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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일 수요일

Roxette - The Look

 

Roxette - The Look

'아바(ABBA)'의 뒤를 이어 전세계의 팝 시장을 석권했던 스웨덴의 록세트는 1986년에 결성되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웨덴을 대표하는 혼성 팝 듀오였었다. 스웨덴 남부 할란드(Halland)주의 주도이며 항구 도시인 할름스타드(Halmstad)에 태어난 '페르 게슬'은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듀오를 결성하기 이전 부터 가수 겸 작곡가이자 기타 주자로 활동하던 음악인이었다.

페르 게슬은 1976년에 밴드 '오디오비슬레트 앙그렙( Audiovisuellt Angrepp)' 출신의 '마츠 패숀(Mats Persson)'을 만나 그와 함께 듀오 '그레이프 록(Grape Rock)'을 결성하면서 음악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그레이프 록에 세명의 연주자가 추가로 가입하면서 듀오는 밴드로 바뀌었고 이름도 그레이프 록에서 '길란 티더(Gyllene Tider)'로 바뀌게 된다. 할름스타드 지역을 근거로 활동을 시작한 길란 티더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할름스타드에서 펼친 공연으로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이에 밴드는 서둘러 미니 음반(EP)을 제작하여 1978년에 'Billy'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공개된 후 삽시간에 900장을 팔아 치우는 기록을 세우며 매장에서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길란 티더는 1980년에 데뷔 음반 'Gyllene Tider'를 발표하였고 이후 1984년에 발표한 음반 'The Heartland Cafe' 까지 넉장의 음반을 발표한 후 1985년에 해산하였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이 백보컬로 참여한 길란 티더의 마지막 음반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영어 가사로 만들어졌으며 밴드 이름도 '록세트(Roxette)'로 바꾸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음반 판매가 부진하여 길란 티더는 결국 미국 시장 진출 대신 해산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록세트라는 이름은 밴드 해산 후 페르 게슬이 결성한 듀오가 이어 받으면서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하여 길란 티더의 꿈을 대신 이루게 된다.

앙엘홈(Angelholm)의 소도시 오쏘(Ossjo)에서 태어난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십대 시절에는 '딥 퍼플(Deep Purple)', '조니 미첼(Joni Mitchell)',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음악 대학에 진학하여 음악을 공부하는 한편으로 극장 무대에 올라 연극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할름스타드로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남자 친구가 활동하고 있던 밴드 '스트룰(Strul)'에 가입하여 할름스타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밴드의 일원으로 싱글을 제작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스트룰(Strul)'이 해산하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남자 친구와도 결별하고 새로운 밴드를 찾다가 '마마스 반(MaMas Barn)'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 밴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해산하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이때 부터 솔로 활동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솔로 활동을 모색하던 1981년에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길란 티더의 공연에서 백보컬을 맡게 되는데 이때 부터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길란 티더의 인연은 록세트 결성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길란 티더가 1984년 2월에 발표한 영어 가사 음반 'The Heartland Cafe'에 참가하여 백보컬을 담당하였으며 그해 9월에는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 'Het Vind'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고 1986년 2월에 두번째 음반 'Den sjunde vagen'을 발표하였다. 한편 1983년에 솔로 데뷔 음반 'Per Gessl'을 발표하였던 페르 게슬은 길란 티더의 해산 후인 1985년 10월에 두번째 솔로 음반 'Scener'을 발표한 후 EMI 음반사의 음악 감독 '롤프 나이그렌(Rolf Nygren)'의 제안에 따라 마리에 프레드릭슨과 함께 듀오를 결성하였고 듀오의 이름으로는 이전에 길란 티더가 사용하려고 했던 록세트를 사용하게 된다.

록세트라는 이름은 영국 록 밴드 '닥터 필굿(Dr. Feelgood)'의 데뷔 음반 'Down by the Jetty'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록세트는 1986년 7월에 싱글 'Neverending Lov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고 10월에는 데뷔 음반' Pearls of Passion'을 발표하였다. 록세트의 데뷔 싱글은 스웨덴의 싱글 차트에서 10위권에 진출하며 히트하였고 싱글 음반도 5만장이 팔려 나갔다.

성공적인 데뷔 이후 록세트는 1987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파워 발라드 곡인 'It Must Have Been Love'를 발표하였는데 후일 이 곡은 1990년에 개봉되었던 '리차드 기어(Richard Gere)'와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 삽입되면서 전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다. 1988년 10월에 두번째 음반 'Look Sharp!'을 발표한 록세트는 세번째 싱글로 발표한 'The Look'이 우연한 기회를 맞아 미국에 알려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록세트의 노래가 미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스웨덴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던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신의 학생 '딘 커시맨(Dean Cushman)'이 'The Look'을 듣고 마음에 들어서 미국으로 돌아갈때 'Look Sharp!' 음반 전체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들고 갔다가 미니애폴리스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 'KDWB'에 보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테이프를 받은 'KDWB'에서는 'The Look'을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하였는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스웨덴에서 건너온 록세트의 음악을 주목받게 만들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록세트는 미국 시장에서 음반 발매를 하게 되었고 싱글로 발표된 'The Look'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세계적으로 록세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성공 이야기가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소개가 되면서 록세트는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The Look'과 'Listen to Your Heart'가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록세트 (Roxette) :
페르 게슬 (Per Gessle, 기타, 보컬) : 1959년 1월 12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출생
마리에 프레드릭슨 (Marie Fredriksson, 보컬) : 1958년 5월 30일 스웨덴 오쏘 출생

갈래 : 유로 팝(Euro-Pop),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xette.se/


2009년 10월 1일 목요일

F.R. David - Words

 

F.R. David - Words

에프 알 데이비드 (F.R. David) :
본명 Eli Robert Fitoussi David, 1947년 1월 1일 튀니지 멘젤 부르기바(Menzel Bourguiba) 출생


항상 팬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기타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등장하여 선글라스와 흰색의 팬더 기타가 그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팝 가수 에프 알 데이비드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 아프리카 북부의 공화국 튀니지에서 태어났으며 열살이 되던 해에 가족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함에 따라 파리에서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된다.

 

에프 알 데이비드는 1970년대 초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유명한 음반 Haven & Hell 의 주인공으로 그리스 태생인 반젤리스(Evanghelos Odyssey Papathanassiou)에게 발탁되어 그와 함께 1973년에 발표된 반젤리스의 실질적인 솔로 데뷔 음반 Earth 에 기타리스트로 참가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4년에는 반젤리스와 함께 Odyssey 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싱글 음반 Who/Sad Face 를 발표한 후, 프랑스의 록 그룹 Les Variations 에 가입하였다. Les Variations 는 1975년에 부다 레코드(Buddah Records)를 통해 음반 Cafe De Paris 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에 싱글 음반 Superman Superman/Berberian Wood 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밴드는 연이은 음반과 싱글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1975년 12월 해산하게 된다. 밴드가 해체되자 에프 알 데이비드는 두비 브라더스(Doobie Brothers), 오 제이스(The O'Jays), 토토(Toto) 등의 그룹들이 제작하는 음반에 세션으로 참가하며 미국에서 5년여의 기간을 보내게 된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돌아온 에프 알 데이비드는 당시 이탈리아 클럽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던 유로비트(Eurobeat)에 기반한 댄스 사운드로 채워진 음반 Words를 1982년에 발표하였는데, 음반의 타이틀 곡이 유럽 각국의 차트를 빠르게 점령해 나가며 에프 알 데이비드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또한 이 음반은 한국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Pick Up The Phone, Someone To Love, Music 등 음반 수록곡 대부분이 한국에서 히트를 하였다.

 

 

2009년 7월 6일 월요일

Abba - Waterloo


Abba - Waterloo

스웨덴을 대표하는 팝 그룹 아바(Abba)는 사상최초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들의 히트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비영어권 국가 츨신인 유럽 밴드였다. 대그룹 Abba가 탄생하기까지 그룹 멤버들의 여정을 살펴보면 먼저 스톡홀름 출신의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 피아노, 키보드, 1946년 12월 16일 생)은 18세가 되던해에 스웨덴의 비틀즈라는 평을 들었던 팝록 그룹 The Hep Stars 에 가입하여 베이스를 담당하였다. The Hep Stars의 전성기였던 1965년과 1966년을 이끌었던 그룹의 일원으로써 베니 앤더슨은 한축을 담당하며 눈부신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고텐부르크(Gothenburg) 출신의 비요른 울바에우스(Björn Ulvaeus, 리드기타, 1945년 4월 25일 생)는 베니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18세의 나이에 스웨덴의 유명한 스키플(Skiffle,1950년대 후반에 유행한 재즈와 포크가 섞인 음악) 그룹 The Hootenanny Singers 에 가입하여 1960년대 후반을 화려하게 보내고 있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Agnetha Fältskog, 보컬, 1950년 4월 5일 생)는 이왼최핑(Jönköping) 출신으로 17세 때부터 싱글 음반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어가고 있던 중, 1971년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의 록 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 에 출연하여 Don't Know How to Love Him 을 불러 주목받는 인기가수가 되었다.

밴드의 멤버 중 유일하게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이주한 가족을 따라 스웨덴에서 자란 애니프리드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 보컬, 1945년 11월 15일 생)는 애니프리드 포(Anni-Frid Four)라는 댄스 그룹을 결성하여 1967년 TV 쇼의 콘테스트에 출전, 입상을 하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1966년 어느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베니 앤더슨, 두 사람은 이후 틈틈히 함께 일하며 친목을 다져나가고 있었는데 1970년 두사람은 Björn & Benny 라는 이름으로 스웨덴에서 Lycka 라고 명명된 한장의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음반 발표 당시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연인 사이였으며, 역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베니 앤더슨과 애니프리드 린스태드는 스톡홀름에서 동거를 하고 있었다. 1971년 7월에는 스타의 결합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그네사 팰트스코그가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모이겐 된 네사람은 함께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멤버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딴(Anni-Frid Lyngstad, Björn Ulvaeus, Benny Andersson, Agnetha Fältskog) Abba 라는 이름을 그룹 이름으로 결정하고 1973년에 데뷔 음반의 녹음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Abba 는 데뷔 음반 발매와 병행하여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하기 위한 스웨덴 예선에 Ring Ring 이라는 곡으로 참가하게 되는데, 최종 예선일이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의 첫 아이 출산 예정일인 1973년 2월 23일 이었다. 하지만 출산이 조금 늦어져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칠수 있었지만 3위에 입상하여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는 다음으로 미룰수 밖에 없었다.

데뷔 음반 발표 후, 그해 10월 부터 이듬해인 1974년 1월 까지 두번째 음반 녹음 작업을 마친 아바는 마침내 1974년 4월 6일에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Waterloo 로 출전하여 대망의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전유럽의 5백만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상을 차지했던 곡 Waterloo 는 전유럽의 차트를 점령했으며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도 6위에 랭크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는 아바의 시작에 불과했으며 Waterloo 로 시작된 아바의 열풍은 1975년에 전유럽에 울려퍼진 아바의 긴급 구조 S.O.S 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아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