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뉴에이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뉴에이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7월 16일 금요일

Enya - Orinoco Flow

 

Enya - Orinoco Flow

아일랜드 가수 '엔야(Enya Brennan)'는 도니걸(County Donegal)주 귀도어(Gweedore)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부터 밴드 생활을 했던 음악인 가정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리오 브래넌(Leo Brennan)'도 '슬리브 포이 밴드(Slieve Foy Band)'라는 밴드를 이끌고 식당과 선술집을 겸하고 있던 자신의 식당 '리오스 타번(Leo's Tavern)'에서 공연을 벌이던 음악인이었다. 엔야의 어머니는 댄스 밴드에서 활동하다 '포발스코일 그웨 돕헤어(Pobalscoil Ghaoth Dobhair)'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음악교사였었다.

이러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녀들 모두 태어날 때 부터 음악에 관한 재능을 부여받았으며 음악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는데, '폴 브래넌(Pol Brennan')을 비롯한 엔야의 네명의 오빠들과 '모야 브레넌(Moya Brennan)'을 비롯한 네명의 언니들은 1968년 부터 '안 클랜 애즈 도바(An Clann As Dobhar)'라는 이름의 포크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1970년에 우리가 아는 '클라나드(Clannad)'로 밴드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엔야는 어린 시절에 귀도어 지역의 극장 무대에서 활동하던 '안 클랜 애즈 도바'의 일원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재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또한 오빠, 언니들과 함께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적 기틀을 다졌다. 도니걸 지역에서 고교를 졸업한 엔야는 대학에 진학하여 피아노와 회화 공부를 하는 한편으로 대학 신입생 시절인 1980년에 가족 밴드인 클라나드에 키보드 주자 겸 백 보컬로 가입하여 그해에 발표된 클라나드의 음반 'Crann Ull'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클라나다의 멤버로 음악계에 정식으로 데뷔한 엔야는 2년후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게 되는데, 이때 만나게 되는 인물이 프로듀서이자 매니저로 엔야와 오랜 기간 함께 하게 되는 '니키 라이언(Nicky Ryan)'이었다. 니키 라이언과 그의 부인이자 작사가인 '로마 라이언(Roma Ryan)'과 함께 엔야는 솔로 음반 계약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1984년 영화 '개구리 왕자(The Frog Prince)'의 사운드트랙에 메인 테마 곡인 'The Frog Prince' 와 'Dreams'를 수록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1986년에는 영국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The Celts'에 사용될 음악을 맡게 되었으며 이때 사용했던 곡들이 1987년에 'Enya'라는 이름의 음반으로 BBC를 통해서 발매되면서 엔야의 공식 데뷔 음반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음악 작업 후 엔야는 1987년 11월에 발표된 같은 아일랜드 출신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의 데뷔 음반 'The Lion and the Cobra'에 찬조 출연하여 수록 곡 'Never Get Old'의 도입부에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1988년에는 'WEA'와 음반 계약을 하고 두번째 음반을 준비하여 그해 9월에 엔야의 두번째 음반이 'Watermark'라는 제목을 달고 공개되었다. 이 음반에서 첫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 바로 그 유명한 'Orinoco Flow'였다. 이 곡은 영국에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스위스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유럽 전역으로 엔야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이 곡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도 진입하여 24위 까지 오르게 되었고 엔야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가수가 된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계에 있는 파리마 산맥에서 발원하여 남아메리카 북부를 도도히 관통한 후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오리노코 강의 모습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표현한 'Orinoco Flow'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애청 곡이며 엔야를 대표하는 곡이다.

엔야 (Enya) : 1961년 5월 17일 아일랜드 귀도어 출생

갈래 : 뉴에이지(New Age), 팝 록(Pop/Rock), 켈틱(Celtic)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nya.com/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Enigma - Sadeness (Part I)

 

Enigma - Sadeness (Part I)

이니그마 (Enigma) :
마이클 크레투 (Michael Cretu, 보컬) : 1957년 5월 18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Bucharest) 출생
산드라 크레투 (Sandra Cretu, 리드 보컬) : 1962년 5월 18일 독일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 출생
루이자 스탠리 (Louisa Stanley. 보컬) :
데이빗 페어슈타인 (David Fairstein, 작사) :
프랭크 피터슨 (Frank Peterson, 샘플링) : 1963년 12월 20일 독일 함부르크(Hamburg) 출생

 

분류 : 일렉트로닉(Electronic), 뉴 에이지(New Age), 앰비언트(Ambient)
공식 웹 사이트 : http://enigmaspace.com/


1979년 'Moon, Light & Flowers'라는 음반으로 독일에서 데뷔한 루마니아 출신의 '마이클 크레투(본명: Mihai Cretu)'는 1983년에 두번째 음반 'Legionare'를 발표하였고 1985년에는 세번째 음반 'Die Chinesische Mauer'를 발표하였다. '만리장성'이라는 뜻의 세번째 음반은 'The Invisible Man'이라는 제목을 달고 영어 음반으로도 발매가 이루어졌으며 수록 곡 가운데 'Samurai'가 약간의 히트를 했을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마이클 크레투는 솔로 활동과는 별개로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만들어주거나 음반 제작을 해주면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활동들을 살펴보면 4인조 팝 그룹 '휴베르트 카(Hubert Kah)'에게 곡을 만들어 준 것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마이클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음반 'Islands'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였으며 '피터 실링(Peter Schilling)'의 1989년 음반 'The Different Story (World of Lust and Crime)'의 제작에 프로듀서로써 참여하여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1988년 1월 7일, 마이클 크레투는 독일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가수인 '산드라 크레투(본명: Sandra Ann Lauer)'와 결혼하였다. 산드라 크레투는 'Hello Mr. Monky' 라는 곡으로 유명한 댄스 그룹 '아라베스크(Arabesque)'의 보컬로 활동했던 여성으로 아라베스크의 순회 공연에서 마이클 크레투가 건반 악기를 담당한 인연으로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순회 공연에 참여한 이후 마이클 크레투는 1985년에 산드라에게 'Maria Magdalena'를 만들어 주면서 인연을 지속시켜 나갔고 이 곡은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히트하게 된다. 'Maria Magdalena'는 휴베르트 카의 리더인 '휴베르트 케믈러(Hubert Kemmler)'와 마이클 크레투가 공동 작업으로 만든 곡으로 독일, 스위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영국에서는 싱글 차트의 91위에 올랐다.

 

아라베스크 시절 부터 이어져 오던 두 사람의 인연은 산드라의 성공과 함께 결혼으로 연결되었으며 산드라와 결혼에 성공한 마이클 크레투는 산드라와 함께 하는 그룹을 구상하게 된다. 당시 '버진 레코드(Virgin Records)'에서 작사가로 활동하던 데이빗 페어슈타인은 마이클 크레투에게 뉴에이지 댄스 프로젝트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였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니그마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1990년 12월, 8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이니그마의 데뷔 음반 'MCMXC a.D.'가 발표되었다. 음반의 제목인 'MCMXC a.D.'는 '서기 1990년'이라는 말을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작성한 것으로 풀이해보면 'M(1000) + CM(900) + XC(90) = 1990' 이 된다. 이니그마의 데뷔 음반에서는 'Sadeness (Part I)'을 시작으로 'Principles of Lust', 'Mea Culpa (Part II)', 'The Rivers of Belief'까지 총 네곡의 싱글이 발췌되어 발매되었다.

 

이 가운데 도입부에 그레고리안 성가를 삽입하고 성적인 암시를 풍기는 여성의 신음 소리가 삽입된 'Sadeness (Part I)'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며 이니그마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데뷔 음반과 싱글들의 발표 당시 이니그마의 멤버들에 대한 모든 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이로인해 다양한 이야기가 이니그마를 둘러싸고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Sadeness (Part I)'는 한국에서도 '운전하면서 듣기 좋은 곡'. '연인과 함께 듣기 좋은 곡'등 다양한 부분에서 선정되며 유럽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와 사랑받았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Michael Cretu - Moonlight Flower

 

Michael Cretu - Moonlight Flower

마이클 크레투 (Michael Cretu) : 1957년 5월 18일 루마니아(Romania) 부쿠레슈티(Bucharest) 출생

 

분류 : 팝록(Pop/Rock), 뉴 에이지(New Age), 일렉트로닉(Electronic)
공식 웹 사이트 : http://enigmaspace.com/

 

루마니아 출신의 '마이클 크레투(본명: Mihai Cretu)'는 프로젝트 그룹 '이니그마(Enigma)'로 유명해졌지만 한국에서는 이니그마 이전의 솔로 시절 발표한 곡 'Moonlight Flower'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다. 마이클 크레투는 루마니아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 중 유명 인물로는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필하모닉(Bucharest Philharmonic)'의 지휘자 겸 바이올린 연주자인 '이온 보이쿠(Ion Voicu)'가 있으며 그는 마이클 크레투의 삼촌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클 크레투는 이러한 가족적 환경에 따라 어린 시절 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며 1965년 부쿠레슈티의 음악 학교인 'Liceul Nr. 2'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게 된다. 1975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프랑크푸르트(Frankfurt)의 '음악 학교(Academy of Music)'에서 3년간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은 팝 보컬 그룹인 '보니 엠(Boney M)'과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를 탄생시켜 성공시키게 되는 독일의 프로듀서이자 키보드 주자인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을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프랭크 패리언의 권유에 의해 클래식에서 팝으로 전향한 마이클 크레투는 1978년 '디키 타라크(Dicky Tarrach, 드럼)', '베씨 베써(Bessy Besser, 베이스)', '요한 단슨(Johann Daansen, 12현 기타)', '브래드 호울(Brad Howell, 봉고, 콩고)', '베른트 콘야(Bernd Konja, 퍼커션)'등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고 자신이 직접 프로듀스한 싱글 'Wild River'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1979년에는 데뷔 음반 'Ausgewahlte Goldstucke'을 발표하였는데 독일어로 된 이 음반은 영어로는 'Moon, Light & Flowers'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후일 이니그마로 크게 주목받게 되는 마이클 크레투의 솔로 데뷔 음반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차트에도 등장하지 못한채 잊혀져 갔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한국에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팝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높아져 갔고 1983년경 부터 시작된 팝 음악의 전성기는 잊혀졌던 마이클 크레투의 음반을 다시 재조명 받게 만들었다. 마이클 크레투가 세번째 음반을 발표할 무렵인 1985년 한국에서는 그의 데뷔 음반에 실린 신비로운 멜로디의 곡 'Moonlight Flower'가 음악 감상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공중파의 FM 라디오 팝음악 방송들을 통해 소개가 되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