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4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3


산적 숙부 곁에 서서 혜명 대사와 산적 숙부 철무륵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설지는 낮은 백호의 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여 뛰어 오는 백호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와서 멈춰 선 백호를 내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호아야! 할아버지 모시고 왔어?"


설지의 말이 끝나자 호아라고 불린 작은 백호는 마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아래 위로 두어번 끄덕이더니 대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따라 의가의 대문으로 향하던 설지의 눈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금새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막 의가를 들어서는 인물들에게로 달려 갔다.

"숙부님! 언니! 그리고 할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어딘지 모르게 뒤죽박죽인 듯한 설지의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인사에 장내에 있던 인물들이 모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는 등에 커다란 자루를 둘러 멘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호남형의 사내 하나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의가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낡았지만 도복이 분명한 정갈한 옷차림의 늙수그레한 도사 한명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처마 아래에 서 있다가 소림의 혜명과 함께 녹림의 손님들을 맞고 있던 장촌관이 그 인영들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달려가 설지와 함께 일행을 맞아 들였다.
"가주님!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도 잘 다녀오셨지요?"
장총관과 설지의 인사를 받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호남형의 사내는 설지를 번쩍 안아들더니 장총관을 향해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잘 놀고 있었느냐? 말썽 피우지는 않았고?"
"응! 숙부, 설지는 무지 무지 잘 놀았어."

설지를 안고 반가운 말을 나누는 이 호남형의 사내가 바로 당대 성수의가의 가주인 나운학 의원이었다. 강호에서는 의선, 신의, 대협 등의 여러 호칭으로 불리지만 나운학은 그저 의원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며 소탈하고 범속한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나운학은 자신이 안고 있는 설지를 볼때 마다 늘 가슴아픈 기억이 떠올라 안타까웠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또한 나운학은 3년전 타계한 형님의 딸인 설지를 자신의 딸 처럼 키우면서 보살폈고 설지를 향해서는 늘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것 외에는 한번도 화를 낸적이 없을 정도로 애지중지 하며 설지의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고 있었다.

성수의가주 나운학의 곁에 있는 이십대의 아름다운 여인은 절세가인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미를 간직한 여인으로 강호상에서는 알려진 내력이 별로 없이 그저 성수의화 교혜린이라는 별호와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신세 내력에 대해서는 일체 알려지지 않은 신비화이자 무림 제일화였다. 교혜린은 나운학의 품에 안긴 설지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섞인 듯한 시선과 안타까움이 어린 듯한 시선을 함께 보내다 설지에게 말을 건넸다.

"호호, 설지야! 잘 놀았니?"
"응! 언니 백아랑 초아랑 술레잡기 하면서 놀았어."
"호호 그랬구나. 자 이건 가주님과 약초를 채집하고 산에서 내려오다 예쁜 꽃이 피어 있길래 설지에게 주려고 가져 왔단다."
말을 하면서 교혜린은 꺾어온 작은 들꽃을 설지의 가슴팍에 꽂아 주었다.
교혜린이 달아주는 꽃을 바라보던 설지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더니 교혜린의 뺨에 입을 맞추며 좋아하였다.
"우와! 이거 무지 예쁘다. 언니 고마워!"

설지가 가슴팍에 달린 꽃을 내려다 보며 웃고 있는 그때였다.
가주 일행의 뒤에 서 있던 도사 차림의 늙은이가 설지에게 다가서며 심통이 난 듯한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녀석! 이 할애비는 빈 손이라고 무시하는거냐?"

도사의 말이 끝나자 설지는 도사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흥, 도사 할아버지는 하는 일도 없이 매일 주루에서 술만 드시며 놀면서 설지에게 꽃 한번 꺾어준 적이 없잖아요!"
이 말을 들은 늙은 도사는 짐짓 나무라는 태도로 설지에게 말했다.
"아, 욘석아 그건 노는 게 아니라 도를 깨우치는 과정인게야. 흐흠!"

자신이 말해 놓고도 무언가 어색한지 끝에 가서는 어색한 기침소리로 말을 마무리 하는 이 도사가 바로 무당 검선이라고 강호에 알려져 있는 무당 제일 고수이자 무당 장문인 보다 한배분이 높은 일성 도장이었다. 무당의 태극 검법을 십이성 대성한 일성 도장은 무공만큼이나 기이한 행로로도 유명한데 도사의 신분으로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은 물론 성품이 소탈하여 시정잡배들과도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등 허례 허식을 몹시도 싫어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일성 도장 까지 성수의가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으니 가히 성수의가가 중원제일가라고 불리우는 것이 그저 과장된 것임은 분명 아닌 셈이었다.

일성 도장은 주루에서 호아와 함께 술 한잔을 마시고 있다가 산을 내려 오는 나운학과 교혜린을 발견하고는 주루를 나서서 함께 의가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는데 그런 일성 도장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듣고 있던 설지는 갑자기 생각난 듯 곁에 다가와 있던 두마리 백호 중에서 약간 몸집이 커 보이는 백호의 양쪽 앞발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백호의 몸통을 들어 올리고 자신의 눈과 백호의 눈을 맞추더니 백호에게 말을 건넸다.
"호아! 너, 또 술 먹었지?"

설지의 이 말이 끝나자 호아라 불린 백호는 몸을 잠시 부르르 떠는 듯 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살레 살레 저었다.
"안마셨다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아~ 해봐."
그 소리에 호아는 작은 입을 떡 벌리더니 설지의 얼굴을 향해 입김을 불어냈다.
"이상한데? 분명 아까는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알았어, 술 마시면 안돼! 알았지?"

호아를 향해 말을 마친 설지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이상한데를 연발하고 있었으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내의 인물들은 모두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조금 전에 설지에게 들어올려지기 직전에 호아는 주독을 모두 체외로 방출해 버렸으며 장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 차렸으나 그저 모른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와 의가주 일행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던 철무륵은 그들간의 한바탕 인사가 끝나자 우렁 우렁한 큰 목소리로 나운학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하. 아우님, 산에 갔다 오시는가?"
"아! 예, 형님 오셨군요. 이번 의가의 하남성 행에 혹시라도 필요할지 모를 약초를 미리 구해 놓기 위해 아침 일찍 교소저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입니다."
"하하하, 그랬구만. 하긴 이 곳 귀주성 만큼 좋은 약초가 많이 나는 곳이 중원에는 없지."
"예. 그렇습니다. 형님. 많이 준비하긴 했으나 혹시라도 부족할까 싶어 좀더 채집하고 오는 길입니다."
"허허, 사람. 그 세심한 성격은 여전하구만."

철무륵과 나운학의 인사가 마무리 될 즈음 주방의 보조 숙수 하나가 마당 한켠에 있던 징을 힘차게 두들기며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의가의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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