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파티마 병원 81병동의 나날
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파티마 병원하면 떠오르는 상징물이 두가지 있었다. 첫번째가 병원 건물 앞에 서있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며 두번째가 동대구역으로 들어가는 도로와 병원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깊은 정취를 자아냈던 돌담이었다. '덕수궁의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로 시작하는 혜은이의 노래 "옛사랑의 돌담길"을 들을때 마다 떠올리게 했던 파티마 병원의 그 돌담길은 해마다 가을 이맘때면 돌담길 앞 보도로 은행 나무 잎들이 떨어져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했었다.
하지만 1956년에 축조한 길이 100m, 높이 3m의 대구 최초의 이 돌담은 1999년에 최신 병동 건물이 들어서면서 철거 되었고 현재는 그 자리를 수목이 소공원화라는 명목으로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파티마 병원하면 떠올리던 돌담이 사라진 낯선 풍경이 눈 앞으로 다가들때 느꼈던 당혹감은 금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떨쳐 버릴수 없었다.
◈ 병원 정문 앞의 성모상
병원에 입원하신 후 상태가 호전되어 가는 듯 하던 어머니의 병세가 갑작스레 나빠지면서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허겁지겁 구급차를 타고 달려온 파티마 병원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응급실로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한참 응급실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던 중에 찾은 응급실은 어머니의 병세와 겹치며 마치 도떼기시장 한복판에 버려진 듯한 당혹감과 막연함, 그리고 황망함과 초조감 등이 서로 교차하며 복잡한 심정이 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어수선한 마음과 뜬눈으로 하루 밤을 지샌후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81병동의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81병동의 812호에서 나는 나의 시간이 악몽으로 끝나지 않기를 빌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점심을 챙겨드리고 잠시 짬을 내어 현관 앞의 성모상이 있는 곳에 만들어진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던 나는 문득 발 아래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내려 그 움직이는 물체를 바라 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커다란 개미 한마리가 내 발 아래에서 이리 저리 오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길을 잃어버린 듯 허둥대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내 심정 탓 이었을까?
환자 보호자의 생활이 뭐 별다를게 있겠냐 하겠지만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점심이 지나서야 비로소 81병동을 지키고 있는 수호천사들인 그녀들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꽃무늬 반팔 상의와 하얀 바지 차림의 그녀들은 늘 단아한 모습과 미소로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며 투약과 각종 처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가끔은 짜증이 날텐데도 미소 띤 얼굴로 '어휴'라는 작은 외침으로 짜증을 대신 날려 버리고 씩씩한 모습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자로써가 아닌 자연인으로 그녀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들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면 알수도 있었겠지만 오해의 우려가 있는 시선 처리는 왠지 하기 싫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이 글을 빌어 서x숙 간호사님, 이x름 간호사님, 그리고 이름을 기억 못하는 파티마 병원 81병동의 모든 간호사님들 오늘도 바쁘시죠. 그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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