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1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4


2. 산적들의 어떤 대화

"식사하세요!"
성수의가 주방의 보조 숙수중 하나인 왕삼이 한손에는 국자를 들고 한손으로는 징을 울려대며 커다랗게 외치는 모습에 눈길을 주던 설지는 이내 반색을 하며 호아와 백아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초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신나는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우와! 밥 시간이다. 호아, 백아 밥 먹으러 가자."

그러면서 설지는 초아를 향해 마치 끌어 안을듯이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초아! 이리와."
그러자 초아라고 불린 까까머리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던 소동자는 설지와 마찬가지로 양팔을 벌리며 설지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초아의 모습이 흐릿해 지며 줄어드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좀전에 교혜린이 설지의 앞 가슴에 달아준 들꽃 옆에 풀 뿌리 모양의 작은 삼이 하나 장신구 처럼 예쁘게 붙어 있었다.

"저, 저..."
설지와 초아의 이런 모습을 본 반응은 두가지로 나타났다. 녹림에서 온 산적떼들은 자주 봐 왔다는 듯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그저 그러려니 하는 인상들이었지만 소림사에서 온 무승들은 놀란 표정들이 얼굴에 확연히 떠오르고 있었다. 만년삼왕이라고 해서 특별한 능력이 있을 줄은 사전에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저렇게 작은 풀뿌리로 변해 설지의 가슴팍에 달라 붙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승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초아를 갈무리 한 설지는 호아와 백아와 함께 요란하게 성수의가의 식당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듯이.... 우당탕 거리며 식당으로 달려 들어온 설지는 식당의 가운데 쯤에 마련된 탁자로 가서 의자 하나를 빼내고 거기에 앉기가 무섭게 주방을 향하여 외쳐 대기 시작했다.
"밥줘! 밥줘!"

뒤를 이어 장총관의 안내로 식당에 들어온 나운학을 비롯한 일행들이 설지의 좌우로 나눠 앉는 것과 동시에 주방으로 부터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왕삼을 필두로 주방의 일꾼들 손에 들려 나오는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랗고 둥그런 쟁반 위에는 밥과 함께 여러가지 정갈한 나물들을 중심으로 차려진 맛깔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왕삼의 쟁반에 놓여 있는 커다란 구운 오리 두마리였다.

왕삼은 쟁반을 일행들, 특히 설지 쪽으로 들고 와서는 설지에게 먼저 밥과 반찬들을 내려 놓고 그 옆으로 구운 오리 한마리씩을 내려 놓았다. 이미 탁자 위로 올라와 점잖게 앉아 있던 두마리 백호의 앞에 놓여진 그 오리구이는 바로 호아와 백아를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일행들 모두의 앞에는 빠르게 밥과 반찬들이 내려 지고 있었으며 얼마지나지 않아 모두의 앞에 음식이 차려진 것을 확인한 나운학은 좌우를 돌아보며 식사를 권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들 드십시오."

나운학의 말이 끝나자 마자 한쪽에 있던 설지와 호아, 그리고 백아는 치열한 싸움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생존을 위한 전쟁, 먹고 살아 남기 위한 전쟁을... 마치 전쟁터에 선 병사들과도 같은 치열한 설지와 호아, 백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그린 일행들도 그 모습에 동요된 듯 서둘러 전쟁에 참여하였고 짧은 시간에 전투는 마무리 되고 말았다.

식사 시간이 끝나자 성수의가의 식솔들은 내일 아침 출발할 성수의가의 하남출행에 대비해 짐을 꾸리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성수의가는 2년마다 한번씩 중원 각성 중 한 성을 방문해 환자들을 돌보는 동시에 각 지역 의원들간의 의술 교류를 위해 중원출행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그 순서가 하남성이었다. 매2년마다 행해지는 성수의가의 중원출행에는 언제부터인가 녹림의 식구들이 의가의 장비와 약재, 그리고 식자재를 비롯한 모든 필수품들의 운송을 책임지기 시작했고 소림에서는 무승들을 보내 의가의 식솔들에 대한 호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런 전통에 따라 올해 성수의가의 중원출행에 함께 나서게 된 녹림의 산적떼인 녹림 이십사절객과 소림의 무승들인 십팔나한은 출행 이전에 할일이 달리 없었기에 식사를 마친 후 포만감을 느끼며 의가의 담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의 시원한 그늘 아래 모여 쓸데없는 잡담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다란 웃음 소리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워 하던 산적떼 중에서 다른 산적들에 비해 조금 어려 보이는 산적 하나가 아까 설지와 인사를 나누었던 사내를 바라보며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엽대형!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어린 산적에게 엽대형이라고 불린 사내는 바로 녹림 이십사절객의 대형인 엽정으로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의 오른팔이자 의동생으로 철무륵이 가장 신임하는 사내였다. 지닌바 무공 수위가 철무륵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으며 철무륵과 함께 호탕하기로 유명한 녹림의 또 다른 호걸이었다.
"응? 뭐가 궁금한데? 마음 놓고 물어봐. 오늘 이 대형이 너희들의 궁금함을 시원하게 풀어주마. 하하하"
"예. 엽대형! 다른게 아니라 소공녀와 영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요."
"하하하. 그렇구나. 우리 막내는 귀주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자세한 내막을 모르겠구나. 그래 그래. 내 알려주지."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장내를 둘러본 엽정은 산적들의 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던 소림의 십팔나한들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걸었다.
"스님들도 궁금하실테니 이리 오시구려. 불제자라고 해도 궁금한 것은 풀어야 할터, 이리 오셔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눕시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 한동안 동고동락 해야 할 처지이니."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아까 부터 이쪽으로 잔뜩 신경을 쓰고 있던 소림의 무승들은 엽정의 말에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녹림 이십사절객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와 사이사이 끼어 앉기 시작하였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자리를 잡은 십팔나한과 녹림 이십사절객은 이제 엽정의 입을 향해 모두가 시선을 주며 그가 꺼집어 내어 놓을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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