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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8일 목요일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산타 에스메랄다 (Santa Esmeralda) : 1977년 발표 싱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구성원
리로이 고메즈 (Leroy Gomez, 리드 보컬)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어햄(Wareham) 출생
장 끌로드 페티 (Jean Claude Petit, 건반) :
슬림 페진 (Slim Pezin, 기타) :
호세 소크 (Jose Souc, 스패니시 기타) :
크리스찬 파도반 (Christian Padovan, 베이스) :
 
분류 : 디스코(Disco), 라틴 팝(Latin pop), 유로 댄스(Euro-Dance), 클럽 댄스(Club/Dance)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santaesmeraldamusic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인 '카보베르데(Cape Verde)' 혈통인 리로이 고메즈는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웨어햄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리로이 고메즈는 악기에도 관심을 가져 '색소폰(Saxophone)' 연주를 배우게 된다. 열네살때 자신의 첫번째 밴드를 결성하였고, 카보베르데 출신의 타바레스 형제들에 의해 결성된 디스코 그룹 '타바레스(Tavares)'와 함께 북미와 유럽을 순회하는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순회 공연 도중 프랑스 파리에서는 '엘튼 존(Elton John)'의 새음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에 수록될 곡인 'Social Disease'에 색소폰 연주를 해줄 것을 요청 받고 녹음에 참여하였다. 녹음이 끝난 후 리로이 고메즈는 계속 파리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타바레스와 결별한 후 세션 연주를 하면서 파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세션 연주 생활을 하면서 리로이 고메즈는 두 사람의 음반 제작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스튜디오 밴드 '산타 에스메랄다'를 기획한 '니콜라스 스콜스키(Nicolas Skorsky)'와 '장 마누엘 드 스카라노(Jean-Manuel de Scarano)'였다.

 

리로이 고메즈와 두 사람의 프로듀서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하다 리로이 고메즈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따라 영국의 록 그룹 '애니멀스(The Animals)'가 '니나 시몬(Nina Simone)'이 1964년에 발표했던 재즈 곡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편곡하여 1965년에 록 버전으로 발표했던 곡을 디스코 리듬으로 재편곡하여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세 사람은 스튜디오 연주자들을 모아 '산타 에스메랄다'를 결성하고 1977년 여름에 음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발표하였다. 8분 짜리 디스코 음악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발표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영화와 CF 등에 사용되는 등 오랜 기간 사랑받는 디스코의 고전으로 애청되고 있다.

 

2003년에는 영화 '킬 빌(Kill Bill)'에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사용되면서 산타 에스메랄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

1970년대 중반 도나 섬머(Donna Summmer)와 함께 디스코의 여왕 자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글로리아 게이너(본명 : Gloria Fowles)는 1949년 9월 7일, 미국 뉴저지 주(New Jersey) 뉴어크(Newark)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글로리아는 사라 본(Sarah Vaughan)이나 냇 킹 콜(Nat King Cole)등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로써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고교 졸업 후 경리직원으로 취직하여 일을 하다가 캐나다로 훌쩍 날아가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뉴저지로 돌아온 글로리아는 어느 날 밤 Soul Satisfiers 라는 이름의 재즈 팝 밴드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된다.

 

이때의 인연으로 글로리아와 밴드는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함께 공연을 하며 호흡을 맞추게 된다. 글로리아가 열아홉이 되던 해인 1968년에는 처음으로 음반 계약을 맺고 싱글 음반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Soul Satisfiers 와 헤어진 글로리아는 뉴욕으로 옮겨와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클럽 무대를 순회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되고 1973년에는 MGM Records 와 계약하여 메이저 데뷔 싱글 음반 Honey Bee 를 발표하여 디스코 클럽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된다. 1975년에는 음반 Never Can Say Goodbye 를 발표하여 디스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데,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디스코 클럽의 DJ 들의 단체인 'DJ 연합'이 자체 심사하여 선정한 디스코의 여왕에 선정되는 영예를 함께 누리게 된다.

 

이 음반의 타이틀 곡인 Never Can Say Goodbye 는 잭슨 파이브(Jackson 5)가 불렀던 곡을 디스코 풍으로 리메이크한 것으로 빌보드 차트에 새롭게 신설된 'Disco Action Charts'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싱글 차트에서는 4위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에는 앨범 Love Tracks 를 발매하여 수록 곡인 I Will Survive 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처음으로 올려 놓게 되며 1980년에 열린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에서 최우수 디스코 레코딩(Best Disco Recording) 부분 수상을 하게 된다. I Will Survive 는 한국에서 '진주'라는 가수에 의해 난 괜찮아 라는 곡으로 번안되어 불려지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