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8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6


나운해는 기절해버린 사나이를 서둘러 자리 위로 끌어다 눕히고 사나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붉은 장포를 걸친 사나이는 그 강렬한 붉은 색으로 인해 멀리서 보기에는 나이가 제법 많이 든 것 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이제 겨우 약관을 지난 듯한 매우 젊은 사나이로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오관이 반듯하고 고집이 세어 보이는 남자다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나이의 등장에 놀라 달려왔던 설지는 아버지인 성수신의 나운해가 젊은 사나이를 살펴 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다 나운해의 처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물러나 다시 두마리 아기 호랑이들과 뒤엉켜 놀기 시작하였다. 나운해는 그의 아내 염옥상의 도움을 받아 젊은 사내를 세밀히 진맥하다가 인상을 잔뜩 굳힌채로 말문을 열었다.

"흠. 여보! 이 청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독에 중독된 것 같소. 그리고 피를 너무 흘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소."
그러나 제법 심각한 이 말을 들은 염옥상은 입가에 살풋 미소를 띄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어렵지 않게 손 쓰실수 있겠지요?"
"허허허. 그렇소.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는데 이 청년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소. 어렵지만 내 최선을 다해 살려보리다."

나운해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자신의 품속에서 침통을 꺼내 놓고 청년의 겉옷을 모두 벗겨내었다. 그리고나서 머리 위의 백회혈을 시작으로 침을 시전하기 시작하여 신체의 중심 부위에 있는 명문혈까지 빠르게 침을 시전하였다. 어느 사이 청년의 상반신은 많은 침으로 인해 흡사 고슴도치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변하여 있었다. 침술 시전을 마치고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나운해는 침술을 시전할 때의 역순으로 빠르게 침을 회수하여 갈무리 하기 시작하였다.

상반신에 꽂혀 있던 모든 침을 회수하고 나자 그때부터 청년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남들이 보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이 일련의 침술 시전은 성수의가 비전의 구명침술로 설사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해도 한줄기 숨만 붙어 있으면 회생시킬 수 있는 침술로 생사귀혼 금침 대법이라고 불리는 침술 중 하나였다.

성수의가에서 직계들에게만 비전되어 내려오는 생사귀혼 금침 대법의 극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해도 죽은지 한시진이 지나지 않았으면 일각 정도는 다시 숨이 돌아오게 하여 생전에 못다한 말을 남기게 할 수도 있는 아주 고절한 침술로 세인들에게는 신의 침술로 알려져 있었다. 침술 시전을 마치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긴 한숨과 함께 나운해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휴! 이제 신체 내부에 흩어져 있던 독은 모두 한곳으로 모아 안정을 시켰소. 보령환을 먹이고 나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올게요. 연후에 한곳으로 몰아 놓은 독을 해독하는 탕제를 먹이면 괜찮아 질게요."

말을 마친 나운해는 품속에 늘 지니고 다니던 성수보령환을 물에 으깨어 청년의 입속에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다. 입 바깥으로 흘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보령환을 모두 먹인 나운해는 청년이 편안해 할 수 있게 자세를 잡아 자리에 눕혔다. 그렇게 모든 처치가 끝난 후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장내에 스무명 정도의 검은 무복 차림의 사내들이 날아 내렸다. 그렇게 날아 내린 사나이들의 선두에 서 있던 광폭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나운해와 염옥상을 일별한 후 눕혀져 있는 사나이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흐흐흐. 애송이 놈! 겨우 여기 까지 밖에 오지 못했더냐?  여기까지라도 도망쳐온 것을 가상하게 여겨 단번에 네 목을 잘라주마."

말을 마친 사내는 나운해가 뭐라고 할 틈도 주지 않고 검을 빼들고 짓쳐왔다. 그 같은 돌연한 행동에 놀란 나운해가 주춤하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가슴 팍이 서늘해 지는 느낌에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는 사이 검을 치켜든 사나이는 나운해를 베고 지나가면서 놀란 눈으로 비명을 지르며 남편을 바라보고 있던 염옥상 마저 가차 없이 베어 버리고는 눕혀져 있는 붉은 장포의 청년 곁으로 날아 내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흐흐흐. 애송이 소교주! 잘가시오."

그리고 이어지는 잔혹한 손속에 붉은 장포의 청년은 몸과 머리가 분리되고 말았다. 한편 한쪽에서 두마리 호랑이와 뒹굴고 있던 설지는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이전에 스무명 정도의 흉폭한 사내들이 장내에 날아 내릴때 부터 놀란 눈으로 지켜 보고 있다가 아빠와 엄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지자 그 자리에 굳어 버린듯 비명 조차 지르지 못하고 놀란 눈을 끔벅거리며 그저 쓰러진 아빠와 엄마가 아무 일 없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쓰러진 두사람은 잠시 꿈틀대는 듯 하더니 이내 잠잠해 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설지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악!"

설지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는 순간 장내에 있던 사내들 중 하나가 검을 빼들고 설지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삭초제근이라는 말을 실행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나 검을 빼들고 설지 쪽으로 걸어 오던 사나이는 자신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른채 가슴이 함몰된 채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두마리 아기 호랑이 중 호아가 설지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듯 하더니 어느순간 다가오는 사나이 앞에 불쑥 나타나 사나이의 가슴을 앞발로 후려쳤던 것이다.

장내에 있던 인물들은 이 돌연한 사태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란 일행들 가운데서 지휘자인듯 한 사나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주위의 동료들에게 말을 붙였다.
"저, 저게 무엇이냐?"
그러자 그 사나이들 중 하나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 나왔다.
"글쎄요. 호랑이 새끼 같은데..."
"야! 이 자식아. 무슨 놈의 호랑이 새끼가 저런 힘을 가지고 있어. 모두 공격해."

사나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무복의 사나이들 십여명이 일제히 검을 빼들고 호아를 둥그렇게 포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호아는 사나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멀뚱히 사나이들을 쳐다 보다가 어느순간 한 사나이를 향해서 도약했다. 그때 부터 호아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진행되었다. 검은 무복의 사나이들은 강호에 나가면 그래도 일류소리를 듣는 무사였지만 천년마령호의 상대가 되기에는 애초에 무리가 있었다. 호아는 사나이들의 검을 요리 조리 피하며 한차례씩 사나이들의 가슴을 툭툭 치며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사나이들은 입으로 피분수를 날리며 무려 삼장 가까이나 뒤로 튕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의 지휘자를 비롯한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칠팔명 사내들의 얼굴 빛은 점점 하얗게 탈색되어 가고 있었다. 가만히보니 무시무시한 능력으로 검은 무복의 사나이들을 앞발로 쳐서 날려 버리고 있는 작은 호랑이는 눈앞에 있는 한마리가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작은 계집 아이의 품에 눈 앞에서 설치고 있는 호랑이와 똑 같은 모습의 작은 호랑이가 한마리가 더 있었던 것이다.

"으으. 도대체 저 놈들은 무엇이길래. 우리 혈사교의 전투대를 어린아이 가지고 놀듯 한다는 말이냐?"
"저, 통령. 그러고 보니 저기 죽어 나자빠진 사내의 가슴에 성수의가의 표시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꼬마 계집아이의 부모들로 성수의가의 식솔들인 듯 한데 서둘러 이 자리를 피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다. 공연히 피해만 늘어날것 같군. 저 소교주의 시체도 처리해야 하는데 저 작은 호랑이의 기세로 봐서는 쉽지 않겠어."

통령이라고 불린 사나이가 말을 마치는 그 순간 호아를 공격했던 십여명의 사내들 중에서 마지막 사내가 피를 입으로 뿜으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혈사교의 전투대라고 밝힌 사나이 십여명이 별다른 힘도 써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아니. 이럴수가. 안되겠다.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라. 귀양에서 모인다."

부리나케 말을 뱉은 통령이라는 사나이가 몸을 날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행이 공격에 가담하지 않아 목숨을 건진 남은 사내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들은 소교주라고 불린 사내의 시신을 비롯해 자신들의 동료들 시신들도 수습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면서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겨두게 되었다. 그것이 혈사교에 어떤 식으로 돌아가게 될지 전혀 짐작도 못하고서...

한편 사나이들이 흩어져 도망가자 뒤를 쫓는 것을 포기한 호아는 분을 이기지 못한듯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포효 소리를 토해냈다.
"크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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