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2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10

 

그날! 중원 천하로 하나의 소문이 개방도들의 입을 통해서 빠르게 번져 나갔다.
'혈사교의 무뢰배들이 성수신의 나운해를 피살하고 도주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불 처럼 중원 전역으로 번져나갈 즈음 또 하나의 소문이 중원을 강타했다.
'성수의가의 신임 성수신의 나운학이 혈사교에 배첩을 보냈다. 그 내용은 전대 성수신의 나운해의 피살에 관련있는 모든 자들의 수급을 들고 혈사교주가 직접 성수의가로 찾아와 무릎꿇고 사과하라. 만약 이에 응하지 않을시 혈사교를 무림에서 지워버리겠다.'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두가지 소문으로 중원 천하가 들끓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신임 성수신의가 보낸 배첩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였다. 아무리 성수의가라고 한들 한낱 의가에서 무림 거대 방파를 상대로 보내는 배첩의  내용이 너무도 엄청났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또 하나의 소문이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번 소문의 근원은 혈사교로 부터 시작되었는데 성수신의의 배첩을 개방으로 부터 전해받은 신임 혈사교주 곽대웅이 배첩을 한번 들여다 보고는 배첩을 갈기갈기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미친 놈들.'

전대 혈사교주 기천륭을 암산하고 교를 빠져나간 그의 독자 기일성 까지 혈검대를 보내 주살해 버린 신임 혈사교주 곽대웅은 성수신의의 배첩을 받을 때 까지만 해도 그저 피식거리며 미친 놈들이라고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러나 혈사교주 곽대웅의 말이 호사가들의 입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하자 상황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도맹의 의방에서 모든 의원들이 '이번 성수신의 피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자들이 처벌 받기 전에는 무림인들을 상대로 금창약 한줌 제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버린 것이었다. 뒤를 이어 사사천 소속의 의방 의원들과 마도맹 소속 의방 의원들이 같은 선언을 하며 동참했고 일반 의원들 역시 여기에 동참하며 무림인들을 상대로는 어떠한 의술도 베풀기를 거절하였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혈사교가 아니라 정도맹과 사사천 그리고 마도맹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무림을 삼분하고 있던 세개의 단체에서는 연일 회의가 벌어졌고 급기야 정도맹주와 사사천주 그리고 마도맹주가 한자리에 모여 장시간의 회의를 가진 끝에 한시적이지만 사상 초유로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가 한자리에 모이는 무림맹 결성에 동의하게 되었다. 무림맹의 맹주는 세개 단체의 단체장들이 공동으로 맡기로 하고 성수의가와 혈사교 사이에 벌어지는 사태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중원 무림이 요동치고 있을 그때 정작 성수의가에서는 다른 문제로 의가 식솔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설지가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뒤 갑자기 신열이 들끓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갈을 받은 나운학이 서둘러 달려와 설지의 상태를 안정시켜 놓았으나 헛소리를 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며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서 간신히 버티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설지의 병세로 이날 부터 의가는 깊은 시름에 잠겨들었다.

이런 상황이 10여일 계속되자 그때 까지 설지 곁을 지키며 안절 부절 하지 못하던 호아가 조용히 성수의가를 빠져나가 두시진 정도 지난 후인 저녁 무렵에 돌아왔는데 그런 호아의 곁에는 어린 동자 하나가 함께 하고 있었다. 분명히 어린 동자의 모습이지만 어딘가 신비스러운 분의기가 있는 동자를 데리고 호아는 설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설지의 곁을 지키고 있던 나운학에게 심령으로 동자의 정체를 알려주고는 설지를 동자에게 맡겨볼 것을 권하였다. 나운학은 동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지의 곁에서 물러 나오며 동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어린 동자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운학을 한번 바라본 후 이내 누워있는 설지를 찬찬히 훓어보더니 작고 가녀린 설지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방안의 공기 흐름이 변하는 것 같더니 온화한 기운이 손을 맞잡은 동자와 설지를 중심으로 방안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온화한 기운은 이내 방문을 넘어 조금씩 퍼져 나가더니 급기야는 의가 전체로 퍼져나가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의가의 식솔들도 갑자기 의가 전체로 퍼지는 온화한 기운을 느끼고는 서로를 쳐다보며 기운의 정체에 대해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서재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던 나운영도 갑자기 의가로 퍼져나가는 신비롭고 온화한 기운을 느끼고는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다 이내 설지의 방에서 기운이 흘러나옴을 깨닫고 서둘러 설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설지의 방문 앞에 도착한 나운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묘하고 온화하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기운에 압도 당함을 느끼며 조용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 가득 의아함이 스며있는 나운영이 방으로 들어 오는 것을 발견한 나운학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목례로 예를 표하고는 나운영이 묻기도 전에 의문점을 곧 바로 풀어주었다.
"아! 아버님. 아무래도 저 어린 동자의 정체가 호아의 말로 짐작컨데 만년 삼왕인 것 같습니다. 호아가 의가를 빠져 나간 뒤 저 동자를 데리고 조금 전에 돌아와 제게 말하기를 자신들이 이렇게 영성을 갖게 된게 저 어린 동자 때문인데 사람들이 말하는 삼왕이라고 하는군요."

나운학의 말이 끝나자 얼굴 가득 의아함으로 물들어 있던 나운영의 얼굴에서는 조금씩 웃음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밝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허허. 그래. 만년 삼왕이라고..., 자연지기의 결정체로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존재로 알려진 만년삼왕이라니, 허허허 설지 놈에게 기연이 찾아온 것 같구나."
"예. 그렇습니다.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만년삼왕의 도움이 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기연이랄 수 있겠지요."

부자가 흐뭇한 마음으로 도란 도란 말을 나눌 때 만년삼왕의 화신인 어린 동자는 잡고 있던 설지의 손을 놓고는 호아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듯 하더니 갑자기 설지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린 동자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작아지더니 어느새 설지의 앞가슴팍에 작은 삼 하나가 달려 있는 모습이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 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아가 나운학에게 시선을 맞추며 심령으로 말을 전해왔다. 호아의 말을 전해들은 나운학은 이내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인 나운영에게 호아에게서 들은 말을 간추려 들려주었다.
"아버님. 호아의 말로는 만년삼왕의 도움으로 설지는 곧 괜찮아질거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만년삼왕도 자신들과 함께 설지의 곁에 머무르기로 했다며 아무 걱정말라고 하는군요."
"그래, 그래, 이제 되었다.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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