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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7일 화요일

Iron Maiden - The Final Frontier

 

Iron Maiden - The Final Frontier

1980년에 음반 'Iron Maiden'으로 데뷔한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이 데뷔 음반을 발매한지 삼십년만에 통상 열다섯번째 정규 음반을 들고 에디의 팬들에게로 귀환했다. 'The Final Frontier'라는 제목으로 발매된 이 음반은 2010년 8월 13일에 독일과 핀란드에서 먼저 공개되었으며 16일에는 전세계에 동시 발매가 이루어져 발매와 동시에 28개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음반 발매와 동시에 영국과 독일, 프랑스, 핀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 각국과 아시아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28개국에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 음반은 미국에서는 하루 늦은 17일에 공개되어 6만 3천장의 음반 판매를 하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 4위로 진입하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여성의 형상을 한 나무 상자의 안쪽에 못을 박아 놓은 고문 도구인 아이언 메이든을 밴드 이름으로 채택한 영국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은 1975년의 성탄절날 밴드의 베이스 주자인 '스티브 해리스'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스티브 해리스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소설 '아이언 마스크(The Man With Iron Mask)'를 보다가 소설에 등장하는 고문기구인 아이언 메이든에 묘한 감흥을 받아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초기 아이언 메이든의 보컬리스트인 '폴 데이(Paul Day)'는 역량 부족으로 해고되었으며 그를 대신하여 '데니스 윌콕(Dennis Wilcock)'이 아이언 메이든의 보컬을 맡게 된다.

이후 '데이브 머레이'가 가입하였고 1977년에는 '토니 무어(Tony Moore, 키보드)'와' 덕 샘슨(Doug Sampson, 드러머)'등이 가입하여 아이언 메이든에서 활동했으며 1978년에는 스티브 해리스와 사이가 나빴던 데니스 윌콕 대신에 공개 선발을 통하여 '폴 디아노(Paul Di'Anno)'를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맞아 들여 밴드를 정비해 나갔다. 1979년에 '데니스 스트래톤(Dennis Stratton, 기타)'이 아이언 메이든에 합류하였고 뒤를 이어 덕 샘슨 대신 클라이브 버(Clive Burr)가 가입하면서 초기의 혼란스렀던 잦은 멤버 교체가 일단락되고 스티브 해리스, 데이브 머레이, 폴 디아노, 데니스 스트래톤, 클라이브 버의 다섯명으로 구성된 밴드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1979년 12월 아이언 메이든은 EMI 음반사와 음반 계약을 하고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가 1980년 4월14일에 에디를 표지에 등장시킨 데뷔 음반 'Iron Maiden'을 공개하였다. 두명의 기타 주자가 펼치는 강력한 사운드의 아이언 메이든의 데뷔 음반에서는 'Running Free'를 포함하여 'Phantom Of The Opera', 'Iron Maiden'등의 초기 히트 곡이 탄생하였고 이로인해 아이언 메이든은 '영국 헤비메탈의 새로운 흐름(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을 주도할 밴드로 부상하게 된다.

데뷔 음반 커버에 등장했던 '에디(Eddie)'는 아이언 메이든의 데뷔 음반 순회 공연에서 대형 인형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부터 에디는 아이언 메이든을 상징하는 존재로 팬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에디의 추종자는 곧 아이언 메이든의 추종자라는 등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유럽 순회 공연을 마무리 하면서 데뷔 음반의 활동을 마무리해 갈 즈음 기타 주자인 데니스 스트래톤이 그동안 심화되어 가던 멤버들과의 갈등에 지쳐 스스로 밴드를 탈퇴하자 아이언 메이든은 데뷔 이후 첫번째 멤버 교체를 해야 했다.

1980년 10월, 데니스 스트래톤을 대신하여 '에드리안 스미스'가 아이언 메이든의 새로운 기타 주자로 가입하여 새 음반 'Killers'의 녹음에 참여하였으며 아이언 메이든은 이전 보다 더 강력해진 기타 연주를 앞세운 음반 'Killers'를 1981년 2월에 발표하였다. 하지만 두번째 음반의 세계 순회 공연 막바지에 아이언 메이든은 또 다시 멤버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아이언 메이든이 이전 보다 더 강력한 헤비메탈 음악을 추구하기를 바랐던 새로 가입한 기타 주자 에드리안 스미스와 헤비메탈에서 벗어나 펑크(Punk)적인 음악을 시도하기를 바랐던 폴 디아노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었다.

결국 폴 디아노는 아이언 메이든에서 탈퇴하게 되고 1981년 9월에 공개 선발을 통해 '브루스 디킨슨'이 밴드에 합류하면서 아이언 메이든은 새로운 보컬리스트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브루스 디킨슨이 합류한 아이언 메이든은 1982년 3월 29일에 세번째 음반 'The Number of the Beast'를 발표하여 싱글 'Run to the Hills'와 'The Number of the Beast'를 히트시켰고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새역사를 만들게 된다. 음반의 성공은 세계 순회 공연으로 이어져 아이언 메이든은 연일 계속되는 매진 행진을 벌여 나가게 된다.

하지만 고된 공연 일정에 지쳐가던 클라이브 버가 세번째 음반의 순회 공연이 마무리 된 1982년 12월에 결국 아이언 메이든을 탈퇴하게 된다. 클라이브 버 대신 아이언 메이든의 드러머가 된 것은 프랑스의 헤비메탈 밴드 트러스트(Trust)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니코 맥브레인'이었다. 니코 맥브레인의 가입 후 새 음반 'Piece of Mind'를 1983년 5월 16일에 공개한 아이언 메이든은 역대 최강의 진용이라는 평을 들으며 전성기를 열어 나가게 된다.

2010년 8월 16일, 아이언 메이든은 세명의 기타 주자가 참가한 새 음반 'The Final Frontier'를 공개하고 음반의 제목 때문에 '이 음반이 밴드의 마지막 음반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며 세계 순회 공연에 나서고 있다. 아이언 메이든이 이전에 발표했었던 음반들 'Fear of the Dark(1992년)', 'Virtual XI(1998년)', 'Death on the Road(2005년)'에서 에디를 그렸던 '멜빈 그랜트(Melvyn Grant)'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우주 공간 속의 에디를 창조하여 음반의 표지에 그려 넣은 아이언 메이든의 새 음반 'The Final Frontier'는 음반의 타이틀 곡인 'Satellite 15... The Final Frontier'부터 막강한 화력으로 에디의 귀환을 노래하고 있다.

접속곡 형태로 만들어진 듯한 첫번재 트랙 'Satellite 15... The Final Frontier'의 첫번째 파트인  'Satellite 15'는 우주 비행정의 엔진 소리 처럼 들리는 음향으로 시작하여 4분 35초 까지 질주하는 기타 소리와 함께 환상적인 우주 공간을 체험하게 해주고 있다. 간혹 노장들의 신보를 접할때 마다 늘 따라 다니는 말인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던 힘에 부치는 연주'라는 표현은 아이언 메이든에게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 음반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한 4분 35초가 지나면 에디의 귀환을 환상적인 영상으로 제작하여 공개한 타이틀 곡인 'The Final Frontier'가 접속 곡의 형태로 이어진다. 프레데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영화 처럼 만들어진 이 곡의 뮤직 비디오는 꼭 한번 감상해 보기를 권하고 싶기도 하다.

첫번째 싱글로 발표했었던 'El Dorado'는 경쾌한 질주감이 인상적인 곡이며 9분 짜리 대곡 'Isle Of Avalon'은 분명히 아이언 메이든의 데뷔 음반 부터 함께 해왔던 4,50대의 헤비메탈 팬을 의식한 듯 중간 정도의 빠르기 형식을 통해서 아이언 메이든 특유의 헤비메탈 사운드를 만끽하게 해주고 있다. 'The Final Frontier' 음반에서 브루스 디킨슨의 목소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밴드 멤버들의 연주와 어울어지는 'Starblind'와 투명한 기타 소리로 시작하여 강력한 헤비메탈 사운드로 복귀하는 'The Talisman'등이 돋보이는 이 음반의 마지막 곡은 스산한 바람 소리로 시작하는 11분 짜리 대곡 'When The Wild Wind Blows'가 장식하고 있다.

이 곡은 예전의 아이언 메이든 팬들에게나 새로운 아이언 메이든 팬들 모두에게 만족을 안겨줄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질주감을 헤비메탈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완만한 형식의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곡 구성에서 자칫 실망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30년간 한결 같은 헤비메탈 음악을 팬들에게 들려주며 지칠 줄 모르는 의욕을 과시하고 있는 노장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 그들이 있기에 헤비메탈 팬들은 오늘도 에디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언 메이든 (Iron Maiden) :
브루스 디킨슨 (Bruce Dickinson, 보컬) : 1958년 8월 7일 영국 노팅엄셔 출생
데이브 머레이 (Dave Murray, 기타) : 1956년 12월 23일 영국 런던 출생
에드리안 스미스 (Adrian Smith, 기타) : 1957년 2월 27일 영국 런던 출생
제닉 거어즈 (Janick Gers, 기타) : 1957년 1월 27일 영국 하틀풀(Hartlepool) 출생
스티브 해리스 (Steve Harris, 베이스) : 1956년 3월 12일 영국 런던 출생
니코 맥브레인 (Nicko McBrain, 드럼) : 1952년 6월 5일 영국 런던 출생

갈래 : 헤비메탈(Heavy Metal), 브리티시 메탈(British Metal), NWOBHM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ironmaiden.com/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7oIGP0BUt8s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Scorpions - Still Loving You

 

Scorpions - Still Loving You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언스는 유럽과 일본에서 독일산 헤비메탈 밴드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록 발라드 곡인 'Always Somewhere'와 'Holiday'로 인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그에 반해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미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스콜피언스가 1982년 3월 29일에 'Blackout' 음반을 미국의 '머큐리 음반사(Mercury Records)'를 통해 발표하고 싱글 'No One Like You'를 발매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싱글 'No One Like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64위 까지 상승하며 히트를 하였고 음반 판매도 순항을 거듭하여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게 된다. 'Blackout' 음반의 표지 디자인은 자신의 작품에 학대 받은 아이와 붕대를 자주 등장시키기로 유명한 화가이자 사진 작가인 오스트리아계 아일랜드인 고트프리드 헬른바인(Gottfried Helnwein)이 맡았는데, 그는 자신의 자화상 시리즈 가운데 하나를 음반 커버로 사용하여 헤비메탈 음반에 어울리는 강인하고 기묘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Blackout' 음반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도 성공한 스콜피언스는 1983년 현충일 주간(Memorial Day: 전몰 장병 추도 기념일로 5월의 마지막 월요일)의 금요일에 캘리포니아주 산버나디노(San Bernadino)에서 개최된 'US Festival'의 둘째날에 무대에 올라 삼십 칠만 오천명의 관중 앞에서 열띤 공연을 펼치게 된다. 이 공연은 MTV로도 중계되어 미국 전역의 안방으로 스콜피언스의 놀랍고도 광폭한 무대가 전달되면서 많은 팬을 만들게 된다.

성공적으로 미국 진출에 성공한 스콜피언스는 1984년 3월 27일에 발표한 음반 'Love at First Sting'으로 최고의 시기를 맞게 된다. 'Love at First Sting' 음반이 처음 미국에서 발매될 당시에는 관능적인 사진 작품으로 유명한 독일의 사진 작가 '헬뮤트 뉴튼(Helmut Newton)'의 작품으로 반나체의 여인을 껴안고 그녀의 허벅지에 문신을 새겨 넣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인 원래의 표지 그대로였으나 미국의 '월마트(Wal-Mart)'측에서 너무 선정적이다는 이유로 음반 표지의 교체를 요청하여 결국 멤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 클린(Clean) 표지로 재발매되기도 하였다.

선정적인 커버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Rock You Like a Hurricane'과 'Still Loving You'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순조롭게 진입하여 25위와 64위 까지 진출하였다. 싱글의 히트에 힘입어 음반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최종적으로 6위 까지 진출하였으며 음반 판매에서도 'Blackout' 음반을 뛰어 넘어 2백만장 이상을 팔아치웠다. 스콜피언스는 'Love at First Sting'으로 밴드 결성 후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음반에 수록된 'Still Loving You'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뒤이어 'Rock You Like a Hurricane'과 'Big City Nights'까지 히트를 하였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티아스 얍스 (Matthias Jabs, 리드 기타) : 1956년 10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프랜시스 부흐홀츠 (Francis Buchholz, 베이스) : 1954년 2월 19일 독일 하노버 출생
헤만 라레벨 (Herman Rarebell, 드럼) : 1949년 11월 18일 독일 슈멜쯔(Schmelz)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8월 19일 목요일

Scorpions -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Scorpions -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1972년 2월에 데뷔 음반 'Lonesome Crow'를 발표한 스콜피언스는 음반 판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영국 하드 록 밴드 'UFO'의 순회 공연에 보조 밴드로 합류하여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게 된다. 이 순회 공연을 계기로 'UFO' 멤버들을 사로잡은 마이클 쉥커는 1973년 6월에 스콜피언스를 떠나 'UFO'로 옮겨가게 되고 '로타 하임베르크(Lothar Heimberg, 베이스)'와 '볼프강 지오니 (Wolfgang Dziony, 드럼)'도 데뷔 음반의 실패로 인한 밴드 앞날의 불투명함에 스콜피언스를 떠나게 된다.

세명의 멤버가 떠나면서 위태롭던 스콜피언스를 루돌프 쉥커는 멤버의 빠른 보강으로 헤쳐나가게 된다. 먼저 마이클 쉥커의 빈자리를 자신의 친구인 '울리히 로스(Ulrich Roth, 기타)'에게 맡기고 '프랜시스 부흐홀츠(Francis Buchholz, 베이스)'와 '율겐 로젠탈(Jurgen Rosenthal, 드럼)'을 가입시켜 리듬 파트를 정비한 후 새로운 멤버들로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키보드 주자인 '아힘 커슈닝(Achim Kirschning)'을 초빙하여 사운드를 보강한 스콜피언스는 1974년 11월에 음반 'Fly to the Rainbow'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콜피언스의 팬들에 의해 초기 명반으로 분류되는 'Fly to the Rainbow'에서 처음 세상에 공개된 울리히 로스의 기타 연주는 첫번째 트랙인 'Speedy's Coming'에서 부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2기 스콜피언스가 앞으로 펼쳐나갈 음악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던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울리히 로스의 가세로 밴드의 음악 방향을 확립한 스콜피언스는 유럽 지역에서 점차 지명도를 넓혀 나가게 되지만 다시 한번 멤버 교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율겐 로젠탈에게 입대 영장이 발부되었기 때문이다. 율겐 로젠탈은 군 복무후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엘로이(Eloy)'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율겐 로젠탈의 후임으로 벨기에 출신의 드러머 '루디 레너스(Rudy Lenners)'를 가입시킨 스콜피언스는 1975년 9월에 세번째 음반 'In Trance'를 발표하였고, 1976년에는 깨어진 유리 너머로 보이는 나체 소녀의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음반 'Virgin Killer'를 발표하여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권 까지 스콜피언스라는 밴드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음반 커버에 사용하면서 논쟁에 휘말린 어린 소녀의 나체 사진도 한 몫을 담당했다.

한편 이 즈음 드러머인 루디 레너스는 건강 상태의 악화로 더 이상 밴드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자 스콜피언스를 탈퇴하게 된다. 새로운 드러머로 헤만 라레벨을 발탁한 스콜피언스는 1978년 1월에 새 음반 'Taken by Force'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1978년 4월 24일 부터 27일 까지 펼쳐진 당시의 실황은 음반으로 만들어져 'Tokyo Tapes'라는 제목으로 1978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은 팬들에 의해 스콜피언스의 실황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을 끝으로 밴드의 음악이 점점 상업성에 치우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울리히 로스가 밴드 탈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밴드인 '일렉트릭 선(Electric Sun)'을 결성하여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스콜피언스의 멤버들은 울리히 로스를 대신할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공개 모집을 통해 뽑기로 하고 지원자를 불러 모았는데 무려 140명의 지원자가 공개 모집에 참가하였다. 이들 140명의 기타 주자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마티아스 얍스가 합류하게 되면서 스콜피언스의 사운드에도 변화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이전 보다 좀더 팝 취향의 헤비메탈 음악을 구사하는 쪽으로 밴드의 음악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1979년 2월에 발표된 음반 'Lovedrive'에서 이러한 변화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Loving You Sunday Morning'이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록 발라드 'Always Somewhere'와 'Holiday'에서 그러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전보다 좀더 대중 지향작인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주는 이 음반에는 'UFO'의 마이클 쉥커가 합류하여 기타 연주를 해주고 있기도 하다. 1980년 3월의 마지막 날에 'The Zoo'가 수록되어 있는 일곱번째 음반인 'Animal Magnetism'을 발표한 스콜피언스는 1982년 3월 29일에 'Blackout'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도 등장하게 된다.

스콜피언스의 여덟번째 음반인 'Blackout'은 우여곡절 끝에 발매가 이루어졌는데 이 음반의 녹음이 진행되던 당시에 보컬리스트인 클라우스 마이네가 성대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콜피언스는 미국 출신의 가수 '돈 도켄(Don Dokken)'을 발탁하여 음반의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클라우스 마이네의 수술 경과를 지켜보게 된다. 다행히 클라우스 마이네의 성대는 이상없이 완치가 되어 돈 도켄이 사전에 녹음했던 곡들을 폐기하고 클라우스 마이네가 새로 부른 곡들로 음반을 만들게 된다.

'Blackout'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 64위에 오른 히트 곡 'No One Like You'를 포함하여 타이틀 곡인 'Blackout'과 'Dynamite'를 연속해서 히트시키며 빌보드 앨범 차트(The Billboard 200)에서 10위에 올랐고 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하여 스콜피언스 최초의 공식 플래티넘(Platinum)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음반에는 헤만 라레벨의 힘찬 드러밍으로 시작하는 강렬하고 너무도 멋진 메탈 곡 'China White'가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발라드 'When the Smoke Is Going Down'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으로 자리하고 있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티아스 얍스 (Matthias Jabs, 리드 기타) : 1956년 10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프랜시스 부흐홀츠 (Francis Buchholz, 베이스) : 1954년 2월 19일 독일 하노버 출생
헤만 라레벨 (Herman Rarebell, 드럼) : 1949년 11월 18일 독일 슈멜쯔(Schmelz)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Scorpions -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

 

Scorpions -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

1979년 2월에 발표했었던 음반 'Lovedrive'에 수록된 록 발라드 'Always Somewhere'와 'Holiday'가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순식간에 팝팬들을 사로잡았던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언스는 1965년에 루돌프 쉥커에 의해서 출발하게 된다. 독일의 힐데스하임(Hildesheim)시 사슈테트(Sarstedt)에서 태어난 루돌프 쉥커는 어릴때 부터 기타 연주에 많은 관심이 기울이다 '팬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기타로 처음 기타 연주를 시작하였다.

열다섯살 때인 1963년에는 동생인 마이클 쉥커가 집으로 가지고 온 '깁슨 플라잉 브이(Gibson Flying V)' 기타를 처음으로 연주해보고는 깁슨 플라잉 브이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기타 연주를 하며 밴드 활동을 꿈꾸던 루돌프 쉥커는 결국 1965년에 스콜피언스를 결성하고 자신이 직접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으나 그리 주목받을만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컬 능력의 부족함을 인식한 루돌프 쉥커는 밴드의 보컬을 맡을 인물을 찾다가 1969년에 '하노버(Hannover)' 출신인 클라우스 마이네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며 스콜피언스의 기본 토대가 마련되었다. 루돌프 쉥커의 동생인 마이클 쉥커도 형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기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처음 기타 연주를 시작한 것이 여덟살 때였다. 열한살 때인 1966년 부터는 형이 결성한 밴드인 스콜피언스의 일원으로 함께 연주를 하였는데 형보다 기타 실력이 더 좋아 리드 기타를 맡게 된다.

지역의 나이트 클럽에서 첫 무대를 가진 스콜피언스는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지만 뛰어난 보컬리스트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어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게 되었고 그때 만난 인물이 '클라우스 마이네'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스콜피언스의 리더인 루돌프 쉥커는 밴드의 음악에 '야드버즈(The Yardbirds)', '프레티 씽스(The Pretty Things)', '스푸키 투스(Spooky Tooth)' 같은 영국 밴드들의 기타 리프를 차용하기 시작하며 체계적인 록 밴드의 기틀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루돌프 쉥커와 클라우스 마이네는 새로운 곡을 만들며 음반 데뷔의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1972년 2월에 5인조의 스콜피언스는 데뷔 음반인 'Lonesome Crow'를 발표하게 된다. 스콜피언스가 데뷔 음반을 발표하던 당시 독일에서는 사이키델릭 음악의 영향을 받은 '크라우트 록(Kraut Rock)'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하드 록에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접목을 시도한 음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당시 너무 많은 밴드들이 비슷한 음악을 발표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음반 활동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서 스콜피언스의 음악이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예전 음반들을 찾아 듣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이 즈음을 기하여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도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3분 30초 짜리 대곡이자 음반의 타이틀 곡인 'Lonesome Crow'와 클라우스 마이네가 탁월한 보컬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In Search Of The Peace Of Mind'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과 하드 록 팬들을 사로잡게 된다. 이로인해 스콜피언스의 데뷔 음반은 알려지지 않은 명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고 1989년 12월에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되기에 이른다.

스콜피언스 (Scorpions) :
클라우스 마이네 (Klaus Meine, 보컬) : 1948년 5월 25일 독일 하노버 출생
마이클 쉥커 (Michael Schenker, 리드 기타) : 1955년 1월 10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루돌프 쉥커 (Rudolf Schenker, 리듬 기타) : 1948년 8월 31일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로타 하임베르크 (Lothar Heimberg, 베이스) : 독일 출생
볼프강 지오니 (Wolfgang Dziony, 드럼) : 1949년 독일 힐데스하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the-scorpions.com/english/


2010년 6월 29일 화요일

Judas Priest - Breaking The Law

Judas Priest - Breaking The Law

 

1978년 10월 9일에 발표했던 음반 'Killing Machine'에서 감동적인 록 발라드 'Before The Dawn'을 선보였던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주다스 프리스트는 음반 발표 후 일본 동경으로 순회 공연을 떠나게 된다. 당시의 실황은 1979년 10월에 'Unleashed in the East'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주다스 프리스트가 발표한 첫번째 실황 음반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 팬들 사이에서 라이브 명반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 음반은 미국에서만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여 밴드 역사상 첫번째 플래티넘(Platinum) 음반이 되었다.

 

순회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주다스 프리스트는 그동안 늘 불안했던 밴드의 요소 중 하나인 드러머를 또 다시 교체하여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순회 공연 기간 동안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표시하던 레스 빙크스가 영국으로 돌아온 후 밴드를 탈퇴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드러머를 찾는 일은 의외로 쉽게 마무리 되었는데 이는 1969년에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 '트래피즈(Trapeze)'의 창단 멤버인 드러머 '데이브 홀랜드'를 가입시킴으로 해서 해결하게 되었다.

 

트래피즈의 멤버로 일곱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1978년의 음반 'Hold On'에 참가한 후 오랜 밴드 생활에서 오는 무미건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길을 찾고 있던 데이브 홀랜드에게 주다스 프리스트에서 드러머를 구한다는 소식은 희소식일 수 밖에 없었다. 데이브 홀랜드는 주다스 프리스트 멤버들로 부터 밴드 활동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자 마자 이를 바로 수락하여 주다스 프리스트의 새로운 드러머로 가입하게 된다.

 

1980년 4월 14일, 주다스 프리스트는 당시 펑크 음악에 밀려 열세를 보이고 있던 헤비메탈 음악계에 'British Steel'을 공개하여 전환기를 맞게 하였다. 주다스 프리스트 최고의 명반인 'British Steel'은 영국 헤비 메탈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이른바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시대를 열었고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 까지 진출하였다. 또한 미국으로 건너간 음반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34위 까지 진출하며 영국 헤비메탈 음악의 중흥기를 선두에서 이끌게 된다.

 

음반 'British Steel'에는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메탈의 신(Metal Gods)'이라는 별명이 붙게 만들었던 강력한 메탈 곡 'Metal Gods'를 포함하여 'United', 'Living After Midnight'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나는 질주감으로 무장하여 음반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인 'Breaking The Law'는 1980년대의 우리나라 디스코 텍에서 댄스 음악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또한 이 곡을 시작으로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밴드의 이름이 우리나라의 팬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주다스 프리스트 (Judas Priest) :
롭 할포드 (Rob Halford, 보컬) : 1951년 8월 25일 영국 버밍엄 출생
글렌 팁톤 (Glenn Tipton, 기타) : 1948년 10월 25일 영국 버밍엄 출생
케이 케이 다우닝 (K. K. Downing, 기타) : 1951년 10월 27일 영국 웨스트브러미지 출생
이안 힐 (Ian Hill, 베이스) : 1952년 1월 20일 영국 버밍엄 출생
데이브 홀랜드 (Dave Holland, 드럼) : 1948년 4월 5일 영국 울버햄프턴 출생

갈래 : 헤비메탈(Heavy Metal), 하드 록(Hard Rock), 브리티시 메탈(British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udaspriest.com/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Budgie - Parents

Budgie - Parents

 

영국 웨일스(Wales)의 카디프(Cardiff) 출신 헤비메탈 그룹 '벗지'는 카디프에서 태어난 세명의 젊은이에 의해서 1967년에 탄생하게 되는데, 처음 출발은 '힐스 컨템퍼러리 그래스(Hills Contemporary Grass)'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된다. 버크 셸리, 토니 버지, 레이 필립스로 구성된 힐스 컨템퍼러리 그래스는 고향 마을의 클럽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식스 톤 벗지(Six Ton Budgie)'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8년에 벗지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최종 바뀌게 된다.

 

벗지가 웨일스를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던 이 당시 영국에서는 '딥 퍼플(Deep Purple, 1968년)'을 시작으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969년)'과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1970년)'가 차례대로 등장하여 헤비메탈 음악의 시대를 열기 시작하며 유행을 주도하였고 그에 따른 상업적인 성공도 함께 거두어 들이고 있던 시기였었다.

'MCA 음반사'에서는 이런 흐름을 타고 새로운 밴드를 물색하던 중에 웨일스 지방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벗지를 발견하였고 망설임 없이 그들을 발탁하여 1970년에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MCA 는 벗지를 제 2의 블랙 사바스로 키우기로 결정하고 블랙 사바사의 프로듀서인 '로저 베인(Rodger Bain)'으로 하여금 벗지의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하였다.

로저 베인은 벗지의 멤버들을 데리고 웨일스 인근의 '록필드 녹음실(Rockfield Studios)'로 들어가 벗지의 데뷔 음반 작업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1971년 6월에 벗지는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다. 1972년에는 '로저 딘(Roger Dean)'이 음반 커버를 그려준 두번째 음반 'Squawk'을 발표하였고 1973년에는 밴드의 최고작인 세번째 음반 'Never Turn Your Back on a Friend'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과 마찬가지로 로저 딘이 음반 커버를 담당한 세번째 음반은 벗지 최대의 명곡인 'Parents'가 수록되어 있지만 대중적인 지지는 미약한 편이었다. 즉, 벗지가 밴드의 최고작을 발표할 이 당시에도 수퍼 그룹의 위치는 결코 벗지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뒤늦은 1988년에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Metallica)'가 이 음반에서 'Breadfan'을 커버한 싱글을 발표하여 벗지를 주목받게 만들었다. 메탈리카를 통해 처음으로 벗지를 알게 된 헤비메탈 팬 사이에서는 벗지가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의 원조라는 평가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앞서 메탈리카는 1987년에 벗지의 1974년 음반 'In For The Kill' 수록 곡인 'Crash Course in Brain Surgery'를 커버하여 커버 곡들만으로 이루어진 미니 음반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에 수록하면서 처음으로 벗지를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만들었다. 벗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밴드였지만 라디오 방송과 더불어 벗지를 아는 록 팬들을 중심으로 명곡 'Parents'가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면서 록 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벗지 (Budgie) :
버크 셸리 (Burke Shelley, 보컬, 베이스) : 1950년 4월 10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 출생
토니 버지 (Tony Bourge, 기타) : 1948년 11월 24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 출생
레이 필립스 (Ray Phillips, 드럼) : 1949년 3월 1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브리티시 메탈(British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budgieofficialmyspace

 

 

2010년 6월 21일 월요일

Van Halen - Jump

 

Van Halen - Jump

 

데뷔 음반 발표 이후 하드 록의 절대 강자 자리에 등극한 밴 헤일런은 발표 음반마다 엄청난 음반 판매를 기록하며 팬들을 몰고 다녔다. 1982년 4월 14일에 발표한 다섯번째 음반 'Diver Down'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26위에 그쳤으나 팝 앨범 차트에서는 3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다. 'Diver Down'의 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밴 헤일런은 1983년 5월 28일 부터 나흘에 걸쳐 음악 갈래별로 펼쳐졌던 미국의 대형 음악 축제인 'US Festival'의 참가를 확정하였고 1회 출연의 댓가로 100만불의 출연료를 받기로 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출연료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5월 30일의 '록 데이(Rock Day)'에 100만불을 받고 출연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밴 헤일런의 출연료는 150만불로 상향 조정 되었다. 1983년 5월 29일 일요일, '헤비메탈 데이(Heavy Metal Day)'의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밴 헤일런은 팬들을 열광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으며 공연을 진행했고 공연과 동시에 현장에서는 밴 헤일런의 음반들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US Festival' 현장에서 판매된 밴 헤일런의 싱글 음반은 90분만에 150만 달러 어치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기네스 북에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한 밴드'로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이러한 인기와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는 밴 헤일런의 이름 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록 발라드가 밴드의 인기 척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한국의 음악 환경 탓도 있겠지만 밴 헤일런의 음악이 지극히 미국적이라는 것에도 그 이유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밴 헤일런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1982년 11월 30일에 발표했던 음반 'Thriller'에 수록되어 있던 히트 곡 'Beat It'의 기타 솔로가 에디 밴 헤일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Beat It'의 히트 이후 에디 밴 헤일런이 속한 밴드인 밴 헤일런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Diver Down'의 활동을 마무리 한 밴 헤일런은 1984년 1월 9일에 여섯번째 음반 '1984'를 발표하면서 다시한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우선 아기 천사가 담배갑을 앞에 두고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고 있는 음반 커버로 인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로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담배와 담배갑을 삭제 처리한 클린 커버로 발매가 되면서 록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거기다 수록곡 가운데 'Hot for Teacher'는 선정적이다는 이유로 라이센스 음반에서 삭제되기도 하였으니 참으로 지랄같던 시대였다. 이른바 팝메탈이라는 음악 갈래를 추구한 '1984' 음반에서 에디 밴 헤일런은 웅장하고 현란한 키보드 연주를 선보였는데, 특히 음반의 도입부인 첫번째 트랙 '1984'와 'Jump'로 이어지는 구성은 팝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의 1위를 자리를 Jump'가 차지하게 만들었다.

밴 헤일런의 첫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인 'Jump'는 전세계로 점프하며 히트를 하였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수는 없었다. 세련된 팝메탈 곡인 'Jump'의 대중적인 성공은 'Panama'로 이어졌고 이때 부터 우리나라 팬들도 밴 헤일런의 예전 음반들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밴 헤일런 (Van Halen) :
데이빗 리 로스 (David Lee Roth, 보컬) : 1955년 10월 10일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출생
에디 밴 헤일런 (Eddie Van Halen, 기타) : 1955년 1월 2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
마이클 앤써니 (Michael Anthony, 베이스) : 1954년 5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생
알렉스 밴 헤일런 (Alex Van Halen, 드럼) : 1953년 5월 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van-halen.com/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Van Halen - Eruption

 

Van Halen - Eruption

 

미국의 록 밴드 '밴 헤일런'은 에디 밴 헤일런과 알렉스 밴 헤일런 형제를 주죽하여 1972년에 결성된 밴드인 '매머드(Mammoth)'에서 출발하였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던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인도네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밴 헤일런 형제는 1962년에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사디나(Pasadena)로 이주를 하면서 미국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밴 헤일런 형제는 아버지의 권유로 클래식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음악적 토대를 다졌으나 밴 헤일런 형제의 꿈은 록 밴드를 결성하여 록 스타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결국 알렉스 밴 헤일런은 전기 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에디 밴 헤일런은 신문 배달을 하며 모은 돈으로 드럼을 구입하여 드러머의 꿈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일은 묘하게 흘러가게 되는데 드럼 구입시 한꺼번에 다 지불하지 못하고 남겨 두었던 잔금을 갚아 나가기위해 어린 에디 밴 헤일런은 신문 배달 일을 계속해야 했고 동생이 신문 배달을 하는 사이에 형인 알렉스 밴 헤일런이 동생의 드럼을 가지고 연주 연습을 시작하면서 두사람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어느 날 미국의 서프 록(Surf Rock) 밴드 '서파리스(The Surfaris)'의 곡인 'Wipe Out'의 드럼 솔로 부분을 완벽히 연주하는 알렉스 밴 헤일런의 모습을 본 에디 밴 헤일런은 드럼을 포기하고 이때 부터 전기 기타를 배우게 된다. 에디 밴 헤일런은 영국의 수퍼 록 밴드 '크림(Cream)'의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고 크림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에디 밴 헤일런은 자신의 기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 크림의 기타 주자인 에릭 클랩튼의 연주 방식을 꼼꼼하게 공책에 하나 하나 적어 나가며 기타 연주 방법을 익히게 된다. 결국 밴 헤일런 형제는 1972년에 베이스 주자인 '마크 스톤(Mark Stone)'과 함께 크림과 같은 형식인 3인조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밴 헤일런 형제와 마크 스톤은 밴드 이름을 '매머드'로 정하고 활동을 준비하였으나 자신들 소유의 음향 장비가 없어 공연 활동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친분이 있던 데이빗 리 로스에게 하룻 밤에 10달러를 주기로 하고 장비를 대여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매머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동시에 맡고 있던 에디 밴 헤일런은 공연 활동을 진행할수록 점점 더 자신의 보컬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되고 리드 보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결국 매머드는 경비 절감과 리드 보컬 영입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데이빗 리 로스를 매머드의 보컬리스트로 가입시키고 밴드를 정비하였다. 1974년, 매머드는 마크 스톤의 탈퇴로 공석이 된 밴드의 베이스 주자를 공개 오디션을 통해 마이클 앤써니로 교체하였고 밴드의 이름도 밴 헤일런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할리우드의 선셋스트립(Sunset Strip)에 있는 나이트 클럽인 '가짜리(Gazzarri)'에 일자리를 얻어 활동을 시작한 밴 헤일런은 2년후인 1976년에 우연히 클럽을 찾은 미국 하드 록 밴드 '키스(Kiss)'의 베이스 주자 '진 시몬스(Gene Simmons)'의 눈에 띄어 그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게 되고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 Records)'와 음반 계약에도 성공하게 된다.

 

1977년 9월 부터 10월 까지 두달간 녹음실에서 데뷔 음반을 녹음한 밴 헤일런은 1978년 2월 10일에 데뷔 음반 'Van Halen'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데뷔 음반에서 첫번째 싱글로 발표된 곡은 영국의 록 밴드 '킹크스(The Kinks)'의 곡인 'You Really Got Me'를 커버한 것으로 밴 헤일런 특유의 거칠고 감각적인 연주로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게 된다.

 

'You Really Got Me'의 히트로 인해 처음에는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데이빗 리 로스가 많은 주목을 끌었으나 밴드가 알려지면서 데뷔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에디 밴 헤일런의 짧은 기타 솔로 연주곡 'Eruption'이 같이 알려졌고, 이 곡에서 에디 밴 헤일런의 '핑거태핑(Finger-tapping: 현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연주하는 기법)'이 주목받으면서 팬들은 새로운 기타 영웅의 탄생을 지켜 보게 된다.

또한 'Eruption'을 연주했던 기타는 에디가 부품을 조립하여 직접 만든 '프랭큰스트라트(Frankenstrat)' 기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하였다. 미국의 하드 록 밴드 '켁터스(Cactus)'의 곡인 'Let Me Swim'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곡의 인트로를 만든 'Eruption'은 기타 연주의 역사를 바꿔 놓은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밴 헤일런 (Van Halen) :
데이빗 리 로스 (David Lee Roth, 보컬) : 1955년 10월 10일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출생
에디 밴 헤일런 (Eddie Van Halen, 기타) : 1955년 1월 2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
마이클 앤써니 (Michael Anthony, 베이스) : 1954년 5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생
알렉스 밴 헤일런 (Alex Van Halen, 드럼) : 1953년 5월 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van-halen.com/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Gary Moore - Empty Rooms

 

Gary Moore - Empty Rooms

 

1978년 봄에 녹음되어 1979년 9월 30일에 발표되었던 두번째 솔로 음반 'Back on the Streets'를 발표한 게리 무어는 음반에 수록되었던 발라드 'Parisienne Walkways'를 영국의 싱글 차트 10위권에 올려 놓으며 사람들에게 게리 무어라는 기타 연주자의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키게 된다. '씬 리지(Thin Lizzy)'의 '필 라이노트(Phil Lynott)'는 히트 곡 'Parisienne Walkways'에서 노래를 불러준 후 게리 무어에게 씬 리지의 다음 음반인 'Black Rose'의 녹음에 참여해 줄것을 요청하였고 이를 수락한 게리 무어는 1978년 12월 부터 진행된 씬 리지의 음반 'Black Rose'의 녹음 작업에서 리드 기타 주자로 참여하게 된다.

 

씬 리지의 멤버로 'Black Rose' 음반의 미국 순회 공연 길에 오른 게리 무어는 순회 공연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인 1979년 7월에 돌연 씬 리지를 탈퇴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내성적이라고 알려진 게리 무어의 성격상 씬 리지의 다른 멤버들과 융화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어쨌든 씬 리지는 게리 무어의 돌연한 탈퇴로 인해 남은 세명의 멤버로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하다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기타 주자 '미지 유어(Midge Ure)'를 가입시켜 순회 공연을 마무리 짓게 된다.

 

씬 리지를 탈퇴한 게리 무어는 드러머 '코지 파웰(Cozy Powell)'의 솔로 음반 'Over the Top'에 참여한 후 새로운 밴드인 '지 포스(G Force)'를 결성하여 1980년에 음반 'G Force'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음반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채 조용히 묻혀버렸고 게리 무어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보컬 겸 베이즈 주자인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요청으로 그렉 레이크의 솔로 음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렉 레이크가 1981년에 발표한 솔로 음반 'Greg Lake'에서 기타 주자로 참가했던 게리 무어는 1982년에 강력한 헤비메탈 음악을 들고 팬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며 돌아오게 된다. 1982년 3월과 4월 사이에 녹음된 음반 'Corridors of Power'는 발표와 동시에 헤비메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성공을 거두었다. 순회 공연과 그렉 레이크의 1983년 음반 'Manoeuvres'와 코지 파웰의 1983년 음반 'Octopuss'의 참여 등으로 바쁜 한해를 보낸 게리 무어는 1984년 1월에 소련 전투기의 대한 항공 007편 피격 사건을 신랄하게 비판한 싱글 'Murder In The Skies'가 포함된 음반 'Victims Of The Future'를 발표하였다.

 

1983년 9월 1일에 발생했던 구 소련 전투기의 '대한 항공 007편'에 대한 피격 행위로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269명의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데 이 악랄하고 유래가 없는 민항기 피격 사건은 현재까지도 그 정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채 다양한 음모론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당시 게리 무어는 자신의 기타로 비행기 엔진 소리, 총알 소리 등을 완벽히 재현해낸 'Murder In The Skies'로 소련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하였으며 민항기 격추 사건으로 경악과 울분에 젖어 있던 우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음반 'Victims Of The Future'는 'Murder In The Skies'로 인해 영국에서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5월 30일에 한국에서도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음반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은 애잔한 발라드 'Empty Rooms'로 게리 무어의 명작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나라 팝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애청곡이기도 하다.

게리 무어 (Gary Moore) : 1952년 4월 4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ary-moore.com/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Gary Moore - Parisienne Walkways

 

Gary Moore - Parisienne Walkways

 

우리나라의 록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타 연주자 '게리 무어'는 영국의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벨파스트(Belfast)'에서 태어났다. 일곱살때 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자란 게리 무어는 이듬해에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 반해 기타 연주에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열네살 때 부터 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기타를 처음 배울 당시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제작된 기타 때문에 왼손잡이이던 게리 무어는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오른손잡이 방식의 기타 연주를 배우게 되었다.

 

기타를 배우던 초기에 게리 무어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지만 자신의 고향 마을인 벨파스트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에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의 공연을 지켜본 후에는 블루스 음악에 빠져들게 되어 블루스 록 그룹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기타 주자인 '피터 그린(Peter Green)'의 연주 방식을 따라 하며 기타 연주를 다듬었다.

 

벨파스트에서 기타를 치며 꿈을 키우던 게리 무어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항구 도시인 '더블린(Dublin)'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열일곱살 때인 1969년에 4인조 블루스 록 밴드인 '스키드 로우(Skid Row)'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로써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게리 무어는 더블린을 연고로 결성된 스키드 로우에서 후일 자신과 음악적 동반자 겸 친구로 깊은 교류를 나누게 되는 '필 라이노트(Phil Lynott)'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처음의 이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필 라이노트가 게리 무어가 가입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씬 리지(Thin Lizzy)'라는 하드 록 밴드를 결성하면서 스키드 로우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키드 로우는 트리오 형식의 밴드로 CBS 를 통하여 데뷔 음반 'Skid'를 1970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고, 1971년에 두번째 음반 '34 Hours'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스키드 로우는 음반의 성공을 위해 유럽과 미국 순회 공연을 펼치며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키드 로우의 음반은 상업적인 실패로 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게리 무어에게 스키드 로우에서의 활동을 접고 새로운 음악 활동의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고 결국 1972년에 게리 무어는 스키드 로우를 탈퇴하게 된다.

 

스키드 로우를 탈퇴한 게리 무어는 1973년에 솔로 데뷔 음반 'Grinding Stone'을 '게리 무어 밴드(The Gary Moore Band)'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필립 도넬리(Philip Donnelly, 기타)', '피어스 켈리(Pearse Kelly, 드럼)', '존 커티스(John Curtis, 베이스)' 같은 연주자들의 도움으로 데뷔 음반을 발표한 게리 무어는 필 라이노트의 제의로 영국 순회 공연 중이던 씬 리지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씬 리지는 영국의 명문인 '벨파스트 퀸스 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열린 신년 맞이 공연 이후 건강 악화로 갑작스럽게 '에릭 벨(Eric Bell)'이 씬 리지를 탈퇴하면서 밴드의 기타 주자가 공석이 되어 버린 상황으로 게리 무어는 에릭 벨을 대신하여 밴드의 멤버로써 남은 순회 공연을 마무리 짓게 된다.

순회 공연을 마친 게리 무어는 씬 리지가 1974년 11월에 발표하였던 음반인 'Nightlife'에 수록되었던 'Still In Love With You' 단 한곡에서 리드 기타 연주를 하고 씬 리지를 떠나 영국의 록 그룹 '콜로세움 2(Colosseum II)'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콜로세움 2에서 실험적 성향이 강한 석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밴드 활동을 정리한 게리 무어는 1978년 봄에 자신의 솔로 두번째 음반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게 된다.

 

1979년 9월의 마지막 날에 발표된 게리 무어의 두번째 솔로 음반은 'Back on the Streets'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콜로세움 2 시절의 동료들인 '돈 에어리(Don Airey, 키보드)'와 '존 몰(John Mole, 베이스)'이 함께 해주었고 친구인 필 라이노트가 베이스와 보컬로 참여하여 음반을 빛내주었다.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인 'Parisienne Walkways'는 우리나라에서 게리 무어의 팬이 늘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곡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팝팬들의 애청곡이기도 하다.

게리 무어 (Gary Moore) : 1952년 4월 4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갈래 : 블루스 록(Blues-Rock),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ary-moore.com/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영국 헤비메탈 그룹 Whitesnake 의 발라드 Blindman

 

Whitesnake - Blindman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화이트스네이크'는 하드 록 그룹 '딥 퍼플(Deep Purple)'의 세번째 보컬리스트로 헤비메탈 역사에 이름을 올렸던 데이비드 커버데일에 의해서 1977년에 결성되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예술을 사랑하는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며 기타를 배웠고 십대 시절에는 여러 밴드를 거치며 음악 활동을 하였다. 십대 시절에 시작한 밴드 생활은 그에게 음악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꿈을 가지게 하였고 결국 '미들즈브러 예술 대학교(Middlesbrough Art College)'에 진학하여 음악 이론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1973년의 어느날, 당시 '가브먼트(The Government)'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영국의 유명한 음악 전문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를 읽던 중에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그 광고는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의 갈등으로 딥 퍼플을 탈퇴한 '이언 길런(Ian Gillan)'의 후임을 구한다는 광고였다.

 

오디션을 통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로 결정된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1974년 4월에 록 음악 페스티벌인 '캘리포니아 잼(California Jam)'의 무대에서 처음으로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로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균열이 시작된 딥 퍼플은 1974년에 발표한 음반 'Stormbringer' 이후 리치 블랙모어를 떠나 보내게 되고 그의 후임으로 '토미 볼린(Tommy Bolin)'을 영입하여 1975년 10월에 새 음반 'Come Taste the Band'를 발표하였다.

 

새 음반 발표 후 딥 퍼플은 1976년 3월에 영국 순회 공연에 들어가지만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하고 딥 퍼플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의 공백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76년 7월에 딥 퍼플은 1차 해산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솔로로 음반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1977년 2월,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백밴드인 '화이트스네이크 밴드(The White Snake Band)'와 함께 솔로 데뷔 음반 'White Snake'를 발표하였다. 솔로 음반 제작을 위해 임시로 결성된 화이트스네이크 밴드에는 미키 무디를 비롯하여 '로저 글로버(Roger Glover)', '사이먼 필립스(Simon Phillips)' 등이 참여하여 연주를 해주었다.

 

1978년 3월에는 데뷔 음반에서 연주를 해주었던 연주자들과 함께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 등이 참가한 두번째 음반 'Northwinds'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후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자신의 솔로 음반들에서 함께 했던 게스트들과 친분이 있던 연주자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밴드인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하고 1978년 6월에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으로 채워진 음반 'Snakebite'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1980년 5월 31일 화이트스네이크는 네번째 음반 'Ready an' Willing'을 발표하면서 뉴웨이브 음악에 침식되어 가고 있던 음악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 넣었고 헤비메탈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 음반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90위에 오르는 선전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Fool for Your Loving'이 영국에서 싱글 차트 13위에 올랐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53위 까지 오르며 밴드 최초의 히트 곡이 되었던 영향이 크다 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이트스네이크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이 음반은 애절한 발라드 'Blindman'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음반이기도 하다. 록 발라드 곡을 특히 좋아하는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곡인 'Blindman'은 당연하게도 라디오의 팝 프로그램과 음악 감상실의 신청 곡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며 사랑받았고 현재까지 팝팬들의 애청 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이트스네이크 (Whitesnake) :
데이비드 커버데일 (David Coverdale, 보컬) : 1951년 9월 22일 영국 노스요크셔 출생
미키 무디 (Micky Moody, 기타) : 1950년 8월 30일 영국 미들즈브러 출생
버니 마스덴 (Bernie Marsden, 기타) : 1951년 5월 7일 영국 버킹엄셔 출생
존 로드 (Jon Lord, 키보드) : 1941년 6월 9일 영국 레스터 출생
닐 머레이 (Neil Murray, 베이스) : 1950년 8월 27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
이언 페이스 (Ian Paice, 드럼) : 1948년 6월 29일 영국 노팅햄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블루스 록(Blues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whitesnake.com/

 

 

2010년 5월 31일 월요일

크림슨 글로리의 명곡 Lost Reflection

 

Crimson Glory - Lost Reflection

크림슨 글로리 (Crimson Glory) :
미드나이트 (Midnight, 보컬) : 1962년 미국 출생, 2009년 7월 8일 사망
존 드레닝 (Jon Drenning, 리드 기타) :
벤 잭슨 (Ben Jackson, 리듬 기타) :
제프 로즈 (Jeff Lords, 베이스) :
다나 버넬 (Dana Burnell, 드럼) :

갈래 : 헤비메탈(Heavy Metal), 프로그레시브 메탈(Progressive Metal)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crimsonglory

 

헤비메탈 음악의 하위 갈래인 프로그레시브 메탈 계에 신비주의를 표방하며 1986년에 등장하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밴드인 크림슨 글로리는 1982년에 미국 플로리다 주의 중서부에 있는 '새러소타(Sarasota)'에서 네명의 젊은이에 의해 결성되었다. 존 드레닝, 벤 잭슨, 제프 로즈, 다나 버넬의 네사람은 밴드의 보컬을 담당할 인물을 찾던 중에 제프 로즈의 학교 친구 중에서 '미드나이트(Midnight, 본명: John Patrick McDonald Jr.)'이라는 신비한 이름을 사용하던 인물을 발견하고 밴드에 합류시키게 된다.

 

밴드의 구성을 마친 다섯명의 젊은이들은 밴드의 이름을 '베어울프(Beowulf)'로 정하고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무려 4년간의 연습과 긴 기다림 끝에 어렵게 성사된 음반 계약은 미국의 파워 메탈 밴드 '사바티지(Savatage)'의 데뷔 음반 'Sirens(1983년)'를 발매하였던 레이블인 캘리포니아 주의 할리우드에 있는 '파 음반사(Par Records)'와 성립되었다.

 

파 음반사를 통해 소량으로 발매된 데뷔 음반은 헤비메탈 팬들의 성원을 받으며 예상보다 빠르게 팔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크림슨 글로리의 데뷔 음반은 헤비메탈 음악의 명가 '로드런너 음반사(Roadrunner Records)'의 시선을 사로잡게 되었고 정식으로 로드런너와 음반 게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계약은 미국내 판권이 아닌 유럽 시장인 네덜란드를 겨냥한 음반 계약일 뿐이었다.
 
로드런너는 크림슨 글로리의 '시험판(Test Pressing)'을 소량으로 찍어 네덜란드에서 발매하고 시장 상황을 살핀 후 1986년 가을에 크림슨 글로리의 정식 데뷔 음반인 'Crimson Glory'를 발표하게 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후 크림슨 글로리는 무대에 설때마다 데뷔 음반 커버에 등장하는 얼굴 전체를 가린 은색 가면을 쓰고 나타나면서 철저한 신비주의
전략을 지향하게 된다. (당연히 보컬리스트인 미드나이트의 가면은 입주위가 가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크림슨 글로리가 구사하는 음악과 맞아 떨어지며 팬들을 불러 모았고 영국에서도 데뷔 음반의 발매가 이루어지며 세계 시장 진출의 첫걸음을 떼게 된다. 고음역을 완벽히 지배하는 미드나이트의 음성과 장중하면서 파워 넘치는 메탈 음악으로 채워진 크림슨 글로리의 데뷔 음반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음반의 최고 작으로 평가받는 마지막 트랙 'Lost Reflection'은 절대 다수의 헤비메탈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곡이기도 하다.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본파이어의 느낌 좋은 발라드 You Make Me Feel

 

Bonfire - You Make Me Feel

본파이어 (Bonfire) :
클라우스 레스만 (Claus Lessmann, 보컬) : 1960년 9월 11일 독일 출생
한스 질러 (Hans Ziller, 기타, 어쿠스틱 기타) : 1958년 5월 18일 독일 출생
호워스 마이어 (Horst Maier, 기타) :
요르그 다이싱어 (Joerg Deisinger, 베이스) : 1966년 4월 23일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 출생
도미닉 휼스워스 (Dominik Huelshorst, 드럼) :

갈래 : 하드 록 (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bonfire.de/

 

독일 헤비메탈 그룹 '본파이어'의 역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바이에른(Bayern)'주의 '잉골슈타트(Ingolstadt)'에서 결성된 '카쿠먼(Cacumen)'이라는 밴드에서 시작되었다. 1972년 잉골슈타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십대의 한스 질러는 그의 동생인 '칼 질러(Karl Zille, 기타)'와 함께 록 밴드를 결성하고 '카쿠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밴드에는 질러 형제 외에도 한스 질러의 친구들이 함께 하였으며 밴드 이름인 '카쿠먼'은 수업 시간에 들었던 라틴어로써 산꼭대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밴드 결성후 1978년 까지 카쿠먼은 잉골슈타트 지역에서 꾸준한 활동을 펼치며 고향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밴드로 성장하게 된다. 1978년에 카쿠먼은 질러 형제를 제외한 모든 인원을 교체하는 대대적 개편을 단행하여 기타를 담당할 호워스 마이어를 가입시켰고 베이스 주자로 '한스 하우프트만(Hans Hauptmann)'을 가입시켰다.

 

또한 드러머는 '한스 포스트너(Hans Forstner)'로 교체되었고, 키보드를 담당할 '한스 슈미트 타이슨(Hanns Schmidt-Theissen)'을 새로 가입시켰다. 밴드의 보컬을 맡아줄 인물로는 '진저 앤 선셋(Ginger and Sunset)'이라는 밴드에서 하모니 보컬을 담당했었던 한스 질러의 학교 동창인 클라우스 레스만을 가입시켰다. 밴드를 완전히 개편한 카쿠먼은 1979년에 데뷔 싱글 'Riding Away/Wintertale'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등정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싱글 발표후 카쿠먼은 클럽과 학교의 댄스 파티장 등을 찾으며 무대에 올랐고 팬층을 늘려 나가게 된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독립 레이블인 '록포트 음반사(Rockport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게된 카쿠먼은 데뷔 음반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즈음 돌연 칼 질러와 한스 슈미트 타이슨가 밴드를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나 밴드는 새로운 멤버의 충원없이 활동하기로 결정하고 녹음실로 향하였다.

 

1981년 데뷔 싱글인 'Riding Away'를 새롭게 편곡한 곡을 수록한 데뷔 음반 'Cacumen'을 발표한 밴드는 1982년에 두번째 음반 녹음을 위해 데뷔 싱글 부터 1980년 까지 함께 했던 한스 슈미트 타이슨의 도움을 받아 그가 소유하고 있던 작은 녹음실에서 두번째 음반 'Bad Widow'를 녹음하여 1983년에 발표하였다. 두장의 음반을 발표한 후 한스 하우프트만이 밴드를 탈퇴하였고 그를 대신해 가입한 '로버트 퍼스칼로비츠(Robert Prskalowicz)'는 1985년 까지 활동하다 한스 포스트너와 함께 밴드에서 동반 탈퇴하였다.

 

이에 밴드는 새로운 멤버인 요르그 다이싱어와 도미닉 휼스워스를 가입시키면서 밴드의 이미지 개선과 함께 당시 활동하던 하드 록 그룹들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밴드의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새로운 밴드의 이름은 본파이어로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하드 록계에 새로운 횃불을 지필 준비가 완료된 본파이어는 1986년에 데뷔 음반 'Don't Touch the Light'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 수록된 록 발라드 'You Make Me Feel'은 유럽 지역을 시작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본파이어의 대표적인 발라드 곡으로 자리잡으며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된다.

 

 

2010년 5월 27일 목요일

미확인 비행 물체의 Try Me

 

UFO - Try Me

유에프오 (UFO) :
필 모그 (Phil Mogg, 보컬) : 1948년 4월 15일 영국 런던 우드그린(Wood Green) 출생
마이클 셍커 (Michael Schenker, 기타) : 1955년 1월 10일 독일 자르슈테트(Sarstedt) 출생
폴 레이몬드 (Paul Raymond, 키보드) : 1945년 11월 16일 영국 하트퍼드셔(Hertfordshire) 출생
피트 웨이 (Peter Way, 베이스) : 1951년 8월 7일 영국 미들섹스(Middlesex) 출생
앤디 파커 (Andy Parker, 드럼) : 1952년 3월 21일 영국 하트퍼드셔(Hertfordshire) 출생

갈래 : 하드 록 (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아레나 록(Arena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ufo-music.info/

 

영국의 수퍼 하드 록 그룹 유에프오는 고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세 사람 필 모그, 피트 웨이, 앤디 파커에 의해서 1969년에 결성되었다. 세 사람은 당시 막 프로의 세계로 뛰어든 기타리스트 '믹 볼튼(Mick Bolton)'을 기용하여 4인 체제의 밴드 구성을 마치고 1969년 8월에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 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10월, 호커스 포커스는 자신들이 추구하던 실험적인 하드 록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을 찾던 중 당시 런던에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던 클럽 이름에서 따온 UFO 를 새로운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밴드 이름을 바꾸자 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유에프오에게 행운이 찾아 오게 되는데 그것은 '비컨 음반사(Beacon Records)'의 소유주인 '노엘 무어(Noel Moore)'가 신비한 이름의 밴드가 펼치는 공연 모습을 본 후 밴드의 음악이 마음에 들어 유에프오에게 음반 계약을 제의하였던 것이다.

 

비컨 음반사와 계약한 유에프오는 1970년 10월에 데뷔 음반 'UFO 1'을 발표하였고 연이어 1971년에는 음반의 뒷면을 전부 차지하는 26분짜리 대곡 'Flying'을 포함한 실험적인 하드 록이 수록된 두번째 음반 'UFO 2: Flying'을 발표하였다. 두장의 음반을 발표한 유에프오의 비상은 본국인 영국이 아닌 멀리 바다 건너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으로 건너와 독일에서도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에서는 데뷔 음반에 수록된 'C'mon Everybody'가 히트하였고 독일(당시 서독)에서는 데뷔 음반의 'Boogie For George'와 두번째 음반의 'Prince Kajuku'가 히트를 하였다. 특히 일본에서 유에프오의 인기는 많은 음반 판매고로 증명이 되었는데 그 보답으로 일본을 찾은 유에프오는 당시의 실황을 'Live'라는 제목으로 1972년에 일본에서만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라이브 음반은 재발매 되면서 'UFO Lands In Tokyo'로 음반 제목이 바뀌었다.

 

일본 공연 이후 필 모그는 그동안 늘 사운드의 부족함을 느끼던 기타리스트를 교체하기로 하고 믹 볼튼을 밴드에서 해고하였다. 멤버들은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래리 월리스(Larry Wallis)를 기용하였다가 1972년 10월에 유에프오의 유럽 순회 공연에 맞추어서 버니 마스덴(Bernie Marsden)으로 다시 교체하는 진통을 겪게 된다.

멤버 교체 후 유에프오는 데뷔 음반 'Lonesome Crow'를 막 발표한 독일의 헤비메탈 그룹 '스콜피온스(Scorpions)'와 함께 순회 공연에 나서게 되는데 이 순회 공연에서 유에프오는 당시 열아홉살이던 스콜피온스의 멤버 마이클 쉥커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유에프에 승선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1973년 6월, 마이클 쉥커를 가입시키며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된 유에프오는 새로운 음반사인 크라이셀리스(Chrysalis Records)와 계약하고 영국의 블루스 록 밴드인 '텐 이어스 애프터 (Ten Years After)'의 베이스 주자인 '리오 라이온스(Leo Lyons)'를 새로운 프로듀서로 맞아들여 1974년 5월에 새 음반 'Phenomeno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유에프오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는 'Doctor Doctor'와 'Rock Bottom'이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사랑받았던 연주곡 'Lipstick Traces'가 수록되어 있다.
 
1976년 5월에 발표되었던 다섯번째 음반 'No Heavy Petting'을 녹음하기 이전 유에프오는 사운드 보강을 위해 키보드 주자인 '대니 페이로넬(Danny Peyronel)'를 가입시켰다. 이때부터 유에프오의 음악에 키보드 연주가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1976년 7월에는 대니 페이로넬을 해고하고 영국의 블루스 록 밴드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 출신의 키보드 주자 '폴 레이몬드(Paul Raymond)'을 기용하여 새 음반 'Lights Out'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유에프오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음반 'Lights Out'은 1977년 5월에 발표되어 'Too Hot To Handle', 'Lights Out', 'Love To Love' 등을 히트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음반에 수록된 발라드 'Try Me'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유에프오 라는 밴드는 몰라도 'Try Me'라는 노래를 모르는 팝팬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도발적인 미녀를 사랑한 머틀리 크루

 

Motley Crue - Girls, Girls, Girls

머틀리 크루 (Motley Crue) :
빈스 닐 (Vince Neil, 보컬) : 1961년 2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Hollywood) 출생
믹 마스 (Mick Mars, 기타) : 1951년 5월 4일 미국 인디애나주 테러호트(Terre Haute) 출생
니키 식스 (Nikki Sixx, 베이스) : 1958년 12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출생
토미 리 (Tommy Lee, 드럼) : 1962년 10월 3일 그리스 아테네(Athens)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 메탈(Heavy Metal), 글램 메탈(Glam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otley.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1981년에 결성된 헤비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는 밴드의 베이스 주자인 니키 식스와 드러머인 토미 리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아버지와 밴드의 백업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니키 식스는 부모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탓에 홀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의 잦은 순회 공연으로 외조부모의 슬하에서 성장하게 된 니키 식스는 십대 시절에 문화, 예술 및 공공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반달리즘(Vandalism)'에 빠져 이웃 집을 침입하여 좀도둑질을 하거나 학교에서 마약을 판매하다 적발되는 등의 문제아가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조부모는 니키 식스를 어머니가 있는 시애틀로로 보내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주었다.

훔친 기타로 기타 연주를 배웠던 니키 식스는 어머니와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번 돈으로 베이스 기타를 장만하여 연주자로써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열일곱이 되던 해에 집을 나온 니키 식스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주류 판매점의 점원으로 일을 하는 한편 밴드 멤버를 모집하는 광고를 뒤적여 오디션을 보러 다니게 된다.

 

이무렵 부터 니키 식스는 본명인 '프랭크 칼튼 페라나 주니어(Frank Carlton Ferrana, Jr.)' 대신에 니키 식스 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978년, '랜디 로즈(Randy Rhoads)'가 활동하고 있던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콰이어트 라이어트(Quiet Riot)'는 베이스 주자인 '켈리 가니(Kelly Garni)'가 밴드를 탈퇴하자 그를 대신 할 베이스 주자 모집 광고를 신문에 내게 된다. 신문을 뒤적이던 니키 식스는 그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가하였지만 오디션에서 탈락하였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니키 식스는 1976년에 결성된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 '시스터(Sister)'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미국의 글램 메탈 밴드 '런던(London)'을 거쳐 1981년에 토미 리와 함께 머틀리 크루를 결성하였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토미 리는 일가족이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로 이민을 오게 되어 미국에서 성장하였다.

 

십대 시절 처음으로 드럼 셋트를 갖게 된 토미 리는 키스(Kiss), 딥 퍼플(Deep Purple),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같은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며 드럼 연습을 했고, 고교 시절에는 행진 악대에 들어가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고교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의 '선셋 스트립(Sunset Strip)' 지역에서 활동하던 밴드인 '스위트 나인틴(Suite 19)'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즈음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니키 식스와 토미 리는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었다. 토미 리의 드럼 연주에 반한 니키 식스는 그와 함께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1981년에 이를 구체화 시키게 된다. 니키 식스와 토미 리는 밴드 결성을 위한 멤버 모집을 위해 로스앤젤레스 지역 신문에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당시 몇몇 무명 밴드를 거치며 밴드 활동을 하고 있던 믹 마스가 이 광고를 보고 찾아왔으며 오디션을 거친 후 머틀리 크루의 기타리스트로 최종 결정되어 합류하였다. 마지막으로 밴드의 보컬은 토미 리의 고교 동창이자 친구인 빈스 닐이 믹 마스의 추천으로 결정되어 밴드에 합류하면서 머틀리 크루의 구성원이 1981년 1월 17일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밴드 결성 후 밴드의 이름을 두고 이것 저것 따져 보던 멤버들은 믹 마스가 예전 밴드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멤버들과의 대화에서 우스개 소리로 주고 받던 말에서 흘려 들었던 'a motley looking crew'라는 말을 멤버들에게 들려주었다. 멤버들은 그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이름인 'Mottley Cru'를 다듬어서 최종적으로 'Motley Crue'라는 이름을 만들었고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다.

 

머틀리 크루는 '앨런 코프만(Allan Coffman)'을 매니저로 기용하고 싱글 'Stick to Your Guns/Toast of the Town'을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이 싱글은 레이블을 구할 수 없었던 머틀리 크루가 매니저인 앨런 코프만에게 소규모 음반사인 '레셔 음반사(Leathur Records)'를 설립하게 하고 그 음반사를 통해 발표하였던 데뷔 싱글이었다.

 

데뷔 싱글 발표 후 1981년 11월 10일에는 레셔 음반사를 통해 데뷔 음반 'Too Fast for Love'를 발표하였다. 이들의 데뷔 음반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게 된 '일렉트라 음반사(Elektra Records)'는 1982년 봄에 머틀리 크루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83년 9월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Shout At The Devil'은 전작에 비해 한층 숙련된 연주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도 진입하여 17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작이 되었다.

 

두번째 음반 부터 LA 메탈의 선봉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머틀리 크루는 1985년 6월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Theatre of Pain'에서 'Home Sweet Home'을 히트시키며 막강한 기세를 이어 나갔다. 2년 뒤인 1987년 5월에는 네번째 음반 'Girls, Girls, Girls'를 발표하여 타이틀 트랙을 히트시키며 헤비메탈 팬들을 사로잡았고 머틀리 크루의 전성기를 열었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워런트가 들려주는 달콤한 체리 파이 이야기

 

Warrant - Cherry Pie

워런트 (Warrant) :
제니 레인 (Jani Lane, 보컬) : 1964년 2월 1일 미국 오하이오(Ohio)주 애크런(Akron) 출생
조이 앨런 (Joey Allen, 기타) : 1964년 6월 23일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Fort Wayne) 출생
에릭 터너 (Erik Turner, 기타) : 1964년 3월 31일 미국 내브래스카주 오마하(Omaha) 출생
제리 딕슨 (Jerry Dixon, 베이스) : 1967년 9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Pasadena) 출생
스티븐 스위트 (Steven Sweet, 드럼) : 1965년 10월 29일 미국 아이오와주 워즈워스(Wadsworth)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헤비 메탈(Heavy Metal), 글램 메탈(Glam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warrantweb.net/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 제작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결성된 글램 메탈 밴드 워런트는 영국 하드 록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기타 주자인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미국 하드 록 그룹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기타 주자인 '조 페리(Joe Perry)'를 좋아했던 기타 주자 에릭 터너에 의해서 1984년에 결성되었다.

 

에릭 터너는 당시 LA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가벼운 팝 메탈 풍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 결성을 위해 알고 지내던 베이스 주자 제리 딕슨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열네살때 부터 베이스 기타 연주를 시작한 제리 딕슨은 친구에게 30달러를 주고 구입한 '시어스(Sears)' 모델 베이스 기타를 가지고 연습을 하며 밴드 활동의 꿈을 키우다 에릭 터너의 제안을 받아 들여 워런트의 두번째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워런트에 합류할 당시 제리 딕슨은 고교 재학중이었다.

 

에릭 터너는 밴드의 보컬을 담당할 인물로 '아담 쇼어(Adam Shore)'를 발탁하였고, '조쉬 루이스(Josh Lewis)'에게 기타를 맡겼다. 마지막으로 드러머에 '맥스 에셔(Max Asher)'를 발탁하여 밴드의 기본 구성을 완성한 워런트는 LA 지역의 클럽을 무대로 활동은 개시하였으며 음반 데뷔를 위한 데모 테이프 제작에 들어가 'You've Got A Broken Heart'와 'Tease Machine'이라는 곡을 녹음하였다.

 

하지만 이 데모 테이프를 들어본 음반사들은 모두 계약을 거절하였고 이에 아담 쇼어와 맥스 에셔가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밴드를 떠난 두 사람 대신 1986년 9월에 제니 레인과 스티븐 스위트를 가입시켜 밴드를 재정비한 후 활동을 재개하지만 조쉬 루이스가 다시 밴드를 탈퇴하여 1987년 3월에 조이 앨런을 가입시키면서 워런트의 최종 구성이 완결되었다.

 

LA 지역의 클럽에서 과격한 무대로 악평을 날리며 인지도를 넓혀가던 워런트는 1987년 9월에 가수 '프린스(Prince)'가 소유한 '페이즐리 파크 음반사(Paisley Park Records)'의 녹음실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즈음 'A&M 음반사(A&M Records)'에서는 1989년에 개봉 예정인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처(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의 사운드 트랙에 들어갈 노래를 수집하던 중 클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워런트에게 계약 파기가 가능한 옵션을 포함한 사운드트랙 음반 참가 계약을 제의하였다.

 

이에 워런트는 'Game of War'를 녹음하였지만 결국 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지 못하였고 워런트는 A&M 과의 계약을 파기하게 된다. 1988년 1월 워런트는 결국 '컬럼비아 음반사(Columbi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성사시켰고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가 1989년 1월 31일에 데뷔 음반  'Dirty Rotten  Filthy Stinkin' Rich'를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서는 'Heaven'과 'Sometimes She Cries', 그리고 'Down Boys'를 연속해서 히트 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파워 발라드인 'Heave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싱글의 성공에 힘입어 음반도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기타를 연주한 것은 에릭 터너와 조이 앨런이 아닌 1985년에 해산한 밴드인 '스트릿츠(Streets)' 출신의 기타 주자 '마이크 슬래머(Mike Slamer)'였다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8년에 마이크 슬래머의 부인에 의해서 사실로 드러났다.)

 

1990년 9월 11일 워런트는 마이크 슬래머와 미국의 글램 메탈 밴드 '포이즌(Poison)'의 'C.C 데빌(C. C. DeVille)'이 게스트로 참가하여 기타를 연주해 준 두번째 음반 'Cherry Pie'를 발표하였다. 음반의 제목인 체리 파이는 본래의 의미 외에 '쉽게 몸을 허락하는 여자'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Cherry Pie'의 뮤직 비디오에서 그러한 의미를 재미있는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싱글로 발매된 'Cherry Pie'는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올랐고 음반은 전작의 성과를 뛰어 넘는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랭크되었다.

She's My Cherry Pie
Cool Drink Of Water Such A Sweet Surprise
Tastes So Good Makes A Grown Man Cry
Sweet Cherry Pie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Gamma Ray - It's Sin

 

Gamma Ray - It's Sin

감마 레이 (Gamma Ray) :
카이 한센 (Kai Hansen, 보컬, 기타) : 1963년 1월 17일 독일 함부르크(Hamburg) 출생
헨조 리히터 (Henjo Richter, 기타, 키보드) : 1963년 11월 24일 독일 함부르크(Hamburg) 출생
더크 슐레이터 (Dirk Schlachter, 베이스) : 1965년 2월 15일 독일 바트 나우하임(Bad Nauheim) 출생
댄 짐머만 (Dan Zimmermann, 드럼) : 1966년 10월 30일 독일 뉘른베르크(Nurnberg) 출생

갈래 : 헤비 메탈(Heavy Metal), 파워 메탈(Power Metal), 스피드 메탈(Speed Meta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ammaray.org/

 

1978년 '젠트리(Gentry)'라는 이름의 메탈 밴드를 결성하여 클럽을 무대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카이 한센은 1982년에 젠트리라는 이름 대신에 헤비 메탈에 어울리는 강력한 이름인 '세컨드 헬(Second Hell)'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활동 폭을 넓혀나가며 지명도를 쌓아나갔다. 1984년, 세컨드 헬은 '헬로윈(Helloween)'이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다시 바꾸고 독일의 신생 메탈 음악 레이블인 '노이즈 음반사(Noise Records)'와 음반 계약을 맺고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1985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Walls of Jericho'를 시작으로 스피드 메탈계의 강자로 부상한 헬로윈은 1987년과 1988년에 발표한 2부작 음반 'Keeper of the Seven Keys'로 인해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Keeper of the Seven Keys, Pt. 1'에 수록된 메탈 발라드 'A Tale That Wasn't Right'는 우리나라의 메탈 발라드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헬로윈 최고의 명곡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밴드의 역량이 총동원된 역작 'Keeper of the Seven Keys' 이후 탈진해버린 헬로윈은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밴드의 인기마저 하향세로 돌아서게 된다. 밴드의 분열과 겹친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카이 한센은 결국 밴드를 탈퇴하고 새로운 그룹 결성을 구상하게 된다. 카이 한센은 자신의 프로젝트 그룹을 구상하면서 자신의 친구이자 파워 메탈 그룹 '타이란 페이스(Tyran' Pace)'에서 보컬을 담당했던 '랄프 쉬퍼스(Ralf Scheepers, 보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카이 한센과 랄프 쉬퍼스는 '우베 베젤(Uwe Wessel, 베이스)'과 '마티아스 부르하르트(Mathias Burchardt, 드럼)'를 추가로 뽑고 4인 구성의 단발성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감마 레이는 1990년에 데뷔 음반인 'Heading for Tomorrow'를 발표하였다. 음반 대부분의 곡을 카이 한센의 곡으로 채운 감마 레이의 데뷔 음반은 카이 한센의 탈퇴로 비틀거리던 헬로윈과 비교되며 팬들의 시선을 붙들었고 파워 메탈계에 강력한 감마선을 방출하기 시작하였다.

데뷔 음반 발표 이후 카이 한센은 감마 레이를 지속시키기로 결정하고 마티아스 부르하르트를 내보내는 대신에 '울리 쿠쉬(Ulrich Kusch, 드럼)'와 데뷔 음반에서 베이스 세션을 했던 '더크 슐레이터(기타)'를 새로운 멤버로 합류시키고 1990년 중반에 미니 음반(EP) 'Heaven Can Wait'를 발표하였다. 미니 음반 발표 이후 파워 메탈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성장한 감마 레이는 1999년 3월에 여섯번째 음반 'Power Plant'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영국의 전자 음악 듀오인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가 1987년 6월 15일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는 9위에 올랐던 히트 곡 'It's Sin'을 강력한 헤비 메탈 음악으로 편곡하여 수록하고 있다.

 

팝 팬들의 귀에 익은 'It's Sin'의 새로운 메탈 버전은 그동안 감마 레이의 파워 메탈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한걸음 다가서게 하는 역할을 하였고, 감마 레이의 팬들에게도 새로운 시도로 다가섰던 곡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들이 좋아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