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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아르헨티나 산타페(Santa Fe)주 베나도뚜에르또(Venado Tuerto)에서 영국군 대령으로 복무하고 있던 아버지와 영국 왕 '헨리 3세(1216-1272 재위)'의 대법관인 '휴버트 디 버그(Hubert de Burgh)'의 후손으로 영국 외교관의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가수 '크리스 디 버그(본명: Christopher John Davison)'는 우리나라 팝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곡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이 노래는 해마다 4월이면 꾸준히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팝팬들의 애청곡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크리스 디 버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남동부 렌스터(Leinster)주 웩스퍼드(Wexford)에 있는 12세기에 지어진 휴버트 디 버그의 '바르지 성(Bargy Castle)'을 구입하여 호텔로 개조하고 정착하게 된다. 어릴때 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크리스 디 버그는 호텔의 공연장 무대에서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 보고는 했는데 이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된다. 결국 크리스 디 버그는 틈날때 마다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경력을 쌓아 나가게 된다.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의 영문과에 진학한 크리스 디 버그는 학업과 병행하여 틈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커피 하우스와 선술집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크리스 디 버그는 가족 소유의 호텔로 돌아와 호텔내 공연장의 무대에 기타를 들고 올랐으며 이때 부터 어머니의 처녀 때 성인 '디 버그(De Burgh)'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 호텔내 공연장에 모습을 보이던 크리스 디 버그는 1972년 10월의 어느 날 저녁에 단골 손님을 위한 파티에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 공연을 지켜보던 '에그 음반사(Egg Records)' 관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생애 처음으로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에그에서 발표한 소량의 싱글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져 갔으며 음반 계약 역시 흐지부지 파기되고 말았다.

에그 음반사와의 계약이 실패로 마무리 된 후 때를 기다리던 크리스 디 버그는 마침내 1974년에 대형 음반사인 'A&M 음반사(A&M Records)'와 정식으로 음반 계약을 하고 음반사의 후원으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수퍼트램프(Supertramp)'의 'Crime of the Century' 순회 공연에 보조 출연자로 참가하여 팬들과 대형 무대에서 만날 기회를 잡게 된다. 수퍼트램프와의 공연을 마감한 후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2월에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를 발표하였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음악에 영향받아 제작된 데뷔 음반 'Far Beyond These Castle Walls'은 영국 차트 진입을 기대하며 발표한 음반이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팬들에게 외면 받았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싱글 차트 진입에 실패하며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의외의 나라에서 히트 곡을 만들게 되는데 바로 바다 건너 브라질에서 였다.

크리스 디 버그의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Turning Round'가 17주 동안 브라질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머무르는 히트를 하였던 것이다. 이로인해 크리스 디 버그는 브라질에서 가수 겸 작곡가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데뷔 음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후속 음반 작업을 서둘러 마친 크리스 디 버그는 1975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두번째 음반 'Spanish Train and Other Stories'을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발매한 크리스마스 싱글 'A Spaceman Came Travelling'이 마침내 기다리던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였고 40위권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예수님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만든 곡인 'A Spaceman Came Travelling'은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과의 조우, 그리고 외계인이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음악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1977년에 세번째 음반 'At the End of a Perfect Day'를 발표한 크리스 디 버그는 이때 부터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1979년 크리스 디 버그는 네번째 음반 'Crusader'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와 여러 차례 음반 작업을 했던 '앤드루 파웰(Andrew Powell)'이 제작을 담당하여 오케스트라 편곡과 합창단을 음반에 포함시켜 아름다운 소리를 창조해내었다.

네번째 음반의 수록 곡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곡인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외에도 앤드루 파웰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 주고 있는 음반의 타이틀 곡 'Crusader'를 비롯하여 역시 앤드루 파웰의 피아노가 삽입된 곡들인 'Just In Time', 'Old-Fashioned People', 'You And Me'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 디 버그 (Chris De Burgh) : 1948년 10월 15일 아르헨티나 베나도 뚜에르또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deb.com/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감상하기 : http://youtu.be/FRp_KGtdQpU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Linda Ronstadt - It's So Easy

 

Linda Ronstadt - It's So Easy

미국 애리조나 주 남쪽의 휴양 도시인 투손(Tucson)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린다 론스태드(본명: Linda Maria Ronstadt)'는 컨트리 팝을 비롯하여 포크,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오페레타 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발표하며 활동하였고 1970년대 중반 부터 1980년 초 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다. 그녀가 1970년에 발표했던 곡인 'Long, Long Time'과 1977년 발표 곡인 'It's So Easy'는 팝팬들의 오랜 애청곡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9년에 발표했던 소울 가수 '아론 네빌(Aaron Neville)'과의 듀엣 곡 'Don't Know Much'는 새로운 팬들을 만들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린다 론스태드는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던 어머니와 기계 부품 사업을 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명의 남자 형제와 여동생을 둔 린다 론스태드는 10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목장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들 가족은 1953년에 발행된 미국의 여성지인 '패밀리 서클(Family Circle)'에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부족한 것이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린다 론스태드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기타 주자인 '밥 키멀(Bob Kimmel)'을 만나면서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생 항로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린다 론스태드가 대학에 다니고 있던 1960년대 중반의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포크 록과 컨트리 록의 부흥 운동으로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밥 키멀과 만난 린다 론스태드는 그와 듀오로 포크 음악들을 노래하며 새로운 흐름에 일조하게 된다. 밥 키멀과의 활동이 만족스러웠던 린다 론스태드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와 함께 로스 앤젤레스로 옮겨 가서 새로운 음악 동지인 '케니 에드워즈(Kenny Edwards)'를 만나 포크 트리오인 '스톤 포니스(The Stone Poneys)'를 1965년에 결성하였다.

린다 론스태드는 스톤 포니스의 일원으로 1967년 1월 30일에 발표한 데뷔 음반 'The Stone Poneys'를 시작으로 6월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Evergreen, Volume 2'와 1968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이자 트리오의 마지막 음반인 'Linda Ronstadt, Stone Poneys and Friends, Vol. III' 까지 참여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트리오에서 탈퇴하게 된다. 스톤 포니스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 'Hand Sown ... Home Grown'을 1969년 3월에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한 린다 론스태드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 곡인'Long, Long Time'이 수록되어 있는 두번째 음반 'Silk Purse'를 1970년 3월에 발표하였다.

컨트리 음악을 시도한 두번째 음반 'Silk Purse'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3위를 기록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시기에 '도어스(The Doors)'나 닐 영(Neil Young), 그리고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같은 유명 가수들과 함께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 포크 록을 시도한 음반 'Linda Ronstadt(163위)'를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1973년에 네번째 음반 'Don't Cry Now(45위)'를 발표하여 그룹 '이글스(The Eagles)'의 '돈 헨리(Don Henley)'와 '글렌 프레이(Glenn Frey)'가 만든 곡인 'Desperado'를 시작으로 'Love Has No Pride'와 'Silver Threads and Golden Needles'를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시키면서 히트를 시켰다.

1974년 11월에 린다 론스태드는 자신의 출세작인 다섯번째 음반 'Heart Like a Wheel'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You're Not Good'이 발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형 히트를 하였고 이어진 두번째 싱글 'When Will I Be Loved'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였다. 세번째 싱글 'It Doesn't Matter Anymor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7위 그쳤으나 두 곡의 대형 히트 곡으로 린다 론스태드의 음반 'Heart Like a Wheel'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51주간이나 앨범 차트에 머무르게 된다.

이 음반으로 대형 인기 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후 여자 가수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5년 9월에 발표한 음반 'Prisoner in Disguise'는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였고 1976년 8월에 발표한 음반 'Hasten Down the Wind'는 앨범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히트 곡 'It's So Easy'가 수록된 음반 'Simple Dreams'를 1977년 9월에 발표한 린다 론스태드는 이 음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또 다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1978년 9월에 발표한 음반 'Living in the USA'에서는 'Back in the U.S.A.'와 'Ooh Baby Baby'를 히트시키면서 2연속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즈음 부터 린다 론스태드에게는 '록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of Rock)'나 '록의 여왕(Queen of Rock)'이라는 호칭이 따라 다니게 된다. 그래미 상을 10회나 수상하며 음악성을 인정 받았던 린다 론스태드는 1976년의 그래미 상에서 'Heart Like a Wheel' 음반에 수록되었던 곡인 'I Can't Help It (If I'm Still In Love With You)'로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Best Country Vocal Performance Female)'을 수상하면서 생애 첫 그래미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었다.

린다 론스태드 (Linda Ronstadt) : 1946년 7월 15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ronstadt-linda.com/
It's So Easy 감상하기 : http://youtu.be/_AtnfDo4PE8
Long, Long Time 감상하기 : http://youtu.be/gG4lsjSY_vk
Don't Know Much 감상하기 : http://youtu.be/soO0CMnU9Bo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Sade - Smooth Operator

 

Sade - Smooth Operator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Pride)'에서 출발한 소피스티 팝 밴드 '샤데이'는 밴드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샤데이 아두(본명 : Helen Folasade Adu)'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 밴드이다. 어린 시절 소울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자란 샤데이 아두는 10대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밤마다 실컷 들을 수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샤데이 아두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열열한 환호를 보내는 바를 찾은 관객들의 반응에 이끌려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에서 노래 부를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경제학 교수로 흑인이었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영국 출신의 간호사였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샤데이 아두는 나이지리아의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바단(Ibadan)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샤데이 아두가 네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샤데이 아두는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와 에섹스(Essex)주의 해변 마을인 홀랜드온시(Holland-on-Sea)에서 성장하게 된다.

평화로운 해변 마을에서 성장한 샤데이 아두는 열여덟살이 되자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입학하게 된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에 막 입학한 샤데이 아두는 뜻하지 않게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일의 시작은 그녀의 오랜 친구 두명이 밴드를 결성하여 그녀에게 보컬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부터 였다. 하지만 당시 친구들의 요청을 수락하여 밴드의 보컬을 맡게 된 샤데이 아두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대 공포증을 겪기도 했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단련시켜 나갔던 샤데이 아두는 마침내 무대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대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샤데이 아두는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의 백보컬로 가입하여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샤데이 아두를 포함하여 8인조였던 프라이드는 장기간의 영국 순회 공연 활동을 소화하면서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재즈적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샤데이 아두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드와 샤데이 아두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샤데이 아두가 직접 만든 곡인 'Smooth Operator'였다. 'Smooth Operator'의 히트는 음반사의 관심을 끌게 되어 마침내 1983년에 샤데이 아두는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솔로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솔로 음반 계약에는 샤데이 아두가 제시한 특이한 옵션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그것은 프라이드의 멤버들인 스튜어드 매튜맨, 폴 스펜서 덴만, 앤드류 헤일과 함께 계약한다는 조항이었다.

샤데이 아두와 프라이드의 세 멤버는 새로운 밴드의 이름으로 샤데이 아두의 이름을 따서 샤데이로 짓고 데뷔 음반 녹음 작업에 들어가 1984년 2월 25일 첫번째 싱글인 'Your Love Is King'을 발표하였고 7월 28일에는 데뷔 음반 'Diamond Life'를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올려 놓은 샤데이는 두번째 싱글로 'When Am I Going to Make a Living'을 발매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였다.

차트 진입에 실패한 세번째 싱글 'Hang on to Your Love'에 이어 발표한 네번째 싱글이자 음반의 마지막 싱글인 'Smooth Operator'를 1984년 9월 15일에 발표한 샤데이는 이 곡으로 마침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에 그친 이 곡은 1985년 3월에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5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고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20위권에 진출하는 히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즈적인 분위기와 소울의 요소가 녹아 들어간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히트 곡 'Smooth Operator'의 성공으로 앨범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들였다.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 까지 진출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샤데이의 멤버들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누군가 샤데이의 음악을 '커피 향이 나는 음악'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샤데이의 데뷔 음반에서는 오늘도 진한 커피 향이 스며나오며 지난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샤데이 (Sade) :
샤데이 아두 (Sade Adu) : 보컬
스튜어드 매튜맨 (Stuart Matthewman) : 기타, 색소폰
폴 스펜서 덴만 (Paul Spencer Denman) : 베이스
앤드류 헤일 (Andrew Hale) : 키보드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피스티 팝(Sophisti-Pop), 소울(Sou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ade.com/kr/home/
Smooth Operator 감상하기 : http://youtu.be/sOI8ae3Lub8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Barry Manilow - Some Kind Of Friend

본명이 '베리 알란 핀커스(Barry Alan Pincus)'인 미국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반 제작자로 유명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의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다 팝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가수이다. 유대인인 배리 매닐로우는 아버지가 두살때 가족을 버리고 떠나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인 '에드너 매닐로우(Edna Manilow)'와 함께 살아야 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도 어머니의 처녀적 성인 매닐로우를 물려 받아 사용하게 된다.

일곱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배리 매닐로우는 뉴욕시 브루클린(Brooklyn)에 있었던 '이스턴 디스트릭트 고등학교(Eastern District High School, 1995년 폐교)'를 졸업한 1961년 부터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배리 메닐로우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CBS 방송국(Columbia Broadcasting System)'에서 아르바이트를 자리를 구해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해야 했다.

그러던 1964년에 배리 매닐로우는 방송국에서 뮤지컬 감독 '브로 헤로드(Bro Herrod)'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새로운 음악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평소 범상치 않았던 배리 매닐로우의 작곡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브로 헤로드는 자신이 무대에 올릴 예정인 뮤지컬 'The Drunkard'에 사용될 음악들을 그동안 늘 염두에 두고 있던 배리 매닐로우에게 다듬어 줄 것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는 브로 헤로드의 부탁을 받아들여 뮤지컬에 사용될 모든 곡을 새롭게 만들어서 건네주게 된다.

이렇게해서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브로드웨이 바깥에 있는 전문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The Drunkard'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며 8년간 장기 공연되었다. 이로 인해 배리 매닐로우는 음악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뮤지컬 작업으로 자신감을 얻은 배리 매닐로우는 본격적으로 팝 음악에 뛰어들어 피아노 연주자와 음반 제작자, 편곡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0년 부터는 광고 음악에도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당시 막 데뷔를 준비중이던 신인 가수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를 만나 그녀의 1972년 데뷔 음반 'The Divine Miss M'과 1973년에 발표했던 두번째 음반 'Bette Midler'에서 피아노 연주와 프로듀서로 음반 작업에 참가하여 베트 미들러를 인기 가수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한편 베트 미들러의 'The Divine Miss M'의 순회 공연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던 배리 매닐로우는 그후에도 그녀와 함께 공연 활동을 했으며 둘의 이러한 관계는 1975년 까지 이어지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는 베트 미들러와의 음악 작업과는 별개로 자신의 음반 데뷔를 준비하여 1973년 7월 7일에 데뷔 음반 'Barry Manilow I'을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배리 매닐로우는 자신의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 28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74년 10월에 두번째 음반 'Barry Manilow II'를 발표하였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9위에 올랐던 두번째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배리 매닐로우에게 성공 시대를 열어주었던 곡 'Man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미국 가수인 '스코트 잉글리시(Scott English)'가 1971년에 발표하여 히트 시켰던 곡 'Brandy'를 편곡하여 제목을 살짝 바꾸어 수록한 곡이었다.

싱글 'Mandy'의 성공 이후 배리 매닐로우는 두번째 싱글인 'It's a Miracle'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에 올려 놓으며 인기 행진을 이어 갔다. 1975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Tryin' to Get the Feeling'에서는 'Mandy'에 이어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인 'I Write the Songs'을 배출하였으며 두번째 싱글인 'Tryin' to Get the Feeling Ag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진출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 음반 'This One's for You'에서도 두 곡의 히트 싱글 'Looks Like We Made It(1위)'과 'Weekend in New England(10위)'를 배출했던 배리 매닐로우는 이 음반에 수록된 'Daybreak'의 라이브 버전을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에 올려 놓았다. 배리 매닐로우는 1978년에 음반 'Even Now'를 발표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인 'Can't Smile Without You(3위)'를 시작으로 'Copacabana(8위)'와 'Somewhere in the Night(9위)'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3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게 된다.

1979년에 발표한 음반 'One Voice'에서는 'I Don't Want to Walk Without You(36위)'와 'When I Wanted You(20위)'를 히트시켰으며 1980년 음반 'Barry'에서는 'I Made It Through the Rain(10위)'과 'Lonely Together(45위)'를 히트시켰다. 이어진 1981년 음반 'If I Should Love Again'을 통해 'The Old Songs(15위)', 'Let's Hang On(32위)', 'Somewhere Down the Road(21위)'등 세곡을 히트시킨 배리 매닐로우는 1982년에 음반 'Here Comes the Night'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에서는 'Memory(39위)'만이 차트에 진입하면서 부진에 빠져들게 된다.

비록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Here Comes the Night' 음반에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경쾌한 리듬의 곡 'Some Kind Of Friend'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그 경쾌함으로 인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배리 매닐로우가 2005년에 발표했었던 음반 'The Essential Barry Manilow'에는 앞서 언급한 곡들 외에도 배리 매닐로우가 차트에 진출시켰던 모든 곡들이 두장의 시디에 포함되어 있어 그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더듬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른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리 매닐로우 (Barry Manilow) : 1946년 6월 17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 Rock),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anilow.com/
Some Kind Of Friend 감상하기 : http://youtu.be/3c-35YPi6hM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Lulu - To Sir With Love

 

Lulu - To Sir With Love

영국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항구 도시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룰루는 '마리 맥도널드 맥라플린 로리(Marie McDonald McLaughlin Lawrie)'라는 긴 이름을 본명으로 가지고 있는 가수 겸 작곡가이며 1967년에 개봉했던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의 출연으로 유명해진 영화 배우이기도 하다.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룰루는 아홉살때 처음으로 글래스고의 클럽 무대를 통해 아역 가수로 팝계에 데뷔하였다. 데뷔 무대를 가진 이후 룰루는 글래스고 출신 밴드의 보조를 받으며 꾸준히 클럽에 출연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름을 알려나가게 된다.

열두살이 되던 해 부터는 정식으로 매니저를 고용하여 좀더 전문적인 관리를 받게 되는데 이 즈음 그녀의 매니저는 밴드의 보컬을 맡아줄 가수를 찾고 있던 '벨록스(The Bellrocks)'라는 이름의 밴드에 룰루를 가입시켜 매주 토요일 밤의 클럽 무대를 뜨겁게 달구기도 하였다. 클럽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 인기를 얻어 가던 룰루는 열여섯살이 되던 해인 1964년에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싱글 음반 계약을 맺고 흑인 소울 밴드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가 1959년에 발표했던 곡인 'Shout'를 커버하여 데뷔 싱글로 발표하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하며 룰루에게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주었던 데뷔 싱글은 '룰루 앤 루버스(Lulu & The Luvvers)'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었는데 룰루의 백밴드로 참가하고 있는 루버스는 스코틀랜드 출신 록 밴드로써 히트 곡 'Shout'가 밴드의 이름으로 거둔 최고의 성적이기도 했다. 룰루는 1965년에 히트 곡 'Shout'가 수록된 데뷔 음반 'Something to Shout About'를 발표한 후 이듬해에 영국 록 밴드인 '홀리스(The Hollies)'와 함께 폴란드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당시로써는 공산권 국가에 순회 공연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영국 출신의 여자 가수로써는 최초의 시도였다.

폴란드 공연을 마친 후 영국으로 돌아온 룰루는 데카를 떠나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1967년에 싱글 'The Boat That I Row'를 발표하여 다시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시켰다. 싱글이 성공하면서 룰루의 인기가 높아지자 컬럼비아 영화사에서는 룰루에게 영화 출연을 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가 주연을 맡은 1967년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에 출연하게 된 룰루는 연기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더불어 영화 주제가인 'To Sir With Love'의 히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에 올랐던 곡 'To Sir With Love'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애청 곡이자 팝의 고전으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한편 룰루는 'To Sir With Love'를 히트시킨 후 가수 활동과 함께 꾸준히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게 되지만 더이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룰루 (Lulu) : 1948년 11월 3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AM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luluofficial.com/
To Sir With Love 감상하기 : http://youtu.be/FbLs80cuots

2010년 9월 6일 월요일

Chris Rea - Auberge

 

Chris Rea - Auberge

'크리스 리어(본명: Christopher Anton Rea)'는 영국 클리블랜드 주의 북동부에 있는 항구 도시 미들즈버러(Middlesbrough)에서 태어난 가수 겸 작곡가이며 기타 연주자이다. 흔히 우수에 젖은 듯한 쉰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표현하는 크리스 리어는 스물두살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의 기타를 구입한 늦깍이 가수 지망생이었다. 학교 졸업후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업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크리스 리어는 '조 월쉬(Joe Walsh)'와 '라이 쿠더(Ry Cooder)'라는 이름을 가진 두명의 기타 연주자들의 음반을 듣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조 월쉬와 라이 쿠더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기타 연주에 단숨에 매료되어 버린 크리스 리어는 기타를 장만한 후 미들즈버러에서 활동하던 지역 밴드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 때 마침 '맥들린(Magdalene)'이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새로운 멤버를 구하는 것을 알게 된 크리스 리어는 곧바로 멤버들과 접촉하여 가입 의사를 전했고 1973년 부터 맥들린에 합류하여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크리스 리어 이전에 맥들린에 있었던 멤버는 후일 '딥 퍼플(DeepPurple)'과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를 거치며 유명해지는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로 그가 '스카이라이너스(The Skyliners)'로 옮겨가게 되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크리스 리어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 리어가 커다란 기대를 안고 가입한 맥들린은 지역에서 조차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침체일로를 향해 가다가 급기야 '뷰티플 루저스(Beautiful Losers)'로 이름을 바꿔가면서 까지 활로를 모색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에 크리스 리어는 솔로 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밴드를 탈퇴하여 1974년에 '마그넷 음반사(Magnet Records)'와 솔로 음반 계약을 맺게 된다. 1974년에 마그넷을 통해 데뷔 싱글 'So Much Love'를 발표한 크리스 리어는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 '캐서린 하우(Catherine Howe)'가 1977년에 발표한 미니 음반(EP) 'The Truth of the Matter'와 영국의 기타 연주자인 '행크 마빈(Hank Marvin)'의 1977년 발표 음반 'Hank Marvin Guitar Syndicate'에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후 1978년에 솔로 데뷔 음반 'Whatever Happened to Benny Santini?'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첫번째 싱글로 발매된 'Fool (If You Think It's Over)'는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2위 까지 진출하였고 빌보드 어덜터 컨템퍼러리 차트(Billboard Adult Contemporary)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들였다. 그렇지만 정작 크리스 리어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싱글 'Fool (If You Think It's Over)'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차트 진입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히트를 발판 삼아 1978년 말에 재발매 된 싱글 'Fool (If You Think It's Over)'는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30위 까지 진출하는 뒤 늦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꾸준한 활동으로 유럽 지역에서 지명도를 넓혀 나가던 크리스 리어는 1983년에 발표한 음반 'Water Sign'부터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바다 건너 유럽 전역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크리스 리어는 1985년 음반 'Shamrock Diaries'와 1986년 음반 'On the Beach' 그리고 1987년 음반 'Dancing with Strangers'를 통해 변함없는 음악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1989년에는 음반 'The Road to Hell'을 발표하여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데뷔 이후 최고의 성과를 기록하였다. 음반 'The Road to Hell'의 활동을 마감한 후 크리스 리어는 1991년 4월에 자동차 경주 장면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알란 펀리(Alan Fearnley)'가 그린 그림을 음반 표지에 담은 새 음반 'Auberge'를 들고 팬들에게 복귀 신고를 하였다.

새 소리와 발 걸음 소리 그리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로 시작하는 자동차 여행에 관한 음반 타이틀 곡 'Auberge'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크리스 리어라는 영국 가수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곡으로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던 크리스 리어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곡이다. 또한 이 음반엔 'Heaven' 처럼 우리나라 팝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여행에 관련된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들이 수록되어 일관된 흐름을 듣는 이에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여행 이야기는 아니지만 크리스 리어의 쉰듯한 목소리와 블루스 느낌의 기타 연주가 전해주는 색다르지만 친근한 여유로움을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음반이 바로 'Auberge'이기도 하다. 한편 'Still So Far To Go: The Best Of Chris Rea'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크리스 리어의 대표 곡을 모은 리마스터 버전은 위에 언급한 곡들 외에도 크리스 리어의 매력을 담은 대표 곡들이 두장의 CD에 빼곡히 수록되어 가격대비 만족도를 높여주고 있다.

크리스 리어 (Chris Rea) : 1951년 3월 4일 영국 미들즈버러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앨범 록(Album 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artistdirect.com/artist/chris-rea/483352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LN5hiN2q3Vg

2010년 9월 1일 수요일

Roxette - The Look

 

Roxette - The Look

'아바(ABBA)'의 뒤를 이어 전세계의 팝 시장을 석권했던 스웨덴의 록세트는 1986년에 결성되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웨덴을 대표하는 혼성 팝 듀오였었다. 스웨덴 남부 할란드(Halland)주의 주도이며 항구 도시인 할름스타드(Halmstad)에 태어난 '페르 게슬'은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듀오를 결성하기 이전 부터 가수 겸 작곡가이자 기타 주자로 활동하던 음악인이었다.

페르 게슬은 1976년에 밴드 '오디오비슬레트 앙그렙( Audiovisuellt Angrepp)' 출신의 '마츠 패숀(Mats Persson)'을 만나 그와 함께 듀오 '그레이프 록(Grape Rock)'을 결성하면서 음악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그레이프 록에 세명의 연주자가 추가로 가입하면서 듀오는 밴드로 바뀌었고 이름도 그레이프 록에서 '길란 티더(Gyllene Tider)'로 바뀌게 된다. 할름스타드 지역을 근거로 활동을 시작한 길란 티더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할름스타드에서 펼친 공연으로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이에 밴드는 서둘러 미니 음반(EP)을 제작하여 1978년에 'Billy'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공개된 후 삽시간에 900장을 팔아 치우는 기록을 세우며 매장에서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길란 티더는 1980년에 데뷔 음반 'Gyllene Tider'를 발표하였고 이후 1984년에 발표한 음반 'The Heartland Cafe' 까지 넉장의 음반을 발표한 후 1985년에 해산하였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이 백보컬로 참여한 길란 티더의 마지막 음반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영어 가사로 만들어졌으며 밴드 이름도 '록세트(Roxette)'로 바꾸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음반 판매가 부진하여 길란 티더는 결국 미국 시장 진출 대신 해산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록세트라는 이름은 밴드 해산 후 페르 게슬이 결성한 듀오가 이어 받으면서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하여 길란 티더의 꿈을 대신 이루게 된다.

앙엘홈(Angelholm)의 소도시 오쏘(Ossjo)에서 태어난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십대 시절에는 '딥 퍼플(Deep Purple)', '조니 미첼(Joni Mitchell)',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음악 대학에 진학하여 음악을 공부하는 한편으로 극장 무대에 올라 연극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할름스타드로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남자 친구가 활동하고 있던 밴드 '스트룰(Strul)'에 가입하여 할름스타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밴드의 일원으로 싱글을 제작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스트룰(Strul)'이 해산하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남자 친구와도 결별하고 새로운 밴드를 찾다가 '마마스 반(MaMas Barn)'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 밴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해산하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이때 부터 솔로 활동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솔로 활동을 모색하던 1981년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길란 티더의 공연에서 백보컬을 맡게 되는데 이때 부터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길란 티더의 인연은 록세트 결성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길란 티더가 1984년 2월에 발표한 영어 가사 음반 'The Heartland Cafe'에 참가하여 백보컬을 담당하였으며 그해 9월에는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 'Het Vind'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고 1986년 2월에 두번째 음반 'Den sjunde vagen'을 발표하였다. 한편 1983년에 솔로 데뷔 음반 'Per Gessl'을 발표하였던 페르 게슬은 길란 티더의 해산 후인 1985년 10월에 두번째 솔로 음반 'Scener'을 발표한 후 EMI 음반사의 음악 감독 '롤프 나이그렌(Rolf Nygren)'의 제안에 따라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함께 듀오를 결성하였고 듀오의 이름으로는 이전에 길란 티더가 사용하려고 했던 록세트를 사용하게 된다.

록세트라는 이름은 영국 록 밴드 '닥터 필굿(Dr. Feelgood)'의 데뷔 음반 'Down by the Jetty'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록세트는 1986년 7월에 싱글 'Neverending Lov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고 10월에는 데뷔 음반' Pearls of Passion'을 발표하였다. 록세트의 데뷔 싱글은 스웨덴의 싱글 차트에서 10위권에 진출하며 히트하였고 싱글 음반도 5만장이 팔려 나갔다.

성공적인 데뷔 이후 록세트는 1987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파워 발라드 곡인 'It Must Have Been Love'를 발표하였는데 후일 이 곡은 1990년에 개봉되었던 '리차드 기어(Richard Gere)'와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 삽입되면서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1988년 10월에 두번째 음반 'Look Sharp!'을 발표한 록세트는 세번째 싱글로 발표한 'The Look'이 우연한 기회를 맞아 미국에 알려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록세트의 노래가 미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스웨덴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던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신의 학생 '딘 커시맨(Dean Cushman)'이 'The Look'을 듣고 마음에 들어서 미국으로 돌아갈때 'Look Sharp!' 음반 전체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들고 갔다가 미니애폴리스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 'KDWB'에 보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테이프를 받은 'KDWB'에서는 'The Look'을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하였는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스웨덴에서 건너온 록세트의 음악을 주목받게 만들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록세트는 미국 시장에서 음반 발매를 하게 되었고 싱글로 발표된 'The Look'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세계적으로 록세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성공 이야기가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소개가 되면서 록세트는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The Look'과 'Listen to Your Heart'가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록세트 (Roxette) :
페르 게슬 (Per Gessle, 기타, 보컬) : 1959년 1월 12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출생
마리에 프레드릭슨 (Marie Fredriksson, 보컬) : 1958년 5월 30일 스웨덴 오쏘 출생

갈래 : 유로 팝(Euro-Pop),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xette.se/


2010년 8월 30일 월요일

Captain & Tennille - Do That To Me One More Time

 

Captain & Tennille - Do That To Me One More Time

닐 세다카의 1973년 곡을 커버한 'Love Will Keep Us Together'를 1975년에 데뷔 싱글로 발표하여 2백 50만장 이상을 판매하였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유명해진 부부 듀오 '캡틴 앤 테닐'은 대형 히트를 기록한 데뷔 싱글로 인해 1976년 초에 진행된 '그래미 상(Grammy Award)'에서 '올해의 음반(Record of the Year)'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3년 9월에 정식 결성된 캡틴 앤 테닐의 토니 테닐은 앨라배마(Alabama)주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프랭크 테닐(Frank Tennille)'은 '클라크 랜달(Clark Randall)'이라는 예명으로 빅밴드인 '밥 크로스비(Bob Crosby)'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였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캐서린 테닐(Cathryn Tennille)'은 몽고메리 지역에서 주간에 방영되던 텔레비전 토크 쇼의 진행자로 텔레비전 토크 쇼의 개척자라는 평을 듣는 여성이었다.

이런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부터 연예계 진출을 당연시 하며 자랐던 토니 테릴은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는 한편으로 제인(Jane)과 루이사(Louisa), 그리고 멜리사(Melissa)라는 이름을 가진 세명의 자매들과 함께 보컬 그룹을 결성하여 어머니의 텔레비전 쇼에 몇차례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앨라배마주의 '어번 대학교(Auburn University)'에 진학한 토니 테릴은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교내에서 활동하던 빅밴드인 어번 나이츠(The Auburn Knights)에 보컬리스트로 가입하여 음악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에 캘리포니아로 온 토니 테릴은 드러머인 '케네스 시어러(Kenneth Shearer)'와 결혼하고 '사우스코스트 레퍼토리(South Coast Repertory)' 극단에 들어가게 된다. 1971년에 공동 작업으로 만든 록 뮤지컬 '마더 어스(Mother Earth)'를 무대에 올린 토니 테릴은 공연에서 키보드를 담당할 연주자를 공개 모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대릴 드래곤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다.

대릴 드래곤은 지휘자 '카르멘 드래곤(Carmen Dragon)'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여러 악기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가 주로 다루었던 악기는 키보드였다. 대릴 드래곤의 형인 '데니스 드래곤(Dennis Dragon)'은 1960년대에 활동했던 팝 캄보(Combo: 소규모 재즈 악단) 밴드 '드래곤스(The Dragons')에서 활동하였으며 대릴 드래곤도 1962년 부터 '찰스 라이트 & 라이트 사운즈(Charles Wright & the Wright Sounds)'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음반 'Surf's Up' 순회 공연에 키보드 주자로 참가하여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릴 드래곤은 늘 머리에 선원 모자를 쓴 채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였다. 이 모습을 본 비치 보이스의 '마이크 러브(Mike Love)가' 그에게 캡틴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게 된다. 비치 보이스와의 순회 공연이 마무리 되자 대릴 드래곤은 토니 데릴의 록 뮤지컬 '마더 어스(Mother Earth)'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운명의 동반자가 될 토니 데릴을 만나게 된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자 대릴 드래곤은 토니 테릴을 비치 보이스의 다음번 순회 공연에 참가시키게 되는데 둘은 이때 부터 함께 활동하게 된다. 1972년에 케네스 시어러와 이혼한 토니 테릴은 대릴 드래곤과 듀오로 활동하기로 하고 음반 계약을 추진하게 된다. 마침내 1973년에 'A&M 음반사(A&M Records)'와 듀오로 계약하게 된 캡틴 앤 테닐은 싱글 'The Way I Want to Touch You'를 녹음하였으나 발표가 미루어졌으며 대신 나중에 녹음된 닐 세다카의 커버 곡 'Love Will Keep Us Together'가 1975년에 데뷔 싱글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캡틴 앤 테닐의 데뷔 싱글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9주간 1위 자리를 지키며 대형 히트를 하였고 캡틴 앤 테닐은 이 싱글로 그래미 상 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1975년 11월 11일 대릴 드래곤과 토니 테릴은 결혼을 하여 부부 듀오가 되었으며 공개가 미루어졌던 싱글 'The Way I Want to Touch You'를 두번째 싱글로 발표하였다. 캡틴 앤 테닐의 두번째 싱글은 빌보드 싱글 차트 에서 4위를 차지하며 데뷔 싱글의 뒤를 잇는 히트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이후 'Lonely Night (Angel Face)', 'Shop Around', 'Muskrat Love', 'You Never Done It Like That' 등을 히트 시킨 캡틴 앤 테닐은 1979년에 'Do That to Me One More Time'을 발표하였다. 1979년 음반 'Make Your Move'에 수록된 이 싱글은 음반 표지 사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번만 더 해 주세요, 당신같은 남자와 한번으로는 부족하잖아요.' 라는 노골적인 가사로 시작하고 있는데 싱글로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1975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차트 정상을 차지한 'Do That to Me One More Time'은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 방공 금지 곡 처분을 받지 않은 채 자주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지 곡이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캡틴 앤 테닐 (Captain & Tennille) :
대릴 드래곤 (Daryl Dragon, 키보드) : 1942년 8월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생
토니 테릴 (Toni Tennille, 보컬) : 1940년 5월 8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출생

갈래 : 어덜트 컨템퍼러리(Alternative Rock), AM 팝(AM Pop),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aptainandtennille.net/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Suzanne Vega - Luka

 

Suzanne Vega - Luka

1970년대 말에 펑크 음악을 밀어내고 등장한 뉴 웨이브(New Wave) 음악은 198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전세계의 음악계를 강타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이렇듯 기세가 등등했던 뉴웨이브 음악도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에 신선한 포크 음악을 들고 음악계에 등장한 가수가 바로 '수잔 베가'였다. 통기타를 연주하며 포크 음악의 새로운 부흥을 주도한 수잔 베가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의 샌타모니카(Santa Monica)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 아버지와 독일계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수잔 베가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이혼하였고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로 일하고 있던 어머니 '팻 베가(Pat Vega)'는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출신의 교사이자 작가인 에드가르도 베가 윤케(Edgardo Vega Yunque)와 재혼하게 된다. 수잔 베가가 막 두살이 되던 해에 일가족은 뉴욕으로 이사를 하였고 수잔 베가는 맨해튼(Manhattan)의 스패니시 할렘(Spanish Harlem)과 어퍼 웨스트 사이드(Upper West Side) 지역에서 성장하게 된다.

작가인 계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수잔 베가는 아홉살 때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열네살 때에는 직접 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기도 하였다. 뉴욕의 명문인 '예술 고등학교(High School of Performing Arts)'에 진학하여 현대 무용(Modern Dance)을 전공한 수잔 베가는 197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의 바너드 대학교(Barnard College)에 진학하여 영국 문학(English Literature)을 전공하게 된다.

대학 진학 후 수잔 베가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이미 그녀는 대학 진학 이전 부터 포크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그녀의 첫 걸음은 통기타를 들고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작은 무대를 찾는 것이었고 더불어 가수 겸 작곡가 '잭 하디(Jack Hardy)'가 코넬리아 스트리트 카페(Cornelia Street Cafe)에서 매주 월요일 밤에 주최했던 작곡가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잭 하디는 작곡가들의 모임을 주최하여 포크 음악을 알리는 한편으로 패스트 포크(Fast Folk)라는 음악 잡지의 편집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수잔 베가가 만든 곡이 이 잡지에 실리게 되고 이 잡지를 본 'A&M 음반사(A&M Records)'에서 수잔 베가에게 음반 계약을 제의하게 된다. 패스트 포크에 자신의 노래가 실렸던 인물 중에서 최초로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 수잔 베가는 1985년 5월에 데뷔 음반 'Suzanne Vega'를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수잔 베가의 데뷔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11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91위 까지 진출하며 새로운 포크 가수의 출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새로운 포크 가수의 등장이라는 평론가들의 찬사 속에 싱글 'Small Blue Thing'과 'Marlene on the Wall'을 히트시킨 수잔 베가는 1987년 4월 1일에 두번째 음반 'Solitude Standing'을 공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Luka'는 가정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학대받는 루카라는 주인공 아이의 이야기를 루카의 관점을 통해 노래하고 있는데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싱글과 함께 공개된 'Luka'의 뮤직 비디오는 MTV 뮤직 비디오상에서 '최우수 여자 가수 비디오상'을 수상하였으며 싱글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위 까지 진출하였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는 23위 까지 진출하며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하였다.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에 무관심했던 세상을 향해 일침을 가했던 곡 'Luka'는 곡에서 전해지는 쓸쓸한 분위기가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며 팝팬들의 애청 곡으로 자리 잡았다.

수잔 베가 (Suzanne Vega) : 1959년 7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갈래 : 포크(Folk), 어덜트 컨템퍼러리(Alternative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suzannevega.com/


2010년 8월 26일 목요일

James Taylor - Fire And Rain

 

James Taylor - Fire And Rain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보스턴(Boston)의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태어난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기타 주자인 '제임스 테일러'는 혼란스러운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주류를 이루던 1960년대가 마감되고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신선한 바람을 몰고 등장한 가수이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팝계에 등장하여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싱어송라이터의 대표 주자가 된 제임스 테일러는 데뷔 이후 잔잔하게 퍼지는 포근한 목소리와 정감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제임스 테일러가 세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노스캐롤라이나 의과 대학(University of North Carolina School of Medicine)의 조교수로 부임하게 되어 가족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카보로(Carrboro)로 이사하게 되었고 제임스 테일러는 카보로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릴때 처음으로 배운 악기는 첼로(Cello)였으나 십대가 되면서 기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1960년 부터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제임스 테일러는 1961년 가을에 아이비 리그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기숙 학교인 밀튼 아카데미(Milton Academy)에 진학하였으며 이듬해 여름에는 고급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Martha's Vineyard)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다가 뉴욕에서 온 기타 주자 '대니 코치머(Danny Kortchmar)'를 만나게 된다. 둘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 곧바로 친해졌고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두사람은 1963년에 포크 듀오 '제이미 앤 쿠치(Jamie & Kootch)'를 결성하여 커피하우스를 무대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학업을 등한시하고 음악 활동에 전념하면서 성적이 떨어진 제임스 테일러는 밀튼 아카데미에서 나와서 채플 힐 고교(Chapel Hill High School)에 편입하여 한학기를 다니게 된다. 이 즈음 제임스 테일러는 동생인 '알렉스 테일러(Alex Taylor)'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는데 이 밴드의 이름은 '코세이어스(The Corsayers)'였다. 코세이어스에서 전기 기타를 담당했던 제임스 테일러는 자신이 만든 곡 'Cha Cha Blues'를 밴드의 싱글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채플 힐 고교에서 한학기를 무사히 마친 제임스 테일러는 밀튼 아카데미로 돌아가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 테일러는 우울증에 걸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1965년에 스스로 매클린 병원(McLean Hospital)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된다. 1966년에 병원에서 퇴원한 제임스 테일러는 대니 코치머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밴드 '플라잉 머신(Flying Machine)'을 결성하였다.

플라잉 머신은 제임스 테일러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에 만든 'Don't Talk Now'와 'Knocking 'Round the Zoo'등을 연주하며 무대에 섰고 1966년 여름에는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있는 나이트 아울 카페(Night Owl Cafe)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임스 테일러가 이 즈음 부터 헤로인 중독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플라잉 머신이 '주빌리 음반사(Jubilee Records)'를 통해 1966년 말에 발표한 싱글 'Brighten Your Night with My Day'가 차트에서 102위에 그치는 부진에 빠지자 주빌리로 부터 더 이상의 음반 발매를 거부당하게 된다.

결국 플라잉 머신은 해체의 수순을 밟아야 했고 제임스 테일러는 솔로 활동을 위해 1967년에 런던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런던에서 비틀즈(The Beatles) 소유의 '애플 음반사(Apple Records)'와 계약한 제임스 테일러는 싱글 'Carolina in My Mind'를 발표한 후 1968년 12월에 애플 음반사를 통해 데뷔 음반 'James Taylor'를 발표하였다. 영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애플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표한 가수가 된 제임스 테일러였지만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Carolina in My Min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8위에 오르는데 그치며 결과적으로 데뷔 음반은 실패한 음반이 되고 말았다.

데뷔 음반은 실패로 마감되었지만 제임스 테일러는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7월 20일에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Newport Folk Festival)'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된다. 수천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빗속에서 진행된 제임스 테일러의 무대를 관중들은 끝까지 지켜봐주었고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1969년 10월에 '워너 브라더스 음반사(Warner Bros.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한 제임스 테일러는 그해 12월에 캘리포니아에서 두번째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970년 2월에 공개된 제임스 테일러의 두번째 음반은 'Sweet Baby James'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으며 싱글로 발매된 'Fire And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3위 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8년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에 삽입되기도 했던 히트 곡 'Fire And Rain'은 제임스 테일러가 런던에서 막 애플과 계약하고 데뷔 음반을 준비중이던 때에 미국에서 사망한 그의 여자 친구 '수잔(Suzanne)'을 추억하는 마음과 우울증과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들게 버텨왔던 자신의 심정을 담아 만든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팝팬들이 사랑하는 곡이기도 하다.

한편 수잔의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제임스 테일러의 음반 작업에 지장을 줄까 우려한 친구들이 데뷔 음반 작업이 모두 끝날 때 까지 사고 소식을 알려주지 않아 제임스 테일러는 음반 녹음이 모두 끝난 뒤에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 1948년 3월 12일 미국 보스턴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amestaylor.com/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Carole King - You've Got a Friend

Carole King - You've Got a Friend

1971년에 발표한 음반 'Tapestry'를 1977년 까지 무려 6년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머물게 하며 1천 5백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하여 1970년대를 통털어 솔로 가수로는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캐롤 킹(본명: Carol Klein)'은 1942년에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브루클린에서 성장하며 네살때 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하는 소녀로 십대를 맞이한 캐롤 킹은 뉴욕 미드우드(Midwood)의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James Madison High School)에 진학하여서는 4인조 보컬 그룹 '코사인(Co-Sines)'을 결성하게 된다.

생기발랄한 십대였던 캐롤 킹은 전화번호부를 뒤지다 킹(King)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이때 부터 본명 대신 캐롤 킹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서며 밴드 활동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의 퀸즈 대학교(Queens College)에 진학한 캐롤 킹은 같은 과의 '닐 세다카(Neil Sedaka)'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처음에 사이 좋은 친구로 지내다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캐롤 킹은 퀸즈 대학교에서 '폴 사이먼(Paul Simon)'과 '제리 고핀(Gerry Goffin)'을 만나 자주 어울리며 절친한 친구 사이로 우정을 나누게 된다.

특히 제리 고핀과는 같이 노래를 만들면서 서로의 취향이 비슷함을 발견하고 1959년 부터 함께 작곡 팀을 이루어 '브릴 빌딩(Brill Building)'에 입주해 있던 음악 관련 출판사 '알던 뮤직(Aldon Music)' 소속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즈음 가수로 데뷔하여 싱글 음반을 발표하면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가수 닐 세다카(Neil Sedaka)가 캐롤 킹에게 바치는 연가 'Oh! Carol'을 1959년에 발표하여 빌보드 차트 9위에 올려 놓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닐 세다카의 성공을 지켜 본 캐롤 킹은 그에게 화답하는 형식의 노래 'Oh! Neil'을 1959년 말에 발표하였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하였다. 이미 이 당시 캐롤 킹은 함께 작업하던 제리 고핀과 연인 사이로 발전한 관계였기에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은 1960년에 걸그룹 '셔렐스(The Shirelles)'에게 'Will You Love Me Tomorrow'라는 곡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은 작곡가로써의 명성을 날리게 되며 이후 두사람은 공동으로 많은 히트 곡을 만들게 된다.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은 1960년 9월에 결혼하여 1968년에 이혼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만들어낸 히트 곡이 무려 서른 곡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실적을 남겼다. 또한 이들 부부는 1960년대 중반에는 투모로우 음반사(Tomorrow Records)를 설립하여 '마이들 클래스(Myddle Class)'라는 밴드와 음반 계약을 맺기도 하였다. 캐롤 킹은 제리 고핀과 이혼한 후 마이들 클래스의 베이스 주자 '찰스 라르키(Charles Larkey)'와 결혼하였으며 가수 활동 재개를 위해 기타 주자인 '대니 코치머(Danny Kortchmar)'와 남편과 함께 '시티(The City)'라는 이름의 3인조 팝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시티가 1969년에 발표한 음반 'Now That Everything's Been Said'는 기대 이하의 초라한 성적만을 남기며 조용히 묻혀 버렸다. 시티를 해산한 캐롤 킹은 1970년에 솔로 가수로 데뷔 하게 되는데 'Writer'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음반에는 시티의 멤버들이 그대로 참여하였고 가수 겸 작곡가인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합류하여 어쿠스틱 기타를 들려주고 있다. 1971년 1월 30일 역사적인 음반 'Tapestry'가 캐롤 킹의 두번째 음반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데뷔 음반에 참가했던 시티의 두 멤버들과 제임스 테일러가 다시 참가한 이 음반은 오랜기간 팝팬들의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싱글로 발매된 'It's Too Late'와 'I Feel the Earth Move'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였다. 한편 같은 해 4월에 제임스 테일러가 자신의 솔로 음반 'Mud Slide Slim and the Blue Horizon'에 'Tapestry' 음반에 수록되었던 캐롤 킹의 곡 'You've Got a Friend'를 새롭게 해석하여 수록하였는데 이 곡이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캐롤 킹 (Carole King) : 1942년 2월 9일 미국 뉴욕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aroleking.com/home.php

2010년 8월 23일 월요일

Bette Midler - The Rose

 

Bette Midler - The Rose

미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인 '베트 미들러'는 뉴저지(New Jersey)주 페이터슨(Paterson)에서 태어나 하와이의 호놀룰루(Honolulu)에서 성장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베트 미들러의 부모가 뉴저지주 페이터슨에서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이사할 무렵에 이미 그녀의 어머니가 베트 미들러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하며 하와이로 이사온 얼마 후 베트 미들러를 출산하였다고도 알려져 있다. 베트 미들러의 부모는 태어난 딸에게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의 이름을 따서 베트 미들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으나 베티 데이비스와는 달리 베티가 아닌 베트로 발음하여 차별을 주기도 하였다.

이름 때문인지 어릴때 부터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던 베트 미들러는 호놀룰루의 '래드포드 고등학교(Radford High School)'를 졸업하고 '하와이 대학교(University of Hawaii)'의 드라마 학과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미래의 배우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넉넉치 못했던 가정 형편으로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베트 미들러는 학업보다는 자신의 꿈인 영화 배우로 성공하기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1965년 여름에 뉴욕으로 와서 이듬해에 개봉 예정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이처럼 베트 미들러는 대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1966년 10월 10일에 개봉되었던 영화 '하와이(Hawaii)'를 통해 처음 영화계에 데뷔하였는데, 당시 그녀가 맡았던 역할은 하와이로 오는 배의 승객역이었다. 영화 출연 후 베트 미들러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Off-Off-Broadway: 객석 규모 300석 미만의 소극장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공연되던 극작가 '톰 아이언(Tom Eyen)'의 작품 'Miss Nefertiti Regrets'와 'Cinderella Revisited'에 출연하며 프로 배우로써 첫걸음을 떼게 된다.

1966년 부터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에 출연을 시작하여 1969년  까지 장기간 무대에 오르며 그녀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 주었지만 불행히도 이 기간 동안 베트 미들러의 공연을 보러 뉴욕에 온 그녀의 여동생이 택시에 치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70년 여름 부터는 뉴욕의 게이(Gay) 클럽인 '컨티넨털 베쓰(Continental Baths)'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베트 미들러의 노래를 피아노로 반주했던 인물이 '베리 매닐로우(Barry Manilow)'였다. 컨티넨털 베쓰에서 베트 미들러를 만난 베리 매닐로우는 후일 그녀의 데뷔 음반에도 참여하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

베트 미들러는 1971년에 '시애틀 오페라단(Seattle Opera Production)' 소속으로 록 오페라 '토미(Tommy) '무대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고 텔레비전의 심야 토크 쇼 프로그램인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에도 출연하게 된다. 한편 록 오페라 무대에서의 인기와 더불어 이루어진 텔레비전 출연은 베트 미들러에게 애틀란틱 음반사(Atlantic Records)와의 음반 계약을 가져다 주었다.

1972년 11월 애틀란틱 음반사를 통해 베트 미들러는 자신의 가수 데뷔 음반 'The Divine Miss M'을 발표하였다. 앞서 말한대로 이 음반에는 베리 매닐로우가 참가하여 피아노 연주를 해주고 있다. 베트 미들러의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세곡의 싱글 'Do You Want To Dance?', 'Friends', 'Boogie Woogie Bugle Boy'는 연속해서 히트를 하며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에 견인하여 9위 까지 진출시켰고 음반 판매량에서도 백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하는 대형 히트를 하였다.

이로인해 1973년초에 진행된 '그래미 상(Grammy Award)'에서 베트 미들러는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을 수상하게 된다. 성공적으로 가수 데뷔를 한 베트 미들러는 약물 중독으로 1970년에 스물 일곱살의 나이로 타계한 여성 록 가수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모델로 만들어진 1979년 영화 '로즈(The Rose)'에 주인공인 '메리 로즈 포스터(Mary Rose Foster)'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1979년 11월에 개봉된 영화 로즈에서 주인공을 맡은 베트 미들러는 사운드 트랙 음반에도 참가하여 리드 보컬로 수록 곡 모두를 불렀는데, 이 사운드 트랙 음반은 1980년 2월 15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서 '퍼시 슬레이지(Percy Sledge)'의 곡을 커버한 'When a Man Loves a Woman'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35위에 올랐고 영화의 주제가인 'The Rose'는 싱글 차트에서 3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다.

또한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Billboard Hot Country Singles)'에서는 1위에 올랐던 곡 'The Rose'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팝팬들이 애청곡으로 꼽고 있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는 베트 미들러의 고전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을 장미 색을 지닌 채 오늘도 누군가의 플레이어에서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들려주고 있을 것이다.

베트 미들러 (Bette Midler) : 1945년 12월 1일 미국 뉴저지주 페이터슨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starpulse.com/Music/Midler,_Bette/


2010년 8월 6일 금요일

Anne Murray - You Needed Me

 

Anne Murray - You Needed Me

캐나다의 노바스코샤(Nova Scotia)주 스프링힐(Springhill)에서 태어난 컨트리 팝 가수 '앤 머레이'는 1978년에 발표한 싱글 'You Needed Me'를 캐나다 출신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1위 자리에 곡을 올려 놓으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가수였다. 앤 머레이의 공식 홈 페이지에 따르면 앤 머레이는 스프링힐의 병원 의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그녀 자신 외에도 다섯명의 남자 형제가 더 있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했던 앤 머레이는 버디 할리(Buddy Holly), 바비 다린(Bobby Darin),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즐겼으며 클래식을 비롯하여 로큰롤과 컨트리, 가스펠, 포크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즐겨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패티 페이지(Patti Page), 빙 크로스비(Bing Crosby), 로즈메리 클루니(Rosemary Clooney)의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이런 그녀의 음악적 성향은 후일 그녀가 가수가 되었을때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창법을 갖추게 만들어 주었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한 6년간의 피아노 교습 후 열다섯살 때 부터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스프링힐에서 '타타마구쉬(Tatamagouche)'까지 두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성악 교습을 받기도 하였다. '뉴브런스윅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New Brunswick)'에 입학한 앤 머레이는 1965년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The Groove'라는 이름의 옴니버스 음반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500장 한정 발매된 이 음반에서 앤 머레이는 'Unchained Melody'와 'Little Bit of Soap'라는 두곡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앤 머레이가 공식적으로 참여한 첫번째 음반인 'The Groove'에는 앤 머레이의 이름이 'Anne Murry'로 잘못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The Groove' 음반 참여 이후 앤 머레이는 친구의 권유로 '싱얼롱 주빌리(Singalong Jubilee)'라는 'CBC' 텔레비전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최한 멤버 공개 모집에 참여하였지만 아깝게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2년 후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인 '빌 랭스트로스(Bill Langstroth)'의 연락을 받고 두번째로 참여한 공개 모집에서 합격하여 소원하던 싱얼롱 주빌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싱얼롱 주빌리에 발탁된 앤 머레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로 부임하게 되어 텔레비전 출연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체육 교사로 부임한지 1년후에 CBC 에서는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쇼 프로그램인 'Let's Go'에 출연해줄 것을 앤 머레이에게 요청하게 되었는데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연예계 활동을 그리워 하던 앤 머레이는 결국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텔레비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텔레비전으로 돌아온 앤 머레이는 'Let's Go'에 출연하는 한편으로 싱얼롱 주빌리의 정규 멤버로 복귀하여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그녀의 복귀와 함께 싱얼롱 주빌리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Singalong Jubilee Vol. III'가 '아크 음반사(Arc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는데 이 음반에 참여한 앤 머레이의 가창 실력을 눈여겨 본 음악 감독 '브라이언 아헌(Brian Ahern)'이 앤 머레이에게 솔로 음반을 발표해 볼것을 제안하게 된다.

브라이언 아헌의 권유를 심사숙고한 앤 머레이는 토론토로 가서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 음반이 바로 1968년에 아크 레이블에서 발표된 'What About Me'였다. 데뷔 음반 발표 이후 앤 머레이는 대형 음반사인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와 계약을 하고 두번째 음반 'This Way Is My Way'를 1969년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Snowbird'는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8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게 된다.

'Snowbird'의 히트 이후 앤 머레이는 꾸준히 히트 곡들을 만들어내며 인기 가수로 성장하였고 1978년에 발표한 싱글 'You Needed Me'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절정의 인기를 얻게 된다. 앤 머레이의 1978년 음반 'Let's Keep It That Way'에도 수록된 'You Needed Me'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특히 '내가 힘들어 할 때 내 곁을 지켜준 것은 당신'이라는 내용의 아름다운 노랫말로 인해 팝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곡이기도 하다.

앤 머레이 (Anne Murray) : 1945년 6월 20일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Pop),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annemurray.com/

 

2010년 8월 2일 월요일

James Ingram - Just Once

 

James Ingram - Just Once

미국 오하이오(Ohio)주 애크론(Akron)에서 태어난 '제임스 잉그램'은 어느 날 갑자기 'Just Once' 라는 곡을 히트시키면서 대중 앞으로 성큼 다가온 팝 가수였다. 어린 시절을 비롯한 성장 과정과 배경등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제임스 잉그램은 1970년대 초에 '레벌레이션 펑크(Revelation Funk)'라는 이름의 밴드에 합류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제임스 잉그램은 레벌레이션 펑크와 함께 활동하며 가수로써의 자신감을 얻기도 하였지만 밴드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부족함을 느껴 밴드와 결별하고 1973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와서 세션 보컬리스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녹음실을 들락거리며 세션으로 노래를 하던 제임스 잉그램은 '레이 찰스(Ray Charles)'의 공연에서 백보컬과 피아노를 맡게 되면서 성공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모타운의 명작곡가 겸 음반 제작자인 '라몬트 도지어(Lamont Dozier)'는 이런 제임스 잉그램을 지켜 보다가 소울 밴드인 '징가라(Zingara)'의 1981년 음반 'Zingara'에 수록될 'Love's Calling'을 제임스 잉그램에게 부르게 하여 징가라의 데뷔 음반이자 유일작인 'Zingara'에 수록하였다. 라몬트 도지어와의 인연은 '퀸시 존스(Quincy Jones)'에게로 이어져 퀸시 존스의 새 음반 'The Dude'에 보컬리스트로 참여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The Dude' 음반에 참여한 제임스 잉그램은 타이틀 곡인 'The Dude'를 비롯한 'Just Once'와 'One Hundred Ways'에서 보컬을 담당하였는데 특히 타이틀 곡인 'The Dude'에서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마이클 잭슨과의 이런 인연은 퀸시 존스와 함께 작곡한 'P.Y.T. (Pretty Young Thing)'를 마이클 잭슨의 1982년 음반 'Thriller'에 수록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퀸시 존스의 음반에 수록된 'Just Once'와 'One Hundred Ways'는 싱글로 차례대로 발매되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7위와 14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Just Once'는 제임스 잉그램의 첫번째 히트 곡인 동시에 제임스 잉그램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곡으로 우리나라의 텔레비전에서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져 많은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 곡이 되었다. 한편 제임스 잉그램은 1983년에 데뷔 음반 'It's Your Night'를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46위를 기록하였다.

제임스 잉그램 (James Ingram) : 1956년 2월 16일 미국 오하이오주 출생

갈래 : 소울(Soul),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팝 록(Pop/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amesingramsmusic.com/

 

2010년 7월 7일 수요일

Starship - Nothing's Gonna Stop Us Now

 

Starship - Nothing's Gonna Stop Us Now

 

1965년에 결성된 사이키델릭 록 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은 1974년 9월에 비행선의 이름을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으로 바꾸고 데뷔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 가게 된다. 1978년 2월 6일에 발표하였던 음반 'Earth'를 끝으로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미국과 유럽 순회 공연 이후 제퍼슨 스타쉽을 탈퇴하여 잠시 위기를 겪는듯 하였으나 1979년에 히트 싱글들을 모아 놓은 편집 음반 'Gold'와 정규 음반 'Freedom at Point Zero'를 발표하면서 비행선의 건재함을 팬들에게 알렸다.

 

1981년 초에는 제퍼슨 스타쉽을 떠났던 그레이스 슬릭이 다시 가입하여 음반 'Modern Times'의 녹음에 참여 하게 된다. 그레이스 슬릭의 재가입으로 안정을 찾아 가는 듯 하던 제퍼슨 스타쉽은 1984년 5월 30일에 발표한 음반 'Nuclear Furniture'를 끝으로 결국 불시착하게 되고 1985년 9월 10일에 스타쉽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날아 오르게 된다.

스타쉽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번째 음반 'Knee Deep in the Hoopla'에서 싱글로 발표된 'We Built This City'와 'Sara'가 연속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스타쉽은 이전 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신세계를 향해 화려한 비행을 시작하게 된다.

 

밴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스타쉽은 1987년 2월에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마네킨(Mannequin)'에 주제가인 'Nothing's Gonna Stop Us Now'를 삽입하여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게 된다. 1987년 1월에 영화의 개봉에 앞서 싱글로 먼저 발표된 'Nothing's Gonna Stop Us Now'는 영화 개봉 후인 1987년 4월 4일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영국에서도 싱글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싱글 'Nothing's Gonna Stop Us Now'는 영미 양국에서 각각 50만장 이상을 판매하여 골드 레코드가 되었고 캐나다와 아일랜드의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곡을 올려 놓으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스타쉽은 1987년 7월에 밴드의 두번째 음반인 'No Protection'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인 'Nothing's Gonna Stop Us Now'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이 음반은 스타쉽의 데뷔 음반에 참여 하였던 피터 시어스(Pete Sears, 베이스)가 밴드를 탈퇴하여 4인조로 녹음된 음반인 동시에 그레이스 슬릭이 마지막으로 스타쉽의 이름 아래 함께 했던 음반이기도 하다. 그레이스 슬릭은 1988년에 스타쉽을 떠나 1989년에 재결성 음반 'Jefferson Airplane'을 발표한 제퍼슨 에어플레인에 합류하게 된다.

스타쉽 (Starship) :
그레이스 슬릭 (Grace Slick, 보컬) : 1939년 10월 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출생
미키 토머스 (Mickey Thomas, 보컬) : 1949년 12월 3일 미국 조지아주, 카이로 출생
크레그 차퀴고 (Craig Chaquico, 기타) : 1954년 9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출생
도니 볼드윈 (Donny Baldwin, 드럼)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팝 록(Pop/Rock)
관련 글 : http://artrock.textcube.com/369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effersonstarshipsf.com/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Barry Manilow - Can't Smile Without You

Barry Manilow - Can't Smile Without You

배리 매닐로우 (Barry Manilow) : 1946년 6월 17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 출생

 

분류 :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 Rock), AM 팝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anilow.com/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반 제작자이기도 한 배리 매닐로우는 본명이 '베리 알란 핀커스(Barry Alan Pincus)'로 뉴욕의 '줄리아드 학교(Juilliard School)'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다 팝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공한 가수이다. 유대인 혈통의 배리 매닐로우는 아버지가 두살때 가족을 떠나 버려 어머니인 '에드너 매닐로우(Edna Manilow)'와 함께 살면서 성장하였고 이름도 어머니의 처녀적 성인 매닐로우를 사용하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는 일곱살 때 부터 피아노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브루클린의 '이스턴 디스트릭트 고등학교(Eastern District High School)'를 졸업한 1961년에는 줄리아드 학교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게 된다.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배리 매닐로우는 'CBS 방송국(Columbia Broadcasting System)'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1964년 방송국에서 뮤지컬 감독 '브로 헤로드(Bro Herrod)'를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브로 헤로드는 무대에 올릴 예정인 뮤지컬 'The Drunkard'에 사용될 음악들을 방송국에서 만난 배리 매닐로우에게 다듬어 줄것을 부탁하였고, 배리 매닐로우는 이 부탁을 받아들여 뮤지컬에 사용될 모든 곡을 새롭게 만들어서 브로 헤로드에게 주었다. 이렇게해서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브로드웨이 바깥에 있는 전문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The Drunkard'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며 8년간 장기 공연되었고 배리 매닐로우에게 음악으로 성공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되었다.

 

뮤지컬 작업 이후 배리 매닐로우는 본격적으로 팝 음악에 뛰어들어 피아노 연주자와 음반 제작자, 편곡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0년 부터는 광고 음악에도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신인 가수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를 만나 그녀가 1972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The Divine Miss M'과 1973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Bette Midler'에서 피아노 연주와 프로듀서로써 음악 작업을 하며 베트 미들러를 인기 가수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The Divine Miss M'의 순회 공연에서는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1975년 까지 베트 미들러와 함께 활동하였다.

 

베트 미들러와의 음악 작업과 별개로 배리 매닐로우는 자신의 솔로 음반 작업을 준비하여 1973년 7월 7일 솔로 데뷔 음반 'Barry Manilow I'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데뷔 음반을 빌보드 앨범 차트 28위에 올려 놓은 배리 매닐로우는 1974년 10월 두번째 음반 'Barry Manilow II'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배리 매닐로우의 성공 시대를 열어준 곡 'Man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미국 가수 '스코트 잉글리시(Scott English)'가 불러서 히트 시켰던 곡 'Brandy'를 편곡하고 제목을 바꾸어 수록한 곡이다.

 

'Mandy'의 성공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배리 매닐로우는 1978년에 음반 'Even Now'를 발표하여 'Can't Smile Without You'를 시작으로 'Copacabana'와 'Somewhere in the Night'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3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가 1978년에 발표한 음반 'Even Now'에 수록되어 있는 히트 곡 'Can't Smile Without You'는 부드러운 멜로디로 진행되는 곡으로 한국에서 광고 음악에 사용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배리 매닐로우의 이름이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곡으로 팝팬들의 애청 곡으로 자리잡은 곡이다.

 

 

2010년 4월 1일 목요일

Carly Simon - You're So Vain

 

Carly Simon - You're So Vain

칼리 사이먼 (Carly Elisabeth Simon) : 1945년 6월 25일 미국 뉴욕 출생

 

분류 : 어덜트 컨펨퍼러리 (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AM 팝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carlysimon.com/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하던 유대인 혈통의 아버지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며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 칼리 사이먼은 'You're So Vain' 이라는 곡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다. 뉴욕의 '리버데일 고등학교(Riverdale Country School)'를 졸업하고 '사라 로렌스 대학(Sarah Lawrence College)'에 진학한 칼리 사이먼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여 언니인 '루시 사이먼(Lucy Simon)'과 함께 듀오 '사이먼 시스터즈(The Simon Sisters)'를 결성하였다.

 

사이먼 시스터즈는 1964년에 '카프 레코드(Kapp Records)'와 계약하고 싱글 음반 'Winkin' Blinkin' And Nod'를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소폭의 히트를 기록한 데뷔 싱글 이후 같은 해에 데뷔 음반 'Cuddlebug'를 발표한 사이먼 시스터즈는 1969년에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두번째 음반 'The Simon Sisters Sing The Lobster Quadrille And Other Songs For Children'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이후 공백기에 칼리 사이먼은 1972년에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백업 밴드로 활동하여 유명해진 뉴욕의 록 밴드인 '엘리펀츠 메모리(Elephant's Memory)'의 리드 싱어로 6개월 정도 활동 하기도 하였다. 엘리펀츠 메모리와의 활동을 접고 다시 언니인 루시와 사이먼 시스터즈의 이름으로 두번째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언니인 루시 사이먼이 결혼을 하게 되어 사이먼 시스터즈는 자연스레 해산하게 된다.

 

칼리 사이먼은 1971년에 개봉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만(Milos Forman)'의 첫 미국 진출 영화 'Taking Off'에 출연하였다. 이 영화에서 칼리 사이먼은 오디션을 보는 가수로 출연하여 'Long Term Physical Effects'를 불렀다. 한편 영화 출연과 별도로 1971년 3월에 칼리 사이먼은 '엘렉트라 레코드(Elektra Records)'를 통해 데뷔 음반 'Carly Simon'을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써 본격적으로 팝계에 데뷔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That's the Way I've Always Heard It Should B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되자 칼리 사이먼은 후속 음반 발매를 서둘러 11월에 두번째 음반 'Anticipation'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효과를 거두어 두번째 음반에서도 타이틀 곡을 싱글 차트 13위에 올려 놓으며 데뷔 음반의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

 

1972년 11월 컬리 사이먼은 세번째 음반 'No Secrets'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음반에서 발췌한 싱글 'You're So Vain'을 발표하였다. 싱글 'You're So Vain'은 1973년 초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자리를 지켰으며 영국에서도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였다. 또한 싱글 'You're So Vain'은 전세계적으로 히트하여 칼리 사이먼에게 명성과 인기를 안겨주었으며 한국에서도 칼리 사이먼을 대표하는 곡으로 라디오 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