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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5일 화요일

UB40 - Red Red Wine

 

UB40 - Red Red Wine

1968년 자메이카 출신 밴드 '투츠 앤 더 매이탈스(Toots & the Maytals)'가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수록한 음반 'Do the Reggay'를 발표하면서 알져지기 시작한 레게 음악은 1970년대에 자메이카 출신의 가수 겸 작곡가 '밥 말리(Bob Marley)'에 의해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사랑받게 된다. 이런 레게 음악을 좀더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밴드가 바로 1978년에 영국 버밍엄에서 결성된 레게 밴드 '유비포티'이다.

밴드 이름인 '유비포티(UB40: Unemployment Benefit, Form 40)'라는 말은 영국의 실업자 수당 신청 양식 40번을 뜻하는 말의 앞 글자를 따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밴드 구성원들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사이였다. 유비포티의 초창기 시절은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직접 홍보 전단지와 포스터 등을 제작하여 뿌리고 다녀야 했던 말 그대로의 눈물 젖은 빵 시절이었다. 유비포티는 고된 연습 과정을 거쳐 1979년 2월 9일에 버밍엄의 '킹스히스(Kings Heath)' 지역에 있는 선술집(Pub) 무대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이 무대는 친구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 위한 행사였다.

데뷔 무대 이후 유비포티는 꾸준히 선술집의 무대를 통해 공연 활동을 펼치며 성공을 향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우연히 선술집을 찾은 미국의 여성 록 가수 '크리시 힌드(Chrissie Hynde)'의 눈에 띄어 그녀가 이끌던 밴드인 '프레텐더스(Pretenders)'의 보조 밴드로 공연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기회는 곧바로 음반 계약으로 이어져 '그래쥬에이트 음반사(Graduate Records)'를 통해 1980년에 데뷔 싱글 'King/Food for Thought'를 발표하게 된다.

데뷔 싱글에서 'Food for Thought'가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4위를 기록하는 히트를 하게 되자 음반사에서는 8월에 데뷔 음반 'Signing Off'를 서둘러 발표하게 하였다. 유비포티의 데뷔 음반은 발표 후 앨범 차트에 진입하여 총 71주간이나 머물렀으며 앨범 차트에서 최고 2위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하였고 음반 판매량도 순조로워 백만장이 넘는 판매를 하게 된다. 데뷔 음반의 성공 이후 유비포티는 좀더 자유로운 음반 발매를 위해 독자적인 레이블인 '디이피 인터내셔널(DEP International)'을 설립하고 두번째 음반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앨범 차트 2위에 진출했던 두번째 음반 'Present Arms'는 1981년 5월에 발표되어 싱글 차트 7위에 올랐던 히트 곡 'One In Ten'을 탄생시켰다. 데뷔 음반의 성공을 이어간 유비포티는 1982년 9월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UB44'를 앨범 차트 4위에 올려 놓으며 레게의 태풍이 몰려올 전조를 예고하게 된다. 1983년 9월 유비포티는 밴드의 네번째 음반이자 레게 열풍을 몰고올 음반 'Labour of Love'를 발표하였다.

다른 가수들의 곡을 새롭게 편곡하여 수록한 커버 음반인 'Labour of Love'에서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1968년 히트 곡을 커버한 'Red Red Wine'이 싱글로 발표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Red Red Wine'의 히트로 인해 이 음반은 미국에서도 발매가 이루어져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하였고 최종적으로 8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른바 레게와 유비포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유비포티가 1993년에 발표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커버 곡 'Can't Help Falling in Love'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Red Red Wine'은 레게라는 흥겨운 음악을 전세계의 대중들에게 전파한 선봉장이었으며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레게라는 음악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곡이었다.

유비포티 (UB40) :
알리 캠벨 (Ali Campbell, 보컬, 기타) : 1959년 2월 15일 영국 버밍엄 출생
로빈 캠벨 (Robin Campbell, 기타) : 1954년 12월 15일 영국 버밍엄 출생
미키 버츄 (Mickey Virtue, 키보드) : 1957년 1월 19일 영국 출생
얼 팔코너 (Earl Falconer, 베이스) : 1957년 1월 23일 영국 버밍엄 출생
브라이언 트래버스 (Brian Travers, 색소폰) : 1959년 1월 23일 영국 출생
제임스 브라운 (James Brown, 드럼) : 1957년 11월 20일 영국 출생
노먼 하산 (Norman Hassan, 퍼커션) : 1958년 1월 26일 영국 출생
아스트로 (Astro, 트럼펫) : 1957년 6월 24일 영국 출생

갈래 : 레게(Reggae), 레게 팝(Reggae-Pop),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ub40.co.uk/
관련 동영상 감상하기 : http://youtu.be/Rg1iEBWxVeQ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Eddy Grant - Electric Avenue

 

Eddy Grant - Electric Avenue

에디 그랜트 (Edmond Montague Grant) : 1948년 3월 5일 가이아나 플래정스(Plaisance) 출생

 

분류 : 레게(Reggae), 레게 팝(Reggae-Pop), 팝 록(Pop/Rock), 댄스 팝(Dance-Pop)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icerecords.com/EddyGrant.htm


카리브해의 가이아나(Guyana)에서 태어난 에디 그랜트는 1983년에 발표한 곡 'Electric Avenue'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레게 가수이다. 에디 그랜트의 음악적 뿌리인 레게는 가이아나에서 성장하면서 카브리인의 음악 형식이 자연스럽게 성장기의 에디 그랜트에게 흡수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에디 그랜트의 십대 시절 음악가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 모두가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척 베리(Chuck Berry)'의 음악과 '블루스'와 'R&B'에 빠져들며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된다.

 

1965년 에디 그랜트 자신의 첫 밴드인 '이퀄스(The Equals)'를 결성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결성된 최초의 다인종 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퀄스는 '프레지던트 레코드(President Records)'를 통하여 1966년에 데뷔 싱글 'Hold Me Closer/Baby Come Back'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싱글은 차트 진입에는 실패하였고 이퀄스는 무명의 그룹으로 클럽가와 선술집을 전전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실패로 끝난줄 알았던 데뷔 싱글은 뜻밖에도 B면 수록 곡인 'Baby Come Back'이 독일과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뒤늦게 히트하였고 이에 따라 영국에서도 이퀄스의 데뷔 싱글이 재조명 받게 된다. 1967년에 재발매된 싱글 'Baby Come Back'은 1968년에 영국에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32위에 랭크되며 히트하게 된다.

 

에디 그랜트는 1970년 부터 영국에서 활동하는 레게 가수들을 위한 레이블을 설립하여 레게 가수들에게 음반 취입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1971년 부터는 이퀄스를 떠나 음반 프로듀서와 솔로 가수로써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7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 음반 'Message Man'에는 12분 짜리 대곡 'Hello Africa'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에디 그랜트가 처음으로 시도한 소카(Soca: 소울과 칼립소가 융합된 음악) 음악이었다.

 

1982년, 에디 그랜트는 음반 'Killer on the Rampage'를 발표하여 상업적인 성공과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Electric Avenue'는 1983년에 공교롭게도 영국과 미국의 싱글 차트에서 똑같이 2위를 차지하며 히트를 하였고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는 애청 곡이 된다. 또한 이듬해에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성공을 거둔 모험 영화 '로맨싱 스톤(Romancing the Stone)'의 주제가를 불러서 히트를 이어가게 된다.

 

영화의 주제가인 'Romancing the Stone'은 편집 과정에서 잘려 나가 정작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는 수록되지 못했고 에디 그랜트가 싱글로 발표하여 히트했던 곡이다.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Goombay Dance Band - Eldorado

 

Goombay Dance Band - Eldorado

굼베이 댄스 밴드 (Goombay Dance Band) :
올리버 벤트 (Oliver Bendt, 보컬) : 1946년 10월 29일 독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 포츠담 출생
마이클 필립스 (Michael Philips) :
웬디 워커 (Wendy Walker) : 
비버리 왈라스 (Beverlee Walas) :

 

분류 : 레게 팝(Reggae-Pop), 디스코(Disco), 댄스 팝(Dance-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goombaydanceband.net/goombay.php


독일 출신의 레게 팝 그룹 굼베이 댄스 밴드는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Sun Of Jamaica', 'Eldorado', 'Rain'등을 연속해서 히트시키며 유럽 최고의 댄스 그룹으로 각광받았었다. 밴드의 리더인 '올리버 벤트(본명: Jorg Knoch)'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배우면서 뮌휀에서 성장하였고 영화 배우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역 배우로 몇편의 독일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살펴보면 1955년에 개봉한 영화 'Konigswalzer'과 1956년에 개봉한 'Weil du arm bist, musst du fruher sterben'등이 있다.

 

'레겐스부르크 성당의 성가대(Regensburg Cathedral Choir)'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식으로 보컬 훈련을 받기 시작했으며 뮌헨의 음악 대학인 'Hochschule fur Musik und Theater Hamburg' 에 진학하여 학업을 마치게 된다. 올리버 벤트가 정식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 부터 였는데 '요르그(Jorg)'라는 이름으로 1968년 까지 총 넉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였다. 솔로로 활동하던 올리버 벤트는 카리브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3년 정도의 시간을 '세인트루시아(St. Lucia)' 섬에 머물며 아내인 '알리시아(Alicia Bendt)'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올리버 벤트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지역의 '소카(Soka: 소올과 칼립소가 융합된 음악의 일종)'와 서양의 팝 음악을 접목하여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만들 결심을 굳히게 된다.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St. Lucia)' 섬에 있는 작은 만의 이름인 'Goombay'를 딴 '굼베이 댄스 밴드'는 이렇게 하여 1979년에 탄생하게 되었다.

 

'보니 엠(Boney M)'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는 굼베이 댄스 밴드는 독일로 돌아온 올리버 벤트가 1979년에 '마이클 필립스',와 '웬디 워커', 그리고 '비버리 왈라스'를 규합하여 결성한 보컬 밴드로 데뷔 첫해인 1979년에 발표한 싱글인 'Sun of Jamaica'가 1980년에 '남아공(South Africa)'과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히트를 하였고, 이에 유럽 각국의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점령하며 레게 팝의 열풍을 몰고 오게 된다.

 

이어서 발표한 'Ring Ting Ting', 'Aloha-Oe'. 'Eldorado'등의 싱글을 계속해서 히트시킨 굼베이 댄스 밴드는 1980년에 데뷔 음반 'Land Of Gold'를 발표하여 인기를 재확인 하였다.

 

데뷔 음반은 'Moonlight Flower'라는 곡과 프로젝트 그룹 '이니그마(Enigma)'로 유명한 '마이클 크레투(Michael Cretu)'가 키보드 연주를 담당해 주었으며 나머지 파트도 밴드의 멤버들이 아닌 스튜디오 세션 뮤지션들이 담당하였다.

 

한국에서도 굼베이 댄스 밴드는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Sun Of Jamaica'를 비롯하여 'Rain', 'Seven Tears'등이 히트를 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Eldorado'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굼베이 댄스 밴드를 대표하는 곡인 동시에 디스코텍과 롤러 스케이트장의 스피커를 점령했었던 곡이었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Bob Marley - No Woman, No Cry

 

Bob Marley - No Woman, No Cry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Bob Marley, 본명: Robert Nesta Marley)는 자메이카 세인트 안(Saint Ann Parish)의 작은 마을인 나인 마일(Nine Mile)에서 영국 해병대 장교 출신의 백인 시골 농장 감독관이었던 아버지 노벌 싱클레어 말리(Norval Sinclair Marley)와 아프로-자메이칸인 어머니 세델라 부커(Cedella Booker, 본명: Cedella Malcolm) 사이에서 1945년 2월 5일에 태어났다.

 

흑인여성과 결혼함으로써 가문에서 내쳐졌던 아버지가 밥 말리가 열살이 되던 해인 1955년에 60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다. 열네살이 되던 해에 고향인 나인 마일을 떠나 킹스턴의 빈민가인 트렌치타운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며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힘든 삶을 영위하게 된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를 흑인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밥 말리는 자메이카 흑인들이 자기들의 육체와 영혼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고자 주장했던 문화 현상이자 종교인 라스타파리 운동(Rastafari Movement)의 신봉자였던 가수 조 힉스(Joe Higgs)를 만나 그로부터 작곡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성찰하며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열일곱살이 되던 해인 1962년에 지미 클리프(Jimmy Cliff)의 소개로 레슬리 콩(Leslie Kong)에게 발탁되었고, 그의 프로듀스로 데뷔 싱글 Judge Not을 발표하게 된다. 데뷔 싱글을 발표한 이듬해에 밥 말리는 틴에이저스(Teenagers)라는 이름의 보컬 그룹을 결성하였는데, 멤버로는 트렌치타운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들인 피터 토쉬(Winston Hubert Tosh, 1944년 10월 19일 자메이카 웨스트모어랜드 생, 1987년 9월 11일 킹스턴에서 사망)와 버니 웨일러(Bunny Wailer, 1947년 4월 10일 킹스턴 생), 주니어 브레이스웨이트(Junior Braithwaite, 1949년 4월 4일 생, 1999년 6월 2일 사망), 체리 스미스(Cherry Smith, 1943년 8월 생, 2008년 9월 24일 사망), 비벌리 켈소(Beverly Kelso)로 이루어졌다.

 

이후 밴드의 이름은 웨일링 루드보이스(The Wailing Rudeboys)와 웨일링 웨일러스(The Wailing Wailers)를 거쳐 최종적으로 웨일러스(The Wailers)로 바뀌게 된다. 웨일러스는 자메이카의 유명 프로듀서인 콕손 도드(Coxsone Dodd)의 지휘 아래 싱글 I'm Still Waiting 을 발표하였고 1964년 2월에는 싱글 Simmer Down 을 발표하여 자메이카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1965년 주니어 브레이스웨이트, 비벌리 켈소, 체리 스미스가 그룹을 떠나자 웨일러스는 밥 말리와 피터 토쉬, 버니 웨일러, 세명만 남게 되어 트리오로 활동을 하게 된다. 1966년 그룹이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결국 그룹은 1차 해산 하게 되고 밥 말리는 1966년 2월, 소울레츠(The Soulettes)라는 그룹의 싱어였던 리타 앤더슨(Rita Anderson)과 결혼하여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의 델라웨어(Delaware)주 윌밍턴 (Wilmington)으로 건너가서 공장 노동자로 일을 하며 지내다가 이듬해에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왔다.

 

자메이카로 돌아온 밥 말리는 웨일러스를 재결성하여 라스타파리아니즘을 전파하며 음악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1971년에 독립 레이블인 Tuff Gong을 설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1972년에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의 크리스 블랙웰(Chris Blackwell)을 만나 어렵게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1973년 웨일러스는 Catch a Fire라는 제목의 데뷔 음반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에 두번째 음반 Burnin'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의 수록 곡인 I Shot the Sheriff 을 이듬해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커버하여 탑텐에 진입시키면서 밥 말리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1973년 말 아내인 리타 앤더슨이 소속 되어 활동하고 있던 여성 3인조 보컬 그룹 The I-Threes 를 합류시켜 밥 말리 앤 웨일러스(Bob Marley & the Wailers)라는 이름으로 그룹을 정비하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순회 공연에 돌입하여 열광적인 팬들을 끌어모으게 된다. 1974년에 발표한 음반 Natty Dread 를 통해서는 싱글 No Woman, No Cry 를 히트시키며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밥 말리의 인기는 자메이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였고 이는 1976년의 암살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다행히 부상에 그쳤지만 밥 말리의 암살 시도는 그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밥 말리는 1980년의 미국 순회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당시 암 투병중이었음이 밝혀지게 된다. 이후 1981년 5월 11일 밥 말리는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Jimmy Cliff - Wonderful World, Beautiful People

 

Jimmy Cliff - Wonderful World, Beautiful People


블루 마운틴 커피의 생산국으로 유명한 나라인 자메이카 출신의 영화 감독 페리 헨젤(Perry Henzell)이 만든 영화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The Harder They Come, 1973)'의 사운드 트랙 음반과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지미 클리프(본명: James Chambers)는 1960년대 말에 시작된 자메이카의 대중음악인 레게(Reggae) 음악을 세계적으로 보급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지미 클리프(Jimmy Cliff)는 1948년 4월 1일 자메이카(Jamaica)의 세인트 캐서린(St. Catherine)에서 태어나서 십대 시절인 1962년에 가수로 성공하기 위한 꿈을 간직하고 킹스턴(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으로 가게 된다. 운이 좋아 스카(Ska, 자메이카 기원의 대중 음악으로 초기의 레게 음악) 음악인 데릭 모건(Derrick Morgan)을 만나 그의 지원으로 1962년에 Dearest Beverley 를 비롯한 두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프로듀서인 레슬리 콩(Leslie Kong)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싱글 Hurricane Hattie 를 합작하여 처음으로 히트를 하게 된다. 이 때의 만남은 1971년에 레슬리 콩이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 까지 계속 이어지며 지미 클리프와 레슬리 콩은 음악적인 합작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두 사람의 합작은 King of Kings, One Eyed Jacks, Miss Jamaica, Pride and Passion 등의 히트 곡을 연이어 생산하게 되고 1964년에 미국에서 개최된 자메이카 음악인들의 축제인 World's Fair 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 뉴욕에서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크리스 블랙웰(chris blackwell)을 만나 그의 권유로 아일랜드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영국으로 건너간 지미 클리프는 처음에는 백업 싱어로 활약하다 1967년에 데뷔 음반 Hard Road to Travel 을 발표하고 1968년 브라질에서 열린 International Song Festival 에 자메이카 대표로 참여하여 Waterfall 을 불러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Waterfall 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각국에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지미 클리프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온 지미 클리프는 1969년에 싱글 Wonderful World, Beautiful People 을 발표하였는데 이 싱글은 영국 차트에서 탑텐(6위)에 진입하고 미국에서도 빌보드 싱글 차트 25위에 랭크되며 자메이카 이외의 지역에서는 최초로 히트를 기록한 레게 음악으로 기록된다. 또한 세계적으로 레게 음악을 널리 알렸던 최초의 곡이자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지미 클리프는 밥 딜런이 Best Protest Song 이라며 극찬했던 싱글 Vietnam으로 레게 음악의 상승세를 이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