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9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11

 

사경을 헤매던 설지는 만년삼왕의 도움으로 다음 날 아침부터 약간의 운신이 가능할 정도로 기력을 되찾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하여 만년 삼왕의 도움을 받은지 닷새만에 완전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무거운 침묵속에 잠겨들었던 성수의가도 설지의 회복과 함께 깨어나기 시작하여 미뤄두었던 혈사교와의 담판을 위해 출행 준비에 들어갔다. 강서성 상요시의 삼청산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혈사교의 총단을 향해 성수의가의 가주 나운학과 성수의가 의원 삼십여명이 말 고삐를 쥐고 길을 나선 것은 설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지 사흘만이었다.

 

전격적이라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 성수의가의 출행 소식에 화들짝 놀란 개방과 녹림에서 부랴부랴 따라 붙었고 귀주성에서 강서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호남성의 형산파에서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제자 오십여명을 하산시켜 성수의가의 행렬을 마중하게 하였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속에서 성수신의 나운학과 일행들이 삼청산의 초입에 당도한 것은 성수의가를 출발한지 열흘만의 일이었다.

 

이미 그곳에는 형산파 장문인 길태세를 비롯하여 제법 많은 군웅들이 운집하여 혈사교로 진입하는 길목을 완전히 차단한채 성수의가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성수신의 나운학과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을 선두로 한 일행은 형산파 장문인 길태세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취걸개 방융과 철무륵 그리고 나운학과 길태세는 한꺼번에 오십여명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게 커다랗게 길가에 쳐진 군막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신의.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예. 장문인. 이리 반겨주시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허허. 그 무슨 소리, 성수신의 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제가 반겨드려야지요. 아! 그리고 총표파자께서도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신수가 훤해지신 것 같소이다. 허허허."
"하하하. 이 산적이야 별탈이 있었겠습니까. 그나저나 길장문인께서는 또 다른 경지에 접어 드신 것 같소이다. 그려."
"허허허. 그리보아주시니 그저 얼굴을 들수 없을 지경이외다. 약간의 성취가 있어 그리 보이는게지요. 그래도 어디 총표파자에 비할 수 있겠소이까. 허허허. 취걸개 께서도 신수가 훤해지셨소이다.그려."
"쩝. 거지더러 신수가 훤해졌다니 그거 욕 아닙니까?"

 

덕담을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눈 길태세와 취걸개 그리고 철무륵은 잠시 서로의 눈길을 교환한 후 무언가 의중이 통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철무륵이 먼저 나운학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우. 이제까지 너무 급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그래 어쩔 생각인가?"
"어쩌다니요? 아버님의 명도 있고 하니 혈채를 받아야지요."
"아니, 아니, 내말은 그게 아니라, 혈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혈사교가 그리 간단한 방파가 아니라네. 물론 우리 모두가 나선다면 무너뜨리지 못할것도 없겠지만 우리 쪽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야. 좀더 시일을 두고 무림맹의 지원을 받아 혈사교를 치는 게 어떻겠는가?" 무림맹에서도 성수의가의 청을 거절하지는 못할게 아닌가?"

 

철무륵의 말을 듣고 있던 길태세도 무거운 표정으로 동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나운학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철무륵의 말이 끝나자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형님! 저하고 칼을 한번 섞어 보시겠습니까?"
이러한 나운학의 말에 철무륵은 잠시 멈칫거리다 나운학을 향해 깊숙한 눈길을 주더니 이렇게 말을 받았다.
"여보게. 아우! 내 자랑은 아니지만 이 산적의 칼은 제법 매섭다네. 자네가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줄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건 안되네."

 

철무륵이 이와 같은 대답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여태껏 철무륵은 나운학이 펼치는 무공을 직접 본적이 없었을 뿐더러 겉으로 드러나는 기운도 그저 평범한 의원 처럼 특이한 점이 없었기에 그저 일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운학은 철무륵의 심각한 거절의 의사에도 아랑곳 없이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형님! 지금 저하고 칼을 한번 나누어 보시지요. 그것으로 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나운학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 성큼 군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나운학의 모습을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철무륵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절레 내젓더니 곧 나운학의 뒤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철무륵이 바깥으로 나오자 이미 나운학은 청강검 한자루를 쥐고 군막 옆의 제법 넓직한 공터로 향하고 있었다.

 

나운학이 청강검 한자루를 쥐고 공터로 향하고 그 뒤를 따라 철무륵이 역시 손에 검을 쥔채 따라 나서자 곧 주위는 삽시간에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터를 가운데 두고 약 백여명의 인물들이 빙둘러 서기 시작하였다. 비무가 진행되리라는 것을 짐작으로 깨달은 장내 인물들의 재빠른 행보였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철무륵은 혀를 끌끌 차더니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공터의 한가운데 서있는 나운학의 맞은 편에 가서 몸을 우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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