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7일 금요일

Janis Joplin - Move Over

 

Janis Joplin - Move Over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인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대 중후반의 팝계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 블루스 가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고 사라져간 가수였다. 텍사스주 포트아서(Port Arthur)의 한 대학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어머니와 기술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재니스 조플린은 반항아적인 기질을 곧잘 드러내며 성장하였다고 한다. 뚱뚱한 체격과 못생긴 외모로 인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십대를 맞으면서 재니스 조플린은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의 블루스 가수들인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나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의 노래를 즐겨 들었으며 이런 음악들을 통해 블루스 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들게 되었다. 포크 음악과 블루스 음악 외에도 재니스 조플린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시와 그림으로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음악과 시, 그리고 그림에 매료되며 십대를 맞이 하였고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몇명의 친구들과 함께 포크와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며 고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해서도 그녀의 못생긴 외모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놀림감 신세가 되었던 것은 변함없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라마 주립 공과 대학(Lamar State College of Technology)'에 입학하였지만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주변의 비웃음에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1962년 여름 학기까지 마친 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그해 12월에 재니스 조플린은 친구 집에서 자비로 녹음하여 만든 자신의 첫번째 싱글인 'What Good Can Drinkin' Do'를 테이프로 소량 발매하였으며 1963년 초에 텍사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클럽이나 바의 무대를 통해 노래를 부르며 본격적인 프로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클럽 가수로 활동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멀지않은 미래에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의 기타리스트가 될 '조르마 카우커넌(Jorma Kaukonen)'을 1964년에 만나 그와 함께 몇곡의 블루스 곡들을 협연하여 녹음하게 된다. 이 당시 재니스 조플린과 조르마 카우커넌이 협연했던 곡들은 'Typewriter Talk', 'Trouble In Mind', 'Kansas City Blues', 'Hesitation Blues',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Daddy, Daddy, Daddy', 'Long Black Train Blues'로 이 곡들은 'The Typewriter Tape'이라는 제목의 해적판에 수록되어 출시된 적이 있다.

이 즈음 재니스 조플린은 클럽 가수 생활에서 오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복용량이 늘어나면서 위험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재니스 조플린은 1965년 5월에 친구가 끊어준 포트아서행 버스 표를 손에 들고 고향행 버스에 오르게 된다. 친구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 재니스 조플린은 어렵게 마약을 끊는 한편으로 중단했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학교에 복학하여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이 재활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가 결성되어 활동을 준비하며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의 매니저는 자신이 이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재니스 조플린에게 연락하여 밴드의 합류를 권하였고 재니스 조플린은 196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에 가입하게 된다.

'메인스트림 음반사(Mainstream Records)'와 계약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데뷔 음반 발매전인 1967년 6월에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에 출연하여 'Combination of the Two'와 'Ball and Chain'을 연주하여 관중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 넣으며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7년 9월에 메인스트림 음반사에서 데뷔 음반 '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를 발표하였으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밴드의 모습을 지켜 보았던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에서 음반 재계약을 제의하여 데뷔 음반이 컬럼비아를 통해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는 1968년에 두번째 음반 'Cheap Thrills'를 발표하여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히트시켰다. 이 음반에는 히트 싱글 'Piece of My Heart'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오페라를 편곡한 'Summertime'과 빅 마마 손튼의 곡인 'Ball and Chain'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음반의 성공과 함께 재니스 조플린의 명성도 높아져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라는 밴드 이름보다 개인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재니스 조플린은 1968년 12월 까지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파니와 함께 활동한 후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자신의 백밴드인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여 공연 활동에 주력하였다. 공연 활동과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재니스 조플린은 1969년 9월에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인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를 발표했다.

1969년 12월 20일 뉴욕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코즈믹 블루스 밴드를 해산시킨 재니스 조플린은 1970년 2월에 브라질로 여행을 떠났다가 미국으로 돌아 왔는데 여행을 다녀온 후 부터 재니스 조플린은 또 다시 마약과 술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예전처럼 서서히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갔다. 헤로인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재니스 조플린은 새로운 밴드인 '풀 틸트 부기 밴드(Full Tilt Boogie Band)'를 결성하고 1970년 5월 부터 순회 공연에 들어갔으며 그해 9월 5일에 새 음반 작업을 위해 밴드와 함께 녹음실로 들어가게 된다.

새 음반 'Pearl'을 녹음하면서 부터 재니스 조플린의 상태가 좋아지는 듯 했으나 10월 1일의 마지막 녹음을 끝으로 그녀는 사흘 후인 10월 4일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의 사후인 1971년 2월에 발표된 음반 'Pearl'에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재니스 조플린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터져 나오는 곡인 'Move Over'를 비롯하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의 곡으로 싱글로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곡인 'Me and Bobby McGee'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음반에는 'Buried Alive in the Blues'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에는 재니스 조플린의 보컬이 빠져 있어 그녀가 미처 녹음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알려주고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Move Over' 한 곡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음반 'Pearl'은 음반의 제목인 진주처럼 영롱함으로 반짝이는 음반이기도 하다.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 1943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 출생, 1970년 10월 4일 사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하드 록(Hard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janisjoplin.net/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YYWdiG1Bf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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