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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Metallica - Nothing Else Matters

 

Metallica - Nothing Else Matters

메탈리카 (Metallica) :

제임스 헷필드 (James Hetfield, 보컬, 기타) : 1963년 8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다우니(Downey) 출생
커크 해밋 (Kirk Hammett, 기타) : 1962년 11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출생
제이슨 뉴스테드 (Jason Newsted, 베이스) : 1963년 3월 4일 미국 미시건 배틀크리크 출생
라스 울리히 (Lars Ulrich, 드럼) : 1963년 12월 26일 덴마크(Denmark) 겐토프테(Gentofte) 출생

 

분류 : 헤비메탈(Heavy Metal), 스피드메탈(Speed Metal), 트래쉬 메탈(Thrash Metal)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화려한 성공은 덴마크에서 건너온 라스 울리히라는 한 청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라스 울리히의 아버지인 토벤 울리히(Torben Ulrich)는 1940년대 부터 덴마크에서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또한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면서 틈만나면 재즈 음악을 즐겨 연주하기도 하였는데 재즈의 거장들인 스탄 게츠(Stan Getz)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같은 음악인들의 곡을 자주 연주하였다.

 

음악인을 꿈꾸며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스 울리히는 어린 시절 부터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고 아버지는 라스 울리히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테니스 선수가 되어 주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1973년의 어느날 토벤 울리히는 아들 라스를 데리고 딥 퍼플(Deep Purple)의 코펜하겐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는데 이 공연이 끝난 후 라스 울리히는 록 음악에 빠져 들게 되었고 록 스타의 꿈을 키우게 된다.

 

라스 울리히가 열두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로 부터 드럼 키트를 선물받았으며 이때부터 테니스 보다는 음악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1981년 가족과 함께 미국 L.A 로 이주한 라스 울리히는 1980년에 'Lightning To The Nations That' 이라는 음반으로 데뷔한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에 반해버리게 된다.

 

다이아몬드 헤드의 음악에 빠져버린 라스 울리히는 다이아몬드 헤드의 샌프란시스코 공연과 런던 공연에 따라 다니며 헤비메탈 음악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고, 결국 같은 해 L.A의 지역 신문인 The Recycler 에 'Diamond Head'나 'Iron Maiden' 같은 헤비메탈 음악을 함께 연주할 멤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싣게 된다.

 

이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온 인물들이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레더 참(Leather Charm)에서 활동했던 휴 태너(Hugh Tanner, 기타)와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 보컬, 리듬 기타)였다. 당시 라스 울리히는 Metal Blade Records 와 싱글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는데 광고를 보고 찾아온 두사람 중 제임스 헷필드에게 밴드의 보컬과 기타를 맡기기로 하였다.

 

멤버 모집을 통해 팀을 만들어가던 라스 울리히에게 친구인 론 킨타나(Ron Quintana)가 밴드의 이름으로 Metal Mania 와 Metallica 를 제안하였고 라스 울리히는 메탈리카를 자신이 만들 밴드의 이름으로 채택하게 된다. 메탈리카의 세번째 구성원은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인물은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이었다. 불완전한 멤버 구성으로 메탈리카는 1982년에 싱글 Hit the Lights 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이 곡에서 제임스 헷필드는 베이스를 연주했으며 기타에는 로이드 그랜트(Lloyd Grant)가 세션으로 참가하였다.

 

1982년 3월 14일, 론 맥거브니(Ron McGovney)를 베이스주자로 임시로 고용한 메탈리카는 애너하임(Anaheim)의 라디오 쇼에 출연하여 공식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데뷔후 베이스주자를 물색하던 메탈리카는 Whisky a Go Go 클럽에 출연중이던 밴드 트라우마(Trauma)의 베이스 주자인 클리프 버튼(Cliff Burton)의 연주 실력에 감탄하여 그를 밴드에 가입시키면서 비로소 메탈리카는 완전한 4인 체제의 그룹으로 출발하게 된다.

 

완전한 진용을 갖춘 메탈리카는 라이브 공연을 통한 활동과 데모 테이프 제작 등을 하며 데뷔 음반 준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브 머스테인이 음주와 마약 문제로 해고되고 그를 대신하여 메탈 밴드 엑소더스(Exodus)의 커크 해밋을 기용하여 밴드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한편 메탈리카에서 해고된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가데스(Megadeth)를 결성하게 된다.

 

1983년 메탈리카는 마침내 데뷔 음반 Kill ’Em All 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트래쉬 메탈(Thrash Metal) 이라고 불리게 되는 헤비메탈 음악의 초석을 다져 나가게 된다. 1986년에는 세번째 음반 Master of Puppets 을 발표하여 정상의 그룹으로 도약하게 되지만 9월 27일에 유럽 투어 도중 멤버들이 타고 가던 버스의 교통사고로 베이스 주자인 클리프 버튼이 사망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제이슨 뉴스테드가 오디션을 통해 메탈리카의 새 베이스주자로 가담하게 된다.

 

1991년 메탈리카는 검은 색으로 포장된 새 음반 Metallica 를 발표하였는데 음반 커버의 검은 색으로 말미암아 블랙 앨범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음반 부터 메탈리카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블랙앨범은 미국에서 Billboard 200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고 영국 앨범 차트 1위, 호주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메탈 밴드로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된다.

 

블랙 앨범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Enter Sandman', 'Nothing Else Matters' 등을 히트시키게 된다.

 

 

2009년 8월 3일 월요일

Black Sabbath - She's Gone

 

Black Sabbath - She's Gone

영국의 헤비메탈 그룹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는 사악한 목적을 가진, 반사회적이고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술법인 흑마술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한 초자연적 현상인 오컬트(Occult)를 록 음악에 접목하여 헤비메탈 음악의 융성기(隆盛期)를 주도했던 그룹이다.

 

블랙 사바스의 기타주자인 앤소니 토니 아이오미(Anthony "Tony" Iommi)는 이탈리아계 영국인으로 1948년 2월 19일 영국 버밍엄(Birmingham) 애스톤(Aston)의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토니는 열다섯살 무렵부터 버디 홀리(Buddy Holly)등 유명한 연주자들의 노래를 기타로 연습하며 기타 연주자로써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 출신 집안의 아들인 토니는 10대 시절 공장에서 일을 하여야 했었고 그런 가운데 어느날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오른손이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의 첫 마디를 잘리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소원했던 토니의 꿈은 그렇게 신체적 장애로 인한 포기와 체념으로 이어졌으나 벨기에 출신의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 쟝고 라인하르트(Django Rheinhardt)가 단지 두개의 손가락만을 이용하여 기타 연주를 하는 것을 보고 잘려진 손가락 끝에 골무를 씌우고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로 전향하게 된다.

 

1968년, 그룹 가입을 원한다는 광고를 애스톤 지역 신문에 내었던 토니는 광고를 본, 드러머 빌 워드(William "Bill" Ward, 드럼, 1948년 5월 5일 생)의 전화를 받고 헤비 블루스 밴드인 Mythology 에 가입하게 된다. 토니와 빌이 같은 그룹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할 무렵 오지 오스본(John "Ozzy" Osbourne, 보컬, 1948년 12월 3일 생) 과 베이스 주자 기저 버틀러(Terence "Geezer" Butler, 베이스, 1949년 7월 17일 생)도 Rare Breed 라는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토니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스로 툴(Jethro Tull)에서 객원 기타리스트로 병행 활동하고 있었다.

 

두 그룹에서 활동하던 네 사람은 오지가 애스톤에서 운영하던 악보 전문점 Ozzy Zig 에서 자주 어울렸고 결국 이들은 The Polka Tulk Blues Company 라는 긴 이름의 새로운 블루스 록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이 긴 이름은 짧게 Polka Tulka 로 바뀌었고 애스톤 지역의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그룹 이름을 Earth 로 고치게 된다.

 

지역 클럽에서 활동하던 Earth 는 덴마크와 독일로 연주 여행을 떠나 소규모의 순화 공연들을 통해 연주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1969년 제스로 툴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토니와 멤버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블랙 사바스 라는 이름으로 Phillips Records 와 음반 계약을 맺고 1970년에 필립스 산하의 Vertigo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Earth 가 블랙 사바스 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것은 당시 애스톤 지역에 같은 이름의 그룹이 있었고 그들이 이미 Earth 라는 그룹 이름으로 싱글 음반을 먼저 발매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1963년에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가 출연한 공포 영화 Black Sabbath 의 제목을 가져와서 그룹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블랙 사바스는 1976년 10월, 앨범 Technical Ecstasy 를 발표하여 이전까지 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음악을 들려주게 되면서 블랙 사바스가 표류하고 있다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지만 한국에서는 음반의 일곱번째 수록 곡인 She's Gone 이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또한 록 음악을 좋아하면서 She's Gone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 곡은 인기를 얻게 되고 블랙 사바스의 대표곡으로 여겨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