으며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증명하였다. 한편 클리프 리차드는 1969년 10월 16일부터 18일 까지 진행된 내한 공연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며 우리 사회에 일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십대 소녀들의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듯 보여지는 이런 십대 소녀들의 일탈 행위는 당시 권력층에게 위기감을 안겨 주었고 급기야 통치의 수단으로 외국 가수의 한국내 공연을 제한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클리프 리차드의 이대 강당 공연시 일어났던 일이라고 대중에게 널리 퍼져 나갔던 일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연 규제의 빌미가 되었던 그 유명한 팬티 사건이었다.

이대 강당에 모인 소녀 팬들이 클리프 리차드에게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던졌다는 말도 안되는 이 사건은 팬들이 집어 던진 손수건이 와전된 것이며 이를 언론을 통해 교묘히 악용한 권력층의 스타에 대한 시샘에서 비롯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기도 했다.

클리프 리차드 (Cliff Richard) : 1940년 10월 14일 인도 러크나우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스키플(Skiffle)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liffrichard.org/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Bill Haley And His Comets - Rock Around The Clock

 

Bill Haley And His Comets - Rock Around The Clock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미츠 (Bill Haley And His Comets) :
빌 헤일리 (Bill Haley, 보컬, 기타) : 1925년 7월 6일 미국 미시간주 출생 1981년 2월 9일 사망
마셜 라이트 (Marshall Lytle, 스트링 베이스) : 1933년 9월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올드포트 출생
조이 앰브로즈 (Joey Ambrose, 테너 색소폰) :
빌리 윌리엄슨 (Billy Williamson, 스틸 기타) : 1925년 2월 9일 미국 출생, 1996년 3월 22일 사망
조니 그란데 (Johnny Grande, 피아노) : 1930년 1월 14일 미국 출생, 2006년 6월 3일 사망
빌리 구싹 (Billy Gussak, 드럼) : 1920년 미국 출생, 1994년 사망
대니 세드론 (Danny Cedrone, 전기 기타) : 1920년 6월 20일 미국 출생, 1954년 6월 17일 사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로커빌리(Rockabilly), 컨트리(Country),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
관련 웹 사이트 : http://theoriginalcomets.com/


미국의 가수 겸 작곡자인 '빌 헤일리(본명: William John Clifton Haley)'는 1954년에 발표한 싱글 'Rock Around The Clock'으로 컨트리 가수에서 십대들의 우상이자 록 가수로 자리매김 했으며 로큰롤의 시대를 연 개척자이기도 하다. 미시간주(Michigan) 하이랜드파크(Highland Park)에서 태어난 빌 헤일리의 아버지는 벤조(Banjo) 연주자였으며 어머니는 건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던 연주자였다.

 

마분지로 만든 기타를 가지고 놀며 자라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의 손에 부모님이 선물해준 진짜 기타가 잡혀있던 열세살 때 부터 빌 헤일리는 하루 밤에 1달러의 급료를 받으면서 클럽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열네살때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한 빌 헤일리는 열다섯살 때 가수로 성공하기 위한 꿈을 안고 집을 나와 여기 저기를 떠돌며 아르바이트로 연주 활동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야외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음악 공연에 일자리를 얻어 연주를 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빌 헤일리는 1944년에 마침내 '컨트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 팝 그룹인 '다운호머스(The Downhomers)'의 멤버로 일자리를 얻게 된다. 다운호머스의 멤버로 2년간 활동하며 음악 활동을 하다 1946년 밴드를 탈퇴한 빌 헤일리는 펜실베니아주의 체스터(Chester)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WPWA 에 음악 감독 겸 DJ 로 일을 하게 된다.

 

이때 부터 빌 헤일리는 다양한 연주자들과 웨스턴 스윙(컨트리 음악과 스윙의 결합)을 연주하며 자신의 라디오 쇼에 출연했고 장래에 탄생할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미츠'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1949년에는 '빌 헤일리 앤 더 새들멘(Bill Haley and the Saddlemen)'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1년 '빌 헤일리 앤 더 새들멘'은 블루스 연주자 '아이크 터너(Ike Turner)'가 1949년에 발표했던 블루스 곡 'Rocket 88'을 커버하여 컨트리 버전으로 발표하였고 히트 곡으로 만들었다.

 

'Rocket 88'의 히트 이후 컨트리 음악과 블루스 음악의 결합에 자신감을 얻은 빌 헤일리는 같은 해에 R&B 가수인 '지미 프레스톤(Jimmy Preston)'이 1949년에 발표했던 곡을 커버한 'Rock the Joint'를 발표하여 또 다시 히트시켰다. 1952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빌 헤일리는 밴드 이름을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미츠'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컨트리와 블루스를 접목한 록 음악을 추구하게 된다.

 

1953년 4월, 빌 헤일리는 커버 곡이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든 'Crazy Man, Crazy'를 발표하여 히트를 시켰고 '빌보드 쥬크 박스(Billboard Juke Box)' 차트의 12위에 진출시키며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오른 로큰롤 음반으로 기록되게 하였다.

 

1954년 빌 헤일리는 '소니 대 앤 히즈 나이츠(Sonny Dae and His Knights)'가 1952년에 발표했던 곡인 'Rock Around The Clock'을 커버하여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곡은 단 1주간만 차트에 올랐으며 판매고도 형편없어 실패에 그치는 듯 하였으나 1955년에 개봉된 영화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에 삽입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게 된다.

 

영화의 개봉 당시 'Rock Around The Clock'이 흐르는 장면에서 영화를 감상하던 관객들이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 'Rock Around The Clock'은 빌보드 차트에서 8주간 1위에 머물며 세계인들에게 로큰롤 음악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촉매 역할을 하였으며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곡으로 록 팬들에게 기억되게 된다.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Chubby Checker - Let's Twist Again

 

Chubby Checker - Let's Twist Again

처비 체커 (Chubby Checker) : 1941년 10월 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프링걸리 출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리듬 앤 블루스(R&B)
공식 웹 사이트 : http://chubbychecker.com/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인 처비 체커는 1960년대 초반 '트위스트(Twist)'의 열풍을 전세계로 전파한 주인공이다. 본명이 '어니스트 에반스(Ernest Evans)'인 처비 체커는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주의 스프링걸리(Spring Gulley) 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주 사우스필라델피아(South Philadelphia)에서 성장하였다. 처비 체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당시 흑인 꼬마 피아노 신동으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던 '슈거 칠리 로빈슨(Sugar Chile Robinson)'의 공연과 텍사스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컨트리 가수 '어니스트 텁(Ernest Tubb)'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이 당시 공연을 보고 받은 감동은 어린 처비 체커에게 인생 행로를 결정짓게 하는 작은 불씨로 남아 그의 가슴 속에서 조금씩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으며 열한살이 되던 무렵에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보컬 그룹에 합류하여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다. 고등학교(South Philadelphia High School)에 진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처비 체커는 학교 친구들과 노래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가다듬었고 방과후에는 농산물 시장 인근의 양계장에서 일을 하는 등의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처비 체커는 양계장에서 일을 하면서 자주 노래와 우스갯 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돋우고는 하였는데, 이 모습을 지켜 본 양계장 주인인 '헨리 콜트(Henry Colt)'가 그에게 '처비(Chubby)'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카메오 파크웨이 음반사(Cameo-Parkway Records)'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던 자신의 친구인 '칼 만(Karl Mann)'에게 추천하여 음반 계약을 성사시켜 주었다.

 

데뷔 싱글 발표 이전 미국 ABC 방송국의 음악 쇼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밴드스탠드(American Bandstand)'에 출연한 처비 체커의 모습을 지켜 본 방송 진행자 '딕 클라크(Dick Clark)'는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처비 체커가 가진 잠재력을 간파하고 카메오 파크웨이 음반사에 처비 체커의 음반 발매를 서둘러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당시 무대에서 본명을 사용했던 처비 체커는 딕 클라크의 아내가 처비라는 예명과 본명인 에반스 대신 만든 체커라는 이름을 조합하여 만들어준 이름인 처비 체커라는 이름으로 데뷔 싱글을 준비하게 된다.

 

1959년 초, 데뷔 싱글 'The Class'를 발표하여 싱글 차트 38위를 기록한 처비 체커는 1960년 7월 두번째 싱글 'The Twist'를 발표하면서 부터 트위스트 열풍을 주도하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정상을 차지한 'The Twist'는 미국 가수 '행크 발라드(Hank Ballard)'가 1959년에 발표했던 싱글을 커버한 것으로 처비 체커에 의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다.

 

트위스트의 열풍으로 시작된 처비 체커의 인기는 해가 바뀌면서도 식지 않았고 1961년 1월에 발표한 싱글 'Pony Time'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여전한 인기를 증명하였다. 또한 이 노래의 히트는 '포니(Pony)'라는 이름의 새로운 춤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1961년 6월, 처비 체커는 또 다른 트위스트 곡인 'Let's Twist Again'을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올려놓게 된다.

 

이 곡은 1960년에 이어 1962년에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빌보드 역사상 진귀한 기록을 남긴 'The Twist'에 비해 미국에서의 인기도는 낮았지만 한국에서는 처비 체커의 대표 곡으로 여겨지며 오랜 기간 동안 변함 없이 사랑받는 애청 곡으로 남게 된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Gene Vincent - Be Bop A Lula

 

Gene Vincent - Be Bop A Lula

진 빈센트 (Gene Vincent) : 1935년 2월 11일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출생, 1971년 10월 12일 사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로커빌리(Rockabill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ckabillyhall.com/GeneVincent.html


미국의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에서 태어난 '진 빈센트(본명: Vincent Eugene Craddock)'는 초기 로큰롤 음악의 선구자로써 많은 후배 가수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가수이다. 진 빈세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던 고향의 잡화점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음악에 매료되어 잡화점의 스피커 앞을 떠날줄 모르며 음악을 듣고는 하였다. 컨트리(Country) 음악과 리듬 앤 블루스(R&B), 가스펠(Gospel) 음악들을 들으며 성장한 진 빈센트가 악기를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것은 열두살 때 무렵으로 친구가 선물한 기타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해안 경비대로 근무하며 독일의 유보트(U-boats)를 탐색하는 임무를 맡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진 빈센트는 학교를 중퇴하고 1952년에 열일곱살의 나이로 해군에 자원 입대하였다. 진 빈센트는 해군 함대 소속으로 6.25 사변이 일어난 한반도에 배치되어 한국 전쟁(Korean War)에 참전하게 된다.

 

장기 복무 계획을 수립하고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던 1955년, 진 빈센트는 보너스로 받은 급여를 몽땅 투자하여 구입한 오토바이를 노퍽 일대에서 몰고 다니다 사고가 일어나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게 된다. 해군 병원에 입원한 진 빈센트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거부하고 치료에 전념하여 기적적으로 부상에서 회복하게 되나 왼쪽 다리를 절게 되는 장애를 얻게 된다.

 

부상으로 해군에서 전역한 진 빈센트는 고향인 노퍽에서 로커빌리 밴드인 '블루 캡스(The Blue Caps)'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블루 캡스의 구성원은 리드 기타에 '클리프 갤럽(Cliff Gallup)', 리듬 기타에 '윌리 윌리엄스(Willie Williams)', 베이스 기타에 '잭 닐(Jack Neal)', 드럼에 '디키 하렐(Dickie Harrell)'로 구성되었으며 노퍽 지역을 중심으로 공연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식 석상에서 밴드는 '진 빈센트 앤 히즈 블루 캡스(Gene Vincent and His Blue Caps)'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이때부터 진 빈센트는 본명인 빈센트 유진 크레드독 대신에 진 빈센트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된다. 진 빈센트 앤 히즈 블루 캡스는 지역에서 개최된 탤런트 선발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고 이 대회에서 만난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DJ '빌 데이비스(Bill "Sheriff Tex" Davis)'가 밴드의 매니저를 맡게 된다.

 

빌 데이비스는 밴드의 데모 테이프를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에 보내 음반 계약을 성사시켰고 1956년 6월에 'Be Bop A Lula'가 B면에 수록된 데뷔 싱글을 발표하게 하였다. 진 빈센트의 데뷔 싱글은 A면 수록 곡 보다 B면의 수록 곡인 'Be Bop A Lula'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히트를 하였고 2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공을 하게 된다.

 

클리프 갤럽의 화려한 기타 연주와 진 빈센트의 멋진 보컬이 어우러진 로커빌리의 고전 'Be Bop A Lula'는 발표 이후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곡이자 고전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로큰롤의 역사에서 맨 앞장에 기록되는 곡이기도 하다.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Paul Revere & the Raiders - Indian Reservation

 

Paul Revere & the Raiders - Indian Reservation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 (Paul Revere & The Raiders) :
폴 리비어 (Paul Revere, 키보드, 보컬) : 1938년 1월 7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하버드(Harvard) 출생
마크 린세이 (Mark Lindsay, 보컬, 색소폰) : 1942년 3월 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Eugene) 출생
프레디 웰러 (Freddy Weller, 기타) : 1947년 9월 9일 미국 조지아(Georgia)주, 애틀랜타(Atlanta) 출생
키스 앨리슨 (Keith Allison, 베이스)
마이크 스미티 스미스 (Mike "Smitty" Smith, 드럼)

 

분류 : 로큰롤(Rock & Roll), 개라지 록(Garage Rock), 프래트 록(Fra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paulrevereraiders.com/


한국에서 'Indian Reservation'이라는 히트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국의 록 그룹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는 오르간 연주자 폴 리비어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어린 시절 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과 가까이 지내던 폴 리비어는 십대 시절에 이미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스무살이 되던 무렵에는 아이다호주의 콜드웰(Caldwell)에서 몇군데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밴드 활동을 위한 구상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폴 리비어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햄버거를 굽고 있던 열여섯살의 마크 린제이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꿈 많은 소년이었는데, 어느날 폴 리비어부터 자신과 함께 밴드 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이 제의를 수락한 마크 린제이는 폴 리비어와 함께 '다운비츠(The Downbeats)'라는 이름의 밴드를 1958년에 결성하게 된다.

 

다운비츠는 이내 밴드 이름을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로 바꾸었고 1960년에 가디너 음반사(Gardena Records)를 통해 데뷔 싱글 'Like, Long Hair'를 발표하였다. 이 곡은 미국 북서부의 태평양 연안 지역을 시작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1961년 4월 17일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8위를 기록하며 전국적인 히트를 하게 된다.

 

폴 리비어와 마크 린제이는 데뷔 싱글의 빌보드 차트 진입 후 각자 따로 활동하게 되는데 폴 리비어는 컨트리 가수인 레온 러셀(Leon Russell)의 1961년 여름 미국 순회 공연에서 피아노를 담당하였으며 마크 린제이는 솔로로 싱글을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출시켰다.

 

1962년 여름 다시 만난 두사람은 오랜 기간 함께 하게 되는 드러머 마이크 스미티 스미스를 만나 밴드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밴드는 수많은 연주자들을 교체해가며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지만 뚜렷한 히트 곡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1970년에 접어 들면서 밴드는 이름을 '레이더스'로 짧게 줄이고 싱글 'Indian Reservation'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1959년에 컨트리 가수인 '마빈 레인워터(Marvin Rainwater)'가 'The Pale Faced Indian'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곡을 커버한 것으로 레이더스 최대의 히트 곡으로 남게 된다.

 

'Indian Reservation'은 1971년 7월 24일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이 곡이 녹음되던 당시에 마크 린세이는 솔로 프로젝트를 위한 음반 녹음중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Indian Reservation'의 녹음에는 참여하였었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Tommy Roe - Dizzy

 

Tommy Roe - Dizzy

토미 로 (Thomas David Roe) : 1942년 5월 9일 미국 조지아(Georgia)주 애틀랜타(Atlanta) 출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선샤인 팝(Sunshine Pop), 버블검(Bubblegum),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ommyroe.com/


1962년에 발표한 싱글 'Sheila'를 같은 해 9월 1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에 올려 놓으며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한 가수 토미 로는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열네살때 부터는 직접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토미 로는 '브라운 고교(Brown High School)' 재학 시절에 친구들인 '마이크 클라크(Mike Clark)', '바비 웨스트(Bobby West)'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고 '새틴스(The Satins)'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새틴스의 주 활동 무대는 고등학교의 댄스 파티장이나 조지아 대학교와 조지아 공대에서 자주 열리던 사교 클럽 파티 등이었다. 후일 토미 로의 음반 프로듀서로 함께 하게 되는 '펠튼 자비스(Felton Jarvis)'를 만나게 된 시점이 바로 이 당시였다. 1962년 2월, 토미 로와 펠튼 자비스는 새로운 매니저인 '빌 라우리(Bill Lowery)'와 함께 애틀랜타를 떠나 '내슈빌(Nashville)'로 가서 두 곡의 노래 'Save Your Kisses'와 'Sheila'를 녹음하고 공식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두 곡의 노래 가운데 'Sheila'가 싱글로 세상에 공개되자 반응은 뜨거웠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캐나다와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영국에서는 3위에, 독일에서는 9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토미 로는 10대들의 우상으로 집중 조명 받게 된다. 이후 토미 로는 발표 싱글들마다 히트를 하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63년에는 영국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아이돌 스타로 활동하던 토미 로는 196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인기의 기세가 줄어드는듯 하였으나 1969년에 싱글 'Dizzy'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1968년에 녹음하고 1969년에 발표된 싱글 'Dizzy'는 1969년 3월, 4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였고 6월에는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한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영미 양국의 싱글 차트를 석권한 'Dizzy'는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으며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는 2위에 그리고 독일과 노르웨이의 싱글 차트에서는 4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펑크(Funk) 음악에서 갈라져 나온 고고(Go-go) 시대를 맞이한 197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도 많은 고고장이 생겨났는데 통금 시간 이전 까지 고고장의 스피커를 울려대던 히트 곡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미 로의 곡 'Dizzy'였었다.

 

고고장을 대표하는 히트 곡으로 많은 청춘 남녀들의 사랑을 받았던 'Dizzy'는 지금은 추억의 팝송으로 그리고 팝의 고전으로 애청되며 지난 날의 시간을 팝 팬들에게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Starship - We Built This City

Starship - We Built This City

스타쉽 (Starship) : 1985년 발표 음반 'Knee Deep in the Hoopla' 구성원

그레이스 슬릭 (Grace Slick, 보컬) : 1939년 10월 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Evanston) 출생
미키 토머스 (Mickey Thomas, 보컬) : 1949년 12월 3일 미국 조지아(Georgia)주, 카이로(Cairo) 출생
크레그 차퀴고 (Craig Chaquico, 기타) : 1954년 9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출생
피터 시어스 (Pete Sears, 베이스) : 1948년 5월 27일 영국 켄트(Kent)주, 브롬리(Bromley) 출생
도니 볼드윈 (Donny Baldwin, 드럼)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출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effersonstarshipsf.com/
블로그의 관련 글 : http://artrock.textcube.com/101


1965년에 결성된 사이키델릭 록 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은 1972년 7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Long John Silver'의 녹음을 마무리한 후 8월에 5만명의 관중이 운집한 뉴욕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공연을 끝으로 해산하였다.

 

멤버였던 '잭 카사디(Jack Casady, 베이스)'와 '조르마 카우커넌(Jorma Kaukonen, 기타)'은 1969년에 그레이스 슬릭과 '폴 켄트너(Paul Kantner, 기타)' 사이에 아기가 생겨 잠정적인 활동 중단 상태에 들어가자 연주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블루스 록 밴드인 '핫 튜나(Hot Tuna)'를 결성하여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활동과 병행해 오다가 1972년 9월에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공식 해산하게 되자 핫 튜나에 전념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레이스 슬릭은 솔로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1974년 1월, 그레이스 슬릭은 해산한 제퍼슨 에어플레인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녹음한 솔로 데뷔 음반 'Manhole'을 발표하였다. 그레이스 슬릭이 직접 그린 자신의 조금 어린 시절 자화상을 음반 커버로 사용한 이 음반은 기대만큼의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실의에 빠진 그레이스 슬릭은 심각할 정도의 음주 문제를 겪으며 시련의 계절을 보내게 된다.

 

폴 켄트너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과도기였던 1970년에 솔로 음반 'Blows Against the Empire'를 발표하면서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 밑에 표시하였었는데, 1974년 6월에 그레이스 슬릭과 함께 새로 밴드를 결성하면서 그 당시 사용하였던 이름인 제퍼슨 스타쉽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다.

 

1974년 9월 데뷔 음반 'Dragon Fly'를 시작으로 1984년 5월 30일에 발표한 음반 'Nuclear Furniture'까지 십년간 지속되었던 제퍼슨 스타쉽의 비행은 폴 켄트너의 탈퇴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1978년 'Earth' 음반을 끝으로 제퍼슨 스타쉽을 탈퇴했던 그레이스 슬릭이 다시 합류하면서 제퍼슨 스타쉽은 새로운 비행을 준비하게 되고 1985년 9월 10일 스타쉽 이라는 이름으로 새 앨범 'Knee Deep in the Hoopla'를 발표하였다.

 

새로운 비행을 시작한 스타쉽은 싱글 'We Built This City'와 'Sara'를 연속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았다. 이로써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해오던 밴드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비행을 하게 된 스타쉽은 이후 계속해서 히트 곡을 만들어내며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된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Survivor - Eye of the Tiger

 

Survivor - Eye of the Tiger

서바이버 (Survivor) :
짐 페테릭 (Jim Peterik, 키보드) : 1950년 11월 11일 미국 일리노이(Illinois)주 버윈(Berwyn) 출생
프랭키 설리반 (Frankie Sullivan, 기타) : 1955년 2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Chicago) 출생
데이브 빅클러 (Dave Bickler, 보컬) : 1953년 미국 일리노이(Illinois)주 시카고(Chicago) 출생
스테판 엘리스 (Stephan Ellis, 베이스) :
마크 드로베이 (Marc Droubay, 드럼) :

 

분류 : 팝록(Pop/Rock), 로큰롤(Rock & Roll), 하드 록(Hard Rock)


'Eye of the Tiger' 한곡으로 세계적인 그룹으로 우뚝 선 미국의 성인 취향 팝록 그룹 서바이버는 키보드 주자인 '짐 페테릭'에 의해 1978년에 결성되었다. 짐 페테릭은 1964년에 결성되어 1966년에 데뷔 싱글을 발표한 일리노이주 버윈 출신의 록 그룹 '아이즈 오브 마치(Ides of March)'에서 리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며 음악계에 데뷔하였다.

 

1977년에는 '게리 스미스(Gary Smith, 드럼)'와 '데니스 키스 존슨(Dennis Keith Johnson, 베이스)'이라는 두사람과 함께 'The Jim Peterik Band'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음반 'Don't Fight the Feeling'을 발표하였으며 이듬해인 1978년에 '프랭키 설리반'과 '데이브 빅클러'를 끌어들여 새로운 이름의 그룹 서바이버를 탄생시켰다.

 

그룹 결성 이후 시카고 지역의 작은 클럽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79년에 데뷔 음반 'Survivor'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첫 싱글인 'Somewhere in America'는 빌보드 싱글 차트 70위에 머무르며 Top 40 진입에는 실패하였지만 시카고 지역에서는 많은 인기를 얻으며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장식하였다. 하지만 데뷔 음반 발표 후 그룹의 진로에 불만을 품은 게리 스미스와 데니스 키스 존슨이 그룹을 탈퇴하여 스테판 엘리스와 마크 드로베이를 새로이 영입하고 두번째 음반을 준비하여 1981년에 음반 'Premonition'을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Poor Man's Son'이 빌보드 싱글 차트 33위까지 오르며 서바이버의 첫번째 Top 40 진출곡이 되었고 미전역에 서바이버의 음악이 알려지게 된다. 1982년, 영화 록키 3(Rocky III)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은 Poor Man's Son 을 듣고 대단히 만족하여 서바이버에게 록키 3의 주제가를 의뢰하였으며 이를 수락한 서바이버는 'Eye of the Tiger'를 만들어 1982년 5월 29일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싱글로 발표하였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주제가인 'Eye of the Tiger'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서 6주간이나 머무르는 엄청난 성공을 하였고 영국에서도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곧이어 발매된 세번째 음반 'Eye of the Tiger'에서 후속곡인 'American Heartbeat'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서바이버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올라서게 된다.

 

서바이버의 대표곡이자 인상적이며 강력한 연주로 시작하는 'Eye of the Tiger'는 오랜 세월을 사랑받으며 영화와 함께 듣는 이에게 추억을 떠올려 주는 노래로 자리하고 있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Quarterflash - Harden My Heart

 

Quarterflash - Harden My Heart

 

쿼터플래쉬 (Quarterflash) :
린디 로스(Rindy Ross, 보컬, 색소폰) : 1951년 6월 26일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Portland) 출생
마브 로스(Marv Ross, 기타) : 1951년 1월 30일 미국 출생
잭 찰스(Jack Charles, 기타) :
릭 디지아로나도(Rick DiGiallonardo, 키보드) :
리치 구스(Rich Gooch, 베이스) : 1948년 11월 2일 미국 출생
브라이언 데이비드 윌리스(Brian David Willis, 드럼, 퍼커션) : 1958년 6월 14일 미국 출생

 

분류 : 팝록(Pop/Rock), 로큰롤(Rock & Roll)


예전 옷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대구의 명소인 야시 골목을 걸을때면 어느 가게의 스피커에선가 반드시 흘러나오던 노래인 'Harden My Heart' 의 주인공 쿼터플래쉬는 미국 오레곤주의 포틀랜드에서 린디 로스와 마브 로스 부부의 주도하에 1980년에 결성된 밴드이다. 1970년대에 웨스턴 오레곤 대학교(Western Oregon University)에 재학 중이던 로스 부부는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학교 졸업 후 부부는 센터럴 오레곤(Central Oregon)에서 교편을 잡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틈틈히 밴드에 가입하여 린디 로스는 색소폰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마브 로스는 기타를 연주하며 무대에 오르고는 하였다.


밴드 활동에 매력을 느낀 로스 부부는 약 3년간의 교편 생활을 접고 '씨푸드 마마(Seafood Mama)'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씨푸드 마마는 1970년대 후반에 시애틀(Seattle)과 포틀랜드(Portland) 지역의 바(Bar)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1980년 봄, 씨푸드 마마는 마브 로스가 만든 싱글 Harden My Heart 을 발표하였는데, 이 싱글이 포틀랜드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다. 싱글의 히트는 TV 출연으로 이어지게 되어 1980년 6월 5일 포틀랜드 지역 방송인 KOIN 에서 'Seafood Mama In Concert' 라는 이름으로 한시간 동안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루어졌다.

 

TV 출연 후 프로듀서인 존 보일란(John Boylan)의 집을 방문한 로스 부부는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발견한 호주(Australia)의 속어 구절인 "One Quarter Flash and Three Parts Foolish"에서 영감을 얻어 밴드 이름을 쿼터플래쉬(Quarterflash)로 바꾸게 된다. 밴드 이름을 바꾸면서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와 계약한 쿼터플래쉬는 1981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Quarterflash' 로 인해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 8위까지 진출한 데뷔 음반은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골드를 획득했고 1982년 6월에는 플래티넘을 획득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 수록된 싱글 'Harden My Heart'는 이전 1980년에 발표되었던 버전과는 조금 다르게 편곡하여 음반에 수록되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3위 까지 오르게 된다. 또한 이 곡은 쿼터플래쉬가 거두어 들인 가장 좋은 성과이자 마지막 성과로 이후 쿼터플래쉬는 Top 10 진출 곡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팬들로 부터 서서히 멀어져 갔다.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
루 리드 (Lou Reed, 기타, 보컬) : 1942년 3월 2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 출생
스털링 모리슨 (Sterling Morrison, 기타) :
                1942년 8월 28일 미국 뉴욕주 이스트메도우(East Meadow) 출생, 1995년 8월 30일 사망
더그 율 (Doug Yule, 베이스, 오르간) : 1947년 2월 25일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Long Island) 출생
모린 터커 (Maureen Tucker, 드럼) : 1944년 8월 26일 미국 뉴욕주 레빗타운(Levittown) 출생

 

분류 : 프로토 펑크(Proto-Punk), 사이키델릭(Psychedelic), 로큰롤(Rock & Roll)


노란 바나나의 이미지로 각인된 전설적인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0년대 후반의 미국 젊은이들에게 우상으로 존재했던 그룹으로 루 리드에 의해서 탄생한 그룹이다. 유태인인 루 리드(본명: Lewis Allan Reed)는 브루클린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어릴때 부터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기타를 연습하곤 했다. 당시 루 리드의 관심을 끌었던 음악들은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계열의 음악들이었다.

 

고교 시절 부터는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쉐이즈(The Shades)'라는 이름의 두왑(흑인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의 코러스 중 하나) 밴드에서는 음반 녹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당시 루 리드는 동성애 성향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기 충격 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때의 경험은 후일 'Kill Your Sons(1974년)' 라는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 진학하여 신문학과(Journalism)에서 공부한 루 리드는 대학을 졸업한 1963년에 피크위크 레코드(Pickwick Records)의 작곡가로 취업하게 된다. 1964년에 싱글 The Ostrich 를 만들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루 리드는 '프리미티브(The Primitives)' 라는 임시 그룹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프리미티브에는 전위 음악에 심취해 있던 웨일즈 출신의 음악인 존 케일(John Cale, 비올라, 오르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 리드와 존 케일은 뉴욕의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함께 거주하며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되었고, 루 리드가 대학 시절 알고 지내던 스털링 모리슨과 모린 터커를 끌어들여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결성하고 작은 클럽들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은 존 케일의 친구인 비디오 아티스트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멤버들에게 보여준 성인 잡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많이 모여들던 뉴욕의 나이트 클럽 Max's Kansas City 에 고정 출연하게 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클럽의 단골 손님이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을 사로잡게 되고 그의 후원으로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앤디 워홀은 독일의 모델이자 배우였던 니코(Nico)를 합류시켜 음반을 만들게 했고, 1967년에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음반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노란 바나나를 커버에 담고 세상에 공개 되었다.

 

1968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White Light/White Heat 이후 존 케일은 루 리드와의 불화속에 그룹을 탈퇴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더그 율이 가입하였다. 더그 율과 함께 발표한 세번째 음반 'The Velvet Underground' 는 1969년에 공개 되었으며, 이 음반에 수록된 'Pale Blue Eyes' 가 1997년에 개봉한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에 사용되면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Bryan Adams - Heaven

 

Bryan Adams - Heaven

브라이언 아담스 (Bryan Adams) : 1959년 11월 5일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주 킹스턴(Kingston) 출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팝록(Pop/Rock)


몰타섬(Maltese: 몰타 섬의 이름을 따온 애완견 품종이 몰티즈이다) 출신의 할머니를 둔 사진작가이며 싱어 송라이터이자 로큰롤 가수인 브라이언 아담스는 매력적인 허스키 보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이다. 브라이언 아담스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서 영국, 이스라엘, 포르투갈, 오스트리아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Lisbon)에서 거주하며 포르투갈어를 습득하였다.

 

1973년 캐나다로 돌아온 브라이언 아담스의 일가족은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 노스밴쿠버(North Vancouver)에 정착하였으며, 브라이언 아담스는 접시닦기, 애완동물 사료가게 점원, 음반 가게 점원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말겠다는 확고한 신념아래 십오세가 되던 해에 학교를 자퇴하고 캐나다의 글램 록 그룹 '스위니 토드(Sweeney Todd)'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스위니 토드가 1977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If Wishes Were Horses'에서 보컬을 맡았던 브라이언 아담스는 음반 발표 얼마 후 밴드를 탈퇴하고 밴쿠버의 한 음반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드러머 짐 발렌스(Jim Vallance)와 함께 공동으로 곡을 만들어 프리즘(Prism), 키스(Kiss), 러버보이(Loverboy), 칼리 사이먼(Carly Simon),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등 많은 아티스트에게 곡을 주며 작곡가로써 입지를 다져 나가게 된다.

 

1978년, 브라이언 아담스는 A&M Records 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 데모에는 데뷔 음반에 수록되는 곡인 'Remember'와  세번째 음반 'Cuts Like a Knife'에 수록 되는 'I'm Ready' 가 포함되어 있었다.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 준비에 들어간 브라이언 아담스는 2년 후인 1980년에 짐 발렌스와 함께 만든 곡들로 데뷔 음반 "Bryan Adams" 를 발표하였다.

 

첫번째 음반과 1981년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You Want It You Got It'은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하였지만 세번째 음반 'Cuts Like a Knife'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오르는 히트 곡 'Straight from the Heart'를 만들어 내었고 이어서 발매된 싱글 'Cuts like a knife(15위)'와 'This Time(24위)'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브라이언 아담스는 단숨에 주목받는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1984년 10월 29일, 브라이언 아담스는 새 음반 "Reckless" 를 발표하였는데, 음반 발매 이전에 발표된 싱글 'Run to You'가 빌보드 싱글 차트 6위, Billboard Hot Mainstream Rock Tracks 에서 1위를 차지하며 브라이언 아담스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Reckless' 음반은 'Run to You' 의 후속 곡인 Summer of '69 을 시작으로 'One Night Love Affair'와 티나 터너(Tina Turner)와의 듀엣 곡인 'It's Only Love', 그리고 'Heaven'으로 이어지는 히트 곡을 만들어내며 오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연속으로 이어진 히트 곡 행진의 정점은 Heaven 이 차지하였는데,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브라이언 아담스라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팝 가수의 탄생을 알렸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자리하게 된다.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The Who - Baba O'Riley

 

The Who - Baba O'Riley

더 후 (The Who) :
피트 타운센드 (Peter Townshend, 기타) : 1945년 5월 19일 영국 런던 출생
로저 달트리 (Roger Harry Daltrey, 보컬) : 1944년 3월 1일 영국 런던 하머스미스(Hammersmith) 출생
존 엔트위슬 (John Entwistle, 베이스) : 1944년 10월 9일 영국 런던 출생, 2002년 6월 27일 사망
키스 문 (Keith John Moon, 드럼) : 1946년 8월 23일 영국 런던 웸블리 출생, 1978년 9월 7일 사망

 

분류 : 로큰롤(Rock & Roll), 하드 록(Hard Rock), 팝록(Pop/Rock)


자폐증을 가진 핀볼 게임의 귀재 토미를 주인공으로 한 록 오 페라 '토미(Tommy)'를 발표하여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록 그룹 '더 후'의 화려한 역사는 1964년에 결성된 디투어스(The Detours)라는 밴드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초에 켠페더렛츠(The Confederates) 라는 이름의 전통 재즈(Traditional Jazz)를 연주하는 교내 밴드에서 피트 타운센드(본명: Peter Dennis Blandford Townshend)는 밴조(Banjo)를 존 엔트위슬(본명: John Alec Entwistle)은 호른(French Horn)을 연주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날 베이스 기타를 메고 길을 가던 존 엔트위슬에게 이전 부터 안면이 있던 로저 달트리가 밴드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하여 '디투어스'가 결성되었다. 디투어스는 리드 기타를 로저 달트리가 담당했으며 베이스는 존 엔트위슬이 그리고 리듬 기타는 존 엔트위슬이 밴드에 끌어들인 피트 타운센드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보컬은 콜린 도슨(Colin Dawson)이 맡게 되었고 더그 샌덤(Doug Sandom)이 드럼을 담당하게 된다. 5인조 그룹 디투어스는 블루스 음악과 컨트리 음악을 주무기로 하여 지역의 선술집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가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 도슨이 탈퇴하게 되자 이때부터 로저 달트리가 보컬을 전담하게 되었으며 피터 타운센드가 기타 주자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1964년이 시작되자 디투어스에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드러머인 더그 샌덤이 밴드를 탈퇴하고 그 자리를 키스 문이 물려 받게 된다. 그리고 2월이 되자 디투어스는 밴드 이름을 '더 후'로 바꾸고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더 후는 당시 유행하던 '모드(화려한 의상등 외모에 치중했던 유행)'에 민감했던 매니저인 피트 미든(Pete Meaden)이 하이 넘버스(The High Numbers)라는 이름으로 싱글 Zoot Suit/I'm the Face 를 발표하게 하였다. 하지만 모드 족을 겨냥하여 발표한 이 싱글이 실패하게 되자 밴드는 피트 미든을 해고하고 본래의 이름인 더 후로 활동하게 된다.

 

1965년 1월, 더 후는 싱글 'I Can't Explain'을 영국에서 발표하여 탑텐에 진입시켰고 2월에는 미국에서도 발매가 이루어져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뒤이어 발매한 싱글 Anyway, Anyhow, Anywhere 도 히트를 하게 되자, 더 후는 1965년 12월 데뷔 음반 My Generation 을 발표하였다. (미국에서는 The Who Sings My Generation 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데뷔 음반 발표 후 최고의 라이브 밴드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더 후는 1969년 록 오페라 '토미(Tommy)'를 발표하여 스튜디오 음반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정상의 그룹으로 도약하였다. 더 후는 1971년 또 하나의 명반 Who's Next 를 발표하였는데, 원래 이 음반은 피터 타운센드가 Lifehouse 라는 이름으로 구상한 록 오페라였다.

 

신서사이저와 록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음반의 첫번째 트랙 Baba O'Riley 는 한국에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중의 하나인 CSI: NY 의 오프닝 테마 곡으로도 사용되어 더 후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하우스 박사가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에 맞춰서 허공에 건반을 짚는 장면에 등장했던 음악도 Baba O'Riley 였다.

 

 

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Dire Straits - Sultans Of Swing

 

Dire Straits - Sultans Of Swing


다이어 스트레이츠 (Dire Straits)  :

마크 노플러 (Mark Knopfler, 보컬, 기타) : 1949년 8월 1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존 일슬리 (John Illsley, 베이스) : 1949년 6월 24일 영국 레스터셔 주, 레스터(Leicester) 출생
데이비드 노플러 (David Knopfler, 리듬 기타) : 1952년 12월 27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픽 위더즈 (Pick Withers, 드럼) : 1948년 4월 4일 영국 레스터셔 주, 레스터(Leicester) 출생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기타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영국의 록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싱어 송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자인 마크 노플러의 그룹이라고 표현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룹에서 마크 노플러가 가지는 영향력이 큰 그룹이다. 마크 노플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영국인 어머니와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 타인(Tyne)강 하구에 있는 항구 도시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으로 가족이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 마크 노플러의 삼촌은 곧잘 그에게 하모니카 연주와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고 그로인해 마크 노플러에게 음악적 영감을 심어주게 된다. 고스포스 고교(Gosforth High School)에 입학한 마크 노플러는(후일 동생인 데이비드도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기타 연주자 행크 마빈(Hank Marvin) 처럼 분홍색의 팬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기타를 갖고 싶어했으나 50파운드 짜리 트윈-픽업 호프너(Hofner) 기타로 기타 연습을 하면서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된다.

 

당시 마크 노플러는 스쿨 밴드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쳇 애킨스(Chet Atkins), 스코티 무어(Scotty Moore),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제임스 버톤(James Burton) 같은 기타연주자들의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또한 열여섯살 때에는 친구와 함께 듀오로 지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67년 마크 노플러는 할로 테크니칼 단과 대학(Harlow Technical College)의 신문학과(Journalism)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고 학기를 마치자 웨스트요크셔 주의 리즈(Leeds)에 있는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Yorkshire Evening Post)에 학생기자로 취직하여 일을 하게 된다. 2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마크 노플러는 학업을 계속 하기 위해 리즈 대학(University of Leeds)에 편입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면서 마크 노플러는 지역의 선술집(Pubs)을 무대로 활동하는 여러 그룹들을 전전하며 음악 생활을 지속하였고 카페 레이서(Cafe Rac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마크 노플러는 블루스맨 스티브 필립스(Steve Phillips)를 만나 음악적 교류를 나누게 된다.

 

1974년 마크 노플러는 Summer's Coming My Way 라는 데모 곡을 만들었으나 공개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고 런던으로 옮겨가 브루우스 드룹(Brewer's Droop)이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잠시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마크 노플러의 동생인 데이비드는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의 룸메이트가 존 일슬리였다. 어느날 우연히 데이비드의 집에서 마크 노플러와 존 일슬리가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남이 다이어 스트레이츠로 이어지게 된다.

 

1977년 7월, 마크 노플러와 존 일슬리는 마크 노플러가 브루우스 드룹 시절 연이 닿았던 픽 위더즈와 마크의 동생인 데이비드 노플러를 합류시켜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다섯곡의 데모 곡을 녹음하게 된다. 이 데모에는 Sultans of Swing 을 비롯하여 'Wild West End', 'Down To The Waterline', 'Sacred Loving', 'Water of Love' 가 포함되었다. 그해 10월에는 BBC Radio London 에서 추가로 'Southbound Again', 'In The Gallery', 'Six Blade Knife' 세곡이 녹음 되었으며 11월에는 'Setting Me Up', 'Eastbound Train', 'Real Girl', 세곡의 데모 테입이 제작되었다.

 

만들어진 데모 테입은 BBC Radio London 의 DJ 찰리 질레트(Charlie Gillett)를 통해 전파를 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포노그램(Phonogram) 산하의 버티고(Vertigo)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78년 2월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간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그해 7월 데뷔 음반 Dire Straits 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에서도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Sultans Of Swing 은 영국에서 싱글 차트 8위에 미국에서는 빌보드 차트 4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였으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부상하였다.
 
Sultans Of Swing 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초기를 대표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