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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Journey - Faithfully

 

Journey - Faithfully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1973년에 출범한 록 밴드 '저니(Journey)'는 '산타나(Santana)'의 매니저였던 '월터 허버트(Walter 'Herbie' Herbert)'가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면서 탄생한 밴드이다. 월터 허버트는 산타나 밴드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던 '닐 숀(Neal Schon, 기타)'을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우선 낙점하고 '로스 발로리'를 포함하여 '그레그 롤리(Gregg Rolie, 키보드)', '프레어리 프린스(Prairie Prince, 드럼)', '조지 티크너(George Tickner, 리듬 기타, 리드 보컬)를 합류시켜 5인조 밴드인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m Section)'을 탄생시켰다.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밴드 결성후 지역 클럽등의 무대를 통해 공연 활동을 펼쳐 나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인 'KSAN-FM'에 출연하여 새로운 밴드 이르인 저니를 얻게 된다. 방송에 출연한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은 방송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밴드 이름을 공모하게 되었는데 '저니(Journey)'라는 이름이 많은 지지를 받게 되자 저니를 새로운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새출발을 하게 된다.

저니는 1975년에 재즈 록을 중심으로 한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 위주의 진보적인(Progressive) 음악을 구사한 데뷔 음반 'Journey'를 발표하였고 1976년에는 데뷔 음반과 비슷한 시도를 택한 두번째 음반 'Look Into the Future'를 발표하였다. 1977년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Next'까지 초기 석장의 음반들은 모두 연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니의 이러한 시도는 상업적인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결국 저니의 매니저는 밴드의 음악에 새로운 변화를 줄 시기가 되었음을 느끼고 저니의 새로운 프론트맨이자 보컬리스트로 활약하게 되는 '스티브 페리(Steve Perry)'를 영입하게 되고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드럼)를 가입시켜 드럼을 맡기게 된다. 저니는 새 멤버로 승선한 스티브 페리, 스티브 스미스와 함께 새 음반을 제작하여 1978년에 'Infinity'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이전 음반들에 비해 상업성을 고려한 세련된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Infinity'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한 'Wheel in the Sky'의 성공에 힘입어 음반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상업적 성과로 이어져 저니의 새로운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명실공히 정상의 밴드로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 저니는 이후 좀더 강력한 음악을 음반에 채워 넣게 되는데 1979년 음반 'Evolution'과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 강력해진 저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979년 음반인 'Evolution'에서는 싱글 'Lovin', Touchin', Squeezin'을 빌보드 싱글 차트 16위 까지 진출시키며 히트를 시켰고 1980년 음반 'Departure'에서는 싱글 'Any Way You Want It'을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 까지 진출시켰는데 이로 인해 앨범 차트에서도 각각 20위와 8위 까지 진출하는 히트를 하였다. 하지만 저니가 성공가도를 달려가고 있을 이 즈음에 계속되는 순회 공연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레그 롤리가 저니를 탈퇴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새로운 키보드 주자로 '조나단 케인'이 합류하게 된다.

저니의 새로운 키보드 주자인 조나단 케인의 연주가 첫선을 보인 저니의 새 음반 'Escape'는 1981년 7월 31일에 발표되었다.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진출했던 히트곡 'Open Arm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저니의 명곡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이 음반은 900만장 이상의 팔려나가는 대형 히트를 하는 동시에 앨범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며 저니의 시대를 열게 된다.

저니는 'Escape' 음반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잠시의 휴식기를 가진 후 1983년 2월 22일에 새 음반 'Frontier'를 들고 하드 록 팬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 음반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8위 까지 진출했던 세계적인 히트 곡 'Separate Ways (Worlds Apart)'를 비롯하여 싱글 차트 12위 진출 곡인 'Faithfully'와 싱글 차트 23위 진출 곡인 'After the Fall' 그리고 역시 싱글 차트에서 23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를 한 'Send Her My Love'까지 총 네 곡의 Top 40 진출 곡을 낳으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가운데 'Faithfully'는 우리나라의 록 발라드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히트 곡이 되었고 오랜기간 팝팬들의 사랑을 받는 애청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저니 (Journey) :
스티브 페리 (Steve Perry, 보컬) : 1949년 1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닐 숀 (Neal Schon, 기타) : 1954년 2월 27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로스 발로리 (Ross Valory, 베이스) : 1949년 2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조나단 케인 (Jonathan Cain, 키보드) : 1950년 2월 26일 미국 시카고 출생
스티브 스미스 (Steve Smith, 드럼) : 1954년 8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록(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ourneymusic.com/
Faithfully 감상하기 : http://youtu.be/d4xllzKfs4Y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Wishbone Ash - Everybody Needs A Friend

 

Wishbone Ash - Everybody Needs A Friend

위시본 애쉬 (Wishbone Ash) : 1973년 발표 음반 'Wishbone Four' 구성원
마틴 터너 (Martin Turner, 베이스, 보컬) : 1947년 10월 1일 영국 데번(Devon)주, 토키(Torquay) 출생
앤디 파웰 (Andy Powell, 기타) : 1950년 2월 19일 영국 런던 스테프니(Stepney) 출생
테드 터너 (Ted Turner, 기타) : 1950년 8월 2일 영국 버밍엄(Birmingham) 야들리(Yardley) 출생
스티브 업톤 (Steve Upton, 드럼) : 1946년 5월 24일 영국 웨일스(Wales) 렉섬(Wrexham) 출생

 

분류 : 하드 록(Hard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록(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wishboneash.com/


한국에서 하드 록의 명곡 'Everybody Needs A Friend'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위시본 애쉬는 트윈 리드 기타 구성으로 강력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영국의 하드 록 그룹이다. 드러머인 스티브 업톤은 1966년에 형제지간인 마틴 터너, '글렌 터너(Glen Turner, 기타)'와 함께 그룹 '엠티 베슬스(Empty Vessels)'를 결성하여 치열한 록계의 경연장에 진출하였다.

 

엠티 베슬스는 곧이어 밴드 이름을 '탱글우드(Tanglewood)'로 바꾸고 런던으로 진출하여 클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햄스테드(Hampstead) 지역의 나이트 클럽에 출연한 탱글우드를 어느날 밤 우연히 보게 된 록 매니저 '마일즈 코플랜드(Miles Copeland)'는 탱글우드의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에 영향받은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고 탱글우드의 매니저가 되어 주기로 한다.

 

이즈음 글렌 터너가 밴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탱글우드를 탈퇴하고 고향인 데번으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멤버를 물색하게 되는데 매니저인 마일즈 코플랜드는 사운드 보강을 위해 키보드 주자와 기타 주자를 함께 모집할 것을 권유하였다.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멤버를 충원하기로 한 탱글우드는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최종 두사람을 낙점하여 밴드에 합류시키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두사람 모두 기타 주자였다.

 

오디션을 통해 탱글우드에 합류한 앤디 파웰과 테드 터너(마틴 터너의 형제가 아님)로 인해 자연히 밴드의 구성은 트윈 리드 기타 체제로 출발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들로 충원된 탱글우드는 밴드 이름도 바꾸기로 하고 여러 개의 낱말들을 종이에 적어가며 적당한 이름 찾기에 골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종이에 적힌 두 단어인 'Wishbone'과 'Ash'를 합쳐서 '위시본 애쉬(Wishbone Ash)'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 멤버 모두의 동의를 거쳐 밴드 이름으로 위시본 애쉬를 확정하게 된다.

 

위시본 애쉬는 데뷔 무대에 앞서 매니저인 마일즈 코플랜드의 집에서 합숙 훈련에 들어가 음악을 다듬었고 영국의 블루스 록 그룹 '앤슬리 던바 리탤리에이션(The Aynsley Dunbar Retaliation)'의 순회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에 오르며 데뷔를 장식하게 된다. 1970년 초에는 '딥 퍼플(Deep Purple)'의 순회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게 되었는데 당시 무대에서 사운드 점검을 위한 연주를 하던 앤디 파웰의 모습을 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가 함께 연주를 해볼 것을 제의하여 두사람은 함께 기타 연주를 하게 된다.

 

앤디 파웰과의 연주 이후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의 음반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던 데렉 로렌스(Derek Lawrence)'에게 추천하여 위시본 애쉬가 '데카 음반사(Decca/MC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러한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며 찾아온 기회를 움켜잡은 위시본 애쉬는 1970년 12월에 음반 'Wishbone Ash'를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음반을 시작으로 매년 한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벌이던 위시본 애쉬는 1973년 5월 11일에 네번째 음반 'Wishbone Four'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전작인 1972년 작 'Argus'의 안정된 연주에 이어 밴드의 연주력이 최고조에 올라섰음을 알려주는 음반으로 특히 8분짜리 명곡 'Everybody Needs A Friend'는 한국에서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명곡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라디오와 음악 감상실의 스피커를 점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