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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Don Gibson - I Can't Stop Loving You

Don Gibson - I Can't Stop Loving You

2001년에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Country Music Hall of Fame)'에 입성한 미국의 컨트르 가수 겸 작곡가인 '돈 깁슨(본명: Donald Eugene Gibson)'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 셸비(Shelby)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 환경 탓에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돈 깁슨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1948년에 첫번째 싱글 음반을 발표했던 밴드 '선스 오브 더 소일(Sons of the Soil)'이었다.

하지만 선스 오브 더 소일은 기억에 남을만한 히트 곡을 남기지 못하고 해산하였고 돈 깁슨은 솔로 활동을 위해 내슈빌로 오게 되는데 이때가 1956년이었다. 1956년 내슈빌에서 돈 깁슨은 컨트리 발라드 곡인 'Sweet Dreams'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이 곡은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돈 깁슨이 컨트리 가수로 성공한 이후인 1963년에 재발매되면서 히트를 하게 된다.

돈 깁슨은 1958년에 두번째 싱글 'Oh Lonesome Me'를 'RCA-빅터(RCA-Victor) 음반사를 통해 발표하여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의 정상에 올려 놓게 되는데 이로써 무명이었던 돈 깁슨은 단숨에 수퍼 스타로 성장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된다. 한편 이 싱글의 뒷 부분인 B면에는 'I Can't Stop Loving You'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곡은 1962년에 재발매되어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7위에 올랐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81위에 오르며 돈 깁슨의 고전이 되었다.

돈 깁슨하면 떠올리게 되는 곡인 'Sea Of Heartbreak'와 함께 'I Can't Stop Loving You'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곡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곡이다.

돈 깁슨 (Don Gibson) : 1928년 4월 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생, 2003년 11월 17일 사망

갈래 : 컨트리(Country), 컨트리 팝(Country-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I Can't Stop Loving You 감상하기 : http://youtu.be/6v_L-GbNXx8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Glen Campbell - Rhinestone Cowboy

 

Glen Campbell - Rhinestone Cowboy

1962년 11월에 음반 'Big Bluegrass Special'로 데뷔하여 1960년대 후반 부터 197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 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미국을 대표하는 컨트리 가수 중 한명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글렌 켐벨은 아칸소(Arkansas)주, 딜라이트(Delight)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빌스타운(Billstown)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소작농으로 농사를 짓던 글렌 켐벨의 아버지에게는 글렌 켐벨 외에도 열한명에 달하는 자녀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거나 기타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에 남다른 재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열두명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음악적 재질이 좋았던 이가 바로 글렌 켐벨이었다. '딕 빌스 밴드(The Dick Bills Band)'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글렌 켐벨의 삼촌은 글렌 켐벨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기타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가 글렌 켐벨이 네살이 되던 해였다. 빠르게 기타 연주를 습득해 가던 글렌 켐벨은 십대가 되자 딕 빌스 밴드의 순회 공연을 따라 다니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첫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한 글렌 켐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54년에 '웨스턴 랭글러스(The Western Wrangl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미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58년 부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고용 연주자(Session Musician)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여 록과 컨트리 분야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하였으며 1959년에는 미국의 록 밴드인 '챔프스(The Champs)'와 함께 잠시 활동하기도 하였다. 챔프스는 1958년 1월에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연주곡 'Tequila'의 주인공으로 이 곡은 챔프스의 유일한 히트 곡이기도 하다.

1960년대로 접어 들면서 글렌 켐벨은 스튜디오 연주자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여러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고용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던 글렌 켐벨은 1961년에 '크레스트 음반사(Crest Records)'를 통해 데뷔 싱글 'Turn Around, Look at Me'를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 싱글 발표 이전 부터 글렌 켐벨의 활동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에서 마침내 글렌 켐벨에게 음반 계약을 제의하게 되었고 글렌 켐벨은 캐피털을 통해서 1962년 11월에 데뷔 음반 'Big Bluegrass Special'을 발표하게 된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Kentucky Means Paradise'는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20위를 차지하였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14위에 올랐다. 1963년 4월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Too Late to Worry, Too Blue to Cry'에서는 음반의 타이틀 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시켜 76위 까지 오르게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64년 3월에 세번째 음반 'The Astounding 12-String Guitar of Glen Campbell'을 발표한 글렌 켐벨은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순회 공연 멤버로 참가하여 1965년 까지 비치 보이스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이 계속되는 공연에 지쳐 잠시 공연 활동을 중단하게 되자 그를 대신하여 비치 보이스의 일원으로 공연 활동에 참여한 것이었다. 비치 보이스와의 공연이 모두 마무리 되자 글렌 켐벨은 녹음실로 돌아가 1965년 9월에 새 음반 'The Big Bad Rock Guitar of Glen Campbell'을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글렌 켐벨은 1967년 6월에 다섯번째 음반 'Burning Bridges'를 발표한 후 9월에 여섯번째 음반 'Gentle on My Mind'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음반의 타이틀 곡 'Gentle on My Mind'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30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62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된다. 싱글의 히트와 더불어 음반도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글렌 켐벨의 전성기가 'Gentle on My Mind'로 시작된 것이다.

1968년 부터는 작곡가 '지미 웹(Jimmy Webb)'과 손잡고 음반 'Wichita Lineman(1968년)'과 'Galveston(1969년)'을 히트시켰으며 1969년 1월 22일 부터는 'The Glen Campbell Goodtime Hour'라는 이름의 텔레비전 쇼를 1972년 6월 13일 까지 진행하여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하였다. 글렌 켐벨은 1975년 7월에 음반 'Rhinestone Cowboy'를 발표하여 다시 한번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음반에 앞서 1975년 5월에 발표되었던 싱글 'Rhinestone Cowboy'는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Billboard Hot Country Singles)'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하는 대형 히트를 하였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도 4위에 올랐던 이 곡은 시골 청년이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인조 보석이 박힌 화려한 옷차림으로 로데오 경기에 참가하는 카우보이 처럼 열심히 노력한다는 내용의 긍정적인 가사로 된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끝으로 가수이자 기타 연주자인 글렌 켐벨은 1969년에 개봉했던 '존 웨인(John Wayne)' 주연의 서부 영화 '진정한 용기(True Grit)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글렌 캠벨(Glen Campbell) : 1936년 4월 22일 미국 아칸소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glencampbellshow.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hpSWCY8Fu4Y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Lynn Anderson - Rose Garden

 

Lynn Anderson - Rose Garden

미국의 노스다코타(North Dakota)주 그랜드폭스(Grand Forks)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페어옥스(Fair Oaks)에서 성장한 컨트리 가수 '린 앤더슨(본명: Lynn Rene Anderson)'은 작곡가 '케이시 앤더슨(Casey Anderson)'과 'Wife of the Party', 'Mama Spank',  'Mother May I'등의 노래를 히트시켰던 여성 컨트리 가수 '리즈 앤더슨(Liz Anderson)'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우월한 유전자를 바탕으로 린 앤더슨은 여섯살 때 부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마장마술 선수로써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부터 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 부터 승마를 배운 린 앤더슨은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마장마술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대부분 우승하였고 이로인해 1966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최우수 마장마술 선수(California Horse Show Queen)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승마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유명해진 린 앤더슨은 어머니의 소개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방송되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인 'Country Caravan'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새크라멘토(Sacramento)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한 노래 경연 대회에 어머니의 권유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한 후 린 앤더슨은 어머니의 데모 테이프 제작에 참여하여 백보컬을 담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테이프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컨트리 음악 전문 레이블인 차트 음반사(Chart Records)의 사장인 슬림 윌리엄슨(Slim Williamson)에게 전달되었다. 슬림 윌리엄슨은 린 앤더슨의 재능과 성공 가능성을 엿보고 음반 계약을 제의하였으며 린 앤더슨은 1966년에 차트 음반사와 계약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린 앤더슨은 데뷔 싱글 녹음에 들어가게 되었고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린 앤더슨이 1966년에 발표한 데뷔 싱글 'In Person'은 음반 판매 부진과 차트 진입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같은 해에 발표된 두번째 싱글 'Ride, Ride, Ride'는 다행히 데뷔 싱글의 실패를 딛고 차트 진입에 성공하여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Billboard Hot Country Singles)'에서 36위 까지 진출하는 첫번째 성공을 린 앤더슨에게 안겨 주었다. 1967년 3월 데뷔 음반 'Ride, Ride, Ride'를 발표한 린 앤더슨은 데뷔 음반에서 발췌된 세번째 싱글 'If I Kiss You (Will You Go Away)'를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시키며 데뷔 이후 최고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If I Kiss You (Will You Go Away)'는 린 앤더슨의 첫번째 컨트리 싱글 차트 Top 40 진출 곡인 'Ride, Ride, Ride'와 마찬가지로 린 앤더슨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곡이었다. 같은 해에 발표한 네번째 싱글 'Too Much of You'가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28위에 그치며 잠시 주춤하는듯 했으나 린 앤더슨은 다음 싱글인 'Promises, Promises'를 컨트리 싱글 차트 4위에 올려 놓으며 멈칫거리던 인기를 순식간에 만회하였다.

린 앤더슨은 이후 'No Another Time(1968년 8위)', 'Big Girls Don't Cry(1968년 12위)', 'Flattery Will Get You Everywhere(1968년 11위)', 'Our House Is Not a Home(If It's Never Been Loved In)(1969년 18위)', 'That's a No No(1969년 2위)'등의 싱글을 발표하여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1970년에 발표한 음반 'Uptown Country Girl'에서 두곡의 히트 싱글 'He'd Still Love Me(1969년 15위)', 'I've Been Everywhere(1970년 16위)'을 배출한 린 앤더슨은 이 음반을 끝으로 차트 음반사와 결별하였고 대형 음반사인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로 이적하여 새 음반 'Stay There 'Til I Get There'를 발표하면서 컬럼비아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컬럼비아에서 싱글 'Stay There 'Til I Get There (1970년 7위)', 'Rocky Top(1970년 17위)', 'No Love at All(1970년 15위)'을 발표하여 히트시킨 린 앤더슨은 1970년 12월에 유명한 음반 'Rose Garden'을 발표하였다.

컨트리 음악과 팝 음악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타이틀 곡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도 3위까지 진출하는 초 대형 히트를 하게 된다. 베트남전으로 상처입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 노래는 장미가 만발한 화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는 배려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장미 화원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우리나라 팝팬들의 애청곡이기도 한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으로 린 앤더슨은 1971년의 그래미 상에서 최우수 여성 컨트리 가수(Best Female Country Vocal Performance)상을 수상하여 팝 음악과 컨트리 음악의 접목이 성공했음을 증명하였다.

린 앤더슨 (Lynn Anderson) : 1947년 9월 26일 미국 노스다코타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 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lynnandersonshow.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RKwgY7BUUPo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Tammy Wynette - Stand By Your Man

 

Tammy Wynette - Stand By Your Man

본명이 '버지니아 위넷 푸(Virginia Wynette Pugh)'인 타미 위넷은 미국 '미시시피(Mississippi)'주 '이타왐바 카운티(Itawamba County)'에서 태어났다. '컨트리 음악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는 애칭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타미 위넷의 아버지는 지역 클럽에서 활동했던 음악인으로 뇌종양을 앓다가 타미 위넷이 태어난지 아홉달만인 1943년 2월 13일에 사망하였다.

아버지의 사망후 타미 위넷은 할아버지가 있는 미시시피의 농장으로 가서 성장하게 되는데 이 무렵 그녀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을 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한창 성장세에 있던 멤피스(Memphis)의 군수공장에 취직하여 미시시피를 떠나게 된다. 좀더 벌이가 좋은 멤피스의 군수공장에 취직한 타미 위넷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조부모에게 맡겨두게 되고 이때 부터 타미 위넷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게 된다.

타미 위넷은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기고 간 여러 악기들을 자주 가지고 놀았는데 어린 시절 부터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악기와의 접촉에 더해서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음악인의 유전자가 결합되면서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나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 같은 컨트리 가수들의 음반을 자주 듣게 되었고 가수의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가게 된다.

'트레몬트 고등학교(Tremont High School)'에 입학한 타미 위넷은 재학 시절에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농구 실력을 갖춘 선수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타미 위넷은 생전에 다섯번의 결혼과 네번의 이혼을 하였는데 고교를 졸업한 1959년에 열일곱살의 어린 나이로 '유플 버드(Euple Byrd)'와 첫번째 결혼을 하였다. 타미 위넷의 첫남편은 건축 현장에서 막일을 하던 노동자였기 때문에 부부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남편의 일거리를 따라 여러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으며 그녀 또한 신발 공장의 노동자나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을 해야 했다.

1963년에 타미 위넷은 미시시피의 미용 학교에 입학하여 미용사 과정을 수강했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 미용사로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세째 딸이 '뇌척수막염(Cerebrospinal Meningitis)'을 앓게 되자 타미 위넷은 막대한 약값을 보충하기 위해 야간에 클럽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클럽 무대에서 시작한 가수 생활은 예상외의 호평이 이어지며 텔레비전 출연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1965년에 '앨러배마(Alabama)'주 '버밍햄(Birmingham)' 지역에서 방송되는 'WBRC-TV'의 컨트리 음악 프로그램인 'Country Boy Eddie Show'에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타미 위넷은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컨트리 가수가 꿈이었던 타미 위넷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수로 활동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던 첫남편과 타미 위넷은 1966년에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 남편과 이혼한 타미 위넷은 세딸을 데리고 '테네시(Tennessee)'주 '내슈빌(Nashville)'로 가서 컨트리 가수로 음반 데뷔를 하기 위해 몇군데 음반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음반 계약을 따내기 위한 타미 위넷의 이러한 시도는 모두 거절되었고 마지막으로 음반 제작자인 '빌리 셰릴(Billy Sherrill)'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잡게 된다. 빌리 셰릴은 타미 위넷의 노래를 들어본 후 그녀가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녀의 본명 대신 좀더 강렬한 느낌의 타미 위넷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타미 위넷이라는 이름으로 1966년 12월에 발표된 그녀의 데뷔 싱글은 'Apartment No. 9'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Billboard Hot Country Singles)'에서 40위(Top 40)안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44위 까지 진출하면서 히트를 기록하였다. 뒤 이어서 발매된 싱글 'Your Good Girl's Gonna Go Bad'는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3위 까지 진출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7년 4월에 발표한 데뷔 음반 'Your Good Girl's Gonna Go Bad'는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7위를 기록하였다.

1968년 1월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Take Me to Your World / I Don't Wanna Play House'에서는 두곡의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 1위 곡을 배출하게 되는데 'I Don't Wanna Play House'와 'Take Me to Your World'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한 두번째 음반이 발표된 1968년 9월에 타미 위넷은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싱글 'Stand by Your Man'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곧바로 1위를 차지하면서 3주간 차트에 머룰렀고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도 19위를 차지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컨트리 차트와 팝 차트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이 곡으로 인해 타미 위넷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며 우리나라에서도 'Stand by Your Man'은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애청 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타미 위넷 (Tammy Wynette) : 1942년 5월 5일 미국 미시시피 출생, 1998년 4월 6일 사망

갈래 : 컨트리(Country), 컨트리 팝Country-Pop), 내슈빌 사운드(Nashville Sound)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ammywynette.com/

 

2010년 8월 9일 월요일

Olivia Newton John - Physical

 

Olivia Newton John - Physical

'밥 딜런(Bob Dylan)'의 1970년 곡으로 '비틀즈(Beatle)'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1970년 11월에 발표한 자신의 솔로 음반 'All Things Must Pass'에 수록하기도 하였던 곡 'If Not for You'를 음반의 타이틀 곡으로 한 데뷔 음반 'If Not for You'를 1971년 11월에 발표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음반의 타이틀 곡인 'If Not for You'를 싱글로 발매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시켰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5위 까지 진출시키며 새로운 스타의 출현을 팬들에게 알리게 된다.

같은 해에 'If Not for You'의 후속 곡으로 'Banks of the Ohio'를 발표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 곡 역시 영국 싱글 차트에서 6위 까지 진출시키며 데뷔 곡에 이어 연속해서 싱글을 히트시키게 된다. 'Banks of the Ohio'는 19세기에 만들어져 구전되어 오는 민요를 팝 형태로 편곡한 것으로 흔히 '머더 발라드(Murder Ballad)'라고 하는 갈래에 속하는 음악이며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이다.

자신과 결혼할 의사가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오하이오의 강둑으로 불러내 칼로 찔러 죽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곡은 '쟈니 캐쉬(Johnny Cash)'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커버하여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조영남이 '내 고향 충청도'라는 제목으로 개사하고 발표하여 히트시키기도 했던 곡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Banks of the Ohio'를 히트시킨 후 1972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Olivia'에서는 별다른 히트 곡을 만들지 못하고 음반 활동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러나 1973년에 들어서면서 발표한 음반 'Let Me Be There'에서 또 다시 차트 진출 곡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싱글로 발매된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영국 싱글 차트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미국 가수 '존 덴버(John Denver)'의 1971년 곡을 커버한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영국과 미국의 싱글 차트에서 각각 15위와 119위 까지 진출하였고 뒤이은 싱글 'Let Me Be There'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6위를 기록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Billboard Hot Country Singles)'에서도 7위 까지 진출한 히트 곡 'Let Me Be There'로 인해 올리비아 뉴튼 존의 세번째 음반 'Let Me Be There'는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올리비아 뉴튼 존은 컨트리 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사랑받으며 'I Honestly Love You', 'Have You Never Been Mellow', 'Please Mr. Please'등을 히트시키다 1978년에 이르러 변신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 바로 1978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그리스(Grease)'였다. 뮤지컬 영화 그리스에서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와 주연으로 출연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사운드 트랙 음반에도 참가하여 존 트라볼타와 함께 'You're the One That I Want'를 불렀는데 팝 취향의 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영화 그리스 출연 이후 팝 가수로 완전히 변신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80년에 그리스와 비슷한 형식의 영화 '제나두(Xanadu)'에 다시 출연하였고 사운드 트랙 음반에도 참가하여 록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와 함께 한 영화의 주제 곡 'Xanadu'와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와 함께 부른 'Suddenly' 그리고 자신의 솔로 곡 'Magic'을 사운드 트랙 음반에 수록하였다.

이 세곡은 모두 싱글로 발매되어 'Magic'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Xanadu'와 'Suddenly'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각각 8위와 20위를 기록하였다. 1981년 10월에 올리비아 뉴튼 존은 새 음반 'Physical'을 세상에 공개하게 되는데 음반의 타이틀 곡인 'Physical'이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무려 10주간 1위 자리를 지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몸에 꽉 끼는 '레오타드(Leotard)' 복장으로 '헬스로빅(Heathrobic)' 장면을 연출한 'Physical'의 뮤직 비디오는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고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MTV'에서는 연일 'Physical'의 뮤직 비디오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Physical'의 엄청난 히트와 뮤직 비디오의 성공은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여 대중화로 바로 이어졌으며 많은 배우들이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올리비아 뉴튼 존 (Olivia Newton John) :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Pop),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olivianewton-john.com/

 


2010년 8월 7일 토요일

Olivia Newton John - If Not For You

 

Olivia Newton John - If Not For You

영국에서 태어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장한 가수이자 배우인 올리비아 뉴튼 존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 '브린리 뉴튼 존(Brinley Newton-John)'과 독일인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인 '막스 본(Max Born)'의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 '이리네 본(Irene Born)' 사이에서 태어났다. 올리비아 뉴튼 존이 다섯살때 그녀의 아버지가 호주의 멜버른 국립대학(University of Melbourne) 오몬드 칼리지(Ormond College)에 학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일가족 모두는 호주로 건너가게 되었고 올리비아 뉴튼 존은 호주에서 성장하게 된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열다섯살때 학교 친구들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여성 보컬 그룹 '솔 포(Sol Four)'를 결성하여 형부가 운영하는 커피 숍의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하였다. 짧은 활동 기간을 끝으로 솔 포를 해산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잠시지만 호주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이 당시 올리비아 뉴튼 존은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만난 '팻 캐롤(Pat Carroll)'과 함께 듀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듀오의 활동 기간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팻 캐롤과 헤어진 올리비아 뉴튼 존은 텔레비전의 장기 자랑 쇼 프로그램인 'Sing, Sing, Sing'에 출연하여 우승하면서 부상으로 영국 런던행 여행 상품을 받기도 하였는데 런던으로 여행을 다녀온 1963년 부터는 호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게 된다. 주간에 방영되는 쇼 프로그램과 주말에 방영되는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인기를 얻어 가던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66년에 영국의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계약하고 싱글 'Till You Say You’ll Be Mine'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1970년에는 청소년 팝 밴드의 이야기를 그린 영국 영화 '투모로우(Toomorrow: Tomorrow가 아님)'에 출연하였고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도 참가하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밴드인 투모로우의 멤버로는 올리비아 뉴튼 존(보컬), 벤 토마스(Ben Thomas, 기타), 칼 챔버스(Karl Chambers, 드럼), 빅 쿠퍼(Vic Cooper, 오르간)가 출연하고 있으며 멤버가 그대로 사운드 트랙 음반에 참여하였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영화 출연 후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되는데 1971년 11월에 발표된 그녀의 데뷔 음반은 'If Not for You'였다. 싱글로 발매된 음반의 타이틀 곡인 'If Not for You'는 '밥 딜런(Bob Dylan)'의 1970년 곡을 커버한 것으로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하였고 호주의 싱글 차트에서도 7위를 기록하였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아일랜드의 싱글 차트에서도 탑 텐에 진입한 'If Not for You'는 미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25위 까지 진출하며 대형 신인 가수의 탄생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If Not for You'는 올리비아 뉴튼 존의 초기를 대표하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한때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If Not For You'를 소재로 하여 가사를 흘려 듣게 되면 '기분 나쁘유'로 들린다는 우스개 소리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올리비아 뉴튼 존 (Olivia Newton John) :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Pop),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olivianewton-john.com/

2010년 8월 6일 금요일

Anne Murray - You Needed Me

 

Anne Murray - You Needed Me

캐나다의 노바스코샤(Nova Scotia)주 스프링힐(Springhill)에서 태어난 컨트리 팝 가수 '앤 머레이'는 1978년에 발표한 싱글 'You Needed Me'를 캐나다 출신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1위 자리에 곡을 올려 놓으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가수였다. 앤 머레이의 공식 홈 페이지에 따르면 앤 머레이는 스프링힐의 병원 의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그녀 자신 외에도 다섯명의 남자 형제가 더 있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했던 앤 머레이는 버디 할리(Buddy Holly), 바비 다린(Bobby Darin),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즐겼으며 클래식을 비롯하여 로큰롤과 컨트리, 가스펠, 포크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즐겨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패티 페이지(Patti Page), 빙 크로스비(Bing Crosby), 로즈메리 클루니(Rosemary Clooney)의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이런 그녀의 음악적 성향은 후일 그녀가 가수가 되었을때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창법을 갖추게 만들어 주었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한 6년간의 피아노 교습 후 열다섯살 때 부터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스프링힐에서 '타타마구쉬(Tatamagouche)'까지 두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성악 교습을 받기도 하였다. '뉴브런스윅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New Brunswick)'에 입학한 앤 머레이는 1965년에 학교 친구들과 함께 'The Groove'라는 이름의 옴니버스 음반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500장 한정 발매된 이 음반에서 앤 머레이는 'Unchained Melody'와 'Little Bit of Soap'라는 두곡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앤 머레이가 공식적으로 참여한 첫번째 음반인 'The Groove'에는 앤 머레이의 이름이 'Anne Murry'로 잘못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The Groove' 음반 참여 이후 앤 머레이는 친구의 권유로 '싱얼롱 주빌리(Singalong Jubilee)'라는 'CBC' 텔레비전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최한 멤버 공개 모집에 참여하였지만 아깝게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2년 후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인 '빌 랭스트로스(Bill Langstroth)'의 연락을 받고 두번째로 참여한 공개 모집에서 합격하여 소원하던 싱얼롱 주빌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싱얼롱 주빌리에 발탁된 앤 머레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로 부임하게 되어 텔레비전 출연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체육 교사로 부임한지 1년후에 CBC 에서는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쇼 프로그램인 'Let's Go'에 출연해줄 것을 앤 머레이에게 요청하게 되었는데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연예계 활동을 그리워 하던 앤 머레이는 결국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텔레비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텔레비전으로 돌아온 앤 머레이는 'Let's Go'에 출연하는 한편으로 싱얼롱 주빌리의 정규 멤버로 복귀하여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그녀의 복귀와 함께 싱얼롱 주빌리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Singalong Jubilee Vol. III'가 '아크 음반사(Arc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는데 이 음반에 참여한 앤 머레이의 가창 실력을 눈여겨 본 음악 감독 '브라이언 아헌(Brian Ahern)'이 앤 머레이에게 솔로 음반을 발표해 볼것을 제안하게 된다.

브라이언 아헌의 권유를 심사숙고한 앤 머레이는 토론토로 가서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 음반이 바로 1968년에 아크 레이블에서 발표된 'What About Me'였다. 데뷔 음반 발표 이후 앤 머레이는 대형 음반사인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와 계약을 하고 두번째 음반 'This Way Is My Way'를 1969년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Snowbird'는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8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게 된다.

'Snowbird'의 히트 이후 앤 머레이는 꾸준히 히트 곡들을 만들어내며 인기 가수로 성장하였고 1978년에 발표한 싱글 'You Needed Me'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절정의 인기를 얻게 된다. 앤 머레이의 1978년 음반 'Let's Keep It That Way'에도 수록된 'You Needed Me'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특히 '내가 힘들어 할 때 내 곁을 지켜준 것은 당신'이라는 내용의 아름다운 노랫말로 인해 팝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곡이기도 하다.

앤 머레이 (Anne Murray) : 1945년 6월 20일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생

갈래 : 컨트리 팝(Country-Pop),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annemurray.com/

 

2010년 7월 28일 수요일

Patti Page - Changing Partners

 

Patti Page - Changing Partners

가수 '패티 페이지(본명: Clara Ann Fowler)'는 미국의 오클라호마(Oklahoma)주 클레어모어(Claremore)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로 성공한 후의 패티 페이지가 가진 인터뷰를 보면 그녀에게는 여러명의 언니들과 여동생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철도 가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해야 했고 어머니는 언니들과 함께 목화 농장에서 일을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전기 시설이 없이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어린 패티 페이지는 해가 지면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1945년 오클라호마주 털사(Tulsa)시의 '다니엘 웹스터 고교(Daniel Webster High School)'를 졸업한 패티 페이지는 졸업한 그해에 우연히 털사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인 'KTUL'의 15분 짜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는 행운을 잡게 된다.

당시 이 프로그램을 후원하던 업체가 '페이지 우유(Page Milk Company)'였었는데 방송 후 그녀는 본명 대신 패티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1946년에는 '잭 레얼(Jack Rael)'이라는 색소폰 주자와 함께 하룻밤 같이 공연을 펼치게 되는데 이 공연을 마친 후 패티 페이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잭 레얼은 자신이 매니저를 맡고 있던 '지미 조이 밴드(Jimmy Joy Band)'에 합류할 것을 패티 페이지에게 제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지미 조이 밴드의 일원이 된 패티 페이지는 밴드의 멤버들과 함께 순회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약 일년간 지미 조이 밴드와 함께 이어진 순회 공연은 1947년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와서 멈추게 된다. 패티 페이지가 밴드의 일원으로 보다는 솔로로 활동하기를 원했기 때문인데 밴드 멤버들과 헤어진 패티 페이지는 우연히 유명 재즈 연주가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이끌던 악단과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된다.

베니 굿맨은 악단과의 공연에서 뛰어난 보컬 실력을 발휘한 패티 페이지를 마음에 들어했고 '머큐리 음반사(Mercury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머큐리와 계약한 패티 페이지는 1948년에 싱글 'Confess'을 발표하며 데뷔하게 된다. 데뷔 싱글 녹음 당시 음반사 소속의 세션 보컬리스트들이 파업 중이어서 하모니를 담당해줄 백보컬을 구할 수 없었던 패티 페이지는 음반사와 상의하여 자신이 직접 '다중 녹음(Overdubbing)' 방식을 이용하여 하모니 파트를 채워 넣게 되었는데 이는 팝 가수로써 최초의 시도이기도 했다.

새로운 녹음 방식으로 제작된 패티 페이지의 데뷔 싱글은 화제를 불러 모으며 히트를 하였고 빌보드 차트에도 진입하여 12위 까지 진출하는 인기 상품이 되었다. 데뷔 싱글의 성공 이후 패티 페이지는 발표하는 곡들 마다 모두 빌보드 차트에 진입시키는 탄탄대로를 걸으며 인기 행진을 벌여 나갔고 1950년에 발표한 싱글 'All My Love (Bolero)'로 절정을 맞이 하게 된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All My Love (Bolero)' 발표 이후 같은 해에 발표한 'Tennessee Waltz' 역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이 곡은 컨트리 밴드인 '피 위 킹 앤 히스 골든 웨스트 카우보이스(Pee Wee King & His Golden West Cowboys)'가 1947년에 발표하였던 곡을 커버한 곡이었다. 두 곡의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만들어낸 패티 페이지는 1951년에 데뷔 음반 'Folk Song Favorites'을 발표하였으며 1952년에는 세번째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싱글 'I Went to Your Wedding'을 발표하였다.

'You Belong to Me'와 'Why Don't You Believe Me'로 이어지는 히트 곡을 연이어 발표한 패티 페이지는 1952년 12월에 녹음된 싱글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를 1953년에 발표하여 또 다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 놓게 된다. 1953년 9월에는 우리나라의 라디오 팝 프로그램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 'Changing Partners'를 녹음하여 발표하게 되는데, 이 곡은 그해 11월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여 21주간 머물렀고 1954년에 3위 까지 진출하게 된다.
 
히트 곡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와 함께 'Changing Partners'는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며 패티 페이지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패티 페이지 (Patti Page) : 1927년 11월 8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갈래 : 트래디셔널 팝(Traditional Pop), 컨트리(Country), 컨트리 팝(Country-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isspattipage.com/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Kenny Rogers - Lady

 

Kenny Rogers - Lady

케니 로저스 (Kenny Rogers) : 1938년 8월 21일 미국 텍사스(Texas) 휴스턴(Houston) 출생
분류 : 컨트리팝(Country-Pop), 소프트 록(Soft Rock), 팝록(Pop/Rock)


미국의 컨트리 가수이자 사진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케니 로저스(본명: Kenneth Ray Rogers)는 다방면에 걸친 재능으로 사랑받는 가수이다. 미국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케니 로저스는 제프슨 데이비스 고교(Jefferson Davis High School)에 재학중이던 1956년에 스칼러스(The Scholars)라는 이름의 로커빌리(Rockabilly: 미국 남부의 백인 뮤지션들에 의해 시작된 초기 록 음악)밴드를 결성하여 두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면서 음악적 경력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58년에는 싱글 'That Crazy Feeling'을 솔로로 발표하여 소폭의 히트를 하였으나 판매량은 저조하였다. 이후 재즈 그룹인 바비 도일 트리오(The Bobby Doyle Trio)에 가담하여 클럽을 무대로 활동을 하였으며 음반에도 참가하였다. 1965년 그룹이 해산되자 케니 로저스는 솔로로 'Here's That Rainy Day' 라는 재즈 곡을 발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66년에는 포크 그룹 '뉴 크리스티 민스트럴스(New Christy Minstrels)'에 가수겸 베이스 주자로 가입하면서 음악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된다. 뉴 크리스티 민스트럴스에서의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케니 로저스는 1967년에 '퍼스트 에디션(The First Edition)' 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싱글 'Just Dropped In (To See What Condition My Condition Was In)'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케니 로저스의 첫번째 히트 곡이었으며 계속해서 'Ruby, Don't Take Your Love To Town' 과 'Reuben James', 등의 곡을 팝과 컨트리 차트에 연속해서 올려놓으며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 당시 케니 로저스는 히피(Hippie: 미국의 물질 문명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통칭) 성향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활동하여 'Hippie Kenny'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74년 케니 로저스는 빠르게 변하는 팝음악계에 환멸을 느껴 그룹 퍼스트 에디션을 해체하고 솔로로 전향하여 컨트리 가수로 새출발을 하게 된다. 1975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1976년에 음반' Love Lifted Me'를 발표하여 컨트리 차트 20위권에 진출시키며 컨트리 가수로써 비교적 성공적인 출발을 하였다.

 

1977년에 발표한 두번째 음반 'Kenny Rogers'는 'Lucille' 이라는 대형 히트 곡을 탄생시키며 케니 로저스를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로 우뚝 서게 하였다. 싱글 'Lucille' 은 12개국의 팝차트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5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음반 Kenny Rogers 는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Lucille 의 성공이후 케니 로저스는 TV와 영화에도 진출하여 배우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TV 영화 'Coward of the County' 의 주제곡을 히트시키는 등 발표하는 음반마다 성공을 거두며 부와 명성을 쌓아나가게 된다. 1980년에는 킴 칸스(Kim Carnes)와 듀엣으로 '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 를 발표하여 히트를 하였고 라이오넬 리치 (Lionel Richie)와 공동 작업으로 만든 'Lady' 를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와 컨트리 차트의 정상을 동시에 차지 하였다.

 

Lady 는 한국에서도 대단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한국에서 케니 로저스를 대표하는 곡이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Alabama - Mountain Music


Alabama - Mountain Music

1980년 초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컨트리 록 그룹 알라바마(Alabama)는 사촌 형제 세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밴드이다. 알라바마주 포트 페인(Fort Payne) 지역의 목화 농장에서 성장한 사촌 형제 랜디 오웬(Randy Owen, 리드 보컬, 리듬 기타, 1949년 12월 14일 생)과 테디 젠트리(Teddy Gentry, 보컬, 베이스, 1952년 1월 22일 생)는 교회에서 듀오로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고교 시절 이들 듀오와는 또 다른 사촌 형제 사이인 제프 쿡(Jeff Cook, 리드 기타, 키보드, 피들, 1949년 8월 27일 생)은 록 음악을 틀어주는 DJ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탈렌트 선발 대회에 이들 사촌 형제 세명이 Young Country 라는 이름의 트리오로 출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 알라바마가 출범하게 된다. 이때가 1969년의 일로 이들은 2006년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컨트리 가수 멀 해거드(Merle Haggard) 의 노래로 참여하였다.

고교 졸업후 대학으로 진학한 이들 사촌들은 1972년에 드러머 베넷 바타니안(Bennet Vartanian)을 영입하여 그룹 Wildcountry 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4인 체제의 프로 그룹으로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사촌 사이인 멤버들 사이에서 버티기가 힘들었던 베넷 바타니안은 오래지 않아 그룹을 탈퇴하고 만다. 이후 1974년에 릭 스코트(Rick Scott)를 새로운 드러머로 받아들여 그룹을 정비한 Wildcountry 는 1977년에 그룹 이름을 Alabama로 바꾸고 GRT 레코드사와 한장의 음반을 발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1977년에 발매된 데뷔 싱글 I Wanna Be With Me 는 라디오를 통해 방송을 타면서 약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와 병행한 라이브는 예상외의 매진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이에 자극 받은 알라바마는 데뷔 앨범 발매를 서두르지만 레코드사의 파산으로 암초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GRT 와 체결한 음반 이면 계약 때문에 다른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쩔수 없이 그 계약을 다시 사들일수 밖에 없었던 알라바마는 1979년에 이르러 새롭게 데뷔 음반 발매를 준비하던 중 설상가상으로 드러머 릭 스코트가 그룹을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알라바마는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 출신의 록 드러머 마크 헌든(Mark Joel Herndon)을 영입하여 릭 스코트 대신 드럼 스틱을 맡기게 된다.

드러머로 인한 알라바마의 우여곡절은 마크 헌든의 가입으로 일단락 되었으며 알라바마는 1980년에 자주 제작의 동명 타이틀 데뷔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싱글 발췌된 I Wanna Come Over 는 라디오의 컨트리 채널을 통해 방송되면서 많은 청취자들을 불러모으게 되었으며 달라스에 위치한 소규모 레코드사인 MDJ의 관심을 끌게 된다.

알라바마의 두번째 싱글 My Home's in Alabama 는 이렇게 하여 MDJ를 통해 발매되었는데, 이 곡은 차트 20위권에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였고 알라바마는 Country Music New Faces Show 에도 출연하게 된다. 이들의 성공을 지켜 본 RCA 레코드사는 알라바마에게 영입을 제의하여 사인을 하게 되고 RCA 에서의 첫번째 싱글 Tennessee River 를 발매하게 된다.

이때부터 컨트리 록 그룹 알라바마의 전성기가 10년 동안 진행되는데 1982년에 발매된 음반 Mountain Music 의 타이틀 곡은 컨트리 음악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에서 컨트리 음악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히트 곡이었다.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John Denver - Take Me Home Country Roads

John Denver - Take Me Home Country Roads


1943년 12월 31일 미국 뉴멕시코주 남동부에 위치한 로즈웰(Roswell)의 워커 공군 기지에 근무하던 공군 파일럿의 아들로 태어난 존 덴버(John Denver, 본명 Henry John Deutschendorf, Jr.)는 미국내 여러 지역으로 전속다니던 아버지의 직업 탓에 어린 시절 부터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친숙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음악 여정에 그대로 반영되게 된다. 또한 존 덴버가 열두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로 부터 선물받은 1910년제 깁슨 어쿠스틱 기타는 존 덴버에게 음악을 가까이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된다.

 

존 덴버는 1961년에 텍사스 공대(Texas Tech University)의 건축 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하던 중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3학년이 되던 해인 1964년에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콜로라도주의 주도인 덴버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예명으로 삼고,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와 함께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채드 미첼 트리오는 순회 공연의 실패로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존 덴버의 합류로 그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게 된다. 이 당시 Mercury사에서 존 덴버와 트리오는 한장의 음반을 녹음하였는데, 이 음반은 1974년에 존 덴버의 이름으로 Beginnings With the Chad Mitchell Trio 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매가 되었다.

1969년 존 덴버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노래인 Leaving On A Jet Plane 을 Peter, Paul & Mary 에게 취입하게 하여 히트를 기록하게 하였고, 이 곡은 같은 해에 발표된 존 덴버의 솔로 데뷔 앨범 Rhymes & Reasons 에도 수록하게 된다. 1971년 존 덴버는 Poems, Prayers & Promises 음반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의 수록 곡 가운데 싱글로 발매된 Take Me Home Country Roads 는 밀리언 셀링 히트를 기록하였고, 이로인해 존 덴버는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향의 풍경들,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여 '콜로라도의 계관 시인'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던 존 덴버는 1997년 10월 12일 시험용 비행기로 캘리포니아 해안을 비행하던 중 사고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