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5일 수요일

대구 파티마 병원 81병동의 나날 4

 

4. 등화관제 하나?


병환으로 입원하신 할머니 다섯 분이 한 병실에 있으면 여러가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거나 목격하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데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부모님의 몰랐던 부분을 새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하나 하나 배워 나가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긍정적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꽤나 낭패스러운 행동들로 표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머리 속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늘 머리 아프고 지겨운 일들만 병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할머니들의 어이없는 말씀 한마디가 환자 보호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대구 파티마 병원은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설립한 곳이다. 당연히 성탄절을 앞두고 12월의 매주 토요일 밤에 작은 행사가 벌어지고는 했는데 이 행사라는 것이 병실과 복도의 전등을 모두 끄고 병실의 가운데 쯤에 위치해 있는 간호사실에 작은 촛불 몇개만 켜놓은채 시작되는 것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맞이 하는 그런 종류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탄절을 2주일 앞둔 토요일 밤, 그날도 일곱시가 조금 지나서 행사가 시작되려고 병실과 복도의 불을 모두 끄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주무시던 옆 침대의 할머니가 깨어나시면서 어두운 실내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등화관제 하나?'
 
불이 모두 꺼진 어두운 병실에서 어떤 행사가 벌어질까 궁금해 하며 웅성거리던 병실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등화관제,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던가? 병실 문 앞을 서성이며 잔잔한 웃음을 흘리고 있던 우리는 검은색 수녀복을 입고 손에는 촛불을 든채 피리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병실 앞 복도를 2열 종대로 줄 맞춰 지나가는 수녀님들의 짧은 행사를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등화관제의 밤이 지나고 새날인 일요일 오전이 되자 어김없이 천정에 붙은 스피커에서 현악기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 우측에 보이는 것이 스피커이고 좌측에 있는 원뿔 처럼 생긴 것은 이동 통신 안테나이다.

생각해보라. 저 작은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올 현악기의 소리가 과연 어떠할지를, 눈으로 보기에도 그다지 믿음성이 가지 않는 'PA 시스템(Public Address System: 큰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목적인 공연용의 종류)'의 스피커로 아름다운 현악기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 작은 스피커에서 고음으로 울려 퍼지는 현악기 소리는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만약에 눈에 문제가 있어서 입원한 환자라면 그 현악기 소리는 아마도 평생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으로 다가섰을 것이다. 차라리 피아노 음 같은 건반 악기 소리라면 그나마 들어줄만 했겠지만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어 십여분 정도나 진행되는 현악기의 고문에는 어떤 장사라도 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당하기 싫으면 하루 빨리 병을 물리치고 퇴원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이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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