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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Yazoo - Winter kills

 

Yazoo - Winter kills

야주 (Yazoo) :

앨리슨 모예 (Alison Moyet, 보컬) : 1961년 6월 18일 영국 에섹스(Essex) 빌러리케이(Billericay) 출생
빈스 클락 (Vince Clarke, 키보드) : 1960년 7월 3일 영국 런던 사우스 우드포드(South Woodford) 출생

 

분류 : 신스팝(Synth Pop), 뉴웨이브(New Wave), 팝록(Pop/Rock), 클럽댄스(Club/Dance)


뉴웨이브 음악이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영국의 신스팝 듀오 '야주'는 매력 넘치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여성 보컬리스트 앨리슨 모예와 영국의 전자 음악 그룹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에서 활동했었던 키보드 주자 빈스 클락이 결성한 듀오이다.

 

제네비브 앨리슨 제인 모예(Genevieve Alison Jane Moyet)라는 긴 이름이 본명이 앨리슨 모예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십대 시절 피아노 조율사의 보조로 일하며 피아노 조율에 대해서 배웠으며 에섹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여러 밴드를 드나들며 음악적 경력을 쌓게 된다. 이 가운데 눈의 띄는 경력으로는 록 그룹인 '반달스(The Vandals)'와 리듬 앤 블루스 밴드인 '스크리밍 앱 댑스(The Screamin' Ab Dabs)'가 있다.

 

본명이 빈센트 존 마틴(Vincent John Martin)인 빈스 클락은 어린 시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적 소양을 길러왔다. 1970년대 말 학교 친구인 앤드류 플레처(Andrew John Fletcher)와 함께 노 로망스 인 차이나(No Romance in China)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80년 밴드는 싱어인 데이브 개헌(David Gahan)을 가입시키면서 밴드 이름도 디페쉬 모드(Depeche Mode)로 바꾸고 데뷔 음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81년에 데뷔 음반 Speak and Spell 을 발표하였다.

 

디페쉬 모드의 데뷔 음반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그룹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성공적인 데뷔 음반 발표 후 빈스 클락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여 싱어인 앨리슨 모예와 함께 신스팝 듀오인 야주를 결성하였다. 듀오의 이름인 야주는 미국의 블루스, 재즈 전문 레이블인 야주 레코드(Yazoo Records)에서 따온 것으로 앨리슨 모예가 오래된 블루스 음반에 찍혀진 Yazoo Records 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듀오의 이름으로 채택하게 된다.

 

1981년, 야주는 미국의 뮤트 레코드(Mute Records)와 영국의 사이어 레코드(Sire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싱글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야주라는 밴드 이름을 법적인 문제로 미국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두 사람은 미국에서는 밴드 이름을 Yaz 로 짧게 바꾸게 된다.

 

1982년 3월 데뷔 싱글 Only You/Situation 을 발표하여 영국 차트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한 야주는 후속 곡인 싱글 Don't Go 를 7월 3일에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3위에 진출시키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게 된다. 연이은 싱글의 성공에 이어진 데뷔 음반 Upstairs At Eric's 를 1982년 8월 23일에 발표하여 영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히트를 하게 된다.

 

야주의 데뷔 음반에 수록된 Don't Go 는 한국에서도 라디오 신청곡 순위의 상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1980년대에 유행했던 디스코텍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야주의 데뷔 음반에서 가장 멋진 곡은 앨리슨 모예가 블루스에 기반한 멋진 음색을 들려주는 명곡 Winter kills 이며 음반의 백미로 꼽을수 있는 곡이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초겨울의 새벽에 듣는 Winter kills 의 마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느낌으로 듣는 이를 만족시킬 것이다.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Men Without Hats - The Safety Dance

 

Men Without Hats - The Safety Dance

맨 위다웃 햇츠 (Men Without Hats) :

이반 도로슈크 (Ivan Doroschuk, 보컬) : 미국 일리노이(Illinois) 출생
스테판 도로슈크 (Stefan Doroschuk, 기타) :
콜린 도로슈크 (Colin Doroschuk, 키보드) :
알란 맥카시 (Allan McCarthy, 드럼) : 1957년 7월 11일 캐다다 몬트리올 출생, 1995년 8월 11일 사망

 

분류 : 뉴웨이브(New Wave), 신스팝(Synth Pop), 펑크(Punk), 팝록(Pop/Rock)


1980년대의 음악계를 지배했던 뉴웨이브 음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뉴웨이브 그룹들이 남긴 수많은 명곡들은 여전히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그 가운데 뉴웨이브 신스팝 그룹 맨 위다웃 햇츠가 남기고 간 명곡 'The Safety Dance' 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넘실대는 흥겨움과 경쾌한 박자로 늘 친근하게 다가오는 곡이다.

 

맨 위다웃 햇츠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을 아버지로 둔 이반 도로슈크와 그의 형제들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그룹의 맏형인 이반 도로슈크는 미국의 일리노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함에 따라 캐나다에서 성장하게 된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반 도로슈크와 형제들은 어린시절 부터 음악과 친근하게 지냈으며 자연스레 가수로 성공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이반과 그의 두 동생들인 스테판과 콜린은 몬트리올의 프랑스 계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된다. 1976년, 이반은 학교 친구인 제레미 아로바스(Jeremy Arrobas)와 두 동생들과 함께 'Wave 21'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 밴드는 몇번의 멤버 교체를 거치며 기틀을 잡아가다 1980년에 이르러 이반 도로슈크와 제레미 아로바스, 그리고 스테판 도로슈크와 로만 마틴(Roman Martyn, 기타)을 멤버로 하여 데뷔 EP인 'Folk of the 80's'를 발표하며 공식적인 프로 밴드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밴드는 데뷔 미니 음반을 발표한 후 로만 마틴이 그룹을 탈퇴하게 되어 장 마크 피사피아(Jean-Marc Pisapia, 기타)를 가입시켜 활동을 지속해 나가게 된다. 1982년에는 제레미 아로바스가 장 마크 피사피아와 함께 새 밴드인 '더 박스(The Box)' 결성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게 되자 이반은 동생인 콜린 도로슈크와 드러머인 알란 맥카시를 가입시켜 밴드를 정비하고 데뷔 음반 Rhythm of Youth 를 발표하였다.

 

멤버 교체로 어수선한 가운데서 발표된 데뷔 음반 Rhythm of Youth 는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첫번째 싱글로 발매된 The Safety Dance 가 차트에서 수직 상승하여 영국에서 싱글 차트 6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3위 까지 오르는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다.

 

즐겨보는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의 6시즌 7화 'Known Unknowns' 를 무심코 보다 1980년대 의상을 입고 파티를 하는 장면에서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경쾌한 The Safety Dance 를 듣는 순간의 반가움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일 것이다.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Culture Club -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Culture Club -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컬처 클럽 (Culture Club) :

보이 조지(Boy George, 보컬) : 본명 George Alan O'Dowd, 1961년 6월 14일 영국 벡슬리 출생
미키 크레이그(Mikey Craig, 베이스) : 본명 Michael Emile Craig, 1960년 2월 15일 영국 런던 출생
존 모스(Jon Moss, 드럼) : 본명 Jonathan Aubrey Moss, 1957년 9월 11일 영국 완즈워스 출생
로이 헤이(Roy Hay, 기타) : 본명 Roy Ernest Hay, 1961년 8월 12일 영국 에섹스(Essex) 출생


뉴 웨이브 음악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던 여장 남성 보이 조지가 이끌었던 그룹인 컬처 클럽은 1981년에 결성되었다. 영국 벡슬리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보이 조지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성장하였음을 알수 있는데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의 반항아적인 기질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십대 시절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특이한 차림새를 하고 다니며 내재된 패션 감각을 뽐내고 다녔고 머리 또한 오렌지 색으로 염색하고 다녔었다. 이러한 특이한 차림새는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결국 열네살이 되던 해에 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당하게 된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보이 조지는 런던의 클럽가를 기웃거리는 동시에 의상점의 점원으로 취직하여 일을 시작하게 된다. 출퇴근시 보이 조지는 튀는 의상으로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가끔은 이러한 보이 조지의 특이한 옷 차림으로 말미암아 잡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게 하여 잡지에 보이 조지의 사진이 실리기도 하였다. 이런 특이한 보이 조지를 눈여겨 보았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를 길러낸 펑크 계의 대부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은 어느 날, 보이 조지에게 음악을 해볼 것을 권유하여 보이 조지는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 라는 이름의 뉴웨이브 밴드에 객원 싱어로 참여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바우 와우 와우에는 애너벨라 르윈(Annabella Lwin)이라는 어린 소녀가 리드 보컬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보이 조지는 그녀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발생하게 되어 그룹을 탈퇴하여 자신의 주도하에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베이스 주자인 미키 크레이그와 함께 인 프레이즈 오브 레밍스(In Praise of Lemmings)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사운드의 보강을 위하여 기타리스트인 존 스웨이드(John Suede)를 가입시키면서 밴드 이름도 Sex Gang Children으로 바꾸게 된다. 드러머를 물색하던 중 Adam & the Ants 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존 모스를 만나 밴드에 합류시키면서 마침내 완전한 밴드의 구성을 마치게 된다.

 

1981년, 존 스웨이드가 밴드를 떠나자 Russian Bouquet 이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하던 로이 헤이를 가입시키고 밴드 이름을 컬처 클럽으로 바꾸었다. 밴드를 정비한 컬처 클럽은 데모 테입을 제작하여 EMI 로 보냈으나 거절당하여 버진 레코드(Virgin Records)에 데모 테입을 보내어 1982년 초에 버진 레코드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1982년 말, 컬처 클럽은 데뷔 음반 Kissing to Be Clever 를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매된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가 세계 각국의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고 미국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컬처 클럽을 데뷔 첫해에 슈퍼 그룹으로 자리하게 된다. 또한 컬처 클럽의 데뷔 음반은 영국에서 음반 차트 5위에, 미국에서는 음반 차트 14위에 랭크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과 거의 동시에 실시간으로 히트 곡이 알려지던 팝 음악의 전성기였고 컬처 클럽의 음악 또한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히트를 하게 된다.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Thomas Dolby - She Blinded Me With Science

 

Thomas Dolby - She Blinded Me With Science

토마스 돌비(Thomas Dolby) : 본명은 Thomas Morgan Robertson, 1958년 10월 14일 영국 런던 출생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의 교수인 마틴 로버트슨(Martin Robertson)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스 돌비는 이집트(Egypt) 카이로(Cairo)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80년대의 영국 신문에는 영국 런던 태생으로 소개 되었다.

 

그리스 예술사를 연구하던 아버지를 따라서 어린 시절을 그리스와 프랑스에서 보낸 토마스 돌비는 영국으로 돌아와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기타와 피아노 등의 악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토마스 돌비는 기상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곧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음악 장비 제작에 몰두하여 신시사이저(Synthesizers)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함께 기타와 피아노 등을 배우는 그를 보고 친구들은 돌비(Dolby) 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결국 이 애칭은 후일 무대 위에서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음향 장비와 악기로 씨름을 하던 어느날, 그에게 포스트 펑크(Post-Punk)그룹 The Fall 과 The Passions 에서 음향 장비를 담당해줄 것을 제의해 그들의 투어에 음향 기술자로 참여하게 된다. 토마스 돌비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PA System(산업용 음향기기)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79년, 토마스 돌비는 후일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버글스(Buggles)의 두사람 트레버혼(Trevor Horn)과 제프 다운스(Geoff Downes), 그리고 브루스 울리(Bruce Woolley), 매튜 셀리그먼(Matthew Seligman) 등과 함께 포스트 펑크 그룹 카메라 클럽(Camera Club)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룹은 실패로 돌아갔고 토마스 돌비는 그룹을 탈퇴하여 펑크 음악을 밀어내고 막 부상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장르인 뉴 웨이브(New Wave) 음악을 시도하던 여성 가수 르네 로비치(Lene Lovich)의 백 밴드에 합류하였으며, 트레버 혼(Trevor Horn)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예스(Yes)를 거쳐 뉴웨이브 연주 그룹 아트 오브 노이즈(Art of Noise)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되고, 제프 다운스(Geoff Downes)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예스(Yes)와 아시아(Asia)에서 건반을 담당하게 된다.

 

1981년, 토마스 돌비는 자신이 만든 독립 레이블에서 싱글 Urges를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하였고, 그해 가을에 팔로폰(Parlophone) 레이블과 계약하고 싱글 Europa and the Pirate Twins 를 발표하여 영국 차트 40위권에 랭크시키게 된다. 데뷔 음반을 준비하던 중, 하드 록 그룹 포리너(Foreigner)의 1981년 음반 '4'에 키보드 세션을 해주게 되는데 명곡 Urgent 와 Waiting for a Girl Like You 에서 키보드를 담당하여 히트를 기록하였다. 특히 Waiting for a Girl Like You 의 몽환적인 키보드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토마스 돌비는 자신의 솔로 음반에 이러한 연주 기법을 도입하여 1982년 여름에 데뷔 음반 The Golden Age of Wireless 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영국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미국에서는 1983년 1월에 발매된 싱글 She Blinded Me with Science가 빌보드 싱글 차트 5위 까지 오르며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토마스 돌비의 음반은 재발매가 되며 주목 받았고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데뷔 음반 발표 후 토마스 돌비는 헤비메탈 그룹  데프 레퍼드(Def Leppard)의 1983년 음반 Pyromania 에 키보드 세션을 해주는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신스 팝(Synth Pop)의 명곡 She Blinded Me with Science 는 지킬 박사를 연상시키는 뮤직 비디오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Men At Work - Down Under

 

Men At Work - Down Under

'호주(오스트레일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축구를 약간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대표팀을 이끌었던 핌 베어벡 현 호주 국가 대표 축구팀 감독이 생각날수도 있을 것이고, 정치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회란 항상 국민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생각에 따라 국회 의사당의 지붕에 잔디를 심어 국민들이 국회 의사당을 밟고 다니게 만든 호주 국회 의사당이 생각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아마도 오페라 하우스, Olivia Newton John, Air Supply, AC/DC, Little River Band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겠지만 맨 앳 워크(Men At Work)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호주의 대표적인 뉴웨이브 그룹 맨 앳 워크는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14세에 호주로 이민을 온 그룹의 리더 콜린 헤이(Colin Hay, 보컬, 기타)로 부터 시작되었다.

콜린 헤이는 1978년에 기타리스트 론 스트리커트(Ron Strykert)와 함께 어쿠스틱 기타 듀오를 결성하여 멜버른(Melbourne)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듀오 결성 몇달 후인 1979년에 두사람은 정식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존 리스(John Rees, 베이스), 제리 스피이서(Jerry Speiser, 드럼), 그렉 햄(Greg Ham, 키보드, 색소폰), 세사람을 추가로 영입하여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그룹 이름을 두고 고심하던 멤버들은 우연히 건물 공사장에 세워진 공사 중(Men At Work)이라는 입간판을 보고 힌트를 얻어 그룹 이름을 맨 앳 워크로 짓고 선술집(Cricketers Arms Pub), 호텔 바 등의 무대를 돌며 연주 활동 경험을 쌓아나가게 된다. 약 2년여간의 활동으로 맨 앳 워크는 제법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마침내 1981년 초에 CBS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하게 되어 메이저 데뷔싱글 Who Can It Be Now? 를 발표하게 된다.

맨 앳 워크의 데뷔 싱글은 1981년 9월, 호주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고 1980년에 Keypunch Operator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자주 제작 싱글을 새롭게 다듬어 Down Under 라는 제목으로 두번째 싱글을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에 이어 두번째 싱글인 Down Under 역시 호주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히트를 기록하게 되어 데뷔 음반을 발매하기도 전에 맨 앳 워크는 이미 톱 그룹으로 대접받게 된다.

1982년 봄 마침내 대망의 데뷔 음반 Business As Usual 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미 이들의 인기는 절정에 올라 단숨에 호주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뉴질랜드에서도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은 멀리 유럽과 캐나다를 거쳐 미국 시장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하여 맨 앳 워크의 음반이 발매되기에 이른다.

미국에서 발매된 싱글 Who Can It Be Now? 는 1982년 10월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두번째로 발표한 싱글인 Down Under 역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호주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데뷔 음반 Business As Usual 은 15주 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우뚝서게 된다.

또한 2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호주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최고 신인상(Best New Artist)까지 수상하며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2009년 7월 17일 금요일

The Cars - Shake It Up


The Cars - Shake It Up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하자마자 고속질주하여 인기 정상의 뉴웨이브 그룹으로 자리잡은 보스턴 출신의 5인조 밴드 카스(The Cars)는 미국을 대표하는 뉴웨이브 1세대 팝록 그룹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음악에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펑크 음악, 그리고 전위적인 요소들 까지 포함되어 있어 감성을 자극하는 록 발라드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미국에서의 엄청난 인기 행진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몇곡을 제외하고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던 그룹이기도 하다.

그룹의 결성은 카스의 결성 이전 부터 친구 사이였던 릭 오케이섹(Ric Ocasek, 보컬, 기타, 1949년 3월 27일 생)과 벤자민 오어(Benjamin Orr, 보컬, 베이스, 1947년 9월 8일 생), 두사람으로 부터 시작 되었다. 열살때 부터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기 시작했던 릭 오케이섹은 오하이오 주의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를 다니던 중, 학교를 중퇴하고 프로 뮤지션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십대 시절 자신의 하우스 밴드를 이끌고 TV 에 출연하기도 했던 벤자민 오어는 클리블랜드(Cleveland)에서 세션 연주와 프로듀서일을 하던 중, 릭 오케이섹을 만나게 되었고 두사람은 뉴욕, 우드스탁(Woodstock), 앤아버(Ann Arbor) 등의 지역을 함께 여행하며 생활하다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Massachusetts,Cambridge)에 정착하게 된다.

1972년 두사람은 포크트리오 Milkwood 의 멤버로 참가하여 파라마운트(Paramount Records)에서 음반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 그레그 호크스(Greg Hawkes, 키보드)가 세션 키보드 연주자로 참가하였다. 음반 발매 후 그레그 호크스는 소프트 록 밴드 Orphan 과 영화 배우 마틴 멀(Martin Mull)이 이끄는 Martin Mull & His Fabulous Furniture 등에 참가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되고 릭 오케이섹과 벤자민 오어는 자신들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1974년 그룹 Cap'n Swing 을 결성한 두사람은 엘리엇 이스튼(Elliot Easton, 리드 기타)을 영입하여 보스턴 일원에서 공연을 하며 지명도를 넓혀가지만 음반 계약에 실패하여 1975년에 이르러 자연히 그룹의 존속이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릭 오케이섹과 벤자민 오어는 1976년에 새로운 그룹 카스(The Cars)를 출범시키게 되는데 여기에는 록 그룹 Modern Lovers 와 DMZ 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데이브 로빈슨(Dave Robinson, 드럼)과 엘리엇 이스튼, 그리고 그레그 호크스가 합류하여 5인조의 완전한 카스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룹 결성 후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Just What I Needed 를 포함한 몇곡이 수록된 데모 테입을 만들어 내게 되고 이후 Just What I Needed 는 보스턴의 라디오 방송(WBCN)에서 신청곡 순위 1위를 차지하며 그룹 카스에게 엘렉트라(Elektr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게 만들어 준다.

1978년 카스는 데뷔 앨범 The Cars 를 발표하였는데, 첫번째 싱글로 발매된 Just What I Needed (27위)를 비롯하여 My Best Friend’s Girl (35위)과 Good Times Roll (41위)등 세곡을 히트시키며 앨범 차트 18위를 기록했고 상당기간(139주) 앨범차트에 머무르게 된다.

데뷔 앨범 발매 후 발표한 두장의 후속 앨범들은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였고 1981년에 발표한 음반 Shake It Up 에서 타이틀 트랙을 처음으로 탑텐에 진출시키며 한국에도 카스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한편 창단 멤버인 벤자민 오어는 2000년 10월 3일 투병 중인 암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