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5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7


주변의 산천초목들이 한꺼번에 부르르 떠는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작은 몸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포효를 내뱉은 호아는 좌우를 한번씩 돌아보다 이내 몸을 돌려 놀라서 주저 앉아 있는 설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설지는 거의 혼절 지경에 이르러 있었는데 품에는 백아를 꼬옥 안고 바들 바들 떨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성수의가에서는 환단 제조를 위한 약수로 태극천을 흐르는 태극수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거의 매일 한차례씩 의원들이 의가의 하인들을 인솔하여 태극천과 성수의가를 오가고 있었다. 오늘도 물지게를 진 의가의 하인들과 그들을 인솔하고 있는 듯한 의원 차림의 장정이 태극천으로 오다 호아의 포효 소리에 깜짝 놀라 부리나케 일행들을 이끌고 태극천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참경에 일행은 할말을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주저 앉아 있는 설지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시신들, 그리고 의가의 가주와 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의 시신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의원 송염은 화들짝 놀라 제발 가주와 가모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신쪽으로 다가가서 살펴 보았으나 기대와는 달리 그 두사람은 분명 의가의 가주와 가모였다.
"이, 이런일이... 가주님, 가모님!"

송염이 의원답지 않게 당황하며 두 사람을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두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느껴지질 않았다. 잠시 허둥대던 송염은 이내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긴 숨을 두어번 토해내고는 곧 바로 두 사람의 시신을 한쪽에 가지런히 모셔 놓고 급히 설지를 향하여 뛰어 갔다.
"설지야. 어디 다쳤느냐? 어디 좀 보자. 다친데는 없느냐?"

한꺼번에 여러 말을 토해낸 송염은 다급한 심정으로 주저 앉은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 설지를 일으켜 세워 조심스레 몸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이상이 없는듯 하자 이내 한숨을 쉬며 함께 온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빨리 가서 이 사실을 의가에 알려라. 뭐하느냐 서두르지 않고!"
송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젊은 하인 하나가 지고 온 물지게를 내려 놓고 황급히 의가를 향하여 뛰어 갔다.

한편 참상이 벌어진 태극천에서 멀리 떨어진 성수의가에도 호아의 엄청난 포효 소리가 의가의 대문을 넘어 전해지며 의가의 전각들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호아의 포효 소리에 놀란 의가의 식솔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의 하늘을 향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는 한편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때 장남인 나운해에게 의가의 가주 자리를 물려주고 설지의 교육을 담당하며 소일하고 있던 전대 가주 나운영도 서재에 앉아 있다가 호아의 포효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 서재에서 황급히 나와 마당으로 내려 서고 있었다. 마당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 서 있었는데 그 중에는 장총관의 모습도 보였다.
"장총관! 이게 무슨 소린가?"
"아! 예. 어르신. 글쎄 저도 잘모르겠습니다. 호랑이의 울음 소리 같기는 한데..."
"어느 쪽에서 들려온 소리든가?"
"예. 태극천 쪽에서 들려온 것 같습니다."
"태극천이라면 가주가 식솔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간 곳 아니든가?"
"예. 그, 그렇습니다."
"이런! 빨리 가보세. 따라오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에 깜짝 놀랐던 나운영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이미 대문을 지나 태극천 방향으로 경공을 전개해 달려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수신의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졌던 성수의가의 전대 가주 나운영이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할만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대로 성수의가는 의술로 혁혁한 명성을 쌓아온 가문이며 특히 성수신의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신의 의술을 가진 의원을 대변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중원 천하에서는 이전까지 그 누구도 성수의가에 가전 무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당연히 의원이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바꿔 말하면 중원에서 칼밥을 먹고사는 무림인 중에서 그 누구도 성수신의 나운영에게서 무공을 익힌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되니 이는 성수신의 나운영의 일신에 지닌 무공 수위가 그들을 앞선다는 의미와 다름아닌 것이다.

하여간 눈 깜짝할 사이에 성수교의 중간 쯤에 도착한 나운영은 다리의 저쪽 끝에서 의가 쪽으로 달려오는 인영 하나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그 인영의 앞으로 달려가 몸을 세운후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더냐?"
"예. 어르신. 그 그것이..."
"어허! 무슨 일이길래 이리 황급히 달려 오고 있던 게야. 어서 말해 보거라."
"예. 어르신. 그것이 가, 가주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하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나운영은 자신도 모르게 젊은 하인의 멱살을 틀어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했다.
"뭐, 뭐라고, 운해가, 운해가 죽었다고?"
"컥컥, 예. 어, 어르신 이것 좀 놓고..."
"어디냐, 어디 있느냐. 지금 운해는 어디 있느냐 말이다."
"예, 예 태극천에 있습..."
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운영은 틀어쥐었던 멱살을 놓아주고 태극천 쪽을 향해 달려 가기 시작했다.

나운영이 태극천에 도착했을때 그의 눈에는 둘째 아들인 나운학이 먼저 도착하여 형님 내외의 시신을 살펴 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나운학은 천량산으로 약초 채집을 나갔다가 태극천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던 중에 호아의 포효 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내려와서 목불인견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나운학의 옆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설지가 품에 백아를 꼭 안은채 송염의 곁에 서 있는 모습이 나운영의 눈에 들어왔다.
"설지야! 이 놈, 설지야! 괜찮으냐?'

나운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설지는 이내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그쳤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며 곧바로 나운영에게 달려와 안겨 들었다.
"흑흑,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가...흑..으아앙!"
"그래. 그래. 이제, 이제는 괜찮다."
부드럽게 말을 하며 설지의 등을 쓸어주며 장내를 살펴보고 있는 나운영의 눈에서는 부드러운 말과 달리 서슬퍼런 귀화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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