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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9일 금요일

Mocedades - Eres Tu

Mocedades - Eres Tu

 

스페인 바스크 지방(Basque Country)의 대도시 빌보아(Bilbao)에서 1967년에 결성된 보컬 그룹 모세다디스의 역사는 우랑가 집안의 남매들과 블란코 집안의 형제들이 같은 대학에서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중반 부터 '우랑가 시스터즈(The Uranga sisters)'라는 이름의 보컬 밴드 활동을 하던 세자매 아마야, 이사스꾼, 에스띠발리스(Estibaliz)는 큰언니인 아마야가 같은 대학에서 만난 라파엘과 세르지오(Sergio)라는 이름을 가진 블란코 형제와 자주 만나 서로간의 음악적 의견을 나누며 음악 활동을 하다가 함께 보컬 밴드를 결성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해서 두 집안의 젊은이들을 주죽으로 하여 8인조의 팝 보컬 밴드 '보이시스 앤 기타스(Voices and Guitars)'가 1967년에 출범하게 된다. 아마야 우랑가는 남동생인 로베르또 우랑가를 밴드에 합류 시켰고 블란코 형제와 의견을 조율하여 '프란시스코 빠네라(Francisco Panera)'와 '호세 이피나'를 가입시키면서 8인조라는 대형 보컬 밴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형 8인조 보컬 밴드인 보이시스 앤 기타스는 '에스띠발리스 우랑가(Estibaliz Uranga)'와 '세르지오 블란코(Sergio Blanco)'가 듀오로써 주 보컬을 담당하였으며 나머지 멤버들이 보조 보컬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의 음악은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포크 팝 음악을 추구하였다. 1969년에 보이시스 앤 기타스는 밴드 이름을 모세다시스로 바꾸고 스페인의 '자피로 음반사(Zafiro Records)'를 통해 데뷔 음반 'Mocedades 1'을 발표하였다.

 

1970년에 두번째 음반 'Mocedades 2'를 스페인과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에서 발표하고 나서 모세다디스는 호세 이피나와 프란시스코 빠네라가 탈퇴하게 되어 첫번째 멤버 교체를 하면서 멤버의 수가 처음으로 줄어들게 된다. 보이시스 앤 기타스 결성 당시 군 복무 문제로 밴드에 합류하지 못했던 '사비에르 가라이'가 탈퇴한 프란시스코 빠네라 대신 모세다디스에 합류하였고 호세 이피나의 자리는 그대로 비워두었던 것이다.

1971년 7인조로 세번째 음반 'Mocedades 3'를 발표한 모세다디스는 밴드를 떠났던 호세 이피나가 돌아온 대신에 에스띠발리스 우랑가와 세르지오 블란코가 듀오로 활동하기 위해 모세다디스를 탈퇴하면서 이때 부터 6인조로 활동하게 된다. 1972년 한해를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 준비로 보낸 모세다디스는 1973년에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Eres Tu(Touch The Wind)'로 참가하여 2위로 입상하게 된다.

이 곡은 곧바로 미국에서 싱글로 발표되었고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서 9위 까지 진출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스페인어로 불린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 탑텐에 들어간 것은 빌보드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미국에서의 히트를 시작으로 'Eres Tu'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또한 모세다디스는 1973년에 히트 곡 'Eres Tu'가 수록된 네번째 음반 'Mocedades 4'를 미국과 스페인에서 동시에 발표하였다.

모세다디스가 미국 시장에서 싱글이 아닌 정규 음반을 발표하기는 처음이었는데 이전에 발표했던 석장의 음반은 스페인과 푸에르토리코에서만 발매되었으나 'Eres Tu'의 히트로 인해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한편 모세다디스의 데뷔 음반 부터 네번째 음반 까지는 음반의 제목에 별다른 표기가 없이 'Mocedades'로 똑같이 되어 있고 다섯번째 음반에서 부터 'Mocedades 5'로 표시 되어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해 네번째 음반 까지는 편의상 숫자를 붙여 제목을 분류하고 있다.

모세다디스 (Mocedades) :
아마야 우랑가 (Amaya Uranga, 보컬) : 1947년 2월 18일 스페인 빌바오 출생
이사스꾼 우랑가(Izaskun Uranga, 보컬) : 1950년 4월 17일 스페인 빌바오 출생
로베르또 우랑가 (Roberto Uranga, 보컬) :
라파엘 블란코 (Rafael Blanco, 기타) :  
호세 이피나 (Jose Ipina) :
사비에르 가라이 (Javier Garay) :

갈래 : 팝 록(Pop/Rock), 라틴 팝(Latin Pop), 소프트 록(Soft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mocedades.com/

 

2010년 4월 8일 목요일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산타 에스메랄다 (Santa Esmeralda) : 1977년 발표 싱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구성원
리로이 고메즈 (Leroy Gomez, 리드 보컬)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어햄(Wareham) 출생
장 끌로드 페티 (Jean Claude Petit, 건반) :
슬림 페진 (Slim Pezin, 기타) :
호세 소크 (Jose Souc, 스패니시 기타) :
크리스찬 파도반 (Christian Padovan, 베이스) :
 
분류 : 디스코(Disco), 라틴 팝(Latin pop), 유로 댄스(Euro-Dance), 클럽 댄스(Club/Dance)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yspace.com/santaesmeraldamusic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인 '카보베르데(Cape Verde)' 혈통인 리로이 고메즈는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웨어햄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리로이 고메즈는 악기에도 관심을 가져 '색소폰(Saxophone)' 연주를 배우게 된다. 열네살때 자신의 첫번째 밴드를 결성하였고, 카보베르데 출신의 타바레스 형제들에 의해 결성된 디스코 그룹 '타바레스(Tavares)'와 함께 북미와 유럽을 순회하는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순회 공연 도중 프랑스 파리에서는 '엘튼 존(Elton John)'의 새음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에 수록될 곡인 'Social Disease'에 색소폰 연주를 해줄 것을 요청 받고 녹음에 참여하였다. 녹음이 끝난 후 리로이 고메즈는 계속 파리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타바레스와 결별한 후 세션 연주를 하면서 파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세션 연주 생활을 하면서 리로이 고메즈는 두 사람의 음반 제작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스튜디오 밴드 '산타 에스메랄다'를 기획한 '니콜라스 스콜스키(Nicolas Skorsky)'와 '장 마누엘 드 스카라노(Jean-Manuel de Scarano)'였다.

 

리로이 고메즈와 두 사람의 프로듀서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하다 리로이 고메즈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따라 영국의 록 그룹 '애니멀스(The Animals)'가 '니나 시몬(Nina Simone)'이 1964년에 발표했던 재즈 곡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편곡하여 1965년에 록 버전으로 발표했던 곡을 디스코 리듬으로 재편곡하여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세 사람은 스튜디오 연주자들을 모아 '산타 에스메랄다'를 결성하고 1977년 여름에 음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발표하였다. 8분 짜리 디스코 음악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발표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영화와 CF 등에 사용되는 등 오랜 기간 사랑받는 디스코의 고전으로 애청되고 있다.

 

2003년에는 영화 '킬 빌(Kill Bill)'에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사용되면서 산타 에스메랄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Julio Iglesias - Hey

 

Julio Iglesias - Hey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Julio Jose Iglesias de la Cueva) : 1943년 9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 출생

 

분류 : 라틴 팝(Latin Pop), 팝록(Pop/Rock)


의사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푸가(Julio Iglesias Puga)의 아들로 태어난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던 도중인 1960년대 초 스페인의 명문 축구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에 입단하여 골키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63년 9월 22일 발생한 교통 사고로 인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되고 축구 선수로써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병실에서 기타를 치기 시작하며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부단한 노력으로 걸을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을 떨치고 부상에서 회복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미루어 두었던 학업에 매진하기 위하여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영국으로 건너온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어학원인 'Bell Educational Trust'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에 편입하여 학업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1968년에 스페인의 유명한 해변 휴양지인 베니도름(Benidorm)에서 개최된 '베니도름 인터내셔널 송 페스티발(Benidorm International Song Festival)'에 자작곡인 'La Vida Sigue Igual'을 가지고 참가하여 우승을 하였고 컬럼비아 레코드(Discos Columbia)와 음반 계약을 맺었다.

 

1970년에는 스페인을 대표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에 'Gwendolyne' 라는 노래로 출전하여 4위에 입상하였다. 대회 출전 후 발표한 싱글 "Un Canto A Galicia'는 독일에서 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히트를 하였고 유럽 각국의 차트에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1971년 필리핀 출신의 이자벨 프레이슬러(Isabel Preysler)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 전역과 유럽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영미 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하게 된다. 1978년 부인과 이혼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 마이애미(Miami)로 건너와 CBS International 과 계약을 맺고 이전까지 스페인어로만 음반을 발표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이때 부터 영어와 불어, 독일어 등의 언어로도 음반 녹음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1980년에 발표한 음반 'Hey!'는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하였고 한국의 라디오까지 점령하였다. 1980년대 초반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잔잔한 흐름으로 다가와 거센 감동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Jose Feliciano - Rain

 

Jose Feliciano - Rain

선천적인 맹인인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본명: Jose Montserrate Feliciano Garcia)는 1945년 9월 10일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의 작은 지방 도시 라레스(Lares: LAH-res)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1남매 중의 하나로 태어난 그는 세살때 부터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자랐으며, 다섯살때 그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 뉴욕의 스페인 빈민가에서 성장하게 된다.

 

할아버지에게서 선물로 받은 기타와 아코디언(Accordion, 손풍금)을 늘 곁에 두고 연습하던 호세 펠리치아노는 아홉살때 뉴욕 주 남동부의 브롱크스(Bronx)에 위치한 극장(El Teatro Puerto Rico)에서 생애 첫 공연을 가지게 된다. 제대로 기타치는 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넉넉치 않은 가정 환경과 선천적인 맹인 이라는 장애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인 열네시간을 방에서 1950년대의 록 음반들과 스페인 최고의 클래식 기타 연주자 안드레스 세고비아 (Andres Segovia)나 재즈 기타 연주자 웨스 몽고메리 (Wes John Leslie Montgomery)의 음악들을 들으며 기타 연주 방법을 독학하게 된다.

 

열일곱살때인 1962년에는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클럽가와 선술집을 무대로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고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프로 음악인으로 데뷔하게 된다. 1963년 RCA Victor 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에 데뷔 싱글 Everybody Do The Click 과 데뷔 음반 The Voice and Guitar of Jose Feliciano 를 발표하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zz Festival)에도 참여하였다.

 

초기 대부분의 곡을 스페인어로 불렀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더욱 인기가 많았는데 1968년에 발표한 음반 Feliciano! 에 수록된 The Doors 의 Light My Fire 를 라틴 음악으로 절묘하게 편곡한 노래가 그해 여름에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랭크되며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연이어 토미 터클(Tommy Tucker)의 R&B곡인 Hi Heel Sneakers 를 싱글로 발표하여 연속으로 히트를 기록하고 1968년의 월드 시리즈 야구 경기에 초대 가수로 초청받아 미국 국가를 부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또한 그 해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 of the Year)을 수상하며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가수로 명성을 얻게 된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969년에 다섯번째 음반 10 to 23 을 발표하였는데, 한국에서 음반 수록곡인 Rain 이 음악 다방을 중심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라디오 채널을 장악하며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음악으로 비 오는 날이면 전파를 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