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0일 일요일

[무협 연재] 성수의가 1


성수의가

1. 천하제일가

"꺄르르. 에잇, 거기 서!"
머리를 양갈래로 예쁘게 묶은 십여세 정도의 어린 소녀 하나가 손에 작은 목검을 들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채 앞서 달려가고 있는 일수일인을 쫓고 있었다. 소녀의 앞을 달리고 있는 일수일인은 한마리의 작은 고양이로 보이는 일수와 소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지만 머리 한올 없는 특이한 까까머리 모습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어린 동자였다.

소녀와 일수일인이 뛰어 다니며 놀고 있는 이 곳은 어떤 장원의 제법 커다란 마당으로 그 가운데에는 여섯개의 평상이 놓여져 있으며 그 평상 위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햇빛에 노출되며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백의를 입은 의원 차림의 청년 세명이 일일이 평상을 돌아 다니며 풀들을 뒤집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약초를 말리고 있는듯 했다.

세 청년들은 약초를 살피는 일을 하면서도 소녀와 뛰어 놀고 있는 일행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가끔씩 쳐다보고 있었는데 소녀와 일수일인의 행동이 조금은 특이하게 보였다. 고양이 처럼 보이지만 설산의 눈처럼 하얀 백색의 털로 뒤덮인 몸에 아름다운 갈색의 줄무늬가 선명한 일수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까까머리와 함께 어딘가 특이한 분위기가 있는 듯한 동자는 마당을 가로지르고 평상들 사이사이를 오가며 쫓고 쫓기고 있지만 장애물들을 절묘하게 피해 다니며 한번도 세명의 의원들에게 부딪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이 곳은 귀주성의 귀양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서강 묘족 마을에서 가장 큰 장원의 마당으로 장원의 커다란 대문 위 현판에는 일필휘지로 성수의가라고 용이 비상하는 듯한 글씨를 새겨넣은 현판이 달려 있었다. 성수의가의 널찍한 마당에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 고산준봉으로 사방이 가로막혀 있어 이 곳이 오지의 마을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하게 하였다.

삼백년 전부터 천하인들에게 천하제일가로 존경과 칭송을 받고 있는 성수의가는 중원 제일 의가의 위치도 함께 차지하고 있었다. 삼백년전 홀연히 등장하여 죽은 사람도 되살린다는 의술을 펼치며 명성을 쌓아가더니 어느 날 부터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대신 부호와 고관대작들에게는 많은 치료비를 받아 가난한 백성들의 규휼에 앞장 서는 한편으로 강호 무림인들에게는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치료를 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부터 성수의가는 천하인들의 존경을 받는 의가로 그리고 의와 협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중원인들의 가슴에 새겨지게 되었다.

천하제일가이자 중원제일의가인 성수의가의 마당 한가운데를 쫓아다니며 놀고 있는 세인영들을 장원 본채의 처마 아래에서 눈으로 쫓고 있던 노승이 곁에 있는 사십대의 장년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미타불! 장총관. 소공녀께서 꽤나 즐거우시나 봅니다. 그려. 껄껄껄"
"하하하. 예. 대사님. 요즘 소공녀님의 장난이 하도 심하셔서 가끔 가주님께 꾸중을 들으시지만 그때 뿐이시지요."
"허허허. 중원의 홍복이지요."
"예. 그런것 같습니다."

뜻모를 말을 주고 받은 총관이라고 불린 장년인과 노승은 다시 마당을 열심히 뛰어 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는 세인영들을 눈으로 쫓으며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약간 배가 나온 뚱뚱한 체구의 장총관은 성수의가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총관으로 장이모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장이모의 집안은 대대로 성수의가의 총관을 지낸 가문으로 현재 6대째 총관이 바로 장이모였다. 그리고 총관의 옆에서 말을 건넨 노승은 현 소림사의 방장인 혜공대사의 사제로 무림에서는 일권으로 하늘도 무너뜨린다 하여 천붕일권이라는 별호로 알려져 있는 혜명 대사였다.

헤명 대사의 뒤로는 스무명 남짓한 승려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의 정확한 숫자는 열여덟명으로 소림의 당대 십팔나한이었다. 하남성의 소림사에서 천붕일권 혜명과 십팔나한이 성수의가를 방문했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 분명하겠건만 성수의가 측에서는 오늘 소림사 승려들의 방문이 어제와 같은 매일 똑같이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하나인 듯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렇게 각자 제 할일을 하며 의가의 하루를 흘려 보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미타불. 장총관."
"예 대사님."
"저기 맨 앞에 뛰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백호 중 하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3년전 그때 부터 한시도 소공녀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고 있지요."
"허허허. 인세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천년 영물이 소공녀를 지켜주고 있으니 안심이 되오이다."
"예. 대사님. 그렇지 않아도 가주님께서도 만년삼왕인 초아와 천년 영물인 백아와 호아의 덕분에 소공녀님에 대한 걱정을 많이 덜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허허허. 그렇겠지요."

마치 옛날 이야기 하듯이 장총관과 혜명 대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뒤에서 듣고 있던 소림의 십팔나한들은 경악한 표정을 감출수가 없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읽어두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현재의 중국과 그 위치가 맞지 않을 수 있으며 단순히 글의 배경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협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들을 사용한 것으로 혹시라도 지명과 위치가 같다면 우연이거나 의도적인 배치 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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