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2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13

 

목소리의 주인공인 철무륵은 자신의 검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 뜨린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운학을 향해 의문의 말을 던졌다. 이에 나운학은 그저 얼굴 가득 담백한 미소를 떠 올린채 지나가듯 한마디를 툭 내 뱉었다.
"참 형님도 삼재 검법의 일초인 횡소천군을 여태껏 모르셨습니까?"
"뭐, 뭐라고? 횡소천군이라고?"

나운학의 말에 기가막힌듯한 표정으로 말을 곱씹던 철무륵의 표정이 조금씩 풀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장내가 떠나 가도록 커다란 대소를 터뜨리며 나운학에게 말을 이었다.
"크하하! 크하하하! 횡소천군이라고? 자네가 방금 펼친 그 초식이 횡소천군이라면 이 산적의 쓰잘데기 없는 칼질은 그야말로 삿대질에 불과할걸세. 암! 삿대질이지. 크하하!"

철무륵이 몹시 기분 좋은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삿대질 운운하자 그만 계면쩍어진 나운학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뽑았던 검을 검초(칼집)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철무륵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포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형님! 제 대답이 만족스러우십니까?"
"그렇네. 만족하다 뿐인가, 차고 넘치는 대답을 들은 셈이지. 하하하!"

철무륵과 나운학이 비무를 마무리하는 담소를 주고 받고 있을 때 장내에는 기이한  열기가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길태세와 형산파의 식솔들, 그리고 취걸개 방융과 개방의 거지들은 한쪽에 조용히 서있는 삼십명의 성수의가 의원들을 힐끗거리며 몹시 놀란 중에도 잔뜩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들로 서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방금 전의 상황을 되풀이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에 반해 성수의가 쪽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이 그저 차분한 기색으로 철무륵과 나운학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일단의 기마대가 장내를 향해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 중인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삼청산 계곡으로 향하는 진입로를 따라 군막이 쳐진 곳으로 느리게 달려오고 있는 기마대는 기치창검을 앞세운 관병임을 멀리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수가 무려 일만기에 달할 정도의 대군이 몰려 오고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막강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장내로 진군하던 기마대에서 일단의 기마가 툭 튀어나오는 것 같더니 군막 앞으로 달려 왔다.

거대한 깃발을 앞세운 일단의 기마가 가까이 다가서자 중인들은 그제서야 깃발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깃발은 대정국의 대장군임을 표시하는 깃발이었다. 현 대정국 황제인 성화제의 최측근이자 충신인 대장군 교남천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대형 깃발을 앞세운 기마대는 장내로 서서히 달려오다 성수신의 나운학을 발견하고 그의 지척까지 달려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 세운후 한꺼번에 우르르 하마했다.
 
대장군 교남천과 휘하 장수들로 이루어진 오십여명의 장병들은 말에서 내린 후 재빨리 대장군 교남천을 선두로 하여 쇄기 꼴 대형으로 진용을 갖추고 대장군의 걸음을 따르기 시작했다. 대장군 교남천은 나운학의 앞에 이르자 포권지례로 예를 먼저 취한 후에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정국의 대장군 교남천이오이다. 성수신의가 맞으신지?"
"예. 대장군. 제가 새로 성수신의 자리를 물려받은 나운학입니다. 하온데 어찌 대장군 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이 먼곳까지 출병하신 것이온지요?"
"하하! 저야 성상께서 하명하신 바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성상께서 이번 성수신의 참살 사건에 대해서 들으시고는 격노하시어 직접 출병하시겠다는 것을 소장이 대신 출병하겠다고 간곡히 주청을 드려 겨우 윤허를 받아 이렇게 오게 되었지요. 하하하!"
"그러셨군요. 성수의가의 일로 공연히 대장군께 폐만 끼치는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무슨 말씀을, 성상께옵서 이번 성수의가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한치의 실수도 없이 무조건 협조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관군들이 해야할 일을 알려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오십대의 대장군 교남천이 형형한 눈빛으로 사위를 압도하며 당당한 기세로 나운학에게 자신들이 달려온 목적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장내의 무림인들은 일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대장군이 대군을 몰고 와 성수의가를 돕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관과 무림은 기본적으로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버젓이 존재하는 바에야 대장군의 이런 행동이 쉽게 이해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림인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성수신의 나운학의 태도였다. 관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하는 태도의 나운학을 바라보는 무림인들의 가슴 속에는 의문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중인들의 궁금함을 풀어 주려는 듯 철무륵이 한걸음 나서 대장군을 일별한 후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나운학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우! 이게무슨일인가? 갑자기 관병이라니?"
"아! 예. 형님. 모르셨나 보군요. 저희 어머님이 성상의 누이되시는 명화 공주이십니다."
 
충격이 장내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동안 감춰져 왔던 성수의가의 내력 중에서 또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성수신의 나운학의 외숙이 당금 대정국의 황제인 성화제라는 소리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제서야 장내의 무림인들은 이 모든 상황이 재빠르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황제가 직접 출병하겠다며 격노했던 것인지, 왜 대장군과 관군들에게 성수의가에 적극 협조하라는 황명을 내린 것이지를 말이다. 아울러 혈사교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한순간에 장내의 있는 모든 무림인들의 머리 속을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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