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7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2



서로를 마주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십팔 나한들 중에서 대사형이며 수좌승인 공각이 사제들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혜명 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 계율 원주님!"
"응, 왜 그러시는가?"
"방금 말씀하신 것을 저희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요? 만년삼왕과 천년 영물이라니요?"
"허허허, 놀랐는가? 맞네 저기 지금 자네들 눈앞에서 소공녀와 놀아주고 있는 소동과 백호는 인세에 등장한 적이 없어 자세한 이력이 알려져 있지 않은 만년 삼왕과 천년 마령호일세."
"천년 마령호라 하심은..."
"그래, 그렇지! 자네들은 잘 모르겠군. 저기 고양이 처럼 보이는 작은 백호에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천년 마령호라 할 수 있겠지. 정확한 수령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만년 삼왕의 도움으로 거의 천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을 살아 왔을게야. 그리고 만년 삼왕은 자연지기를 머금으며 오랜 세월 살아왔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채집이 불가능한 영물이지. 천년 마령호와 만년 삼왕은 영성이 발달하여 인간을 아주 우스운 존재로 여긴다고 이곳 의가주께서 말씀 하시더군. 그런 영물들이 3년전의 그 사건때 소공녀와 영성이 통하여 저렇게 함께 지내게 된거야."

계율 원주인 혜명 대사의 말을 듣고 있던 십팔 나한들은 하나 같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채 소공녀라 불린 어린 소녀와 영물들의 뜀박질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공녀와 영물들의 달음박질이 전하는 편안한 풍경과 함께 머리 위에 걸린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한낮의 느긋함이 길어지던 그때 성수의가의 대문을 들어서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성수의가의 마당으로 막 들어선 일단의 무리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체격과 우락 부락한 험한 인상으로 강렬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선두에 있던 장대한 체구의 사내 하나가 대소를 터트리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크하하하! 설지야. 산적 숙부왔다."
사내의 찌렁한 목소리가 성수의가의 마당을 커다랗게 울리자 달음박질 하고 있던 인영들의 동작이 일시에 멈추는가 싶더니 설지라고 불린 소공녀가 사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설지는 자신의 옆에 있던 백호를 달랑 들어 품에 안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와! 산적 숙부!"
"그래 그래. 우리 귀여운 설지. 잘 있었느냐?"
"네. 숙부! 숙부도 잘 지내셨지요?"
고개를 숙이며 하는 설지의 말이 떨어지자 사내는 다시 한번 대소를 터트리더니 양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어디 오랜만에 우리 설지 한번 안아보자꾸나."

그 말을 들은 설지는 품에 안은 백호를 한번 내려다보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백호를 뒤로 휙 던져버리고 산적 숙부라고 부른 사내에게 달려가 냉큼 안겨 버렸다. 한편 설지가 뒤로 던진 백호는 공교롭게도 계율 원주인 혜명의 얼굴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혜명 대사의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공각이 두팔을 들어올려 날아오는 백호를 받아 들려 하는 순간이었다. 혜명 대사의 얼굴 쪽으로 날아들던 백호가 혜명의 얼굴 석자 정도 앞 허공에서 갑자기 뚝 멈춰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공각을 흘낏 한번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도도한 걸음으로 허공을 걸어 설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허, 허공답보!"
놀란 공각의 입에서 신음 처럼 한마디가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혜명의 입이 열렸다.
"허허허. 무에 그리 놀라는가. 그러기에 천년 마령호라고 하는게지. 아마도 저 천년 마령호를 감당해낼수 있는 고수를 찾기란 현 무림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일게야. 그러니 자네들도 겉모습이 귀여워 보인다고 천년 마령호에게 경거망동 해서는 안될지니 내말 명심하도록 하게."
혜명의 말이 끝나자 십팔나한들이 일제히 합장하며 굉량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아미타불. 명심하겠습니다. 원주님."

한편 산적 숙부라고 부른 사내의 품에 안긴 설지는 소림승들의 대화가 마무리 될 그때 쯤에 산적 숙부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속삭인다고는 하나 성수의가의 마당에 있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무술을 익힌 절정 고수들임에야 설지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리 없었다.
"산적 숙부! 근데 산적떼는 왜 데리고 오셨어요?"

설지의 이 말이 끝나자 장내에는 일순 기괴한 정적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고생하는 소림승들의 얼굴 표정과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의 우락 부락한 사내들의 표정이 대조를 이루면서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크하하! 산적떼라. 그래 네말이 맞다. 암 그렇고 말고 산적떼가 맞아! 크하하!"
설지의 말을 들은 산적 숙부라는 사내는 재미있다는 듯 외치고는 뒤를 돌아보며 산적떼(?)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놈들아. 그 되지도 않은 험악한 인상 풀고 내 질녀와 인사나 나누거라. 내 품에 안긴 이 절세 가인이 바로 내 질녀이자 성수의가의 소가주인 나설지이니라."
산적 숙부의 말이 끝나자 숙부의 품에서 냉큼 벗어난 설지가 귀여운 머리를 조아리며 인삿말을 먼저 건넸다.
"안녕하세요! 산적떼 아저씨들. 나설지예요."
나설지의 인사가 끝나자 우락 부락한 사내들 중에서 한 사내가 대표로 나서며 설지를 향해 말을 했다.
"그래 반갑구나. 우리 산적떼는 녹림이십사절객이라고 불리는 녹림 총표파자의 호위 무사들이란다."
"녹림 이십사절객이요? 웅, 그냥 산적떼로 부를래요. 말이 너무 어려워."
설지의 이 말을 끝으로 설지의 뒤쪽에 있던 소림승들의 입속에서는 기어코 억눌린 웃음소리가 하나 둘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설지에게는 단순히 산적떼로 전락해버린 녹림 이십사절객이지만 강호에서는 이들 녹림 이십사절객의 위치가 절대 낮지 않았다. 각각 검, 도, 창, 편, 겸 등의 스물 네가지 병기에 정통한 이십사인으로 구성된 녹림 이십사절객은 소림의 십팔나한과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있으며 이십사절객이 펼치는 녹림 절대 수호진은 여태껏 한번도 격파당하지 않은 절대 방어진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소림 십팔나한과 녹림 이십사절객은 평소에 서로를 잘 아는 듯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가벼운 목례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설지에게 산적 숙부라고 불렸던 사내는 먼저 나서서 소림의 계율 원주인 혜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하하! 대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별래무양 하셨습니까?"
"허허허! 아미타불. 총표파자께서도 그동안 별래무양 하셨소이까?"
"하하! 산적들이야 본래 먹고 노는게 일인데 뭐 별 탈이야 있었겠습니까?"

설지에게는 산적 숙부로 혜명 대사에게는 총표파자로 불린 이 인물이 바로 당금 녹림 칠십이채의 주인인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으로 그는 녹림 총표파자의 자리에 오른 후 기울어가던 녹림 칠십이채의 모든 힘을 결집시키고 체제를 정비하여 단 오년만에 녹림 칠십이채를 구파일방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키워낸 녹림이 탄생시킨 절대 영웅이었다.

소림과 녹림의 인물들이 의가라고는 하나 현 천하제일가의 자리에 있는 성수의가의 마당에서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을 무렵 막 성수의가의 대문을 넘어오고 있는 하나의 작은 인영이 있었다. 그 작은 인영은 설지의 곁에 있는 작은 백호와 비슷한 또 다른 백호였다. 그리고 백호의 뒤를 따라서 일남일녀가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캬오오."
대문을 들어선 백호는 낮지만 날카로운 소리를 토하며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찾는듯 하더니 이내 설지를 발견하고는 앙증맞은 발을 힘차게 디디며 설지를 향하여 뛰어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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