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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Fleetwood Mac - Dreams

 

Fleetwood Mac - Dreams

1977년에 발표한 음반 'Rumours'로 1천 9백만장이 넘는 사상 초유의 기록적인 음반 판매를 기록했던 영국 밴드 '플리트우드 맥'은 블루스 록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영국 블루스 록 밴드인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에서 시작되었다. 1966년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을 대신하여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 기타 주자로 가입했었던 '피터 그린(Peter Green)'은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이듬해인 1967년에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탈퇴할 당시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에는 존 맥비와 믹 플리트우드가 피터 그린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피터 그린은 1967년의 어느 날 밴드 탈퇴를 결심하고 두 사람에게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의 결성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런던에서 1967년에 결성된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는 피터 그린의 제안에 따라 믹 플리트우드와 존 맥비의 이름을 따서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결성 이후 밴드의 활동 상황을 살펴 보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의 플리트우드 맥 멤버들은 밴드의 완성을 위해 나머지 멤버를 찾게 되는데 먼저 합류한 인물이 미국의 블루스 기타 주자인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광팬이었던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였으며 마지막으로 베이스 주자인 '밥 브러닝(Bob Brunning)'이 임시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밴드의 체제를 완성한 플리트우드 맥은 1967년 8월 13일에 '윈저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The Windsor Jazz and Blues Festival)'에 참가하여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된다.

음악 축제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한 플리트우드 맥은 영국의 신생 블루스 음악 레이블인 '블루 호라이즌(Blue Horizon)'과 어렵지 않게 음반 계약을 맺을수 있게 되었다. 1967년 11월, 런던의 녹음실로 들어간 다섯명의 플리트우드 맥은 1968년 2월 14일에 음반 'Fleetwood Mac'을 발표하면서 음반 데뷔를 하였다. 피터 그린이 주도하는 블루스 음악으로 채워진 플리트우드 맥의 데뷔 음반은 영국의 앨범 차트에 37주 동안 머무르며 최종 4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플리트우드 맥은 싱글 'Black Magic Woman'과 'Need Your Love So Bad'를 발표하여 히트 시킨 후 두번째 음반 'Mr. Wonderful'을 1968년 8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 부터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 1968년에 존 맥비와 결혼 후 크리스틴 맥비로 알려짐)'가 보조 연주자로 참여하여 건반 악기를 담당하게 된다. 두번째 음반 발표 후 플리트우드 맥은 리듬 파트 보강을 위해 당시 열여덟살이었던 기타 주자 '대니 커완(Danny Kirwan)'을 발탁하여 플리트우드 맥의 일원으로 합류시켰다.

플리트우드 맥은 대니 커완과 함께 1969년 1월에 싱글 'Albatross'를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싱글 'Albatross'를 히트 시킨 플리트우드 맥은 1969년 9월에 세번째 음반 'Then Play On'을 발표하였으나 이 음반을 끝으로 피터 그린이 플리트우드 맥에서 완전히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피터 그린이 떠난 플리트우드 맥은 이때 부터 블루스 지향의 음악에서 소프트 록 쪽으로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첫번째 변화가 제레미 스펜서와 대니 커완의 기타를 주축으로 하여 1970년 9월에 발표한 네번째 음반 'Kiln House'였다.

하지만 이 음반 발표 후 제레미 스펜서 마저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에서 탈퇴해 버리자 플리트우드 맥은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던 크리스틴 맥비와 '밥 웰치(Bob Welch)'를 새로운 멤버로 받아 들이면서 팝 취향이 강한 음악들을 선보이게 된다. 밥 웰치는 1971년 음반 'Future Games' 부터 1974년 음반 'Heroes Are Hard to Find'까지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플리트우드 맥을 탈퇴하였다. 이에 플리트우드 맥은 '스티브 닉스(Stevie Nicks)'와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을 새로운 멤버로 맞아 들이면서 밴드 역사상 최강의 진용으로 밴드를 정비하였다.

플리트우드 맥은 새로운 멤버들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열번째 음반 'Fleetwood Mac'을 1975년 7월에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Over My Head', 'Rhiannon', 'Say You Love Me'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0위 권에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고 음반도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3위에 그쳤지만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때 까지 밴드가 발표한 음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음반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밴드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플리트우드 맥이었지만 밴드 내부적으로는 이 시기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바로 존 맥비와 크리스틴 맥비 부부가 파경을 앞두고 있었고 연인 사이였던 스티브 닉스와 린지 버킹햄이 결별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76년에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플리트우드 맥에 조성되었으나 플리트우드 맥은 새 음반 'Rumours'의 녹음을 위해 마이애미와 할리우드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며 조성된 멤버들간의 긴장감이 오히려 음반 녹음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플리트우드 맥이 1977년 2월에 발표한 새음반 'Rumours'는 'Dreams', 'Don't Stop', 'You Make Loving Fun', 'Go Your Own Way'까지 네곡의 싱글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에서 동시에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 했던 히트 곡 'Dreams(영국 24위)'와 3위를 차지했던 곡 'Don't Stop(영국 32위)', 그리고 9위 까지 진출했던 곡 'You Make Loving Fun(영국 45위)'과 10위를 기록했던 'Go Your Own Way(영국 38위)'를 앞세운 음반 'Rumours'는 음반 판매에 있어서도 1천 9백만장을 훌쩍 넘기며 록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음반 'Rumours'는 우리나라에서도 앞서 언급 했던 히트 곡들 외에 'Songbird', 'The Chain'등 음반 대부분의 곡들이 사랑을 받으며 애청곡이 되었으며 음반은 플리트우드 맥 최고의 명반으로 사랑받고 있다.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 :
스티브 닉스 (Stevie Nicks, 보컬) : 1948년 5월 26일 미국 애리조나 출생
린지 버킹햄 (Lindsey Buckingham, 기타) : 1949년 10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크리스틴 맥비 (Christine McVie, 키보드) : 1943년 7월 12일 영국 컴브리아(Cumbria) 출생
존 맥비 (John McVie, 베이스) : 1945년 11월 26일 영국 런던 출생
믹 플리트우드 (Mick Fleetwood, 드럼) : 1947년 6월 24일 영국 콘월(Cornwall)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소프트 록(Soft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fleetwoodmac.com/
Dreams 감상하기 : http://youtu.be/bDthfYFsWH0
Don't Stop 감상하기 : http://youtu.be/a8arvEzHsA8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Frijid Pink - House Of The Rising Sun

 

Frijid Pink - House Of The Rising Sun

프리지드 핑크 (Frijid Pink) :
켈리 그린 (Kelly Green) : 보컬
게리 레이 톰슨 (Gary Ray Thompson) : 기타
톰 해리스 (Tom Harris) : 베이스
리처드 스티버스 (Richard Stevers) : 드럼

갈래 :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frijidpinknow
House Of The Rising Sun 감상하기 : http://youtu.be/t40INnb6DnY

 

Frijid Pink - Frijid Pink (1970년)
1. God Gave Me You (3:35)
2. Crying Shame (3:11) : http://youtu.be/v-XmPr5oNlw
3. I'm On My Way (4:34)
4. Drivin' Blues (3:14) : http://youtu.be/wkqLbg7ZdEw
5. Tell Me Why (2:50) : http://youtu.be/3NluPO_4lHQ
6. End of the Line (4:07)
7. House of the Rising Sun (4:44) : http://youtu.be/t40INnb6DnY
8. I Want to Be Your Lover (7:30) : http://youtu.be/FpiX5eiu2FE
9. Boozin' Blues (6:01) : http://youtu.be/Hfp0s1vTSsU
Bonus Track
10. Heartbreak Hotel (2:49)
11. Music for the People (2:54)

 

미국 미시간(Michigan) 주의 자동차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1967년에 결성된 하드 록 밴드 프리지드 핑크는 미국 민요인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강력한 사이키델릭 록으로 편곡한 명곡 'House Of The Rising Sun'을 1969년에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7위에 올려 놓으며 히트를 시켰다. 미국 민요인 'House Of The Rising Sun'은 1960년에 미국의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자신의 데뷔 음반에 수록 한 이후 1964년에 영국의 록 밴드 '애니멀스(The Animals)'가 록 버전으로 편곡하여 히트를 시켰으며 프리지드 핑크가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하여 또 다시 히트를 기록하였다.

프리지드 핑크의 곡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싱글 차트에도 올라 4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캐나다 싱글 차트에서는 3위에 올랐고 독일의 싱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사이키델릭 록 히트 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알고 지내던 톰 해리스와 리처드 스티버스는 1967년의 어느 날 사이키델릭 록을 구사하는 밴드를 결성해서 함께 활동하자는 의견을 주고 받게 된다. 바로 프리지드 핑크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강렬한 사이키델릭 록에 적합한 기타 주자를 찾게 되는데 게리 레이 톰슨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마지막으로 밴드의 보컬을 담당할 '켈리 그린(본명: Tom Beaudry)'이 이들과 합류하면서 4인조 밴드 프리지드 핑크는 탄생하였고 곧 바로 밴드는 디트로이트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프리지드 핑크가 구사하는 강렬한 사운드는 서서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여 1969년에 '패럿 음반사(Parrot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패럿 음반사와 계약에 성공한 프리지드 핑크는 1969년에 데뷔 싱글인 'Tell Me Why/Cryin' Shame'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음반 데뷔를 하였고 같은 해에 두번째 싱글 'Drivin' Blues/God Gave Me You'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두 싱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판매 실적도 신통치 않았다.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밴드가 1969년에 세번째 싱글인 'House of the Rising Sun/Drivin' Blues'을 발표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이었던 'House of the Rising Sun'이 좀더 강력한 사이키델릭 록으로 돌아오자 삽시간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7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프리지드 핑크가 1970년 1월에 발표한 데뷔 음반 'Frijid Pink'는 'House of the Rising Sun'의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1위 까지 진출하였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밴드는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그해 6월에 서둘러 두번째 음반 'Defrosted'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데뷔 음반의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하고 앨범 차트에서 149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이게 된다. 음반의 실패는 밴드의 균열로 이어져 게리 레이 톰슨과 켈리 그린이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톰 해리스와 리처드 스티버스는 탈퇴한 두 사람 대신 '존 웨어링(Jon Wearing, 보컬)'과 '크레이그 웹(Craig Webb, 기타)'을 가입시켜 1972년에 세번째 음반 'Earth Omen'을 발표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밴드의 인기를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음반을 끝으로 톰 해리스 마저 밴드를 탈퇴하면서 원년 멤버는 드러머인 리처드 스티버스만 남게 되었다. 리처드 스티버스는 새로운 멤버들로 구성된 프리지드 핑크를 이끌고 1975년에 네번째 음반 'All Pink Inside'를 발표하였다. 이후 밴드는 더 이상 새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잠정 해산 상태에 있다가 1981년에 공식 해산하게 된다.

해산하여 팬들에게 잊혀져 가던 프리지드 핑크는 2001년에 완전히 새로운 멤버들로 재구성되어 돌아와 2002년에 새 음반 'Inner Heat'를 발표하였으나 새로운 프리지드 핑크는 음반의 실패로 활동을 마무리 해야 했다. 2005년에는 원년 멤버들인 톰 해리스, 리처드 스티버스, 켈리 그린이 다시 모여 새로운 프리지드 핑크를 출범 시켰으나 이 또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원년 멤버의 재결성이 실패로 끝난 후 프리지드 핑크는 드러머인 리처드 스티버스가 새로운 멤버들을 모아 밴드를 지속시켜 나가고 있으며 클럽 무대를 통한 활동을 현재까지 계속 이어 오고 있다.

참고로 'House Of The Rising Sun'은 미국 국회 도서관의 직원으로 민속학자였던 '앨런 로맥스(Alan Lomax)'가 1937년에 켄터키(Kentucky) 주 미들즈버러(Middlesborough)의 탄광촌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오며 불려지고 있던 노래를 채집하여 그 지역 광부의 딸인 당시 열여섯살의 십대 소녀였던 '조지아 터너(Georgia Turner)'에게 부르게 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조지아 터너가 녹음하여 1937년 9월에 싱글로 발표되었던 당시 곡의 제목은 'The Risin' Sun Blues'였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Boz Scaggs - We're All Alone

 

Boz Scaggs - We're All Alon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 '보즈 스캑스(본명: William Royce Scaggs)'는 우리에게 'Abracadabra'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미국 록 밴드 '스티브 밀러 밴드(Steve Miller Band)'의 스티브 밀러와 함께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오하이오(Ohio)주 캔턴(Canton)에서 외판원의 아들로 태어난 보즈 스캑스는 열두살때 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텍사스 주 댈러스(Dallas)의 '세인트 막스 고등학교(St. Mark's School)'에 입학한 보즈 스캑스는 학교 친구들로 부터 '보즐리(Bosley)'라는 예명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는데 후에 이 이름을 짧게 줄여 보즈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세인트 막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9년에 보즈 스캑스는 '스티브 밀러(Steve Miller)'를 만나 그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가 바로 보즈 스캑스가 공식적으로 첫 밴드 활동을 하게 되는 '막스맨(The Marksmen)'이었다. 막스맨에서 보컬을 담당하며 밴드 활동을 했던 보즈 스캑스는 스티브 밀러와 함께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 진학해서도 밴드 활동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

대학생이 된 스티브 밀러와 보즈 스캑스는 1961년에 '아델스(The Ardells)'라는 밴드를 결성하였고 후에 '파뷸러스 나이트 트레인스(Fabulous Night Trains)'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바꿔 가면서 밴드 활동을 계속 하다가 대학교 졸업과 함께 밴드를 해산시키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한 보즈 스캑스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몇몇 블루스 록 밴드와 함께 활동하다가 스웨덴으로 공연 활동을 병행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웨덴을 여행하던 보즈 스캑스는 1965년 9월 30일에 스톡홀름(Stockholm)의 한 녹음실에 들어가 하룻밤만에 완성한 데뷔 음반 'Boz'를 1965년에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보즈 스캑스가 미국으로 돌아온 1967년에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를 중심으로 한 사이키델릭 음악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보즈 스캑스는 솔로 활동 보다는 밴드 활동을 선택하여 스티브 밀러가 결성한 밴드인 스티브 밀러 밴드에 가입하였다.

스티브 밀러 밴드의 데뷔 음반인 'Children of the Future(1968년)'와 두번째 음반인 'Sailor(1968년)'에 참여한 후 '애틀란틱 음반사(Atlantic Records)'와 솔로 계약을 맺은 보즈 스캑스는 스티브 밀러 밴드에서 탈퇴하고 솔로 음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1969년 음반 'Boz Scaggs'를 시작으로 1974년 음반 'Slow Dancer' 까지 다섯장의 솔로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기대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보즈 스캑스는 1975년 9월에 '스티브 포카로(Steve Porcaro)'와 '데이빗 페이치(David Paich)'등의 연주자들을 고용하여 새 음반 'Silk Degrees'를 녹음하였다.

1977년에 록 밴드 '토토(Toto)'를 결성하게 되는 스티브 포카로와 데이빗 페이치 등이 참여한 이 음반은 1976년 3월에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를 통해 발표되어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른 히트 곡 'Lowdown'을 비롯하여 'It's Over(38위)', 'What Can I Say(42위)', 'Lido Shuffle(11위)' 까지 총 네곡의 싱글 히트 곡을 탄생시킨 이 음반으로 보즈 스캑스는 성공이라는 달디 단 열매를 처음으로 삼키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음반에는 우리나라에서 보즈 스캑스를 대표하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We're All Alone'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1977년 6월에 팝 가수 '리타 쿨리지(Rita Coolidge)'가 커버하고 싱글로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게 된다.

보즈 스캑스 (Boz Scaggs) : 1944년 6월 8일 미국 오하이오 출생

갈래 : 블루아이드소울(Blue-Eyed Soul), 블루스 록(Blues-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bozscaggs.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wlbm7ctKWIE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Edgar Winter Group - Autumn

 

Edgar Winter Group - Autumn

미국의 다중악기 연주자 '에드거 윈터'는 텍사스(Texas)주 보먼트(Beaumont)에서 태어났다. 에드거 윈터의 아버지인 '존 윈터(John Winter)'는 동네 남자들이 매일 같이 모여들어 사교 활동과 음악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발소를 무대로 활동했던 '이발소 4중주단(Barbershop Quartet)'과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였으며 재즈 밴드 멤버로 색소폰(Saxophone)을 연주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성공한 음악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존 윈터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신의 큰 아들인 '자니 윈터(Johnny Winter)'와 둘째 아들인 에드거 윈터가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소년이 어릴때 부터 악기 연주를 가르치며 음악 활동을 권장하였다.

이런 아버지의 기대대로 형제는 거부감 없이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에드거 윈터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는 형 자니 윈터와 함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니 윈터가 연주하는 '유클렐리(ukelele)'를 반주로 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텔레비전 출연 후 형제는 뉴욕으로 가서 몇 군데의 음반사를 방문하여 실력을 검증받은 후 '다트 음반사(Dart Records)'를 통해 싱글 음반 'School Day Blues/You Know I Love You'를 발표하면서 어린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윈터 형제는 1962년에 '자니 앤 더 재머스(Johnny and the Jamm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였는데 이 밴드에서 자니 윈터는 기타를 연주하였으며 에드거 윈터는 피아노를 연주하였었다. 에드거 윈터는 고교 시절에 '캐논볼 애덜리(Julian Edwin "Cannonball" Adderley)'의 알토색소폰(Alto Saxophone)를 듣고는 그 음색에 반해 이때 부터 알토색소폰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댓가로 에드거 윈터는 대학 시절에 이미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등의 다양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다중악기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에드거 윈터는 1970년에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데뷔 음반 'Entrance'를 발표하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의 1960년 곡을 커버한 곡으로 에드거 윈터의 이름을 알린 곡인 'Tobacco Road'로 유명한 이 음반은 에드거 윈터와 자니 윈터가 공동으로 만든 곡들로 수록 곡 대부분을 채웠으며 자니 윈터는 이 음반에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해주기도 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에드거 윈터는 다음 음반 제작을 위해 자니 윈터를 비롯하여 '릭 데린저(Rick Derringer, 기타)'등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 밴드는 '에드거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Edgar Winter's White Trash)'라는 이름으로 1972년에 음반 'Edgar Winter's White Trash'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에드거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는 17분 짜리 대곡 'Tobacco Road'가 수록된 두장짜리 실황 음반 'Roadwork'를 1972년에 발표하고 짧은 활동 기간을 정리하게 된다.

에드거 윈터는 밴드를 해산시킨 후 로니 몬트로스, 댄 하트먼, 척 러프를 구성원으로 하는 새 밴드 에드거 윈터 그룹을 1972년에 결성하고 그해 11월에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인 음반 'They Only Come Out at Night'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에드거 윈터가 이전의 음반들에서 들려주었던 리듬 앤 블루스(R&B) 형식의 음악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시도를 선택한 음반으로 서든 록과 재즈, 그리고 블루스와 프로그레시브 록 까지 수용하여 실험적인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다.

수록 곡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형식의 연주 곡 'Frankenstein'을 비롯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했던 로니 몬트로스의 멋진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히트 곡 'Free Ride'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두 곡외에도 블루스 록 형식의 'When It Comes', 서든 록 형식의 'Round & Round'등을 수록하여 에드거 윈터가 이 음반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음반에는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발라드 'Autumn'이 수록되어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뜨거웠던 여름과 사랑했던 사람을 함께 떠나보내야 했던 이의 슬픈 심정을 노래한 'Autumn'을 들으며 어느 사이엔가 조용히 사라져 버린 매미의 울음 소리를 대신하여 갑자기 성큼 다가와 버린 가을 바람을 느껴보자.

에드거 윈터 그룹 (Edgar Winter Group) :
에드거 윈터 (Edgar Winter, 키보드, 보컬) : 1947년 12월 28일 미국 텍사스 출생
로니 몬트로스 (Ronnie Montrose, 기타) : 1947년 11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댄 하트먼 (Dan Hartman, 베이스) : 1950년 12월 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생, 1994년 2월 22일 사망
척 러프 (Chuck Ruff, 드럼) : 1951년 5월 25일 미국 네바다(Nevada)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dgarwinter.com/
Autumn 감상하기 : http://youtu.be/Y8nAb_NlTsg
Frankenstein 감상하기 : http://youtu.be/x1mV_5-bRPo

2010년 9월 17일 금요일

Janis Joplin - Move Over

 

Janis Joplin - Move Over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인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대 중후반의 팝계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 블루스 가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고 사라져간 가수였다. 텍사스주 포트아서(Port Arthur)의 한 대학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어머니와 기술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재니스 조플린은 반항아적인 기질을 곧잘 드러내며 성장하였다고 한다. 뚱뚱한 체격과 못생긴 외모로 인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십대를 맞으면서 재니스 조플린은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의 블루스 가수들인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나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의 노래를 즐겨 들었으며 이런 음악들을 통해 블루스 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들게 되었다. 포크 음악과 블루스 음악 외에도 재니스 조플린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시와 그림으로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음악과 시, 그리고 그림에 매료되며 십대를 맞이 하였고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몇명의 친구들과 함께 포크와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며 고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해서도 그녀의 못생긴 외모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놀림감 신세가 되었던 것은 변함없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라마 주립 공과 대학(Lamar State College of Technology)'에 입학하였지만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주변의 비웃음에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1962년 여름 학기까지 마친 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그해 12월에 재니스 조플린은 친구 집에서 자비로 녹음하여 만든 자신의 첫번째 싱글인 'What Good Can Drinkin' Do'를 테이프로 소량 발매하였으며 1963년 초에 텍사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럽이나 바의 무대를 통해 노래를 부르며 본격적인 프로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클럽 가수로 활동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멀지않은 미래에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기타리스트가 될 '조르마 카우커넌(Jorma Kaukonen)'을 1964년에 만나 그와 함께 몇곡의 블루스 곡들을 협연하여 녹음하게 된다. 이 당시 재니스 조플린과 조르마 카우커넌이 협연했던 곡들은 'Typewriter Talk', 'Trouble In Mind', 'Kansas City Blues', 'Hesitation Blues',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Daddy, Daddy, Daddy', 'Long Black Train Blues'로 이 곡들은 'The Typewriter Tape'이라는 제목의 해적판에 수록되어 출시된 적이 있다.

이 즈음 재니스 조플린은 클럽 가수 생활에서 오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복용량이 늘어나면서 위험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재니스 조플린은 1965년 5월에 친구가 끊어준 포트아서행 버스 표를 손에 들고 고향행 버스에 오르게 된다. 친구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 재니스 조플린은 어렵게 마약을 끊는 한편으로 중단했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학교에 복학하여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이 재활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가 결성되어 활동을 준비하며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의 매니저는 자신이 이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재니스 조플린에게 연락하여 밴드의 합류를 권하였고 재니스 조플린은 196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에 가입하게 된다.

'메인스트림 음반사(Mainstream Records)'와 계약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데뷔 음반 발매전인 1967년 6월에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에 출연하여 'Combination of the Two'와 'Ball and Chain'을 연주하여 관중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7년 9월에 메인스트림 음반사에서 데뷔 음반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를 발표하였으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밴드의 모습을 지켜 보았던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에서 음반 재계약을 제의하여 데뷔 음반이 컬럼비아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8년에 두번째 음반 'Cheap Thrills'를 발표하여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히트시켰다. 이 음반에는 히트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오페라를 편곡한 'Summertime'과 빅 마마 손튼의 곡인 'Ball and Chain'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음반의 성공과 함께 재니스 조플린의 명성도 높아져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라는 밴드 이름보다 개인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재니스 조플린은 1968년 12월 까지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와 함께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자신의 백밴드인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주력하였다. 공연 활동과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1969년 9월에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인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를 발표했다.

1969년 12월 20일 뉴욕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코즈믹 블루스 밴드를 해산시킨 재니스 조플린은 1970년 2월에 브라질로 여행을 떠났다가 미국으로 돌아 왔는데 여행을 다녀온 후 부터 재니스 조플린은 또 다시 마약과 술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예전처럼 서서히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갔다. 헤로인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재니스 조플린은 새로운 밴드인 '풀 틸트 부기 밴드(Full Tilt Boogie Band)'를 결성하고 1970년 5월 부터 순회 공연에 들어갔으며 그해 9월 5일에 새 음반 작업을 위해 밴드와 함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새 음반 'Pearl'을 녹음하면서 부터 재니스 조플린의 상태가 좋아지는 듯 했으나 10월 1일의 마지막 녹음을 끝으로 그녀는 사흘 후인 10월 4일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의 사후인 1971년 2월에 발표된 음반 'Pearl'에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재니스 조플린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터져 나오는 곡인 'Move Over'를 비롯하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의 곡으로 싱글로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곡인 'Me and Bobby McGee'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음반에는 'Buried Alive in the Blues'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에는 재니스 조플린의 보컬이 빠져 있어 그녀가 미처 녹음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알려주고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Move Over' 한 곡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음반 'Pearl'은 음반의 제목인 진주처럼 영롱함으로 반짝이는 음반이기도 하다.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 1943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 출생, 1970년 10월 4일 사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하드 록(Hard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anisjoplin.net/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YYWdiG1Bf0c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2009년 4월 4일에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와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입성한 영국의 록 기타리스트 '제프 벡(본명 : Geoffrey Arnold "Jeff" Beck)'은 열살때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를 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호기심이 한참 왕성했던 십대 시절 부터는 기타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 자신의 기타가 없었던 제프 벡은 친구에게 자주 기타를 빌려 연주 연습을 하고는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내가 직접 기타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스스로 기타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제프 벡의 첫번째 기타는 여송연(Cigar)을 포장했던 나무 상자와 낙하산 줄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언뜻 어슬퍼 보이는 이 기타가 후일에 좀더 발전하여 '프렛리스 기타(Fretless Guitar)'가 세상에 탄생하게 된다. 제프 벡이 서툰 솜씨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자신의 첫번째 기타가 프렛리스 기타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레스 폴(Les Paul)', '클리프 갤럽(Cliff Gallup)', '비비 킹(B.B. King)' 같은 기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고 따라 하며 기타 실력을 키워가던 제프 벡은 '윔블던 예술 대학교(Wimbledon College of Art)'를 졸업하고 에릭 클랩튼의 뒤를 이어 록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는 영국 록 밴드 '야드버즈(The Yardbirds)'에 가입하여 프로 음악인으로 첫번째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에 가입하여 이듬해 탈퇴할 때 까지 약 2년간 야드버즈에서 활동하면서 주목받는 기타 연주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실험적인 면을 강조한 자신의 기타 연주 방식이 밴드가 추구하던 음악과 상충되며 멤버들과의 잦은 의견 충돌이 생겨나게 되자 결국 1966년 말에 제프 벡은 짧은 밴드 활동을 마감하기로 결정하고 야드버즈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제프 벡은 야드버즈 탈퇴 후 첫번째 활동으로 1967년에 단발성 밴드 '벡스 볼레로(Beck's Bolero)'를 결성하였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제프 벡을 비롯하여 12현 기타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베이스)', '키스 문(Keith Moon, 드럼)',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 키보드)'와 함께 결성한 벡스 볼레로는 1967년 2월에 녹음실에서 'Hi Ho Silver Lining'과 'Tallyman'을 녹음하여 싱글로 발표하였다. 싱글로 발표한 'Hi Ho Silver Lining'이 영국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하게 되자 제프 벡은 이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제프 벡 그룹(The Jeff Beck Group)' 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프 벡 그룹에는 벡스 볼레로에서 제프 벡과 함께 했던 니키 홉킨스가 가장 먼저 합류하였으며 뒤 이어 '로니 우드(Ronnie Wood, 베이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보컬)', '미키 월러(Micky waller, 드럼)'를 합류시켜 멤버 구성을 마친 제프 벡 그룹은 1968년에 음반 'Truth'를 발표하며 데뷔하였고 이듬해에 두번째 음반 'Beck-Ola'를 발표하였다. 밴드 구성원의 개인 기량이 특출했던 제프 벡 그룹은 블루스 취향의 하드 록으로 미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였으나 구성원들간의 잦은 의견 충돌이 빌미가 되어 결국 1969년 7월에 해산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

제프 벡 그룹을 해산한 제프 벡은 '팀 보거트(Tim Bogert, 베이스)',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드럼)'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 단계 까지 접어들었으나 1969년 11월에 제프 벡이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하여 그로부터 1년 6개월 가량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이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았다. 1971년 4월 부상에서 회복한 제프 벡은 '바비 텐치(Bobby Tench, 보컬)',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 키보드)', '클라이브 채먼(Clive Chaman, 베이스)', '코지 파웰(Cozy Powell, 드럼)'로 구성된 완전히 새로운 멤버로 제프 벡 그룹을 재결성하고 그해 10월에 새 음반 'Rough and Ready'를 발표하며 록계에 복귀하였다.

1972년 5월에 제프 벡 그룹은 통상 네번째 음반 'Jeff Beck Group'을 발표하고 또 다시 해산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표면적 이유는 밴드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프 벡이 밴드를 해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제프 벡 그룹을 해산한 후 제프 벡은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가 활동하고 있던 밴드 '켁터스(Cactus)'가 해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미루어 두었던 트리오 프로젝트의 재개를 시도하게 되는데 '벡 보커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는 이렇게 하여 결성이 되었다.

1973년에 데뷔 음반이자 유일작인 'Beck, Bogert & Appice'를 발표하고 1974년 까지 공연 활동을 했던 벡 보커트 앤 어피스는 두번째 음반의 준비 도중 제프 벡의 탈퇴로 급작스러운 해체를 맞게 된다. 벡 보커트 앤 어피스의 활동을 마감한 제프 벡은 1974년 10월에 녹음실에 들어가 자신의 첫번째 솔로 음반을 녹음하여 1975년에 'Blow by Blow'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흔히 '명반 중의 명반이며 기타 연주자를 지망하는 이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교과적인 음반'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이 음반은 '필 첸(Phil Chen, 베이스)', '리차드 베일리(Richard Bailey, 드럼)', 그리고 해산한 제프 벡 그룹의 '맥스 미들턴(키보드)'이 연주자로 참여하였고 '비틀즈(The Beatles)'의 음반 제작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함께 하였다.

재즈와 록을 자연스레 융합해낸 음반으로 정평이 난 이 음반에서 첫번째 트랙으로 선택된 곡은 연주자들의 호흡이 멋지게 어울어지는 록 취향의 'You Know What I Mean'이며 비틀즈의 곡을 경쾌하게 편곡한 'She's a Woman'이 두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프 벡이 만든 'Constipated Duck'에서는 힘이 넘치는 베이스 연주와 제프 벡의 정교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힘찬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 'Scatterbrain'은 제프 벡의 연주를 투명한 키보드 음과 오케스트라 풍으로 편곡된 현악기 소리가 보조하며 다음 곡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곡으로 블루스 기타의 제왕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에게 바치며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부제가 붙은 음반 최고의 명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가 'Scatterbrain'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간 자리를 빠르게 메우며 다가 오는데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적절한 이런 연주는 평생을 통해 여러번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연주를 제프 벡은 들려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잼 세션을 듣는 것 같은 'Freeway Jam'을 지나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인 현악 파트가 가미된 'Diamond Dust'가 차분하게 시작된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명곡 'Cause We've Ended As Lovers'에서 들었던 제프 벡의 연주도 감탄스러울 지경이지만 8분 짜리 대곡이자 마지막 트랙인 이 곡에서도 제프 벡은 특유의 정교한 기타 연주를 유감없이 펼쳐보이며 음반을 마무리 하고 있다. 현악 파트와 록 기타의 절묘한 조합이 이 곡만큼 세련되게 조화되는 곡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 한가지 알려드립니다.
제 블로그가 YES24 파워 문화 블로그에 선정되어 YES24에서도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8월 30일 어제부터 정식으로 YES 블로그를 통해 파워 문화 블로그가 운영되고 있으니 많이들 방문하셔서 축하와 격려의 댓글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울러 제 블로그를 YES24 파워 문화 블로그에 추천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이 글로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YES24 파워 문화 블로그 구경 가기 :  http://blog.yes24.com/wivern42

제프 벡 (Jeff Beck) : 1944년 6월 24일 영국 서리주 월링턴(Wallington)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퓨전(Fusion), 하드 록(Hard Rock), 앨범 록(Album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effbeck.com/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비틀즈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영국의 위대한 밴드 롤링 스톤스는 1962년에 결성되었다. 1950년대에 영국 켄트(Kent)주 다트포드(Dartford)의 웬트워스 초등학교(Wentworth Primary School)에는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이후 두사람은 성장하면서 각자가 정한 진로에 따라 키스 리처드는 '시드컵 예술 대학(Sidcup Art College)'에 입학하여 런던으로 떠났고 믹 재거도 '런던 정경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입학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다.

두사람은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며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고향의 다트포드 기차역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 항로에 들어서게 된다. 기타 연주를 좋아했던 키스 리처드는 자신의 공책에 '척 베리(Chuck Berry)'나 블루스 명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같은 연주자들의 노래 악보를 적어 가지고 다녔는데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만난 고향 친구인 믹 재거에게 이 공책을 보여주게 되었다.

당시 믹 재거는 런던 정경 대학에서 친구인 '딕 테일러(Dick Taylor)'와 함께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Little Boy Blue and the Blue Boy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키스 리처드의 공책을 통해 악보들을 보는 순간 믹 재거는 어떤 영감을 느끼게 되어 키스 리처드에게 자신의 밴드에 합류하여 블루스 지향의 음악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라는 이름 아래 뭉치게 된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블루스 연주자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가 결성한 밴드인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의 공연을 구경 갔다가 알렉시스 코너의 친구인 브라이언 존스를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존스는 친구인 알렉시스 코너의 밴드에서 보조 연주자로 기타 연주를 해주고 있었는데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를 만나게 되면서 리틀 보이 블루 앤 더 블루 보이스에 합류하게 된다.

또한 블루스 인코포레이티드에는 장래에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 되는 이언 스튜어트(Ian Stewart)와 찰리 왓츠가 멤버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였다. 1962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브라이언 존스, 이언 스튜어트, 딕 테일러, 토니 채프먼(Tony Chapman, 드럼)을 멤버로 한 밴드를 출범시키게 되는데, 밴드의 이름은 브라이언 존스가 머디 워터스의 음반에서 얼핏 보았던 수록 곡 'Rollin' Stone'에서 가져온 '롤링 스톤스(The Rollin' Stones)'로 정하게 된다.

1962년 7월 12일, 런던의 유명한 음악 클럽인 '마키 클럽(Marquee Club)'에서 데뷔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에 '앤드루 루그 올덤(Andrew Loog Oldham)'과 매니저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앤드루 루그 올덤의 노력으로 '데카 음반사(Decca Records)'와 계약하게 된 롤링 스톤스는 앤드루 루그 올덤의 의견에 따라 밴드 이름의 철자를 고쳐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로 바꾸고 1963년 6월 7일에 척 베리의 곡 'Come On'을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21위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한 롤링 스톤스는 1963년 11월에 두번째 싱글로 발표한 '존 레논(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곡 'I Wanna Be Your Man'을 싱글 차트에서 12위 까지 진출시키며 단숨에 인기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1964년 2월에 발표한 세번째 싱글은 '버디 홀리(Buddy Holly)'의 곡인 'Not Fade Away'였는데 이 곡은 싱글 차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높아가는 롤링 스톤스의 인기를 뒷받침 하였다.

1964년 4월 16일, 데뷔 음반 'The Rolling Stones'를 발표한 밴드는 데뷔 음반을 앨범 차트 정상에 올려 놓게 된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Tell Me'를 제외하면 음반의 모든 곡이 다른 사람들의 곡으로 채워진 데뷔 음반 이후 롤링 스톤스는 꾸준히 다른 사람들의 곡을 음반에 수록하게 되는데 1966년 4월에 영국에서 발표한 음반 'Aftermath'에 이르르서 음반의 모든 곡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만든 곡으로 채워 넣게 된다. 이 음반을 계기로 밴드의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의 영향력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여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에게 점차 밴드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한편 영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롤링 스톤스가 5월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던 히트 곡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6월 20일에 미국에서 발매된 'Aftermath' 음반에는 첫번째 트랙으로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으며 싱글로도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Paint It Black'은 1987년 9월에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하였던 베트남전을 그린 드라마 '머나먼 정글(Tour of Duty)'에 주제 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
믹 재거 (Mick Jagger, 보컬) : 1943년 7월 26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시타르) : 1942년 2월 28일 영국 글로셔터스 출생, 1969년 7월 3일 사망
키스 리처드 (Keith Richards, 기타) : 1943년 12월 18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출생
빌 와이먼 (Bill Wyman, 베이스, 해먼드 오르간) : 1936년 10월 24일 영국 런던 출생
찰리 왓츠 (Charlie Watts, 드럼) : 1941년 6월 2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로큰롤(Rock & Roll),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rollingstones.com/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Gary Moore - Empty Rooms

 

Gary Moore - Empty Rooms

 

1978년 봄에 녹음되어 1979년 9월 30일에 발표되었던 두번째 솔로 음반 'Back on the Streets'를 발표한 게리 무어는 음반에 수록되었던 발라드 'Parisienne Walkways'를 영국의 싱글 차트 10위권에 올려 놓으며 사람들에게 게리 무어라는 기타 연주자의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키게 된다. '씬 리지(Thin Lizzy)'의 '필 라이노트(Phil Lynott)'는 히트 곡 'Parisienne Walkways'에서 노래를 불러준 후 게리 무어에게 씬 리지의 다음 음반인 'Black Rose'의 녹음에 참여해 줄것을 요청하였고 이를 수락한 게리 무어는 1978년 12월 부터 진행된 씬 리지의 음반 'Black Rose'의 녹음 작업에서 리드 기타 주자로 참여하게 된다.

 

씬 리지의 멤버로 'Black Rose' 음반의 미국 순회 공연 길에 오른 게리 무어는 순회 공연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인 1979년 7월에 돌연 씬 리지를 탈퇴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내성적이라고 알려진 게리 무어의 성격상 씬 리지의 다른 멤버들과 융화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어쨌든 씬 리지는 게리 무어의 돌연한 탈퇴로 인해 남은 세명의 멤버로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하다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기타 주자 '미지 유어(Midge Ure)'를 가입시켜 순회 공연을 마무리 짓게 된다.

 

씬 리지를 탈퇴한 게리 무어는 드러머 '코지 파웰(Cozy Powell)'의 솔로 음반 'Over the Top'에 참여한 후 새로운 밴드인 '지 포스(G Force)'를 결성하여 1980년에 음반 'G Force'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채 조용히 묻혀버렸고 게리 무어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보컬 겸 베이즈 주자인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요청으로 그렉 레이크의 솔로 음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렉 레이크가 1981년에 발표한 솔로 음반 'Greg Lake'에서 기타 주자로 참가했던 게리 무어는 1982년에 강력한 헤비메탈 음악을 들고 팬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며 돌아오게 된다. 1982년 3월과 4월 사이에 녹음된 음반 'Corridors of Power'는 발표와 동시에 헤비메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성공을 거두었다. 순회 공연과 그렉 레이크의 1983년 음반 'Manoeuvres'와 코지 파웰의 1983년 음반 'Octopuss'의 참여 등으로 바쁜 한해를 보낸 게리 무어는 1984년 1월에 소련 전투기의 대한 항공 007편 피격 사건을 신랄하게 비판한 싱글 'Murder In The Skies'가 포함된 음반 'Victims Of The Future'를 발표하였다.

 

1983년 9월 1일에 발생했던 구 소련 전투기의 '대한 항공 007편'에 대한 피격 행위로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269명의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데 이 악랄하고 유래가 없는 민항기 피격 사건은 현재까지도 그 정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채 다양한 음모론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당시 게리 무어는 자신의 기타로 비행기 엔진 소리, 총알 소리 등을 완벽히 재현해낸 'Murder In The Skies'로 소련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하였으며 민항기 격추 사건으로 경악과 울분에 젖어 있던 우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음반 'Victims Of The Future'는 'Murder In The Skies'로 인해 영국에서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5월 30일에 한국에서도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음반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은 애잔한 발라드 'Empty Rooms'로 게리 무어의 명작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곡이기도 하다.

게리 무어 (Gary Moore) : 1952년 4월 4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ary-moore.com/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Gary Moore - Parisienne Walkways

 

Gary Moore - Parisienne Walkways

 

우리나라의 록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타 연주자 '게리 무어'는 영국의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벨파스트(Belfast)'에서 태어났다. 일곱살때 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자란 게리 무어는 이듬해에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 반해 기타 연주에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열네살 때 부터 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처음 배울 당시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제작된 기타 때문에 왼손잡이이던 게리 무어는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오른손잡이 방식의 기타 연주를 배우게 되었다.

 

기타를 배우던 초기에 게리 무어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지만 자신의 고향 마을인 벨파스트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에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의 공연을 지켜본 후에는 블루스 음악에 빠져들게 되어 블루스 록 그룹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기타 주자인 '피터 그린(Peter Green)'의 연주 방식을 따라 하며 기타 연주를 다듬었다.

 

벨파스트에서 기타를 치며 꿈을 키우던 게리 무어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항구 도시인 '더블린(Dublin)'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열일곱살 때인 1969년에 4인조 블루스 록 밴드인 '스키드 로우(Skid Row)'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로써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게리 무어는 더블린을 연고로 결성된 스키드 로우에서 후일 자신과 음악적 동반자 겸 친구로 깊은 교류를 나누게 되는 '필 라이노트(Phil Lynott)'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처음의 이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필 라이노트가 게리 무어가 가입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씬 리지(Thin Lizzy)'라는 하드 록 밴드를 결성하면서 스키드 로우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키드 로우는 트리오 형식의 밴드로 CBS 를 통하여 데뷔 음반 'Skid'를 1970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고, 1971년에 두번째 음반 '34 Hours'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스키드 로우는 음반의 성공을 위해 유럽과 미국 순회 공연을 펼치며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키드 로우의 음반은 상업적인 실패로 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게리 무어에게 스키드 로우에서의 활동을 접고 새로운 음악 활동의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고 결국 1972년에 게리 무어는 스키드 로우를 탈퇴하게 된다.

 

스키드 로우를 탈퇴한 게리 무어는 1973년에 솔로 데뷔 음반 'Grinding Stone'을 '게리 무어 밴드(The Gary Moore Band)'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필립 도넬리(Philip Donnelly, 기타)', '피어스 켈리(Pearse Kelly, 드럼)', '존 커티스(John Curtis, 베이스)' 같은 연주자들의 도움으로 데뷔 음반을 발표한 게리 무어는 필 라이노트의 제의로 영국 순회 공연 중이던 씬 리지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씬 리지는 영국의 명문인 '벨파스트 퀸스 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열린 신년 맞이 공연 이후 건강 악화로 갑작스럽게 '에릭 벨(Eric Bell)'이 씬 리지를 탈퇴하면서 밴드의 기타 주자가 공석이 되어 버린 상황으로 게리 무어는 에릭 벨을 대신하여 밴드의 멤버로써 남은 순회 공연을 마무리 짓게 된다.

순회 공연을 마친 게리 무어는 씬 리지가 1974년 11월에 발표하였던 음반인 'Nightlife'에 수록되었던 'Still In Love With You' 단 한곡에서 리드 기타 연주를 하고 씬 리지를 떠나 영국의 록 그룹 '콜로세움 2(Colosseum II)'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콜로세움 2에서 실험적 성향이 강한 석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밴드 활동을 정리한 게리 무어는 1978년 봄에 자신의 솔로 두번째 음반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게 된다.

 

1979년 9월의 마지막 날에 발표된 게리 무어의 두번째 솔로 음반은 'Back on the Streets'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콜로세움 2 시절의 동료들인 '돈 에어리(Don Airey, 키보드)'와 '존 몰(John Mole, 베이스)'이 함께 해주었고 친구인 필 라이노트가 베이스와 보컬로 참여하여 음반을 빛내주었다.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인 'Parisienne Walkways'는 우리나라에서 게리 무어의 팬이 늘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곡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팝팬들의 애청곡이기도 하다.

게리 무어 (Gary Moore) : 1952년 4월 4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ary-moore.com/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영국 헤비메탈 그룹 Whitesnake 의 발라드 Blindman

 

Whitesnake - Blindman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화이트스네이크'는 하드 록 그룹 '딥 퍼플(Deep Purple)'의 세번째 보컬리스트로 헤비메탈 역사에 이름을 올렸던 데이비드 커버데일에 의해서 1977년에 결성되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예술을 사랑하는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며 기타를 배웠고 십대 시절에는 여러 밴드를 거치며 음악 활동을 하였다. 십대 시절에 시작한 밴드 생활은 그에게 음악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꿈을 가지게 하였고 결국 '미들즈브러 예술 대학교(Middlesbrough Art College)'에 진학하여 음악 이론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1973년의 어느날, 당시 '가브먼트(The Government)'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영국의 유명한 음악 전문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를 읽던 중에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그 광고는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의 갈등으로 딥 퍼플을 탈퇴한 '이언 길런(Ian Gillan)'의 후임을 구한다는 광고였다.

 

오디션을 통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로 결정된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1974년 4월에 록 음악 페스티벌인 '캘리포니아 잼(California Jam)'의 무대에서 처음으로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로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균열이 시작된 딥 퍼플은 1974년에 발표한 음반 'Stormbringer' 이후 리치 블랙모어를 떠나 보내게 되고 그의 후임으로 '토미 볼린(Tommy Bolin)'을 영입하여 1975년 10월에 새 음반 'Come Taste the Band'를 발표하였다.

 

새 음반 발표 후 딥 퍼플은 1976년 3월에 영국 순회 공연에 들어가지만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하고 딥 퍼플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의 공백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76년 7월에 딥 퍼플은 1차 해산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솔로로 음반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1977년 2월,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백밴드인 '화이트스네이크 밴드(The White Snake Band)'와 함께 솔로 데뷔 음반 'White Snake'를 발표하였다. 솔로 음반 제작을 위해 임시로 결성된 화이트스네이크 밴드에는 미키 무디를 비롯하여 '로저 글로버(Roger Glover)', '사이먼 필립스(Simon Phillips)' 등이 참여하여 연주를 해주었다.

 

1978년 3월에는 데뷔 음반에서 연주를 해주었던 연주자들과 함께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 등이 참가한 두번째 음반 'Northwinds'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후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자신의 솔로 음반들에서 함께 했던 게스트들과 친분이 있던 연주자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밴드인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하고 1978년 6월에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으로 채워진 음반 'Snakebit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1980년 5월 31일 화이트스네이크는 네번째 음반 'Ready an' Willing'을 발표하면서 뉴웨이브 음악에 침식되어 가고 있던 음악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 넣었고 헤비메탈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 음반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90위에 오르는 선전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Fool for Your Loving'이 영국에서 싱글 차트 13위에 올랐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53위 까지 오르며 밴드 최초의 히트 곡이 되었던 영향이 크다 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이트스네이크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이 음반은 애절한 발라드 'Blindman'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음반이기도 하다. 록 발라드 곡을 특히 좋아하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곡인 'Blindman'은 당연하게도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과 음악 감상실의 신청 곡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며 사랑받았고 현재까지 팝팬들의 애청 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이트스네이크 (Whitesnake) :
데이비드 커버데일 (David Coverdale, 보컬) : 1951년 9월 22일 영국 노스요크셔 출생
미키 무디 (Micky Moody, 기타) : 1950년 8월 30일 영국 미들즈브러 출생
버니 마스덴 (Bernie Marsden, 기타) : 1951년 5월 7일 영국 버킹엄셔 출생
존 로드 (Jon Lord, 키보드) : 1941년 6월 9일 영국 레스터 출생
닐 머레이 (Neil Murray, 베이스) : 1950년 8월 27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
이언 페이스 (Ian Paice, 드럼) : 1948년 6월 29일 영국 노팅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블루스 록(Blues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whitesnake.com/

 

 

2010년 4월 7일 수요일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

로이 부캐넌 (Roy Buchanan) : 1939년 9월 23일 미국 아칸소주, 오자크 출생, 1988년 8월 14일 사망

 

분류 : 블루스(Blues), Blues-Rock(블루스 록), 팝 록(Pop/Rock), 컨트리 록(Country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roybuchanan.org/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은 완벽한 '텔레캐스트(Fender Telecaster)' 기타 연주로 인해 텔레캐스터 사운드의 선구자로 불리며 수많은 팬을 거느린 연주자였다. '오순절(Pentecostal)' 교회의 목사이자 농부의 아들로 오자크(Ozark)에서 태어난 로이 부캐넌은 캘리포니아주의 '픽슬리(Pixley)'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참가한 다인종 부흥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접한 흑인 음악인 '가스펠(Gospel)'에 많은 감명을 받게 된다.

 

이때 부터 로이 부캐넌은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곱살때에는 심야에 방송하는 R&B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블루스 음악을 듣고 블루스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스틸 기타(Steel Guitar)를 시작으로 하여 열세살때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전기 기타인 팬더 텔레캐스트로 바꾸어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텔레캐스트와 함께 시작된 그의 기타 여정은 열다섯살에 이르면서는 블루스 피아니스트인 '조니 오티스(Johnny Otis)'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인 프로 연주인으로써 기타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57년에 발표한 'Susie Q'를 불러서 히트시킨 '데일 호킨스(Dale Hawkins)'를 만난 로이 부캐넌은 그의 음반 녹음에 합류하여 생애 처음으로 음반 녹음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가 1958년이었는데 당시 로이 부캐넌은 'My Babe'라는 솔로 연주 곡을 음반으로 남겼다. 데일 호킨스와 순회 공연을 하며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로이 부캐넌은 데일 호킨스와 헤어진 후 그의 사촌인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로니 호킨스의 싱글 음반 'Who Do You Love?'에서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던 로이 부캐넌은 이후 많은 연주자들과 록 밴드의 공연에서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1960년대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Washington D.C.)'으로 가서 세션 활동을 펼치다가 자신의 그룹인 '스네이크스트레쳐스(Snakestretchers)'를 결성하였다.

 

1971년, 사람들은 한가지 기사로 로이 부캐넌을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룹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가 로이 부캐넌에게 롤링 스톤즈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로이 부캐넌이 거절하였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의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로이 부캐넌의 기타 연주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연주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The Best Unknown Guitarist in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방송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폴리돌 레코드(Polydor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한 로이 부캐넌은 1972년에 데뷔 음반 'Roy Buchanan'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는 로이 부캐넌의 명곡이자 대표 곡인 'The Messiah Will Come Again' 이 수록되어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다. 로이 부캐넌은 1988년 공공장소에서 음주 소란 행위로 체포되어 버니지아주 페어팩스(Fairfax County)의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중 자신의 셔츠를 이용하여 목매달아 자살하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Ten Years After - I'd Love To Change To World

 

Ten Years After - I'd Love To Change To World

텐 이어스 애프터 (Ten Years After) :
앨빈 리 (Alvin Lee, 기타, 보컬) : 1944년 12월 19일 영국 노팅엄셔 노팅엄(Nottingham) 출생
리오 라이온스 (Leo Lyons, 베이스) : 1943년 11월 30일 영국 노팅엄셔 맨스필드(Mansfield) 출생
칙 처칠 (Chick Churchill, 키보드) : 1946년 1월 6일 영국 플린트셔(Flintshire) 몰드(Mold) 출생
릭 리 (Rick Lee, 드럼) : 1945년 10월 20일 영국 스태퍼드셔(Staffordshire) 케녹(Cannock) 출생

 

분류 : 블루스(Blues),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팝록(Pop/Rock)


1967년에 출범하여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인기를 얻었던 영국의 블루스 록 그룹 '텐 이어스 애프터'는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인 '앨빈 리(본명: Graham Barnes)'의 주도하에 결성되었다. 알려진 그대로 앨빈 리는 음악을 좋아하던 부모님들이 즐겨 듣던 재즈와 블루스 음반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척 베리(Chuck Berry)'와 '스코티 무어(Scotty Moore)' 같은 거장들이 만들어 가는 로큰롤에 감명을 받으며 열세살때 부터 기타 연주를 하기 시작하여 유명한 기타리스트를 꿈꾸었다.

 

1962년 '이반 제이 앤 더 제이캣츠(Ivan Jay and the Jaycats)'라는 이름의 밴드에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앨빈 리는 이 밴드에서 '리오 라이온스(본명: David William Lyons)'를 만나게 된다. 이반 제이 앤 더 제이캣츠는 '이반 제이 앤 더 제이맨(Ivan Jay and the Jayme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제이버즈(The Jaybird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지역 클럽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독일의 함부르크에 있는 음악 클럽인 '스타 클럽(Star-Club)'에 진출하여 열성 팬들을 거느리는 작은 성공을 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이반 제이가 그룹의 전면에서 보컬을 담당했었지만 이 당시 부터 앨빈 리가 그룹의 전면에 나서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였는데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거두어 점차 많은 팬을 만들어 가며 성공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65년 8월 드러머인 '데이브 퀵마이어(Dave Quickmir)' 대신 릭 리(본명: Richard Lee)가 가입하였고 1966년에 제이버즈는 런던으로 돌아오게 된다.

 

런던으로 돌아온 제이버즈는 다시 밴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The Jaybirds'를 짧게 줄여 'Jaybird' 로 정하고 새 멤버 '칙 처칠(본명: Michael George Churchill)'을 받아 들여 4인 체제의 밴드로 정비하게 된다. 이후 제이버드는 '블루스 트립(Blues Trip)'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었다가 이내 '블루스 야드(Blues Yard)'라는 이름으로 '마퀴 클럽(Marquee Club)'에서 이루어진 '본조 독 두-다 밴드(Bonzo Dog Doo-Dah Band)'의 공연에 오프닝 밴드로 한차례 공연하였다.

 

1966년 11월 블루스 야드는 최종적으로 밴드 이름을 텐 이어스 애프터로 바꾸고 매니저를 기용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마퀴 클럽에 고정 출연하던 텐 이어스 애프터는 1967년 '윈저 재즈 블루스 페스티벌(Windsor Jazz & Blues Festival)'에 초청 가수로 무대에 올랐고 이 공연을 기회로 '데람 레코드(Deram Records)'와 바라마지 않던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1967년 10월 데뷔 음반 'Ten Years After'를 발매한 텐 이어스 애프터는 공연 활동과 라디오 방송 출연등을 하며 밴드의 데뷔 음반을 홍보하였고 1968년 여름에는 미국 순회 공연에 들어가게 된다. 이 순회 공연으로 앨빈 리의 블루스 감각 짙은 기타 연주가 주목 받게 된다.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zz Festival)'과 '우드스탁 페스티발(Woodstock Festival)'에 출연하며 1969년 한해를 바쁘게 보낸 텐 이어스 애프터는 1970년 봄, 영국 싱글 차트에 'Love Like a Man'을 진입 시키는 히트를 하였다. 이후 페스티벌 출연과 공연 활동으로 1970년을 마감한 텐 이어스 애프터는 1971년에 새 음반 'A Space in Time'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 수록된 'I'd Love To Change To World'는 텐 이어스 애프터의 최대 히트 곡인 동시에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애청 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Beck Bogert & Appice - Sweet Sweet Surrender

 

Beck Bogert & Appice - Sweet Sweet Surrender

벡 보거트 앤 어피스 (Beck Bogert & Appice) :
제프 벡 (Geoffrey Arnold Beck, 기타) : 1944년 6월 24일 영국 서리(Surrey), 월링턴(Wallington) 출생
팀 보거트 (Tim Bogert, 베이스) : 1944년 8월 27일 미국 뉴저지주 릿지필드(Ridgefield) 출생
카마인 어피스 (Carmine Appice, 드럼) : 1946년 12월 15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Brooklyn) 출생

 

분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 Rock)


수퍼 하드 록 트리오 '벡 보거트 앤 어피스'는 제프 벡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1969년 7월 The Jeff Beck Group 을 해산시킨 제프 벡은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 그룹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에서 활동하고 있던 팀 보거트, 카마인 어피스와 함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11월에 접어들며 밴드 결성을 위한 사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지만 11월 12일에 제프 벡이 돌연한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자 세사람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밴드 결성은 후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1년 6개월 가량의 긴 시간을 병상에서 보냈던 제프 벡은 부상에서 회복후 1971년 3월 새로운 'The Jeff Beck Group'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새로 탄생한 제프 벡 그룹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1972년 7월 24일 공식 해산하게 된다. 그룹을 해산시킨 제프 벡은 미국의 하드 록 그룹 캑터스(Cactus)에서 활동하던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를 불러들여 벡 보거트 앤 어피스를 결성하였으며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의 이탈로 캑터스는 해체되었다.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는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에서 함께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7년에 데뷔 음반 'Vanilla Fudge'를 발표한 밴드에는 팀 보거트를 비롯하여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디오(Dio)에서 활동했었던 비니 어피스(Vinny Appice, 드럼)의 형인 카마인 어피스, 그리고 빈스 마텔 (Vince Martell, 기타)과 마크 스테인(Mark Stein, 보컬, 키보드)이 멤버로 참여하였다.

 

1969년 9월에 다섯번째의 정규 음반 'Rock & Roll' 을 발표한 바닐라 퍼지는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가 제프 벡과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되자 이듬해인 1970년 3월의 공연을 끝으로 해산하게 된다. 팀 보거트와 카마인 어피스는 제프 벡의 사고로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캑터스를 결성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였고 함께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1972년 12월 11일, 오랜 기다림 끝에 벡 보거트 앤 어피스가 결성되었으며 세사람은 데뷔 음반 녹음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가 12월 22일 까지 한차례 녹음 작업을 마무리 하게 된다. 1973년 1월 2일 녹음을 재개한 벡 보거트 앤 어피스는 1973년 3월 26일 데뷔 음반 'Beck Bogert & Appice' 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발매된 이 음반은 미국과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각각 12위와 28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였고 벡 보거트 앤 어피스는 일본 투어에 들어가게 된다. (일본 실황은 Live in Japan 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벡 보거트 앤 어피스의 데뷔 음반이자 유일작(실황 음반 제외)인 'Beck Bogert & Appice' 에서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곡을 멋지게 리메이크하여 수록한 'Superstition'이 외국에서 히트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발라드 곡인 'Sweet Sweet Surrender'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애청곡이었다.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Derek And The Dominos - Layla

 

Derek And The Dominos - Layla

데릭 앤 더 도미노스 (Derek And The Dominos) :
에릭 클랩튼 (Eric Clapton, 기타, 보컬) :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리(Surrey)주 리플리(Ripley) 출생
바비 휫락 (Bobby Whitlock, 키보드, 보컬) : 1948년 3월 18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Memphis) 출생
칼 레이들 (Carl Radle, 베이스) : 1942년 6월 18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 출생, 1980년 5월 30일 사망
짐 고든 (Jim Gordon, 드럼) : 1945년 7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출생
듀안 올맨 (Duane Allman, 슬라이드 기타) :

                                           1946년 11월 20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출생, 1971년 10월 29일 사망

 

분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Rock), 팝록(Pop/Rock)


슈퍼 하드 록 그룹 크림(Cream)의 해산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거치며 변화를 모색하던 에릭 클랩튼은 델라니 브램릿(Bramlett)과 보니 브램릿(Bonnie Bramlett)이라는 부부로 구성된 소울 밴드'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에 합류하여 밴드 시절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남아메리카 음악을 접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델라니 앤 보니와 가진 유럽 공연에서 블라인드 페이스의 해산설에 실망한 관중들의 극심한 야유로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에릭 클랩튼은 델라니 앤 보니의 도움을 받아 솔로 음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고 블라인드 페이스는 결국 1970년 1월에 해산하게 된다.

 

블라인드 페이스가 해체되자 에릭 클랩튼은 '델라니 앤 보니 앤 프렌즈(Delaney & Bonnie & Friends)'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1970년 8월 솔로 음반 'Eric Clapton'을 발표하였다. 'Let It Rain'과 'After Midnight'이 수록된 이 음반은 델라니와 보니 브램릿이 참여하여 실험적인 소울 풍의 음악이 가미된 음반으로 이때까지의 에릭 클랩튼이 참여한 음반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비평가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솔로 음반을 준비하며 '델라니 앤 보니 앤 프렌즈'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에릭 클랩튼은 프렌즈 멤버들과 1970년 6월에 Eric Clapton & Friends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새로운 밴드는 곧 에릭 클랩튼의 별명인 Del 을 사용하여 Del & The Dominos 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 라는 이름으로 확정하였다.

 

두어차례의 공연을 통해 팀웍을 다진 '데릭 앤 더 도미노스'는 비운의 블루스맨 '듀안 올맨'을 세션으로 초대하여 음반 녹음에 돌입하였고 명반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를 완성해내게 된다. 1970년 12월에 발매된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는 타이틀 곡 Layla 에 얽힌 에릭 클랩튼의 유명한 사랑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었다.

 

그 내용은 익히 알려진데로 절친한 친구였던 비틀즈(The Beatles)의 멤버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를 사랑하고 있었던 에릭 클랩튼이 친구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해 가슴아파 하다 노래로 만들어 발표하였다고 한다. 결국 에릭 클랩튼은 후일 그녀와 결혼에 이르며 사랑을 완성하게 되었고, 결혼 후 그 행복감을 표현한 곡이 1977년에 등장한 명곡 'Wonderful Tonight' 이다.

 

12세기에 활동했던 페르시아 시인 니자미 간자비(Nizami Ganjavi)가 실제 있었던 사랑의 전설을 시로 만든 Layla and Majnun 을 배경으로 만든 노래인 Layla 는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 가운데 하나이지만 발표 당시 이 음반은 상업적인 실패를 에릭 클랩튼에게 안겨주었다. 이로인해 에릭 클랩튼은 침체기를 맞게 되고 마약과 가까이 하며 칩거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는 에릭 클랩튼의 활동 전기를 마감하는 음반으로 기록되며 역사적 가치를 하나 더 부여받게 된다.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Jimi Hendrix - Are You Experienced?

 

Jimi Hendrix - 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James Marshall Hendrix) : 1942년 11월 27일 시애틀 출생, 1970년 9월 18일 사망
분류 : 사이키델릭, 블루스 록, 하드 록, 애시드 록


4년간의 활동기간 동안 활화산 같은 삶을 살다 갔던 록 기타의 검은 신화 지미 헨드릭스는 체로키(Cherokee) 인디언 혈통의 아버지인 제임스 앨런 '앨' 헨드릭스(James Allen "Al" Hendrix) 와 어머니 루씰 지터(Lucille Jeter)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미 헨드릭스의 아버지는 1930년대 말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탭댄서였으며 20세가 되던 해에 시애틀의 한 공장에 취직하여 일을 하던 중 루씰을 만나게 된다. 두사람은 댄스 파트너가 되어 시애틀에서 열린 댄스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1942년 3월 제임스에게 군 소집 영장이 발부되자 두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그해 11월 지미 핸드릭스가 태어났다. 당시 지미 헨드릭스의 아버지가 군 복부 중이었던 이유로 어머니에 의해 조니 앨런 헨드릭스(Johnny Allen Hendrix)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나 군에서 제대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적인 절차를 거쳐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James Marshall Hendrix) 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지미 헨드릭스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고생하다 알콜 중독에 빠지게 되었고 이로인해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불화가 생겨 일곱살이 되던 해인 1949년에 두살배기 동생 레온(Leon Marshall Hendrix) 과 함께 고모에게 맡겨져 성장하게 된다. 2년 후 부모의 곁으로 돌아갔던 형제는 잠시 행복한 생활을 하는듯 했으나 어머니의 술버릇으로 인해 또다시 가정 불화가 생기게 되었고 헨드릭스 형제의 부모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두 형제는 아버지 손에 성장하게 된다.

 

변변한 수입이 없어 어려워져만 가던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지미 헨드릭스가 열세살이 되던 해에 동생을 보육원에 보내게 된다. 이때부터 지미 헨드릭스의 가슴 속에는 가난과 애정 결핍등으로 인한 반발심이 쌓여가기 시작했고 열다섯살이 되던 1958년에 어머니가 결핵과 알콜 중독으로 인해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겹치면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우쿨렐레(Ukulele: 하와이에서 사용하는 기타와 비슷한 작은 현악기)를 선물했고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빠져들며 현실에서의 도피처를 찾게 된다. 우쿨렐레를 완벽히 습득하게 되자 1959년 여름 아버지는 전기 기타를 사 주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전기 기타에 흠뻑 빠져 들게 된다. 잠시라도 틈만나면 기타를 치며 연습을 하던 지미 헨드릭스는 특별히 장르를 가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들은 음악을 반복해서 연습하였다.

 

워싱턴 주니어 고교(Washington Junior High School)에 입학한 지미 헨드릭스는 몇몇 밴드에 참가하여 연주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잦은 결석과 마약 문제로 인해 가필드 고교(Garfield High School)로 전학 하여야 했다. 하지만 전학간 학교에서 조차도 말썽을 부리며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1990년 가필드 고교의 도서관 앞에 지미 핸드릭스의 흉상이 건립되면서 지미 헨드릭스에게 명예 졸업장이 수여되었다.)

 

1961년 5월 지미 헨드릭스에게는 두가지 갈림길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지미 헨드릭스가 친구들과 함께 훔친 차량에 동승하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일어났다. 즉 2년간의 교도소 수감과 군 복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공수부대에 자원 입대하게 된다.

 

군 복무 시절에도 지미 헨드릭스는 손에서 기타를 놓지 않았으며 같은 부대원 중에서 후일 '밴드 오브 집시스'(The Band of Gypsies)의 일원이 되는 빌리 콕스(Billy Cox, 베이스)를 만나 킹 캐쥬얼스(The King Kasuals) 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부대내의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비행기 소리, 총기 소리등을 기타로 표현하는 방법등을 비롯한 다양한 연주 기법들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1962년 여름 낙하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한 지미 헨드릭스는 전역을 하게 되었고 전역 이후 내슈빌(Nashville)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밴드에서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아가게 된다. 이 시기의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경력은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와 함께 한 1962년 가을 부터 1965년 여름까지의 기간이었다.

 

1966년 뉴욕의 클럽가에서 지미 제임스 앤 더 블루 플레임스(Jimmy James And The Blue Flame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사이키델릭 문화에 동조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며 활동하던 중인 그해 여름에 애니멀즈(Animals)의 베이스주자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가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를 영국으로 데려가게 된다.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간 채스 챈들러는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연주할 그룹을 만들어 주는 일을 서둘러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드럼)과 노엘 레딩(Noel Redding, 베이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였고,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기본 편성의 밴드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를 결성하게 도와주었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1967년 1월 싱글 'Hey Joe'를 발표하여 차트에 진출시킴과 동시에 TV 쇼인 'Ready Steady Go!' 에도 출연하게 된다. 3월에는 영국 순회 공연을 시작하였으며 5월에 데뷔 음반 Are You Experienced 를 발표하여 순식간에 슈퍼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성공은 바다 건너 미국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는데 1967년 6월 16일에서 18일 사이에 열린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Monterey Pop festival)에 지미 헨드릭스가 등장하여 현란한 테크닉을 앞세운 사이키델릭한 기타 연주와 기타를 불에 태우는 행위들로 단숨에 미국 팬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음반도 발매하기 전에 지미 핸드릭스의 인기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으며 몽키스(The Monkees)와의 전미 순회 공연은 인기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1967년 8월 미국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 음반 Are You Experienced 가 발매되었다.

 

데뷔 음반은 지미 헨드릭스 신드롬의 시작이었으며 타이틀 곡은 공연시 마다 구호처럼 외쳐졌던 말이기도 했다.

 

 

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Jeff Beck - People Get Ready

 

Jeff Beck - People Get Ready

제프 벡 (Geoffrey Arnold Beck) : 1944년 6월 24일 영국 서리(Surrey), 월링턴(Wallington) 출생


미국에서 발행된 음악 전문지인 롤링스톤지(Rolling Stone Magazine)에서 선정한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100인의 기타연주자' 가운데 열네번째로 이름을 올린 제프 벡은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함께 록팬들에게 유명한 그룹 야드버즈(The Yardbirds) 출신으로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다.

 

월링턴에서 태어난 제프 벡은 열살이 되던 해에 교회 성가대에 가입하여 노래를 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기타 연주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시절에는 친구에게 기타를 빌려 연주 연습을 하다가 스스로 기타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여송연(Cigar)을 포장했던 나무 상자와 낙하산 줄을 이용하여 기타를 만들어 연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타가 후일 프렛리스 기타(Fretless Guitar)의 원형이 될줄은 당시의 제프 벡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윔블던 예술 대학(Wimbledon College of Art)에 진학한 제프 벡은 아르바이트로 골프 코스 관리인과 차량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을 하며 학업을 마치게 된다. 1965년 에릭 클랩튼이 야드버즈를 탈퇴하고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로 옮겨가자 세션으로 기타 연주를 하며 때를 기다리던 제프 벡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야드버즈에서 기타를 담당하고 있던 지미 페이지의 추천으로 야드버즈에 가입하게 된 제프 벡은 이때부터 실험적인 기타주법등을 펼치며 단숨에 주목받는 기타 연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실험적인 면을 강조한 그의 기타 연주로 인해 그룹 생활에 대한 갈등이 야기 되었고, 1966년 말 제프 벡은 야드버즈를 탈퇴하고 솔로의 길을 걷게 된다.

 

1967년 2월 야드버즈를 탈퇴한 제프 벡은 야드버즈의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베이스), 키스 문(Keith Moon, 드럼),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 키보드)와 함께 단발성 그룹 '벡스 볼레로(Beck's Bolero)'를 결성하여 'Hi Ho Silver Lining' 과 'Tallyman'을 싱글로 발표하여 영국에서 히트를 시켰다.

 

제프 벡은 이러한 성공에 고무되어 자신의 그룹을 만들기로 하고 벡스 볼레로에서 함께 했던 니키 홉킨스와 로니 우드(Ronnie Wood, 베이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보컬), 미키 월러(Micky waller, 드럼)를 구성원으로 하여 그룹 The Jeff Beck Group 을 결성하게 된다.

 

제프 벡 그룹은 1968년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 사운드로 채워진 데뷔 음반 Truth 를 발표하였고, 1969년에는 두번째 음반 Beck-Ola 을 발표하여 미국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그룹은 개성이 강한 구성원들로 인해 지속되기가 어려웠고 마침내 1969년 7월에 해산하고 만다.

 

그룹을 해산한 제프 벡은 록 그룹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에서 활동하고 있던 팀 보거트(Tim Bogert, 베이스),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드럼)와 함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고자 했으나 1969년 12월에 제프 벡이 메이드스톤(Maidstone)에서 차 사고로 1년 6개월 가량을 치료해야 하는 골절상을 입어 그룹 결성은 다음으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1971년 4월 부상에서 회복한 제프 벡은 바비 텐치(Bobby Tench, 보컬),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 키보드), 코지 파웰(Cozy Powell, 드럼), 클라이브 채먼(Clive Chaman, 베이스)으로 구성된 새로운 멤버로 제프 벡 그룹을 재결성하고 그해 10월 새 음반 Rough and Ready 를 발표하며 음악계에 복귀하게 된다.

 

이후 제프 벡은 벡 보커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를 비롯하여 솔로 활동등의 다양한 음악 활동을 지속하다 1985년에 로드 스튜어드와 얀 해머(Jan Hammer, 키보드)를 초빙하여 음반 Flash 를 발표하였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조합에 곧잘 비교되는 제프 벡과 로드 스튜어드의 재조합은 People Get Ready 라는 걸출한 곡을 탄생시켜 히트를 기록하였다. 또한 이 곡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People Get Ready 의 히트와 함께 제프 벡은 1986년의 그래미상에서 Best Rock Instrumental Performance 을 수상하였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Joe Cocker & Jennifer Warnes - Up Where We Belong

 

Joe Cocker & Jennifer Warnes - Up Where We Belong

영국 셰필드(Sheffield)의 크룩스(Crookes) 에서 1944년 5월 20일에 태어난 소울 싱어 조 카커(Joe Cocker)는 쉰듯한 거칠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로 그의 창법은 소울 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Ray Charles)에게 영향을 받았다. 조 카커가 처음 공개적인 무대에 선 것은 그의 나이 열두살때로 그의 형과 함께 스키플(Skiffle, 1920년대 미국에서 처음 인기를 얻고 1950년대 중반 영국 뮤지션들이 부흥시킨 음악으로 기타나 밴조, 하모니카등의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 스타일) 그룹을 결성하여 노래를 불렀던 것이 시초였다.

 

1960년에 친구들과 함께 캐벌리어스(The Cavaliers)라는 이름의 그룹을 결성하여 십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1년 이름을 밴스 아놀드(Vance Arnold)라는 가명으로 바꾸고 밴스 아놀드 앤 더 어벤저스(Vance Arnold and the Avengers)라는 이름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고 셰필드 지역의 Pub 들을 주무대로 공연 활동을 하며 음악 경력을 쌓아 나가게 된다.

 

척 베리(Chuck Berry)나 레이 찰스(Ray Charles)의 곡들을 커버하여 연주하던 그룹은 1963년에 Sheffield City Hall 에서 열린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공연에 오프닝을 담당하는 행운을 안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조 카커가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조 카커의 데뷔 싱글은 비틀즈(The Beatles)의 곡을 커버한 I'll Cry Instead 였으며 이 곡의 기타 연주는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해주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후 1964년에 조 카커는 Joe Cocker's Big Blues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여 프랑스의 미공군 기지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1966년, 조 카커는 키보드 주자 크리스 스테인튼(Chris Stainton)과 함께 The Grease Band 라는 이름의 그룹을 출범시키고 셰필드 지역의 Pub 들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을 하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과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그리고 R&B 재즈 싱어 조지 페임(Georgie Fame)의 프로듀서를 맡고있던 데니 코델(Denny Cordell)에게 발탁되어 싱글 Marjorine 을 녹음하게 되었고 런던의 마퀴 클럽(The Marquee Club)에 출연하며 공연을 하게 된다.

 

싱글 Marjorine 이 미국에서 약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자 비틀즈의 곡을 커버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를 1968년에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지미 페이지가 기타를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가 피아노를 프로콜 하럼의 BJ Wilson 이 드럼을 담당하였다. 또한 이 곡은 1968년 11월 9일 영국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으며 미국 차트에서는 68위에 랭크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의 성공으로 The Grease Band 는 1969년 미국 투어에 나서게 되었으며 조 카커는 데뷔 음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를 발표하여 빌보드 앨범 차트 35위에 랭크시키고 판매량도 골드를 기록하며 영국 최고의 소울 싱어로 각광받게 된다.

 

이후 Delta Lady 를 계속해서 히트시키고 1970년에는 Mad Dogs and Englishmen 이라는 이름으로 대형 공연도 진행하지만 건강 악화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조 카커는 1974년에 You Are So Beautiful 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1982년에는 리차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주연한 영화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의 삽입곡을 미국 시애틀(Seattle)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 1947년 3월 3일 생)와 듀엣으로 불러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게 된다.

 

이 곡은 You Are So Beautiful 과 함께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조 카커의 이름을 한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